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8, 하느님 뜻은 빛이기에 이 뜻안에 사는 이는 빛이 된다.
당신 인성 안에 사셨듯이 이런 영혼 안에 사시는 예수님.
1919년 1월 25일
1. 나의 생명, 나의 전부인 다정하신 예수님의 부재 속에서 쓰디쓴 나날을 보내고 나자 내 변변찮은 가슴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러므로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2. "얼마나 고달픈 운명이 나에게 예정되어 있었으랴! 그토록 많은 약속 후에도 그분은 나를 떠나셨다. 이제 그분의 사랑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나 자신이 그분께 합당하지 못한 자가 되어 그분께서 버리시게 한 원인이 된 건 아닐지 누가 알랴?
3. 아, 어쩌면 그분께서 세상의 골치 아픈 문제들에 대하여 말씀하시려고 하신 저 밤에 내가 발설한 말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때 그분은 인간의 마음이 피에 굶주리고 있다고 서두를 떼셨는데, 그런 굶주림이 아직 소멸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하셨다.
4. 내가 그 말씀을 냉큼 가로채면서 ‘예수님, 당신께서는 늘 그 문제를 꺼내시려고 하십니다. 그건 제쳐 두고 다른 이야기를 하십시다.’ 했던 것이다. 그러자 그분은 괴로운 기색으로 침묵을 지키셨다. 이를 어쩌나! 아마도 마음이 상하셨나 보다!
5. 저의 생명이시여, 용서해 주십시오. 다시는 그러지 않을 테니, 제발 오셔 주십시오!'
6. 그렇게, 또 다른 군말로 혼자 궁시렁대는 동안 의식이 몽롱해지고 있었는데,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 계신 것이 보였다. 그분은 내 안의 이쪽에서 저쪽가지 말없이 홀로 거니시면서 어떤 지점에서는 비틀거리시고 어떤 지점에서 쿵하고 부딪치시는 것 같았다.
7. 나는 하도 당황해서 그분께 아무 소리도 할 수 없었지만, “예수님을 쿵하고 부딪치시게 할 정도로 많은 죄가 내 안에 있는지 누가 알랴?” 싶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지쳐 보이는데다 땀을 흘리고 계시면서도, 매우 인자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8. "딸아, 가엾은 순교자, 신앙의 순교자가 아닌 사랑의 순교자야, 너의 가장 혹독한 고통은 나의 부재이고 이것이 너에게 신적 순교의 인장을 찍는 까닭에 - 인간적 순교자가 아닌 신적 순교자야, 어찌하여 내 사랑에 대해 걱정하며 의심하느냐? 하물며 내가 어떻게 너를 떠날 수 있겠느냐?
9. 나는 내 인성 안에서 살았던 것처럼 네 안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내 인성 안에 온 세상을 담고 있었던 것처럼 네 인성 안에 세상을 넣어 두었다. 내가 거니는 동안 어떤 때는 비틀거리고 어떤 때는 쿵하고 부딪치는 것이 보이지 않더냐? 내가 그렇게 마주친 것은 죄들 및 악한 영혼들이었다. 내 마음이 얼마나 아프던지!
10. 나는 네 안에서 세상의 운명을 나눈다. 너의 인성은, 내 신성에 보속을 바쳤던 내 인성과 같이 나에게 보속을 바친다.
11. 만일 내 신성이 보속을 바치는 내 인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가련한 피조물은 시간 속에서나 영원 속에서나 (징벌을) 피해 달아날 탈출구가 없었을 것이다. 하느님의 정의가 그들을 더 이상 보호할 만한 자녀로 여기지 않고 없애 버려야 할 원수로 여겼을 테니 말이다.
12. 이제 나의 인성은 영광을 입고 있으니, 고통을 받을 수 있고 괴로워하며 나와 함께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인성이, 나와 함께 영혼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인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너를 택한 것이다. 기쁘지 않으냐?
13. 내가 모든 것을, 곧 나의 고통과 피조물이 받아 마땅한 징벌에 대해서 너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네가 이 모든 것에 동참하며 나와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14. 이것이 또한 네가 내 뜻의 정상(頂上)에 있기를 내가 바라는 까닭이기도 하다. 너 자신의 뜻으로는 도달할 수 없지만, 나의 뜻으로는 네가 내 인성의 사명에 걸맞는 모든 것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15. 그러니 더는 두려워하지 말고, 내가 너를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고통으로 나를 괴롭히지도 마라. 다른 피조물에게서 충분히 받고 있는데 너마저 너의 고통으로 내 고통을 더 많아지게 하고 싶은 거냐? 아니, 아니, 그러지 말고 안심해라. 네 예수는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16. 나중에 그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모습으로 다시 오시어, 나를 당신으로, 당신의 고통으로 변화시키셨다. 그리고 말씀을 덧붙이셨다.
17. "딸아, 나의 뜻은 빛이기에 이 뜻 안에 사는 사람은 빛이 된다. 빛이 되므로 나의 지극히 순수한 빛 안으로 쉽게 들어오고, 열쇠를 가지고 있어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꺼내 가진다.
18. 그런데 열쇠로 뭔가를 열려면 그것이 녹슬어 있거나 진흙에 뒤덮여 있어선 안 된다. 그리고 자물쇠도 쇠로 만들어진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열쇠가 열 수 없으니 말이다.
19. 이와 같이 영혼이 내 뜻의 열쇠로 (이 빛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그 자신의 뜻이라는 녹이 없어야 하고 세속적인 것들이라는 칙칙한 진흙도 묻어 있지 않아야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비로소 영혼과 내가 하나로 결합될 수 있다. 그러면 영혼은 나에게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나는 그에게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진다.”
20. 그 뒤 나는 (천상) 엄마와 작고한 내 고해사제 한 분을 보았다. 나의 처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그분들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최근에 너는 주님에 의해 산 제물의 신분이 완전히 정지될 뻔하였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시지 않도록 우리와 연옥 및 천국의 모든 주민이(보속) 기도를 많이 하였다. 이를 보면 정의가 여전히 무거운 징벌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너는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너는 지치지 말고 인내하여라.”
12권-79, 예수 성심의 치명적인 세 가지 상처.
1919년 1월 27일
1. 일상적인 상태로 머물러 있노라니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오시어 상처투성이인 당신의 흠숭하올 심장을 보여 주셨는데 거기에서 피가 강물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그 극심한 고통 속에서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내 마음이 받아 지닌 수많은 상처들 가운데서 다른 모든 상처를 합한 것보다 더 혹심하고 치명적인 상처가 세 가지 있다.
3. (우선) 나를 사랑하는 영혼들의 고통이다. 온전히 내 사람인 한 영혼이 나 때문에 괴로워하고 심한 고통에 짓눌리면서 나를 위해서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도 불사할 각오로 있는 것을 보면, 나는 그의 고통을 내 고통처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절감한다. 아! 사랑은 더할 수 없이 깊은 상처를 낼 수 있어서 다른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할 정도이다.
4. 이 첫째 상처 속에 맨 먼저 들어온 이는 내 사랑하올 엄마이시다. 나의 고통 때문에 꿰뚫린 그분의 마음이 내 마음을 어찌나 가득 채우며 넘쳐흐르는지 그 모든 꿰뚫림이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5. 사랑하올 엄마가 나의 죽음으로 인해 죽음 아닌 죽음을 겪고 계시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분의 순교자적 잔혹한 고통과 그분의 마음이 느끼는 내 죽음의 고통을 느꼈느니, 내 마음이 그분의 마음과 함께 죽어가고 있었다. 나의 모든 고통이 내 엄마의 고통과 결합되면서 모든 것을 능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6. 그러므로 내 천상 엄마가 고통에 있어서나 사랑에 있어서나 내 마음의 첫자리를 차지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에 대한 사랑으로 겪으신 각각의 고통이 저마다 은총과 사랑의 바다를 열어, 그분의 꿰뚫린 마음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기 때문이다.
7. 이와 같이 나 때문에, 그것도 오직 사랑 때문에 고통을 겪는 모든 영혼들이 나의 이 상처 안으로 들어온다. 너 자신도 이 안으로 들어온다. 설령 모든 이가 나를 모욕하고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지라도 나는 네 안에서 그 모두를 대신해서 보상할 수 있는 너의 사랑을 보게 되는 것이다.
8. 따라서 피조물이 나를 몰아내어 내가 그들로부터 달아나지 않을 수 없어질 때면 나는 마치 내가 숨을 장소를 찾듯이 부랴부랴 네 안으로 와서 피신한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이 아니라 나 자신의 사랑을, 오로지 나만을 위하여 고통 받는 사랑을 보면서 말이다.
9. ‘나는 하늘과 땅을 창조한 것과 그토록 많은 고난을 받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를 사랑하고 나 때문에 고통 받는 한 영혼이 나의 모든 낙이요 만족이며 행복이고 내가 행한 모든 것에 대한 보답이니까.’ 그리하여 다른 모든 일은 제쳐 둔 것처럼 그 영혼과 함께 놀며 즐거워한다.
10. 한데 내 마음의 이 상처는 모든 것을 능가할 만큼 극히 고통스러운 것인 한편, 동시에 두 가지 파급 효과를 내포하기도 해서, 극심한 고통과 지고한 기쁨을 내게 준다. 즉,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형언할 수 없는 감미로움, 고통스러운 죽음과 영광스러운 삶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것이다.
11. 이러한 것이 바로, 피조물의 정신으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내 사랑의 극단성이다. 사실, 못 박힌 듯 꿰뚫린 내 엄마의 고통 속에서 내 마음은 수없이 많은 만족감을 얻기도 했던 것이 아니냐?
12. 내 마음에 치명적인 둘째 상처는 배은망덕이다. 피조물이 배은망덕으로 내 마음을 잠근다. 더군다나 이중 잠금장치의 자물쇠를 채운다. 내 마음은 은총과 사랑을 쏟아 주고 싶어 부풀어 오르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들이 이를 잠그고 배은망덕의 인장으로 밀봉해 두기 때문이다.
13. 나는 실신 상태가 된다. 계속되는 배은망덕이 이 상처를 점점 더 악화시며 내게 치명적인 고통을 주기 때문에, 이것이 치유되리라는 희망이 없는데도 필사적으로 몸부림친다.
14. 셋째 상처는 완고함이다. 이 또한 내 마음에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인지! 완고함은 내가 피조물을 위해서 행한 모든 선의 파괴이다. 그것은 피조물이 더 이상은 나를 모른다는, 더 이상은 내게 속해 있지 않다는 선언에 서명하는 것인즉, 그들 스스로 돌진해 들어가는 지옥의 열쇠이다.
15. 이로 인해 내 마음은 쥐어뜯김을 느낀다. 갈가리 찢어진다. 이 찢어진 조각들 가운데 하나가 내게서 떨어져 나감을 느낀다. 완고함은 그러니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이냐!
16. 딸아, 너는 내 마음 안으로 들어와서 나의 이 상처들에 참여하여라. 갈가리 미어진 내 마음을 측은히 여겨 다오. 나랑 함께 괴로워하며 기도하자꾸나.”
17. 나는 그분의 마음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괴로워하며 기도하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럽고도 멋진 일인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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