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자기의 남편을 비난하지 않는다. 모든 여자가 자기의 남편을 비난했을 것이다. 너희는 그보다 훨씬 못한 일을 가지고도 남자가 여전히 가장이라는 것을 잊고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의 얼굴에 나타나는 고통은 어떤 쓰라린 비난보다 더 요셉의 마음을 찌른다. 그녀는 극적인 감정폭발들을 연출하지 않는다. 너희는 너희가 주목받고 동정받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보다 훨씬 못한 일을 가지고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억제된 고통은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녀는 깜짝 놀라 몸을 떨고, 얼굴이 창백해지고, 두 눈을 크게 뜬다. 그래서 그녀는 어떤 눈물과 통곡의 분출보다 더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그녀는 더 이상 피곤하지도, 시장하지도 않다. 여행은 긴 것이었고, 그녀는 그토록 여러 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모든 것, 그녀가 준비하고 있는 잠자리, 분배되려 하는 음식도 다 버려둔다. 그리고 그녀는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지금은 밤이라 어둡지만, 그것은 상관없다. 모든 걸음이 그녀를 예루살렘으로 되돌려놓는다. 그녀는 대상들과 순례자들을 멈춰 세우고 그들에게 물어본다. 요셉은 그녀를 따라가며 그녀를 도와준다. 하룻길을 걸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다음 시내에서 샅샅이 찾아 헤맨다.
그녀의 예수는 어디, 도대체 어디 있을 수 있을까? 그런데 하느님의 섭리에 의하여 그녀는 많은 시간 동안에 어디서 나를 찾아야 할지 모를 것이다. 어린이를 성전에서 찾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어린이가 대관절 성전에서 무엇을 하고 있겠느냐 말이다. 기껏해야 만일 그가 시내에서 길을 잃어 그의 작은 발걸음들이 그를 그리로 되돌아오게 했다면, 그는 자기의 엄마를 부르며 울어 사람들과 사제들의 주의를 끌었을 것이고, 그들은 대문들에 게시판들을 달아 부모를 찾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그러나 게시판은 없었다. 시내에 있는 그 누구도 이 아이에 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잘생겼다고? 금발이라고? 체격이 건장하다고? 그런 아이들은 아주 많다! 그것은 누군가가 ‘나는 그 애를 보았습니다. 그 애는 여기나 저기 있었습니다’ 하고 말할 수 있기에는 너무 부족한 정보였다.
그러다가 미래의 다른 3일간의 고통의 상징인 사흘 후에 마리아는 기진맥진하여 성전으로 들어가 마당들과 홀들을 돌아다닌다. 아무것도 없다. 가엾은 엄마인 그녀는 어린이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달려간다. 심지어 어린양들의 우는 소리도 그녀에게는 울며 자기를 찾고 있는 자기의 아들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그러나 예수는 울고 있지 않다. 그는 가르치고 있다. 갑자기 그녀는 많은 사람들의 장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말한다. ‘이 돌들이 떨 것입니다…’
그녀는 군중 사이로 길을 내려고 애쓰다가, 많은 노력 끝에 마침내 성공한다. 박사들 가운데 서서 양팔을 벌리고 있는 그녀의 아들이 있다.
마리아는 신중한 동정녀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걱정이 신중함을 이긴다. 그것은 모든 것을 파괴하는 태풍이다. 그녀는 자기의 아들에게로 달려가 그를 껴안아 의자에서 들어 올려 바닥에 내려놓으며 외친다. ‘오! 너는 왜 우리에게 이렇게 했느냐? 우리는 사흘 동안 너를 찾아 헤매고 있다. 얘야, 네 엄마는 걱정으로 죽을 뻔했다. 네 아버지도 지칠 대로 지치셨다. 예수야, 왜 그랬느냐?’
너희는 아는 그(He Who knows)에게 ‘왜’라고 묻지 말아야 한다. 그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말이다. 너희는 부름 받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왜’ 모든 것을 내버려두고 하느님의 목소리를 따르느냐고 묻지 말아야 한다. 나는 지혜였고, 그래서 나는 알았다. 나는 한 사명에 ‘부름 받았고,’ 그래서 나는 그것을 성취하고 있었다. 땅의 아버지와 어머니 위에 하느님, 하느님 아버지가 계신다. 그분의 이익들은 우리의 이익들 위에 있고, 그분의 애정들은 다른 모든 애정보다 우월하다. 그래서 나는 내 어머니에게 말한다.
나는 박사들의 모후인 마리아에 대한 가르침으로 박사들에 대한 가르침을 마친다. 그래서 그녀는 그 가르침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녀가 겸손하게 순종하는 내 손을 잡을 때 태양은 다시 그녀의 마음속에서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말들은 그녀의 정신 안에 깊이 뿌리내렸다. 내가 아직 땅 위에 있을 21년 동안 많은 햇빛들과 많은 구름들이 하늘에 모일 것이다. 그리고 큰 기쁨들과 많은 눈물들이 남은 21년 동안 그녀의 마음속에서 교차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다시 묻지 않을 것이다. ‘내 아들아, 너는 왜 우리에게 이렇게 했느냐?’
오, 무례한 인간들아, 이 교훈을 배워라.
작은 요한아, 나는 환상을 보여주고 설명해주었다. 왜냐하면 너는 그 이상의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하는 말에 주의를 기울여라. 나는 이 책이 다음과 같이 만들어지기를 원한다.
첫 번째 고통: 성전에의 봉헌.
두 번째 고통: 이집트에서의 체류.
세 번째 고통: 성전에서 잃어버린 예수.
네 번째 고통: 성 요셉의 죽음.
다섯 번째 고통: 나자렛으로부터의 내 출발. 그 다음에 1944. 2. 10. 자의 구술.
여섯 번째 고통: 2. 13. 자 환상의 묘사(4가지 요점들: 회당, 나자렛의 집, 회당에서의 예수의 설교, 나자렛으로부터의 피신 후의 그의 어머니와의 대화).
일곱 번째 고통: 2. 14. 자 환상. 그 다음에 2. 16. 자 구술.
여덟 번째 고통: 파스카의 성만찬.
아홉 번째 고통: 수난, 1943. 2. 11. 자 환상과 그것에 2. 18. 자 환상을 연결시킴.
열 번째 고통: 예수의 장례(2. 19.) 그 다음에 2. 21. 자 환상과 구술. 2. 22. 자 환상과 구술 중 장사와 관계되는 부분.
성전에서 예수를 찾은 것에 관한 다른 구술은 셋째 슬픔 중 제 자리에 넣을 것.
첫째, 신부(the Father)는 그 자신과 너를 위한 통상의 책을 만들고, 너는 단 하나의 실수도 없도록 교정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그는 그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원하는 사본들을 만들 것이다. 물론 각 환상에는 그에 수반하는 구술이 이어져야 한다. 그는 모든 것을 부활절에 맞추기를 원했다. 나는 그것을 부활절의 준비로서 원했고, 그래서 나는 그것을 오늘 너에게 건네주고 있다. 왜냐하면 지금은 이미 사순절의 첫날인 재의 수요일 오후 4시 30분이기 때문이다.
자녀들아, 일에 착수해라. 그러면 너희는 복될 것이다. 그리고 단순한 마음과 믿음으로 이 선물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복될 것이다. 신부가 오늘 원했던 그 불은 그들 안에서 타오를 것이다. 세상은 그 잔인성에 있어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너무 부패했다. 그러나 그들은 위로받을 것이고, 하느님에 대한 목마름을 느낄 것이고, 성덕에 대한 충동이 그들 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느낄 것이다.
작은 요한아. 평안히 가거라. 너의 예수는 너에게 감사하고 너를 축복한다
40. 예수의 성인례를 위한 성전에서의 시험/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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