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5.12.부활 제4주간 목요일>
<요한13,16-20>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그들에게 말씀하셨다.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17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18 내가 너희를 모두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뽑은 이들을 나는 안다.그러나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라는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19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미리 너희에게 말해 둔다.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나임을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 신으로 우리를 믿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의식 차원에서 믿으려 하기 때문에 즉, ‘혼soul’ 의 차원에서 믿으려하기 때문에 그러한 한계에 부딪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지성의 비움에서 옵니다.
그리고 우리의 희망은 기억의 비움에서 오며,
우리의 사랑은 의지를 비움에서 옵니다.
능동적으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 필요하고,
수동적으로 그 말씀이 우리 안에 작용하도록 내적 침묵 안에서 머무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기위해서는 먼저 세례가 필요하고,
세례 때에 약속한 “죄를 끊고, 악의 유혹을 끊고, 마귀를 끊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만을 믿겠다” 는 세례 때의 서약을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서약은 구약의 율법을 자신들의 힘으로 지키려 했던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처럼,
우리 역시 우리의 힘으로 지키려한다면 넘어지고 맙니다.
내가 죽어야 합니다.
먼지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내 대신 해주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기도를 의식차원의 능동과 무의식 차원의 수동이라 표현합니다.
내가 나를 용서하는 기억 정화가 일어나야 우리는 죄책감에서 해방이 됩니다.
그 방법은?
가. 판단 평가해서 오는 마음을 비워냅니다.
그리고,
비판 대신 지지를,비난 대신 격려를,불평 대신 청취를,잔소리 대신 수용을,위협하기 대신 신뢰를, 벌주기 대신 존중을,통제를 위한 보상 대신 협상을 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판단 평가하려는 내 마음을 예수성심께 수시로 봉헌합니다.
나. 세례(수세, 혈세, 화세)를 받은 상태에서 완전 의탁을 하던지, 아니면 완전 정화를 하면 됩니다.
1.완전 의탁
1)성체를 영합니다.
음식이 나의 살과 피가 되듯이,
성체로 내가 예수님의 몸과 피가 됩니다.
2)내가 예수님으로 거듭나게 되었음을 믿고 하루에 50번~500번 떠올리기.
일주일이 넘게되면 장기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에 의해서 무의식적으로 예수님처럼 살지 않으면 목숨의 위협을 느껴 저절로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이것이 100일 정도 지속되면 습관화 됩니다.
3)예수님의 수난을 보시고 저희와 온 세상을 구함을 청하는 자비의 기도를 바칩니다.
2.완전 정화
1)복음 묵상
(1)기도
매일 미사책에 복음 말씀을 2번~10번 읽습니다.
눈을 감고 영화처럼 성령께 의탁하여 등장 인물 중에 한 인물이 되어 예수님을 만나고 대화를 합니다.
30초~1분간 무념무상으로 머뭅니다.
(2)정화
삶에서 복음 묵상 중에 만난 예수님의 현존하에서 대화하며 살아갑니다.
2)단순기도
(1)정화
지성으로 예수성심이 어디에나 계심을 믿습니다.
순간순간 내 모든 기억을 비워내고 예수성심과 일치하려고 소망합니다.
의지로 내 모든 기억을 봉헌하기 위해 사랑자체이신 예수성심을 향해 봉헌합니다.
(2)기도
일생이 한 번 봉헌될 때마다 30초~1분 무념무상으로 예수성심 안에 머뭅니다.
일생이 10번 이상 다 봉헌되면,
내 머리는 예수님의 머리.
내 심장은 예수님의 심장,
내 손은 예수님의 손,
내 다리는 예수님의 다리가 될 수 있도록
예수성심께 몸을 봉헌하고,
몸이 한 번 다 봉헌될 때마다
30초~1분 예수성심 안에 머뭅니다.
이 때는 몸에 붙은 무의식이 예수성심의 사랑의 용광로를 견디지 못하고 튀어나오기에 다시 봉헌하게 되면
무의식적으로 그 악습들이 떨어져 나갑니다.
하느님의 자녀,
예수님의 지체로 거듭나게 됩니다.
아무것도 없게 되면 빛 속에서 순간 봉헌만 남습니다.
머리이신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십자가의 성요한이 말한,
육의 능동적인 밤, 영의 능동적인 밤, 육의 수동적인 밤, 영의 수동적인 밤을 거치게 됩니다.
<john13,16-20></john13,16-20>
16 Amen, amen, I say to you, no slave is greater than his master nor any messenger greater than the one who sent him.
17 If you understand this, blessed are you if you do it.
18 I am not speaking of all of you. I know those whom I have chosen. But so that the scripture might be fulfilled, 'The one who ate my food has raised his heel against me.'
19 From now on I am telling you before it happens, so that when it happens you may believe that I AM.
20 Amen, amen, I say to you, whoever receives the one I send receives me, and whoever receives me receives the one who sent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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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비록 사진첩 속의 사진을 부인하는 것이 불가능할지라도, 때때로 우리는 사진을 충족시키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 사진들을 마음에서 떼어 내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어떻게 하면 우리의 결혼 생활이 더 행복해질까 또는 우리의 직업이 어떻게 하면 더 보상받을 수 있을까에 관한 사진을 사진첩에 가지고 있지만, 그 사진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우리가 감추고 싶은 상처를 건드려 놓기 때문에 오히려 부정하려고 한다.
행복하지 못한 결혼 생활, 충분히 보상 받지 못하는 직업에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만사가 잘 되어간다고 얘기하고 싶지만, 실은 여전히 불만족스런 상태에 놓여 있기도 한다.
(당신의 삶은 누가 통제하는가, William Glasser 지음, 김인자 옮김, 생활심리시리즈4, 한국심리상담연구소, 2016, p.74-75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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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제1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기도가 지니는 의미
제3장
기도하는 방법
501 ‘소리 기도’ 란 무엇인가요?
기도한다는 것은 우선 마음을 하느님에게 들어 올리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말로써 하는 기도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시려고, 완벽한 소리 기도인 ‘주님의 기도’ 를 남겨 주셨습니다.[2700-2704, 2722]
우리는 기도할 때 거룩한 것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의 관심사를 하느님에게 말씀드리며 불평하기도 하고, 청원과 찬양, 감사도 드려야 합니다. 성경의 시편과 찬미가, 주님의 기도, 성모송과 같은 훌륭한 소리 기도들은, 종종 기도의 참된 내용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자유로운 내적 기도로 우리를 이끕니다.->511-527
기도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오직 한 가지 방법만을 사용하고, 또 어떤 이들은 모든 방법을 동원합니다. 그리스도가 현존하시며 우리 마음속에서 말씀하고 계심을 생생하게 느낄 때가 있는가 하면, 그분을 침묵하시는 분으로 느끼거나 우리와 동떨어진 낯선 분으로만 느낄 때도 있습니다……우리 모두 에게 기도는 여전히 끊임없는 자기 변화의 과정에서 우리 자신으로부터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부터 오는 삶으로 향하는 단계라 하겠습니다.(로제 슈츠 수사)
(YUCAT 가톨릭 청년 교리서, 오스트리아 주교회의, 최용호,2012,p.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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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편 그리스도인의 기도
제1부 그리스도인의 삶과 기도
기도란 무엇인가?
저에게는 기도가 마음의 약동이며, 하늘을 바라보는 단순한 눈길이고, 기쁠 때와 마찬가지로 시련을 겪을 때에도 부르짖는 감사와 사랑의 외침입니다.(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자서전 유고’, C, 25r: Manuscrits autobiographique(파리 1992), 389-390면)
(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903)/
제3장
기도 생활
제1절 기도의 형태
I.소리 기도
->2700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통해서 인간에게 말씀하신다. 우리의 기도는 마음 속으로 하는 말이나 또는 입으로 하는 말을 통해서 구체화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도 중에 말씀을 드리는 그분께 우리의 마음을 향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가 받아들여지는 것은 말을 많이 하는 데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열성에 달린 것입니다.”(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안나에 관한 설교’, 2, 2: PG 54, 646)
->2701 소리 기도는 그리스도인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스승이 침묵 중에 하시는 기도에 마음이 끌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소리내어 하는 기도인 ‘주님의 기도’ 를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의 전례 기도만 드리신 것이 아니다. 복음서들은, 환희에 차서 성부를 찬양하신 것을 비롯해서(마태11,25-26 참조), 게쎄마니에서 비탄에 젖으시기까지(마르14,36 참조), 개인 기도를 소리 높여 드리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2702 내적 기도에 감각을 결합하려는 욕구는, 우리 인간 본성이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육체와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우리의 감정을 외적으로 표현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우리의 청원에 가능한 모든 힘을 부여할 수 있도록, 우리는 온몸으로 기도해야 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955)/
->2703 이러한 욕구는 하느님의 요구에도 부합한다. 하느님께서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하는 사람을 찾으신다. 곧 영혼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살아 있는 기도를 드리는 사람을 찾으신다. 하느님께서는 내적 기도에 몸까지 결합시키는 외적 표현도 원하신다. 왜냐하면 외적 표현은 하느님께서 마땅히 받으셔야 할 완전한 찬미를 이루기 때문이다.
->2704 소리 기도는 외적이고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기 때문에, 가장 훌륭한 일반 대중의 기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장 내적인 기도를 하는 사람이라 해도, 소리 기도를 무시할 수는 없다. 기도는 “우리가 말씀드리는” 그분을 의식하면 할수록, 내적인 것이 된다(예수의 성녀 데레사, ‘완덕의 길’, 26: Biblioteca Mistica Carmelitana, 3권(부르고스 1916), 122면 참조). 이리하여 소리 기도는 관상 기도의 최초의 형태가 되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956)/
간추림
->2722 몸과 정신이 결합된 인간 본성에 바탕을 두고 있는 소리 기도는, 당신 아버지께 기도를 드리시고 또한 제자들에게도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신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몸을 마음의 내적인 기도에 일치하게 한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961)/
->511 동정 마리아는 “자유로운 신앙과 순종으로 인류 구원에 협력하였다.”(교회 헌장, 56항). 마리아는 “인류 전체를 대표하여”(성 토마스 데 아퀴노, ‘신학대전’, 3, q. 30, a. 1, c: Ed. Leon. 11, 315). “그대로 이루어지소서.” 하고 응답하였다. 동정 마리아는 순종으로써 새로운 하와, 곧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었다.
제3단락 그리스도 생애의 신비
->512 신경은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해서 단지 강생(잉태와 탄생)과 파스카(수난, 십자가에 달리심, 돌아가심, 묻히심, 저승에 가심, 부활, 승천)의 신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 신경은 예수님의 드러나거나 드러나지 않은 생활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명백하게 말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예수님의 강생과 파스카에 관한 신앙 조문은 그리스도의 지상 생활 전체를 밝혀 준다. “처음부터 승천하신 그 날까지….예수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모든 일”(사도1,1-2)은 강생과 파스카의 신비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220)/
->513 교리교육은 상황에 맞추어 예수님 신비의 풍요로움을 모두 전개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그리스도 생애의 모든 신비들에 공통되는 몇몇 요소들 (I)을 지적하고, 다음으로 예수님의 사생활(II)과, 공생활(III)의 주요한 신비들을 개괄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I.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신비이다.
->514 복음서는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는 많은 것들을 기록하고 있지 않다. 그분의 나자렛 생활에 대해서도 거의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공생활의 많은 부분도 언급하지 않는다.(요한20,30 참조). 복음서에 기록된 것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임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20,31).
->515 복음서는 최초로 신앙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서(마르1,1; 요한21,24 참조), 다른 사람들과 그 신앙을 나누기를 원하였던 사람들이 기록한 것이다. 그들은 신앙으로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알아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분의 지상 생활 전체에서 그 신비의 자취를 볼 수 있었고, 또 보여 줄 수 있었다. 당신 탄생 때의 포대기에서부터(루카2,7 참조) 수난의 신 포도주와(마태27,48 참조) 부활 때의 수의에(요한20,7 참조) 이르기까지 예수님 생애의 모든 것은 그분의 신비를 가리키는 표징이다.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인성 안에는 하느님의 충만한 신성이 깃들어 있다.”(콜로2,9)(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222)/
는 사실이 계시되었다. 그분의 인성은 이처럼 ‘성사’, 곧 그분의 신성과 그분께서 가져오시는 구원의 징표와 도구로 나타난다. 그분의 지상 생활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신비, 곧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구원의 사명을 수행하신다는 사실이다.
예수님 신비의 공통 특징들
->516 그리스도의 전 생애-말씀과 행동, 침묵과 고통, 존재와 표현 방식-는 성부의 ‘계시’ 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요한14,9) 하고 말씀하실 수 있었으며, 성부께서도 “이는 내 아들 내가 택한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어라.”(루카9,35) 하고 말씀하실 수 있었다. 우리 주님께서는 성부의 뜻을 이루시고자 사람이 되셨으므로(히브10,5-7 참조), 그분 신비의 사소한 모습들도 우리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우리에게 드러내 준다(1요한4,9 참조).
->517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구속’ 의 신비이다. 구속(救贖)은 무엇보다도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지만(에페1,7; 콜로1,13-14; 1베드1,18-19 참조), 이 신비는 그리스도의 전 생애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강생으로 스스로 가난해지시어 그 가난으로 우리를 오히려 부요하게 하신다(2코린8,9 참조). 그분의 숨겨진 생활에서는 순종으로(루카2,51 참조) 우리의 불순종을 보상하신다. 그분의 말씀은 듣는 사람들을 정화한다(요한15,3 참조). 그리고 그분은 치유와 구마(驅魔)로써 “우리의 허약함을 맡아 주시고 우리의 병고를 짊어지신다”(마태8,17)(이사53,4 참조)(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222)/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심으로써 마침내 우리를 의롭게 하신다(로마4,25 참조).
->518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총괄 실현’(recapitulatio)의 신비이다. 예수님께서 행하시고 말씀하시고 고통받으신 모든 것은 타락한 인간의 원초적인 소명을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하느님의 아들이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실 때, 그분께서는 자신 안에서 인간의 역사 전체를 총괄적으로 실현하시고, 우리에게 구원의 지름길을 마련해 주셨다. 그러므로 아담으로 잃은 것, 곧 하느님을 닮은 모습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되찾게 된다(성 이레네오, ‘이단 반론’, 3, 18, 1: SC 211, 342-344(PG 7, 932). 이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과의 친교를 회복시켜 주시려고 인생의 온갖 단계를 거치셨다(성 이레네오, ‘이단 반론’, 3, 18, 7: SC 211, 366(PG 7, 937). 같은 책, 2, 22, 4: SC 294, 220-222(PG 7, 784) 참조)
우리가 예수님의 신비에 참여하는 친교
->519 그리스도의 모든 풍요는 “모든 이를 위한 것이요, 모든 사람의 재산이다.”(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인간의 구원자’, 11항: AAS 71(1979), 278면 참조).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사셨다. “우리 인간과 우리의 구원을 위한”(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DS 150) 강생에서부터 “우리의 죄 때문에”(1코린15,3) 돌아가시기까지, 그리고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하여”(로마4,25) 부활하시기까지 당신 일생을 사셨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분께서는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고”(1요한2,1), “항상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항상 중개자의 일을 하신다”(히브7,25). 그분께서는 단 한 번 영원히 우리를 위하여 살고 고통받으신 그 모든 것을(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223)/
지니시고 항상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 앞에“(히브9,24) 계신다.
->520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전 생애를 통해 우리의 모범이 되신다(로마15,5; 필립2,3 참조). 그분은, 당신 제자가 되어 당신을 따르라고 우리를 초대하시는 “완전한 인간”(사목 헌장, 38항) 이시다. 당신을 낮추심으로써 우리에게 본을 보여 주셨으며(요한13,15 참조), 몸소 기도하심으로써 우리를 기도로 이끄시고(요한13,15 참조), 친히 가난한 사람이 되심으로써 우리가 가난과 박해를 자유롭게 받아들이도록 이끄신다(마태5,11-12 참조).
->521 그리스도께서는 몸소 살며 겪으신 모든 것을 우리가 당신 안에서 그대로 살게 하시고, 그분께서는 우리 안에서 그것을 살며 겪으신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바로 그분께서 당신의 강생으로 당신을 모든 사람과 어느 모로 결합시키셨다.”(사목 헌장, 22항). 우리는 그분과 하나 되게 부름 받은 사람들이다.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모범으로 당신의 육신 안에서 사신 삶에 우리를 당신 몸의 지체로서 참여하게 하신다.
우리는 예수님의 실존과 신비들을 우리 안에서 지속시키고 성취해야 합니다……그 신비들이 우리와 온 교회 안에서 모두 이루어지고 성취되도록 자주 기도해야 합니다….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우리와 온 교회에 그 신비들을 나누고 확장시키며 또 계속하고자하는 원의를 갖고 계십니다…..이 일은 우리에게 주시기로 계획하신 은총과 그 신비들을 통하여 우리 안에 이루시려는 만큼 효과를 봅니다. 이렇게 하여 그분께서는 그 신비들을 우리에게서 완성하시고자 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224)/
II.예수님의 어린 시절과 숨은 생활의 신비들
준비
->522 하느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시는 이 큰 사건을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오랜 세기 동안 이를 준비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첫 번째 계약”의(히브9,15 참조) 예식과 희생 제사, 표상과 상징들을 모두 그리스도를 향해 집중시키셨으며, 계속 출현하는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입을 통해서 그분을 예고하신다. 그 밖에도 이교인들의 마음 속에 그분께서 오시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불러일으키신다.
->523 세례자 요한은 주님의 길을 닦기 위하여(마태3,3 참조) 파견된 주님 직전의 선구자이다(사도13,24 참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예언자”(루카1,76)인 요한은 모든 예언자를 능가하는(루카7,26 참조) 마지막 예언자이며(마태11,13 참조) 복음의 시작이다(사도1,21-22; 루카16,16 참조). 그는 자기 어머니의 태중에서부터 세상에 오시는 그리스도께 인사를 드렸고(루카1,41 참조),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요한1,29) 이라고 부른 “신랑의 친구”(요한3,29)가 됨을 기뻐했다. “엘리야의 정신과 능력을 가지고”(루카1,17) 예수님에 앞서 온 그는 설교와 회개의 세례,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순교로 예수님을 증언한다(마르6,17-29 참조).
->524 교회는 매년 대림 시기 전례를 거행하면서 실제로 메시아를 기다린다. 신자들은 구세주의 첫 번째 오심에 대한 오랜(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225)/
준비에 참여함으로써 그분의 재림에 대한 열렬한 소망을 새롭게 한다(묵시22,17 참조). 교회는 ‘선구자’의 탄생과 순교를 기념하여 그의 소망과 일치한다.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합니다”(요한3,30).
성탄의 신비
->525 예수님께서는 외양간에서, 가난한 가정에서 비천하게 태어나셨다(루카2,6-7 참조). 순박한 목동들이 이 사건의 첫 증인들이다. 이 가난에서 하늘의 영광이 드러난다(루카2,8-20 참조). 교회는 이 날 밤의 영광을 끊임없이 노래한다.
동정녀 오늘 영원하신 분을 세상에 낳으시고
땅은 가까이 할 수 없는 그분께 동굴을 내드립니다.
천사들과 목동들이 그분을 찬양하고
동방 박사들은 별을 따라옵니다.
영원한 하느님, 작은 아기 당신께서
우리를 위하여 탄생하셨기 때문입니다! (Sanctus Romanus Melodus, 짧은 사이 기도(Kontakion), 10, In diem Nativitatis Christi, Prooemium: SC 110, 50)
->526 하느님 앞에서 ‘어린이와 같이 되는 것’ 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이다(마태18,3-4 참조). 이를 위해서는 자신을 낮추어야 하고(마태23,12 참조), 작은 이가 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 “하느님의 자녀”가(요한1,12 참조) 되기 위하여 “하느님에게서 나고”(요한1,13 참조), “새로 나야”(요한3,7) 한다. 성탄의 신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형성될”(갈라4,19 참조) 때 우(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226)/
리 안에서 성취된다. 예수 성탄의 신비는 이 ‘기묘한 교환’의 신비이다.
감탄하올 교환이여, 창조주께서 육신과 영혼을 취하시어 동정녀에게서 나시기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남자의 관여 없이 사람이 되셨으며, 우리를 그 신성에 참여하게 하셨도다(‘성무일도’,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제1,2저녁기도, 시편 기도 후렴 1, 표준판, 1권(바티칸1973), 385. 387면)
예수님의 어린 시절의 신비
->527 예수님의 할례는 태어난 지 여드레째 되는 날 이루어지는데(루카2,21 참조), 이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고 계약의 백성의 일원이 되는 표시이며, 율법에 속하는(갈라4,4 참조) 표시이고, 당신의 전 생애 동안 이스라엘의 예배에 참여할 자격을 얻는 표시이다. 이 표시는 ‘그리스도의 할례’, 곧 세례의 예형이다(골로2,11-13 참조).
(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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