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 24권
39장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의 차이.
그분에 의해 온전히 준비된 ‘피앗의 나라’
- 필요한 것은 이 나라에서 살 사람들뿐이다.
구원 사업과 하느님 뜻 나라에 대한 서로 다른 표현 방식..
1928년 8월 30일
1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작은 아기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는데, 몇 번이고 자꾸 껴안으시며 내게 딱 달라붙어 계실 뿐 도무지 떨어지려고 하지 않으셨다. 오! 아기이신 그분을 보는 것 - 완전한 사랑, 완전한 신뢰를 느끼게 하시는 그분을 보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지!
2 영혼은 실상 인성을 입고 계신 예수님을 보기에 그분께 큰 신뢰를 느낀다. 그분의 인성이 자기의 인성과 같으니, 두 인성이 형제들처럼 결합하여 서로 일체감을 느끼고 서로로 변모되기 때문이다.
3 그러므로 예수님의 흠숭하올 신성을 둘러싸고 있는 그분의 인성이, 인성이라는 그 베일이 신뢰를 느끼게 하는 수단으로 쓰이는 셈이다. 가련한 피조물이 이 신뢰로 말미암아 공포감을 싹 지우고, 천상 아버지의 팔에 안겨 있는 아들보다 더 친밀하게 예수님과의 사랑 속에 머물 수 있으니 말이다.
4 예수님의 사랑은 너무나 큰 나머지 피조물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정도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네 것이다. 너와 비슷하고, 너처럼 옷을 입고 있다. 내 사랑이 무척 크기에 내 인성 안에 내 왕권의 끝없는 빛을 숨기고 있다. 네가 작은 아기처럼 내 팔에 안겨 있게 하려는 것이다.”
5 그와 반대로,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당신을 통해 당신의 신성이 빛나게 하실 때면 그분의 인성은 신성의 그 끝없는 빛에 가려진다. 그러면 나는 창조주와 나 사이에 엄청난 거리가 있음을 느낀다. 그분의 찬란한 신적 엄위에 압도되어, 아무것도 아닌 나 자신의 먼지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6 그리고 어디로 가야 그분의 빛을 피해 달아날 수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 왜냐하면 그분의 빛이 없는 곳은 한 군데도 없으니까 - 나는 바로 그분 자신이신 빛 안에 잠긴 한 톨의 작은 빛 알갱이로 남아 있을 뿐이다.
- 그러나 내가 지금 또 서툴기 짝이 없는 표현을 하고 있는 듯하니, 다음으로 넘어가련다.
7 그 무렵 나의 지고한 선이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내 뜻의 나라는 내 인성 안에 완전히 준비되어 있어서 내가 바야흐로 피조물에게 내어 주려고 한다. 내가 그 기초를 닦고, 여러 가지 설비를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다.
8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간들이 작은 빛이 아닌 큰 빛으로, 큰 빛인 태양들로 장식되고 조명되어 있는데, 이 태양들은 바로 내가 너에게 드러내 보인 ‘거룩한 피앗’에 대한 진리들이고, 그 수는 이 진리들의 수와 같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다만 이 나라 안에서 살 사람들뿐이다. 모든 이가 다 살 수 있는 장소 내지 공간이 있는 것은 이 나라가 온 세상보다 훨씬 더 광대하기 때문이다.
9 내 뜻의 나라(의 도래)와 더불어 모든 것이 쇄신되리니, 창조된 당초와 같이 본연의 상태를 회복할 것이다. 이런 연유로 징벌이 필요하고, 실제로 징벌이 내릴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정의가 (하느님인) 나의 다른 속성들과 균형을 잡게 하려는 것이고, 그렇게 균형을 잡음으로써 내 뜻의 나라를 그 자체의 평화와 행복 속에 놓아두려는 것이다.
10 그러니 내가 준비해서 주고자 하는 이 위대한 선은, 수많은 징벌들 이후에 주어질 것이다. 그렇더라도 너는 놀라지 마라. 내 정의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 그리하여 일단 균형이 잡히면, 정의가 더는 성가시게 굴지 않고 사람들과의 화해를 이룰 것이다. 더욱이, 내 ‘거룩한 피앗의 나라’의 자녀들은 더 이상 내 ‘거룩한 정의’를 모욕하지 않으리니, 정의가 그들에 대한 사랑과 자비로 완전히 탈바꿈할 것이다.”
11 나중에 나는 구원 사업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행위들을 따라다녔다. 그러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덧붙여 말씀하셨다. “내 딸아, 구원 사업을 통해 드러난 나의 말투와 내 거룩한 뜻의 나라에 대해 언급할 때의 말투는 서로 상당히 달랐다. 꽤 큰 차이가 있었다.
12 사실, 구원 사업 중에는 내가 무능하고 나약하고 병든 사람들과 귀머거리와 벙어리와 소경 및 다수의 임종자들에게 맞추어 가며 말을 해야 했으므로, 그들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이 세상 사물들로 비유를 들곤 하였다,
13 그러므로 때로는 의사로서 말하면서 그들에게 약을 주었고, 때로는 아버지로서 설사 방종에 빠진 자녀들이라도 돌아오기를 기다렸고, 때로는 목자로서 길 잃은 양들을 찾아 나섰고, 때로는 심판자로서 사랑으로는 끌어당길 수 없었던 그들을 위협이나 공포로라도 끌어당기려고 애썼고, 그 밖에도 다른 많은 비유들을 동원하기도 하였다.
14 나의 이 말이 지적하는 점은, 내가 말을 건넨 이들은 나를 알지 못했고 사랑하지 않았으며 내 뜻을 실행하기는커녕 오히려 내게서 멀리 떠나 있었다는 것, 그러니 내가 그들을 찾아내어 각자에게 필요한 치료제를 주기 위해서 비유들로 그물을 쳐서 잡았다는 것이다.
15 하지만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나를 피해 달아났는지! 나는 그래서 더욱 강력히 수색 활동에 나섰고 가르침의 강도도 높였다. 많은 소경들에게 빛을 주어 그 완고한 맹목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었다.
16 이제, 보아라, 이것이 내가 내 거룩한 뜻에 대한 진리들을 - 내 거룩한 뜻의 나라의 자녀들에게 쓰일 진리들을 - 나타내 보였을 때의 말투와 얼마나 서로 다른지를! 과연 ‘피앗’에 대한 내 말투는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모두 건강한 자녀들 가운데에 있을 때의 말투와 흡사하다.
17 그들은 내 뜻에 따라 저마다 내 생명을 그들 안에 지니고 있어서 나의 지고한 가르침을 이해할 능력이 있다. 이런 이유로 나는 끝없이 넓은 범위에 걸쳐 활동하면서 태양의 비유, 천체들의 비유, 하늘의 비유 및 무한히 확장되는 신적인 활동 방식의 비유를 - 그토록 아름답기 그지없는 여러 비유들을 그들 앞에 내놓았던 것이다.
18 왜냐하면, 내 ‘거룩한 피앗’을 소유한 그들은 하늘과 천체들과 태양을 창조하신 분을 그들 안에 모시고 있어서 그분께서 그들에게 당신이 창조하신 만물과 당신의 신적 활동 방식을 본받을 힘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이 바로 자기네 창조주의 모방자가 될 것이다.
19 내가 내 피앗에 대한 진리들을 드러낼 때에, 구원 사업에서와는 달리 그토록 소상하게 언급한 것은 그 때문이다. 구원 사업의 비유들은 인간적이고 따라서 유한한 사물들이 내포되는데, 내가 상세하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소재가 없었던 것이다.
20 그 반면 내 뜻에 관한 비유들로 말하자면 신적인 것에 속하는 것들이어서 아무리 말해도 말할 것이 무진장 많은 소재들이 있다. 사실, 누가 태양 빛이 미치는 광대한 범위와 그 한없는 열의 강도를 측정할 수 있느냐? 아무도 그럴 수 없다. 또 누가 일찍이 하늘에 경계선을 정하고, 내 신적 활동의 다양성에 한계를 둔 적이 있었느냐?
21 오! 내가 내 ‘거룩한 피앗’에 대한 진리들을 드러내 보이면서 얼마나 많은 지혜와 사랑과 은총과 빛을 놓아두었는지를 네가 알았다면, 너무나 큰 기쁨의 바다에 잠겨 익사할 지경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네 예수의 이 일이 알려지기를 열망해 마지않을 것이다. 헤아릴 수 없도록 큰 가치를 지닌 이 풍성한 일이 영광스럽게 되고, 그 유익한 효과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지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도서 구입처: 가톨릭출판사 (catholicbook.kr)
(천상의 책 24권 / 루이사피카레타 저 / 요한 실비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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