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신비로운 도성 3권
하느님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생애
46장 마리아의 혼인 준비
-아그레다 예수의 마리아 수녀
우리의 아리따운 하늘 나라 공주님, 거룩한 동정녀 마리아는 열세 살 반의 나이가 되었을 때 추상적인 환시를 통해 하느님을 한 번 더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추상적인 환시 중에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에게 옛날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과 비슷한 요구를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사랑하는 외아들이자 유일한 희망인 이사악을 바치라고 명하셨던 사건을 다들 알 겁니다. 성경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큰 상을 내리시려고 그의 절대적인 순종이 어느 정도인지를 시험하셨습니다.(창세 22, 1-2) 저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이나 마리아를 시험하신 것이나 한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환시 중에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에게 남자와 혼인하여 살라고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뜻이 어찌나 오묘한지,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여기에 딱 들어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로마 11, 33) 하느님의 생각과 마리아의 생각은 정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혼인하여 남편을 받아들이라는 짧은 명령 안에 담긴 하느님의 원대한 계획을 마리아는 결코 알아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기 의지에 달려 있는 한 마리아는 평생 동안 남편 없이 홀로 살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마리아는 어렸을 적에 드린 정결 서원을 스스로 여러 번 새롭게 바치며 살았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마리아가 성전에 처음 들어왔을 때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정결서원을 받아들이셨고, 모든 천사들이 증인으로 있는 가운데 하늘에서 마리아와 혼인을 맺으셨습니다. 그리고 티없이 맑은 비둘기는 어느 누구에게도 애정이나 마음을 두지 않고 세상 어떠한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기로 굳게 결심했습니다. 요컨대 마리아는 피조물에게는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오직 창조주만 사랑하기로 한 것입니다.
마리아는 불멸하는 최고선을 향한 순수하고 거룩한 사랑 자체로 살고 있었기에, 이 유일한 선을 향한 사랑에 담긴 놀라운 신비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곧, 주님을 사랑하면 영혼은 순결해지고, 주님을 만지면 영혼은 정결해지며, 주님을 자신 안에 모시면 영혼은 동정을 간직하게 된다는 비밀을 말입니다.(성녀 아녜스 축일 성무일도 중에서) 그래서 실제로 벌어진 일은 아주 간단해서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주님께서 명하셨을 때 마리아는 조금도 주저함 없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이 땅에서 자신의 배우자가 될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은 것입니다. 마리아는 오로지 하느님 한 분만을 바라보며 살아왔고, 하느님 말고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하느님 사랑 말고는 다른 어떠한 사랑도 알지 못하는 까닭에,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분명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겁니다. 그 충격을 우리로서는 상상하기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 거룩한 여종은 주 하느님만을 자신의 신랑이며 하나뿐인 사랑으로 알고 살아왔는데, 바로 그 신랑이 이제 다른 남자를 찾아가라고 하니 청천벽력과도 같았을 겁니다. 마리아가 받은 시험은 아브라함이 받았던 시험보다 훨씬 더 가혹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사악을 아끼는 정도는 마리아가 정결의 덕을 아끼는 것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이 예기치 못한 갑작스러운 명령에도 마리아의 마음은 아브라함보다 더 완벽한 희망과 믿음으로 평화를 유지했습니다. 모든 판단을 중지한 채 마리아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로마4,18), 하느님께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영원하시고 엄위하신 하느님,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사는 모든 것을 지어내신 창조주 주님, 만물이 주님 안에 있고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입니다. 저의 하느님, 바다에 한계를 정하시고(시편 104, 9) 바람의 무게를 재시는 분이시여(욥28,25), 당신은 지어내신 모든 피조물을 당신 뜻에 복종하게 하십니다. 전능하신 주님께서는 제가 당신께 드린 서원을 어기지 않게 하시고도 저를, 벌레만도 못한 무가치한 저를 당신의 기쁨을 위해 쓰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하신 주님, 주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저는 앞으로도 정결서원을 갱신하면서 평생 동안 순결을 지키고 싶고 마음에 오직 당신만을 간직하며 살고 싶습니다. 주 하느님 당신이야말로 저의 신랑, 저의 남편이기 때문입니다. 창조주이신 당신께 복종하는 것이 창조된 이의 의무입니다. 저 또한 당신께 순종해야 하고 또 순종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저의 하나뿐인 사랑이신 주님, 당신 뜻대로 하소서. 당신은 거룩한 사랑으로 이제 저를 곤경에 처하게 하시지만, 당신이 원하신다면 제가 이 나약한 본성과 시련에 굴하지 않게 지켜 주신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하지만 훗날 가브리엘 대천사가 복된 소식을 전했을 때처럼 동정녀 마리아의 영혼에는 작은 동요가 일었습니다. 미세하지만 영혼의 낮은 능력들은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마리아의 마음에는 약간의 슬픔이 드리웠지만,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결심을 방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언제나처럼 마리아는 용감하게 주님의 두 손에 자신의 전부를 맡겼습니다.
그러자 엄위하신 하느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 너의 봉헌은 나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니 슬퍼하지 마라. 나의 강한 두 팔은 어떠한 법에도 구속받지 않는다. 나는 네게 가장 적합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네게 가장 알맞은 것을 섭리한다.”
주님의 애매모호한 약속을 받고서 환시는 그쳤고 마리아는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하느님의 명령과 약속은 마리아에게 의 구심과 희망을 동시에 남겼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가 더 많은 눈물을 흘림으로써 사랑과 믿음과 겸손과 순명과 정결을 비롯한 무수히 많은 성덕을 실천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날 이후로 마리아는 심적인 불안을 억누르고서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봉헌하는 기도를 밤낮으로 바쳤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하느님께서 거룩한 대사제 시메온의 꿈에 나타나시어, 나자렛 사람 요아킴과 안나의 딸인 마리아의 결혼을 준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마리아는 당신께서 특별히 아끼고 어여삐 여기시는 여인이라는 말도 덧붙이셨습니다. 시메온은 마리아가 어떤 사람과 혼인해야 하는지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시메온에게, 다른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을 소집한 뒤, 부모가 다 세상을 떠나고 혼자 남겨졌는데 혼인할 의향도 전혀 없는 성전 처녀가 하나 있다고 말하라고 이르셨습니다. 그리고 맏딸인 성전 처녀는 배필이 정해지기 전에는 성전을 떠나지 않는 관습을 고려하여 사제와 학자들이 마리아에게 합당한 결정을 내려 주라고 명하셨습니다.
대사제 시메온은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즉시 성전의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을 소집하여 주님의 거룩한 뜻을 전했습니다. 그리하여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모두 나자렛 사람 마리아가 지존하신 주 하느님의 은혜를 입은 여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메온은 주님께서 일러 주신 대로, 마리아는 성전 처녀들 중 한 명이며 현재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잃은 상태이고, 잘 어울리는 훌륭한 배필을 조속히 찾아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리아가 지극히 겸손하고 모든 성덕을 고루 탁월하게 갖춘 만큼, 마리아의 남편은 덕성이 남달리 뛰어나고 정숙하며 여러 모로 흠결이 없는 깨끗한 남자여야 했습니다. 더욱이 마리아가 왕의 후손이라는 점을 고려하고, 마리아의 집안 내력과 사회적 지위를 고려하여 매우 신중하게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사제가 덧붙였는데, 나자렛 여인 마리아는 결혼을 원하지 않으며, 고아이면서 맏딸인 마리아를 배필을 정해 주지 않은 채 성전에서 내보내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은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의논 끝에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지금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혼인 문제에 친히 개입하셔서 우리를 통해 당신 일을 시작하셨으니, 분명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그분의 거룩한 뜻을 여쭈어 보고 그분의 뜻에 따라 마리아의 배우자를 결정해야지, 우리끼리 상의해서 정할 일이 아니다. 마리아의 배필로 가장 적합한 사람이 누구인지 하느님의 거룩한 섭리로 드러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다음, 주님의 뜻을 구하며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최선이다.”
그들은 율법에 따라 마리아의 배우자는 다윗의 자손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다윗의 자손들 중 아직 혼인하지 않은 남자들을 모두 성전으로 소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소집일은 우리 거룩한 공주님이 열네 살이 되는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이 상의한 내용은 마리아의 동의를 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사제 시메온은 마리아를 불러, 성전을 떠나기 전에 배우자를 정해 주려는데 마리아의 의향은 어떤지 물었습니다.
대사제의 말을 듣자 순결하고 순수한 마리아의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지극히 지혜로운 동정녀는 겸손하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대사제님, 제 마음이 향하는 것을 말씀드리자면 이렇습니다. 저는 일생 동안 동정과 순결을 지키면서 주 하느님만을 섬기며 이 성전에서 살고 싶습니다. 성전에 들어온 것 자체가 제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저는 이 거룩한 성전에서 오로지 주님을 섬기면서 제가 받은 은혜를 조금이나마 주님께 갚고 싶습니다. 저는 누군가의 아내로서 남편을 위한 의무를 다하며 살기에는 여러 모로 부족합니다. 결혼생활을 해나가기에 저는 무능력하다고 생각하기에 솔직히 지금껏 결혼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제 개인적인 뜻은 이렇습니다. 하지만 대사제님께서는 지존하신 하느님의 대리자시니, 무엇이 주님의 거룩한 뜻이며 무엇이 제게 옳은 것인지를 부디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시메온이 대답했습니다.
“내 딸아, 너의 그 거룩한 소망은 물론 주님께 큰 기쁨이 된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예언자를 통해 말씀하신 대로, 메시아가 오기 전까지는 우리 민족의 어떠한 여인도 혼인에서 제외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민족은 아이를 낳는 여인을 참으로 복된 여인으로 인정한단다. 그러니 네가 정녕 주님을 온전히 섬기고 주님께 큰 기쁨을 드리길 원한다면, 오히려 혼인하여 자녀를 낳고 살아야 옳지 않겠느냐. 결혼하여 남편과 함께 살면서도 완전하게 하느님을 섬길 수 있단다. 우리 모두는 너를 위해 하느님께서 좋은 배우자를, 네가 소망하는 바를 함께해 줄 수 있는 그런 훌륭하고 의로운 배우자를 마련해 주시기를 기도할 것이다. 나와 사제들은 날을 잡아 다윗 가문에 속한 모든 남자를 부르기로 했고, 그 가운데서 주님께서 당신께 가장 기쁨이 되는 이를 친히 뽑으시어 네 배필로 짝지어 주시라고 함께 기도드렸단다. 그러니 너도 주님께서 네게 호의를 베푸시기를, 그리고 우리 모두를 당신 뜻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청하며 지존하신 하느님께 기도하여라.”
이 일은 대사제와 사제들이 그들이 결정한 것을 실행에 옮기기 9일 전에 일어났습니다. 지극히 거룩한 동정녀는 눈물과 한숨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밤낮으로 끊임없이 주님을 찾았습니다. 그 9일 중 어느 하루는 주님께서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신부여, 네 마음을 괴롭히지 마라. 네가 원하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네 기도를 들어줄 터이니 나의 비둘기여, 슬퍼하지 마라. 사제들에게 내 빛을 비추어 모든 일이 잘되게 하겠다. 네 배우자가 될 이는 내가 친히 뽑아 주겠다. 네 거룩한 소망을 존중하고 지켜 줄 뿐만 아니라, 내 은총에 힘입어 네 소망을 더욱 완전하게 채워 줄 남자를 배필로 마련해 주마. 네게 알맞고 내 마음에도 꼭 드는 그런 완벽한 남자를 내 종들 가운데서 찾아낼 것이다. 나는 전능하신 주 하느님, 무한한 힘과 능력을 가진 주님이다. 나는 언제나 네 곁에서 너를 지키고 있으니 어느 누구도 너를 해하지 못한다.”
마리아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 영혼의 지고한 선이시며 제 영혼의 사랑이시여, 당신은 제 소망이 무엇인지, 제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한 것이 무엇인지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제게 그 보물을 주신 분이 바로 당신이니까요. 바로 당신이 저에게, 제가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한 첫 순간에 주셨습니다. 그러니 저의 하나뿐인 신랑이시여, 부디 저의 동정을 지켜 주소서. 제가 당신을 위해 간직하고 싶고 당신 덕분에 간직할 수 있었던 것처럼, 제 영혼이 앞으로도 정결과 순결을 보존할 수 있도록 지켜 주소서. 저의 탄식에 귀를 막지 마시고 당신의 얼굴을 제게서 돌리지 마소서.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저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벌레와 같고 가진 것 하나 없는 연약한 피조물입니다. 제가 혼인하여 한 남자의 아내로 살면서 나약해지고 덕행을 게을리하면, 당신께 크나큰 실망을 안겨 드리고 저 자신에게도 슬픔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 제가 언제나 목표로 삼아온 것에서 벗어나지 않고 끝까지 항구할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해 주십시오. 제 영혼의 안전을 위해 당신을 제게 주십시오. 저는 비록 먼지와 재에 지나지 않지만, 저의 허물이 많다 하여 저를 단념하지는 마소서. 주님, 저는 당신의 그 위대하신 이름을 신뢰하고, 당신의 무한한 자비에 의탁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주님께 말씀드린 다음, 지극히 정결하고 거룩한 동정녀는 수호천사들에게 시선을 돌렸습니다. 마리아는 거룩함과 정결과 동정과 다른 모든 덕에서 천사들을 능가하는데도 천사들의 의견과 조언을 구했습니다. 마리아는 이제 곧 닥쳐올 새로운 삶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천사들에게 털어놓았습니다. 하루는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잊지 말고 마음에 새기십시오. 그대는 지존하신 분의 신부입니다. 전능하시고 홀로 높으신 하느님에게서 그대가 무한한 사랑과 은총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그대가 주 하느님의 신부라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여주인이시여, 마음을 편하게 가지시길 바랍니다. 하늘과 땅이 사라질지언정 주 하느님의 말씀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대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그대의 신랑의 예지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그분은 만물을 지배하시고 자연을 떠받치는 원소들까지 지배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성난 파도의 힘을 빼놓으실 수도 있으며, 불이 타오르지 않게 하실 수도 있고, 땅이 무게를 잃어버리게도 하실 수 있으십니다. 주님의 판결은 공정하고 거룩하며, 그분의 법령은 심오하고 오묘합니다. 그분의 피조물인 우리들은 그 뜻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그저 경외할 뿐입니다. 하느님께서 정녕 그대가 결혼생활을 통해 당신을 섬기기를 원하신다면, 그대가 다른 삶을 사는 것이 그분께는 기쁨이 되지 않을 것이니, 참으로 혼인생활로써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틀림없이 그대가 가장 거룩하고 완전한 혼인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은총을 내려 주십니다. 그러니 언제나처럼 주 하느님을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하신 약속을 의심하지 말고 믿으십시오.”
천사들의 조언으로 우리 공주님의 불안함은 다소 가라앉았습니다. 마리아는 천사들에게 청했습니다. 앞으로는 특별히 더 자신을 보호하고 지켜 달라고. 그리고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면 무엇이든 기꺼이 하겠다는 말을 하느님께 직접 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천상 여왕이신 성모님의 가르침
“사랑하는 내 딸아, 주 하느님의 판결은 피조물의 생각 위에 드높이 솟아 있어 우리 중 그분의 뜻을 깨달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주님의 뜻은 심오하고 거룩하여 우리는 그것을 조금도 알아들을 수 없으니, 감히 그분의 판결을 두고 옳다 그르다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혼인하여 살라고 명하셨고, 그리하여 장차 이루실 당신의 그 거룩한 계획을 내가 조금도 알지 못하도록 내게서 완벽하게 감추셨단다. 엄위하신 하느님께서는 내가 아이를 낳음으로써 세상 사람들의 눈에 평범하면서도 복된 여인으로 비쳐지고, 내 안에서 사람이 되시는 영원한 말씀도 자연스럽게 그저 내 남편의 아들인 것처럼 비쳐지기를 원하셨다. 주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따라, 말씀의 강생 신비는 그 당시의 세상에는 알려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거룩하고 오묘한 하느님의 뜻 안에서 나의 혼인은 당연하고도 필요했던 것이다.
또한, 그 당시의 세상 사람들에게서 강생의 신비를 감추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특히 커다란 증오와 원한을 품고 있는 루치펠과 악마들에게서도 강생의 신비를 감추실 수 있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혼인하게 하심으로써 나의 존재와 당신 강생의 신비를 루치펠에게 감쪽같이 속이셨던 것이다. 왜냐하면 루치펠은 하느님의 어머니인 여인이 평범한 인간 남자와 혼인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루치펠은 내가 결혼하는 것을 보자 크게 안심하여 나에 대한 분노와 악의를 거두었다. 이것만으로도 주님의 뜻이 얼마나 오묘하고 심오한지 드러나지만, 주님께서 나의 혼인을 통해 의도하신 것은 사실 이것 말고도 더 있다. 하지만 이 외에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다른 목적들은 당시의 내게는 알려지지 않고 감추어져 있었다.
내 딸아, 주님께서 내 안에서 이루시려는 계획과 신비를 나는 알지 못했기에,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슬펐었다. 그때까지 내가 겪은 슬픔 중에 가장 쓰라리고 아픈 것이었다. 만일 하느님께서 그런 나를 강하게 붙들지 않으셨더라면, 내게 남은 얼마 안 되는 희망마저 앗아가 버리셨더라면, 나는 그 고통 때문에 죽고 말았을 것이 분명하다. 내가 간직했던 그 희망조차도 매우 어둡고 기약 없었고, 거의 사그라들기 직전의 촛불과도 같았다.
그러나 내 생에서 일어난 이 사건에서 네가 배워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다. 피조물은 모름지기 절대적인 순명과 봉헌으로 지존하신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그분께 자기 자신을 내맡겨야 한다. 요컨대 순명은 주님의 모든 명령에 대한 순명이고, 봉헌은 너의 모든 것을 봉헌함이다. 그리고 그럴 때에 영혼은 감히 하느님의 말씀을 판단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지성은 불완전하고 그 판단력이 지극히 제한되어 있어 하느님의 신비를 조금도 꿰뚫어볼 수가 없다. 주님께서 명하신 것 안에 어떤 명백한 위험이나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인간은 하느님을 믿고 신뢰하고 따라야 한다. 주님의 계획 안에서 우리가 직시하는 그 위험과 어려움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거기에 굴복시키고 패배시키려고 예정하신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오히려 우리가 하느님 당신과 함께 승리를 거둘 수 있게 하시려고 계획하신 것임을 의심하지 말고 믿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힘과 능력을 넘치도록 주시니 영혼이 하느님께 자발적으로 협력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모든 어려움과 장애를 반드시 이겨낸다. 하지만 영혼이 하느님께 순종하고 그분의 말씀을 믿고 따르기 전에 그분의 지혜를 의심하고 그분의 법령과 판단을 따지면서 자기만족을 구한다면, 그는 창조주 하느님께 마땅한 영광과 영예를 드리지 않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그가 행하는 모든 일의 가치와 의미마저도 상실하게 된다.
하느님께서 모든 피조물 위에 자리하시기에 우리의 지혜가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피조물은 창조주에게 어떠한 조언도 드릴 수 없으며, 그저 모름지기 겸허하게 순종하고 창조주의 뜻에 순명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피조물이 하느님께 무언가를 드려야 한다면 그것은 조언이 아니라 찬미와 찬양이다. 하느님께서 나의 결혼생활 안에서 나를 위해 계획하신 것을, 내게 진정으로 원하신 것을 전혀 알지 못했기에 고통스러웠던 것은 사실이나, 무엇보다도 동정과 정결에 대한 나의 사랑이 내가 겪은 아픔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 극심한 슬픔 덕분에 나는 다가올 혼인과 내 미래의 삶에 대해 궁금하지 않게 되어, 그것에 관해 하느님께 여쭈어 보지 않았고 감히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당시에 내가 겪은 슬픔과 아픔은 도리어 내게는 하느님께 더욱 철저히 순종하는 힘과 은총으로 작용했고, 이는 내 참된 신랑이신 주님의 눈에는 더할 수 없이 큰 기쁨이 되었다. 내 딸아, 네 신랑에 대한 너의 순명도 내가 행한 것과 같아야 하니 나를 본보기로 삼아라. 주님께 기쁨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순명하고 따라야 한다. 주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믿고 너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아라. 주님께서는 당신이 하신 약속은 반드시 지키시니 그분을 신뢰해야 한다. 너의 장상들이나 사제들의 지도를 받고, 하느님과 장상의 명령에는 저항하지 말고 순명하여라. 너의 장상들과 사제들의 조언을 구함으로써 그들의 인도에 너 자신을 맡기도록 하여라.
- 하느님의 신비로운 도성 3권 /아베마리아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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