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주님

하느님께 내 모든 희망을 걸고 내 전부를 맡기겠다

Skyblue fiat 2015. 6. 22. 14:56


하느님께 내 모든 희망을 걸고 내 전부를 맡기겠다 


 성 토마스 모어가 옥중에서 자기 딸 마르가리타에게 보낸 편지에서

(The English Works of Sir Thomas More, London, 1557, p.1454)

 


 내 사랑하는 마르가리타야, 내 지난 날의 죄를 볼 때 나는 하느님께로부터 마땅히 버림받아야 할 몸임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분의 무한한 사랑에다 내 신뢰를 걸고 또 마음을 다하여 희망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까지 하느님의 거룩한 은총은 나를 굳세게 해주시어 나로 하여금 양심을 거슬러 서약하는 것보다 기쁜 마음으로 재물과 토지와 생명마저 잃을 수 있게 해주셨다. 하느님께서는 또 국왕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그에게 너그러운 마음을 주시어 아직은 나에게서 자유만을 빼앗도록 하셨다. 이 자유를 나에게서 거두실 때 하느님께서는 이제까지 내 신앙을 북돋아 주시고자 그토록 허다하게 베풀어 주신 당신의 커다한 영적 은혜들 가운데서 내가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 가장 큰 은혜라고 생각토록 해주셨다. 그래서 나는 하느님의 은총을 불신할 수 없다.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국왕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나를 대하게 하시어 그가 나에게 아무 해를 입히지 않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내가 나의 죄 때문에 응당히 받아야 할 것 이상으로 고통받게 하기를 원하신다면, 그분의 은총이 나로 하여금 인내의 마음으로 그리고 어쩌면 기쁜 마음으로까지 그것을 받아들일 힘을 주실 것이리라고 확신한다. 내가 고통을 잘 참아 낸다면 이것을 내 인내심의 공로를 훨씬 초월하는 주님의 쓰라린 수난의 공로와 결합시키시어, 내가 연옥에서 당할 고통을 줄여 주시고 천상에서 받을 상급을 늘려 주실 것이다.

 

마르가리타야, 내 비록 허약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느끼고 있지만, 절대로 하느님을 불신하지 않겠다. 나를 쓰러뜨릴 정도의 두려움을 내가 느끼게 되어도 성 베드로에게 생긴 일을 기억하겠다. 돌풍이 일자 약한 믿음 때문에 물 속으로 빠져 들기 시작한 그가 그리스도를 부르면서 도움을 간구한 것처럼 나도 그를 본받아 그리스도께 간구하겠다. 그때 주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손을 뻗치시어 폭풍에 휩싸인 이 바다에서 나를 붙들어 올리시어 물에 빠져 들지 않게 하시리라. 그런데 내가 베드로를 답습하여 나도 그처럼 유혹에 넘어져 주님을 모른다고 맹세하고 또 맹세하게 된다면, (하느님의 자비는 내가 그런 상태에 빠지지 않게 해주시고 혹시라도 빠진다면 유익보다는 해가 되게 해주기를) 그때에도 베드로를 인자하게 굽어보신 것처럼 나도 연민에 찬 시선으로 굽어보시고 다시 일으키시어 내 양심의 진실을 다시금 고백하게 하시고 이 세상에서 내 잘못에 대한 수치와 마음의 괴로움을 느끼도록 해주실 것입니다.

 

여하튼 나는 이것만은 분명히 알고 있다. 마르가리타야, 하느님께서는 내 잘못이 아니라면 결코 버림받는 자가 되게 하는 것을 허락치 않으실 것이다. 나는 하느님께 내 희망을 걸고 내 전부를 그분께 맡기겠다. 그러나 내 잘못 때문에 버림받은 자 된다 해도 이것은 하느님의 정의와 찬미와 영광이 될 것이다. 마르가리타야, 하느님이 너그러우신 자비는 이 불쌍한 영혼을 구하시고 내가 그 자비를 찬미할 수 있게 해주시리라 굳게 믿으며 이를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 내 사랑하는 딸아, 이 세상에서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걱정하지 말아라. 하느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그 어떠한 일도 생길 수 없다.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겉보기에 그것이 나쁜 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참으로 가장 좋은 것이 되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 † 참된 신앙을 순교로 완성시키시는 천주여,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로 하여금 성 요한과 성 토마스의 전구로 힘을 얻어, 말로 고백하는 신앙을 실생활로 입증하게 하소서. 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52) 성 토마스 모어


③ 하느님과 일치하는 삶 통해 진정한 신앙 제시


토마스 모어(1478~1535)의 인생에 있어서 큰 변화가 50대에 찾아온다.
영국 국왕 헨리8세가 그에게 큰 직분을 맡긴 것이다. 토마스 모어는 헨리 8세에 의해 대법원장이 됐으며 결국에는 재상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었다. 영적인 정치가였다. 오늘날 많은 정치인들이 종교를 가지고 있지만 진정한 신앙인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종교마저도 권력을 위한 방편으로 사용하는 듯이 여겨지는 반영성적인 삶들이 많다. 진정으로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반신앙적인 법률을 입법하고, 개인의 이익만 추구하는 그런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겉으로는 손을 펴서 넓은척 하지만 속으로는 손을 움켜쥐고 잡은 것을 놓지 않으려는 정치인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토마스 모어는 달랐다. 그는 진솔한 신앙을 그대로 정치화한 인물이다. 식사 때마다 감사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감사했으며, 매일미사를 통해 늘 하느님과 가까이하는 삶을 살았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국왕 헨리8세와 갈등이 일어나게 된다. 사실 헨리 8세는 원래 가톨릭적인 인물이었다. 루터가 종교분열을 일으킬 때, 국왕은 이러한 방식의 분열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고 그 공로로 교황으로부터 가톨릭 신앙의 수호자라는 칭호까지 받았었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엉뚱한 곳에서 터진다. 바로 국왕의 개인적 결혼문제였다.
 
헨리8세는 원래 스페인 공주였던 형의 아내 아라곤의 캐서린(Catherine of Aragon)과 결혼했다. 형이 사망하자 스페인과의 정치적인 관계 때문에 형수와 결혼을 한 것이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아들이 없었다. 그 시점에 헨리8세는 캐서린의 시녀였던 앤 불린(Anne Boleyn)을 사랑하게 되고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캐서린과 이혼하고자 했다.
 
그러나 로마 교황청이 이를 허락하지 않자, 헨리8세는 이에 반발, 1534년 수장령(首長令)을 발표했다. 수장령이란 영국 국왕을 영국교회(성공회) 유일의 최고 수장(首長)으로 규정한 법령이다. 수장령으로 성공회는 로마가톨릭 교회와 분리됐다. 헨리8세는 더 나아가 1539년에는 영국내 모든 수도원을 해산시킨다.
 
이 과정에서 토마스 모어가 강하게 반발했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토마스 모어는 진리를 말했다. 이에 국왕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이를 간신들이 또 부추겨 결국 토마스 모어는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렇게 1년여의 감옥 생활이 이어진다. 이 기간 동안 수많은 협박과 회유가 있었지만 토마스 모어는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국왕은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는 실력있는 정치인을 살려둘 수 없었다. 결국 토마스 모어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그가 참수형을 당하기 직전에 남긴 말은 심금을 울린다.
 
“나는 하느님을 위해서, 하느님께서 주신 내 생명을 그대로 돌려드린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일찍 죽지만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토마스 모어를 묵상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참으로 내적·세계적 형성을 완벽하게 구현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어린 시절 학업에 열중해 높은 수준의 지식을 성취했다. 또 유토피아 등의 저술을 통해 세계 형성에도 크게 기여했다. 더 나아가 진정한 하느님과의 합치의 삶을 통해 당 시대 사람들과 신앙 후손들에게 진정한 신앙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토마스 모어는 감옥 생활하는 동안에도 늘 기도하고 하느님과 합치된 삶을 살았다. 하느님의 정의에 어긋나는 일에는 조금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혼란한 시대일수록 올곧은 신앙인을 요청하는 법이다. 토마스 모어는 혼란한 시기에 진정한 신앙이 무엇인지 삶 자체로 보여주신 분이다.
 
일생동안 형성하는 신적신비의 진리를 지키는 파수꾼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하느님이 계신다. 또 이권과 이권이 부딪치는 복잡한 세상에서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쉽지 않지만, 우리에게는 토마스 모어와 같은 모델이 있다.
 
복잡한 이념의 홍수 속에서 오로지 하느님의 길을 걸어간 토마스 모어에 깊은 존경심을 표한다. 그리고 이 순교자를 인도해주신 하느님을 경외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기도 교회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 속에 있다. 토마스 모어와 같은 증거의 삶, 교회와 민족의 등불이 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마음깊이 기도하며 축복을 청한다.

 

[가톨릭신문, 2010년 10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