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 26권
26장
하느님 뜻의 통치를 위한 주된 수단인 지식.
하느님 뜻안에 사는 이와 인간의 뜻 안에 사는 이의 차이.
1929년 8월 7일
1 ‘거룩하신 의지’ 안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노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느님의 뜻은 어떻게 오셔서 다스리실까? 이 거룩하신 뜻의 다스림을 받도록 사람들을 준비시킬 수단이며 도움이며 은총은 무엇일까?’
2 그러자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기척을 내시며 인자하고 자상하기 그지없는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내 ‘거룩한 피앗’이 땅에서도 다스리게 할 주된 수단은 이 피앗에 대한 지식이다.
3 그 지식이 길을 만들고 땅을 준비시켜 내 ‘피앗의 나라’가 되게 하고, 도시들을 세워 전신과 전화 따위 우편 업무를 담당하며 나팔수 역할을 하여, 도시에서 도시로,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나라에서 나라로 소식을, 내 거룩한 뜻에 대한 중대한 지식을 전할 것이다.
4 그러면 그 지식이 사람들의 마음 안에 그토록 위대한 선을 받아들이려는 열망과 희망을 넣어 줄 것이다. 여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어떤 선이든 그것을 알지 못하면 원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알지 못하면서 받아들인 것은 받아들이지 않은 것과 같다는 것이다.
5 따라서 내 ‘거룩한 뜻의 나라’의 기초와 희망과 그 확실성은 이 뜻에 대한 지식으로 형성될 것이다. 내가 그래서 너에게 그리도 많은 말을 해 온 것이다. 왜냐하면 이 지식들이 내 ‘의지의 나라’ 사람들이 소유할 재산과 양식, 새로운 태양과 새로운 하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6 내 ‘피앗’에 대한 지식이 길을 만들면서 이 지식을 아는 은혜를 받을 사람들을 준비시킬 때면, 나의 넘치는 부성애가 그 극단적인 사랑을 보여 주려고 각 사람 안에 나 자신의 인성과 내가 행한 모든 선을 넣어 주어 마음대로 쓰게 하리니, 그들은 내 거룩한 뜻의 지배를 받을 만큼 은총의 큰 힘을 느끼게 될 것이다.
7 그러면 내 인성이 내 ‘피앗’의 엄위와 영예를 위하여 내 나라의 자녀들 한복판에 그들의 심장처럼 있을 것이고, 이것이 인간적인 뜻에서 생겨나는 모든 악을 방어하는 은총으로, 그 해독제로서 있을 것이다. 내 ‘피앗’이 다스리기를 원하는 내 사랑의 열정이 이처럼 크기에, 내가 더할 수 없이 반항적인 인간의 뜻도 이겨 얻을 정도로 극단적인 사랑을 베풀려고 하는 것이다.”
8 그 말씀을 듣고 나는 놀라워하면서도 의심쩍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다시 이렇게 말씀을 시작하셨다. “딸아, 왜 의심하느냐?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행하며 마음대로 나 자신을 줄 자유가 있지 않느냐? 또 내 ‘거룩한 뜻의 나라’를 최초로 소유한 맏형이 아니냐?
9 그러니 맏형으로서 다른 형제들에게 그 나라를 소유할 권리를 전해 줄 권리도 있고, 그들에게 이토록 큰 선을 주기 위해 그들의 손이 닿는 곳에 나 자신을 놓아둘 수도 있지 않겠느냐? 나는 또 온 인류 가족의 머리이기도 하니, 이 머리의 덕행이 그 지체들 속에 — 내 거룩한 뜻의 힘찬 행위가 지체들 속에 흘러들게 할 수 있지 않겠느냐?
10 게다가 내 인성이 네 안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서 네가 오직 내 뜻만으로 살기를 원할 힘과 은총을 주고 있고, 너로 하여금 네 인간적인 뜻이 사라질 정도로 평화와 행복을 느끼게 하지 않느냐? 이는 네 뜻이 내 거룩한 뜻의 절대적인 지배를 받으며 생명이 없는 것처럼 사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
11 나에게 필요한 것은 따라서 그들이 내 ‘피앗’에 대한 지식을 가지는 것이다. — 그 나머지는 저절로 올 것이니 말이다.”
12 그 뒤에도 나는 줄곧 ‘거룩하신 피앗’ 안에 나 자신을 맡기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그 안에는 어떤 멈춤도 없는 것 같다. 언제나 뭔가 할 일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런 일이 사람을 지치게 하지도 않는다. 도리어 긴 여정 동안 사람을 튼튼하게, 행복하고 기쁜 마음이 되게 한다.
13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에 내 ‘지극히 높은 선’이신 예수님께서 “딸아, 내 거룩한 의지 안에서 사는 사람은 언제나 걷는다.” 하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그는 마음대로 언제나 쓸 수 있는데다 결코 멈추지 않는 영원의 둥근 바퀴 같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멈추지 않기에 언제나 돌아가는 바퀴이다. 그러니 그가 만약 멈춘다면, 아주 잠깐, 딱 한 걸음만 걷지 않아도 신적인 한 걸음과 행복을 잃게 된다.
14 사실, 나의 ‘피앗’은 언제나 새로운 하나의 행복이요 은총이며, 형언할 수도 도달할 수도 없는 아름다움이기에, 영혼이 계속 걸으면 (그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고, 걷지 않으면 아무 것도 가질 수 없다. 내 ‘거룩한 의지’의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다 따라가지 않았으므로, 내 뜻이 그 걸음 안에 내놓은 행복과 아름다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15 한데, 내 거룩한 뜻 안에서 사는 사람과 인간적인 뜻 안에서 사는 사람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누가 너에게 말해 줄 수 있겠느냐?
16 인간의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은 자주 멈추곤 한다. 그의 바퀴(의 둘레)가 너무 짧아서 걸음 수를 늘리려고 하면 발 놓을 자리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어떤 때에는 불쾌감을 느끼는가 하면, 어떤 때에는 환멸을 느끼고, 어떤 때에는 또 한 번의 나약을 느낀다. 결국은 그를 죄 속으로 끌어넣을 나약을!
17 오! 인간의 뜻이라는 원은 그 둘레가 얼마나 짧은지! 그것도 비참과 위험과 쓰라린 쓴맛이 가득한 원이건만, 그럼에도 그들은 그 안에서 사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니, 실로 통탄해 마지않을 광기(狂氣)이며 어리석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