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뜻의 오늘/매일미사

예수님과 마리아님, 굼뜨고 게으른 저 당신께 봉헌합니다.

Skyblue fiat 2023. 10. 30. 22:46

너는 이번에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다.(사무엘상26,16)
못된 게으름 때문에 들보가 내려앉고 늘어진 두 손 때문에 집에 물이 센다(코헬렛 10,18)


하느님아빠. 저의 하느님, 게으름에 늘어진 이 두 손을 성모님을 통해 주님께 봉헌합니다.
축복해주시고, 열심히 일하게 해주십시오. 아버지의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께 기쁨을 드리기 위하여 부지런한 딸이 되도록 저를 변화시켜주십시오. 하느님 아빠의 무릎에 얼굴을 대고 울며 용서를 구합니다.

예수님, 주님을 위하여 시작하고 계속하여 끝내고자 하는 일을 잘 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십시오.

오셔서 저와 같이 일해주세요~~~ 제에발.... ㅠㅠ

할 일이 산더미인데, 그제도 어제도 푹 자버렸 ㅠ

 

 

수난의 시간들 제3시간

 

36 사랑하올 저의 선이시여, 당신은 영혼들의 멸망 때문에 몹시 괴로워하십니다. 당신이 무척 가엾습니다. 그러기에 당신께서 마음대로 쓰실 수 있도록 저 자신을 드립니다.
 그리고 당신의 고통과 죄인들의 고통은 제가 떠안겠습니다.

당신의 고통은 덜어 드리고, 죄인은 당신께 매달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37 오, 예수님, 저의 온 존재로 하여금 사랑 안에 녹아들게 하시어, 당신의 쓰라린 고통을 모두 누그러뜨릴, 끊임없는 위로가 되게 해 주십시오.   

 

 

영광의 신비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한국교회를 성모님을 통해 봉헌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한국의 모든 교회와 종교들 안에서도 이루어지소서. Fiat Voluntas Tua!


2023년 10월 30일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제1독서 (로마8,12-17)

 

- 임언기 안드레아 신부님 독서 해설


<여러분은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8,12-17
12 형제 여러분, 우리는 육에 따라 살도록 육에 빚을 진 사람이 아닙니다. 13 여러분이 육에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14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15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16 그리고 이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17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마르14,36)


"진정 여러분이 자녀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영께서 "아빠! 아버지!"하고 외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그리고 자녀라면 하느님께서 세워 주신 상속자이기도 합니다."(갈라4,6)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하고 외치는 것입니다."(로마8,15)

 


어째서 그리스어를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때까지 그들이 새겨듣는 복음서와  바울의 서간 안에서 여전히 예수님의 모국어인 아람어 표현 '압바' 호칭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이 'Abba'호칭을 특별히 예수님께서 몸소 사용하신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유다인들의 기도문에서는, 당시 아람어를 쓰는 백성들 사이에서 아이들이 그들의 아버지를, 신뢰를 갖고 친숙하게 부르는 호칭, 오늘날 우리가 '사랑하는 아빠'라고 번역할 수 있는 'Abba'라는 호칭을 감히 사용하지 못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의 대화에서 당시의 언어 용법을 거슬러 가족들 안에서 관습적으로 사용하였던 '압바', 즉 '사랑하는 아빠'를 사용하였다.

그렇다면, 루카복음이 전해 주는 '주님의 기도'에서 '아버지'(Pater)라는 그리스어의 단순한 호칭은 일종의 번역으로, 아람어의 가족적 신뢰를 드러내는 'Abba'라는 호칭의 의미를 가장 가깝게 드러내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가족적이고 신뢰성을 드러내는 호칭임에도 불구하고, 성부 하느님께 하느님의 위대함과 그 거룩함의 지위를 드러내는 예수님께서 칭하신 '압바'라는 호칭은, 그 거룩함을 모르는 사람이 부른다 하더라도, 그 의미가 감소되는 것이 아니다.

올리브산에서의 예수님의 기도는 꾸준히 아빠에게 호소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데, 그것은 하느님께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예수님이 이미 믿고, 또 알고 있음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갈라디아 4,6과 로마 8,15에서도 아빠앞에서 자식의 특권(신뢰)를 강하게 보여주는 것이지, 그들간의 어떤 특별한 사랑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이 지상에서의 아버지 상(像)이 예수님이 하느님과 맺으신 결속 관계를 위한 상징으로 비쳐졌다면, 우리는 아버지가 곧 주인이기도 한 팔레스타인 문화권의 가부장적 대가족 제도도 유념해야 하는 것이다.

창세기 9장에 노아와 그 아들들 (셈, 함, 야펫)의 이야기에서, 아버지는 자신의 치부를 덮어 준 셈과 야펫을 축복하고, 자신에게 잘못을 저지른 둘째 아들 함을 저주하며, 형 셈과 동생 야펫의 종이 되게 한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부르신 '압바' 호칭은 상징이 아니라, 상호 신뢰와 존중이 깔려 있는, 피와 생명과 인격이 오고 가는 결속 관계를 드러낸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를 전수받은 사람들, 마르코 3,33 이하에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인 '형제들', '자매들',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종말의 때에 드러나실 하느님께 마음을 쏟는 자들, 예수님을 중심으로 작은 형태의 '추종하는 이들'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예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며' 그분에게 '신앙을고백하는' 이들을 포괄하는, 보다 확장된 형태의 무리가 다 같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Abba 호칭은 그것을 부르는 사람들의 공동체 형성과 관련된 호칭이고, 교회를 구성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Abba를 부르는 사람들이 주님의 기도에서 '저희에게' '저희의' 라는 표현을 쓸 때, 우리는 수평적으로 하느님을 한 아빠, 아버지로 고백하고 섬기는 한 자녀들이고, 한 가족이고, 한 공동체라는 말이다.

쉽게 이야기 하자. 우리 가족이 전부 믿음을 가진 가족이라면,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 형제, 자매, 조카, 손자도 다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른다. 나의 부모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셨으니, 자식인 나는 '하느님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는가?


성경을 믿고, 주님의 기도를 아는 타 종파 신자들도 똑같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른다. 그러면, 수평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더군다나,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것은, 아버지의 신뢰를 받는 자녀로서의 특권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고, 자녀들은 아버지의 상속자이니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상속자임을 드러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아버지의 영광, 축복의 상속자인데, 그 영광과 축복을 누리려면,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로마8,17참조)

 사도 바오로는 갈라디아 4,4-7과 로마 8,14-17 에서, 우리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고, 또 그렇게 이해할 수 있는 능력과 자유는, 우리가 받은 성령에게서 온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나에게서 성부 하느님은 진짜 아버지이신가?  어떤 마음으로 '아빠, 아버지' 호칭을 부르는가? 우리가 가정이나 직장, 본당이나 교구,수도 공동체에서 체험된, 좋지 않은 아버지 상이나 상처 때문에, 하느님 아버지를 부를 때마다 어려움은 없는가? 

하느님을 '아빠,아버지'라고 부르는 우리들은 같은 믿음의 자녀로서, 수평적으로 가족적 사랑이나 우애, 형제애를 서로 느끼는가? 서로 원수처럼 살고 미워하고 싫어한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한 아버지라 부르는 같은 자녀라고 볼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