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신비로운 도성 3권
하느님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생애
47장. 마리아와 요셉의 혼인
-아그레다 예수의 마리아 수녀
앞 장에서 말씀드린 대로, 마리아의 열네 번째 생일이 다가왔고, 유다 지파 다윗 가문에 속한 남자들 중 당시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모든 사람이 성전으로 소집되었습니다. 마리아도 유다 지파 다윗 가문의 후손이었습니다. 모인 이들 중에는 나자렛 사람인 요셉이 있었는데, 그도 왕의 후손으로서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 서른세 살이었던 요셉은 준수하고 빼어난 용모에 조용하고 겸손한 성품의 소유자였고, 무엇보다도 생각과 말과 행실에서 동정과 정결을 간직하고 거룩하고 의로운 것만 추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열두 살 때 정결서원을 드린 후로 줄곧 동정을 지키며 살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와는 3촌 친척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는 하느님이 보시기에도, 사람들의 눈에도 깨끗하고 흠 없이 살았습니다.
다윗 가문의 후손들 중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남자들 전부가 성전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이제 이곳에서 일어나게 될 일에 주님께서 함께하시고 주님의 영으로 친히 인도해 주시기를 사제들과 함께 기도드렸습니다. 그러자 지존하신 하느님께서는 대사제의 마음속에 한 가지 생각을 불어넣으시어, 다윗 가문의 후손인 젊은이들의 손에 각각 마른 나뭇가지 하나씩을 쥐어 주게 하셨습니다. 이어서 하느님의 영에 이끌린 대사제가 젊은이들에게 명했습니다. 마리아의 배필로 정해진 이가 누군지를 각자가 들고 있는 나무 지팡이를 통해 주님께서 표징을 내려 주시도록 기도하라고. 마리아의 고결한 성품과 정결함과 동정과 겸손의 덕, 눈부시게 아름다운 외모와 마리아의 신분과 재산, 마리아가 맏딸이라는 사실까지 알려지자 젊은이들 모두가 마리아를 아내로 맞겠다는 강한 열망을 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 가장 겸손하고 올곧은 사람 요셉은 자신이 그 같은 큰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셉은 그곳의 다른 이들처럼 마리아를 아내로 주시라고 간청하는 대신, 앞으로도 평생 동정으로 살 것을 하느님 앞에서 새로이 다짐하며 서원했습니다. 요셉은 그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자신을 온전히 봉헌할 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마음속 깊이 마리아를 경외하고 있었고, 그 마음이 그곳의 어느 누구보다도 컸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이 하느님의 뜻을 구하며 열심히 기도드리는 동안, 요셉의 지팡이에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눈처럼 새하얀 비둘기 한 마리가 눈부신 광채를 내며 날아오더니 요셉의 머리 위에 살포시 내려와 앉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하느님께서 요셉의 마음속에 이렇게 이르셨습니다.
“나의 종 요셉, 들어라. 마리아는 너의 신부가 될 것이다. 경외하는 마음으로 마리아를 받아들여라. 마리아는 몸과 영혼이 모두 거룩하고 순결하며 언제나 내 눈에 기쁨이 되는 의로운 여인이니, 너는 마리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마리아가 네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행하여라.”
요셉의 지팡이를 보고 사제들은 이를 하느님께서 세우신 표징으로 받아들였고, 주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정배로 친히 뽑으신 이는 요셉이라고 선포했습니다. 혼인을 거행하기 위해 사제들이 신부를 불러내자, 해처럼 빛나고 달처럼 우아한 마리아가 앞으로 나왔습니다. 마리아가 너무나도 눈부시게 아름다워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의 눈에는 사람이 아니라 천사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사제들은 남자들 중 가장 순결하고 거룩한 사람인 요셉을 마리아의 배필로 정했습니다.
창공의 별보다 더 영롱한 하늘의 공주님은 눈물을 흘렸지만 그 얼굴에는 준엄하면서도 겸손한 하늘 여왕의 위엄이 서려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지금까지 가르쳐 주고 지도해 주신 것에 감사드리며 사제들과 수련장 선생님께 축복을 간청했습니다. 동료 자매들에게도 그동안의 호의에 감사하고 잘못한 것에는 용서를 구했습니다. 겸손하고 지혜롭게 작별인사를 건네면서 마리아는 성전에서의 마지막 덕행과 의무를 완전하게 행했습니다. 마리아의 말과 행동은 매우 신중하고 적절했으며, 짧고 깊고 무게 있는 절제된 작별인사를 모두에게 건넸습니다.
마리아는 큰 슬픔과 시름에 잠겨 성전을 떠났습니다. 마음속에 지녔던 모든 소망을 포기해야 했고, 자기가 원한 삶을 이제는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전에는 매일의 일상적 여러 직무에 봉사하는 다소 높은 계층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마리아와 요셉이 성전에서 나와 고향 나자렛까지 가는 길을 동행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나자렛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요셉은 나자렛 태생이지만 당시에는 여러 이유로 나자렛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 하느님께서 요셉을 당신 어머니인 거룩한 동정녀의 정배로 삼으시려고 섭리하신 결과였습니다. 나자렛에는 하늘의 공주님이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땅과 재산이 있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마을에 도착하자 친구와 친지들과 마을 사람들이 모두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이러한 경사에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함께 기뻐하며 축하해 주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사람들과 대화하며 우정과 친교와 예절이라는 자연스럽고 세상적인 의무에 충실했습니다. 그렇게 떠들썩한 하루를 보내고 나서야 요셉과 마리아는 자신들의 집에서 둘만의 시간을 가지며 쉴 수 있었습니다. 히브리인들의 관습에 따르면 결혼 직후 한동안 남편과 아내는 서로의 습관이나 성향을 집중적으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는데, 그러는 동안 상대방의 성격을 시험해 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전통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서로에게 익숙해짐으로써 원만하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 기간에 요셉은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리아, 나는 매우 부족한 점이 많아서 당신과 함께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랑할 것 하나 없는 나를 당신의 신랑으로 맺어 주신 주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원하시기만 하면 낮은 이들을 언제든지 일으켜 세우시는 하느님께서 내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니 내가 주님께 합당한 감사와 찬미를 드리고, 주님을 올바른 마음으로 섬길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십시오. 마리아, 그대는 그럴 만한 덕과 능력을 충만히 갖춘 사람이니, 나는 그대에게 희망을 걸고 진심으로 그대의 도움을 청하겠습니다. 나는 그대의 종이 되어 그대를 섬기겠습니다. 그대를 향한 사랑으로 간청합니다. 나의 나약함으로 인해 내가 해야 할 일이 불완전해지거든 부디 채워 주시오. 내가 그대에게 합당한 남편이 될 수 있도록 내 결함과 부족한 점을 바로잡고 옳은 길로 인도해 주시오. 내가 어떻게 하면 그대의 완전한 남편이 될 수 있는지도 알려 주시오. 마리아, 무엇이 그대에게 기쁨이 되는지 알려 줘요. 나는 그대에게 기쁨이 되는 것을 행하겠습니다."
마리아는 겸손한 마음과 고요한 열의로 요셉의 말을 듣고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엄위하신 하느님께서 제가 결혼생활을 하도록 당신을 제 남편으로 정해 주셨으니 은혜를 받은 사람은 바로 저 자신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뜻이 무엇인지 저에게 분명히 알려 주셨기에,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가 당신을 주인으로 섬기며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럼에도 허락하신다면, 당신에게 제 생각과 소망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말을 통해 요셉의 올곧은 마음속에 하느님 당신을 향한 뜨겁고 거룩한 사랑의 불을 새로이 지피셨습니다.
그러자 성인은 마리아에게 대답했습니다.
“부인, 말씀하십시오. 당신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
그때 온 세상 만물의 여왕인 마리아는 천 명의 수호천사들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천사들은 모두 눈에 보이는 모습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티없이 맑은 동정녀가 더 많은 덕을 행하고 그에 따라 더 큰 공로를 쌓도록 남편인 요셉에 대한 존경과 공경의 마음이 일도록 섭리하셨습니다. 마리아는 혼자서 남자들과 얘기할 때마다 수줍어하고 부끄러워했으며, 가끔은 두려워했습니다. 이러한 소극적인 태도는 하느님께서 섭리하신 것이며, 남편 요셉과 대화할 때도 그런 부끄럼을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성전에서 살 때 대사제와 이야기를 나눈 얼마 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남자와 단둘이 대화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천사들은 여왕의 곁에 모여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마리아의 눈에만 보였습니다. 이렇게 마리아는 천사들의 무리 한가운데서 요셉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온 마음으로 창조주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하느님의 선과 자비는 무한하고 그분의 생각은 드높이 솟아 있어 어느 누구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는 하느님을 섬기는 삶으로 부르심으로써 가진 것 없는 우리에게 당신의 위대하심과 자비를 드러내셨습니다. 저는 하느님께 빚진 것이 많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께 빚진 것을 한데 모으더라도 제가 하느님께 빚진 것보다 결코 많지 않을 겁니다. 저는 하느님의 자유로운 두 손에서 무수히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거부할 수 없는 하느님 진리의 힘에 이끌려 왔는데, 그 거룩한 빛 덕분에 저는 아주 어렸을 적에 이미 눈에 보이는 이 세상 모든 것은 덧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빛 덕분에 저는 그 어린 나이에 육신과 영혼을 영원히 정결하고 순결하게 지키기로 하느님께 서약할 수 있었습니다. 감히 고백하건대, 저를 소유하신 분은 하느님이시고, 저도 주 하느님을 제 정배이며 남편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참된 주님이시며 정배이신 하느님을 위해 저의 순결을 지키고 싶습니다. 그러니 제가 하느님께 약속드린 것을 성실히 지킬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저의 서원을 채우는 데에 부디 함께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대신, 다른 모든 일에서는 그대의 여종이 되고, 제 생이 다할 때까지 그대의 위로가 되겠습니다. 그대도 저처럼 영원하신 하느님께 희생 제물로 바치기를 원한다면, 저처럼 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대와 저의 봉헌은 진정으로 하느님께 큰 기쁨을 안겨 드릴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희망하는 영원한 상급을, 그 감미로운 향기를 여기서도 맡을 수 있을 정도로 하늘 위에 한가득 쌓아 두실 것입니다.”
마리아의 말은 요셉의 영혼을 기쁨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부인, 순결에 대한 그대의 사랑과 티 없이 맑고 깨끗한 그대의 생각을 내게 알려 줄 때 내 마음은 기쁨으로 활짝 열렸습니다. 그대의 뜻과 생각을 내게 말해 주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 솔직하게 그대에게 드러내 보이지 못했을 겁니다. 잘 들으시오. 나 또한 하느님에게서 크나큰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창조주 하느님께 나보다 더 많은 빚을 진 남자는 아마 없을 겁니다. 하느님께서는 일찍이 내게 빛을 비추시어, 올바르고 의로운 마음으로 오직 하느님 당신만을 사랑하며 살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부인, 나는 열두 살 때 그대처럼 오직 가장 높으신 주님만을 섬기기 위해 평생 동정으로 살겠다고 그분께 서원했습니다. 그대가 하느님께 드린 서원을 존중하고 지키겠다는 뜻에서 지금 이 시간, 나는 하느님께 드린 그 서원을 다시 하겠습니다. 마리아, 나는 당신의 서원이 온전히 채워지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당신을 돕겠습니다. 나는 그대가 원하는 대로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마음과 힘을 다해 그대와 함께하기로 약속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나는 그대의 가장 충실한 종이자 그대 삶의 반려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니 마리아, 부디 나의 동정인 사랑과 순결한 사랑을 받아 주고 나를 그대의 형제처럼 여겨 주세요. 나 또한 그대가 하느님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는 것과 그대가 하느님께 빚진 것을 갚아 드리는 사랑 외에 그대에게 다른 어떠한 사랑도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지존하신 하느님께서는 요셉 성인이 마음에 간직한 정결과 동정의 덕을 굳건하게 하시고, 마리아에 대한 지극히 순결하고 거룩한 사랑도 더욱 뜨겁게 타오르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더 높은 은총 지위에서 마리아를 보다 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이야기를 나눌 때 지극히 완전한 지혜로 대화를 이끌어 갔기에, 마리아에 대한 요셉의 거룩한 사랑은 대화를 통해 더욱 성장했습니다.
거룩한 동정 부부가 된 요셉과 마리아의 삶에는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하였기에 부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마리아는 모든 것 안에서 덕의 완성을 추구하는 성덕의 여왕으로서 요셉의 소망에 사랑으로 응답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거룩한 요셉의 순결을 새롭게 하시고, 자연적이고 육체적인 욕구와 감정들을 더욱 완전하게 통제하고 다스릴 수 있는 힘을 내리시어, 아무런 내적 저항이나 방해를 받지 않고 마리아를 섬기고 공경하며 마리아를 거룩하게 사랑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새로운 은총으로 요셉이 마리아를 섬기고, 마리아의 뜻을 따름으로써 자신의 뜻을 실천하고, 마리아의 기쁨 안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즉시 마리아의 부모인 요야킴과 안나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을 처리했습니다. 그들은 상속 재산을 셋으로 나눈 다음, 삼분의 일은 마리아가 머물렀던 성전에 바쳤고, 다른 삼분의 일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나머지 삼분의 일은 요셉이 맡아, 필요에 따라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우리의 거룩한 여왕님은 남편을 섬기고 집안일에만 전념하기로 했습니다. 앞서 제가 언급했듯이, 지극히 지혜로운 동정녀이며 현명의 덕을 완전하게 갖춘 마리아는 외부인과의 교제나 접촉을 피했으며, 재산 관리나 물건을 사고파는 활동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를 만나기 전 요셉은 목수 일을 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목공업은 성실이 요구되는 매우 정직한 일이기에 생계 유지를 위한 공정한 방법이었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요셉은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장 거룩한 여인인 자기 아내에게, 목수 일을 계속하는 것이 과연 그녀를 위해서 괜찮은지를 또는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줄 무언가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는 적절한지를 물었습니다. 나태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쨌든 어떠한 노동이든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슬기로운 마리아는 목수 일을 계속하는 것이 좋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가 재물로 부유해지기를 원하지 않으신다고,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며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가난한 이들을 도우며 살기를 원하신다고 마리아는 덧붙였습니다.
이어서 둘 사이에 거룩한 논쟁이 벌어졌는데, 두 사람 중 누가 누굴 섬겨야 하는지를 가리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마리아는 요셉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누가 더 겸손한가를 겨루는 이 거룩한 경쟁에서 지극히 현명하고 겸손한 여인 마리아가 승리한 것은 당연했습니다. 남자는 가족의 머리이니 이러한 자연적 질서가 전도되는 것을 마리아는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모든 일에서 남편인 요셉의 뜻을 따라 순종했으며, 오직 궁핍한 사람들을 돕고자 할 때에만 요셉의 허락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언제나 마리아의 청을 들어주었습니다.
이 기간에 하느님께서 내려 주신 거룩한 은총의 빛으로 요셉은 마리아의 완덕의 진정한 깊이를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요셉은 깨달았습니다. 마리아의 현명함과 겸손과 정결을 비롯한 모든 성덕은 헤아릴 수도 감히 평가하거나 판단할 수도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는 점을, 마리아를 알아갈수록 새롭게 감탄하고 요셉의 영혼은 기쁨으로 넘쳐흘렀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지닌 선과 덕보다 훨씬 더 크고 위대한 선과 덕을 지닌 영혼을 배우자로 주신 주님께 매일 감사와 찬미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지존하신 하느님께서는 계획하신 일을 완전하게 성취하시려고, 하늘 공주의 현존과 교제만으로도 배우자인 요셉의 마음 안에 거룩한 두려움이 일도록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일으키실 가장 위대한 업적의 시작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통해 비추시는 거룩한 빛을 통해 요셉에게는 마리아를 경외하는 은총이 주어졌고, 그 결과 마리아에 대한 요셉의 공경과 경외심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습니다.
요컨대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얼굴에서 아름다우면서도 불가사의하고, 상냥하고 우아하면서도 위엄과 근엄함이 섞인 천상 모후의 빛을 직접 발하게 하시어, 요셉이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게 하셨던 것입니다. 시나이 산에서 내려온 모세의 얼굴에서 발하는 빛을 보며 백성들이 모두 두려움에 떨었는데, 모세처럼 마리아의 얼굴에서도 광채가 일었다고 생각하면 될 듯합니다. 모세의 얼굴이 빛났던 이유는 그가 하느님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정도로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와 하느님의 관계는 모세와 하느님의 관계보다 훨씬 더 가깝고 친밀했으며, 모세가 하느님을 뵌 것보다 더 많이 더 가까이서 마리아는 하느님을 뵈었습니다. 따라서 마리아의 얼굴에서 발하는 빛이 모세의 얼굴에서 발하는 빛보다 더 밝고 눈부셨으며, 그 얼굴을 보는 이마다 더 큰 두려움에 빠졌을 것이 당연합니다.
이윽고 하느님께서 환시 중에 마리아에게 나타나시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사랑하는 나의 정배여, 내가 얼마나 신실한 주님인지를. 나를 두려워하고 나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나는 반드시 약속을 지킨다. 이제는 너도 아내로서 남편에게 순종하고 충실하며, 그와 함께 정결한 완덕의 삶을 살도록 하여라. 그리하여 내가 네게 보여 준 성실함에 보답하여라. 네가 거룩하게 살 수 있도록 내 종 요셉을 네게 보내 주었으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 네 남편 요셉에게 기꺼이 순종하여라. 이는 나의 뜻이며 내가 네게 바라는 바다."
거룩한 동정녀는 하느님의 말씀에 이렇게 응답했습니다.
“가장 높으신 주님, 저는 참으로 쓸모없고 보잘것없는 피조물입니다. 주님께서 제게 베풀어 주신 자비에 감사드리며 그 크신 지혜와 오묘한 섭리에 주님을 찬양하고 찬미합니다. 저는 오로지 주님께 순종하기를 원하며 주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을 저의 첫째가는 의무로 여기고 있습니다. 제가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주님께 기쁨이 될 수 있도록 저를 축복하여 주시고, 지금 이 자리에서 저의 소명을 다할 수 있도록 힘과 은총을 내려 주소서. 주님, 제게 혼인 성소를 주셨으니, 주님께서 부르신 이곳에서 제가 주님의 뜻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도록 저를 인도하여 주소서. 주님, 저를 지어내신 하느님, 주님의 자애를 제게 보여 주소서. 제게 원하신 바로 그대로 제가 주님의 종 요셉에게 순종하며 살 수 있도록 저를 축복해 주소서.”
지극히 거룩한 동정녀 마리아와 거룩한 정배 요셉의 부부로서의 삶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9월 8일에 혼인하였고, 3월 25일 거룩한 말씀이 육화하신 날이 다가올 때까지 지존하신 하느님께서 섭리하신 대로 주님의 일을 준비하며 거룩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모든 남자들 가운데 가장 복된 이인 요셉 성인에게 제가 잠시 찬미를 드리지 않고는 이 장을 마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오, 하느님의 사람이시여, 그대도 아담의 자손들 중 하나이거늘 어찌 남자들 가운데 홀로 그러한 축복과 은총을 받으셨습니까? 세상 어떤 남자에게 하느님을 아들로 보살필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허락된 적이 있었습니까? 거룩하시고 영원하신 성부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딸을 그대에게 주셨고, 성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참어머니를 그대에게 주셨으며, 성령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정배를 그대에게 위탁하시고 그대를 당신 대리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태양같이 빛나는 여인 마리아를 그대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마리아의 참신랑이며 가장 합당한 정배는 바로 하느님이신데도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하나뿐인 신부를 기꺼이 그대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오, 거룩한 사람 요셉이시여, 세상에 어느 남자가, 세상에 어느 성인이 그대와 같은 축복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성인이시여, 그대가 얼마나 큰 축복을 받은 남자인지, 얼마나 큰 은총과 존귀함으로 들어 높여졌는지 알고 계십니까? 그대는 당신의 아내가 하늘과 땅의 여왕, 전 우주의 여왕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하느님께서 당신의 가장 소중한 보물을 그대에게 맡기셨다는 사실을 과연 알고 계십니까?
오, 지극히 복된 하느님의 사람이시여, 그대가 맡은 직무와 소명이 얼마나 막중하고 위대하고 복된지 아십니까? 하늘의 천사들과 세라핌 천사들이 그대를 부러워하지 않았더라도 그대가 받은 은총과 축복에, 그대의 결혼에 담긴 신비에는 분명 크게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온 인류의 이름으로 그대를 찬미하고 찬송합니다. 그대는 하느님의 자비를 수호해야 할 사명을 받으신 분, 모든 피조물보다 위에 있고 그 위에는 오직 하느님만이 계실 뿐인 여왕님의 정배입니다. 모든 사람들과 천사들 중 큰 복을 받으신 요셉 성인이시여, 가난하고 비참한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시고, 특히 가장 쓸모없고 못난 여종인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성인의 힘 있는 전구로 저도 은총과 축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천상 여왕이신 성모님의 가르침
“내 딸아, 세상의 혼인한 부부들은 완전한 삶을 살 수 없음에 갖가지 핑계를 늘어놓지만, 그것들이 전부 변명에 불과하다는 점을 내 혼인 생활은 잘 보여 줄 것이다. 지존하신 하느님께서 인도하신 나의 혼인생활은 완전하게 살지 못하는 세속의 모든 부부들에게 완전한 혼인생활의 본보기가 된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 그리고 하느님을 굳게 믿고 하느님께 희망을 두며 하느님의 거룩한 섭리에 전적으로 의탁하는 영혼에게도 불가능한 것이 없다. 나는 요셉과 함께 집에서 살 때도 성전에서와 같은 완전함으로 살았다. 내 삶의 조건과 환경은 바뀌었지만 하느님만을 사랑하고 하느님만을 섬기겠다는 내 선한 열망은 변함없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거기에 오히려 아내로서 남편을 섬기는 의무가 더해졌던 것이다. 달리 말하면 나는 아내로서 남편을 완전하게 섬기면서 하느님도 완전하게 섬겨야만 했다. 그것은 하느님의 은총과 도우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나의 뜻과 소망과 욕구들이 내 소명에 부합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섭리해 주셨다. 누구든지 혼인생활을 하면서 진심으로 하느님을 섬기기를 원한다면, 주님께서는 나에게 하셨던 기적을 그에게도 똑같이 하실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어리석게도 결혼하면 하느님을 온전히 따를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한다. 거룩하게 살지 못하는 이유를 혼인 자체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심각한 잘못이며 변명이다. 부부가 완덕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그들이 헛되고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피상적이고 불필요한 것들에 크게 마음 쓰며 살기 때문이지 혼인생활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에게 행복인 것을 찾아 헤맬수록 그만큼 하느님을 찾지 않기 마련이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완전한 삶을 살기가 어렵다고 변명할 여지가 없다면, 더더욱 너희 수도자들에게는 그러한 변명이 허용될 수 없다. 수도자로서의 의무가 과하여 완덕의 삶을 살기가 힘들다고 불평할 수 없다. 너야말로 원장이라는 이유로 완덕의 삶을 살 의무를 소홀히 해서는 아니 된다. 너를 그 자리에 두신 분은 하느님이시니 주저하지 말고 그분의 도움과 보호를 청하여라. 하느님께서 네게 원장의 직책을 주셨으니 너는 그분께 순명하면서 맡은 바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완전하게 사랑하기 위한 네 노력과 수고를 조금도 덜어내지 않고도, 너를 매일 강하게 만드시고 네가 원장으로서의 의무를 온전히 다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수 있다. 네 의지를 하느님께 희생 제물로 바치고, 겸손하게 그리고 인내하며 하느님의 섭리를 따라라. 만일 네가 그분의 뜻을 가로막지 않는다면, 전능하신 주님께서 네 모든 행동을 거룩하고 완전하게 이끌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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