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주님

이 세상과 저 세상은 연결되어 있다

Skyblue fiat 2015. 6. 9. 23:30

 

이 세상과 저 세상은 연결되어 있다

- 데레사 티츠키비츠  영혼의 향기 

 
이 세상 너머의 삶

하느님께서는 아직 성숙에 이르지 않은 육신을 가진 영혼을 창조하셨으므로, 완성된 인간은 몸과 영혼의 결합체로 되어있다. 죽을 때 영혼에서 분리되었던 육신을 세상 끝 날에 모든 영혼이 다시 얻게 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에녹과 엘리야의 경우(창세 5,24; 집회 44,26 ; 49,14 ; 1마카 2,58)를 제외하면, 오직 두 인간의 육신만이 이미 하늘에서 영광을 누리고 있다. 즉 인간 예수님과 성모님의 거룩하고 영광으로 빛나는 육신이다. 이 두 분을 제외한 다른 이의 육신은 재림의 날에야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서의 삶의 결과물이며, 최후 심판과 육신 부활까지 지속되는 죽음은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임신의 순간부터 70∼80년간 지속되는 세상에서의 삶으로써, 우리는 이 세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행복 아니면 고통이 영원히 지속되는 삶에 이르게 된다.

지상에서 인간의 삶이 감각과 이성과 의식과 경험과 모든 가능한 과학적 수단 등을 통해 확인되듯이, 사후의 시간도 지금으로선 믿음의 눈으로만 보이는 신비의 베일 뒤에 가려져 있지만, 역시 사실이다.

아주 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사후의 삶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오래된 문명의 유적에서도 죽은 이들을 위하여 제식을 행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마카베오기 하권에도 이미 잘 나타나 있다. 유다 마카베오 장군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다음과 같이 하였다.

“(저질러진 죄를 완전히 용서해 달라고 탄원하며 간청하였다.) 그런 다음 각 사람에게서 모금을 하여 속죄의 제물을 바쳐 달라고 은 이천 드라크마를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그는 부활을 생각하며 그토록 훌륭하고 숭고한 일을 하였다. 그가 전사자들이 부활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면,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쓸모없고 어리석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건하게 잠든 이들에게는 훌륭한 상이 마련되어 있다고 내다보았으니, 참으로 거룩하고 경건한 생각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죽은 이들을 위하여 속죄를 한 것은 그들이 죄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었다.”(2마카 12,43-45).

이미 여기 구약성경에서 우리 믿음의 진리를 찾아볼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의 죽음 이후에 또 다른 삶이 계속되며,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한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기도와 봉헌은 불쌍한 영혼들이 죄를 속죄하도록 도와주며, 그 영혼들의 죄에 대한 벌을 없애주는 대사에 관심을 기울이고 바치는 것은 거룩하고 경건한 일이라는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사후의 삶에 대해 말씀하신 최후의 심판(마태 25,31-46) 그리고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루카 16,19-31)는 구약성경의 것보다 훨씬 더 교훈적이다.

이 오래된 격언도 이 진리를 말하고 있다. “네가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죽고자 하면 영원을 누리리라.”

죽은 영혼이 파우스티나 성녀에게 나타나 연옥에서 천국으로 들어갔음을 알렸던 일도 있다. 그 일을 성녀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어느 날 저녁, 죽은 수녀들 중 한 명이 네게 나타났다. 그는 벌써 전에도 몇 번 나를 찾아왔었다. 처음에 보았을 때 그녀는 심한 고통을 받고 있었으나, 차차 그 고통이 줄어들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녀가 행복으로 빛나고 있었고, 자신이 이미 하늘 나라에 있다고 했다. 하느님께서 우리 수녀원을 시련으로 시험하셨다는 말도 해주었다. 그 이유는 총장 수녀가 이 영혼에 대해서 내가 말한 것을 믿지 않고 의심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그녀가 이제는 하늘에 있다는 표지로, 하느님께서 우리 수녀원을 축복하실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로 가까이 와서 나를 꼭 끌어안으면서, ‘나는 이제 가야 합니다.’라고 했다. 나는 한 영혼의 생애의 세 단계, 즉, 이 세상과 연옥과 하늘 나라에서의 삶이 얼마나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 지를 깨달았다”(일기, 594).

 

 

연옥은 어떤 곳인가?

사도신경에서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하면서 우리는 ‘성인들의 통공’에 대한 믿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이 “성인들”은 단지 구원된 영혼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상에서 살고있는 이들. 천국에 있는 영혼들. 그리고 구원은 받았지만 천국에서의 영광을 위해 자신을 단련하고 있는 영혼들이 서로 연결되어 결속을 이루고 있음을 의미한다. 연옥의 영혼들은 이 통공에 계속 참여한다.

연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장소가 아니다. 인간 영혼이 지극히 거룩하시며 완전하시고 사랑이신 분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게 되는 사후 상태이다. 그때 영혼은 하느님 바로 앞에서 자신의 불완전함과 죄악과 부족함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영혼은 자기 자신에게 판결을 내리고, 자신이 잃어버린 존엄과 순결을 회복하기를 갈망한다. 그리하여 온 우주를 한 점의 하찮은 먼지에 지나지 않게 하는 하느님의 전능한 사랑의 불에 녹아든다.

어떤 길을 가야 할지 결정하는 것은 바로 그 영혼이다. 영혼은 지상에서 사는 동안 그토록 함부로 했던 하느님 사랑 앞에 똑바로 서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결정해야 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 정화의 과정이 길 것이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보다는 짧은 것이다. 그 길이는 그가 저지른 죄에 달려있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이 고통스러울 것은 분명하다. 정의는 실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죄는 늘 우리를 따라다닌다. 우리가 상처를 주고, 중상하고, 속이고, 또는 선행에 보상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지상에 두고 왔기 때문이다.

연옥의 불쌍한 영혼들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위로와 행복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희생으로 그들을 용서하셨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때 그들은 영원한 구원을 확신하며, 더 이상 지옥의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더 이상 죄 짓지 않지만 이미 저지른 죄는 보속해야 하고 정화되어야 한다.

 

 

 

성인들의 통공에서 연옥 영혼은?

연옥의 불쌍한 영혼들은 자신을 스스로 도울 수 없다. 그들은 끔찍한 괴로움을 겪는데, 죽음 후 심판 때에 그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을 향한 끝없는 갈망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후회 때문에도 괴로워한다. 즉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했었고, 은총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양심의 소리를 무시했었고, 선을 행할 기회를 지나친 것에 대한 슬픔 때문이다.

또한 연옥 영혼들은 자신이 범한 죄악이, 예를 들면 자녀를 신앙으로 양육하기를 무시한 것이나, 젊은이들의 타락과 같은 죄악이 세상을 계속적으로 파괴시키고 있는 것을 알게 되면서 처절하게 고통스러워한다.

연옥에 수반되는 고통은 있지만 그럼에도 연옥은 주님의 커다란 자비가 베풀어지는 곳이다. 아무리 악한 죄인일지라도 고통스런 순간에 주님의 이름으로 청한다면 연옥을 거쳐 주님을 뵈옵는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성인들의 통공이라는 교리에 비추어 볼 때, 연옥은 아주 영예로운 곳이다. 영혼들이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한편, 살아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야 함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연옥 영혼들은 주님을 열망하는데, 주님도 그들을 위해 당신이 생명을 내놓았기에 그들을 몹시 기다리신다. 주님은 그들을 당신의 품안에 영원히 끌어안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연옥 영혼들이 고통의 시간을 줄여서 그토록 갈망하는 천국으로 가도록 도와주는 사람은 그 영혼들과 구세주로부터 어마어마한 은혜의 보답을 받는다. 유다 마카베오는 바로 이러한 믿음 때문에 죽은 부하들을 위해 기도하고 제물을 올렸다.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와 희생을 바치지 않고서는, 성인들의 통공은 이루어질 수가 없다. 우리는 천국에 있는 성인들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연옥 영혼들은 우리에게 도움을 청한다. 연옥 영혼들이 천국에 오르고 나면 우리를 위해 기도한다. 이런 식으로, 사랑은 하늘의 왕국에서 영원히 존재한다.

 

 

연옥 영혼들을 돕는 방법

이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을 위한 지향으로 미사를 봉헌하고 성체를 영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엔, 기도하고, 특히 십자가의 길을 바치고, 대사의 은총을 바치고, 나에게 입힌 상처를 용서하고, 누군가가 그 영혼의 어떤 점을 비판할 때 장점을 말해주는 것 등으로 그들을 도울 수 있다. 이런 방법이 묘비를 장식하거나 꽃과 초를 바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사도 시대 이래로 교회는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위한 종교의식을 아주 중요시했다. 교회 역사를 볼 때, 주님께서는 많은 성인들에게 불쌍한 영혼들을 돕는 특별한 은총을 허락하셨다. 그 성인들 중에는 연옥 영혼들과 교감하면서 그들의 고통도 나누어 가지면서 천국에 오르는 시간을 앞당겨주는 은사를 받은 성인도 있다.

제노아의 가타리나 성녀,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 스타니슬라우스 팝친스키 복자, 파우스티나 성녀도 연옥 영혼들을 위한 중재 은사를 받은 성인이다. 파티마의 루치아 수녀 그리고 연옥에서 고통당하는 영혼들을 위해 일생을 바친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심마(+2004년)도 그렇다. 마리아 심마의 기록에서 이런 글을 읽을 수 있다.

영혼들의 죄만큼이나 연옥의 형태도 다양하다. …연옥의 영혼들은 지상에 사는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는 지식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어둠 속으로 다시 돌아와서 예전처럼 살려고 하는 영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연옥의 정화 과정을 갈망한다. 금을 불로써 단련시켜 불순물을 제거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그 영혼의 눈부시게 빛나도록 아름답고 순결하여 털끝만큼의 오점도 남아 있지 않을 때 비로소 주님께서는 그 영혼 앞에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신다. 오로지 순결하고 완전한 영혼만이 영원한 빛이시며 완전하신 분 앞에 감히 서서 그분의 얼굴을 마주볼 수 있다.”

 

 

- 마리아 191 2015년 5·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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