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난의 시간들

[수난의 시간들25시간-부록1] 이 기도의 가치와 효과 및 예수님의 약속(p368-386)

Skyblue fiat 2022. 9. 5. 21:1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시간들


부록  (p368-386) 


이 기도의 가치와 효과 및 예수님의 약속

 


다음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시간들』을 집필한 루이사 피카레타가 이 책을 최초로 출판한 성 안니발레 마리아 디 프란차 사제에게 보낸 편지에 동봉한 글이다.

 

 성인은 이 글을 그 자신이 출판한 책의 머리말’ 속에 게재했거니와이는 저자 루이사가 자신의 영적 자전적 일기인 『천상의 책』(총 36)에서 발췌하여 별도로 옮겨 적은 것으로서우리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바치는 이 기도의 가치와 효과 및 예수님의 약속 등에 대한 것이다.(역주)

 

 

1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있으면서 우리 주님의 수난에 대하여 묵상하고 있노라니 그분께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내 수난에 대하여 끊임없이 묵상하며 가슴 아파하고 나를 측은히 여기는 사람은 내 마음을 무척 기쁘게 하기에 내가 수난의 전 과정을 통해 겪었던 모든 것에 대해서 위로를 받는 느낌이 된다.

 그리고 언제나 그것을 묵상함으로 인해 영혼은 늘 음식을 마련할 수 있게 되는데이 음식에는 여러 가지 양념과 맛이 있어서 다양한 효과를 낸다.

 

 이를테면내 수난 중에 저들은 밧줄과 사슬로 나를 묶었지만 이 영혼은 나를 풀어 자유롭게 해 주고저들은 나를 업신여기며 침을 뱉고 모욕했지만 이 영혼은 내게 감사하며 침을 깨끗이 씻어주고 나를 공경한다.

 또한저들은 내게 가시관을 씌우며 왕이라고 놀리고 내 입에 쓸개즙을 갖다 대며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이 영혼은 나의 모든 고통을 묵상하면서 내게 영광과 영예의 관을 씌워 자기의 왕으로 공경하고내 입 안 가득 단맛이 퍼지도록 더없이 맛있는 음식을 먹여 준다.

 

 이 음식은 바로 나 자신의 업적에 대한 기억이거니와그리고 나서 이 영혼은 내게 박힌 못을 뽑고 십자가에서 나를 빼내어 자기의 마음 안에서 부활하게 한다그리고 그 영혼이 그렇게 할 때마다 나는 그에게 은총의 새 생명을 상급으로 준다.

 그런 영혼이 나의 음식이고 나 역시 그의 지속적인 음식이 되는 것이다따라서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끊임없이 내 수난에 대하여 묵상하는 일이다.”

 

(『천상의 책』 제7권 63, 1906년 11월 9)

 

 

2 … 내가 내 자애로우신 엄마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을 때 예수님께서 해 주신 말씀도 여기에 덧붙여 보면 이렇다.

 “딸아내 사랑하올 엄마는 내 수난에 대한 묵상을 그치신 적이 없었다이 거듭된 묵상에 의해서 그분 전체가 완전히 나로 충만하셨다.

 내 수난을 거듭 생각하는 영혼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이 묵상에 의해서 나로 충만한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11권 49, 1913년 3월 24)

 

 

3딸아내 수난에 대해서 항상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마음 안에 샘을 형성하고 있어서이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 샘도 더욱 확장된다그리고 샘솟는 물이 사람들에게 공동으로 쓰이는 것과 같이이 마음의 샘도 그 사람 자신의 선익과 나의 영광과 다른 사람들의 선익을 위해 쓰인다.” 

 “딸아네가 이 시간들을 묵상하며 기도할 때나는 이를 너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내가 행하는 것으로 여긴다그러므로 마치 내가 고통을 받고 있는 것처럼 나의 공로와 같은 공로를 준다.

 이와 같이 이 기도를 바치는 이들에게도 그 지향에 따라 같은 효과를 거두게 하겠다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그렇게 해 주리니내가 이보다 더 큰 상급을 줄 수 없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그들이 내 수난의 시간들을 기도한 횟수만큼 사랑과 기쁨의 불화살을 쏘면서 내 앞에 자리하게 하겠고 그들 역시 내게 그렇게 할 것이다모든 복된 이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참으로 달콤한 황홀이 될 것이다!”

(11권 51, 1913년 4월 10)

 

 

(교회에는)… 대사(大赦)가… 붙어 있는 기도들이 많이 있는데 이 기도에는 어째서 그것이 없는지 이를 바치는 이들은 얻는 것이 없지 않겠는가하며 의아해하자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매우 다정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대사가 붙어 있는 기도를 바침으로서 사람들은 하나의 대사를 얻는다그 반면에, ‘수난의 시간들은 바로 나 자신의 기도요 보속이며 온통 사랑이기 때문에 내 성심 깊은 데서 솟아난다.

 내가 너와 하나 되어 이 기도를 바치면서 얼마나 여러 번 세상에 내릴 징벌을 은총으로 바꾸곤 했는지너 혹시 잊어버린 것 아니냐?

 그토록 내 마음을 흐뭇하게 해 주는 기도인 만큼나는 이 기도를 바치는 사람에게 하나의 대사가 아니라헤아릴 수 없도록 무한한 가치의 부를 지닌 한 움큼의 사랑을 준다.”

(11권 59, 1913년 9월 6)

 

 

5 『수난의 시간들』을 쓰면서 혼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 복된 수난의 시간들을 종이에 옮겨 적는다는 것이 내게는 기막힌 희생이다.

 특히오직 예수님과 나 사이에서만 일어난 어떤 내적 행위들은 글로 쓰기가 여간 어렵지 않으니이 희생에 대해서 그분께서는 내게 어떤 상급을 주실까?”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감미롭고 다정한 음성을 들려주시면서 딸아수난의 시간들을 쓴 상급으로네가 쓴 낱말 하나하나에 대해서 한 영혼을한 번의 입맞춤 – 한 영혼을 네게 주마.” 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래서, “제 사랑이시여그건 제게 주실 상급이겠지요하지만 이 기도를 바치는 다른 이들에게는 무엇을 주시렵니까?” 하고 여쭈었다.

 

 예수님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이 수난의 시간들의 효과는 사람들이 나와 어느 정도로 긴밀히 일치하여 바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므로 그들이 나와 함께나 자신의 뜻으로 이 기도를 바친다면그들에게도 역시 발음하는 낱말 하나하나에 대해서 한 영혼을 주겠다또한나의 뜻과 하나 되어 이 기도를 바침으로써 그들은 나의 의지 안에 숨어들게 된다.

 

 따라서 활동은 나의 의지가 하게 되므로 단 하나의 낱말로도 내가 원하는 모든 선을 낳을 수 있다그것도 네가 이 기도를 바칠 때마다 그렇게 할 작정이다.” … 이 시간들은 모든 기도 중에서 가장 고귀한 기도이다.

 내가 지상생활 동안 행했던 일과 지극히 거룩한 성사 안에서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일을 되풀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니 이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하는 소리가 들리면나는 거기서 나 자신의 음성과 기도를 듣게 된다.

 기도를 바치는 사람의 영혼 안에서 모든 이의 선익을 갈망하며 모든 이를 위하여 보속하고 있는 나의 뜻을 보게 되고그리하여 그 영혼이 행하고 있는 바를 나도 그 안에서 할 수 있기 위하여 그에게로 거처를 옮기는 나 자신을 느낀다.

 

 오도시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이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바친다면 내 마음에 참으로 큰 기쁨이 일 것이다!도시마다 나 자신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 테니 말이다!

 그러면 이 시대에 몹시 분노하고 있는 나의 정의가 부분적으로나마 그 노여움을 풀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덧붙여 보면어느 날 나는 천상 엄마께서 예수님을 무덤에 안장하시는 시간(곧 24시간’) 기도를 바치면서 극심한 비탄에 잠기신 어머니를 동정하며 끝까지 곁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 시간을 묵상할 때마다 늘 그렇게 하지는 않았고 간혹 그렇게 했을 뿐이다그런데 앞으로도 늘 그렇게 해야 할지 어떨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노라니복되신 예수님께서……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나는 네가 그것을 빠뜨리지 않기 바란다내 엄마를 기억하면서 나에 대한 사랑으로 언제나 그렇게 하여라네가 그렇게 할 때마다 내 엄마는 몸소 세상에 계시면서 당신 삶을 다시 살고 계시는 것처럼 느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어머니께서 지상생활 동안 내게 주신 영광과 사랑을 받으시게 된다그리고 나는 내 엄마가 다시 세상에 계시면서 어머니다우신 자상함과 사랑과 모든 영광을 내게 주시는 것처럼 느낀다따라서 나는 너를 어머니로 여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나를 껴안으시면서 아주 부드럽게 내 엄마엄마.” 하셨고또한 자애로우신 엄마께서 이 시간에 행하시고 겪으셨던 모든 것을 내게 속삭여 주셨다그래서 나는 엄마를 따라 함께 하였다그때부터 예수님 은총의 도움으로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그렇게 하였다.

(11권 79, 1914년 10월 0)

 

6 … 딸아네가 내 수난의 시간들을 반복하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내 기쁨이 얼마나 큰지 네가 알면 참 좋겠다게다가 너도 늘 이 기도를 반복하다보면 기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사실내 성인들은 내 수난을 묵상하면서 내가 얼마나 극심한 고난을 받았는지를 깨달았고너무나 측은해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였으며내 고통에 대한 사랑으로 온 몸이 불타는 듯한 체험을 하기도 하였다그러나 그것은 이 기도처럼 순서에 따라 지속적으로 반복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너야말로 내 생애와 내가 겪은 것의 편린(片鱗)들을 시시각각 너 자신 안에 보존함으로써 이리도 크고 특별한 기쁨을 내게 주는 첫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너에게 나는 매우 강하게 끌림을 느끼기에 시시각각 그것을 음식으로 주고같은 음식을 너와 함께 먹으며네가 하는 일을 함께 한다하지만 내가 너에게 새로운 빛과 새로운 은총으로 풍부하게 보답해 주리라는 점도 알아 두어라.

 네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사람들이 땅에서 내 수난의 시간들을 바칠 때마다내가 하늘에 있는 너를 늘 새로운 빛과 영광으로 옷 입혀 줄 작정이다.”

(11권 81, 1914년 11월 4)

 

7 늘 하듯이 수난의 시간들’(에 대한 묵상)을 계속하고 있노라니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세상은 내 수난을 초래한 행위들을 끊임없이 새로이 하고 있다.

 나의 무한성은 인간 안팎의 모든 것을 휩싸고 있기에 이들과의 접촉으로 말미암아 내가 수난 중에 겪은 것들곧 못질과 가시관과 채찍질과 멸시와 침 뱉음과 여타 모든 것을 다시 겪지 않을 수 없으며그것도 그때보다 한층 더 심하게 겪고 있다.

 그런데 이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실행하고 있는 영혼들과 접촉하면 못들이 뽑혀지고 가시들이 흩어져 사라지며 상처들이 아물고 침이 다 닦인 느낌이 든다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내게 저지르는 악이 선으로 보상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나는 그들과의 접촉이 나를 해치기는커녕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 수난의 시간들로 기도하는 사람들을 언제나 더욱더 의지하게 된다.”

 이 밖에도 복되신 예수님은 이 수난의 시간들에 대하여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영혼이 이 시간들을 실행하면 나의 생각과 보속과 기도와 열망과 애정심지어 내 가장 내적인 기질까지도 자기의 것으로 삼게 된다그리하여 하늘과 땅 사이에 우뚝 서서 나와 같은 사명을 수행한다.

 공동 구속자로서나와 함께 하느님당신 뜻을 이루려고 제가 왔으니저를 보내 주십시오(Ecce ego, mitte me).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당신께 보상하며 응답하고모든 사람의 선익을 위하여 당신께 간구하나이다.’ 하고 말한다.”

(11권 82, 1914년 11월 6)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있노라니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온통 빛에 휩싸여 나타나셨다이 빛은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인성 안에서 나오는 것으로서 매혹적이고 황홀한 모습이 되도록 그분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었다놀라움에 잠긴 나에게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내가 겪은 아픔마다흘린 피 방울방울마다각각의 상처마다기도와 말과 행위와 발걸음 등등마다 내 인성 안에 빛을 낳았으니이 빛이 천상의 모든 복된 이들을 황홀하게 할 정도로 나를 아름답게 꾸몄다.

 이제는 영혼이 내 수난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따뜻한 동정심을 표현하며 보속과 또 다른 행위들을 할 때마다내 인성으로부터 빛을 끌어내어 나와 비슷한 모습으로 미화된다.

 그러므로 내 수난에 대한 생각을 하나 더 할 때마다 그것이 그에게 영원한 기쁨을 가져올 또 하나의 이 된다.”

(11권 121, 1916년 4월 23)

 

 

(p377-386)


9 ‘수난의 시간들’을 묵상하고 있노라니 복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내가 지상생활을 하는 동안 수천수만의 천사들이 내 인성을 수행하면서 내가 행하는 모든 것을 모아들였다. 즉, 나의 발걸음과 활동과 말을, 심지어 나의 탄식과 고통과 내 핏방울들을 - 요컨대 모든 것을 다 모아들였던 것이다.

 그들은 나를 보호할 책임을 맡고 나를 흠숭하며 내 모든 지시에 따르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들이었으니, 내가 행하는 모든 것을 아버지께 가져가려고 하늘로 오르락내리락 하곤 하였다.

 그런데 이 천사들은 지금도 특별한 임무를 띠고 있어서, 어떤 사람이 내 생애와 내 수난과 내 피와 내 상처와 내 기도를 기억하고 있으면 그 사람 주위를 에워싸러 온다.

 그의 말과 기도, 나에 대한 동정심, 그의 눈물과 예물을 모아서 나의 것들과 합하여 내 어좌 앞으로 가져옴으로써 나 자신이 지상에서 보낸 생애의 영광을 새로이 하려는 것이다. 이 천사들은 매우 큰 기쁨에 싸여 그 사람의 기도소리를 들으려고 공손하게 기다리며 함께 기도한다.

 

 그러므로 이 ‘시간들’을 기도하는 사람은 마음을 집중하여 경건하게 기도해야 한다. 천사들이 그를 따라 하려고 그의 입술에 주의를 쏟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고 나서 그분은 이렇게 덧붙이셨다.

 “이 ‘시간들’은 사람들에게서 쓰디쓴 괴로움을 많이도 받고 있는 나에게 달콤한 음료 몇 모금을 주는 것과 같다. 그러나 내가 받는 저 쓰디쓴 물의 엄청난 양에 비하면 이 단물은 너무나 적다. 그러니까 이 기도를 더 널리 전파해야한다. 더 널리!”

(제11권 132장, 1916년 10월 13일)

 

 

10 “… 나는 네가 내 고통과 내 기도와 나 자신 전체를 네 것으로 삼기 바란다. 그러면 내가 네 안에서 또 하나의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시대에는 크나큰 보상이 요구되는데, 나를 자기 자신으로 삼은 사람만이 그것을 내게 줄 수 있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서 보신 것, 곧 영광과 기쁨과 사랑과 모든 이의 선익을 위한 전적이고 완전한 보상을 이 영혼들 안에서도 보고 싶다. 나와 엇비슷한, 같은 수의 다른 예수들을 말이다.

 그러므로 너는 ‘수난의 시간들’ 중 매시간 기도를 바칠 때마다 각각의 행위와 모든 것 속에서 이 지향을 반복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보상을 얻지 못한다면, 아, 이 세상은 끝장이 나고 말 것이다! 징벌에 징벌이 억수 같이 쏟아질 테니 말이다. 아아, 딸아! 딸아!”

(제11권 138장, 1916년 12월 9일)

 

 

11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있다가 나 자신의 바깥에 나가 있음을 알았는데,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피를 뚝뚝 흘리시며 끔찍한 가시관을 쓰고 계셨다. 눈을 찌르는 가시들 사이로 간신히 나를 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딸아, 이 세상이 마음의 평형을 잃게 된 것은 내 수난에 대한 기억을 잃었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세상은 자기를 비추어 줄 내 수난의 빛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이 빛을 찾아내었더라면 나의 사랑을 알려 주고 영혼들을 구하는 것이 내게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게 했는지를 알려 주었을 것이니, 세상이 자기를 참으로 사랑한 분에 대한 사랑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내 수난의 빛이 세상을 인도하면서 모든 위험에서 지켜 주었을 것이다.

 나약함속에서, 세상은 자기를 떠받쳐 주었을 내 수난의 힘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참을성 없음속에서, 세상은 자기에게 평온과 고요한 자기 포기의 정신을 불어넣었을 내 참을성의 모범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찾아내었더라면 내 참을성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며 자기 지배를 마땅한 의무로 여겼을 것이다.

 고통속에서, 세상은 고통을 지탱해 주며 고통에 대한 사랑을 불어넣어 주었을 하느님 고통의 위로를 찾아내지 못하였다.

 죄속에서, 세상은 그것과 마주 서서 그 안에 죄에 대한 증오를 불어넣었을 나의 거룩함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아! 인간은 이렇듯 모든 것을 악용했다. 모든 것 속에서 자기를 도울 수 있는 분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세상이 평형을 잃은 것이다.”

(제11권 143장, 1917년 2월 2일)

 

 

12 … 그 뒤 나는 나 자신의 바깥에 나가 있었다. 연옥 영혼들과 성인들로 보이는 많은 영혼들 가운데 있었는데 그들은 내게 말을 걸면서 얼마 전에 죽은, 내가 아는 한 사람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그는 이 ‘수난의 시간들’의 날인을 지니지 않고 연옥에 들어오는 영혼이 하나도 없음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영혼들이 이 ‘시간들’의 호위와 도움을 받으며 안전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까요.

 또한 이 ‘수난의 시간들’의 동반을 받지 않고 천국으로 날아드는 영혼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이 ‘시간들’은 천국에서 땅으로, 또 연옥과 하늘에까지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이슬이랍니다.”

 

 나중에 나 자신 안으로 돌아오자 다정하신 예수님이 계시기에 그것이 사실이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이렇게 대답해 주셨다.

 “이 ‘시간들’은 우주의 질서이다. 그러기에 하늘과 땅을 조화롭게 하고, 나로 하여금 세상을 멸하지 못하게 한다. 나의 피와 상처와 사랑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이, 모든 이를 구원하기 위하여 두루 흘러가고 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할 때에 나는 영혼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나의 피와 상처와 열망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곧 내 생명이 거듭 재현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 이 ‘시간들’에 의해서가 아니라면 사람이 어찌 모든 선을 얻어 낼 수 있겠느냐? 네가 의아해하는 까닭이 무엇이냐? 이 일은 너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다. 너는 유한하고 나약한 도구 노릇을 해 왔을 뿐이다.”

(제12권 10장, 1917년 5월 16일)

 

 

13 내가 어떤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면서 임종 중인 한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을 때에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왜 걱정하고 있느냐? 내 수난에 대한 낱말마다, 각각의 생각과 연민과 보속 및 내 고통에 대한 기억마다, 그 모든 것이 나와 이 영혼 사이에 열리는 통신 전선들이 된다는 것을 모른단 말이냐?

 그것이 그만큼 많은 수의 다양한 아름다움으로 그녀를 단장한다는 것을? 이 영혼이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실천했으니, 나는 내 피를 옷처럼 입혀 주고 내 상처로 단장하여 내 수난의 딸로 받아들이겠다.

 이 꽃은 너의 마음 안에서 자라난 꽃이다. 그러기에 내가 이를 축복하여, 내가 각별히 사랑하는 꽃으로 내 마음 안에 받아들이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자 내 가슴에서 꽃 한 송이가 나와서 그분께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제12권 55장, 1918년 7월 12일)

 

 

14 다정하신 예수님의 수난에 대해 생각하고 있노라니 그분께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영혼이 내 수난을 생각할 때마다, 내가 겪은 것을 기억하거나 나를 측은히 여길 때마다, 내 고통이 그 영혼에게 새로이 적용된다. 내 피가 솟아나서 그를 잠그고, 내 상처들이 그를 치유하거나 단장한다.

 그가 상처를 입고 있으면 치유해 주고 건강하면 아름답게 단장해 주는 것이니, 내 모든 공로가 그를 부유하게 한다. 그러니까 영혼은 매우 놀라운 장사를 하는 셈이다. 내가 행했고 겪었던 모든 것을 판매대에 놓아 이윤을 갑절로 남기니 말이다.

 사실, 내가 행하고 겪었던 모든 것은, 태양이 지구에 빛과 열을 끊임없이 주고 있는 것과 같이, 지속적으로 사람에게 베풀어지고있다. 나의 업적은 고갈되는 법이 없다.

 

 영혼이 원하기만 하면 원할 때마다 내 생명의 열매를 받는다. 그러므로 내 수난을 스무 번, 백 번, 천 번 기억하면, 그만큼 더 많은 효과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이를 소중한 보물로 여기는 사람은 얼마나 적은지!

 

 내 수난의 모든 선익에도 불구하고 허약한 영혼들과 소경과 귀머거리와 절름발이들을 ---- 민망스럽도록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영혼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내 수난이 잊혀 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 고통과 상처와 피는 허약함을 없애는 힘이요, 소경에게 시력을 주는 빛이며, 혀를 풀고 청각을 열어 주는 능력이고, 절름발이를 똑바로 걷게 하는 수단이며, 죽은 사람을 일으키는 생명이다. 온 인류에게 필요한 모든 치료제가 내 생애와 수난 안에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이 약을 무시하고 이 치료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의 모든 구원 사업에도 불구하고, 마치 불치의 폐병에 걸리기나 한 듯 죽어 가는 인간의 처지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을 가장 비통하게 하는 것은, 교의나 신학 이론이나 역사 따위의 탐구에 매진하는 교인들이 정작 내 수난에 대해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음을 보는 일이다.

 그러므로 내 수난은 번번이 교회에서 쫓겨나고, 사제들의 입에서 추방당하곤 한다. 사제들의 말에 빛이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니, 그들의 말을 들은 이들은 전보다 더 굶주린 상태로 있게 되는 것이다.” …

(제13권 26장, 1921년 10월 21일)

 

 

15 … “딸아, 나의 수난에 대해 생각하면서 고통 중에 있는 나를 측은히 여기는 것은 매우 내 마음에 드는 일이다.

 나 혼자 고통을 겪지 않고, 피조물이 - 내 고통의 원인이며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피조물이 나와 함께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와 함께 있음을 느끼기에, 고통이 내게 더욱 감미로운 것이 되기도 한다.

 홀로 외롭게 고통을 겪는 것은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홀로 고립되어 있는 나 자신을 보면, 내 고통을 맡길 사람도, 이 고통이 지닌 열매를 줄 사람도 없어서, 고통과 사랑의 바다에 빠져 죽어가는 것 같다.

 

 그러므로 나는 내 사랑이 이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질 때 너에게 온다. 네 안에서 고통을 겪는 것이다. 네가 나와 함께 내 수난 고통을 현행적인 것으로 겪으면서 내가 내 인성으로 행하고 겪었던 모든 것을 반복하게 하려는 것이다.

 나의 수난을 현행적으로 반복하는 것은 다만 내 고통을 생각하며 나를 측은히 여기는 것과는 그 성질이 다르다. 먼젓번 것은 내 고통을 거듭 겪고자 나를 대신하는 내 생명의 행위이기에, 내가 신적 생명의 효과와 가치를 돌려받는 느낌이 든다.

 반면에 내 고통을 생각하며 나를 측은히 여기는 것은 나로 하여금 피조물과 함께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한데, 너는 아느냐? 내가 어떤 사람 안에서 내 수난 고통을 현행적으로 반복할 수 있는지를? 바로 내 뜻을 생명의 중심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 안에서다.

 나의 뜻만이 연속적인 행위들이 뒤따르지 않는 단일한 행위이다. 이 단일한 행위는 결코 변동이 없는 하나의 점에 고정된 듯 있고, 그 점은 곧 영원이다. 그러니 단일하면서도 원초적이고 끝없는 행위이다. 그 둘레가 무한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거기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만물과 만인을 단 하나의 포옹으로 싸안는다. 그러므로 하느님에게는 창조사업과 구원사업과 성화사업이 단 하나의 행위이다. 그리고 그것이 단일한 행위이기 때문에 모든 행위들을 오직 하나의 행위인 것처럼 그 자신의 것으로 삼을 능력이 있다.

 나의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은 바로 그 단일한 행위의 소유자이다. 그러니 내 수난 고통의 현장에 있는 것처럼 동참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제18권 9장, 1925년 10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