사랑해요주님

사람들의 구원과 성화를 위한 사도적 열성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의 편지에서

Skyblue fiat 2015. 8. 14. 19:13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의 편지에서

 

친애하는 형제여, 나는 하느님의 영광을 현양하자고 그대에게 권고하려는 열의를 느끼며 한없는 기쁨을 맛보고 있습니다. 현대에 와서 무관심주의라는 시대적 유행병이 세속 사람들 사이에서뿐 아니라 수도자들 사이에서도 여러 형태로 전염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괴로운 마음으로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무한한 영광을 받으셔야 마땅하신 분이므로, 비록 우리 자신이 인간적 나약성 때문에 그 분께 마땅한 영광을 드리기에 무능하겠지만, 부족한 우리 능력을 다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일차적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영광은 그리스도께서 당신 피로써 구속해 주신 영혼들의 구원에서 가장 뚜렷이 빛나시는 것이므로 사도적 생활의 가장 높고 중요한 노력은 되도록 많은 영혼을 구원해 주고 성화시키는 일입니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 것인지, 즉 하느님의 영광을 도모하고 영혼들을 성화하는 길에 대하여 몇 마디 말해 보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무한한 지식과 지혜를 갖추신 분이시기에 당신의 영광을 더하기 위하여 우리가 계속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도 분명히 알고 계시며 특히 지상에서 당신을 대리하는 장상들을 통하여 당신 뜻을 밝히 드러내 보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뜻을 우리에게 밝히 드러내 보여 주는 것은 순명이요 또 순명 하나뿐입니다. 물론 장상이 오류에 빠질 수는 있겠지만, 우리 자신이 순명함으로써 오류에 빠지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혹시라도 장상이 하느님의 법을 조금이라도 명백히 어기는 일을 명령하였을 때에 한해서 순명에도 예외가 인정되겠지만 이런 경우에도 신자가 하느님 뜻의 해석자는 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 홀로 무한하시고, 지극히 지혜로우시고, 지극히 거룩하시고, 지극히 인자하신 주님이시며,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시작이요 마침이시며 지혜와 능력과 사랑 전부이십니다, 따라서 하느님 밖에서 발견되는 것은 무엇이나 다 하느님과 관련되는 한 그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그분 홀로 만물의 창조주이시고, 인간들의 구원자이시며 전 창조의 목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지상에서 당신을 대리하는 장상들을 통하여 흠숭해올 당신의 뜻을 밝히 드러내시며, 우리를 당신께로 이끌어 주시고 우리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도 당신께로 이끄시며 더욱 완전한 애덕으로 당신과 결합시키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자비를 통하여 우리 자신의 품위가 얼마나 존귀하게 되었는지 알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명으로써 허약한 한계를 초월하여 우리 자신이 하느님을 닮게 되고, 하느님께서 무한하신 당신의 지혜와 슬기로써 올바로 행동하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어떠한 피조물도 저항 할 수 없는 하느님의 뜻을 따름으로써 우리 자신은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더욱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와 슬기의 길이요, 이것이 최고의 영광을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만일 달리 더 합당한 길이 있었다면 분명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말씀과 모범으로 그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서는 그리스도의 긴긴 나자렛 생활을 “부모에게 순종하며 살았다.”로 요약 하였습니다. 나머지 생애도 순명의 표지로 우리에게 암시해 주고 있으니, 여러 군데서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준행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내려오셨다고 알려 줍니다.

형제들이여,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합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극진히 사랑합시다. 우리의 순명이 바로 이 완전한 사랑의 증거이어야 하겠습니다. 순명이 우리 자신의 뜻을 희생하라고 요구하더라도 순명이 사랑의 증거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에 진보하기 위해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 읽어야 할 더 고상한 책을 우리는 모릅니다.

이 모든 것을 우리는 원죄 없으신 동정녀를 통하여 얻을 수 있습니다. 지극히 인자하신 하느님께서 성모 마리아에게 당신 자비의 분배를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뜻이 바로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여져야 하겠습니다. 우리 자신을 성모님께 봉헌함으로써 마치 성모님께서 하느님 손 안에서 그렇게 되셨듯이 우리도 성모님 손 안에서 하느님 자비의 도구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모님의 지도를 받고, 성모님의 인도를 받아, 그분의 보호 밑에서 마음 놓고 안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성모님이 보살펴 주실 것이고, 모든 것을 마련해 주실 것이며, 영육간의 모든 어려움 중에 성모님이 우리를 기꺼이 도와주실 것이며 어려움과 불안도 그분이 제거해 주실 것입니다.

 

(성무일도 독서기도에서)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매일미사 묵상>

 

“모든 사람이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허락된 이들만 받아들일 수 있다.”

 혼인에 대한 말씀도 독신에 대한 말씀도 그러합니다.

혼인하면서 부부가 서로에게 사랑과 존경을 약속하지만, 죽는 날까지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분이 얼마나 있을까요? 모세 시대 사람들은 마음이 완고해서 모세가 이혼을 허락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혼인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면 차라리 혼인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합니다. 우리 시대 사람들도 그들에 못지않습니다. 자녀가 결혼을 하면 안심이 됩니까, 걱정이 앞서십니까? 창세기에 기록된 하느님의 계획은 머나먼 이상처럼 보입니다. 적지 않은 신자 부부도 오직 신앙의 힘으로 주어진 난관과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살아간다고 합니다.
하늘 나라를 위하여 독신으로 사는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신을 약속한 이들 모두가 끝까지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하늘 나라를 위한 독신은 단순히 결혼하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는 보편적인 사랑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이가 그런 사랑을 실천하며 살고 있을까요?
“허락된 이들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혼인이나 독신에 대한 충실함이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합니다. 모세의 율법은 그 시대 사람들의 약함을 인정했습니다. 충실치 못한 인간의 약함을 탓하기보다, 오늘 하루 내가 성실하게 살 수 있다면 그것이 하느님의 은총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질그릇 같은 저는 오늘 하루만, 내일도 하루만, 매일같이 그렇게 하루마다 독신 서약을 갱신하면서 살아가려고 합니다. 하느님께 약속한 바를 철저하게 지키고 하느님으로부터 약속받은 것을 열렬히 갈망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