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난의 시간들

[부록2] 다음 주제들에 대한 텍스트 찾아 읽기

Skyblue fiat 2023. 7. 10. 18:13

 

수난의 시간들

부 록 2

 

다음 주제들에 대한 텍스트 찾아 읽기

 

1. 예수님의 거룩한 수난

2.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의 비탄과 고통

3. 수난 24시간의 각 시간에 대하여

 

1. 예수님의 거룩한 수난

 

예수님께서 (루이사의) 책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처럼, 우리 주님의 거룩한 수난은 예수님의 신성이 그분의 인성에 가하신 신적인 수난이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이해력을 뛰어넘어 이 수난(의 신비를) 루이사에게 계시하심으로써, 육화하신 말씀이 인류 구원을 위하여 겪으신 전대미문의 고난을 알고 관상하게 하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신 것이다.

사실 예수님의 거룩한 수난은 그분의 생애 마지막 날의 육체적 고난 외에도 인간의 배은망덕과 배척으로 인한 정신적 고난을 다 포괄하는 것이기에, 육화의 첫 순간부터 전 생애에 걸쳐 계속된 수난이다.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 육화하신 말씀에게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그토록 고난을 겪게 하신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셨으므로, (수난의 신비를) 충분히 깨닫고 거기에 동참하셨다.(원주)

 

1) 예수님의 전 생애에 걸친 내적 수난

 

천상의 책 제1281, 191924: 피조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인 예수님의 전 생애에 걸친 내적 수난.

 

1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있었으나 내 정신이 사흘 가량 하느님 안에 녹아들어 있는 느낌이었다. 인자하신 예수님께서 여러 차례 지극히 거룩하신 당신 인성 안으로 나를 끌어당기셨으니, 내가 신성의 끝없는 바다 속에 잠겨 있었던 것이다.

 

2 , 얼마나 많은 것을 볼 수 있던지! 그분의 인성 안에서 신성이 행하신 모든 일을 얼마나 똑똑히 볼 수 있던지! 예수님은 매우 자주 나의 경탄을 중단시키시며 이렇게 말씀하시곤 하셨다.

 

3 딸아, 내가 얼마나 넘치는 사랑으로 피조물을 사랑했는지 보이느냐? 나의 신성은 피조물에게 인류 구속의 사명을 맡기기에는 너무나 철저히 마음을 쓰고 있었으므로 나 자신으로 하여금 수난을 겪게 하였다.

 

4 피조물은, 창조의 빛 속에 태어났고 또 태어날 모든 피조물의 수만큼 많은 죽음들 및 그들이 실총(失寵)의 결과를 낳으며 저지르는 사죄(死罪)들의 수만큼 많은 죽음들을 나로 하여금 치르게 할 능력이 없었다. 그러나 나의 하느님다운 신성은 피조물개개의 생명에 대해서 생명을, 죽어 마땅한 죄를 통해 그들이 자초하는 개개의 죽음에 대해서 생명을 요구했던 것이다.

 

5 나 자신의 신성이 아니었다면, 누가 나에게 그토록 많은 죽음을 줄 정도로 강력할 수 있었겠느냐? 나 자신의 신성이 아니었다면, 누가 그토록 수도 없이 죽어가는 나를 지켜볼 힘과 사랑과 항구함이 있었겠느냐? 피조물이었다면 지쳐 떨어져서 지레 포기해 버리지 않았겠느냐?

 

6 게다가 내 신성이 행한 이 일은 나중에 가서야 시작되었으리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어머니 태중에 잉태되자마자 시작된 일이었다. 그러기에 내 엄마는 내가 당신 태중에 있는 동안에도 번번이 나의 고통을 알고 계셨고 나와 함께 죽음을 통감하며 고난을 겪으셨다.

 

7 그러므로 어머니의 태중에 있었을 때부터 나의 신성은 사랑 깊은 사형 집행자의 역할을 떠맡고 있었다. 사랑 깊은 집행자였기 때문에 요구가 더욱 많고 추호의 가치도 없었다. 어찌나 그러한지 내 신음하는 인성에 가시 하나, 못 하나도 면해 주지 않았다.

 

8 한데 그것은 수난 동안 인간이 내게 가한 가시나 못, 채찍의 타격과는 다른 것이었다. 이러한 것들은 나를 괴롭힌 수만큼 고정되어 있었지만, 내 신성이 내게 준 것들은 개개의 죄에 따라 그 수가 오히려 불어나고 있었다.

 

9 인간의 악한 생각들의 수만큼 가시의 수가 불어났고, 부당한 일들의 수만큼 못이, 쾌락에 떨어지는 수만큼 채찍질이, 여러 종류의 숱한 죄들의 수만큼 고통이 증가되고 있었다. 고통의 바다, 가시와 못과 셀 수 없이 많은 매질의 바다였다.

 

10 내 신성이 나에게 가한 그 수난에 비하면, 인간이 내 생애의 막바지에 끼친 수난은 내 신성이 나의 전 생애에 걸쳐 겪게 한 것의 그림자요, 표상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11 이것이 내가 영혼들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까닭이다. 그들은 나 자신을 대가로 치른 생명들이며, 피조물의 정신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들인 것이다. 그런즉 너는 내 신성 안으로 들어와서 내가 겪은 모든 고통을 보고 너 자신의 손으로 만져 보아라.

 

12 나는 어떻게 그 안에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각 피조물에 대해 정의의 어좌를 세우시는 하느님의 무한성 안에 있었다. 다정하신 예수님은 그들의 각 행위에 대응하여 고통과 죽음을 치르며 모든 벌을 받으셔야 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순한 어린양처럼 하느님의 손에 죽임을 당하셨다. 다시 살아나서 더 많은 죽음들을 겪으시기 위함이었다.

 

13 , 하느님! 하느님 맙소사! 얼마나 가슴 아픈 고통인가!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 죽고, 한층 더 괴로운 죽음들을 겪기 위해 다시 일어난다는 것은!

 

14 나는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시는 것을 보면서 죽어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를 이다지도 사랑하시는 분께 단 한 번의 죽음이라도 면하게 해 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지곤 하였다.

 

15 아무튼 내가 참으로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홀로 하느님의 신성만이 내 다정하신 예수님께 그토록 많은 고통을 겪게 하실 수 있었다는 점과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고통과 무한한 사랑으로 미치도록 인간을 사랑하신 공로를 주장하실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처럼 영웅적인 희생으로 우리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하느님 말고는 어떤 천사에게도 인간에게도 없었던 것이다.

 

16 하지만 누가 그 모든 것을 다 말할 수 있으랴? 나의 하찮은 정신은 빛과 사랑과 고통의 끝없는 바다 위에 떠 있으면서도 마치 가라앉아 있는 것처럼 헤엄쳐 나갈 방법을 모르고 있었다.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내 정신이 그토록 깊이 잠겨 있지 않아도 되는 당신의 지존하신 인성의 작은 바다 속으로 끌어당겨 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어떤 경계도 볼 수 없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17 그런 뒤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덧붙여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딸아, 내 생명의 갓난아기야, 내 뜻 안으로 오너라. 와서 네가 대신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보아라. 나의 수많은 행위들이 아직 피조물에 의해 대행되지 않은 채 보류되어 있으니 말이다.

 

18 나의 뜻이 시계의 첫 톱니바퀴처럼 네 안에 있어야 한다. 이것이 움직이면 다른 바퀴들도 따라 움직인다. 그러면 시계가 시간과 분을 알려 준다. 모든 조화가 첫 바퀴의 움직임 안에 있으니, 첫 바퀴가 움직이지 않으면 시계가 멈추고 마는 것이다.

19 그러므로 나의 뜻이 네 내면의 첫 바퀴가 되어, 이것이 너의 생각과 마음과 소망 따위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해야 한다. 그런데 내 뜻은 나의 존재와 창조 사업 및 모든 것의 중심 바퀴이기에, 이 중심에서 나오는 너의 행위는 인간의 행위들을 같은 수만큼 대행하게 될 것이다.

 

20 너의 그 행위가 중심 행위로서 모든 이의 행위들 안에 불어나면서 모든 이를 대신하여 그들의 행위들을 나의 옥좌 앞에 갖다 놓으러 올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대신 행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주의를 기울여라. 너의 사명은 위대하고 완전히 신적인 것이다.

 

 

2) 잉태의 순간에 모든 영혼들과 그들의 죽음도 잉태하신 예수님

 

천상의 책 제1294, 1919318: 잉태의 순간에 모든 영혼들을 잉태하시고 그들의 고통과 죽음도 다 잉태하신 예수님.

 

1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있는데,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지극히 거룩하신 당신 의지의 무한성 안으로 나를 끌어당기셨고, 이 안에서 천상 엄마의 태중에 일어난 그분의 잉태를 마치 현행 중인 것처럼 보여 주셨다. , 하느님! 얼마나 큰 사랑의 심연인지!

 

2 다정하신 예수님은, 내 뜻의 딸아, 하시며 말씀을 시작하셨다. 와서 내 작은 인성이 잉태되는 동안 내 신성으로부터 받은 최초의 죽음과 고통에 참여하여라. 나는 잉태되면서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모든 영혼들을 나와 함께 나 자신의 생명으로 잉태하였고, 또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내가 겪어야 할 고통과 죽음도 잉태하였다.

 

3 이처럼 모든 것을, 곧 영혼들과 그들 각자가 치러야 할 고통과 죽음도 내 안에 전부 통합해 넣었으니, 그것은 아버지께 이렇게 말씀드리기 위해서였다. 아버지, 피조물을 보시지 말고 오직 저만 보십시오.

 

4 제 안에 모든 사람이 보이실 것입니다. 제가 그 모두를 위해 보속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만큼 많은 고통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각 사람을 위해 죽기를 원하십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모든 이에게 생명을 주시기만 한다면 저는 무엇이든지 다 받아들이겠습니다.

 

5 그러므로 나에게 그토록 많은 죽음과 고통을 주려면 하느님의 능력과 뜻이 필요했고, 내가 그것을 치르게 하기 위해서도 이 능력과 뜻이 필요했다. 그런데 나의 뜻 안에서는 모든 영혼과 모든 것이 현행 중에 있다.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추상적이거나 지향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6 실제로 내가 그들 모두를 나와 하나가 되게 했고, 그들이 나와 함께 바로 나의 생명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니 실제로 내가 그들 모두를 위해서 죽었고 각자의 고통을 다 겪었던 것이다.

 

7 사실 그것은 내 전능의 기적과 내 무한한 뜻의 놀라운 일을 요하는 일이었다. 내 뜻이 없었다면 나의 인성이 모든 영혼들을 찾아내어 다 싸안을 수 없었을 것이고, 그토록 자주 죽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8 그러므로 나의 작은 인성은 잉태된 순간부터 고통과 죽음을 번갈아 겪기 시작하였다. 모든 영혼들이 끝없는 바다에 잠기듯 내 안에 잠겨, 내 지체들의 지체들, 내 피의 피, 내 심장의 심장을 이루고 있었다.

 

9 내 인성의 첫째 자리를 차지하신 내 엄마께서 얼마나 여러 번 나의 고통과 죽음을 느끼시며 나와 함께 죽곤 하셨는지! 내 엄마의 사랑에서 내 사랑의 메아리를 느끼는 것이 내게는 또 얼마나 즐거운 일이었는지!

 

10 이는 심오한 신비들이니, 인간의 지성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어서 이 신비들 안에서 길을 잃은 모습이 된다. 그러니 너는 내 뜻 안으로 들어오너라. 와서 잉태의 순간부터 내가 겪었던 죽음과 고통에 참여하여라. 그래야 내가 지금 하는 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1 그러자 어떻게 들어갔는지 설명할 수 없으나 내가 여왕이신 엄마의 태중에 있었고, 여기에서 작디작은 아기 예수님을 뵐 수 있었다. 작디작지만 아기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당신 안에 담고 계셨다.

 

12 그분의 심장에서 내 심장 속으로 빛살 하나가 확 들어왔는데 나를 꿰뚫으며 들어오는 순간 죽음을 주는 듯 했고 그것이 밖으로 나가자 생명이 내게 되돌아왔다. 그 빛살에 닿은 부위마다 너무나 심한 격통이 이는 바람에 온 몸이 부서지는 것 같더니 실제로 죽었고, 다음 순간 같은 닿음을 통해 생명이 돌아오고 있음을 느꼈던 것이다.

 

13 하지만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말이 없으니 여기에서 멈추어야 하겠다.

 

 

3) 예수님의 신성이 그분의 인성에 가하신 무수한 죽음과 고통의 실제

 

 천상의 책 제1295, 1919320: 하느님 의지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다.

 

1 내 하잘것없는 마음이 사랑하올 예수님의 고통에 잠겨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대로 예수님께서 각 사람을 위해 그토록 많은 죽음과 고통을 겪으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보인다고 내게 말한 사람이 있었으므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나의 의지는 모든 것에 대한 능력을 내포하고 있다. 일이 그렇게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내 의지가 원하는 것만으로 족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 의지의 능력에 한계가 있었을 터이지만, 나의 모든 것은 한계가 없고 끝도 없다.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행하는 것이다.

 

3 아아, 나는 피조물에게서 얼마나 이해를 받지 못하고, 따라서 사랑도 받지 못하고 있는지! 내 인성 안으로 들어오너라. 내가 너에게 말한 것을 네가 보면서 네 손으로 만지게 해 주마.

 

4 그 순간 나는, 신성 및 영원하신 의지와 나눌 수 없으신 예수님 안에 있었다. 이 의지는 단지 원하시는 것만으로 거듭되는 죽음과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채찍이 없는 매질을, 가시가 없으나 살을 파고드는 지독한 고통을 어찌나 쉽게 지어내시는지, 한 번의 피앗으로 무수한 별들을 창조하신 저 순간을 방불케 하는 것이었다.

 

5 그 무수한 별들의 수만큼 많은 피앗이 필요하지 않았고 한 번으로 족했으니, 그렇다고 하나의 별만 생겨나고 다른 별들은 하느님의 생각이나 지향 속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보다는 오히려 모든 별들이 실제로 나타났고, 각각의 별이 고유한 빛을 가지고 우리네 대기권을 꾸미고 있었다.

 

6 이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의지가 그 창조적 피앗으로 우리 주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인성의 하늘에 원하시는 만큼 자주 생명과 죽음을 지어내시는 것이었다.

 

7 그러므로 나는 예수님 안에서 그분께서 하느님의 손에 의해 매질을 당하시는 시점에 있었다. 그것은 영원하신 의지가 원하시는 것만으로 족했으니, 구타나 채찍질이 없는데도 예수님 인성의 살이, 그것도 가장 깊은 속살이, 비참하게도 조각조각 떨어져 나가 군데군데 우묵한 골이 패는 것이었다.

 

8 그 하느님의 의지에 대한 예수님의 순종은 그분의 인성이 해체되어 버릴 정도로 큰 것이었고, 얼마나 고통스런 방식으로 그러한지, 유다인들에게서 받은 채찍질은 영원하신 뜻에 의해 겪으신 것의 상징 내지 그림자에 불과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9 그 뒤 거룩하신 의지가 원하시는 것만으로 예수님의 인성은 다시 원상대로 형성되었다. 그분께서 각각의 피조물을 위해 죽음을 겪으실 때도 같은 일이 일어났고,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10 나는 예수님의 이 고통들에 참여했는데, 하느님의 의지가 원하시는 횟수만큼 자주 우리를 죽게 하실 수 있고 다시 살아나게 하실 수도 있다는 것을 참으로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11 , 하느님! 이것이야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들이요 극단적인 사랑이며 심오한 신비들이어서 피조물의 정신으로는 거의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12 그 고통들을 겪고 나자 나는 다시 살아나서 오관을 쓰며 몸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는데, 복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의지의 딸아, 너에게 저 고통을 준 나의 의지는 또한 생명과 몸놀림과 다른 모든 것을 돌려주기도 한다.

 

13 이제부터 너를 내 신성 안에 자주 불러, 내가 각 영혼을 위해 실제로 겪은 수많은 죽음과 고통에 참여하게 하겠다.

 

14 그것은 단지 내 뜻 안에 있거나 각 사람에게 생명을 주려는 나의 지향 안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그렇게 여기는 이들이 있지만, 틀린, 틀린 생각이다. 그들은 내 뜻의 놀라운 일과 그 사랑과 능력을 모르고 있다.

 

15 너는 아무튼 만인을 위하여 겪는 죽음의 현실성을 깨달았으니 의심하지 말고 나를 사랑하며, 모두를 대신해서 감사하여라. 그리고 내 의지가 너를 부를 때를 대비하여라.

 

 

4) 신성의 손에서 받으신 고통과 피조물에게서 받으신 고통의 차이

 

천상의 책 제12101, 191958: 예수님의 신성이 인성에 가한 혹심한 고통. 그 이유와 성격을 알릴 시기를 늦추신 까닭.

 

1 여느 때와 같이 있으면서 흠숭하올 예수님의 고통에 대해서, 특히 그분의 신성이 지극히 거룩하신 우리 주님의 인성에 가하신 고통에 대해서 생각하였다. 그러던 중 한 순간 내가 예수님의 성심 안으로 당겨지는 느낌이 오더니 그분 성심의 고통을 나누게 되었다. 그런데 이 고통은 지상 생활 동안 그분의 신성이 그분께 겪게 하신 고통이었다.

 

2 그것은 복되신 예수님께서 수난 동안 유다인들의 손에 의해 겪으셨던 고통과는 아주 다른, 거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아주 조금밖에 나누지 않았는데도 심장이 찢어발겨지는 느낌과 함께 그 고통이 너무 격렬하고 혹심해서 실제로 숨이 끊어지는 느낌이 들더라는 것뿐이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당신 사랑의 기적적인 능력으로 내게 다시 생명을 주시곤 하시는 것이었다.

 

3 내가 그 고통을 겪고 나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고통의 딸아, (앞에서도 말했지만) 너는 알아야 한다. 유다인들이 내게 준 고통은 내 신성이 내게 준 고통의 그림자에 불과했다는 것을. 이는 지당한 조처였으니, 신성이 완전한 보속을 받기 위함이었다.

 

4 인간은 죄를 짓는 순간에 지고하신 임금님을 외적으로 모욕할 뿐더러 내적으로도 모욕하고, 인간 내면의 신적인 부분을 추하게 손상시킨다. 이는 창조됨과 더불어 인간 안에 불어넣어진 부분이다.

 

5 죄는 따라서 인간의 내면에 먼저 형성된 다음 외면으로 표출된다. 더군다나 많은 경우 외면으로 나타나는 것은 최소한의 것인 반면 대부분은 내면에 남아 있다.

 

6 그런데 피조물은 나의 내면에 들어올 능력이 없었고, 그들이 그리도 숱하게 범한 내적인 죄들로 아버지께 거부한 영광을 나로 하여금 고통으로 보속하게 할 능력이 없었다.

 

7 이 죄들은 더욱이 피조물의 가장 고상한 부분, 곧 하느님의 모상이 각인된 부분인 지성과 기억과 의지에 손상을 입혔고, 이로 인해 피조물은 무능해지고 말았으니, 누가 이 일을 떠맡아야 했겠느냐?

 

8 그러므로 신성이 몸소 일을 떠맡고, 나의 사랑 깊은 - 사랑이 깊은 만큼 더욱 요구가 많은 - 사형 집행자가 되는 것이 거의 불가피한 일이었으니, 인간의 내면에서 저질러지는 모든 죄에 대한 완전한 보속을 받기 위함이었다.

 

9 신성은 그처럼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완전한 일을, 피조물에 대한 완전한 보속을 원하였다. 그러기에 유다인들이 내게 끼친 수난으로 나는 피조물이 앗아간 아버지의 외적 영광을 보속하였고, 또 내 신성이 나의 지상 생활 전반에 걸쳐 내게 끼친 수난으로 인간 내면의 모든 죄에 대해 아버지께 보속을 바쳤다.

 

10 네가 이를 보면, 신성의 손에서 내가 받은 고통이 피조물에게서 받은 고통을 월등 능가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능가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 인간 정신으로는 그만큼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11 인간의 내면과 외면에 큰 차이가 있는 것과 같이, 내 신성이 내게 가한 고통과 피조물이 내 생애 막바지에 가한 고통 사이에는 한층 더 큰 차이가 있다.

 

12 앞의 것은 잔혹하고 고통스럽고 비인간적인 찢어발김으로 나를 죽일 수 있었고, 영혼 육신 가릴 것 없이 내 가장 내밀한 부위에 거듭되는 죽음을 안길 수 있었으니, 신경 한 가닥도 그냥 두지 않았다. 뒤의 것 역시 혹독한 고통이었지만 그 각각의 고통이 나를 죽일 수 있을 만큼 찢어발긴 것은 아니었다. 신성은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13 아아, 인간이 내게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르게 했는지! 하지만 인간은 배은망덕하게도 나를 거들떠보지 않고, 내가 인간을 얼마나 사랑했으며 인간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지를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피조물이 내게 끼친 수난 동안 내가 겪었던 것마저 이해하기에 이르지 못했다.

 

14 그들을 위해 겪은 나의 고통들 중 보다 작은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더욱 큰 고통이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느냐? 내가 그들로 인해 신성으로부터 받은 그 전대미문의 무수한 고통들에 대해 알릴 시기를 늦추어 온 것은 그 때문이다.

 

15 그러나 나의 사랑은 스스로를 쏟아 내기를, 그 보답으로 사랑 받기를 원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너를 내 뜻의 무한성과 그 이상일 수 없는 높이 안으로 부른 것이니, 이 뜻 안에는 저 모든 고통들이 현행 중이기 때문이다.

 

16 너는 이 고통에 참여할 뿐더러, 온 인류 가족의 이름으로 경의와 사랑을 보내며 보답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와 함께 피조물이 빚져 있는 모든 것을 대신 갚고 있다.

 

17 하지만, 나에게는 그지없는 괴로움이고 피조물에게는 막대한 손실인데도, 그들은 그것에 대해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5) 월등 가혹하지만 불의나 증오가 없는 고통

 

 천상의 책 제12106, 191964: 예수님께서 치르신 두 종류의 수난.

 

1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의 수난에 대해서, 특히 그분께서 쏟아지는 매질을 당하신 순간을 생각하다 보니, 예수님께서 온 생애에 걸쳐 신성에 의해 겪으신 고통과 생애의 마지막 단계에 유다인들의 손에 의해 겪으신 고통 중, 어느 쪽이 그분을 더 괴롭혔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2 그러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내 지성에 빛을 보내시고 이 빛을 통해 말씀하셨다. 딸아, 신성이 내게 가한 고통이, 그 힘과 강도에 있어서나 그 많은 수와 지속된 시간의 길이에 있어서나, 피조물이 가한 고통을 월등 능가하였다.

 

3 하지만 여기에는 불의나 증오가 없었다. 더없이 높은 사랑과 우리 성삼위의 이중적인 일치가 있었으니, 곧 내가 창조의 빛에서 나온 모든 피조물의 수만큼 많은 죽음을 겪는 대가로 영혼들을 구원하려고 몸소 떠맡은 일에 대하여 의견을 같이하였고, 아버지께서 지고하신 사랑으로 이 일을 내게 허락하셨던 것이다.

 

4 사실 불의와 증오는 신성 안에 없고 있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신성은 그런 고통을 내게 겪게 할 수 없었는데, 인간은 더없이 고약한 불의와 증오로 죄를 지을 수 있으니, 나는 아버지께 완전한 영광을 돌려드리기 위해서 불의와 증오와 조롱 따위를 겪어야 했다.

 

5 내가 지상 생활 마지막에 인간 편에서 오는 수난을 치른 것은 그 때문이다. 이 수난에서는 그들이 내게 불의와 증오와 조롱과 복수심을 십분 발휘하여 얼마나 많은 치욕을 안겨 주었는지 나의 가련한 인성은 모든 이의 수치가 되었고, 도무지 사람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6 그토록 흉하게 손상시켰으므로 그들 자신도 나를 보며 소름을 칠 지경이었으니, 나는 누구보다도 지긋지긋하고 하찮은 인간 폐물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 수난과 저 수난은 서로 구분되는 두 가지 다른 수난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7 인간은 나에게, 피조물의 수와 그들이 범하는 죄의 수만큼 많은 죽음을 줄 수 없었다. 그럴 능력이 없었다. 그러므로 신성이 지고한 사랑과 상호 일치 하에 이 일을 맡았다. 하지만 신성은 불의 등을 저지를 수 없기에 그런 것은 인간이 맡았다. 그리하여 나는 모든 면에서 구원 사업을 완성하였다.

 

8 영혼들이 내게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르게 했는지! 이 때문에 나는 영혼들을 이리도 끔찍이 사랑하는 것이다!

 

9 또 다른 날은 혼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올 예수님은 내게 아주 많은 것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나는 과연 주의를 기울여 그분의 모든 가르침을 실행해 왔던가? ,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에 이리도 변변찮으니, 나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지 않은가! 내가 이런즉 그분의 많은 가르침이 나를 단죄할 거다.

 

10 그러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움직이시며 말씀하셨다. 딸아,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느냐? 네 예수의 가르침이 너를 단죄하는 데에 소용되는 일이 있을 성 싶으냐?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설령 네가 나의 가르침을 딱 한 번만 실행한다고 하더라도, 네 영혼의 하늘에 별 하나는 뜨게 할 테니 말이다.

 

11 왜냐하면 내가 자연계의 위쪽에 하늘을 펼치고 나의 피앗으로 별들이 총총하게 떠 있게 했듯이, 영혼 깊은 곳에도 하늘을 펼쳐 영혼이 행하는 선의 피앗- 선은 무엇이나 내 뜻의 열매이다. - 이 하늘을 별들로 단장하게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혼이 열 가지 선을 행하면 거기에 열 개의 별이 뜨게 할 것이고, 천 가지를 행하면 천 개의 별이 뜨게 할 것이다.

 

12 그러니 너는 오히려 나의 가르침을 네 능력껏 거듭거듭 생각하여, 지평선 위에서 빛나는 하늘보다 못한 하늘이 되지 않도록, 네 영혼의 하늘을 별들로 단장하여라. 그러면 그 하나하나의 별에 네 예수의 가르침이라는 인장이 찍혀 있으리니, 네가 나에게 얼마나 큰 영예를 주게 되겠느냐!

 

 

6) 예수님의 내적 고통과 수난 고통의 관계 및 차이

 

 천상의 책 제1452, 1922819: 예수님의 내적 고통과 수난 고통의 관계 및 차이

 

1 평소와 같이 있노라니,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나로 하여금 각 사람을 위해 겪으신 당신의 고통들과 죽음들 일부를 겪게 하셨다. 그 일부를 통해 예수님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하고 치명적인 것이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때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나의 고통은 인간 본성의 이해력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 내적 고통에 비하면 내 수난의 고통은 내적 고통의 그림자 내지 비유에 지나지 않았다.

 

3 내 내적 고통은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것이어서 힘줄 한 가닥도 그분의 타격을 비켜갈 수 없는 것이었지만, 내 수난 고통은 전능하지도 전지하지도 않는 인간이 끼친 고통이어서 그들이 원한 대로 내 힘줄 하나하나까지 사무칠 수는 없는 것이었다.

 

4 내 내적 고통은 내 인성 안에 육화되었다. 그러므로 내 인성 자체가 못과 가시와 채찍과 상처로, 순교적 고통으로 변화되었다. 너무나 잔혹한 고통이어서 이것이 내게 계속적인 죽음들을 주면서 나와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내 생명이 되었다.

 

5 반면에 내 수난 고통은 외적으로 주어진 것이었다. 가시며 못이 내부로 파고들었지만 결국은 뽑혀 나갈 수도 있는 것이어서, 그 아픔이 제거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만 해도 위안이 되는 것이었다.

 

6 하지만 내적 고통은 바로 나 자신의 살이 되어 있었으므로, 뽑혀 나간다거나 가시와 못이 꿰찌르는 격통이 제거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마저 없는 것이었다.

 

7 내 내적 고통은 그토록 크고 종류도 가지가지였기 때문에, 정작 수난 고통은 이 내적 고통에 주어지는 위안이요 입맞춤이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 두 가지 고통이 한데 뭉쳐, 영혼들을 구원하려는 내 크고 넘치는 사랑의 최종 증거가 되었던 것이다.

 

8 내 외적 고통은 따라서 내적 고통의 바다 속으로 들어오도록 모든 사람을 부르는 목소리였다.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구원을 위해 내가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렀는지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9 그러므로 너도 네가 받게 된 내 내적 고통의 일부를 통하여 어느덧 내 고통의 지속적인 강도를 깨닫게 되었다. 용기를 내어라. 나를 이리로 몰아대고 있는 것은 사랑이니 말이다.

 

 

7) 예수님께서 거룩하신 뜻 안에서 지신 십자가의 성격

천상의 책 제1513, 1923216: 예수님께서 거룩하신 뜻 안에서 지신 십자가의 성격. 구원 사업은 영원의 영역에서 이루어졌기에 완전하다.

 

1 늘 하듯이 십자가에 달려 계신 분께 경배하며 그분의 사랑하올 뜻 안에 나 자신을 맡기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내 마음 안에서 기척을 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2 딸아, 서둘러라. 서둘러라. 서둘러라. 어서 내 의지 안에서 네 길을 따라 걸어라. 네 행위를 나의 행위와 내 엄마의 행위와 결합시킬 수 있도록, 내 인성이 지고한 뜻 안에서 행한 모든 것을 통해 계속 나아가거라.

 

3 한 피조물이 영원한 뜻 안으로 들어와서 우리의 행위가 삼중으로 되게 하지 않고서는 이 지고한 뜻이 땅에 내려와 인간 세대들 가운데 자신의 생명을 베풀지 않기로 정해져 있다. 이 뜻은 스스로를 알리기 위하여 삼중의 행위들이 행렬을 이루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니 서둘러라.

 

4 예수님은 침묵을 지키셨고, 나는 마치 거룩하고 영원하신 뜻 안으로 던져진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예수님의 모든 행위들을 발견하고 나 자신의 행위들을 겹쳐 놓았다는 것뿐이다. 그때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을 이으셨다.

 

5 딸아, 내 뜻은 내 인성이 이 거룩한 뜻 안에서 행한 일에 대하여 아주 많은 것을 알려 줄 것이다. 내 인성은 흠 없고 완전한 구원 사업을 이루기 위해 영원의 영역 안에서 이를 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6 여기에 영원한 의지가 반드시 있어야 했던 이유가 있다. , 나의 인간적인 의지가 영원한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내 모든 행위가 끝이 있는 유한한 행위가 되었을 터이지만, 가지고 있었기에 끝이 없는 무한한 행위가 된 것이다.

 

7 따라서 나의 고통, 나의 십자가는 끝없이 무한한 것이었고, 내 인성으로 하여금 이 모든 고통과 십자가를 만나게 한 것은 거룩한 뜻이었다. 이 뜻이 첫 사람에서 마지막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류 가족 위에 나를 눕혔고 나는 온갖 종류의 고통을 나 자신 안에 흡수했으니, 각각의 피조물이 내 십자가를 이루었던 것이다.

 

8 그러므로 내 십자가는 과거와 미래의 모든 세기만큼 길었고, 인간의 모든 세대만큼 넓었다. 그것은 유다인들이 나를 못 박게 한 갈바리아의 그 작은 십자가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이 십자가는 지고한 뜻이 나를 못 박혀 있게 한 저 긴 십자가의 비유였을 뿐이다.

 

9 각 피조물이 그 십자가의 길이와 너비를 이루고 있었고 그렇게 하면서 그들 자신도 같은 십자가에 붙어 있게 되었으므로, 거룩한 뜻이 나를 그 위에 누이고 못 박으면서 그것이 나만의 십자가가 아니라 이를 이룬 모든 이의 십자가도 되게 하였다.

 

10 이런 이유로 이 십자가를 지기 위해 내게 영원의 영역이 필요했던 것이니, 땅이 그것을 담기에는 너무 협소한 공간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11 내 인성이 하느님의 뜻 안에 행한 것과 이 뜻이 나로 하여금 모든 피조물에 대한 사랑으로 겪게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그들이 알게 된다면, , 얼마나 큰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겠느냐!

 

12 내 십자가는 나무로 된 것이 아니었다. 나무가 아니라 영혼들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뜻이 나를 누인 십자가에서 나는 그들의 심장이 고동치는 것을 느꼈다.

 

13 이 십자가는 그들 중 아무도 내게서 빠져나가지 않게 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자리를 잡아 주었다. 그리고 그 모두에게 자리를 잡아 주려고 나를 너무나 끔찍하게 잡아 늘렸다. 얼마나 혹독한 고통이었는지, 이에 비하면 내 수난 중의 고통은 경미한 고통, 아니 오히려 위안이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14 그러니 내 뜻이, 이 영원한 의지가 내 인성 안에서 행했던 모든 것을 알릴 수 있도록 너는 서둘러라. 이 지식이 수많은 사랑들을 획득할 것이다.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애원하리니, 내 뜻이 그들 가운데서 다스리게 될 것이다.

 

15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시는 그분의 음성에 애정이 어찌나 철철 넘쳐흐르는지 나는 아연한 표정으로 물었다. 제 사랑이시여, 당신의 뜻에 대해 말씀하실 때면 그리도 큰 사랑을 나타내시니 어인 까닭이십니까? 너무나 큰 사랑을 느끼신 나머지 당신 자신 안에서 또 한 분의 당신을 내보내시는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다른 어떤 것에 대해 말씀하실 때는 그런 사랑을 느끼지 않으십니까?

 

16 그러자 그분께서 이르셨다. 딸아, 그것이 알고 싶으냐? 내 뜻이 피조물에게 알려지게 하려고 이 뜻에 대해 말할 때 내가 원하는 것은, 그 피조물 안에 나 자신의 신성을, 따라서 또 하나의 나를 불어넣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나의 온 사랑이 그 안으로 들어가서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를 사랑하게 된다. 내 뜻에 대해 내가 말할 때에 사랑이 흘러넘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니, 그 피조물의 마음 안에 내 뜻의 거처를 장만하려는 것이다.

 

17 반면에 다른 어떤 것에 대해 말할 때 내가 불어넣는 것은 내 덕행들이다. 그에게 지금 내가 알려 주고 있는 덕행이 무엇이냐에 따라 나는 그를 창조주로서 사랑하거나, 어떤 때는 아버지로서, 어떤 때는 구원자로서, 어떤 때는 스승으로서, 또 어떤 때는 의사거나 기타 등등으로서 사랑한다. 이런고로 내가 또 하나의 나를 만들어 주고 싶을 때와 같은, 저 넘쳐흐르는 사랑은 아닌 것이다.

 

 

8) 아버지께서 인간 안에 모든 행복과 조화를 창조하신 것처럼 예수님의 인성 안에 있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창조하신 까닭

 

 천상의 책 제1532, 1923529: 영혼 안에서 맨 먼저 일하는 이는 늘 하느님이시다.

 

1 다정하신 예수님의 고난을, 특히 겟세마니 동산에서 겪으신 고난을 바라보며 측은해하고 있노라니, 그분께서 내 안에서 움직이시며 말씀하셨다.

 

2 딸아, 내 인성 안에 고통을 맨 먼저 만들어내기 시작한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이셨다. 왜냐하면 그분만이 고통을 지어내어 인간이 지은 죄의 빚을 보상하는 데에 필요한 수만큼 단계별로 배치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다.

 

3 이 일에서 인간은 버금가는 존재에 불과하였다. 인간은 나를 누를 힘이 없었을 뿐더러, 원하는 만큼 강도 높은 고통을 만들어 낼 능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4 같은 일이 모든 피조물 안에도 일어난다. 인간 창조에 있어서 그 영혼과 육신에 맨 먼저 작업을 하신 이는 내 거룩하신 아버지이셨다. 인간 본성 안에 그분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던 조화와 행복이 있느냐? 인간의 모든 것이 그분께서 만드신 조화와 행복이다.

 

5 다만 외적인 부분만 보아도 그렇다. 이것이 내포하지 않은 조화와 행복이 없지 않으냐? 눈은 볼 수 있고, 입은 표현할 수 있고, 발은 걸을 수 있고, 손은 활동할 수 있고 발이 닿는 곳의 물건을 잡을 수도 있다. 그런데, 눈은 볼 수 있으나 인간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입이 없다면, 또는 걸어 다닐 수 있는 발은 있으나 활동할 수 있는 손이 없다면, 인간 본성 안에 불행과 부조화가 있지 않겠느냐?

 

6 그리고 인간의 영혼 곧 그 의지와 지성과 기억의 조화와 행복을 보아라. 이들이 내포하지 않은 조화와 행복이 어디에 있겠느냐? 바로 영원하신 분의 조화와 행복의 일부라고 말하는 것으로 넉넉하지 않겠느냐?

 

7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영혼과 육신 안에 당신 자신의 참된 에덴을 창조하셨다. 완전히 천상적인 에덴이었다. 그런 다음 인간에게 지상의 에덴을 거처로 주셨다.

 

8 인간의 본성 안에 그토록 조화와 행복이 넘쳐흘렀다. 죄가 이 조화와 행복을 뒤엎고 말았지만, 그래도 하느님께서 인간 안에 창조하신 모든 선을 완전히 망가뜨린 것은 아니었다.

 

9 당신 자신의 손으로 인간 안에 모든 행복과 조화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이와 마찬가지로, 있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내 안에 창조하셨다. 이는 인간의 배은망덕을 기워 갚기 위함이요, 인간이 잃어버린 행복을 내 고통의 바다에서 나오게 하기 위함이요, 인간이 뒤엎은 조화를 바로잡기 위함이었다.

 

10 이러한 일이 모든 인간에게도 일어난다. 내가 그들을 어떤 독특한 성덕이나 나의 특별한 계획을 위해 선택할 경우, 그 영혼 안에서 일하는 것은 나 자신의 손이다. 내가 때로는 고통을, 때로는 사랑을, 때로는 천상적인 진리에 대한 지식을 그 안에 창조하는 것이다.

 

11 그러기에 내 질투가 크다. 아무도 그 영혼과 접촉하지 못하게 할 정도다. 그래도 사람들이 그에게 무언가를 하도록 허락할 때가 있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일에 한해서일 뿐이다. 우선권은 나 자신이 가지고, 내 계획에 따라 그를 길러 가는 것이다.

 

 

2.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의 비탄과 고통

 

1) 예수님의 내적 고통을 목격하며 동참하신 동정녀 – 그 필요성 

 

천상의 책 제1464, 1922103: 고통의 목격자가 적어도 한 사람은 있어야 하는 이유

 

1 늘 같은 일상 속에 있지만, 복되신 예수님께서 종종 고해사제가 보는 앞에서 내게 고통을 받게 하시는 것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서 볼멘소리로, 제 사랑이시여, 간청하고 또 간청합니다. 누가 보고 있을 때에는 고통을 받게 하지 말아 주십시오. 하였다.

 

2 무엇이든지 주님과 저만 아는 일이 되게 하시고 제 고통도 주님만 아시기 바랍니다. , 부디 저를 만족시켜 주시고, 다시는 그러시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그리고 저에게 갑절의 고통을 주십시오. 주님과 저 사이에 감춰져 있는 것인 한, 모든 것이 저에게 기쁨이겠습니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내 말을 막으시며 말씀하셨다. 딸아, 내가 이런다고 실망하지는 마라. 내 뜻이 원하는 것이라면 너도 따라야 한다. 게다가 그것은 다름 아닌 내 생애의 한 과정이기도 하였다.

 

4 바로 나의 숨은 생활 이야기인데, 나의 내적 고통과 내가 행한 모든 것이 언제나 적어도 한 두 목격자의 눈앞에 있었다. 그리고 이는 내 고통 자체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당연하고도 필요한 일이었다.

 

5 첫 목격자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이셨으니, 그분의 눈앞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또 그분 자신이 내게 저 고통들을 겪게 하셨으므로 그분은 관계자이며 동시에 목격자이셨다.

 

6 만약 내 아버지께서 내 고통을 보시지 않아 아무것도 모르고 계셨다면, 내가 어떻게 그분께 영광을 드리며 흐뭇하게 해 드릴 수 있었겠으며, 어떻게 인류에게 자비를 베푸시게 할 수 있었겠느냐? 내 고통의 목적이 달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7 다음으로 내 숨은 생활 중의 모든 고통을 보신 목격자는 내 엄마이셨고, 이 역시 필요한 일이었다. 나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들의 선익을 위해 고통을 받으려고 하늘에서 땅에 내려왔으니 만치, 내 고통이 내포한 선을 맡길 사람이 적어도 한 사람은 있어야 했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내 넘치는 자애를 경탄하며 내게 감사와 찬미와 사랑과 축복을 주게 해야 했던 것이다.

 

8 그 사람이 바로 내 사랑하올 엄마이셨다. 그분은 내 고통에 마음이 끌려 사로잡히다시피 감동하셨고 내 고통이 그분께 가져오는 큰 선을 보시기도 했으므로, 당신도 나 자신의 고통과 하나 되게 해 달라고 내게 간청하셨다. 내 고통을 함께 겪으시고 내게 보상하시며 나의 완전한 모상이 되시기 위함이었다.

 

9 내 엄마께서 아무것도 보시지 못했다면, 나는 내 첫 모상을 얻지 못했을 것이고, 감사합니다.도 찬미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내 고통과 그것이 지닌 선도 무효한 상태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것을 모르고 있으면 내가 첫 지지자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피조물에게 이 큰 선을 주려고 했던 목적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10 적어도 한 사람은 내 고통을 아는 것이 얼마나 긴요한 일이었는지, 이제 알겠느냐?

 

11 내가 그러했다면 너에게도 그리 되는 것이 내 원이다. 더군다나 - 내가 너에게 말한다. - 고해사제가 나와 함께 활동하는 것도 내가 바라는 바다. 내가 너에게 겪게 하는 고통의 목격자요 수탁자로서 활동함으로써 그 역시 이 고통이 지닌 선을 나누게 하려는 것이다.

 

12 또한 그를 나와 함께 있게 하면서 믿음이 더욱 커지도록 북돋아 주고, 그 안에 빛과 사랑을 불어넣어 내가 너에게 계속 드러내 보이고 있는 진리들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13 그 말씀을 듣자 나는 전보다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자비를 기대했건만 정의와 예수님의 단호한 결의만 보았기 때문이다. , 맙소사,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예수님은 그러나 내가 아까보다 더 괴로워하는 것을 보시며 이렇게 말씀을 맺으셨다.

 

14 딸아, 이것이 나에 대한 네 사랑의 표현이냐? 시대가 시대인 만치 앞으로 일어날 일들은 너무나 끔찍한 것이어서 너 혼자 정의의 전반적인 진로를 막기에는 역부족일 때가 올 것이다. 그러나 너희 둘이라면 막을 수 있으리니 네가 내게 고통을 달라고 청할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도 너 자신을 버리고 인내하여라. 네 예수가 이를 원한다.―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으냐?

 

 

2) 성모님의 고통들과 그 안에 작용하신 하느님의 피앗 

 

천상의 책 제1517, 1923323: 성모님의 고통들과 그 안에 작용하신 하느님의 피앗

 

1 천상 엄마의 고통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노라니,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걸음을 옮기시며 이르셨다. 딸아, 고통의 첫 왕은 바로 나였다. 사람이요 하느님인 나는 모든 것을 내 안에 모아들여야 했으니, 고통을 위시하여 모든 것에 대한 최고권을 가지고자 했던 것이다.

 

2 내 엄마의 고통은 다름아닌 내 고통의 반영이었다. 이것이 그분 안에 반영되면서 그분으로 하여금 내 모든 고통을 공유하게 하였고, 얼마나 깊이 꿰찌르며 혹심한 괴로움과 아픔을 끼쳤는지, 내 고통이 반영될 때마다 그분은 초주검이 되실 정도였다.

 

3 그러나 사랑이 그분을 지탱하면서 다시 생명을 주었다. 그러므로 영예뿐만 아니라 정의의 권한에 의해서도 내 엄마는 그 무한한 고통의 바다들의 첫 여왕이셨다.

 

4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동안, 어머니께서 예수님 앞에 계신 것 같았는데, 과연 예수님께서 지니신 모든 고통들과 성심의 꿰뚫린 상처까지, 이 고통의 여왕님의 성심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다.

 

5 그 고통이 반영될 때마다 이미 꿰찔린 어머니의 마음을 다시 찌르는 칼이 되었고, 빛나는 피앗이 새겨져 있는 이 칼들이 그분을 에워싸고 있었으며, 지극히 찬란하게 빛나는 그 수많은 피앗이 그분에게 형언할 수 없도록 어마어마한 영광을 주고 있었다.

 

6 그때 예수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내 엄마를 여왕으로 선정하고 그토록 큰 영광으로 빛나게 한 것은 고통이 아니라 나의 전능한 피앗이었다. 이 피앗이 그분의 모든 행위와 고통마다 함께 짜여 있었고, 그 각 고통의 생명이 되기도 하였다.

 

7 그러니 원하는 강도(强度)의 고통을 그분에게 주면서 칼을 이룬 첫 행위자는 내 피앗이었다. 피앗, 극히 가벼운 일말의 반항도 받음 없이, 찌르고 또 찌르고 아픔에 아픔을 더하면서 원하는 모든 고통을 저 꿰찔린 마음에 줄 수 있었던 것이다.

 

8 그러나 그분은 당신의 심장 박동까지 내 피앗이 그 생명이 되는 것을 오히려 영예로 여기셨다. 그러기에 이 피앗이 그분에게 완전한 영광을 주면서 그분을 참되고 정당한 여왕으로 선정한 것이다.

 

9 그러면 내가 누구에게 내 고통과 내 생명 자체를 반영할 수 있겠느냐? 바로 내 피앗을 생명으로 지닐 영혼들이다. 피앗이 그들로 하여금 내 반영들을 흡수하게 할 것이고, 그러면 내가 내 뜻이 내 안에서 행하는 바를 그들과 함께 아낌없이 나눌 것이다.

 

10 나는 그러므로 내 뜻 안에서 영혼들을 기다린다. 그들에게 각각의 행위와 고통에 대한 참된 지배력과 완전한 영광을 주기 위해서다.

 

11 그러나 내 뜻 바깥에서 일어나는 활동과 고통은 나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 나는 그렇게 하는 이에게 내가 너에게 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행동하고 고통을 겪도록 너를 움직인 것은 누구의 뜻이냐? 그에게서 보상을 받도록 하여라. 하고 말할 것이다.

 

12 선행이나 고통의 감수라고 하더라도 내 뜻이 그 안에 있지 않으면, 그런 것이 도리어 나쁜 격정으로 변질되기에 비참한 예속이 될 수 있다. 홀로 나의 뜻만이 참된 지배력과 참된 덕행과 참된 영광을 주어, 인간적인 것을 신적인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3) 고통에서도 모든 사람을 능가하신 성모님

 

천상의 책 제1915, 1926428: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것의 완전한 모범. 고통에서도 모든 사람을 능가하신 성모님.

 

1 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다정하신 예수님은 그분의 뜻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에, 이 뜻을 흔히 천상 여왕님이나 모든 조물들과 결합시키며 말씀하신다. 여왕님이나 조물들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즐기시는 나머지 그럴 기회나 구실이나 방책을 계속 찾으시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이 천상 엄마와 모든 조물들 안에서 하시는 일을 드러내시기 위함일 것이다.

 

2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나오시어 그지없이 다정하게 나를 안으시고 이르셨다. 딸아,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은 타당한 이유가 있어서다. 너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내 뜻은 모든 조물과 내 천상 엄마 안에서만 아무도 손대지 않은 본연의 순수한 상태로 자신의 활동 영역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었다.

 

3 그러므로 그들 가운데 하나로서 내 뜻 안에 살도록 너를 불러야 했을 때에, 나는 그들을 모범으로 - 네가 본떠야 할 형상으로 너에게 제시하였다. 위대한 일, 곧 누구라도 원하기만 하면 그 선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위대한 일을 하려면, 내 뜻으로 하여금 그 영혼 안에서 전적으로 활동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우선적인 일이니 말이다.

 

4 모든 조물들을 보아라. 과연 내 뜻이 전적으로 그들 안에 있다. 내 뜻의 이 전적인 (임재의) 성질로 인해 그들 모두가 언제나 제자리에 있고, 그들이 창조된 수단인 선을 충만히 함유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언제나 새롭고 고상하고 순수하고 싱그러우며, 스스로 지닌 선을 만물과 나눌 수 있다.

 

5 그러나 그들의 탁월성은 모두에게 스스로를 내어 주어도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는 점, 따라서 언제나 하느님의 창조를 받은 순간과 똑같다는 점에 있다. 태양은 엄청나게 많은 빛과 열을 지상에 쏟아 붓지만 그렇다고 해서 잃은 것이 있느냐? 없다. 푸른 하늘이 대기층에 펼쳐져 있다고 해서, 또는 땅이 많고도 다양한 온갖 식물을 내고 있다고 해서 잃은 것이 있느냐? 없다. 내가 창조한 다른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다.

 

6 , 만물은 얼마나 탄복할 만한 방식으로 나에 대하여 영원히 새롭고 오랜 분이시다.라고 노래하는지! 그러기에 내 뜻은 만물 안에서 생명의 중심이요 선의 충일이며 질서요 조화이고, 만물을 내 뜻이 원하는 자리에 있게 한다. 그러니 이 모든 조물 속에서가 아니라면,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것에 대한 더 훌륭한 모범과 더 완전한 모습을 네가 어디에서 볼 수 있겠느냐?

 

7 이 때문에 나는 너를 불러 창조된 만물 가운데에서 그들의 누이로 살면서 지극히 높으신 의지 안에서 사는 법을 배우도록 한다. 그러면 너 역시 내가 원한 자리에 있으면서 내 뜻이 네 안에 넣어두고자 하는 선을 가득 지니게 되어,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선을 소유하게 할 수 있다.

 

8 게다가 너는 이성을 받아 가지고 있으므로 모든 조물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들이 죄다 이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네가 그 하나하나를 대신하여 사랑과 찬양으로 너의 창조주께 보답해야 하는 것이다.

 

9 너는 그리하여 창조된 만물의 대리자가 되고, 만물은 너에게 거울이 될 것이다. 이는 내 뜻 안에서의 삶을 모방하기 위하여 네가 너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 할 거울이니, 그렇게 하면 네가 네 자리를 벗어나지 않을 수 있다. 그들이 내 뜻 안에서의 삶에 대한 가장 높고 완전한 가르침을 주면서 너의 인도자요 스승이 될 것이니 말이다.

 

10 하지만 내 천상 엄마는 그 모든 조물을 뛰어넘는 분이시다. 그분이 곧 새 하늘, 지극히 찬란한 태양, 더없이 밝은 달, 온통 꽃들로 뒤덮인 땅이시다. 모든 것이 그분 안에 있다.

 

11 각 조물마다 하느님에게서 받은 고유한 선을 가득히 지니고 있다면, 내 엄마 는 모든 선들을 한꺼번에 다 지니고 계셨다. 이는 그분께서 (신적) 이성을 타고나신 데다 내 뜻이 그분 안에서 전적으로 살고 있었기에, 은총과 빛과 성덕이 매순간 충만히 자라났기 때문이다.

 

12 그분의 행위는 하나하나가 전부 내 뜻이 그분 안에 형성한 태양들이요 별들이었으니, 그분은 모든 피조물을 능가하셨고, 내 뜻은 그분 안에서 전적이고 영구적인 방식으로 가장 위대한 일을 하면서 대망의 구원자를 탄원하여 얻었다. 이런 이유로 내 엄마는 모든 피조물 가운데에서 여왕이시다.

 

13 모든 것을 뛰어넘는 탁월성이 그분에게 있었기 때문이고, 내 뜻이 그분 안에서 그분 이성의 양식을 찾아내었기 때문이다. 이 양식이 내 뜻으로 하여금 전적이고 영구적인 방식으로 그분 안에서 살게 했던 것이다. 그들은 서로 손잡고 지고한 일치를 이루고 있어서 내 뜻이 그분의 심장 근육이나 말씀이나 생각이나 그 자신의 생명을 지니지 않은 곳이 없었다.

 

14 더구나 하느님의 뜻이 무엇을 못하겠느냐? 무엇이든지 할 수 있으니, 힘이 모자라거나 할 수 없는 일이 있을 수 없다. 내 엄마는 그러므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쳐도 할 수 없었고 앞으로도 할 수 없을 모든 것을, 내 엄마는 혼자서 다 하셨던 것이다.

 

15 그런즉 너는 내가 창조된 만물과 존귀하신 여왕님을 너에게 가리켜 보이는 것을 조금도 의아해하지 마라. 그것은 그들이 네가 본받아야 할 완전한 모범인 까닭이다. 그들 안에서는 내 뜻이 영구적인 생명을 가지고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으면서 그 거룩한 활동 영역을 확장하므로, 모든 일을 내 뜻에 합당하게 처리할 수 있다.

 

16 딸아, 나의 지고한 피앗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다스리기를 - 이는 사람을 위하여 우리 (성삼위)가 대대로 해야 할 일들 중에서 가장 큰 일로 남아 있다. - 네가 원한다면, 내 뜻이 네 안의 지존한 자리에서 전적이고 영구적으로 살게끔 하여라.

 

17 그 밖의 다른 것에 대해서는 심려하지 마라. 너의 무능이든 네 주변 상황이든 네 옆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새로운 일들이든 그 무엇도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다. 내 뜻이 네 안에서 다스리게 되면 그런 것들이 내 피앗의 완전한 성취를 위한 원자재요 양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18 나중에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왕이신 내 엄마께서는 과연 다른 누구도 한 적이 없는 최대의 희생을 치르셨다. 그것은 곧 그분 자신의 뜻은 알려고도 하지 않으시고 오로지 하느님의 뜻만을 알고자 하신 점이다. 이를 통하여 그분은 영웅적인 희생에 이르기까지 모든 비통과 모든 고통을 받아들이셨고 지고하신 뜻을 이루시고자 당신의 아드님마저 바치셨다.

 

19 그러나 일단 이 희생을 바치고 나자 이후에 겪으신 모든 것은 그 첫 번째 행위에서 나온 결과였다. 그러니까 그분은 다양한 상황과 뜻밖에 부닥친 곤경, 예기치 않은 실패 앞에서 우리가 하는 것처럼 투쟁할 필요가 없으셨다.......

 

20 우리에게 그것은, 우리 자신의 도전적인 의지에 굴복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심장이 피를 흘리게 할 정도로 부단한 투쟁이다. 지고하신 뜻이 언제나 영예로운 자리를 지키며 모든 것을 지배하는 최고권을 보존하시도록 하려면, 얼마나 깊이 우리의 주의를 쏟아야 하는지! 이 투쟁이 고통 자체보다 더 혹독할 때가 많은 것이다!

 

21 그런 생각에 잠겨 있노라니,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기척을 내시며 말씀하셨다.

 

22 딸아, 네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점이 있다. 내 엄마의 가장 큰 희생 행위는 네 생각처럼 그렇게 일회적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분과 내가 겪고 있었던 고통과 비탄, 우리가 처해 있었던 상황과 마주친 곤경의 수만큼이나 많고 엄청난 희생이었다. 더욱이 그분에게는 고통이 항상 배가되기도 하였다. 나의 고통이 바로 그분의 고통인데다 그분 자신의 고통보다 더 컸기 때문이다.

 

23 나의 지혜는 변함없는 방침으로 내 엄마를 이끌었으니, 그분께서 받으시게 될 고통마다 내가 먼저 그분께 그것을 받기를 원하시는지 물음으로써 피앗.이라고 하시는 그분의 응답 소리가 그 각각의 고통과 상황, 심지어 그분 심장의 각 박동마다에서 반복되게 하였다.

 

24 피앗. 소리가 어찌나 감미롭고 부드럽고 아름답게 들리는지 나는 그분 생애의 매순간마다 그것이 반복되기를 바랐다. 이 때문에 언제나 그분에게 이렇게 묻곤 했던 것이다. 엄마, 이것을 하시겠습니까? 이 고통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25 그리고 나의 피앗은 스스로 지닌 좋은 것들로 넘치는 바다들을 내 엄마에게 가져갔으며, 그분으로 하여금 이제 수락하신 고통의 강도를 깨닫게 하기도 하였다. 이 깨달음에 의해 그분은 사람들의 괴로운 투쟁을 무한히 초월할 정도로 큰 순교적 고통을 받으셨다.

 

26 그분에게는 죄의 씨가 없었기 때문에 투쟁의 씨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뜻은 그분이 고통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열등하지 않게 하려고 또 하나의 방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통에서도 그분이 다른 사람들 전체를 능가하여 정당하게 고통의 여왕 권리를 얻으시도록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27 이것을 너는 얼마나 여러 번 겪었느냐! , 내적 투쟁이 전혀 없는 상태에 있을 때에도 내 뜻이 너에게 끼칠 고통을 깨닫게 하면, 너는 그 극심한 고통의 강도에 놀라 돌같이 굳어 버리곤 하였다. 그리고 그 고통으로 망가지는 동안 너는 내 팔에 안긴 조그만 어린양이었고, 내 뜻이 네가 순종적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었으니, , 이것이야말로 투쟁 자체보다 더 괴로운 고통이 아니었더냐?

 

28 투쟁은 사나운 격정을 나타내는 표지이다. 이에 반해 내 뜻은 비록 고통을 초래하더라도 꾸준한 용맹을 가져다준다. 또한 고통의 강도에 대한 앎과 더불어 오로지 하느님의 뜻만이 줄 수 있는 공덕도 준다. 나는 그래서 너에게 했던 것처럼 내 엄마에게도 똑같이 하였다. , 내가 원하는 것을 너도 원하는지,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원하는지 너에게 먼저 물어보았듯이, 내 엄마에게도 먼저 물어보았던 것이다.

 

29 그것은 희생이 언제나 새로운 것이 되게 하려는 것이었고, 그 희생이 나에게 피조물과 대화를 나누며 함께 있을 기회를 주면서 내 의지로 하여금 인간의 뜻 안에 내 의지의 신적 활동 영역을 가질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30 그런데 위의 글까지 쓰고 나자 더 계속할 수가 없었다.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는 아름답고 고운 노래와 그 반주 소리에 나의 정신이 홀렸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만인의 주의를 끌었고, 천지 만물 및 천국과 일치를 이루고 있었다.

 

31 이제 나는 순명하기 위하여 이 글을 쓴다. 내가 (그렇게 홀린 듯) 그 노래를 듣고 있었을 때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딸아, 들어라, 얼마나 아름다운 노래이냐! 이 음향과 멜로디는 천사들이 지은 새로운 송가로서, 하느님의 뜻과 너의 인간적인 뜻이 하나로 결합된 것에 공경과 영광과 영예를 드리기 위한 것이다. 온 천국과 온 피조물이 너무 기쁜 나머지 이 기쁨을 그들 안에 다 담고 있을 수 없어서 노래하며 연주하고 있는 것이다.

 

32 그분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자, 나는 내 몸 안에 들어와 있었다.

 

 

4) 성모님이 순교자들의 여왕, 모든 고통의 여왕으로 봉해지신 이유

천상의 책 제1936, 1926711: 구원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누구보다 많이 고난 받으신 분들이 알려질 필요가 있었던 것처럼 지고한 뜻의 나라를 위해 고난 받는 이도 알려져야 한다.

 

1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여러 날에 걸쳐 당신의 지극히 높으신 뜻에 대한 말씀을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징벌로 피조물을 내리치는 행위를 하시면서 슬픔에 싸인 표정으로 나타나시곤 하셨는데, 오늘은 그 슬픔을 벗어나시려는 듯 나의 내면에서 나오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나 스스로 내 기운을 북돋우고 싶다. 즉, 내 지고한 뜻의 나라에 대하여 말하고 싶다.”

 

2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뜻에 대한 언급이 당신 자신을 잔치의 즐거움에 싸이게 하기에 그리 말씀하셨다. 나는 그래서 “예수님, 저의 사랑, 저의 생명이시여, 당신께서 저에게 그 나라 안의 모든 신비를 다 이야기 해 주지 않으시면, 저는 전부를 알지는 못할 것이기에 그 나라가 소유한 선을 충만히 누리지 못할 것이고, 당신께서 감추신 선들에 대한 사랑의 보답을 드릴 수도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3 “그러면 저는 그 큰 행복 가운데에서 불행을 느낄 것입니다. 당신께서 당신 뜻의 나라에 소유하고 계신 만물 안에 저의 ‘사랑합니다.’를 흐르게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찮은 것이지만, 당신께서 그토록 사랑하시는 이 ‘작은 딸’의 ‘사랑합니다.’가 아닙니까?”

 

4 그러자 예수님은 나 자신의 말끝을 잡고 이르셨다. “내 작은 딸아, 아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너 스스로 말하고 있구나. 그것이 너에게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더 필요하겠느냐?

 

5 너는 알아야 한다. ‘구원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가장 두드러지게 고통을 받은 사람은 내 엄마와 나였다. 내 엄마는 외관상의 고통은 겪지 않으셨다. 내 죽음만이 예외였다. 이는 누가 보아도 그분의 모성적인 마음에 다른 어떤 죽음보다 더 치명적이고 더 가혹한 타격을 입혔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6 하지만 그분은 내 뜻의 빛의 일치를 소유하고 계셨다. 그러므로 이 빛이 그 꿰뚫린 마음에, 교회가 말하듯 일곱 개의 칼이 아니라 모든 칼과 모든 창과 모든 가시들을 가져왔다. 그것은 피조물의 모든 죄와 모든 고통의 칼과 창과 가시였고, 이것이 써레질을 하듯 그분의 어머니다운 마음을 갈아대고 있었다.

 

7 그러나 그것은 내 뜻의 빛이 그분에게 초래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 뜻의 빛이 나의 모든 아픔, 치욕, 고통, 가시, 못 및 내 마음의 가장 내밀한 고통들을 그분에게 가져왔으니, 내 엄마의 마음은 정녕 태양과도 같았다. 사람은 다만 태양의 빛만을 볼 수 있지만, 이 빛 안에 모든 선과 효과들이 있고, 이를 땅이 받아 가지기에, 땅이 태양 안에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8 존귀하신 여왕도 그러하였다. 사람의 눈에는 그분의 모습만 보였지만, 내 지고한 뜻이 그분 안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고통을 싸 넣었던 것이다. 이 고통들이 내밀하고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일수록 하느님의 성심에 그만큼 더 가치 있고 강력하게 작용하면서 ‘대망의 구원자’를 청하였고, 그러자 구원자가 햇빛보다 더 찬란하게 피조물의 마음들 속에 내려왔다. 그들을 정복하여 ‘구원의 나라’에 묶어 두려는 것이었다.

 

9 그러니 교회는 존귀하신 천상 여왕의 고통에 대하여 아주 조금만 알고 있는 셈이다. 가시적인 고통만을 겪기나 하신 것처럼 그 고통에 일곱이라는 수를 붙여 ‘일곱 개의 칼’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교회가 만약 그분의 모성적 가슴이 모든 고통의 피신처요 저장소라는 것을 안다면, 또 내 뜻의 빛이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든 것을 그분에게 가져온다는 것을 안다면, 일곱이 아니라 수백만 혹은 무수한 칼이라고 할 것이다.

 

10 더욱이 그것은 내심에 숨어 있어서 하느님만이 그 강도(强度)를 아시는 고통이다. 이런 이유로 그분은 정당하게 ‘순교자들의 여왕’이며 ‘모든 고통의 여왕’으로 봉해지셨다. (반면에) 피조물은 외적 고통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과 가치를 헤아릴 수 있으나 내적 고통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정당한 평가를 내릴 수 없는 것이다.

 

11 한데, 내 엄마 안에 먼저 ‘내 뜻의 나라’를 세우고 그다음에 ‘구원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그토록 많은 고통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죄가 없어서 고통을 대물림으로 이어받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분의 상속 재산은 내 뜻의 나라였으니 말이다.

 

12 그분은 그러나 사람들에게 구원의 나라를 주시기 위해서 그처럼 많은 고통을 감내하지 않을 수 없으셨다. 그러니 구원의 열매들이 내 엄마와 내가 소유한 내 뜻의 나라에서 익었던 것이다. 아름답거나 선하거나 유익한 것 치고 내 뜻에서 나오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는 까닭이다.

 

13 나의 인성이 이 존귀하신 여왕과 하나 되어 내려오자, 그분은 내 안에, 내 슬픔과 고통 안에 숨어 계셨으므로 그분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나의 인성으로 말하자면, 내가 행한 것이, 그리고 내가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았으며 얼마나 많이 사랑했는지가 알려질 필요가 있었다. 그런 것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면 내가 ‘구원의 나라’를 세울 수 없었을 것이다.

 

14 나의 고통과 사랑에 대한 앎이 그 나라 안에 있는 치료제와 좋은 것들을 취하도록 영혼들을 끌어당기는 자석이요 박차이며 격려요 빛이 되었다. 그들의 죄와 구원이 나에게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르게 했는지를 알게 된 그들은 그 앎으로 말미암아 나에게 묶였고, 새로이 죄를 짓지 않도록 보호를 받았던 것이다.

 

15 이와 반대로 그들이 만약 나의 고난과 죽음에 대해서, 또 그들의 구원이 나에게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게 했는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면, 나를 사랑하며 자기의 영혼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16 그러니, 보아라, 다른 사람들에게 주기 위한 보편적인 선을 자기 내부에 형성하는 사람은 참으로 많은 일을 하고 많은 고통을 받는다는 것 – 이를 알리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일이냐!

 

17 이제, 딸아, ‘구원의 나라’를 이룩하기 위하여 참으로 많은 희생을 치른 이들이 누구였는지를 알릴 필요가 있었던 것처럼, 나의 부성적인 자애로 가장 먼저 택한 사람, 곧 ‘지고한 피앗의 나라’를 자기 안에 이룩한 다음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나라가 서도록 전할 사람 역시 알려질 필요가 있다.

 

18 나와 내 천상 엄마 사이에 먼저 이루어졌던 구원사업이 나중에 사람들에게 알려졌던 것처럼, ‘지고한 피앗 사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 내 뜻의 이 나라가 나에게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르게 했는지를 알릴 필요가 있다.

 

19 즉, 사람이 잃어버린 나라 안으로 다시 들어오게 하기 위하여 내가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작은 사람을 산 제물로 바쳐야 했으니, 그를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데다 누구나 누리는 햇빛도 충분히 쐬지 못한 채 사십 년이 넘도록 침대에만 붙박여 있게 한 것이다.

 

20 그 사람의 작은 가슴이 얼마나 나의 고통과 다른 이들의 고통의 피난처가 되었는지! 그토록 그는 모든 이를 사랑하고 모든 이를 위해 기도하며 모든 이를 지켜왔다. 자기의 모든 형제들을 지키려고 너무나 자주 하느님 정의의 타격 앞에 그 자신의 몸을 내놓았던 것이다. 게다가 그의 내적인 고통, 곧 나의 부재가 그 작은 가슴을 괴롭히며 그에게 계속적인 죽음도 겪게 하였다.

 

21 사실, 그는 나의 생명 외의 다른 생명을 몰랐고, 나의 뜻 외의 다른 뜻을 몰랐다. 그러므로 그 모든 고통이 내 뜻의 나라의 기초로 놓였고, 태양 광선처럼 ‘지고한 피앗’의 열매들을 익혔다.

 

22 그러니 이 나라가 (그 사람인) 너와 나에게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게 했는지를 알릴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그 희생을 보고, 그들이 이 나라를 차지하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바라는지를 알게 하려는 것이요, 또한 내 지고한 뜻의 나라를 제대로 알고 사랑하며 그 안에 들어가서 살기를 열망하게 하려는 것이다.”

 

23 나는 순명하기 위하여 이상의 글을 썼다. 내 가련한 몸의 상태에 대해서는 언급할 겨를조차 없었거니와, 쓰기 싫은 글을 쓰느라고 어찌나 용을 썼는지 피가 혈관 속에 얼어붙고 만 것 같다. 하지만 늘 “피앗! 피앗! 피앗!.....”만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도 없다.

 

 

5) 성모님에게 있어서 하느님 부재의 고통과 그 의미

 

 천상의 책 제1949, 1926822: 하느님 뜻 안에서 수행되는 행위는 각기 신적 성격을 띤다. 하느님 부재의 의미와 여왕께서 겪으신 그 고통의 의미, 한 사명의 머리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1 흠숭하올 예수님의 영원하신 뜻 안에 잠겨 있는 느낌이어서, 모든 피조물 사이를 돌아다니는 나의 순례 행위를 되도록 많이 하면서 하느님의 뜻이 그들 안에서 하시는 모든 행위를 동반하고자 하였다.

 

2 내가 그렇게 하고 있는 동안, 내 지고하고 유일한 선이신 분께서 나의 내면에 나타나시어 나의 온 존재를 보시며 내 모든 행위들을 하나하나 헤아리셨고, 그것들을 전부 그분 주위에 두시고 즐기셨다. 그런 다음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딸아, 나는 너의 모든 행위를 낱낱이 세고 있다. 내가 미리 정해둔 수효에 달하는지 어떤지 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내 뜻은 하느님의 모든 특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 뜻 안에서 행한 너의 모든 행위는 각기 지고한 성격을 띤다.

 

4 그 행위들을 보아라. 얼마나 아름다우냐! 어떤 것은 내 지혜의 형상을 띠고 있고, 어떤 것은 내 선성의 형상, 어떤 것은 사랑, 어떤 것은 힘, 어떤 것은 아름다움, 어떤 것은 자비, 어떤 것은 흔들리지 않는 확고부동, 어떤 것은 질서 - 요컨대 내 지고한 속성 전체의 형상을 띠고 있다.

 

5 너의 각 행위는 서로 구분되는 형상을 지니고 있지만 또한 서로 닮아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서로 손을 잡고 단일한 행위를 이룬다. 이렇듯 내 뜻 안에서 하는 피조물의 행위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런 사람은 오로지 신적 형상의 행위들만을 낳고, 나는 기뻐하며 나의 그 형상들로 나 자신을 에워싼다. 피조물 안에서 내 속성들의 열매를 맛보려는 것이다.

 

6 그리고 그에게 나의 거룩한 형상을 더 많이 낳을 힘을 준다. 지고하신 하느님의 모습이 그들 안에 그대로 복사되어 박히는 것을 보기 위함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피조물이 내 뜻을 실천하며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에, 그리하여 나의 행적을 반복하는 것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7 그 후 나는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 다정하신 예수님의 부재는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것인가!..... 영혼의 실제적인 죽음이 느껴지니, 흡사 영혼이 몸에서 떠났을 때와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즉, (전과) 같은 팔다리를 가지고 있건만 생명도 활기도 움직임도 없고, 따라서 의미도 없는 것이다.

 

8 내 하찮은 영혼도 예수님이 없으면 그렇게 보인다.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건만 거기에는 생명이 없다. 예수님께서 떠나시면 생기도 움직임도 온기도 끝나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그 고통은 처참하다. 말로 표현할 수도, 다른 어떤 고통에 비할 수도 없는 고통이다.

 

9 아! 천상 엄마께서는 이를 겪지 않으셨으리라. 그분의 성덕으로 인해 예수님과 떨어지실 수 없었고, 따라서 예수님 없이 지내신 적이 결코 없었을 것이다.’

 

10 한데 사랑하올 예수님께서는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 나의 내면에서 기척을 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네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 나의 부재는 서로 떨어지는 분리가 아니고 고통이다. 그러니 그것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라고 한 네 말은 맞다. 하지만 이 고통에는 힘이 있다. 서로를 갈라놓는 힘이 아니라, 더 질기고 더 견고한 끈으로 나와의 불가분적 결합을 맺어 주는 힘이다.

 

11 더욱이 사람이 자기 탓이 아닌데도 나 없이 홀로 남은 것처럼 있을 때마다, 나는 그를 위하여 지식의 새 생명으로 다시 살아난다. 사람으로 하여금 더 많은 사랑으로 더 많이 나 자신을 알게 하면서 나도 그를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은총으로 그를 더 부유하고 더 아름답게 만든다.

 

12 그러면 그는 하느님의 새로운 생명에로, 새로운 사랑과 새로운 아름다움에로 다시 살아난다. 영혼이 죽음의 고통을 겪으니 만치, 그 고통이 새로운 신적 생명으로 바뀌는 것이 온당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지 않으면, 내가 피조물의 사랑이 나 자신을 능가하게 두는 것일 터인데,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3 그 밖에도 존귀하신 여왕께서 나 없이 지내신 적은 결코 없었을 것이라고 한 네 말은 사실이 아니다. 서로 갈라져 있은 적은 ‘결코’ 없었지만, 여왕께서 나 없이 계신 적은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 점이 그분의 고매한 성덕을 손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드높였다.

 

14 나는 드물지 않게 그분을 순전한 믿음의 상태에 머무르시게 하였다. ‘고통의 여왕’이며 ‘만물의 어머니’가 되셔야 할 분이기에, ‘순교자들의 여왕’, ‘모든 고통의 모후’를 특징짓는 더없이 아름다운 장신구, 더없이 찬란한 보석이 그분에게 모자라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15 순전한 믿음 속에 남아 있게 된 그 고통이 그분을 준비시켜, 내 가르침의 위탁을 받아들이시고, 성사들과 내 구원사업의 모든 선이라는 재물을 받아들이시게 하였다. 사실 나의 부재는 매우 큰 고통이기에 영혼을 자기 창조주의 가장 위대한 선물의 수탁자, 그분의 지고한 지식과 그분 신비의 수탁자가 될 만한 처지에 있게 한다.

 

16 내가 너에게 자주 그렇게 하지 않았느냐? 나의 부재 이후 내 뜻에 대한 지극히 높은 지식을 드러내 보였으며, 너를 그 지식뿐만 아니라 내 뜻 자체의 수탁자로 만들기도 하였다.

 

17 더욱이 존귀하신 여왕께서는 어머니로서 인간의 모든 내적 상태를, 따라서 순전한 믿음의 상태도 소유하셔야 했다. 그분의 자녀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였다. 이 믿음이 사람으로 하여금 피와 목숨을 내놓으며 자기의 믿음을 수호하고 증명하게 하는 것인즉, 그분께서 만약 그 믿음의 선물을 받아 가지지 않으셨다면, 자녀들에게 어떻게 그것을 주실 수 있었겠느냐?”

 

18 그분은 그렇게 말씀하시고 모습을 감추셨다. 그러나 나는 여러 가지 이상하고 쓸데없는 것들에 대한 생각이 자꾸 떠오르는 통에, 흠숭하올 하느님의 뜻 안에서 순례 행위를 하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애써 그렇게 하고 있노라니 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19 ‘하느님 뜻의 지고한 나라에서 사는 것에는 너무나 큰 주의와 희생이 요구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토록 거룩한 나라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20 그러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돌아오셔서 이르시기를, “딸아, 어떤 사명의 머리로 불린 사람은 모든 지체들을 싸안을뿐더러, 또한 그들을 지배하고 다스리며 그들 각자의 생명이 되어야 한다. 그 반면에 지체들은 머리에 생명을 주지 못하고, 머리가 하는 모든 일을 하지도 못한다. 그저 저마다 맡은 바 임무를 다할 뿐이다.

 

21 따라서 한 사명의 머리가 되라는 부름을 받은 사람은 자기에게 맡겨진 임무를 다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을 품어 안고,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은 고통을 받고, 모든 이를 사랑하면서, 그의 사명을 추종하기를 원하는 이들의 수용 능력에 따라 양식과 생명과 교훈과 임무를 준비한다.

 

22 너는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들이 풍성한 나무를 이루어야 한다. 그런 너에게 필요한 것이 다만 하나의 가지나 열매가 될 사람들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이들의 과업은 나무가 지닌 생명의 수액을 받기 위해서 나무와 합체된 상태로 있는 일이다.

 

23 다시 말하자면, 외적이건 내적이건 그 무엇 속에서나 자기 의지에는 결코 생명을 주지 않고 내 뜻이 자기를 지배하게 하기 위해서, 나를 알기 위해서, 또 내 뜻을 자기 자신의 생명을 받기 위해서다. 그러면 내 뜻이 그 거룩한 생명을 떨치리니, 요컨대 여왕으로 군림하여 다스릴 것이다.

 

24 딸아, 머리가 되도록 불린 사람은 고난을 받으며 일해야 하고, 다른 이들이 함께 어울려서 하는 일을 그는 전부 혼자서 해야 한다. 바로 내가 그렇게 하였다. 나는 구원사업의 머리였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위하여 모든 일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고 그들 모두를 안전한 곳에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25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분은 모든 사람의 어머니요 여왕이셨으므로 너무나 많은 고난을 받지 않으셨느냐? 만인에 대한 사랑과 그들을 위한 일을 너무나 많이 하시지 않았느냐? 그러니 고난을 받거나 사랑하는 것에 있어서 우리의 경지에 다다랐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기껏해야 일부분만 우리와 비슷할 수 있을 뿐, 아무도 우리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26 하지만 존귀하신 여왕님과 나는 머리의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모든 은총과 모든 재물을 우리 안에 품고 있었다. 힘이 우리의 수중에 있었고, 통치권이 우리의 것이었고, 하늘과 땅이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에 순종하며 우리의 권능과 거룩함 앞에서 두려움으로 몸을 떨었다.

 

27 구원된 사람들은 우리의 빵과 과일을 먹었다. 그들은 우리의 약으로 치유를 받았고, 우리의 모범으로 강해졌고, 우리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우리 생명의 대가로 다시 살아났고, 우리의 영광 덕분에 영화롭게 되었다.

28 그렇더라도 권능은 언제나 우리의 것이니, 모든 선의 살아 있는 샘이 언제나 우리에게서 솟아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속량된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멀리 가 버리면, 다신 모든 선을 잃고 병약하고 가난해져서 전보다 더 초라한 신세가 된다.

 

29 머리가 되는 것의 의미가 이것이니, 사실 그런 사람은 많은 고난을 받고 많은 일을 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을 준비해야 하지만, 그가 소유하는 모든 것은 만인과 만물의 소유를 뛰어넘는 것이다.

 

30 한 사명의 머리가 될 사람과 지체가 될 사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어서, 머리는 태양에, 지체는 작은 등불에 비길 수 있다. 네 사명은 위대한 것이라고 내가 여러 번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니, 이는 단지 개인적인 성덕이 아니라 만물과 만인을 포괄하는 일이요, 인류를 위하여 내 뜻의 나라를 준비하는 일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31 나중에 나는 지고하신 의지 안의 행위들을 따라가고 있었는데, 이들이 모든 것을 빛으로 바꾸어 눈부신 빛의 지평선을 이루고 있었고, 그 빛이 생생한 은빛 구름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이 스며드는 곳마다 모든 것이 빛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비우고 모든 것을 그 찬란한 빛으로 채우는 힘과 권능을 가지고 있었다.

 

32 예수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딸아, 꿰뚫는 힘이 빛보다 더 큰 것은 달리 없다. 빛은 놀라운 속도로 어디든지 퍼져 나가면서 그것에 휩싸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한 효과를 가져다준다. 그것은 사람이든 땅이든 물이든 식물이든 또는 다른 것이든 그 무엇,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선을 베풀기를 거절하지 않는다.

 

33 그것의 본성이 남을 밝게 비추어 주며 선을 행하는 것이기에, 아무도 뒤에 남겨두지 않고 모두에게 자기 빛의 입맞춤을 주며 자기가 지닌 선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내 뜻은 그러한 빛보다 월등 (강한 빛이다). 그러니 어디든지 퍼져 나가면서 스스로 지닌 선을 가져다준다.

 

34 또 내 뜻 안에서 수행되는 행위들은 금이나 은처럼 번쩍이면서 인간 뜻의 밤의 어둠을 모조리 몰아내는 힘이 있고, 그것의 유익한 빛과 함께 하느님의 영원하신 의지의 입맞춤을 가져온다. 사람들을 준비시켜 ‘지고한 피앗의 나라’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원의를 품게 하려는 것이다.

 

35 내 뜻 안에서 하는 너의 각 행위는 하나하나가 새 지평선이다. 네가 인간 지성의 눈에 떠오르게 하는 새 지평선이요, 내 뜻이 소유하고 있는 선의 빛을 위해 네가 길어지게 하는 새 지평선이다. 딸아, 이 나라를 준비하려면 활동과 천상적인 법이 필요한데, 그 법은 다름 아닌 사랑의 법이다.

 

36 공포의 법, 징벌의 법, 단죄의 법은 이 나라에 들어오지 못한다. 내 뜻의 사랑의 법은 호의와 효성의 법으로서 바로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상호 사랑의 법이 되리니, 공포나 단죄는 힘도 생명도 없을 것이다. 약간의 고통이 있다면 그것은 결국 승리와 영광으로 충만해질 것이다.

 

37 너는 그러므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는 영혼들을 끌어당겨 하늘나라를 사랑하고 열망하며 소유하게 하기 위하여 하늘나라를 알리는 일 – 하늘나라의 신비와 특전과 재산을 드러내 보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3. 수난 24시간의 각 시간에 대하여

 

1) 제1시간 : (오후 5시-6시) 거룩하신 어머니께 작별 인사를 하시다.

 

① 『천상의 책』 제5권 18장, 1903년 10월 3일 : 예수님의 삶은 이 세상 속에서, 곧 지극히 거룩한 성사와 은총 안에 생활하는 영혼들 안에서 참으로 계속되고 있다.

 

1『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시간들』 중 1시간 (곧 오후 5-6)이 되기를 기다리면서, 예수님께서 당신 어머니께 작별 인사를 하시는 이 시간에 대하여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 때 두 분께서는 서로를 축복하셨고, 그런 다음 예수님은 죽음을 향해 나아가셨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 시간을 기다린 것은, 매사에 있어서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기는커녕 그분을 모욕하는 이들에 대한 배상을 바치려는 것이었다.

 

2 그것은 나의 기도로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 안에 머물러 있는 데에 필요한 모든 축복을 얻어 내기 위함이었고, 또한 사람들이 그분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처럼 (내가 대신함으로써) 그들 모두 안에 비어 있는 하느님의 영광을 채우기 위함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니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나오시는 것이 느껴졌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3 딸아, 내 어머니를 축복했을 때에 나는 모든 사람들도 축복하고자 하였다.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것에도 말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각과 말과 심장 박동과 발걸음과 활동까지 나를 위해 행해지도록 축복되었으니, 모든 것이, 모든 것이 나의 축복으로 강화된 것이다. 사실, 너에게 말하지만 사람이 행하는 모든 선은 나의 인성에 의해 행해졌던 것이니, 그것은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이 나로 말미암아 미리 신적 성격을 띠게 하기 위함이었다.

 

4 더욱이, 나의 삶은 이 세상 속에서 참으로 계속되고 있다. 지극히 거룩한 성사뿐만 아니라 내 은총 안에 생활하는 영혼들 안에서이다. 나는 어떤 영혼 안에서는 나의 배상, 다른 영혼 안에서는 찬미, 또 다른 영혼 안에서는 감사, 또 다른 영혼 안에서는 영혼들의 치유를 위한 열성을, 또 다른 영혼 안에서는 내 고통을 계속한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람의 능력은 매우 한정되어 있어서 내가 행한 모든 것 가운데서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다 붙잡고 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

 

5 나머지 모두와 더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게 일치하는 정도에 따라 그들 안에서 내 삶을 전개하는 것이다. 그런즉, 그들이 나로 하여금 얼마나 큰 어려움과 고통을 치르게 하겠는지 생각해 보아라. 자기네 안에서 활동하고자 하는 내게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으니 말이다.

 

6 이 말씀 끝에 그분은 사라지셨고 나는 나 자신 안에 돌아와 있었다.

 

 

② 『천상의 책』 제12권 141장, 1920년 11월 28일 : 주님 강복의 의미와 효과.

 

1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고통스러운 수난에 들어가시기 전 당신 엄마께 축복을 청하려고 가신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복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이 신비는 매우 많은 점을 드러낸다. 내가 축복을 청하고자 내 사랑하올 엄마에게 간 것은 내게 축복을 청할 기회를 엄마에게도 드리기 위함이었다. 그분께서 이제부터 너무나 많은 고통을 견디셔야 하기에 나의 강복으로 힘을 북돋아 드리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다.

 

3 이와 같이, 주고자 할 때 청하는 것이 나의 통상적인 방식이다. 내 엄마는 그런 내 의중을 단박 헤아리시고 나를 축복하시기 전에 나의 강복부터 청하셨다. 내가 강복해 드린 뒤에야 비로소 나를 축복하셨던 것이다.

 

4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기 위하여 나는 한 번의 피앗을 발하였고, 그 한 번의 피앗으로 하늘과 땅을 다시 정돈하고 아름답게 꾸몄다. 인간창조에서는 나의 전능한 입김으로 인간 안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5 수난이 시작될 무렵 내가 내 전능하고 창조적인 말로 내 엄마에게 강복하려고한 것은 비단 엄마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엄마 안에서 모든 피조물을 보았던 것이다.

 

6 엄마에게는 만물에 대한 최고의 지배권이 있기에 나는 그분 안에서 모든 사람을 한 사람 한 사람 다 축복하였고, 그 생각과 말과 행위 등도 하나하나 다 축복하였다. 또한 사람에게 쓰이도록 되어 있는 조물도 각각으로 다 축복하였다.

 

7 나의 전능한 피앗에 의해 창조된 태양이 그 빛이나 열이 감소됨 없이 모든 사람과 각 사람을 위해 여전히 자신의 궤도를 운행하고 있듯이, 나의 창조적인 말도 축복을 통해 계속적인 축복 행위로 남아 있다. 태양이 만물에게 빛을 주기를 그치지 않는 것처럼 이 축복도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8 뿐만 아니라, 나는 나의 강복으로 인간창조의 고상한 성격을 새로이 하고자 했으니, 인간에게 능력을 주려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를 부르며 강복을 청하였고, 지혜와 사랑을 주려고 나의 이름과 성령의 이름으로 강복하기를 원했다. 따라서 인간의 기억과 지성과 의지를 새로이 하여 만물의 왕으로 복권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9 그러나 너는 알아야 한다. 나는 주면서 받기를 원하기도 한다는 것을. 내 사랑하올 엄마께서는 이를 알아차리시고 즉시 나를 축복하셨는데 당신 혼자만이 아니고 모든 사람의 이름으로 그렇게 하셨다.

 

10 ! 나의 이 축복을 모든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다면, 마시는 물에서,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불에서, 먹는 음식에서, 자기를 괴롭히는 고통에서, 자기의 기도 소리에서, 죄를 짓고 느끼는 양심의 가책에서, 사람들의 저버림 속에서 그것을 느낄 것이다.

 

11 그리하여 모든 것 속에서 내가 그들에게 건네는 이 창조적인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듣지 못한다! - 나는 성부와 나 자신과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너에게 강복한다. 너를 돕고 너를 보호하며 너를 용서하고 너를 위로해 주려고 너에게 강복한다. 또한 네가 거룩한 사람이 되게 하려고 너에게 강복한다. 그러니 사람도 모든 것 속에서 나의 강복에 감사함으로써 내 강복이 메아리치게 할 것이다.

 

12 이러한 것들이 내 강복의 효과이다. 내게서 가르침을 받은 교회가 이를 반향하고 있으니, 교회가 거의 모든 상황에서, 성사 집전과 다른 것들을 통하여 교회의 축복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③ 『천상의 책』 제14권 40장, 1922년 7월 6일 : 예수님께서 수난 전에 어머니께 강복하신 의미 예수님의 성사적 생명을 전부 수탁하게 되는 사람

 

1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수난의 시간들」중 거룩한 축복을 청하려고 당신의 거룩하신 엄마에게 가시는 그분을 동반하였다. 그때 지극히 다정하신 그분께서 내 내면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나는 수난 전에 내 엄마에게 강복하고, 엄마의 축복도 받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내 엄마에게만 강복한 것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에게, 생명이 있는 것과 없는 것 모두에게 강복하였다. 피조물이 허약하고 상처투성이이며 궁핍한 것을 보자, 내 가슴이 비통과 자비로 고동치고 있었던 것이다.

 

3 그러므로 나는 말하였다. 가련한 인류야, 네가 얼마나 쇠락의 길을 가고 있는지! 그 상태를 떨치고 다시 일어나도록 너에게 강복한다. 내 강복이 네 안에 성삼위 하느님의 능력과 지혜와 사랑의 삼중 인장을 찍기를, 이것이 네 힘을 되찾아 주고 너를 치유하며 부유하게 하기를 빈다.

 

4 또 나는 너를 에워싸고 지키도록 내가 빚어낸 모든 조물들도 축복한다. 내 축복을 받은 그들을 네가 받게 하려는 것이니, 너를 위하여 빛과 공기와 물과 불과 먹을거리를 축복한다. 그러면 네가 내 축복에 싸여 잠겨 있는 것 같을 것이다. 너는 그러나 이를 받을 자격이 없기에 내가 내 엄마를 통로로 삼아 내 강복이 너에게 다다르게 한다.

 

5 내 엄마께서 당신의 축복으로 나에게 보답하셨듯이 사람들도 그들의 축복으로 내게 보답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하지만, 아아 슬프다, 그들은 내게 축복으로 보답하기는커녕 모욕과 저주를 퍼붓는다.

 

6 딸아, 그러니 너는 내 뜻 안으로 들어와서 모든 피조물의 날개를 타고 높이 떠올라 그들이 내게 마땅히 주어야 할 축복으로 모두에게 인장을 찍고, 그 모든 축복을 비통과 자애에 찬 내 가슴으로 가져오너라.

 

7 내가 그렇게 하고 나자 그분께서 보답하시기 위함인 듯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딸아, 너에게 특별히 강복한다. 너의 마음과 정신과 활동과 말과 숨 - 네 전체와 네 안의 모든 것에 강복한다.

 

8 그 후 나는 「수난의 시간들」을 계속 따라갔다. 성찬례 제정의 만찬 시간이 되었을 때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내 내면에서 움직이시며 그 안을 손가락 끝으로 세게 두드리셨다. 그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리기에, 이렇게 세게 두드리시니 예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 걸까? 하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분께서 나를 부르시며 말씀하셨다.

 

9 내 말을 귀담아듣게 하려고 너를 불렀다. 두드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서 말이다. 잘 들어라, 딸아, 나는 성찬례를 제정하는 자리에서 모든 사람을 내 주위로 불렀고, 첫 사람에서 마지막 사람까지 그 모든 세대들을 바라보았다. 모든 이에게 내 성사적 생명을 주기 위해서, 그것도 한 번만이 아니라 그들이 이 유형적인 음식을 필요로 할 때마다 주기 위해서였다.

 

10 그렇게 나 자신을 영혼의 음식으로 주고자 했지만, 내 성사적 생명이 멸시와 무관심, 심지어 무자비한 죽음에 둘러싸여 있는 것을 보고 여간 슬프지 않았다. 그리고 심한 통증을 느꼈다. 그것은 내 성사적 생명이 너무나 비참하게 반복적으로 겪게 될 죽음의 온갖 아픔이었다.

 

11 그때 나는 더욱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 뜻의 능력을 발휘하여, 장차 내 뜻 안에서 살게 될 영혼들을 내 주위로 불렀다. 그러자, , 얼마나 기쁘던지! 내 뜻의 능력에 흡수된 듯한 영혼들, 내 뜻이 그들 삶의 중심인 영혼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12 나는 이 영혼들 안에서 내 무한성을 보았고, 모든 것에서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는 나 자신을 보았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내 성사적 생명을 맡겼다. 이 생명을 맡긴 것은 그들이 이를 돌볼 뿐만 아니라 각각의 성체에 대해 그들의 생명으로 내게 보답하게 하려는 것이다.

 

13 이는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내 성사적 생명은 내 영원한 뜻에 의해 생명을 받는데, 이 영혼들의 생명은 내 뜻의 생명을 그 중심으로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14 따라서 내 성사적 생명이 이루어질 때에 내 안에서 활동하는 내 의지가 그들 안에서도 활동한다. 그러니 나는 내 성사적 생명 안에서 그들의 생명을 느낀다. 그들이 나와 함께 각 성체마다 불어나기에, 내가 생명에 대해 생명을 받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15 , 내가 내 뜻 안에서 네 생명을 이루도록 특별히 부른 너, 그런 첫 사람인 너를 보면, 내 마음에 얼마나 큰 기쁨이 이는지 모른다! 나는 처음으로 네 안에 내 성사적 생명들 전부를 맡겼고, 네가 이를 맡을 수 있게 하려고 지고한 의지의 능력과 무한성에 너를 맡겼다.

 

16 그때부터 너는 내게 현존해 있었고, 나는 너를 내 성사적 생명의 수탁자로 임명했으며, 내 뜻 안에서 살게 될 다른 모든 영혼들도 네 안에 있게 하였다. 그리고 모든 것 위에, 심지어 사도들과 사제들 위에 높은 권한도 너에게 주었다. 이는 당연한 일이니, 내 뜻은 그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기 때문이다.

 

17 사실 그들은 나를 축성하지만 나와 함께하는 생명으로 있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를 돌보지 않고 잊어버린 채 홀로 내버려 둔다.

18 반면에 내 뜻 안에서 사는 영혼들은 나 자신의 생명 안에 있는 생명, 내게서 분리할 수 없는 생명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너를 끔찍이 사랑한다. , 내가 네 안에 있는 나 자신의 뜻을 사랑하는 것이다.

 

 

2) 제2시간 : (오전 6시-7시) 최후 만찬의 다락방으로 가시다

 

- 제11권 52장, 1913년 5월 9일 : 예수님과 그분 엄마와의 불가분적 관계. 어머니께서 모성적 소임을 수행하신 방법.

 

1 기도 중에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에 들어가시기 전 지극히 거룩하신 어머니께 작별 인사를 하신 순간을 생각하면서, 예수님께서 당신 엄마와 어떻게 헤어지실 수 있었을까? 어머니께서는 또 어떻게 예수님과 헤어지실 수 있었을까? 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2 그러자 복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확실히 나와 내 자애로우신 엄마 사이에는 이별이란 것이 있을 수 없었다. 단지 외견상의 이별이 있었을 뿐이다.

 

3 그분과 나는 서로 안에 함께 녹아들어 있었고, 이는 너무나 강렬한 융합이어서 나는 그분과 함께 남아 있었고 그분은 나와 함께 가셨을 정도였다. 그러니 그것은 두 장소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bilocation)과 같은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4 이러한 현상은 영혼들이 진실로 나와 하나 되어 있을 때에도 일어난다.

 

5 이들이 기도하면서 기도가 생명이 되어 자기네 영혼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면 일종의 융합 내지 두 장소 동시 공존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내가 있는 곳에 그들을 데려가고, 또한 내가 그들과 함께 남아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6 딸아, 내 사랑하올 엄마가 내게 어떤 존재였는가를 네가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땅 위에 내려와서도 하늘이 없었다면 지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늘이 있었다. 내 엄마가 바로 내 하늘이었다.

 

7 내 엄마와 나 사이에는 강한 전류가 흐르고 있었으니, 그분께서 단 하나의 생각도 내 마음에서 당신께로 끌어당기지 않고 그냥 놓쳐 버리신 일이 없었을 정도였다.

 

8 내 말과 의지와 열망과 행위와 발걸음, 요컨대 내 모든 것을 나에게서 끌어당기는 그 행위가 이 하늘의 태양과 별들과 달을 이루었고, 동시에 한 피조물이 나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기쁨을 이루었으며, 이는 그분 자신도 누릴 수 있는 기쁨이었다.

 

9 오, 이 하늘 안에서 나는 얼마나 즐거웠는지! 오 얼마나 큰 위로와 보상을 - 모든 것에 대한 보상을 받았는지! 내게 해 주신 엄마의 입맞춤들마저 온 인류의 입맞춤을 포함하고 있어서 그것이 모든 피조물의 입맞춤을 내게 돌려주는 것이었다.

 

10 나는 어디서든지 내 다정하신 엄마를 느꼈다.

 

11 나 자신의 숨결 속에서 그분을 느꼈으니, 그것이 가쁜 숨결일 때에는 그분께서 고르게 해 주시곤 하였다. 내 마음속에서도 그분을 느꼈으니, 그것이 쓰디쓴 상태일 때는 그분께서 감미롭게 해 주시곤 하였다. 내 발걸음 속에서도 그분을 느꼈으니, 그것이 지친 발걸음일 때는 그분께서 활기와 안식을 주시곤 하였다...

 

12 내 수난 중에도 내가 얼마나 많이 그분을 느꼈는지, 누가 너에게 말해 줄 수 있으랴?

 

13 그 모든 채찍질과 가시들과 상처들마다, 내 피의 모든 방울마다, 도처에서 나는 그분을 느꼈다. 내 참 어머니로서 당신의 소임을 다하고 계신 그분을.

 

14 아아, 영혼들이 그렇게 나와 일치한다면, 나에게서 모든 것을 끌어당긴다면, 내가 땅에서도 얼마나 많은 하늘들과 어머니들을 가지게 되랴!”

 

3) 제3시간 : (오후 7시-8시) 율법에 따른 만찬

 

- 제13권 22장, 1921년 10월 9일 : 하느님 뜻의 비서로 최후 만찬 석상의 영예로운 자리를 받다. 만인에게 당신 자신을 음식으로 내주시며 또 받기를 원하시는 예수님. 사람의 뜻은 그 자신의 모든 행위를 보존하며, 그를 창조주와 닮게 한다.

 

1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최후 만찬 중에 하신 일을 생각하고 있노라니 사랑하올 그분께서 내 마음 속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제자들과 최후 만찬을 나눌 때 나는 다만 그 제자들만이 아니고 온 인류 가족에 둘러싸여 있었다. 내가 그들 모두와 함께 있었고 한 사람 한 사람 다 알고 있었으며 그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나는 또 너도 불렀다. 너에게 나와 요한 사이의 영예로운 자리를 주어, 내 뜻의 작은 비서로 세웠던 것이다.

 

3 그리고 구은 어린양을 잘라 내 사도들에게 주면서 다른 모든 이들에게도 각각으로 주었다. 피를 뽑아내고 구워 토막을 낸 그 어린양은 나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 생명의 상징이었다. 내가 만인에 대한 사랑으로 결국 어떻게 될지를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4 나는 또한 내 수난을 상징하는 그 어린양을 모든 사람에게 맛있는 음식으로 내주고자 하였다. 내가 행하고 말하고 겪은 모든 것이 내 사랑으로 말미암아 사람을 위한 음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5 내가 왜 모든 사람을 불러 그것을 주었는지 그 까닭을 알겠느냐? 왜냐하면 나도 그들에게서 음식을 받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랑과 일과 말을, 곧 그들의 모든 것을 내 음식으로 받고 싶었던 것이다.

 

6 제 사랑이시여, 저희의 일이 어떻게 주님을 위한 음식이 될 수 있습니까? 하고 내가 묻자, 예수님은 이렇게 답해 주셨다.

 

7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내 뜻이 살 힘을 주는 모든 것으로 산다. 빵이 사람을 먹여 살리는 것은 내가 그렇게 되도록 원했기 때문이다.

 

8 피조물의 모든 일도 그의 뜻이 만들어 내는 작품이다. 그러니까 나를 위한 음식이 되게 하겠다는 뜻으로 일하면 그 결과 내 음식이 되는 것이다. 내게 사랑을 주고자 하는 뜻으로 일하면 사랑이 되고, 보속하고자 하면 보속이 된다. 마찬가지로 나를 모욕하려는 뜻으로 일하면 그 일이 내게 상처를 주거나 심지어 나를 죽이기까지 하는 칼이 된다.

 

9 그분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뜻은 사람을 자기 창조주와 더욱 닮게 하는 역할을 한다. 내가 사람의 뜻 안에 내 무한성과 능력의 일부를 담아 주었고, 그것에 영예로운 위치를 부여하여 사람의 전 존재를 지배하는 여왕이 되게 함으로써 사람의 일을 전부 맡아 간직하게 했기 때문이다.

 

10 사람이 귀중품을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서 금고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이, 영혼도 자기의 뜻을 가지고 있어서 이 안에 스스로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를 안전하게 보존한다.

 

11 단 하나의 생각도 잃지 않는다. 눈과 입과 행위로 할 수 없는 것이라도 자기의 뜻으로 행할 수 있다. 한 순간에 수없이 많은 선을 원하거나 수없이 많은 악을 원할 수도 있다. 뜻이 그 영혼의 생각을 하늘로 날아오르게 할 수 있고, 더없이 멀고 깊은 나락의 심연에 빠뜨릴 수도 있다.

 

12 활동하고 보고 말하는 것이 금지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하더라도, 영혼은 자기의 뜻으로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가 행하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자신의 뜻 안에 보존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13 , 그러니 이 뜻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펼쳐질 수 있겠느냐! 얼마나 많은 선과 얼마나 많은 악을 내포할 수 있겠느냐!

 

14 이 때문에 내가 그 무엇보다도 사람의 뜻을 소유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를 가지고 있으면 모든 것을 가진 셈이 되고, 견고한 성채를 정복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4) 제4시간 : (오후 8시-9시) 성체성사 제정의 만찬

 

제20권 21장, 1926년 11월 4일 : 창조주의 충실한 모상인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 하느님 뜻은 물 몇 방울을 바다로 바꾸는 힘이 있다. 조물치고 하느님 뜻을 감추고 있지 않은 것은 없다.

 

1 지극히 높으신 뜻 안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서 여왕이신 엄마께 내가 영원한 피앗의 나라를 탄원하여 얻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하였다. 그러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거동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내 천상 엄마는 내 뜻의 나라 자녀들의 가장 완전한 모상이셨다. 그리고 내 뜻이 자신의 맏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구원사업이 올 수 있었다. 만약 우리 (성삼위)에게 우리 뜻의 맏딸이 없었다면, 영원한 말씀인 나는 결코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땅으로 내려오려고 내가 우리의 뜻과 아무 관계가 없는 자녀들을 믿거나 쓰는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니 말이다.

 

3 그러므로, 네가 보다시피, 구원의 나라가 도래하기 위해서 우리 뜻의 딸이 필요하였다. 그런데 그분은 영원한 피앗의 나라의 딸이었기 때문에 당신 창조주의 충실한 모상, 모든 피조물의 완전한 복사판이셨다.

 

4 그분은 지고하신 뜻이 모든 조물 안에서 시행하시는 모든 행위들을 그분 내부에 담으실 수 있었다. 또 그분에게는 모든 조물을 다스릴 최고 통치권이 있었으므로 하늘과 별들과 태양 및 모든 것을 그분 안에 담으실 수 있었다. 그리하여 하늘의 복사판이, 태양의, 바다의, 온통 꽃이 만발한 땅의 복사판이 그분의 통치 아래 놓여 있었다.

 

5 그러니 내 엄마를 보면, 그분을 에워싸고 있는 ― 일찍이 본 적 없는 ― 경이로운 것들을 볼 수 있었다. 곧 하늘과 더없이 찬란한 태양을 볼 수 있었고, 우리가 우리의 딸을 보려고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반사하는 수정같이 맑은 바닷물을 볼 수 있었고, 또 언제나 꽃이 만발한 봄의 땅도 볼 수 있었다. 이는 천상의 창조주를 매혹하여 산책을 하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땅이었다.

 

6 , 이 천상 여왕은 얼마나 아름답던지! 우리의 모상뿐만 아니라 우리가 빚어낸 모든 작품들의 복사판도 그 안에서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한데 그것은 여왕이 우리의 뜻을 자신 안에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7 그런데, 지고한 피앗의 나라의 도래를 위해서도 우리 뜻의 딸이 또 한 사람 필요하였다. 그 사람이 만일 우리 뜻의 딸이 아니라면, 우리의 뜻이 우리 뜻의 신비와 고통과 지식을, 그 놀라운 것들과 그 거룩함과 그 통치권을 그녀에게 맡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8 부모는 즐겨 재산을 자녀들에게 알리며 소유하게 하고, 자녀들을 더 부유하고 더 행복하게 해 주려고 더 많은 재산을 소유하기를 원한다. 이와 같이 내 뜻도 즐겨 내 뜻의 재산을 내 뜻의 자녀들에게 알리고, 부유하고 행복하게, 끝없는 행복으로 행복하게 해 주기를 좋아한다.

 

9 한데 지고한 피앗의 나라에는 존귀하신 여왕의 복사판들이 있을 것이기에, 그 복사판들을 가지기 위하여 여왕께서도 이 거룩한 나라가 땅에도 오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다리고 계신다.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나라일 것이다. ― 빛의 나라, 무한한 부의 나라, 완전한 성덕의 나라, 완전한 통치권이 행사될 그 나라는!

 

10 이 나라의 우리 자녀들은 모두 왕들과 여왕들이 될 것이고, 하느님이신 임금님의 왕실 가족으로서 그들 자신 안에 모든 조물을 담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또 우리 천상 아버지를 쏙 빼닮은 생김새일 것이고, 따라서 우리 영광의 완성, 우리 머리의 영관(榮冠)이 될 것이다.

 

11 그 후 나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해 생각하다가 이렇게 혼잣말을 하였다. 내 엄마께서는 '말씀의 어머니'가 되리라는 것을 아시기 전에는 슬픔이나 고통을 겪지 않으셨다. 지극히 높으신 뜻의 광활한 영역 안에서 사는 행복을 누리셨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러니 그분께서 소유하신 수많은 바다들 중에 고통의 바다는 없었다. 이 고통의 바다가 없는 상태로 '대망의 구원자'를 탄원하여 얻으신 것이다.

 

12 그러자 예수님께서 다시 입을 여시어 말씀을 이으셨다. 딸아, 내 사랑하올 엄마는 내 어머니가 되리라는 사실을 아시기 전에도 고통의 바다를 가지고 계셨고, 이 바다는 당신의 창조주께 가해지는 모욕들로 말미암은 고통의 바다였다. , 그 때문에 얼마나 슬퍼하셨는지!

 

13 게다가 그 고통은 하느님 뜻에 의해 일깨워진 고통이었다. 그분이 소유하신 하느님 뜻은 이 뜻 안에서 수행된 모든 것을 ― 더없이 작은 것이나 물 몇 방울까지도 ― 끝없는 바다로 바꾸는 능력, 곧 샘의 능력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뜻은 사실 작은 일은 할 줄 모르고 언제나 큰 일을 한다.

 

14 그러므로 그 끝을 볼 수 없을 만큼 광대한 하늘을 펼치기 위해서도 우리의 입을 열어 피앗을 발하는 것으로 충분하였고, 온 땅을 빛으로 채우는 태양을 빚어내기 위해서도 한 번의 피앗으로 충분하였고, 다른 많은 것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15 이는 내 뜻이 하나의 티끌 또는 하나의 하찮은 행위를 움직이거나 둘러싸기만 해도, 내 뜻의 재생력으로 그 수를 불어나게 하여 아무도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게 한다는 것을 분명한 어조로 말하는 것이다. 바다 속에 얼마나 많은 고기가 있으며 그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를 누가 셀 수 있느냐? 얼마나 많은 새들과 식물이 땅을 가득 채우고 있는지를?

 

16 그러니 내 뜻 안에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면 이 작은 말이 사랑의 바다가 되고, 하나의 작은 기도는 기도의 바다가 되고, 당신을 흠숭합니다.는 흠숭의 바다가 되고, 작은 고통은 고통의 바다가 된다. 그리고 영혼이 만약 그의 사랑합니다.와 흠숭과 기도를 나의 의지 안에서 반복하며 고통을 겪으면, 나의 뜻이 사랑과 기도와 고통의 거대한 파도들을 이루며 높이 솟구치게 하여 영원하신 분의 끝없는 바다 속에 떨어지게 한다. 그러면 하느님의 사랑과 피조물의 사랑이 공동으로 자리하게 되는데, 그것은 하느님의 뜻과 그 피조물의 뜻이 하나의 같은 뜻이기 때문이다.

 

17 내 뜻의 지배를 받기로 한 사람은 따라서 그가 내 뜻 안에서 하는 행위들과 같은 수의 바다들을 소유한다. 또 아주 사소한 일을 하지만 많은 것을 소유한다. 피조물의 사소한 행위를 즐겨 바다로 만드는 거룩하신 의지를 그가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18 그런데 오로지 이 바다들과 함께해야 대망의 하느님 피앗의 나라를 탄원하여 얻어 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내 뜻의 갓난이며 작은 딸인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딸의 작은 고통과 사랑합니다.와 그녀가 행하는 모든 것을 영원하신 분의 바다와 통하는 바다들로 바꾸어, 내 뜻의 나라를 간청하러 솟아오를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19 나중에 나는 마음속으로,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그분의 뜻에 관해 말씀하실 때면 대체로 늘 창조된 만물에 대한 언급을 빠뜨리지 않으신다. 어째서일까?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다시 기척을 내시며 이르셨다. 딸아, 지고한 피앗의 나라에서 살 사람은, 내 뜻이 그에 대한 사랑으로 행했고 또 행하고 있는 모든 것을, 그의 시작이요 기원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실, 내 뜻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

 

20 그런데 만물은 내 뜻에 대해 말하고 있는 생명들이다. 내 뜻이 창조된 만물 안에 고귀한 여왕처럼 숨어 있는데,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원하고 있다. 이 여왕을, 곧 내 뜻을 숨기는 장막을 찢는 것이 지식이다. 그것은 내 뜻이 자기 자녀들 가운데로 가서 다스리게 하려는 것이다.

 

21 그러니 누가, 내 뜻이 피조물에 대한 사랑으로 행하는 것을 모든 조물보다 더 잘 알릴 수 있겠느냐? 모든 조물은 모든 이가 언제나 현재적인 행위로 바라보며 접촉하는 것이 아니냐?

 

22 딸아, 이 고귀한 여왕의 열정적인 사랑을 보아라. 여왕은 땅을 단단하게 하여 사람이 안전하게 걸어 다니게 하려고 자기를 땅으로 덮기까지 한다. 그리고 자기를 덮어 숨기고 있는 땅 위를 사람이 걸어가면, 그 여왕답고 고결한 작은 손으로 사람의 발바닥을 잡아 비틀거리지 않게 한다. 사람의 걸음걸이를 확고하게 해 주려는 것이다.

 

23 여왕은 어머니인 땅을 통하여 사람의 발바닥을 자신의 고귀한 가슴에 붙여 안고 있는 동안에도, 자기를 덮고 있는 땅이라는 장막을 떨치고 밖으로 나가기를 원한다. 사람은 그러나 누가 자기의 발걸음을 받쳐 주는지 ― 누가 자기를 위하여 그 거대한 흙더미를 그리도 단단하게 지탱해 주는지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여왕을 밟고 다닌다.

 

24 그러니 고결한 여왕은 계속 땅에 덮인 상태로 있으면서 오직 하느님의 뜻만이 소유할 수 있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인내심으로 인정을 받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사랑을 받기 위해서, 또 오랜 세월 동안 이 땅에 가려진 채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자기가 해 온 일들을 길게 털어놓기 위해서다.

 

25 사실, 여왕의 사랑은 너무나 커서 자기를 덮고 있는 장막을 찢어야 할 필요를 자주 느낀다. 또한 여왕으로서의 주권을 써서 그 장막인 땅을 뒤흔들며 지진을 일으키고, 그 절대적인 권력으로 도시와 사람들을 자기의 가슴속에 숨기기도 한다. 이는 사람의 발밑 땅 속에, 지배하며 다스리는 한 의지가 있다는 것과, 이 의지는 사랑을 주면서도 받지는 못해 슬픔에 겨운 나머지 온몸을 뒤흔들며 그 자신을 알리고 있다는 것을 사람에게 알리려는 것이다.

 

26 복음서에 내가 내 사도들의 발치에 꿇어 엎드려 발을 씻어 주는 놀라운 대목이 나온다. 그때 나는 배반자 유다도 빠뜨리지 않았다. 교회가 기억하는 이 행위는 정녕 겸손하고 형언할 수 없이 자애로운 행위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단 한 번 했을 뿐이다.

 

27 반면에 내 뜻은 한층 더 깊이 내려간다. 사람들의 발을 받치며 땅을 단단히 굳히려고 그들의 발밑에서 계속 일하고 있다. 그들이 심연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고귀한 여왕은 그러나 오랜 세기에 걸쳐 모든 조물 안에 숨어 있으면서, 아무도 이길 수 없는 인내심을 가지고, 자기의 뜻이 알려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28 여왕은 그것이 알려지면 자기를 숨기고 있는 수많은 장막을 찢을 것이고, 오랜 세기에 걸쳐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이 행한 일도 알릴 것이다. 그러니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는 놀라운 것들과 사람의 생각에 미처 떠오른 적이 없는 극단적인 사랑에 대해 말할 것이다.

 

29 그래서 나는 내 뜻에 대하여 너에게 말할 때 창조된 만물에 대해서도 자주 말한다. 창조된 만물의 생명인 내 뜻이 이 만물을 통하여 모든 존재에게 생명을 주고, 영원한 피앗의 나라가 올 수 있도록 그 생명이 알려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

 

30 어디서나 내 뜻은 장막에 가려져 있다. 바람이라는 장막에도 가려져 있다. 그러니 이 장막들로부터 어루만지는 듯한 서늘하고 상쾌한 공기를 사람에게 가져온다. 그리고 재생의 숨도 가져와서, 끊임없이 새로운 삶에 다시 태어나 은총 안에 더욱더 성장하게 한다. 그러나 바람에 가려진 이 고귀한 여왕은 자기의 어루만짐이 퇴짜를 받으며 모욕되고, 자기가 주는 상쾌한 공기가 인간 정욕의 열기로, 재생의 숨이 은총에 치명적인 숨으로 갚음을 받는 것을 느낀다.

 

31 여왕은 장막을 뒤흔든다. 그러면 바람이 격노로 바뀌고, 그 강력한 힘으로 사람들과 도시들과 지역들을 깃털처럼 휩쓸어가면서 이 바람 안에 숨어 있는 고귀한 여왕의 권능을 알린다. 조물치고 내 뜻을 감추고 있지 않은 것은 없다. 그러므로 모든 조물이 내 뜻이 알려지기를 기다리고, 지고한 피앗의 나라의 도래와 그 완전한 승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제15권 36장, 1923년 6월 18일 : 주님께서 성체 성사를 세우시고 친히 영성체를 하신 이유

 

1 하느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 안에 완전히 흡수된 느낌이 들었을 때, 복되신 예수님께서 지상 생활 동안 하신 모든 행위들을 마치 현재 진행 중인 행위들처럼 내게 보여 주셨다.

 

2 마침 성사 안에 계신 그분을 보잘것없는 내 마음에 받아 모신 터였기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지극히 거룩한 그 성사를 제정하시고 당신 자신을 영하신 저 순간을,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 안에서 지금 그렇게 하시는 것처럼 보여 주신 것이다.

 

3 당신 자신을 영하시는 그 행위 안에 얼마나 놀라운 일과 기적이, 또 얼마나 극단적인 사랑이 헤아릴 수 없이 포함되어 있는지! 나의 정신이 그 숱한 신적 기적들 사이에서 오락가락할 즈음,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4 사랑하는 내 지고한 의지의 딸아, 내 뜻은 모든 것을 내포하고, 모든 신적 업적을 현행적인 것으로 보존하며, 아무것도 여기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내 뜻 안에 사는 사람에게 이 뜻이 지닌 모든 선을 알리기를 원한다.

 

5 그러므로 이제 내가 지극히 거룩한 성사를 제정한 후 나 자신을 영하고자 했던 이유를 너에게 알려 주고 싶다.

 

6 그 놀라운 일은 인간의 정신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큰 신비였다. 피조물이 사람이며 하느님이신 분을 영하는 것, 유한한 존재가 무한한 존재를 자신 안에 모시고 이 무한자에게 합당한 신적 영예와 품위와 거처를 드리는 것 ― 이것이야말로 너무나 심오하고 불가해한 신비였기에, 사도들마저 이 신비 앞에서 당황하였고, 그들의 지성이 믿기를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강생의 신비와 다른 여러 신비들은 쉽사리 믿었던 그들이 말이다.

 

7 나는 그런 그들을 믿게 하려고 연거푸 말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 어떻게 했겠느냐? 이 성사를 제정한 내가 모든 것을 돌보아야 했으니, 이는 피조물이 나를 영하더라도 하느님의 신성에 영예와 거룩한 품위와 합당한 거처를 제공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8 그런고로, 딸아, 내가 이 지극히 거룩한 성사를 제정했을 때, 내 인간적인 뜻과 결합된 내 영원한 뜻이 세말까지 축성될 모든 성체들을 내게 보여 주었다. 나는 그들을 보면서 하나씩 차례로 다 영하였다.

 

9 그러자 내 성사적 생명이 그 각각의 성체 안에 고동치면서 스스로를 사람들에게 주기를 열망하는 것이 보였다. 내 인성이 온 인류 가족의 이름으로 그들 모두를 책임지면서 그 자신 안의 거처를 각 성체에게 주었던 것이다.

 

10 그러자 나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는 내 신성이, 신적 영예와 찬미와 감사로 내 존엄에 합당한 예우를 갖춘 모든 성체들에게 에워싸이게 되었다. 그러므로 각각의 성체가 다 내 안에 맡겨져 있었고, 내 인성의 거처와 내 신성의 행렬을 이룬 영예들을 내포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피조물 안에 내려올 수 있었겠느냐?

 

11 더욱이 내가 나 자신을 영함으로써, 오직 이 이유 때문에, 나의 품위와 영예와 거처를 바로 내게 맞갖게,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었고, 피조물의 모독과 냉담과 불경과 배은망덕을 참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나 자신을 영하지 않았다면 나는 피조물 안에 내려올 수 없었을 것이고, 그들은 나를 영할 수 있는 길이나 문이나 수단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12 이것이 내가 무슨 일을 할 때나 으레 쓰는 방식이다. , 내가 일단 행하고 난 뒤, 이 일이 거듭되는 다른 모든 경우에 생명을 주고, 이렇게 거듭된 것을 전부 나의 첫 행위와 결합하여 단 하나의 행위가 되게 하는 것이다.

13 그런데 나로 하여금 모든 세기를 두루 보게 한 것은, 내 뜻의 능력과 무한성과 널리 만물을 내다보는 속성이었다. 내 뜻이 앞으로 성체를 영하게 될 모든 사람과 그 모든 성체들을 보여 주었기에 내가 그 수와 같은 수로 나 자신을 영했던 것이니, 이는 나 자신을 통하여 각 사람에게 가기 위함이었다.

 

14 그토록 큰 내 사랑을 누가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느냐? 사람들의 마음 안으로 내려가려고 나 자신을 영함으로써 신적 권리를 안전하게 보호함과 동시에, 사람들을 준비시켜 나를 영할 권리를 주려고 나 자신뿐만 아니라 내가 나를 영하면서 행한 행위까지도 그들에게 주지 않았더냐?

 

15 나는 놀라움에 잠겨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내가 믿으려고 들지 않는다는 듯이 왜 의심하느냐? 이것이 하느님에게 불가능한 일이겠느냐? 하시며 말씀을 이으셨다.

 

16 이 하나의 행위, 즉 이를 누리기를 원하는 사람의 수만큼 많은 행위들을 이루는 하나의 행위로 말하자면, 내 강생과 생애와 수난의 행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가 아니었느냐? 나는 딱 한 번 강생했고, 내 생애와 수난도 일회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 강생과 생애와 수난은 오직 한 사람을 위해서인 것처럼 모든 사람 각자를 위한 것이었다.

 

17 따라서 이 행위들은 내가 마치 바로 지금 강생하고 또 지금 고난을 받고 있는 것처럼 아직도 현행적이며 각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내가 하느님이 아니라 피조물로서 활동하고 있는 셈이 될 것이다. 피조물은 신적 능력이 없어서 모든 이가 그를 소유하게 하거나 그 자신을 모든 이에게 줄 수 없으니 말이다.

 

18 이제, 딸아, 내 사랑의 또 다른 극단성에 대하여 너에게 말해 주고 싶다. 내 뜻을 행하며 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은 내 인성의 업적들을 두루 싸안게 된다. 사람이 나와 비슷하게 되는 것이 내 간절한 바람이기 때문이다.

 

19 그리고 내 뜻과 그 사람의 뜻이 하나이기에 내 뜻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내가 지닌 모든 선을 그 안에 넣어 둔다. 그러니 바로 성체들을 보관할 자리도 그 안에 만들어 둔다.

 

20 그 사람 안에 있는 내 뜻이 그를 인도하면서 신적인 품위와 공경과 영예로 그를 둘러싸기에 나는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긴다. 내 업적들이 안전한 곳에 보존되고 있음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내 뜻이 바로 모든 선과 내 업적과 내 생명 자체의 행위자요 관찰자며 관리자이기 때문이다.

 

제14권 16장, 1922년 3월 24일 : 하느님 뜻 안에 사는 이는 그의 행위들로 예수님의 성사적 생명의 증식을 보완한다.

 

1 여전히 같은 일상이 계속되고 있는데,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오시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영혼은 내 뜻 안의 행위들을 함으로써 내 생명을 늘려 많아지게 한다. 내 뜻 안의 행위를 열 번 하면 내 생명을 열 배로 늘리고, 스무 번, 백 번, 천 번, 또는 그 이상으로 하면 같은 배수로 내가 불어난다. 성체 축성의 순간에 성체들의 수만큼 내가 많아지는 것과 같다.

 

3 다른 점이 있다면, 성체 축성의 경우에는 내가 많아지기 위해 성체 축성용 빵과 나를 축성할 사제가 필요하지만, 내 뜻의 경우에는 내 뜻이 나를 축성하여 넣을 피조물의 행위들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 피조물은 나를 축성하기 전의 저 빵들처럼 죽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살아 있는 성체다. 아니 그 이상이다. 그가 내 뜻 안에서 수행하는 각각의 행위마다 그 안에 내가 불어나 있는 것이다.

 

4 따라서 내 뜻을 행하며 내 의지 안에서 사는 영혼들과 더불어 내 사랑의 완전한 발로가 이루어진다. 이들은 언제나 보상하는 사람들이다. 피조물이 내게 마땅히 해야 했으나 하지 않은 모든 행위들을 보상하고, 바로 나의 성사적 생명도 보상하기 때문이다.

 

5 내 성사적 생명이 얼마나 자주 지장을 받는지! 영성체하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그 소수의 성체 안에 머물 수밖에 없는가 하면, 나를 축성할 사제가 없을 때도 있다. 그러니 내 성사적 생명이 내가 원하는 만큼 불어나지 못할 뿐더러, 때로는 숫제 존재할 수도 없게 된다.

 

6 , 내 사랑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고 있는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의 수만큼의 성체로 내 생명을 불어나게 하여, 그런 나 자신을 날마다 그들에게 주고 싶건만, 아무리 기다려도 헛일이다. 내 뜻이 효력 없는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이다.

 

7 그러나 내가 결정한 것은 어김없이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다른 길을 택하여 나 자신을 불어나게 하는 것이니, 피조물이 내 뜻 안에서 행하는 살아 있는 모든 행위마다 불어나서, 이들로 하여금 내 성사적 생명의 증식을 보완하게 하는 것이다.

 

8 과연 그렇다. 내 뜻 안에서 사는 영혼들만이 사람들이 하지 않은 모든 영성체와 사제들이 하지 않은 모든 성체 축성을 보상할 수 있다. 그런 영혼들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 내 성사적 생명의 증식까지도 얻게 될 것이다.

 

9 그런고로 너에게 다시 말한다. 너의 사명은 위대하다. 네가 이보다 더 높고, 더 고결하고 숭고하며 거룩한 사명을 위해 택함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네 안에 모든 것이 집중되게 하겠다. 내 생명의 증식마저 예외가 아니다. 일찍이 없었던 새로운 은총의 기적을 내가 일으킬 작정이니 말이다.

 

10 그래서 당부한다. 주의를 기울이며 내게 충실하여라. 네 안에 내 뜻이 언제나 생명을 가지고 있게 하여라. 그러면 내가 네 안에서, 나 자신의 뜻 안에서, 내 완전한 권리와 함께 창조 사업의 완성을 보고,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제14권 40장, 1922년 7월 6일 : 예수님께서 수난 전에 어머니께 강복하신 의미. 예수님의 성사적 생명을 전부 수탁하게 되는 사람

 

1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수난의 시간들」중 거룩한 축복을 청하려고 당신의 거룩하신 엄마에게 가시는 그분을 동반하였다. 그때 지극히 다정하신 그분께서 내 내면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나는 수난 전에 내 엄마에게 강복하고, 엄마의 축복도 받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내 엄마에게만 강복한 것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에게, 생명이 있는 것과 없는 것 모두에게 강복하였다. 피조물이 허약하고 상처투성이이며 궁핍한 것을 보자, 내 가슴이 비통과 자비로 고동치고 있었던 것이다.

 

3 그러므로 나는 말하였다. 가련한 인류야, 네가 얼마나 쇠락의 길을 가고 있는지! 그 상태를 떨치고 다시 일어나도록 너에게 강복한다. 내 강복이 네 안에 성삼위 하느님의 능력과 지혜와 사랑의 삼중 인장을 찍기를, 이것이 네 힘을 되찾아 주 고 너를 치유하며 부유하게 하기를 빈다.

 

4 또 나는 너를 에워싸고 지키도록 내가 빚어낸 모든 조물들도 축복한다. 내 축복을 받은 그들을 네가 받게 하려는 것이니, 너를 위하여 빛과 공기와 물과 불과 먹을거리를 축복한다. 그러면 네가 내 축복에 싸여 잠겨 있는 것 같을 것이다. 너는 그러나 이를 받을 자격이 없기에 내가 내 엄마를 통로로 삼아 내 강복이 너에게 다다르게 한다.

 

5 내 엄마께서 당신의 축복으로 나에게 보답하셨듯이 사람들도 그들의 축복으로 내게 보답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하지만, 아아 슬프다, 그들은 내게 축복으로 보답하기는커녕 모욕과 저주를 퍼붓는다.

 

6 딸아, 그러니 너는 내 뜻 안으로 들어와서 모든 피조물의 날개를 타고 높이 떠올라 그들이 내게 마땅히 주어야 할 축복으로 모두에게 인장을 찍고, 그 모든 축복을 비통과 자애에 찬 내 가슴으로 가져오너라.

 

7 내가 그렇게 하고 나자 그분께서 보답하시기 위함인 듯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딸아, 너에게 특별히 강복한다. 너의 마음과 정신과 활동과 말과 숨 - 네 전체와 네 안의 모든 것에 강복한다.

 

8 그 후 나는 「수난의 시간들」을 계속 따라갔다. 성찬례 제정의 만찬 시간이 되었을 때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내 내면에서 움직이시며 그 안을 손가락 끝으로 세게 두드리셨다. 그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리기에, 이렇게 세게 두드리시니 예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 걸까? 하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분께서 나를 부르시며 말씀하셨다.

 

9 내 말을 귀담아듣게 하려고 너를 불렀다. 두드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서 말이다. 잘 들어라, 딸아, 나는 성찬례를 제정하는 자리에서 모든 사람을 내 주위로 불렀고, 첫 사람에서 마지막 사람까지 그 모든 세대들을 바라보았다. 모든 이에게 내 성사적 생명을 주기 위해서, 그것도 한 번만이 아니라 그들이 이 유형적인 음식을 필요로 할 때마다 주기 위해서였다.

 

10 그렇게 나 자신을 영혼의 음식으로 주고자 했지만, 내 성사적 생명이 멸시와 무관심, 심지어 무자비한 죽음에 둘러싸여 있는 것을 보고 여간 슬프지 않았다. 그리고 심한 통증을 느꼈다. 그것은 내 성사적 생명이 너무나 비참하게 반복적으로 겪게 될 죽음의 온갖 아픔이었다.

 

11 그때 나는 더욱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 뜻의 능력을 발휘하여, 장차 내 뜻 안에서 살게 될 영혼들을 내 주위로 불렀다. 그러자, , 얼마나 기쁘던지! 내 뜻의 능력에 흡수된 듯한 영혼들, 내 뜻이 그들 삶의 중심인 영혼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12 나는 이 영혼들 안에서 내 무한성을 보았고, 모든 것에서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는 나 자신을 보았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내 성사적 생명을 맡겼다. 이 생명을 맡긴 것은 그들이 이를 돌볼 뿐만 아니라 각각의 성체에 대해 그들의 생명으로 내게 보답하게 하려는 것이다.

13 이는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내 성사적 생명은 내 영원한 뜻에 의해 생명을 받는데, 이 영혼들의 생명은 내 뜻의 생명을 그 중심으로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14 따라서 내 성사적 생명이 이루어질 때에 내 안에서 활동하는 내 의지가 그들 안에서도 활동한다. 그러니 나는 내 성사적 생명 안에서 그들의 생명을 느낀다. 그들이 나와 함께 각 성체마다 불어나기에, 내가 생명에 대해 생명을 받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15 , 내가 내 뜻 안에서 네 생명을 이루도록 특별히 부른 너, 그런 첫 사람인 너를 보면, 내 마음에 얼마나 큰 기쁨이 이는지 모른다! 나는 처음으로 네 안에 내 성사적 생명들 전부를 맡겼고, 네가 이를 맡을 수 있게 하려고 지고한 의지의 능력과 무한성에 너를 맡겼다.

 

16 그때부터 너는 내게 현존해 있었고, 나는 너를 내 성사적 생명의 수탁자로 임명했으며, 내 뜻 안에서 살게 될 다른 모든 영혼들도 네 안에 있게 하였다. 그리고 모든 것 위에, 심지어 사도들과 사제들 위에 높은 권한도 너에게 주었다. 이는 당연한 일이니, 내 뜻은 그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기 때문이다.

 

17 사실 그들은 나를 축성하지만 나와 함께하는 생명으로 있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를 돌보지 않고 잊어버린 채 홀로 내버려 둔다.

18 반면에 내 뜻 안에서 사는 영혼들은 나 자신의 생명 안에 있는 생명, 내게서 분리할 수 없는 생명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너를 끔찍이 사랑한다. , 내가 네 안에 있는 나 자신의 뜻을 사랑하는 것이다.

 

 

제21권 16장, 1927년 4월 16일 : 당신의 성사적 생명을 엄마의 마음에 맡기신 예수님. 하느님 뜻에서 생겨난 생명이 할 수 있는 위대한 선. 성모님께서 고통 중에서도 비상한 힘을 얻으신 까닭.

 

1 (『수난의 시간들』중) 예수님께서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를 세우신 시간에 대해 묵상하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기동하시며 내게 이르셨다. 딸아, 내가 하나의 행위를 할 때에는 나의 행위를 그 안에 맡길 사람이 적어도 한 사람은 있는가, 그리하여 그가 내가 행하는 선을 안전하게 수호하며 보존할 수 있는가 하는 것부터 먼저 살펴본다.

 

2 그런데, 지극히 거룩한 성사를 제정하면서 바로 그런 한 사람을 찾았을 때, 여왕이신 내 엄마가 나의 이 행위와 이 위대한 선물을 받아 맡으시려고 당신 자신을 봉헌하시면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3 아들아, 나는 잉태의 순간부터 너를 안전하게 수호하려고 나의 태와 내 온 존재를 너에게 바쳤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제는 이 위대한 선을 받아 맡기 위하여 내 모성적 마음을 너에게 바치고, 너의 성사적 생명 주위에 내 애정, 내 심장 박동, 내 사랑, 내 생각을 - 나 자신 전체를 늘어세운다. 이들이 행렬을 이루어 너를 에워싸고 지키며 사랑하고 보호하게 하려는 것이다.

 

4 또 네가 주는 이 위대한 선물에 대하여 내가 몸소 책임지고 너에게 보상하겠다. 네 엄마를 신뢰하여라. 그러면 이 엄마가 너의 성사적 생명을 지키며 돌보겠다. 그리고 네가 나를 만물의 여왕으로 봉했으니, 나는 존경과 흠숭의 표시로 태양의 모든 빛을 네 주위에 늘어서게 할 권리가 있다. 별들과 하늘과 바다 및 하늘의 모든 주민, 곧 만물을 네 주위에 두어, 사랑과 영광을 네게 돌려주게 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5 그러니 나는 내 성사적 생명의 이 큰 선물을 신탁할 자리를 확보하면서 내게 충실성의 모든 증거를 주신 내 엄마에 대한 신뢰로 지극히 거룩한 성사를 제정하였다. 그분만이 홀로 합당한 피조물로서 내 행위를 유지하고 지키며 보호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6 그러니, 보아라, 사람들이 나를 영할 때에, 나는 나와 떨어질 수 없는 내 엄마의 행위들과 함께 그들 안으로 들어가고, 바로 이 사실로 말미암아 내가 내 성사적 생명을 영속화시킬 수 있다. 나는 따라서 내게 합당한 어떤 큰일을 하고자 하면, 그때마다 먼저 한 피조물을 선택한다. 그럴 필요가 있다. 이는 첫째, 내 선물을 넣어 둘 자리를 얻기 위해서이고, 둘째, 그것에 대한 보답을 받기 위해서다.

 

7 그와 같은 일은 자연계의 질서 속에도 일어난다. 씨를 뿌리고자 하는 농부는 그것을 길 가운데에 뿌리지 않는다. 작은 밭을 찾아가서 먼저 땅을 일구고 고랑을 만든 다음 거기에 씨를 뿌린다. 그리고 씨를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하여 흙으로 덮은 뒤 간절히 수확을 기다린다. 그 자신의 노고와 땅에 맡긴 씨앗에 대해 보상을 받기 위함이다.

 

8 또 어떤 아름다운 조형물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원료를 준비하고 완성품을 넣어 둘 자리를 마련한다. 그런 다음 작업을 시작한다. 나도 너에게 그렇게 하였다. 너를 선택하여 준비시킨 다음 위대한 선물을 너에게 맡겼으니, 이 선물은 곧 내 뜻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내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내 성사적 생명의 운명을 맡겼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너를 믿고 내 뜻의 나라의 운명을 맡기고자 했던 것이다.

 

9 그 후에도 나는 내 사랑하올 선이신 분께서 당신 생애를 통하여 행하시고 겪으셨던 모든 것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을 이으셨다. 딸아, 내 지상 생활은 매우 짧은 기간 동안 계속되었고, 그 대부분을 나는 숨은 생활로 보냈다. 그러나 그처럼 짧은 기간이었다고 해도, 아주 많은 선을 행하지 않았느냐? 그것은 하느님 뜻이 내 인성에 생명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10 그러니 온 교회가 내 생명에서 양식을 취하고, 내 가르침의 샘에서 한껏 물을 마신다. 내 말은 각 낱말마다 각 그리스도인의 입에 놓인 샘이다. 내 모범은 그 하나하나가, 빛과 열을 주며 땅을 비옥하게 하는 태양보다 더 밝고, 더없이 위대한 성덕들을 성숙시킨다.

 

11 누군가가 모든 성인들과 모든 선, 그들의 모든 고통과 영웅적 행위를 매우 짧은 내 생애 앞에 놓고 비교하기를 원한다고 하자. 그 모든 것이 큰 태양 앞에 놓인 작디작은 불꽃에 불과할 것이다.

 

12 그리고 거룩한 뜻이 내 안에 군림해 있었으므로, 내 생애와 수난의 전 과정에 걸쳐 원수들이 나에게 끼친 모든 고통과 굴욕과 당혹과 반대와 고발이 ― 이 모든 것이 그들 자신의 굴욕과 더욱 큰 당혹을 위해 쓰이게 되었다. 실상 하느님 뜻이 내 안에 있었으므로, 태양에게 일어나는 것과 같은 일이 내게 일어났다.

 

13 , 구름이 대기의 아래층을 통해 퍼져나가면서 땅 위를 어둡게 하고 강렬한 태양 빛을 한 순간 덮어 가림으로써 태양을 모욕하려고 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럴 때에도 태양은, 대기 중에 떠도는 구름이 영구적인 생명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구름을 비웃는다. 과연 구름의 생명은 쏜살같이 지나가는 덧없는 것이어서 약간의 바람결에도 흩어지고 만다. 그 반면에 태양은 온 땅을 지배하며 채우는 충만한 빛으로 언제나 승리를 구가하는 것이다.

 

14 같은 일이 내게도 일어났으니, 내 원수들이 내게 행한 모든 것이, 바로 내 죽음까지도 내 인성을 덮은 구름 같았다. 하지만 그 구름이 내 신성의 태양에 접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내 거룩한 뜻의 권능이라는 바람이 일자마자 그것은 흩어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나는 원수들을 종전보다 더 큰 굴욕 속에 있게 한 채, 승리와 영광에 싸여 부활하였다.

 

15 딸아, 내 뜻이 완전히 다스리는 영혼 안에서는 생명의 몇 분이 몇 세기와 맞먹고, 그 몇 세기도 모든 선이 충만한 세기들이다. 이와 반대로 내 뜻이 다스리지 않는 곳에서는 생명의 몇 세기가 그 속에 담긴 좋은 것의 몇 분에 불과할 뿐이다.

 

16 그러니 만일 내 뜻의 다스림을 받는 영혼이 굴욕과 반대와 고통을 겪는다면, 그 굴욕과 반대와 고통은 구름과도 같다. 내 영원한 의지의 전달자에게 감히 손을 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거룩한 피앗의 바람이 수치스럽게도 그들 위에 짐을 부리듯 부리는 구름 말이다.

 

17 나중에 나는, 미어지는 가슴으로 예수님의 시신을 무덤에 남겨 두고 그분과 작별하신 순간의 엄마의 고통에 대해 생각하였다. 그러면서 혼자 중얼거리기를, 어머니에게 예수님을 떠나실 수 있을 만큼 큰 힘이 어떻게 있을 수 있었을까? 과연 예수님은 돌아가셨지만, 그래도 아무튼 예수님의 시신이었는데, 어머니의 사랑이, 이 예수님에게서 한 걸음이라도 발을 떼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불길로) 어머니를 삼키지 않았을까? 어머니는 그러나 예수님을 떠나셨다. 그러니 얼마나 큰 용맹이며 힘이겠는가! 하였다.

 

18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기척을 내시며 이르셨다. 딸아, 내 엄마에게 어떻게 나를 떠나실 힘이 있었는지 알고 싶으냐? 그분 힘의 모든 비밀은 그분을 다스린 내 뜻 안에 있었다. 그분은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으로 사셨으므로 측량할 길 없는 힘을 지니셨다.

 

19 더구나 너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고통에) 꿰뚫리신 내 엄마가 무덤에 있는 나를 떠나신 순간, 내 뜻이 그분을 두 개의 끝없는 바다에 잠기게 하였으니, 하나는 고통의 바다였고, 하나는 더 넓게 펼쳐진 기쁨과 지복의 바다였다. 그러기에 고통의 바다가 온갖 순교적 고통을 끼치는 한편, 기쁨의 바다는 그분에게 온갖 만족을 드렸던 것이다.

 

20 그분의 아름다운 영혼은 저승으로 나를 따라오시어, 모든 성조들과 예언자들과 그분의 부모님과 우리의 소중한 성 요셉이 나를 위해 마련한 잔치 자리에 참여하셨다. 저승은 나의 현존으로 말미암아 낙원이 되었으니, 나는 고통 중에 있는 나와 불가분적 관계에 있었던 분을 사람들의 이 첫 축제 자리에 참여시키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었다.

 

21 그리하여 그분은 너무나 기쁘신 나머지 내 시신을 떠날 힘을 얻으셨으므로, 물러가시어 구원 사업의 완성인 내 부활의 성취를 기다리셨다. 기쁨이 고통 중에 계신 그분을 지탱하였고, 고통이 기쁨 중에 계신 그분을 지탱했던 것이다.

 

22 내 뜻을 소유한 사람에게는 힘도 능력도 기쁨도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모든 것을 마음껏 누릴 수 있을 만큼 가지고 있다. 너는 네가 나의 부재로 불길에 삼켜지는 느낌이 들 때, 이를 내적으로 체험하지 않느냐? 거룩한 피앗의 빛이 이 피앗의 바다를 만들어, 너를 행복하게 하며 생기를 주니 말이다.

 

 

5) 제5시간 : (오후 9시-10시) 겟세마니의 고뇌 첫째 시간

 

제9권 25장, 1909년 11월 25일 : “나의 일차적인 사형 집행자는 사랑이었다.”

 

1. 평소와 다름없이 있으면서 동산에서 겪으신 예수님의 고뇌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그러자 복되신 예수님께서 잠시 모습을 보여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영원한 사랑은 나의 내면 전체에 작용한 반면, 인간은 다만 내 인성의 외피에만 영향을 끼쳤을 뿐이다. 그러므로 내 고뇌의 시간 동안 - 인간이 아니라 - 영원한 사랑이, 무한한 사랑, 헤아릴 수 없는 사랑, 숨어 있는 사랑이 불타는 못으로 나를 꿰뚫고, 불타는 가시관을 내 머리에 씌우고, 들끓는 쓸개즙을 마시게 하였다. 그리하여 내 인성은 그 숱한 종류의 순교적 고통을 동시에 다 견딜 수 없어졌으므로 엄청난 양의 피를 쏟아내었고,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이렇게 부르짖을 정도가 되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만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마르 14,36).

 

3. 이 말은 그러나 이후의 수난 과정 속에서 다시는 나온 적이 없었거니와, 수난 과정 전체에 걸쳐 겪었던 모든 것을 나는 동산의 고뇌 속에서 전부 겪었고, 그것도 더욱 격렬하고 더욱 고통스럽고 더욱 내밀한 방식으로 겪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내 뼛속까지 깊이, 내 마음속 가장 깊은 데까지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결코 여기까지 들어올 수 없었지만, 사랑은 모든 것에 도달할 수 있고 그 무엇도 사랑에는 저항할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나의 일차적인 사형 집행자는 사랑이었다.

 

4. 이런 연유로 해서, 내 수난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사형 집행자로서 행동하고 있는 이들에게 한 번도 비난의 눈길을 보내지 않았다. 그들보다 더 잔인하고 더 극성스러운 사형 집행자, 사랑이라는 집행자가 내 안에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외적인 집행자가 도달할 수 없는 곳, 즉 그들 손이 미치지 못하는 내 존재의 작은 부분에까지 사랑은 그 작용을 계속하면서 나의 어떤 것도 봐주지 않았던 것이다.

5. 이는 모든 영혼들 안에도 일어나는 현상이니, 일차적인 작용은 사랑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사랑이 작용하여 영혼을 사랑 자신으로 채우고 나면,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은 다만 사랑이 영혼 내부에서 행한 작업의 분출에 불과할 따름이다.

 

 

제14권 75장, 1922년 11월 20일 :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사랑의 흐름들

 

1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겟세마니에서 겪으신 그 숱한 고통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분은 홀로 계셨으니, , 모든 사람에게서 버림받으셨으니, 그것은 인간이 끼친 고통이 아니라 그분의 영원하신 아버지에게서 오는 고통이었다.

 

2 예수님과 하늘에 계신 아버지 사이에는 사랑의 흐름들이 있고, 이 흐름들 안에 모든 피조물도 위치해 있으니, 피조물 각자에 대한 하느님의 모든 사랑과 피조물 각자가 하느님께 빚져 있는 모든 사랑도 그 안에 있었다. 이 빚져 있는 사랑은 피조물이 마땅히 사랑해야 했으나 하지 않은 사랑이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다른 모든 고통을 능가하는 고뇌를 겪으셨던 것이다. 피땀을 흘리실 정도로...

 

3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예수님께서 위로를 얻으시려고 나를 가슴에 붙여 안으시며 말씀하셨다. 딸아, 사랑의 고통은 더없이 격심한 고통이다. 보아라, 내 아버지와 나 사이에 있는 이 사랑의 흐름들 안에 모든 피조물이 내게 빚져 있는 모든 사랑이 있으니, 그것은 배신당한 사랑, 부인된 사랑, 퇴짜를 맞은 사랑, 알려지지 않은 사랑, 짓밟힌 사랑 등등이다. , 이것이 내 가슴을 얼마나 날카롭게 꿰찌르는지 숨이 끊어지는 느낌이 들 지경이다!

 

4 나는 사람을 창조하면서 사람과 나 사이에 사랑의 흐름들을 많이 베풀어 두었다. 사람을 창조한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서였다. 사람과 나 사이를 흐르는 사랑의 흐름들을 수많이 배치했으니, 사람의 어느 한 부분도 이것이 스며들지 않는 곳이 없었다.

 

5 그러니 사람의 지성에는 내 지혜의 사랑이 흘러들었고, 그의 눈에는 내 빛의 사랑이, 그의 입에는 내 말의 사랑이, 그의 손에는 내 거룩한 활동의 사랑이, 그의 뜻에는 내 뜻의 사랑이 흘러들었다.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6 사람은 그러므로 자기 창조주와 지속적인 소통 속에 있도록 만들어졌다. 하지만 내 사랑의 흐름이 사람 안에 흘러들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가 어떻게 나와의 지속적인 소통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

 

7 사람은 죄를 범함으로써 이 모든 흐름을 단절시켰고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너는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겠느냐?

 

8 태양을 보아라. 그 빛살이 지표에 쏟아지면서 땅이 그 열을 느낄 정도로 온통 휩싼다. 땅에 있는 모든 것에 생명과 풍요한 생산력을 줄 만큼 활력이 넘치는 실질적인 열이다.

 

9 그러므로 태양과 지구가 서로 지속적인 소통 속에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물며 진실로 영원한 태양인 나 자신과 사람 사이의 소통 관계야 얼마나 더 긴밀한 것이겠느냐!

 

10 그런데 사람이 만일 지구와 태양 사이에 들어 지표에 쏟아지는 빛의 흐름을 차단할 힘이 있다면, 온갖 해악을 다 끼치지 않겠느냐? 태양은 모든 빛줄기를 자신 안에 거둬들이고 물러갈 것이고, 지구는 생명도 생산력도 없이 어둠 속에 남아 있게 될 것이다. 그런 사태를 부른 원인이 되었다면 무슨 징벌을 받아도 싸지 않겠느냐?

 

11 사실 사람이 그런 일을 저질렀기에, 내가 하늘에서 땅에 내려와 단절된 모든 사랑의 흐름을 다시 잇고자 하였다. 하지만, ,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는지! 그러나 사람은 여전히 배은망덕하게도 내가 회복한 그 흐름들을 계속 끊어대고 있다!

 

 

1721, 19241030: 천사들이 천사들인 까닭. 천사들의 위계질서를 결정짓는 요인. 예수님의 사랑의 고통이 수난 자체보다 월등 괴롭고 잔혹한 수난이 되었던 이유.

 

1 나의 내밀한 고통은, 곧 내 마음으로 느끼는 이 순교적 고통은 펜에 맡길 수도 종이에 옮겨 쓸 수도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그렇다! 다정하신 예수님의 부재로 인한 이 고통에 비할 수 있는 순교는 달리 없다. 순교자는 몸에 상처를 받으며 죽임을 당하지만, 그분 부재의 고통은 영혼에 상처를 입히며 그의 맨 안쪽 힘줄마저 찢어발기는 고통이다. 더욱 나쁘게도 그것은 영혼을 죽지 않게 하면서 죽이는 순교로서, 사랑과 고통의 쇠모루 위에 영혼을 올려놓고 끊임없이 내려치는 것이다.

 

2 그러나 나의 이 내적 고통에 대해서는 그만 언급하고 지나가겠다. 아무래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나가면서,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처럼 모든 이에게, 곧 여왕이신 내 엄마와 천사들과 성인들 및 모든 피조물에게 나를 위해서 한마디 말을, 하나의 짧은 기도를 예수님께 바쳐달라고 애걸하고 싶을 따름이다. 예수님께서 그 모든 이의 기도를 들으시고 당신 뜻의 작은 딸을 불쌍히 여기시어, 귀양살이 중인 이 가혹한 땅에서 데려가 주시도록 말이다.

 

3 나중에, 예수님 대신 내 천사가 곁에 있는 것 같아서 어째서 천사일까? 예수님이 아니고? 하는 의문이 뇌리를 스쳤던 기억이 났다.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 무렵,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걸음을 옮기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음성이 들렸다.

 

4 딸아, 천사들이 천사들인 까닭이, 곧 그들이 내 손에서 나왔을 때와 같은 아름다움과 순수함을 유지해 온 까닭이 무엇인지 알고 싶으냐? 그것은 그들이 창조되었던 저 원초적 행위 안에 언제나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들 존재의 원초적 행위 안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내 뜻의 단일한 행위 안에 있는 것인데, 내 뜻은 행위들의 연속을 모르기에 변함이 없고, 감소하거나 증가하는 법이 없으며, 그 자신 내부에 상상 가능한 모든 선들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5 천사들은 그러므로 그들을 태어나게 한 내 뜻의 그 단일한 행위 안에 머물러 있어서 변함없고 아름다우며 순수한 상태를 보존한다. 자기네 존재의 기원에서 아무것도 잃지 않은 상태에 있으므로, 그들의 모든 행복이 내 뜻의 단일한 행위 안에 자동적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그들은 내 뜻의 영역 안에서 모든 것을 발견한다. 내 뜻이 그들에게 주는 것만으로 만족할 뿐, 행복해지려고 그 외의 다른 무엇을 원하는 일이 없는 것이다.

 

6 그렇지만 우수성의 등급에 따라 각기 다른 천사들의 합창대가 있다. 그 까닭이 무엇인지 알고 싶으냐? 사실 어떤 천사들은 다른 천사들보다 내 옥좌에 더 가까이 있다. 어째서 그런 위치에 있겠느냐?

 

7 왜냐하면, 내 뜻이 어떤 천사들에게는 내 뜻의 행위 하나만을 나타내 보이고, 어떤 천사들에게는 둘을, 다른 천사들에게는 셋을, 또 다른 천사들에게는 일곱을 나타내 보이고, 하나의 행위가 더 보태질 때마다 그만큼 더 많이 알려 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천사들은 다른 천사들보다 우수해지고 더 큰 능력을 받으며 더욱더 내 옥좌 가까이에 있을 자격을 갖추게 된다.

 

8 따라서 내 뜻이 스스로를 나타내 보일수록, 그리고 그들이 내 뜻 안에 머물러 있을수록, 그들은 그만큼 더 드높여지고 아름다워지며 행복해지고 다른 이들보다 우수한 천사들이 된다. 그러니, 보아라, 모든 것이 얼마나 내 뜻 안에 있는지를, 또한 천사들이 얼마나 자기들이 태어난 바로 그 뜻 안에 머무르며 결코 그 밖으로 나가지 않는지를.

 

9 그런즉 천사들의 각기 다른 합창대 및 그들의 서로 구분되는 아름다움과 다양한 사명과 천상적 위계(位階)는 내 지고한 뜻에 대한 지식의 다소에 따라 이루어진다.

 

10 네가 내 뜻에 대하여 하나를 더 아는 것, 내 뜻 안에서 하나의 행위를 더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안다면, 또 이미 알게 된 나의 그 뜻 안에 머무르며 활동하는 것에 의해 각 피조물의 사명과 아름다움과 우수성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안다면, ! 내가 내 뜻에 대해 알려 준 여러 지식의 진가를 네가 얼마나 더 확실히 인정하게 되겠느냐! 내 뜻에 대한 지식이 하나씩 더해질 때마다 영혼을 탁월한 높이에 이르게 하므로, 천사들마저 놀라움과 무상의 즐거움을 느끼면서 끊임없이 나에게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를 외치는 것이다.

 

11 내 뜻은 스스로를 나타내 보이며 무에서 유()를 불러 창조한다.

내 뜻은 스스로를 나타내 보이며 (피조물을) 아름답게 한다.

내 뜻은 스스로를 나타내 보이며 피조물을 드높인다.

내 뜻은 스스로를 나타내 보이며 피조물 안에 신적 생명을 더욱더 확장한다.

내 뜻은 스스로를 나타내 보이며 피조물 안에 일찍이 알려진 적 없는 새롭고 경이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

 

12 그러므로 내가 내 뜻에 대해 너에게 드러내 보인 많은 것을 보면, 내가 너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며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고, 너의 삶은 내 뜻 안에서 하는 행위들의 지속적인 연쇄(連鎖)가 되어야 한다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13 만약 피조물이 천사들처럼 내 뜻이 그를 태어나게 한 저 원초적 행위 밖으로 절대 나가지 않는다면, 이 땅에도 얼마나 큰 질서가,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나타나겠느냐? 딸아, 너는 그러니 나의 뜻이 너를 창조한 기원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그리고 나의 뜻이 언제나 너의 첫 행위가 되도록 하여라.

 

14 그 후 나는 묵상 중에 겟세마니 동산에 계신 예수님 곁에 있으면서, 그토록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 안으로 들어가게 해 주시기를 빌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 다시 움직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15 딸아, 내 사랑 안으로 들어와서 결코 밖으로 나가지 마라. 네가 내 사랑을 따라다니거나 이 사랑 안에 멎어 있으면, 내가 인간을 얼마나 사랑해 왔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이 피조물을 향한 사랑이다.

 

16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언제까지나 사랑하기로 작정하셨다. 그러므로 인간 안팎의 그 무엇에 있어서든지, 끊임없이 지속되는 새로운 사랑의 행위로 다가가시기로 하셨다. 따라서 이 피조물의 생각과 눈길과 말과 숨과 심장 고동과 다른 모든 것 안에 영원하신 사랑의 행위가 흘러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7 그런데 하느님께서 언제까지나 또 모든 것 속에서 인간을 사랑하려고 작정하신 것은, 이 피조물도 모든 것 속에서 새롭고 끊임없는 사랑으로 보답해 주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사랑받기 위해서 사랑하고자 하셨으니, 사랑을 주면서 또한 받기를 원하신 것이다.

 

18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이 피조물은 사랑의 리듬을 유지하며 자기 창조주의 사랑의 메아리에 응답하기를 원하지 않았을 뿐더러 이 사랑을 배척하고 부인하며 모욕하기도 하였다.

 

19 하느님께서는 이 모욕 앞에서도 그치지 않으시고 그에 대한 새롭고 끊임없는 사랑을 계속해 오셨다. 인간이 이 사랑을 받고자 하지 않았으므로, 하늘과 땅이 그것으로 가득 찬 채 기다리고 있었다. 이를 받아 가질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사랑에 응답하는 사랑을 받기 위해서였다.

 

20 사실 하느님께서 결정하시고 제시하신 후에는 이를 반대하는 일이 얼마나 일어나든 아무것도 그분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 하느님은 당신의 불변성 안에 변함없이 머물러 계신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하느님의 말씀인 내가 이 세상에 왔으니, 이는 또 하나의 극한적인 사랑 때문이었다. 인성을 취한 내가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운 그 모든 사랑을 나 자신 안에 모아들여,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셨고 또 주시려고 하신 사랑과 같은 정도의 사랑으로 그분께 보답하려고 했던 것이다. 나는 그리하여 각 피조물의 각 생각의 사랑이 되었고, 각각의 눈길과 말과 심장 박동과 활동과 발걸음의 사랑이 되었다.

 

21 따라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영원하신 사랑의 손이 내 인성의 가장 작은 심줄 속에서도 활동하시면서 그분의 신성이 피조물에게 주려고 하셨던 모든 사랑을 수용할 능력을 내게 주셨다. 이는 내가 모든 이의 사랑을 그분께 드릴 수 있도록 나 자신을 각 사람의 각 행위의 사랑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22 그러니 너의 생각 하나하나가 내 끊임없는 사랑의 행위들에 둘러싸여 있다. 네 존재 안팎의 그 무엇도 나의 거듭된 사랑의 행위들에 둘러싸이지 않은 것이 없다. 이 때문에 내 인성은 겟세마니에서 그토록 많은 사랑의 무게에 짓눌려 신음하고 숨을 헐떡이며 극도의 괴로움을 겪었다. 사랑을 주면서 받지는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응답 없는 사랑의 고통이야말로 더할 수 없이 쓰라리고 잔혹하며 가차 없는 고통이었고, 나의 수난 자체보다 월등 괴로운 것이었다.

 

23 ! 사람들이 나를 사랑했다면 그리도 무거운 사랑의 무게가 가벼워졌을 것이다. 사랑이 그 응답을 받으면 사랑하는 이의 그 사랑으로 갈증이 풀리고 배부름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이 사랑을 받지 못하면 미쳐 날뛰며 헛소리를 할 지경이 되고, 스스로 내뿜은 사랑이 죽음의 고통으로 갚음을 받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그러니, 보아라, 내 사랑의 수난이 얼마나 월등 쓰라린 수난이 되었겠느냐! 내 수난을 통해 그들은 내게 단지 한 번의 죽음만을 안겨 주었지만, 사랑의 수난을 통해서는 그들의 무응답으로 말미암아 내가 나에게서 나온 사랑의 행위들과 같은 수의 죽음을 겪었던 것이다.

 

24 그러므로, 딸아, 너는 내게로 와서 그리도 엄청난 사랑에 보답해 다오. 네가 내 뜻 안에 들어오면 그 모든 사랑이 현행 중인 것처럼 있음을 볼 것이다. 이를 너 자신의 것으로 삼고, 나와 함께, 모든 이의 사랑의 보답을 내게 줄 수 있도록 너 자신이 그들 각 행위의 사랑이 되어라.

 

 

6) 제6시간 : (오후 10시-11시) 겟세마니의 고뇌 둘째 시간

 

제14권 46장, 1922년 7월 28일 : 각 피조물을 위하여 이중의 죽음을 치르신 예수님

 

1 다정하신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 안에 온전히 잠겨 있는 느낌이 들자 그분께서 오셔서 말씀하셨다.

 

2 딸아, 너의 지성을 나의 지성과 하나 되게 함으로써 네 지성이 모든 피조물의 지성 안을 순환하며 그들의 각 생각과 결합되게 하여라. 그러면 그 생각들을 내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같은 수의 생각들로 대치할 수 있고, 따라서 모든 생각들이 거룩하게 행해진 것처럼 내가 영광을 받게 된다.

 

3 너의 뜻을 내 뜻 안에 펼쳐, 내 뜻과 네 뜻이 이루는 그물에 붙들리지 않고 빠져나가는 것이 없게 하여라. 내 안에 있는 내 뜻과 네 안에 있는 내 뜻이 한데 녹아 동일하고 끝없는 영역을 이루어야 한다.

 

4 하지만 나는 너의 뜻이 내 뜻 안에서 널리 퍼질 필요를 느낀다. 내가 빚어낸 모든 조물 중 단 하나도 거기에서 빠져나가지 않게 함으로써 내가 그 만물을 통해 인간의 뜻 안에서 작용하는 하느님 뜻의 메아리를 들으며 그 안에 나의 모상을 낳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5 보아라, 딸아, 나는 각 피조물을 위하여 이중의 죽음을 치렀다. 하나는 사랑의 죽음이요, 또 하나는 고통의 죽음이었다. 나는 피조물을 창조할 때 온통 사랑의 복합체로 빚어내어 사랑이 아닌 것은 아무것도 그에게서 나오지 않게 하였다. 그리하여 나의 사랑과 피조물의 사랑이 계속적인 흐름 속에 있게 하였다.

 

6 인간은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았고, 배은망덕하게도 모욕까지 하였다. 나는 내 거룩하신 아버지께 이 사랑 결핍을 보상해야 했으니, 각 사람에 대한 사랑의 죽음과 모욕들에 대한 고통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그렇게 하였다.

 

7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동안, 나는 온통 불꽃에 휩싸이신 그분을 보았다. 각 사람을 대신하여 그분을 태우며 죽음을 안겨 주는 불꽃이었다. 더욱이 각각의 생각과 말과 행위와 일과 발걸음 등등이 같은 수의 불꽃이 되어 예수님을 태워 죽이기도 하고 다시 살리기도 하는 것이었다.

 

8 그때 예수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모상이 되고 싶지 않으냐? 고통의 죽음을 받아들였던 것과 같이, 사랑의 죽음도 받아들이지 않겠느냐?

 

9 나는 , 예수님,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고통의 죽음을 받아들인 것에 대해서도 저는 아직 심한 반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훨씬 더 혹독해 보이는 사랑의 죽음을 제가 어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10 그 생각만 해도 몸이 떨립니다. 저의 보잘것없는 본성이 더 형편없이 꺾여 이젠 망했다고 여길 지경입니다. 저에게 도움과 힘을 주십시오. 아무래도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것 같으니 말입니다. 하였다.

 

11 그러자 예수님은 매우 자애로우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덧붙여 말씀하셨다. 내 가련한 딸아, 용기를 내어라. 두려워하지 마라. 그리고 네가 반감을 느낀다고 해서 심란해하지도 마라. 너를 안심시켜 주려고 하는 말이지만, 이 반감 역시 나를 닮은 점이다.

 

12 내 인성은 거룩했으며 고통 받기를 한없이 열망하고 있었지만, 이 인성 역시 그런 반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반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선을 행하면서, 또 받아 마땅한 고통을 받아들이면서 느끼는 모든 반감이었다.

 

13 나는 그래서 나를 심하게 괴롭힌 이 고통들을 적지 않게 겪어야 했다. 그들에게 선을 행하고 싶은 마음을 일으키기 위해서, 또 그들의 고통을 완화시켜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나는 겟세마니에서 아버지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마태 26,39) 하고 부르짖었다.

 

14 너는 그렇게 말한 것이 나였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네 생각이 틀렸다. 나는 고통 받는 것을 미치도록 좋아하였고 죽음도 좋아하였다. 내 자녀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 말이다.

 

15 그러므로 그것은 내 인성 안에 메아리친 온 인류 가족의 부르짖음이었고, 그들에게 힘을 주려고 나도 그들과 함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세 번이나 부르짖었다. 마치 나 자신의 말인 것처럼 그렇게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말하고 있었지만, 짓눌려 으스러지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16 네가 느끼는 반감도 네 것이 아니고, 내 반감의 메아리다. 그게 네 것이라면 내가 너에게서 제거했을 것이다. 딸아,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또 다른 나 자신의 모상을 낳고 싶기에 네가 이를 수락하기 바란다. 내가 몸소 내 사랑의 죽음들 도장을 네 뜻 안에 찍어 주겠다. 이것이 나의 뜻 안에 널리 퍼져 나가며 타오를 것이다.

 

17 그분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고 당신의 거룩하신 손으로 내게 그 도장을 찍으시고 사라지셨다.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기를 빈다.

 

 

제16권 33장, 1924년 1월 4일 : 예수님께서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하며 맺으신 아버지와의 계약

 

1 예수님께서 겟세마니에서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Non mea voluntas, sed Tua fiat).라고 하신 말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걸음을 옮기시며 말씀하셨다.

 

2 딸아, 내가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라고 한 것이 내 수난의 잔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느냐?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인간의 뜻이라는 잔 때문이었다. 고약한 악덕이 어찌나 넘치도록 가득 찬 잔인지 하느님의 뜻과 일치해 있었던 나의 인간적인 뜻이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을 정도로 큰 역겨움과 공포와 경악을 느꼈던 것이다.

 

3 하느님의 뜻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인간의 뜻은 추악하기 그지없다. 하느님의 뜻은 그러나 거의 잔속에 있는 것처럼 개개의 피조물 안에 있는 것이다. 인간의 사악치고 그의 뜻이 그것의 기원이고 씨앗이며 샘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내 뜻의 거룩함 앞에서 인간의 뜻이 낳은 그 모든 사악한 것들로 뒤덮여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나는 죽어 가고 있음을 여실히 느꼈다. 신성이 나를 지탱해 주지 않았다면 실제로 죽었을 것이다.

 

4 그런데 내가 왜 세 번이나 Non mea voluntas, sed Tua fiat(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하고 말했는지 아느냐? 나는 피조물의 모든 뜻이 결탁하여, 그리고 그들의 모든 악이 한꺼번에 나를 덮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아버지께 그 모두를 대신하여 더 이상은 땅에서 인간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인간의 뜻은 사라지고, 아버지의 뜻이 다스리소서! 하고 부르짖었다.

 

5 그때, 곧 내 수난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나 자신이 모두를 대신하여 Non mea voluntas, sed Tua fiat.이라고 말하기를 원한 것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Fiat Voluntas Tua(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를 부르는 일이 나의 가장 중요하고도 중요한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때부터 나는 땅에서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Fiat Voluntas Tua 시대를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6 그것도 세 번이나 거듭 말함으로써 첫 번째는 아버지의 뜻을 간청하고, 두 번째는 그 뜻을 내려오게 하고, 세 번째는 그 뜻을 통치자며 지배자로 정하였다. 그리고 Non mea voluntas, sed Tua fiat.이라고 함으로써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뜻을 비우고 하느님의 뜻으로 채우고자 하였다.

 

7 숨을 거두기 전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나는 내가 세상에 온 일차적인 목적 ― 하느님의 뜻이 피조물 가운데서 영예로운 첫 자리를 차지하게 하려는 그 목적에 대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와 협의하고자 하였다. 이 지고한 뜻을 배척한 것이 인간의 첫 행위였고, 따라서 그것이 우리 성삼위가 받은 첫 모욕이었으며, 인간의 다른 모든 악은 이차적인 것이었으니 말이다.

 

8 그러므로 나는 먼저 Fiat Voluntas Tua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야 했고, 이 목적을 이룬 연후에 나의 피로 구원 사업을 이루어야 했다. 사실 구원 사업은 이차적인 일이었다. 내 뜻이 언제나 모든 것 가운데서 가장 우선적인 권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구원 사업이 맺은 열매의 효과가 먼저 보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내 거룩하신 아버지와 맺은 계약에 의한 것이었다.

 

9 그 계약은 아버지의 피앗이 인간 창조의 참된 목적과 내가 지상에 온 일차적인 목적을 구현하면서 땅으로 와서 다스리심으로써 인간이 구원 사업의 열매를 받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내 지혜에 질서가 없지 않았겠느냐? 악의 시초가 인간의 뜻이었으니 내가 질서를 잡고 회복해야 했던 것이 이 뜻이었고, 그리하여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뜻이 다시 하나로 결합되게 해야 했던 것이다.

 

10 구원 사업의 열매를 먼저 볼 수 있었다고 해서 그것이 먼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내 뜻이 임금과 같이, 만인 가운데 맨 첫째이면서도 임금으로서의 영예와 품위에 어울리게 자기 백성과 군대와 대신과 제후들 및 궁중의 모든 조신들을 앞세우고 맨 나중에 도착하는 것이다. 그런즉, 구원 사업의 열매가 먼저 필요했다면 그것은 지고한 임금인 내 뜻이 조신과 백성과 군대와 대신들을 찾아 얻게 하기 위함이었다.

 

11 그러나 너는 아느냐? 누가 나와 함께 맨 먼저 Non mea voluntas, sed Tua fiat.이라고 부르짖게 되어 있었는지를? 그것은 내 뜻의 갓난아기, 내 작은 딸이었다. 자기의 뜻에 대해 너무나 큰 역겨움과 공포를 느끼기에 벌벌 떨면서 내게 들러붙어 나와 함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라고 소리 높여 부르짖을 딸이었다. 그리고 울면서 나와 함께 이렇게 말을 이을 것이었다. Non mea voluntas, sed Tua fiat.

 

12 ! 그렇다. 내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와 맨 먼저 맺은 저 계약 안에 네가 나와 함께 있었다. 이 계약을 유효하게 하기 위해서 적어도 한 피조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누구에게 그 계약을 주겠느냐? 누구에게 맡기겠느냐? 이를 더 안전하게 맡기려고 나는 너에게 내 수난의 모든 열매들을 선물로 주어, 이 열매들로 하여금 굉장히 강력한 군대처럼 네 둘레에 대열을 이루게 하였다. 이들이 내 뜻의 당당한 호위대를 이루면서 너의 뜻과 맹렬한 전투를 벌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13 그러니 네가 지금 놓여 있는 처지에서 용기를 내어라. 내가 너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일랑은 깨끗이 사라지게 하여라. 그것은 내 뜻에 해로울 것이다. 내가 내 뜻의 계약을 네 안에 맡겨 두고 있으니 말이다. 평안히 머물러 있어라. 내 뜻이 너를 정화하고 또 너의 뜻이라고는 추호도 없게 하려고 너를 시험하고 있는 것인즉, 온전히 평온한 마음으로 내 의지 안을 계속 날아다니며,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라.

 

14 네 예수가, 너의 안팎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한층 더 뚜렷하게 내 뜻을 드러내게 하면서 너의 인간적인 뜻 안에 내 뜻의 영역을 넓힐 것이다. 너의 내면에서 나 자신이 앞장서서 본을 보이며 나아가리니, 네 안의 모든 것을 내 뜻에 따라 이끌어 가기 위함이다.

 

15 나는 다만 내 아버지의 뜻에 열중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에도 종사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버지의 뜻 안에 모든 것이 있다. 그런고로 나는 모든 것에 종사하였다. 또한 나는 하나의 기도를 가르쳤다. 그 기도가 바로 거룩하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였다. 그런고로 그 기도는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기도였다.

 

16 나는 따라서 지고하신 뜻에 종사하는 것이 아니라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내 말과 내 고통이, 내 일과 내 심장 고동이 온통 하늘의 뜻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17 너도 그렇게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내 뜻의 불이 그 영원한 입김으로 너를 태울 정도로 이 뜻 안을 돌아다녀라. 그리하여 다른 지식은 다 잊어버리고 언제나 오로지 내 뜻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

 

 

7) 7시간 : (오후 11-12) 겟세마니의 고뇌 셋째 시간

 

1334, 19211119 : 겟세마니의 예수님 ― 그 고뇌와 두 사람의 지주. 진리를 아는 데 필요한 내적 자세. 진리의 단순성.

 

1 겟세마니에서 고뇌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따뜻한 동정심을 표현하면서 그분을 가슴에 붙안고 그 치명적인 식은땀을 애써 닦아내고 있었는데, 고통에 잠기신 그분께서 숨을 거두시려는 듯 쇠잔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이 정원에서 겪은 고뇌는 여간 혹독한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십자가 위에서의 임종 고통보다 더 심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십자가 고통은 모든 것을 이루고 이긴 것인 반면, 여기 정원에서는 고통이 시작되고 있었고, 고통은 원래 그 끝 무렵보다 시작될 때 더 심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3 그 가운데서도 가장 뼈아픈 고통의 순간은 모든 죄들이 차례차례 내 앞으로 오고 있을 때였다. 내 인성이 그 모든 죄의 극단적인 흉악성을 사무치도록 절감하고 있었으니, 각각의 죄가 하느님에게 죽음을!이라는 각인을 지니고 있었고 저마다 칼로 무장한 채 나를 죽이려고 드는 것이었다.

 

4 하느님의 신성 앞에 있는 죄는 소름끼치도록 혐오스러운 것이기에 죽음 그 자체보다 더 끔찍하게 보였던 것이다. 죄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렇게 절감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죽어가고 있음을 느꼈고 실제로 죽은 거나 다름없었다.

 

5 아버지께 울부짖었지만 그분은 내 간구를 들어주시지 않았다. 내가 죽지 않도록 도와줄 사람도 거기에는 없었다. 큰 소리로 모든 피조물을 부르며 나를 측은히 여겨 달라고 외쳤으나 허탕이었다. 그러므로 내 인성은 기력이 쇠하여 막 마지막 치명타를 받아들일 판이었다.

 

6 그러나 누가 그 처형을 막아 내 인성을 죽음에서 지켜 주었는지 알겠느냐? 우선은 내 엄마, 나와 떨어질 수 없는 엄마가 계셨다. 도움을 청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내 곁으로 날아오셔서 나를 지탱해 주신 것이다. 나는 그분께 내 오른팔을 기댔다. 거의 죽어가면서 엄마를 바라보니, 엄마 안에 내 뜻의 무한이 원래 그대로의 모습으로 고스란히 있었고, 나의 뜻과 그분의 뜻 사이에는 도무지 갈라진 틈이 없었다.

 

7 내 뜻은 생명이다. 아버지의 뜻이 확고부동해서 죽음이 피조물로부터 내게 닥쳐오고 있었지만, 내 뜻의 생명을 지닌 또 다른 피조물이 나에게 생명을 주었던 것이다. 이 피조물이 내 엄마이시니, 내 뜻의 놀라운 기적으로 나를 잉태하여 시간 속에 낳아 주신 그분께서 여기서도 내게 두 번째로 생명을 주시어 구원 사업을 완수하게 하신 것이다.

 

8 그런 다음 나는 내 왼쪽에 있는 내 뜻의 작은 딸을 보았다. 너를 선두로 내 뜻의 다른 딸들이 뒤를 잇고 있었다.

 

9 내가 바란 것은 내 엄마를 나와 함께 자비의 첫 고리가 되시게 하여 이를 통해 우리가 모든 피조물에게 문을 열어 주는 것이었고, 그래서 내 오른팔을 그분께 기대고자 하였다. 그리고 너를 내 정의의 첫 고리로 삼아 모든 피조물이 받아 마땅한 징벌을 만류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 왼팔을 너에게 기대고자 하였다. 네가 나와 함께 정의의 팔을 떠받치고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10 이 두 지주로 하여 나는 생명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아무런 고통도 겪지 않았던 것처럼 꿋꿋한 걸음으로 내 원수들을 만나러 갔다. 수난의 전 과정 동안 내게 죽음을 줄 수 있는 고통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이 두 사람은 그들이 지닌 나 자신의 뜻으로 나를 지탱했으니, 마치 생명의 물을 모금모금 자주 마시게 하는 것 같았다.

 

11 , 내 뜻의 경이로운 일들이여! 누가 이들의 의미를 다 헤아릴 수 있으랴? 이것이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을 내가 무척 사랑하는 까닭이다. 그 사람 안에서 나의 모상을, 내 고귀한 얼굴을 보고, 나 자신의 숨결과 목소리를 느끼는 것이다.

 

12 내가 그런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자신을 속이는 격이 될 것이다. 또한 후손도 궁정 조신들의 행렬도 자녀들이라는 왕관도 없는 아버지와 같을 것이다. 이처럼 후손도 궁정도 왕관도 없다면, 내가 어떻게 나 자신을 왕이라고 일컬을 수 있겠느냐?

 

13 내 나라는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들로 이루어진다. 나는 이 나라에서 어머니와 여왕과 자녀들과 조신들과 군대 및 백성을 선정한다. 내가 그들의 모든 것이 되고 그들은 나의 모든 것이 될 것이다.

 

14 그 후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한데 이를 어떻게 실행에 옮길 수 있을까? 하고 혼잣말을 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말씀하셨다.

 

15 딸아, 진리를 알려면 그것을 알고자 하는 원의와 열망이 있어야 한다. 덧문이 닫힌 방을 생각해 보아라. 밖에 햇볕이 아무리 쨍쨍해도 방 안은 내내 어둡다. 그러니 덧문을 여는 것은 빛을 원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빛을 활용하여 방을 다시 정돈하고 먼지를 털어내며 일에 착수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받은 빛을 허비하고, 따라서 입은 은혜를 저버리고 배신하는 셈이 된다.

 

16 이와 같이 사람도 진리를 알고자 하는 원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만일 진리의 빛이 그를 비출 때 자기의 결점이라는 먼지를 털어내려고 힘쓰지 않는다면, 스스로 알게 된 그 빛에 따라 자신을 다시 정돈하고 그 빛과 함께 일하면서 이를 자신의 본질로 삼으려고 힘쓰지 않는다면, 그가 흡수한 진리의 빛이 그의 입과 손과 행동거지에서 발산될 수 없다.

 

17 그러면 진리를 헛되이 소모하는 격이요, 이를 실행에 옮기지 않음으로써 온통 뒤죽박죽인 상태를 환한 빛 앞에 노출시키는 격이 될 것이다. 빛이 가득하건만 물건들이 뒤섞여 엉망진창으로 어질러진 방에 있는 사람이 정돈하려고 들지 않는다면, 그 방이 얼마나 을씨년스럽게 보이겠느냐? 진리를 알면서 실행에 옮기지 않는 사람도 그와 같다.

 

18 하지만 너는, 모든 진리들 속에 들어오는 첫 음식은 단순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진리가 단순하지 않으면 빛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 정신 안으로 뚫고 들어와 그것을 조명할 수 없다. 빛이 없는 곳에서는 사물이 식별되지 않는다.

 

19 단순성은 빛일 뿐만이 아니라 사람이 숨 쉬는 공기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든 사람을 숨 쉬게 하는 것이다. 만약 공기가 없다면 이 땅도 사람도 움직임을 멈출 것이다. 그런즉 단순성이라는 특질이 비어 있는 미덕이나 진리는 빛도 공기도 없기 마련이다.

 

 

1420, 192248 : 영혼 창조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 간의 공조 관계 인간의 의지와 지성과 기억의 타락으로 인한 예수님의 고뇌

 

1 여느 때와 다름없는 상태로 있으면서,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겟세마니 정원에서 우리의 모든 죄가 당신의 거룩함 앞에 몰려드는 것을 보시며 겪으신 비통에 대해 생각하였다. 그러자 예수님의 고뇌에 찬 음성이 내 마음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2 딸아, 내가 심히 괴로웠던 것은 무엇보다도 특히 인간의 지성이 흉하게 변질된 것을 보았을 때였다. 그것은 창조된 정신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고통이었다. 인간의 지성 안에 심어 둔 나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이 그 아름다움을 잃고, 추하고 역겨운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3 나 하느님은 사람에게 의지와 지성과 기억을 부여하였다.

 

4 의지 안에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빛이 빛나고 있었으니, 아버지께서 이 창조의 첫 행위로 그분의 능력과 거룩함과 지고함을 소통하시어 이를 통해 사람의 의지를 드높이 올리시고, 그분 자신의 거룩함과 능력과 고귀함을 입혀 주시면서 그분과 사람의 의지 사이에 모든 통로를 열어 두셨다. 그것은 사람의 의지가 내 신성의 보물들로 점점 더 풍요해지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5 그러니 사람의 의지와 하느님의 의지 사이에는 너의 것이니 나의 것이니 하는 관념이 없었고, 서로 일치하여 모든 것을 공유하고 있었다. 사람은 우리의 모상 - 우리 자신의 것이었고, 우리는 사람에게 감싸여 있었다.

 

6 내 천상 아버지께서 무엇보다 먼저 그분의 의지와 똑같이 사람의 의지를 자유롭고 독립적인 것이 되도록 정하신 것은, 우리의 생명이 바로 사람의 생명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7 그러나 사람의 의지는 얼마나 흉하게 손상되고 말았는지! 자유롭게 창조되었건만 천박한 격정들의 노예가 되었다. 인간의 모든 악행이 의지에서 비롯되거니와, 이 의지가, , 이제는 알아볼 수도 없게 되었으니, 고결함에서 추락하여 보기에도 역겹게 썩어 버린 것이다.

 

8 둘째 행위로, 하느님의 아들인 내가 인간에게 지성을 부여하고 모든 것에 대한 나의 지혜와 지식을 소통하였다. 인간이 앎을 통하여 그 모든 것을 누리고 선한 것을 즐기게 하기 위함이었다.

 

9 그러나 슬프게도, 인간의 지성은 악덕이라는 오물의 수렁이 되고 말았다! 자기의 창조주를 부인하기 위해 그 앎을 악용한 것이다.

 

10 그리고 셋째 행위로, 성령께서 인간에게 기억을 부여하셨다. 수많은 은혜를 기억함으로써 끊임없는 사랑의 흐름 안에, 끊임없는 친교 안에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사랑이 인간에게 영예로운 관을 씌워 주고 그를 얼싸안으며 그의 삶 전반에 스며들 예정이었던 것이다.

 

11 하지만 이 영원한 사랑이 얼마나 큰 슬픔에 잠겨 있는지! 인간의 기억은 쾌락과 재산을 기억하고 심지어 죄까지도 기억하지만,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께서는 당신 피조물에게 주신 선물들 밖으로 내쫓기는 신세가 되신 것이다.

 

12 그러니 사람의 이 세 가지 능력이 흉하게 일그러진 것을 보는 내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의 내면에 우리의 왕궁을 지었는데, 사람은 우리를 냅다 집어던졌으니 말이다.

 

 

8) 8시간 : (오전 0-1) 체포되신 예수님

 

1333, 19211116 : 죄는 인간을 묶는 사슬이다. 이 사슬을 끊으시려고 예수님은 수난 동안 자원해서 사슬에 묶여 계셨다.

 

1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오늘 아침에는 손발이며 온몸이 꽁꽁 묶이신 상태로 나타나셨다. 이중의 사슬이 목부터 칭칭 감아 내려오고 있었다. 그분의 거룩하신 몸이 그토록 단단하게 묶여 옴짝도 하실 수 없었으니, 그 가혹한 모습에 돌덩이마저 울음을 터뜨릴 지경이었다.

 

2 그때 내 지고한 선이신 그분께서 입을 여셨다. 딸아, 내 수난이 진행되는 동안, 다른 모든 고통들은 서로 경쟁을 벌이면서도 이것이 저것으로 교체되곤 하였다. 흡사 보초들처럼 내게 가장 고약하게 굴고 또 누구보다도 더 잘한 것에 대해 우쭐거리려고 교대로 동정을 살피는 식이었다.

 

3 하지만 밧줄은 내게서 치워진 적이 없었다. 그들에게 붙잡힌 순간부터 갈바리아산을 오를 때까지 줄곧 나를 묶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밧줄과 쇠사슬을 점점 더 보태기도 하였다. 내가 달아날까 두려워서, 또 나를 더 많이 조롱하기 위해서였다. 한데 이 사슬들이 내게 얼마나 많은 아픔과 곤혹과 치욕을 겪게 하며 얼마나 자주 넘어지게 하던지!

 

4 그러나 이 사슬들 안에 큰 신비가, 위대한 속죄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라. 사람이 죄 속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 자신의 죄라는 줄에 묶이게 된다. 대죄일 경우에는 쇠사슬에, 소죄이면 밧줄에 묶이는 것이다.

 

5 그러므로 선 안에서 걸으려고 하면 사슬이 거치적거리는 느낌이 들고 발걸음이 거북해진다. 이 거북함 때문에 그는 지치고 쇠약해져서 다시 죄로 이끌리고 만다. 일을 하려고 해도 손이 말을 듣지 않는 통에 마치 선을 행할 손은 아예 없는 것 같다. 이처럼 속박되어 있는 사람을 보면 격정들이 반색을 하며 승리는 이제 우리 것이야. 한다. 그리고 그를 왕의 신분에서 끌어내려 그 사나운 격정들의 노예로 만든다.

 

6 죄 중에 있는 인간은 얼마나 혐오스러운지! 나는 그 사슬들을 끊어 주려고 자원해서 묶였고, 언제라도 끊을 태세로 있으려고 계속 묶여 있었다. 그러므로 얻어맞고 떼밀려 넘어질 때마다 사람들을 향해 손을 뻗치곤 했으니, 사슬을 끊어 다시 자유롭게 해 주기 위해서였다.

 

7 그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동안, 가엽게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사슬에 묶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예수님께 당신 사슬을 그들의 사슬에 갖다 대어 주시기를 청하였다. 그분의 사슬에 닿은 순간, 피조물의 모든 사슬들이 산산조각이 나게 하기 위해서였다.

 

 

1414, 1922318 : 죄는 선행을 할 수 없도록 영혼을 속박한다. 하느님과 사람이 서로에게 안식이 되는 경우.

 

1 기도 중에 수난 고통을 겪고 계신 예수님과 함께 있노라니, 다정하신 그분께서 모습을 보여 주시며 말씀하셨다.

 

2 딸아, 죄는 영혼을 사슬로 묶고 선을 행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그의 정신은 죄의 사슬은 감지하면서도 선은 깨닫지 못한다. 그의 의지는 사슬이 자기를 묶고 있음을 느끼면서도 감각이 거의 마비된 상태여서, 선을 원하는 대신 악을 원한다. 그의 갈망도 사슬에 묶여 있기에 하느님께로 날아가야 할 자신의 날개가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을 느낀다.

 

3 , 사람이 자기 죄의 사슬에 묶여 있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측은한지! 수난을 통해 내가 받고자 했던 첫 번째 고통이 사슬에 묶이는 고통이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사람을 그 자신의 사슬에서 풀어 주려고 내가 묶이기를 원했던 것이다.

 

4 나를 묶은 사슬들은 내 몸에 닿자마자 사랑의 사슬로 바뀌었다. 이 사슬들이 사람의 몸에 닿으면 그의 사슬을 태워 없애고, 내 사랑의 사슬로 그를 묶을 것이었다.

 

5 내 사랑은 활동적이다. 활동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를 원상태로 회복시키고 치유하며 새로 아름답게 하는 데에 필요한 것을 마련하였다. 모든 것을 마련했으니, 그것은 영혼으로 하여금 마음만 먹으면 그 모든 것을 즉시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

 

6 나는 따라서 영혼의 사슬을 태워 없앨 내 사슬이, 죄로 인한 그의 상처들을 덮고 그를 아름답게 꾸며 줄 내 살점들이, 그에게 다시금 생명을 줄 내 피가, 요컨대 모든 것이 준비되게 하였다. 각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비축되어 있는 것이다.

 

7 내 사랑은 자신을 주기를 원한다. 활동하기를 원한다. 주지 않는 상태로 있으면 평화를 가져오지 않는 일종의 조바심이, 불가항력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

 

8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보이지 않을 때면, 나는 내 사슬과 살점들과 피를 원하는 사람에게 몰아준다. 이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니, 내 사랑의 사슬로 그를 온통 보석들에 휩싸이게 하면서 아름답게 치장해 준다. 그리고 은총의 생명을 백 배로 불린다. 내 사랑이 스스로를 쏟아내고 진정되게 하기 위함이다.

9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동안 그분의 사슬과 살점들과 피가 내게로 쏟아져 내리는 것이 보였다. 그분은 그 모든 것을 내게 붙이며 바르시어 온통 보석에 휩싸인 듯 만드는 것이 재미있으신 모양이었다. , 예수님은 얼마나 인자하신지! 그분께서는 이제와 항상 찬미 받으시기를!

 

10 나중에 다시 오신 그분은 이 말씀을 덧붙이셨다. 딸아, 나는 사람이 내 안에서 쉬고 나도 사람 안에서 쉴 필요를 느낀다. 그러나 너는 아느냐? 언제 사람이 내 안에서 쉬고 내가 사람 안에 쉬게 되는지를?

 

11 사람의 지성이 나에 대해 생각하며 나를 인식할 때 그는 창조주의 지혜 안에서 쉬고, 창조주의 지혜는 그 피조물의 정신 안에서 안식을 얻는다. 사람의 뜻이 하느님의 뜻과 하나가 될 때 이 두 뜻이 서로 얼싸안고 함께 쉰다.

 

12 사람의 사랑이 모든 피조물을 넘어 오로지 자기 하느님만을 사랑하면, 그때에는 하느님과 사람이 감미롭기 짝이 없는 안식을 서로에게서 얻는다. 안식을 주는 이는 안식을 얻고, 나는 그의 침상이 된다. 내 팔로 꼭 껴안고 다디단 잠을 자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너는 내 품안으로 와서 쉬어라.

 

 

9) 9시간 : (오전 1-2) 떼밀려 키드론 개울에 빠지시다

 

- 1144, 1913122 : 겟세마니에서 겪으신 예수님의 삼중적인 수난. 키드론 개울의 오수에 잠기기를 허락하신 의미.

 

1 언제나 사랑하올 내 예수님의 수난 중 특히 겟세마니에서 겪으신 것에 대해 묵상하다 보니 내가 완전히 예수님 안에 잠겨 있었는데,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나의 첫 번째 수난은 사랑에 의한 수난이었다. 왜냐하면 인간이 죄로 자기 자신을 악에게 넘겨주는 첫걸음은 사랑 결핍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어서 죄에 떨어지는 것이다.

 

3 나를 통해서 사람들의 그 사랑 결핍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고 누구보다도 더 나를 괴롭힌 것이 바로 사랑이었으니, 사랑이, 압착기에 깔려 으스러지는 것 이상으로 나를 짓누르면서, 이로 인해 생명을 얻게 될 사람들의 수만큼 많은 수의 죽음을 내게 안겨 주었던 것이다.

 

4 죄의 두 번째 행보는 하느님에게서 그분의 영광을 빼앗는 것이다. 그러기에 아버지께서 사람들에게 빼앗긴 영광의 보상을 받으시려고 나로 하여금 죄에 의한 수난을 겪게 하셨으니, 각각의 죄가 저마다 내게 그 특유의 수난을 안기는 식이었다.

 

5 물론 수난은 하나였지만, 세상 끝 날까지 저질러질 죄들의 수만큼 많은 수난들을 겪었다는 말이다. 내가 그리함으로써 아버지의 영광이 회복되었던 것이다.

 

6 죄에서 생기는 세 번째 결과는 인간의 나약이다. 그래서 나는 유다인들의 손으로 수난을 겪고자 하였다. 이것이 나의 세 번째 수난이었으니, 인간이 상실한 힘을 회복시켜 주기 위함이었다.

 

7 따라서, 사랑은 사랑에 의한 수난으로 제자리를 찾아 회복되었고, 아버지의 영광은 죄에 의한 수난으로 제자리를 찾아 회복되었으며, 인간의 힘은 유다인들에 의한 수난으로 제자리를 찾아 회복되었다.

 

8 나는 이 모든 것을 ‘동산’에서 겪었는데, 그 고통이 너무 크고, 그 죽음이 󰠏󰠏 그 극심한 고뇌의 경련이 너무 많이 일고 있어서, 아버지의 뜻이 있었다면 실제로 거기에서 벌써 죽었을 것이다.”

 

9 그다음에 나는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원수들에게 떼밀려 키드론 골짜기로 떨어지신 일에 대해 묵상하기 시작했다.

 

10 복되신 예수님께서는 그 골짜기 개울의 오수에 흠뻑 젖은, 가엾고 불쌍한 모습으로 내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11 “딸아, 나는 영혼을 창조하면서 빛과 아름다움의 망토로 그를 감싸 주었다. 죄가 이 빛과 아름다움의 망토를 벗기고 어둠과 추함의 망토를 입혀, 보기에도 진절머리 나고 역겨운 모습이 되게 하였다.

 

12 그러므로 나는 죄가 영혼에게 입힌 그 더러운 망토를 벗겨 내기 위해서 유다인들이 나를 떼밀어 더러운 개울 속에 처넣는 것을 허락하였다.

 

13 그 썩은 물이 내 귀와 콧구멍과 입 속에도 들어왔으므로 내 안팎이 온통 그것에 감싸여 있는 것 같았고, 어찌나 더러운지 유다인들 마저 내게 닿으면 진저리를 칠 지경이었다.

 

14 하기야 내 눈에도 나 자신이 역겨울 정도였으니, 아아,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는지!”

 

10) 10시간 : (오전 2-3) 한나스 앞으로 끌려가시다

 

- 227, 1899531 : 반대는 적절한 때에 진리를 그만큼 더 빛나게 하는 데 소용된다.

 

1 오늘 아침에도 평소와 같은 상태로 있노라니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오셨다. 그리고 그 순간 고해사제도 보였는데, 그는 내게 일어나는 일은 하느님의 일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확인시키려고 다른 사제들에게 내 내면의 어떤 것을 알리면서 그들을 설득하고자 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좀 못마땅해 하시는 것 같았다.

예수님은 고해사제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2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더없이 훌륭하다는 사람들에게서도 반대를 받았고, 사제들과 다른 고관들은 나의 거룩한 업적에 적의를 표하면서 나를 마귀들린 사람이라고도 했지만, 그러한 반대를, 종교인들에게서 오는 것조차 내가 허락한 것은, 적절한 때가 오면 진리가 그만큼 더 빛나게 하려는 것이었다.

 

3 네가 빛을 얻기 위하여 선하고 거룩하고 박식한 두 세 사람의 사제에게서 조언을 얻고자 한다면, 그리고 그 선한 이들의 조언과 기도를 통하여 이 일에서 내가 원하는 바를 행하고자 한다면, 나는 이를 허락하겠다. 그러나 나머지 모든 경우에 대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그럴 경우 내 업적을 손상시키며 조롱할 터이니, 이는 나를 몹시 언짢케 하는 것이다.

 

4 그런 다음 그분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원하는 것은 올바르고 단순한 행동이다. 사람들의 찬성과 반대에 주의를 기울이지 말아라. 네 마음을 어지럽힘 없이 그들 마음대로 생각하게 내버려 두어라. 일체가 순조롭게 돌아가기를 원하는 것은 내 삶을 본받는 데서 빗나가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11) 11시간 : (오전 3-4) 카야파 앞으로 끌려가시다

 

107, 19101222 : 하느님을 위한 큰일 수행에 필요한 조건.

 

1. 평소와 같이 있다가 영적으로 여러 사제들을 보았는데, 복되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중이었다.

 

2. 하느님을 위한 큰일을 수행하려면 자존심과 인간적인 관점 및 자기 자신의 본성을 죽여 없앨 필요가 있다. 하느님의 생명으로 다시 살면서 오직 우리 주님의 생각을 헤아리며 그분의 영예와 영광에 관한 것만을 고려하기 위함이다. 하느님만으로 살 수 있으려면 인간적인 것을 밟아 뭉개고 분쇄해야 하는 것이다.

 

3. 그리하면 너희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몸소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며 역사하실 것이고 너희에게 맡겨진 영혼들과 일들은 눈부신 효과를 낼 것이며, 너희는 너희와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결실을 얻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이전에 너희에게 말했던 사제회의 결성과 같은 결실이다. 이들 중 한 사람이 앞장서서 이 일을 일으키며 진척시킬 수 있으련만, 약간의 자존심과 쓸데없는 두려움과 인간적인 관점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있다.

 

4. 그런데 은총은 영혼이 그런 천박한 것에 둘러싸여 있는 것을 보면 멈추지 않고 홱 지나가 버린다. 그러면 그 사제는 한낱 인간에 불과한 상태로 남아 인간으로서 활동할 뿐이어서 그의 일도 인간의 일이 낼 수 있는 효과밖에 내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 활동하는 사제가 낼 수 있는 효과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1015, 1911128 : 하느님으로 하여금 신앙의 휘장을 찢고 당신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게 하는 사랑. 심한 고통 중에 있으나 죽지는 않을 교회

 

1. 전과 다름없는 상태로 있노라니 내 다정하신 예수님의 심장이 보였다. 예수님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 안에 있는 그분의 심장을 볼 수 있는데, 나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 안에서도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심장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오, 그분의 성심에는 온유와 기쁨과 조화가 얼마나 풍성히 넘쳐흐르고 있는지! 내가 예수님으로 인해 즐거워하고 있는 동안 이 성심에서 그분의 그지없이 정다우신 음성이 울려 나왔다.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음성이었다.

 

2. “내 마음의 즐거움인 딸아, 사랑은 스스로를 쏟아 내려고 하는 성질이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이 계속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참으로 나를 사랑하기에 사랑 외에는 다른 어떤 낙이나 맛이나 생명을 자신 안에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라면…….

 

3. 나는 그런 이들에게 마음이 끌림을 느낀다. 얼마나 세게 끌리는지 사랑이 나로 하여금 신앙의 휘장을 찢어 버리지 않을 수 없게 하고, 나 자신을 나타내 보이면서 그들이 여기 지상에서도 이따금 천국을 누리게 한다. 사랑 때문에, 나를 참으로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기다릴 겨를 없이 이 현세 삶에서도 천국을 앞당겨 주는 것이다.

 

4. 그런즉, 너는 즐겨라. 나의 환희를 만끽하면서 내 마음 안에 얼마나 많은 기쁨이 있는지 보아라. 그 모든 것에 참여하고, 너 자신을 내 사랑 안에 쏟아 부어라. 그러면 네 사랑이 점점 더 커져서 나를 더욱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

 

5.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을 때 나는 몇몇 사제들을 보았다. 그러자 그분은 이렇게 말씀을 이으셨다.

 

6. “딸아, 오늘날의 교회는 심한 고통을 겪고 있으나 죽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욱 아름답게 다시 일어날 것이다.

 

7. 선한 사제들은 속된 것에서 더욱더 초탈하여 더 많은 희생을 바치며 더 순수한 삶을 살려고 애쓴다. 악한 사제들은 온통 속된 것에, 곧 이욕과 안락과 육적인 것에 더욱더 빠져드는 삶을 살려고 든다. 나는 입을 열지만 이 악한 이들에게는 말하지 않는다. 선한 사람이 한 도시에 한 사람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그 소수의 사람들에게 말한다. 그런 이들에게 내가 말하고, 명령하고, 애걸하고, 간청하는 것은 사제들이 모여 살 집들을 세워 나를 위해 사제들을 구하라는 것이다. 이 피신처에 들어옴으로써 가족이라는 굴레를 완전히 벗어 던질 사제들을.

 

8. 게다가 그 소수의 선한 이들을 통하여 내 교회가 이 심한 고통에서 회복되리니, 이들이야말로 나의 후원자요 지주(支柱)들이며, 교회의 생명을 계속 유지하는 이들이다. 내가 다른 이들, 곧 가족과의 유대를 끊어 버릴 마음이 없는 이들에게 말하지 않는 이유는, 말해 보았자 틀림없이 그들은 듣지 않을 뿐더러, 속박의 끈을 모조리 끊어 버려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분통을 터뜨리기 때문이다.

 

9. 아! 불행히도 그들은 사욕... 등등의 잔을 마시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 육신은 달콤해하지만 영혼에게는 독이 되고 마는 것을! 그들은 결국 세상의 더러운 하수를 꿀꺽꿀꺽 들이키게 될 것이다. 나로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을 구원하고 싶지만 귀가 절벽이니, 말하고 있는 내가 그들에게는 입도 벙긋하지 않고 있는 듯한 것이다.”

 

 

 

1261, 191894 : 사제들로 인한 예수님의 비탄.

 

1 평소와 다름없는 상태로 있다 보니,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잠깐 오셔서 말씀하셨다. “딸아, 피조물이 내 정의에 도전하려고 한다. 그들은 굴복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 정의가 그들을 치려고 한다.

 

2 이는 모든 계층의 피조물인데, 나의 성직자라고 하는 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성직자들이 어쩌면 다른 이들보다 더하다. 이들은 너무나 해로운 독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 가까이 다가온 사람들에게도 그 해독을 끼친다!

 

3 그들은 나를 영혼들 안에 있게 하지 않고 자기들이 거기에 있고 싶어 한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기를 원하고,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를 원한다. 그 바람에 나는 뒷전으로 밀쳐진 신세가 된다. 그들과의 해로운 접촉은 영혼들로 하여금 마음을 모으기는 고사하고 나에게서 주의를 돌리게 한다.

 

4 그들은 영혼들을 고요한 내적 생활로 이끄는 대신 더 분방하게 더 많은 과오를 범하게 한다. 그러므로 그들과 접촉하지 않는 이들이 더 선하고 더 수렴된 마음으로 있음을 볼 수 있을 정도이다.

 

5 그러니 나는 아무도 믿을 수 없다. 인간을 더 악하게 만드는 그들과의 해로운 접촉을 막기 위해서 사람들이 교회를 ― 성사들을 멀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을 지경이다.

 

6 나의 비통이 크다. 내 마음의 상처들이 깊다. 그러니 기도하여라. 그리고 아직 주위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선인들과 하나 되어, 나의 쓰디쓴 비통에 따뜻한 동정심을 표현하여라.”

 

 

1297, 191947 : 하느님 뜻 안에서 행하는 행위들의 효과. 지도자들의 부패로 인한 암흑과 징벌 위협.

 

1 보통 때와 다름없는 상태로 있노라니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몹시 지치신 모습으로 도움을 청하시며 오셨다. 당신 가슴을 내 가슴에 대시고 나로 하여금 당신 고통을 느끼게 하셨는데, 내가 느낀 하나하나의 고통이 제각기 나를 죽일 수 있을 만큼 큰 고통이었다.

 

2 예수님은 그러나 나를 지탱해 주시며 죽지 않을 힘을 주셨다. 그런 뒤 나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딸아, 인내하여라. 어떤 시기에는 온 세상이 불타 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과거 어느 때보다도 내게 너의 고통이 더 필요하다. 그래서 너로 하여금 더 많은 고통을 받게 하려고 한다.

 

3 그리고 그분께서는 손에 들고 계시던 창으로 내 심장을 찌르셨다. 여간 아프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쁨을 느꼈다. 예수님께서 당신 고통을 나와 함께 나누고 계신다는 생각과 그렇게 당신 고통을 내게 쏟아내심으로써 막 터지려고 하는 무섭고도 임박한 징벌을 사람들이 당하지 않게 하실 수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4 얼마 동안 내가 그 격심한 고통을 겪고 나자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딸아, 너의 고통이 크니, 내 뜻 안으로 들어와서 원기를 회복하여라. 그리고 가련한 인류를 위하여 우리 함께 기도하자꾸나.

 

5 나는 어떻게 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예수님의 팔에 안긴 채 하느님 의지의 무한성 안에 있었다. 그분께서 낮은 목소리로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는데, 나로서는 그 말씀을 다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일부만 적어 보겠다.

 

6 우선 기억나는 것은 내가 예수님의 의지 안에서 그분의 모든 생각과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지성으로 행하신 모든 선을 볼 수 있었다는 것과 인간의 지성이 어떻게 그분의 정신으로부터 생명을 받는지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7 하지만, 오 하느님 맙소사! 인간은 그것을 악용하여 얼마나 많은 죄를 짓는지! 그래서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8 예수님, 당신 뜻 안에서 제 생각을 불어나게 하여 또 한 분의 예수님이 하시는 것처럼 당신의 생각 하나하나에 하느님 생각의 입맞춤을, 흠숭과 감사와 보속 및 하느님 생각에 대한 사랑을 드리겠습니다. 이를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인간과 모든 인간적 생각들의 이름으로 드리겠습니다.

 

9 또 멸망한 영혼들의 지성에 대해서도 보속하려고 합니다. 저는 원합니다. 피조물의 영광이 완전하기를, 아무도 그 이름이 빠지는 일이 없기를! 그러므로 그들이 행하지 않은 것은 무엇이든지 제가 당신 뜻 안에서 하겠습니다. 당신께 신적이고 완전한 영광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10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를 바라보시는 품이 당신의 눈에 대한 보속을 기다리시는 것 같아서, 예수님, 당신 눈길 안에서 저를 불어나게 하여, 당신께서 피조물을 사랑으로 바라보신 횟수만큼 많은 눈길을 저도 가질 수 있게 하겠습니다. 또 당신 눈물 안에서 저를 불어나게 하여 저도 피조물의 모든 죄 때문에 울 수 있게 하겠습니다.

 

11 그리하여 모든 이의 이름으로 하느님 사랑의 눈길과 하느님의 눈물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당신께 완전한 영광을 드리고, 모든 피조물의 모든 눈길에 대한 완전한 보속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12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그분의 뜻 안에서 나 자신을 불어나게 하면서 그분의 입과 마음과 열망 등 모든 것에 대하여 계속 보속하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다 기록하자면 너무 길어질 것이기에 다음으로 넘어가겠다.

 

13 나중에 예수님은 이렇게 덧붙이셨다. 딸아, 네가 내 뜻 안에서 네 행위들을 함에 따라 하늘과 땅 사이에 수많은 태양이 형성되고 있었다. 나는 이제 이 태양들을 통해서 땅을 본다. 그러지 않으면 땅이 너무 역겨워서 도저히 볼 수 없을 것이다.

 

14 한데 땅은 이 태양들을 아주 조금밖에 받지 못한다. 사람들이 퍼뜨리는 암흑이 태양들 앞을 가릴 정도로 짙어서 그 빛도 열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것이다.

 

15 그런 다음 그분께서 나를 사람들 가운데로 데려가셨다. 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누가 말할 수 있으랴? 예수님께서 비통한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만 적어 두겠다.

 

16 세상이 얼마나 무질서한지! 이 무질서는 세속이나 교회나 다 그 지도자들 탓이다. 지도자들이 사욕과 부패한 생활로 말미암아 일반 구성원을 바로잡을 힘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일반인들의 죄악에 눈을 감았다. 그들 자신의 죄악을 이미 드러내 보였기 때문이다.

 

17 설령 그들의 악을 나무랐다고 하더라도 피상적인 질책에 불과했을 뿐이다. 자기 안에 선의 생명이 없는 자가 어떻게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불어넣을 수 있겠느냐?

 

18 이 삐뚤어진 지도자들이 얼마나 자주 좋은 것 앞에 악한 것을 놓았는지, 그런 행태로 인해 소수의 선량한 사람들마저 뒤흔들린 것이다. 그런즉 나는 특별한 모양으로 지도자란 자들이 타격을 입게 할 작정이다.

 

19 내가, 예수님, 교회 지도자들은 타격을 받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러잖아도 지도자들의 수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당신께서 그들을 치시면 턱없이 모자랄 것입니다. 하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20 너는 내가 열두 명의 사도로 교회를 세운 것이 기억나지 않느냐? 그와 같이, 남아 있을 소수의 사람들이 세상을 개심시키기에 넉넉할 것이다.

 

21 원수가 이미 그들의 문간에 와 있다. 이미 혁명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민족들은 피바다에 잠길 것이며, 그들의 지도자들은 흩어질 것이다.

 

22 원수가 마음대로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들지 않도록, 너는 기도하고 기도하여라. 그리고 고통을 견뎌 내어라.

 

 

12) 12시간 : (오전 4-5) 군사들 가운데 계신 예수님

 

459, 1901319 : 가장 쉽고 유익하게 고통 받는 방법

 

1 오늘 아침에는 무엇보다도 특히 인자하신 예수님의 부재로 말미암아 마음이 무겁고 몹시 괴로웠다. 오랜 기다림 끝에 (그분께서 오셨고), 오시자마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내 딸아, 고통을 (잘 견디는) 참된 방법은 그것이 누구에게서 오는지 또 어떤 고통인지를 보는 데 있지 않고 이 고통에서 나오게 될 선을 보는 데 있다. 이것이 내 수난의 방법이었다.

 

3 , 사형 집행자들이나 고통들을 보지 않고, 이 고통에 의하여 내게 그것을 끼치는 사람들에게 베풀게 될 선과 인류에게 오게 될 선을 보는 것이었다. 나머지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면서 수난의 전과정을 온전히 지속시켰던 것이다. 내 딸아, 이것이, 인내심뿐만이 아니라 용감한 불굴의 정신으로 고통받기 위한, 가장 손쉽고 유익한 방법이다.

 

 

1275, 191912 : 사랑 깊은 영혼의 참모습.

 

1 오늘 아침에는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사납게 몰아치는 폭풍 속에서 부드러운 눈길로 나를 보시며 도움과 피신처를 청하시는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나는 냅다 몸을 날려 그 드센 바람에서 그분을 빼내서는 내 마음 안에 모셨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내 인성은 채찍을 맞으면서 침묵에 잠겨 있었다. 입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모든 것이 침묵에 잠겨 있었다. 평판도 영광도 능력도 영예도 침묵하였다.

 

3 그러나 나의 인내와 수치와 상처와 피가, 거의 먼지로 돌아간 듯한 내 존재의 소멸 상태가, 웅변적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영혼 구원을 위한 나의 뜨거운 사랑이 내 모든 고통에 메아리치고 있었다.

 

4 딸아, 여기에 애정 깊은 영혼의 참모습이 있다. 그 내면과 주변의 모든 것은, 곧 평판, 영광, 쾌락, 영예, 위대함, 뜻, 피조물은 침묵에 잠겨 있어야 한다. 만일 이런 것들을 지닌 영혼이라면, 귀머거리처럼 장님처럼 있어야 한다.

 

5 그 대신 나의 인내와 영광과 평판과 고통은 그의 내면을 차지해야 한다. 그리하면 그가 행하고 생각하며 사랑하는 일체가 다만 사랑이 될 것이고, 내 음성의 메아리와 오직 하나를 이루어 영혼들을 청하게 될 것이다.

 

6 영혼들에 대한 나의 사랑은 크다. 그러니 모든 이가 구원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를 사랑하는 이들을, 어리석을 정도인 내 사랑과 같은 사랑에 사로잡혀 나에게 영혼들을 청하는 이들을 찾아다닌다.

7 하지만, 아아 슬프게도, 내 말을 귀여겨듣는 이들의 수는 얼마나 작은지!”

 

 

13) 13시간 : (오전 5-6) 감옥에 갇히시다

 

1271, 1918124 : 예수님께서 수난 중 감옥에 갇히고자 하신 까닭.

 

1 지난밤은 예수님과 함께 감옥에서 지냈다. 따뜻한 동정심을 표하면서 쓰러지시지 않도록 그분의 두 무릎에 달라붙어 있었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수난 동안 내가 감옥에 갇히는 고통도 겪고자 했던 것은, 피조물을 죄라는 감옥에서 해방시켜 주기 위함이었다.

 

2 오, 죄는 인간에게 얼마나 끔찍한 감옥인지! 격정들은 인간을 비천한 노예처럼 사슬로 묶는 반면, 사슬에 묶여 감옥에 갇힌 나는 인간을 속박에서 풀어 해방시켰던 것이다.

 

3 애정이 깊은 영혼들에게는 나의 갇힘이 사랑의 감옥을 만들어 준다. 만인과 만사로부터 안전하게 피신해 있을 수 있는 감옥이다. 나는 이 영혼들을 해방시켜 살아 있는 감옥 내지 감실들이 되게 한다.

 

4 그들은 석조 감실의 싸늘함으로부터, 더군다나 나를 자기 내면에 감금한 채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게 하는 피조물의 차가운 마음으로부터 나를 피신시켜 따뜻하게 해 줄, 살아 있는 감실들이다.

 

5 이것이, 내가 너의 사랑으로 언 몸을 녹이고 원기를 회복하려고 누차 감실이라는 감옥을 떠나 네 마음속으로 들어가곤 한 까닭이다. 그러니 성당의 감실로 나를 찾아가는 너를 볼 때면, ‘네가 바로 내 사랑의 참 감옥이 아니냐? 네 마음 안에서 나를 찾아라. 그 나를 사랑하여라.’ 하고 말하는 것이다.”

 

 

1329, 19211029 : 세 시간 동안 감옥에 수감되셨던 예수님 - 그 의미와 효과

 

1 지난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결박되신 채 감옥에 갇히신 예수님께로 내 생각이 자꾸 날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수들에 의해 고통스럽고 잔혹한 자세로 묶인 채 후들거리는 그분의 무릎을 얼싸안고 있고 싶었고, 그들이 뱉은 침으로 더럽혀진 얼굴을 닦아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2 한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내 생명이신 그분께서 짙은 어둠 속에 나타나신 것 같았다. 너무 캄캄해서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흐느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3 딸아, 원수들이 끔찍하도록 잔인하게 나를 묶어대더니 이 캄캄한 감옥 속에 홀로 내버려두었다.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먹물처럼 캄캄한 어둠이었다. , 그 어둠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4 내 옷은 개울의 더러운 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감옥의 악취와 저들이 뱉은 침의 악취가 물씬 풍겨 왔다. 내 머리칼은 흐트러져 눈과 입을 가리고 있었으나 이를 가다듬어 주는 자비로운 손길은 하나도 없었고, 내 손은 사슬에 묶여 있었다.

 

5 어찌나 캄캄한지, 아아, 너무도 괴롭고 치욕스러운 나의 처지를 볼 수조차 없었다. , 이리도 고통스러운 감옥 안의 내 처지가 얼마나 많은 것에 대해 말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6 나는 세 시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다. 이것으로 세상의 세 가지 시대를 본연의 상태로 회복시키고자 했으니, 그것은 자연법의 시대와 성문법의 시대, 그리고 은총의 시대이다. 그 모든 것을 해방하고 다시 함께 통합하여 사람들에게 내 자녀로서의 자유를 주고자 했던 것이다.

 

7 감옥에 세 시간 동안 있음으로써 나는 또 사람의 세 시기, 곧 유년기와 장년기와 노년기를 회복시키고자 하였다. 나쁜 격정으로 죄를 짓는 시기, 자신의 의지로 죄를 짓는 시기, 마음의 완고함으로 죄를 짓는 시기를 회복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 내 주위의 그 어둠이 죄가 인간 안에 일으키는 짙은 암흑을 얼마나 절감하게 하던지!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8 , 사람아! 너희의 죄가 나를 이토록 짙은 어둠 속에 던져 넣었으니, 내가 너희에게 빛을 주기 위해 이를 겪고 있다. 나를 이처럼 더럽힌 것도 너희의 악행이니, 그 어둠이 너무 짙어 내가 그것들을 볼 수조차 없구나. 나를 보아라. 지금의 내가 너희 죄악의 모습이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으면 이 나에게서 보아라.

 

9 그러나 내가 감옥에서 보낸 마지막 시간은 동틀 무렵이었다. 벽의 터진 틈으로 희미한 빛살 몇 줄기가 흘러들고 있었다. 그나마 내 고통스러운 처지를 볼 수 있게 되자 얼마나 숨이 터지는 느낌이던지!

 

10 이는 죄의 어둔 밤 속을 뒹굴다 지친 인간이 은총을 받아들일 때를 나타낸다. 은총이 여명처럼 그를 에워싸고 희미한 빛을 보내면서 돌아오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마음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11 그리고 이 여명 속에서, 내 사랑이 나와 같은 처지에 묶어둘 작정이었던 너를 - 내 사랑하는 수감자인 너를 보기도 하였다. 너만은 나를 감옥의 어둠 속에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리니, 내 발치에서 새벽이 오기를 기다리며 나를 따라 탄식할 것이고, 인간의 밤을 두고 나와 함께 울 것이니 말이다. 이 때문에 나는 위안을 얻었기에, 나를 따를 은총을 베풀려고 너에게 나의 그 수감 현장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12 하지만 이 감옥과 어둠은 또 다른 의미도 지니고 있었다. 감실이라는 감옥에 오래도록 홀로 머무르는 것을 뜻한 것이다. 흔히 그렇듯이, 내가 말을 걸거나 사랑의 눈길을 보낼 사람 하나 없이 고독 속에 남아 있으니 말이다.

 

13 또는 내가 성체 안에서, 썩어 진창 냄새를 풍기는 부당한 손이 나를 만지는 것을 느낄 때도 있다. 사랑 어린 순결한 손의 접촉으로 그 향긋함을 느끼게 해 주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이다.

14 인간의 배은망덕이 얼마나 자주 희미한 불빛 하나 없는 어둠 속에 나를 내버려두곤 하는지! 그러므로 나의 수감은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15 그러니 우리는 둘 다 수감자다. 너는 오직 나에 대한 사랑으로 침상에 갇혀 있고, 나는 너를 위하여, 나를 묶은 사슬로 모든 피조물을 묶고자 하는 내 사랑으로 갇혀 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서로의 동반자가 되리니, 너는 나를 도와 이 사슬을 길게 늘여야 한다. 모든 마음들을 내 사랑에 묶기 위해서 말이다.

 

16 그 후 나는 혼자 속으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처럼 많은 일을 하셨건만, 그분에 대해 알려진 것은 얼마나 적은지! 그분께서 행하시고 겪으신 모든 것에 대해 말하는 이가 별로 없었으니 어찌 된 일일까? 하고 생각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어 말씀을 이으셨다. 딸아, 사람들은 누구든지 나에게 인색하다. 착한 사람들도 그렇다. 얼마나 인색하게 굴며 얼마나 많은 제한을 두는지! 내가 그들에게 말한 것과 그들이 나에 대해 이해한 것 중에서도 얼마나 많은 것을 나타내 보이지 않는지!

 

18 너도 여러 번 내게 인색하게 굴지 않았더냐? 내가 너에게 말한 것을 쓰지 않거나 드러내지 않을 때마다 그렇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나에 대한 지식을 하나씩 더 얻을 때마다 내가 그들에게서 영광과 사랑을 하나씩 더 받기 때문이다. 그러니 유의해서 나를 더 후하게 대하여라. 그러면 나도 너를 더 후하게 대해 주겠다.

 

 

2032, 1926123 : 영혼 안에서 예수님의 인성을 가리시는 하느님 뜻. 인간 뜻의 감옥을 상징하는 감옥에 갇히신 예수님.

 

1 평소처럼 흠숭하올 지고한 피앗 안에 나를 온전히 맡기고, 내 가장 높은 선이신 예수님을 애타게 기다렸다. 시작이든 끝이든 그 경계가 보이지 않는 영원하신 의지의 빛 안에서, 내가 이리도 열망하는 분을 찾아낼 수 있을지 보려고 정신을 집중하여 주시하면서 ―.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 밖으로 나오시어, 나의 그 초조를 진정시켜 주시고자 하셨다.

 

2 나는 그러나 그분을 뵙자마자 볼멘소리로 부르짖었다. 저의 사랑이시여, 당신께서는 저로 하여금 탄식하며 애타게 당신을 기다리게 하십니다. 정말이지, 제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질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이 사실로 미루어 보면, 당신께서 이전만큼 저를 사랑하시지 않음이 분명합니다.

3 하지만 당신은 저를 더욱더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셨고, 저 없이는 지내실 수 없을 것이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찌 이리도 온 종일 저를 홀로 버려두시어, 당신 부재의 압착기에 짓눌린 고통의 희생물이 되게 하십니까!

 

4 예수님은 나의 말을 가로막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용기를 내고, 낙담하지 마라. 나는 너를 떠나지 않는다. 내가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자 하면 언제나 너의 내면에서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리고 네가 나를 못 볼 때도 있는 것은, 모든 행위들을 한꺼번에 내포하는 내 뜻의 저 단일 행위를 따를 공간을 내가 너에게 주기 위한 것이다.

 

5 너는 내 지고한 뜻의 빛이 너의 심장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너의 입과 눈과 손과 발에서, 말하자면 너의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보이지 않느냐? 이 지고한 뜻이 네 안의 나를 가릴 경우, 네 눈에 내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내 뜻은 끝없이 무한하기에 - 내 인성은 그렇지 않다. - 나를 가릴 힘이 있는 까닭이다. 나는 그러나 내 지고한 뜻의 이 가림을 즐긴다. 가려진 채 네 안에서 네가 거룩한 피앗 안에서 날아다니며 활동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6 만약 내가 언제나 나타나 보인다면, 너는 나와 함께 지내면서 나의 감미롭고 사랑스러운 현존을 즐기려고 내 인성에 몰두할 것이다. 너의 사랑을 내게 쏟아 붓고 나 또한 그렇게 하리니, 너는 나를 떠날 용기가 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창조된 만물 안에서, 또 구원사업을 통하여 내 인성이 행한 바로 그 행위들 안에서 날아다니는 내 뜻의 이동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7 그러므로 너에게 맡겨진 임무를 완수하게 하기 위해서, 너를 더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나는 숨은 듯이 네 안에 남아 있으면서 네가 영원한 피앗 안에서 하는 모든 행위들을 따라가는 것이다.

 

8 너는 기억나지 않느냐? 이는 바로 내 사도들이 들었던 말이니, 내 인성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내 인성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이 인성 없이는 지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과연 내가 지상에 살아 있는 한 그들은 나를 떠나지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할 수도 내가 지상에 온 것을 알릴 수도 없었을 것이다.

 

9 내가 성령에 휩싸여 하늘로 올라간 후에야 그들은 자기네 고장을 떠날 힘을 받았고, 구원사업의 열매를 알리며 나에 대한 사랑으로 목숨마저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내 인성(이 세상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내 사도들의 사명 수행에 방해가 되었을 것이다.

 

10 그러나 이는 너에게 일어나는 일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너와 나 사이에는 그런 방해란 것이 없으니 말이다. 사실 방해는 두 존재가 서로 떨어질 수 있을 때에 일어난다. 긴밀한 일치를 이루는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 안에서 살기에 방해가 일어날 수 없다. 한 사람이 가면 나머지 사람도 가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함께 있으므로 이 사람이 원하는 곳으로 가려고 저 사람이 노력을 기울일 필요도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안에 있으면서 어디로 가든지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11 나는 다만, 가리는 현상이 종종 일어난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내 뜻의 강렬한 빛으로 말미암은 현상이다. 이 빛이 너와 네 안에 있는 나의 인성 자체도 지배하면서 우리를 가리고, 우리가 그 빛의 행위들을 따라가게 한다. 이것이 내가 너를 이전만큼 사랑하지 않는다든가 너 없이 지낼 수 있다든가 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12 그 반대로, 내 뜻은 너에게 영원하고도 완전한 네 예수의 사랑을 준다. 그 빛으로 벽처럼 나를 둘러싸고, 내가 너에게서 단 한 순간도 떠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13 너는 무엇이 하느님과 영혼 사이의 간격을 만드는지 아느냐? 그것은 곧 인간의 뜻이다. 인간 뜻의 각 행위마다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거리를 한 걸음씩 더 떼어놓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의 뜻이 많이 활동하면 할수록 인간은 그만큼 더 멀리 자기의 창조주에게서 떠나간다. 그분을 시야에서 놓치고, 그 자신의 기원으로부터 추락하고, 천상 가족과의 모든 유대 관계를 끊어 버린다.

 

14 태양의 한 광선이 태양의 중심에서 떨어져 나갈 수 있다고 가정해 보아라. 태양에서 멀리 떠나감에 따라 그것은 스스로의 빛이 흩어짐을 느낀다. 그러다가 태양이 전연 안 보일 정도로 멀어지면, 그 광선은 스스로의 모든 빛이 완전히 흩어지며 어둠으로 바뀌는 것을 느낀다. 어둠으로 바뀐 그 광선은 어떤 움직임, 어떤 생명을 내적으로 느끼면서도 더 이상 빛을 줄 수 없다. 아무런 빛도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의 움직임, 그것의 생명은 짙은 어둠만을 퍼뜨릴 수 있을 뿐이다.

 

15 그러한 것이 인간이기도 하니, 인간은 하느님이신 태양에서 나온 광선들이다. 이 광선들이 내 뜻에서 멀리 떠나가면, 그들 안에 빛을 보존하는 일이 내 뜻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빛이 사라진다. 그리하여 그들은 어둠으로 바뀐다. ! 내 뜻을 실행하지 않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모두가 안다면, 주의에 주의를 기울여, 모든 선의 파괴자인 인간 뜻의 독이 그들 안에 파고들지 않게 할 것이다.

16 그 후 나는 수난 중이신 예수님을 따라 비참한 감옥에 있었는데, 그분께서는 너무나 잔인한 방식으로 기둥에 묶여지셔서 똑바로 서 있을 수조차 없으셨다. 저 사람들이 그분을 기둥에 매달고 다리는 굽혀 기둥에 묶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때로는 오른쪽으로, 때로는 왼쪽으로 흔들리셨다.

 

17 나는 그런 그분을 바로 세우려고 그분의 무릎께에 달라붙어, 온통 흩어져 그분의 흠숭하올 얼굴마저 뒤덮고 있는 머리털을 정돈하고, 저들이 뱉은 침으로 더럽혀진 그분의 얼굴도 닦아 드렸다. ! 그처럼 고통스럽고 굴욕적인 자세로 묶여 계신 그분을 자유롭게 풀어 드리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던지!

 

18 그러자 수인(囚人)이 되신 내 예수님께서 매우 괴로워하시며 내게 이르셨다. 딸아, 내가 수난 과정 동안 감옥에 갇히기를 허락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 그것은 인간을 그 자신의 뜻이라는 감옥에서 풀어주기 위함이었다. 이 감옥을 보아라. 얼마나 끔찍하냐! 이는 쓰레기와 인간의 배설물을 받아 두는 좁은 공간이어서 참을 수 없는 악취가 나고 캄캄하기 그지없다. 그들은 내게 조그만 등불 하나도 남겨 주지 않았다.

 

19 나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처지에 놓여 있다. 침으로 더럽혀진데다 머리털은 온통 흩어지고, 아픈 팔다리는 비틀린 채 기둥에 묶였으므로 똑바로 설 수도 없고, 그러니 내가 나 자신을 도울 수 있는 방도가 전연 없다. 흘러내려 자꾸 눈을 찌르는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길 수도 없는 것이다.

 

20 나의 이 감옥은 인간의 뜻이 만드는 감옥을 여실히 상징한다. 끔찍한 악취가 진동하고 캄캄하기 그지없는데, 이성의 조그만 등불 하나 남겨져 있지 않으니, 그들은 항상 불안하고 정신이 어수선하고 더없이 비참한 욕정으로 더러워지곤 한다.

 

21 ! 정녕 통탄해 마지않을 인간 뜻의 감옥! 나는 그것이 인간에게 자행한 악을 이 감옥에서 너무나 생생하게 느꼈다. 그리고 슬픈 나머지 쓰라린 눈물을 흘리며 내 천상 아버지께 이토록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운 감옥에서 사람들을 빼내 주시기를 기도하였다. 너도 나와 함께, 사람들이 그들의 뜻이라는 감옥에서 풀려날 수 있도록 기도하여라.

 

 

2041, 19261225 : 갓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과 어머니의 포옹. 강생하신 아기께서 보내신 빛의 인사말. 예수님의 탄생 동굴과 수난 감옥의 차이.

 

1 (성탄절이어서) 아기 예수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한숨지으며 한탄하기를 거듭한 끝에 드디어 그분께서 조그만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는데, 내 팔 안에 몸을 던지시며 이르셨다. 딸아, 너는, 나와 떨어질 수 없는 내 엄마가 당신 모태에서 나온 순간의 나를 어떻게 보셨는지 알고 싶으냐? 나를 보아라. 알게 될 것이다.

 

2 나는 그분을 보았다. 그분은 매우 작고, 유례없이 예쁜 아기로 보였다. 그 작은 인성 전체에서, 곧 그분의 눈과 입과 손과 발에서 아주 강렬한 빛살들이 나왔고, 이 빛살들은 그분의 몸을 휩쌀 뿐더러 사람의 마음마다 상처를 낼 정도로 널리 퍼져 나가기도 하면서 그들에게 지상에 오신 첫 인사말을 건네시는 것 같았다.

 

3 그 첫 인사말은 첫 노크이기도 했으니,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려 문을 열게 하여 그들 안에 피신처를 구하려는 것이었다. 그것은 은은하면서도 강한 두드림이었다. 빛의 노크였기에 시끄러운 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 어떤 소리보다 더 크고 세게 들렸다.

 

4 그래서 그날 밤에는 누구나 마음속으로 여느 때와 다른 무엇을 느꼈지만, 그럼에도 그분에게 작은 잠자리라도 드리려고 마음을 연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자 연약하신 아기는 자신의 인사말이 화답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거듭거듭 두드려도 마음의 문을 여는 이가 없다는 것을 아시고, 창백한 입술로 울음을 터뜨리셨다. 추워서 몸을 떨며 흐느끼고 울부짖으며 탄식하셨다.

 

5 하지만 그분에게서 나온 빛이 사람들에게서 그렇게 첫 거절을 당하는 동안, 그분은 당신의 천상 엄마에게 첫 포옹과 첫 입맞춤을 드렸다. 모태에서 밖으로 나오시자마자 엄마의 팔에 몸을 던지신 것이다. 한데 그분의 작은 팔로는 엄마를 완전히 껴안을 수 없었으므로 그 작은 손에서 나온 빛이 엄마를 온통 둘러쌌고, 그리하여 어머니와 아들이 같은 빛에 휩싸여 계셨다.

 

6 , 여왕이신 어머니는 포옹과 입맞춤으로 아들에게 얼마나 완전히 화답하셨는지! 두 분이 너무나 꼭 껴안으신 나머지 서로 안에 녹아든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어머니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 받으신 첫 거절을 어머니의 사랑으로 보상하셨고,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기께서는 탄생의 첫 행위와 그분의 은총과 그분의 첫 고통을 당신 엄마의 마음 안에 넣으셨다. 아드님 안에 보이는 것이 그분의 엄마 안에도 보일 수 있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7 그러고 나서 그 아름다우신 아기께서 나의 팔 안에 오셨는데, 나를 어찌나 꼭 껴안으셨는지 그분은 내 안에 나는 그분 안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다. 그때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내가 갓난아기로서 내 사랑하올 엄마를 껴안았던 것처럼 너를 껴안고자 한 것은, 너 역시 내 탄생의 첫 행위와 내 비통과 눈물 및 내 애처로운 울음소리를 받아들이고, 내 탄생의 고통스러운 상태를 측은히 여기게 하려는 것이었다.

 

8 만약 내가 내 탄생의 모든 선을 넣어 둘 내 엄마가 없었다면, 아버지의 말씀인 내 안에 품고 있었던 내 신성의 빛을 그분 안에 맡길 수 없었다면, 내 탄생의 무한히 소중한 보물도, 내 작은 인성에서 솟는 내 신성의 빛도, 맡길 사람을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9 그러니, 보아라, 지극히 높으신 임금님께서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의 위대한 선을 행하기로 결정하실 경우 ― 그것은 만인에게 이바지할 보편적인 선이 될 것이다. ― 한 사람을 택하여 다른 모든 이들이 받게 될 모든 선을 그 자신 안에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많은 은총을 주시는데, 이는 매우 필요한 일이다.

 

10 사실,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다 받지 못하거나 일부만 받는다고 해도 우리 (성삼위)의 일은 결실 없이 보류되는 것이 아니다. 그 선택된 사람이 모든 선을 자기 안에 받아들이기에, 우리의 일은 그것의 결실을 보답으로 받는 것이다.

 

11 그와 같이 내 엄마는 나의 생명뿐만 아니라 나의 모든 행위들도 맡아 가지고 계셨다. 나는 모든 행위에 앞서 이 행위들을 그분 안에 맡길 수 있는지 먼저 보고, 그다음에 그렇게 하였다. 그리하여 내 눈물과 울부짖음, 내가 겪은 추위와 고통도 그분께 맡겼고, 그분은 내 모든 행위들을 그대로 반영하셨고, 끊임없는 감사와 함께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셨다. 어머니는 받고 아들은 주고 ― 이것이 어머니와 아들의 대조적인 차이점이었다.

 

12 나의 작은 인성이 그렇게 최초로 지상에 들어옴에 따라 내 신성도 이 인성에서 빛을 뿜어내기를 원하였다. 그것은 도처로 돌아다니면서 모든 피조물이 감지할 수 있는 첫 방문을 하기 위함이었다. 하늘과 땅이 ― 인간을 제외한 만물이 그들 창조주의 이 방문을 받아들였다.

 

13 그들은 그들의 왕이며 창조주이신 분을 그들 가운데에서 뵙는 큰 영예와 영광을 일찍이 받은 적이 없었으므로 모두가 영예로움을 느꼈다. 그들은 또한 그들에게 생명을 주신 분을 섬기도록 되어 있었으므로 다들 축제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하였다.

 

14 그러므로 나의 탄생은 나와 내 엄마와 모든 조물에게 큰 기쁨과 영광이었지만, 내게는 사람들 편에서 오는 큰 고통이 되기도 하였다. 내가 너에게 온 것은 이 때문이니, 내 엄마의 기쁨이 내 안에서 거듭되는 것을 느끼면서 내 탄생의 결실을 네 안에 넣어 두려는 것이다.

 

15 그 후 나는 아기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동굴은 얼마나 스산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굴은, 손발이 얼어 감각을 잃을 정도로 매서운 추위와 온갖 바람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지 않았을까? 사람들 대신 짐승들이 그분을 동반하고 있었으니, 그분 수난의 밤 감옥과 베들레헴의 동굴 중, 어느 감옥이 더 스산하고 더 처참했을까?

 

16 그러자 내 다정하신 아기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딸아, 내 수난 감옥의 처참함은 베들레헴의 동굴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동굴에서는 내 엄마가 영육으로 바로 내 곁에 계셨다. 그분이 나와 함께 계셨기에 나는 내 사랑하는 엄마의 모든 기쁨을 가졌고 그분은 당신 아들인 나의 모든 기쁨을 가지셨으니 이 기쁨들이 우리의 낙원을 이루었다.

 

17 아기를 가진 어머니의 기쁨은 크고, 어머니를 가진 아들의 기쁨은 더욱 크다. 나는 그분 안에서 모든 것을 찾아내었고, 그분은 내 안에서 모든 것을 찾아내셨다.

그리고 그 동굴에는 나에게 아버지 역할을 해 준 내 사랑하는 ()아버지 성 요셉이 있었으니, 나는 그가 나로 말미암아 느낀 모든 기쁨도 느낄 수 있었다.

 

18 그 반면에 내 수난 중에는 우리의 기쁨들이 완전히 중단되었다. 고통에 자리를 내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아들은 적어도 임박한 이별의 큰 고통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으니, 그것은 나의 죽음과 함께 일어날 일이었다.

 

19 동굴 속에서는 짐승들이 나를 알아보고 공경하며 그들의 입김으로 내 몸을 따뜻하게 해 주려고 힘썼다. 감옥에서는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지도 못했고, 침과 욕설로 뒤덮으며 나를 모욕했을 뿐이다. 그러니 그 둘은 너무 달라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1335, 19211122 : 하느님 뜻 안에서 행해진 행위는 빛이 된다. 수난 중이신 예수님을 가장 괴롭힌 고통.

1 평소와 같이 지내던 중 지난밤은 거의 뜬눈으로 새었다. 감옥에 갇히신 예수님께로 생각이 자꾸 날아가기 때문이었다. 그분은 모습을 드러내셨지만 워낙 칠흑 같은 어둠 속이어서, 그 가쁜 숨소리와 내 손의 감촉으로 거기 계심을 느꼈을 뿐 눈으로 뵐 수는 없었다.

 

2 그러므로 나는 그분의 거룩하신 뜻 안에 녹아들어, 늘 하는 대로 애써 연민을 표하며 보속 행위를 하고 있었다. 그러자 해보다 더 밝은 빛 한 줄기가 나의 내면에서 솟아 나오더니 예수님의 얼굴에 반사되었다. 그분의 거룩하신 얼굴이 그 빛으로 환하게 빛났고, 날이 샐 녘처럼 어둠이 싹 걷히는 것이었다. 나는 그래서 그분의 무릎께에 달라붙을 수 있었다.

 

3 그러자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내 뜻 안에서 수행된 행위는 내게 광명이 된다. 죄 중에 있는 사람은 나를 암흑으로 둘러싸지만, 햇살보다 더 밝은 이 행위들은 나를 암흑에서 지켜 주고, 빛으로 에워싸며, 내 손의 도움으로 피조물에게 내가 누구인지를 알린다.

 

4 그런 이유로 나는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을 매우 사랑한다. 그가 내게 모든 것을 줄 수 있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그에게 모든 것을 주고 싶어지기에, 다른 모든 사람에게 줄 좋은 것들을 전부 그 안에 넣어 준다.

 

5 태양에게 이성이 있고 초목들에게도 이성이 있다고 가정해 보아라. 모든 초목이 그들 자신의 의지로 태양의 빛과 열을 거부하고, 무성하게 자라는 것도 열매를 맺는 것도 싫어하는데, 오직 하나의 식물만은 애정을 가지고 태양 빛을 받으며 자라나, 다른 초목들이 맺으려고 들지 않는 결실을 내어 그 전부를 태양에게 주고 싶어 한다고 하자.

 

6 태양이 다른 초목들에게 줄 빛을 거두어, 바로 그 식물에게 자신의 빛과 열을 전부 쏟아 붓는 것이 공정한 처사가 아니겠느냐?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성이 없는 태양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그런 일이 영혼과 나 사이에는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7 그 말씀 끝에 그분은 모습을 감추셨으나, 다시 오셔서 이렇게 덧붙이셨다.

 

8 딸아, 수난 중의 나를 가장 심하게 꿰찌른 고통은 바리사이들의 겉꾸민 태도였다. 그들은 의로운 체했지만 가장 불의한 자들이었고, 거룩하고 규정을 잘 지키며 질서정연한 체했지만 더없이 삿되고 규정을 어기며 무질서하기 짝이 없는 자들이었다. 또한 하느님을 공경하는 체할 때에도 자기 자신과 사욕과 제 안락을 떠받드는 자들이었다.

 

9 그러므로 빛이 그들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들의 겉꾸민 태도가 빛에로 나 있는 문을 닫아걸고 있었고, 그 허위가 이중 잠금장치로 그들을 죽음 속에 가두며 몇 가닥 희미한 빛살마저 철저히 차단하는 자물쇠였던 것이다. 우상 숭배자인 빌라도가 바리사이들보다 더 많은 빛을 보았을 지경이니, 빌라도의 모든 언행은 위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공포심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10 나는 거짓으로 착한 이들보다는 더없이 타락한 죄인이라도 거짓은 없는 이들에게 마음이 더 끌림을 느낀다. , 겉으로는 선행을 하며 착한 체하고 기도도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악과 사욕을 키우는 사람을 보면 얼마나 진저리가 나는지!

 

11 그런 자는 입술로 기도하면서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리고 선행을 하는 바로 그 순간에도 어떻게 하면 자신의 정욕을 채울지 궁리한다. 이처럼 거짓된 겉치레로 선을 행하고 말하는 사람은 빛이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닫아걸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빛을 줄 수 없다.

 

12 그런 사람은, 선의 탈을 쓰고 번번이 사람들을 유혹하는 악령들의 화신이 되어 활동한다. 사람들은 그 선을 보고 혹하지만, 가장 안전하다고 느낀 순간 더 큰 죄에 떨어지고 만다. , 그러니 선의 탈을 쓴 것보다는 죄의 얼굴을 하고 있는 유혹이 얼마나 더 안전한지 모른다!

 

13 마찬가지로, 거짓으로 착한 사람들보다는 타락한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 그 위선자들은 너무나 많은 독을 숨기고 있으니, 너무나 많은 영혼들을 독살하지 않겠느냐? 겉꾸민 위선이 없고 모든 이가 있는 그대로 알려진다면, 땅의 표면에서 악의 뿌리가 제거되고 모두가 그릇된 망상에서 벗어날 것이다.

 

 

14) 14시간 : (오전 6-7) 카야파 앞에 다시 끌려가셨다가 빌라도에게 압송되신 예수님

 

1319, 1921921 : 하느님은 어떤 이들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으시는가? 가톨릭임을 표방하면서 교회의 원수가 될 정당. 죄악의 어둠을 구원의 영원한 빛으로 바꾼 고통의 신비

 

1 평소와 같이 있는데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오시어 말씀하셨다. 딸아,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고통스러운 처지에 있게 하는지 모른다! 나는 자녀들을 한없이 사랑하는 아주 부유한 아버지와 같다. 한데 자녀들은 얼마나 은혜를 모르는지!

 

2 아버지는 옷을 입혀 주려고 하건만 그들은 아버지의 옷을 팽개치고 벌거숭이로 지낸다. 아버지가 먹을 것을 주어도 그들은 먹기를 거부하고, 뭐라도 먹을라치면 더럽고 고약한 것을 먹는다. 아버지는 그들에게 재산을 주고 곁에 데리고 있고 싶어서 그 자신의 저택을 주기도 하지만, 자녀들은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고 집도 없이 가난하게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것에 만족한다.

 

3 이 딱한 아버지는 얼마나 슬프겠느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겠느냐? 차라리 줄 것이 하나도 없다면 덜 불행하련마는, 그 많은 재산을 가지고도 쓰지를 못하는 한편 자식들이 죽어가는 꼴을 보고 있어야 하니, 이것이야말로 다른 모든 슬픔을 능가하는 슬픔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4 내가 그렇다. 주고 싶은데 받을 사람이 없다. 그러니 사람들로 인해 쓰라린 눈물을 흘리며 끊임없이 슬퍼하는 것이다.

 

5 하지만, 너는 아느냐, 누가 나의 눈물을 마르게 하고 이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는지를? 그것은 언제나 나와 함께 있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사랑과 자녀다운 신뢰로 내 부를 가지는 사람, 나의 식탁에서 먹고 내 옷을 입는 사람이다.

 

6 나는 그런 이들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을 준다. 그들이야말로 내가 속마음을 털어놓는 이들이요, 내 품에 안겨 쉬게 하는 이들이다.

 

7 그 뒤 나는 나 자신의 밖에 나가 있었으므로 여러 정당들 사이에 새로운 변혁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이 보다 큰 분쟁의 원인이 될 터여서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8 딸아, 정당들이 결성되지 않으면 실제적인 변혁 사건들, 특히 교회와 대적하는 사건들은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정당이란 것이 없으면 싸울 거리가 없을 것이니 말이다.

 

9 하지만 이 정당 - 표면적으로는 가톨릭임을 표방하는 정당 - 에 속한 상당수의 사람은 사실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이어서 교회에 많은 고통을 끼칠 것이다. 이 정당 덕분에 천주교 신앙이 수호되고 있다고 믿는 이들이 많겠지만 속사정은 정반대일 터, 원수들이 그것을 이용하여 이 종교를 더 심하게 매도할 것이다.

 

10 나중에 나 자신 안으로 돌아와 보니 마침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감옥에서 나오셔서 카야파 앞으로 재차 끌려가시는 시간이었다. 나는 애써 이 (고통의) 신비를 예수님과 함께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11 딸아, 내가 카야파에게 끌려갔을 때는 날이 완전히 밝은 아침나절이었다. 인간에 대한 내 사랑이 하도 컸기에 내 생애의 마지막 날 온통 상처투성이인 흉한 얼굴로 사형 선고를 받기 위해 그 대사제 앞으로 갔던 것이다. 하지만 이 선고는 내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치르게 했는지!

 

12 나는 이 고통들을 영원히 밝은 낮으로 바꾸어 각 인간을 에워싸게 하였다. 그들에게서 어둠을 몰아냄으로써 각자가 구원에 필요한 빛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고, 또한 나의 사형 선고도 십분 활용하여 거기에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겪은 각각의 고통과 행한 선 하나하나가 제각기 내가 인간에게 준 또 하나의 낮이곤 하였다.

 

13 그러나 피조물이 행하는 선 역시 언제나 그들이 이루는 낮이다. 악이 언제나 밤인 것처럼 말이다. 어떤 사람이 빛을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 근처에 있는 열 사람이나 스무 사람도 비추임을 받는다. 빛이 다른 사람들 것이 아니고 한 사람 것인데도 그 모두가 빛을 누리기에, 일을 하거나 글을 읽을 수도 있다. 그러니 그 빛을 누리는 이들은 이를 소유한 사람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는다.

 

14 선행도 그렇다. 이는 한 영혼에게 밝은 낮이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 영혼으로 말미암아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도 낮의 빛이 될 수 있다. 선한 것은 항상 전파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내 사랑은 나만을 몰아붙인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그들이 행하는 선행만큼 많은 낮을 그들의 형제들을 위해 만들 수 있는 은총을 주었던 것이다.

 

 

15) 15시간 : (오전 7-8)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님 이어서 헤로데에게 넘겨지시다

 

1432, 192261 :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님. 진리가 무엇이오?

 

1 평소와 같이 다정하신 예수님의 「수난의 시간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특히 빌라도가 그분께 그분 나라의 정체성에 대해 묻는 대목이었다. 그러자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그것은 지상 생활 중 내가 최초로 다른 민족의 권력자를 대한 순간이었다. 그는 내 나라에 대해 물었고, 나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수많은 천사들의 군대가 나를 지켰을 것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3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민족들에게 내 나라를 개방하고 내 천상적 가르침이 그들에게 전달되게 했으므로, 빌라도가 아무튼 당신이 임금이오? 하고 물었던 것이다. 나는 곧바로 대답하였다. 그렇다, 나는 임금이다. 진리를 가르치려고 세상에 왔다.

 

4 그렇게 말함으로써 그의 정신 속에 나를 알릴 길을 트고자 했으니, 그는 가슴이 찔린 듯 진리가 무엇이오? 하고 다시 물었다. 그러나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으므로 나를 이해시킬 기회가 없었다.

 

5 만약 그가 내 대답을 기다렸다면 나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내가 진리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이 진리다. 진리는 이 숱한 모욕들 가운데서 견디고 있는 내 인내다. 진리는 이 숱한 비웃음과 조롱과 멸시 가운데서 주고 있는 내 부드러운 눈길이다.

 

6 진리는 나를 증오하는 수많은 원수들을 사랑하고, 내게 죽음을 안겨 주려고 혈안이 된 그들을 싸안으며 생명을 주고자 하는 나의 온유하고 이름다운 자태다. 진리는 위엄과 천상적 지혜가 가득한 내 말이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이 진리다.

 

7 진리는 찬란한 태양보다 더 찬란하다. 사람이 짓밟으려고 드는 정도만큼 더욱 아름답고 눈부시게 떠올라, 원수들에게 수치를 안겨 주면서 그들을 발치에 때려눕힌다.

 

8 빌라도는 성실한 마음으로 질문했으므로 나는 대답해 줄 용의가 있었다. 헤로데는 어느 쪽인가 하면 악의와 호기심으로 질문을 해대었다. 그러므로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9 거룩한 것을 성실한 태도로 알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는 그들의 기대 이상으로 나 자신을 드러내지만, 악의와 호기심을 가지고 알려고 하는 이들에게는 나 자신을 감춘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조롱하려고 들 때 나는 그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것으로 조롱한다.

 

10 하지만 나는 진리를 지닌 존재이기에 헤로데 앞에서도 진리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헤로데의 빗발치는 질문 앞에서 지킨 침묵, 내 겸손한 눈길, 온유와 위엄과 기품이 가득한 나 자신의 자태 - 이 모든 것이 진리였고, 활동 중인 진리였던 것이다.

 

 

 

152, 1922121 : 하느님 뜻 안에서 모든 것을 행하신 예수님. 그분의 고난과 말씀의 보편성. 참된 다스림.

 

1 다정하신 예수님의 수난에 대해 생각하노라니, 그분께서 바로 이 순간에 그것을 겪고 계신 것처럼 그 고통들이 여실히 느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분은 나를 바라보시며 이렇게 이르셨다.

 

2 딸아, 나는 내 뜻 안에서 모든 고통을 겪었다. 그러니 고통을 겪는 동안 그 고통들이 내 뜻 안에 수많은 길을 내어 개개의 피조물에게 이르고 있었다. 만일 내가 모든 것을 싸 덮는 내 뜻 안에서 고통 받지 않았다면, 그 고통들이 너와 모든 사람에게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저 내 인성과 함께 남아 있었을 것이다.

 

3 더욱이 그것은 내가 내 뜻 안에서 겪은 고통들이기에 그처럼 사람들에게 이르는 수많은 길을 내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내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같은 수의 다른 길도 내었다. 그들은 나의 이 고통들에다 다른 고통들을 합해서 들어왔으니, 이는 모든 세기에 걸쳐 그들 각자의 죄로 내게 끼치는 고통들이었다.

 

4 말하자면 세찬 빗발처럼 쏟아지는 매질을 당하는 동안, 내 뜻이 모든 피조물을 각각으로 데려와 나를 치게 하였다. 그러니 채찍질을 하고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도 그들의 죄로 그 잔학한 채찍질을 함께하고 있었다.

 

5 다른 모든 고통들도 마찬가지였다. 내 뜻이 내게 모든 사람을 데려왔다. 부재자는 없었다. 모두가 내 앞에 있었다. 한 사람도 내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니 내 고통은 그 정도나 수에 있어서, ,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얼마나 한없이 컸겠느냐!

 

6 따라서 네가 나의 고통을 봉헌하고 네 연민과 보속을 바치고자 한다면, 너의 작은 고통이 내게 이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 길과 같은 길을 따라 모든 것을 내 뜻 안으로 들어오게 할 일이다. 그러면 모든 세대가 그 고통의 효과를 얻게 될 것이다.

 

7 그리고 이는 내 고통만이 아니고 내 말에도 해당되는 사실이다. , 내 뜻 안에서 내가 한 말은 모든 사람에게 이르는 것이다. 예를 들면, 빌라도가 내게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하고 물었을 때,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8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수없이 많은 내 천사들의 군대가 나를 수호하여 그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9 빌라도는, 너무나 초라하게 수모와 멸시를 당하고 있는 나를 보고 적이 놀라면서 더 큰 소리로, 아무튼 당신이 임금이오? 하였다. 나는 빌라도와 그런 권좌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였다. 그렇다. 나는 임금이다. 나는 진리를 가르치려고 세상에 왔다.

 

10 진리란 지위나 나라나 높은 관직이나 지배권이 아니다. 다스리는 특권층이 되게 하고 모든 사람들보다 자신을 드높이게 하는 이런 것들은 인간을 오히려 노예로 만드는 비참한 것들이다. 인간으로 하여금 천한 격정과 불의한 자들을 섬기게 하고, 또 수치스러운 불의를 저지르게 하여 더러운 진창 속으로 내던지며, 손아랫사람들의 미움을 사게 한다.

 

11 그러므로 부()는 예속을 초래하고, 높은 지위는 많은 사람들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칼과도 같다.

 

12 참된 다스림은, 모든 것을 벗어 버리고 모든 이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며 모든 이에게 복종하는 미덕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을 결속시키고 모든 이가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진정한 다스림이다. 따라서 너의 나라는 머지않아 사라지겠지만 나의 나라는 끝이 없다.

 

13 내가 내 뜻 안에서 나의 이 말이 권좌에 앉아 있는 모든 이들의 귀에 가 닿게 했던 것은, 그들이 처해 있는 큰 위험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고, 또 지위나 높은 관직이나 지배권을 탐하는 이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함이었다.

 

 

1540, 192375 : 유다인들에 의해 빌라도 앞에 끌려가신 예수님. 이 광경이 함축한 교훈과 예수님 나라의 정체성

 

1 예수님의 수난 중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묵상하면서 특히 유다인들에 의해 빌라도 앞에 끌려가시어 고발당하셨을 때의 그분과 함께 있었다. 빌라도는 유다인들이 그분을 고발한 내용만으로는 미흡해서 그분께로 돌아와 질문을 던졌다. 그분을 단죄하거나 석방하기에 충분한 근거를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그 순간 예수님께서는 나의 내면에서 이렇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2 딸아, 내 생애 안의 모든 것은 심오한 신비와 숭고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이는 나를 본받기 위해 반드시 성찰해야 할 점들이다.

3 네가 알아 둘 것은 이것이다. 유다인들은 너무나 교만해서 - 특히 거짓 성덕을 공공연히 드러내면서 이 때문에 의롭고 양심적인 사람들로 대우를 받으리라고 여겼다는 점에서다. - 빌라도 앞에 나를 끌고 와서 사형에 처할 만한 죄가 내게 있다는 말만 하면, 빌라도가 그들의 말을 믿고 아무런 의문도 나타냄 없이 나를 단죄할 줄로 알았다. 더군다나 이 이방인 재판관은 하느님을 모르고 하느님에 대한 의식조차 없는 자이니 더욱 그리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4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사태가 그들 생각과 다르게 돌아가게 하셨다. 그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면서 고위층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5 그 가르침은, 한 죄인을 고발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선량하고 독실해 보이건 그들의 말을 의문 없이 대번 믿을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로 질문 공세를 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있고, 또는 선량의 외관 아래 시기와 원한을 숨기고 있지 않은지, 혹시 상급자의 지위나 관록을 갈취하려는 야심을 마음속에 품고 있지 않은지 따위도 알 수 있다.

 

6 질문들로 그처럼 세밀하게 조사하다 보면 사람들의 됨됨이를 알 수 있고 그들을 어리둥절하게 할 수 있으며, 그들에 대한 불신을 드러낼 수도 있다. 그러면 그들은 자기들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고, 지위에 대한 야심이나 남을 고발하려는 생각을 깨끗이 접게 된다.

 

7 그러니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닫힌 마음의 눈으로 거짓 선량을 믿고 증명된 덕을 무시한 채 남의 잘못을 고발하는 자에게 직위를 주거나 관심을 쏟는다면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겠느냐!

 

8 유다인들은 빌라도가 자기들의 말을 믿지 않고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자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빌라도가 결국 그들에게 굴복하여 나를 단죄하기에 이른 것 역시 그들을 믿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지위를 보전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9 이 점이 유다인들을 얼마나 어리둥절하게 했는지, 그들의 이마에 극도의 당혹감과 수치감이 낙인처럼 새겨져 있었다. 그것도 이방인 재판관 안에서 자기들보다 올바른 판단력과 양심을 보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다.

 

10 면밀한 조사는 따라서 참으로 필요하고 옳은 일이다. 진실로 선한 사람들에게는 빛과 평온을 주고, 악한 사람들에게는 착잡한 당혹을 주기 때문이다.

 

11 그리고 빌라도가 나 역시 세밀히 조사하려고 당신이 임금이오? 그러면 당신의 나라는 어디에 있소? 하고 물었을 때에, 나는 내가 임금이다. 하고 대답하면서 또 하나의 숭고한 가르침을 주고자 하였다. 이렇게 말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12 한데 너는 내 나라가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내 나라는 나의 고통과 피, 나의 덕행들이다. 이것이 내가 소유한 참된 나라다. 내 밖이 아니고 내 안에 있는 나라다.

 

13 사람이 자신의 바깥에 소유하고 있는 것은 참된 나라도 안전한 통치권도 아니다. 자기 안에 있지 않는 것은 빼앗길 수 있고 통치권도 찬탈될 수 있으니 본의 아니게 그것을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자기 안에 있는 것은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기에 그 통치권도 그 사람 안에서 영원하다.

 

14 내 나라의 특징을 이루는 것은 나의 상처들과 가시들과 십자가다. 나는 다른 임금들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이 임금들은 백성들을 그들의 바깥에서 위험에 처한 채 살게 한다. 그래서 언젠가는 굶어 죽게 한다.

 

15 나는 그와 반대로 내 백성들을 내 상처들이 이루는 방 안에서 살게 한다. 내 고통이 그들에게 힘과 피신처를 주며, 내 피가 그들의 갈증을 풀어 주고, 내 살이 그들의 허기를 채워 준다. 오직 이것만이 참된 통치다. 다른 나라들은 종살이와 위험과 죽음의 나라인 반면, 내 나라에는 참생명이 있는 것이다.

 

16 내 말에는 숭고한 가르침과 심오한 신비들이 참으로 많다! 각 사람은 아픔과 고통 중에 있을 때, 수모를 겪을 때, 모든 사람에게서 버림을 받을 때, 참된 덕행을 실천할 때, 언제라도 이렇게 혼잣말을 해야 할 것이다.

 

17 이것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내 나라다. 아무도 내게서 이 나라를 빼앗아 가거나 건드릴 수 없다. 오히려 내 나라는 영원하고 신적이며, 다정하신 예수님의 나라와 비슷하다. 내 고통과 아픔이 나에게 이를 보증해 주고, 내 나라를 더욱 강화하여 맹렬한 기세를 떨치게 한다. 그러므로 이 막강한 힘 앞에서 나와 전쟁을 하려고 맞설 수 있는 자는 도무지 없을 것이다.

 

18 이것이야말로 내 모든 자녀들이 열망해야 할 평화의 나라다.

 

 

1318, 1921916 : 헤로데의 조롱이 온갖 부류의 사람들에 의해 재연되고 있다. 예수님께서 영혼이 당신 뜻 안에 녹아들기를 기다리시는 까닭

 

1 수난의 시간들 중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헤로데의 관저에서 미친 사람처럼 옷 입힘을 당하시고 조롱을 받으시는 시간을 묵상하고 있었을 때,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모습을 나타내시고 말씀하셨다.

 

2 딸아, 나는 미친 사람처럼 옷 입힘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조롱과 야유도 받았는데, 사람들은 지금도 내게 이 고통들을 주고 있다. 심지어 나는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던지는 조롱에 둘러싸여 있기도 한다.

 

3 어떤 사람이 고해성사를 받고 내게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을 뒤엎어 버린다면 나를 놀림감으로 삼는 것이다. 신앙 고백과 설교와 성사 집전을 하는 사제가 자기가 하는 말과 집전하는 성사들의 품위에 일치하지 않는 삶을 산다면, 그의 말이나 성사 집전의 횟수와 같은 수만큼 나를 놀리는 것이다.

 

4 나는 성사들을 통해 그들에게 새 생명을 주건만 그들은 내게 조롱과 야유를 퍼붓는다. 성사들을 모독함으로써 미친 사람처럼 내게 입힐 옷을 마련하는 것이다.

 

5 장상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손아래 사람들에게는 희생과 덕행과 기도와 무사 무욕을 명하면서도 자기들은 안락과 악습과 이해타산에 젖은 생활을 한다면, 그만큼 많은 수로 나를 놀리는 것이다.

 

6 일반 지도자건 교회 지도자건 법의 준수를 요구하면서도 그들 자신이 첫째가는 위반자가 된다면 나를 놀림감으로 삼는 것이다.

 

7 ! 내가 얼마나 숱한 우롱을 당하고 있는지! 어찌나 많은지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다. 특히 선의 탈을 쓰고 저질러지는 악의 독을 볼 때 더욱 그렇다. 그들은 내가 마치 심심풀이 노리개나 되는 듯 수도 없이 나를 가지고 노는 것이다!

 

8 그러나 조만간 정의가 그들을 호되게 벌하며 놀릴 것이다. 너는 기도하면서 이 조롱들을 보속하여라. 이것이 너무나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나로 하여금 내가 누구인지 알리지도 못하게 하니 말이다.

 

9 나중에 내가 하느님의 뜻 안에 온전히 녹아들고 있었을 때, 그분께서 다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10 내 뜻의 더없이 소중한 딸아, 나는 네가 내 뜻 안에 녹아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내가 내 뜻 안에서 생각했던 것과 같이 너의 생각들도 내 뜻의 거푸집에 부어 만들어 이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는 것을 네가 알기를 바라는 것이다. 또 나의 활동과 같이 너의 활동도 내 뜻 안에 넣어 주조(鑄造)했으며, 다른 모든 것도 그렇게 했다는 것을.

 

11 그런데 그것은 무엇이나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위해서 한 일이었다. 나에게는 불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 뜻 안에서 너를 기다린다. 네가 와서 내 인성이 너를 위해 마련한 자리를 차지하게 하려는 것이고, 나의 행위를 따라 너도 네 행위를 하게 하려는 것이다.

 

12 내가 몸소 행한 바를 네가 행하는 것을 볼 때, 그때라야 비로소 나는 만족감을 느끼며 완전한 영광을 받게 되는 것이다.

 

 

1476, 19221124 : 예수님께서 헤로데 앞에서 침묵을 지키신 이유. 진리들을 숨기려 한다고 준엄한 꾸지람을 듣다.

 

1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헤로데 앞에 끌려가셨을 때를 생각하다가, 그지없이 선하신 그분께서 헤로데에게는 말씀 한마디, 눈길 한 번 주시지 않았다니, 어떻게 그러실 수 있었을까? 그 불성실한 마음이 그분 눈길의 힘 앞에서 회개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하고 중얼거렸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말씀하셨다. 딸아, 그는 내가 바라보거나 말을 하기에는 너무 부패하고 완악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만일 내가 그렇게 했다면 더 큰 죄인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눈길이나 말들은 저마다 나와 피조물을 묶는 끈을 하나씩 더 보태기 때문이다.

 

3 말하자면 하나하나의 말마디가 더 강한 결합, 더 깊은 친밀을 이루기에, 영혼이 내 눈길과 마주질 때면 은총이 작용하기 시작한다. 이 눈길이나 말이 다정하고 자애로우면 그는 말한다. , 그 눈길은 (혹은 그 음성은)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은은하고 감미롭던가! 어떻게 그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4 또 그것이 위엄 있는 눈길이거나 찬란한 광채를 발하는 말이라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얼마나 위엄 있고 크고 날카로운 빛인가! 나는 너무 작게 느껴진다. 너무 비참한 존재다. 그 찬란한 빛 앞에 있으면 나는 거의 어둠일 뿐이다.

 

5 이와 같이 내가 내 말이나 눈길이 가져오는 능력과 은총과 선에 대해 낱낱이 다 말한다면, 너로 하여금 수없이 많은 책을 쓰게 하는 셈이 될 것이다.

 

6 그러니 생각해 보아라. 내가 너를 매우 자주 보고 나와의 친밀한 담화 속에 있게 했으니, 그 동안 너에게 얼마나 큰 선을 베풀었겠느냐! 게다가 이 담화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완전한 강론이었으니, 이를 통해 너와 나의 결합 내지 관계가, 그 유대와 친밀성이 얼마나 헤아릴 수 없도록 깊어졌겠느냐!

 

7 나는 너에게 제자들을 가르치는 스승과 같이 행동하였다. 이 스승은 지도를 바라는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몇 마디 말을 해 줄 뿐이지만, 자기 제자들과는 온종일 함께 지내면서 그들을 자기와 비슷한 스승으로 양성하기를 원한다.

 

8 그는 그러므로 무엇이나 소상히 말하며 언제나 그들을 가르친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부연 설명을 하는가 하면 때로는 더 잘 이해하도록 비유를 들어 주기도 한다. 행여 제자들의 주의가 산만해져서 자기의 노력을 허비할세라 잠시도 그들을 방치해 두지 않는다. 필요할 경우에는 자신의 휴식 시간까지 생략하고 가르침을 준다. 제자들을 스승으로 키우기 위해서라면 노고도 긴장도 땀도 아무것도 아끼지 않는 것이다.

 

9 내가 너한테 그렇게 해 왔다. 아무것도 아끼지 않았다.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몇 마디 말을 했지만, 너에게는 담화와 긴 강론과 비유들을 들려주었고, 그것도 밤이건 낮이건 어느 때나 그렇게 하였다.

 

10 그러니 내가 너에게 주지 않았던 은총이 무엇이겠느냐? 너와 함께 있지 않으면 지낼 수 없을 정도로 큰 사랑을 주지 않았더냐? 그것은 내가 너한테 큰 계획을 세워 두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토록 많이 쏟아 준 것이다.

 

11 그런데 너는 내가 네게 말한 것과 베푼 것을 너 자신 안에 숨겨 두는 것으로 그 은혜를 갚으려고 든다. 그것을 드러냄으로써 내가 받게 될 영광을 내게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12 스승이 숱한 산고를 겪으며 가르친 제자가 스승만큼 유식해지자 자기가 받은 지식을 남들과 나누지 않고 혼자만의 전유물로 삼고자 한다면, 너는 그 제자에 대해 어떻게 말하겠느냐? 배은망덕하게도 자기 스승을 비탄에 잠기게 하는 자라고 하지 않겠느냐?

 

13 나에게서 엄청난 빛과 열을 받은 태양이 만약 이 빛과 열을 땅 위에 내려 보내기를 거부한다면, 너는 그 태양에 대해 어떻게 말하겠느냐? 대놓고 이렇게 말하지 않겠느냐?

 

14 너는 과연 좋은 인상을 주지만 좋은 것을 너 혼자 가지고 있는 것은 좋지 않다. 땅과 식물과 사람들이 너의 빛과 열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생명과 생산력을 받으려고 그것을 원한다. 이리도 중대한 선을 어째서 우리에게서 박탈하려고 드느냐? 더구나 그것을 우리에게 준다고 해서 네가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더 큰 영광을 얻을 것이고, 모든 이가 너를 찬미할 것이다.

 

15 그런데 네가 바로 그러하다. 아니 그 태양보다 더 나쁘다. 내가 태양보다 더 찬란한 빛을, 곧 내 뜻에 대한 진리의 빛을 네 안에 두었으니, 이것이 만물을 비추기에 넉넉하고, 태양이 땅에 베푸는 선보다 더 많은 선을 베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 자신도 모든 사람들도 이 빛이 너에게서 쏟아져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16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그것을 어떻게 하면 숨길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고, 권한이 있는 당국자가 출판하려고 원고를 가져가고자 하면 심히 당황하며 끙끙거리곤 한다. 아니다. 아니다. 이는 결코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17 나는 다정하신 예수님의 그 말씀을 듣고 괴로워 죽을 지경이었다. 또한 더욱 큰 죄의식을 느끼기도 했다. 최근에 내 원고 중 하나가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 출판 허가를 받지 못한 채 반납된 적이 있는데, 그때 내가 적잖은 후련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18 그러나 그토록 준엄한 꾸지람을 들으면서, , 내가 얼마나 나쁜 인간으로 보이던지! 마음을 다하여 예수님께 용서를 청하였고, 그러자 그분은 내가 진정하도록 강복해 주시며 말씀하셨다. 내 용서와 축복을 받아라. 하지만 더욱 주의를 기울여 다시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

 

 

2045, 192714 : 하느님 뜻의 새 행위마다 하느님의 새 생명을 가져온다.

진리를 듣기는 하나 실천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의 불행. 영혼들 안에서 겪는 하느님 뜻의 고초.

 

1 내 하찮은 마음은 사랑하올 내 소중한 예수님의 부재 고통으로 말미암아 때로는 한탄하고 때로는 허덕이고 있었다. 그분이 오시지 않으니 일각이 여삼추(一刻如三秋), 밤도 끝없이 길었고, 눈에서 잠마저 달아나 버렸다. 잠이나마 잘 수 있었다면 나의 그 가혹한 고통도 잠들어, 약간의 위로는 얻었으련마는!

 

2 그러나 잠은커녕 점점 더 정신이 말똥말똥해져 뜬눈으로 있었다. 내가 찾고 있으나 찾아내지 못한 분이 어디에 계신지 보려고 내 생각이 눈에 불을 키고 있었고, 내 청각이 - 누가 알랴? - 그분의 부드러운 발걸음 소리와 그 감미롭고 정다운 목소리의 울림을 들으려고 바짝 긴장해 있었고, 내 눈은 - 누가 알랴? - 그분의 쏜살같은 지나가심이라도 보려고 주의를 집중하고 있었다. , 그분의 부재는 내게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게 하는지! , 언제가 되어야 돌아오시려는지!

 

3 내가 그렇게 열렬한 기다림 속에 있었을 때,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기척을 내시며 당신의 모습을 보여 주셨는데, 내 안의 작은 빛 탁자에 앉으시어 지금껏 내게 드러내 보이신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에 대한 말씀의 전체적 질서를 유심히, 골똘히 살펴보시는 모습이었다. 모든 것이 표기되었는지, 뭔가 빠진 것은 없는지,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에 대한 모든 것이 완성될 시점에 이르렀는지 살펴보시는 것이었다.

 

4 그분의 의지에 관한 모든 것, 말씀들, 지식들이 예수님의 손 안에서 빛살 모습을 띠고 있었고, 그분께서 그것을 그 빛 탁자에 올려놓고 질서 있게 정돈하시는 중이었는데, 너무나 열중하신 나머지 내가 아무리 부르며 말씀을 붙여도 들은 체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그래서 그분 곁에 있다는 것과 그분을 뵙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면서 침묵을 지켰다.

 

5 이윽고 한참 침묵이 흐른 끝에 그분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내 뜻에 대한 일일 경우, 하늘과 땅이 이 지고한 뜻의 새 행위를 목격하려고 침묵을 지키며 경의를 표한다. 그 새 행위마다 만인에게 하느님의 생명을 하나 더 가져오고, 하나의 힘, 하나의 행복, 하나의 황홀한 아름다움을 더 가져오는 까닭이다.

 

6 그러므로 하느님의 뜻이 활동하면 하느님의 뜻 자체에서 하나의 행위가 나오는 것이고, 이는 하늘과 땅에 있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것이다. 하느님 뜻의 행위가 하나 더 이루어지면, 새 하늘과 더 아름다운 태양들이 그 행위에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7 너와 나는 따라서 하느님 뜻에 대한 일이라면, 모든 것을 제쳐 두고 오로지 그 영원한 피앗에만 전념해야 한다. 이는 너의 인간적인 뜻이거나 어떤 하나의 덕목을 재정립하는 일이 아니라 거룩하고 활동적인 하느님 뜻을 재정립하는 일이니, 매우 많은 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8 이런 이유로 나는 나와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다 이 지고한 피앗의 새 행위라는 큰 선을 가져오기도 할 이 일에 열중해 있었고, 그래서 네가 부르는 소리는 들은 체하지 않았다. 더없이 큰 일을 하는 것이 문제일 경우, 작은 일들은 옆으로 제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9 그 후 나는 수난 중이신 예수님을 따라다니다가, 헤로데가 숱한 질문을 퍼부어 대는 시점에 이르렀는데, 그분은 시종 침묵을 지키셨다. 나는 마음속으로, 예수님께서 대답을 좀 해 주셨으면 그가 회개했을지도 모른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기척을 내시며 이르셨다.

 

10 딸아, 헤로데는 진리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호기심 때문에, 그리고 나를 조롱하기 위해서 질문을 퍼부었다. 내가 만약 대답했다면, 그를 조롱한 셈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를 알고 싶어 하나 실천하려는 의지가 없는 영혼 안에는 내 진리의 빛이 빛과 함께 가져오는 열을 받아 낼 수분이 없기 때문이다. 이 열은 진리에 싹이 트고 번성하게 할 물기를 찾아내지 못하면 한층 더 뜨겁게 달아올라 스스로 생산 가능한 선을 시들게 하는 것이다.

 

11 태양도 그렇다. 식물에 수분이 없는 것을 보면, 그 열로 식물의 생명을 말려 시들게 한다. 그러나 수분을 발견하면 놀라운 일들을 한다. 그러므로 진리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영혼을 되살리는 자, 비옥하게 하는 자다. 진리는 그 빛과 열로 진보와 은총과 성화의 놀라운 기적을 일으킨다. 하지만 진리를 알고 실천하기를 원하는 이들에게만 그러할 뿐이다. 이와 반대로, 진리를 실천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진리가 그들을 조롱한다. 조롱당하기 보다는 조롱하는 것이다.

 

12 여기에 덧붙일 것은, 이 글을 쓰는 동안 어찌나 기운이 없는지 간신히 썼다는 점이다. 또한 일을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말씀을 양식으로 주시거나 정신의 빛이 바다처럼 충만히 나를 채우게 하시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그래서 소량의 빛을 취하여 이 노트에 적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13 그렇게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다 쓰고자 했다면, 바다 속으로 들어가 모든 물을 손으로 움켜쥐려고 하는 사람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아무리 움켜쥐어도 물은 몽땅 빠져나가지 않겠는가? 하지만 몇 방울만 잡으면 간신히 손에 묻혀 올 수는 있을 것이다.

 

14 그러자니 내게는 모든 것이 영혼 안에서, 육신 안에서, 모든 것 안에서 고난을 겪고 있는 셈이었다. 어찌나 기분이 나쁜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더 이상 하느님의 뜻이 아닐지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그분께서 다른 때처럼 나를 도와주셨을 것이 아닌가. 그 대신, 너무나 큰 고초를 겪으며 갖은 애를 다 써야 하니 더는 계속할 수가 없다. 예수님께서 원하시지 않으면 나도 원하지 않는다.

 

15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나오시어 말씀하셨다. 딸아, 내 뜻의 나라를 소유한 사람은 내 뜻을 실행하며 내 뜻 안에서 살아야 할 뿐만 아니라, 내 뜻이 영혼들 안에서 느끼고 겪는 것도 다 느끼고 겪어야 한다.

 

16 네가 지금 겪고 있는 것은 바로 사람들 안에 놓인 내 뜻의 처지이다. 내 뜻이 얼마나 어렵게 흘러들고 있는지! 사람들을 정복하여 이 뜻을 실행하게 하려고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 그러나 그들은 이를 그들 자신의 뜻 안에 억눌린 상태로 있게 한다. 그리고 그들 안에 있는 내 뜻 생명의 가장 좋은 것, 내 뜻의 에너지와 기쁨과 힘을 앗아 간다. 내 뜻은 그러므로 우울하고 나약하며 변덕스러운 인간 뜻의 억압 아래에서 활동하지 않을 수 없다.

 

17 , 그들이 내 뜻을 얼마나 견디기 어렵고 힘든, 악몽 같은 고통 속에 있게 하는지! 너는 내 뜻의 그 고통에 동참하지 않겠느냐? 딸아, 너는 키()가 되어야 한다. 내 뜻이 내고자 하는 소리라면 무슨 소리든지 다 낼 수 있도록 힘을 다해야 하니 말이다. 그리하여 내 뜻이 자기 소유의 모든 소리들을, , 기쁨의 소리, 힘의 소리, 선함의 소리, 고통의 소리 등등을 네 안에 만들어 낼 때, 그때에야 네 안에 그 자신의 나라를 세운 내 뜻의 승리가 완성될 것이다.

 

18 그러니 이는 내 뜻이 네 안에서 연주하기를 원하는 색다르고 독특한 하나의 소나타라고 생각하여라. 내 뜻이 네 영혼 안에 하나의 키를 더 늘이고자 한다. 지고한 피앗의 나라에도 음악이 있기를, 천국 음악의 모든 음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16) 16시간 : (오전 8-9) 다시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님

예수님을 두고 바라빠를 택한 유다인들

매 맞으시다

 

1418, 192241 : 주님 부재의 고통을 초래하는 요인들. 연옥 고통을 능가하는 고통에 대하여. 수난의 가장 굴욕적인 단계. 죄라는 광기.

 

1 다정하신 예수님의 부재로 인해 몹시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모습을 보여 주신다고 해도 번쩍 지나가는 번갯불 같을 뿐이니, 얼마나 괴로운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2 내 생명, 내 전부이신 그분께서 다시는 돌아오시지 않으리라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암흑 속에 잠겨 있었다. , 이젠 모든 것이 끝장이다. 내가 어떻게 해야 그분을 다시 뵐 수 있을까? 누구에게 의지해야 할까? , 아무도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

 

3 내가 그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었을 때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오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엾은 딸아, 내 가엾은 딸아, 너무나 큰 고통을 받고 있구나! 네 고통의 상태는 정화 중인 영혼들의 상태마저 능가한다.

 

4 이 영혼들이 나의 부재 속에 있는 것은 그들을 더럽힌 죄 때문이다. 죄가 나를 보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어서 그들은 내 앞에 올 엄두도 내지 못한다. 나의 무한한 거룩함 앞에서는 아주 작은 흠도 내 현존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5 그러니 내 앞에 있도록 허락한다면 이것이 그들에게는 가장 큰 고통이, 지옥 고통을 능가하는 고통이 될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이 흠이 있는 상태로 내 앞에 있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그들을 더 괴롭히지 않으려면 우선 깨끗이 정화되게 해야 한다. 그런 다음 내 앞에 오게 하는 것이다.

 

6 그러나 나와 내 뜻의 작은 딸 사이의 경우, 나 자신을 나타내 보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것은 나와 이 딸 사이에 가로놓인 내 정의다. 따라서 나를 보지 못하는 너의 고통은 다른 모든 고통을 능가한다.

 

7 가엾은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너는 나와 똑같은 운명을 걸머지고 있다. 정의의 고통이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이 고통을 견디려면 신적인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내 뜻 안에 사는 사람과 더불어서만 내가 이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8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라. 늘 하던 대로 내가 곧 다시 오겠다. 너는 정의의 빛살이 피조물을 치게 잠자코 있어라. 내 정의도 갈 길을 가야 하는데다, 네가 그 전체를 감당할 수도 없다. 그런 다음 내가 전과 같이 너와 함께 있으마.

 

9 그렇다고 해서 너를 아주 떠나겠다는 말은 아니다. 네가 나 없이는 지낼 수 없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으니까 네 마음 깊은 곳에 머물러 있겠다. 우리 함께 간구하자꾸나.

 

10 그 후 나는 「수난의 시간들」을 따라갔다.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미친 사람처럼 옷 입힘을 당하시고 그런 취급을 받으시는 대목에 이르러, 내 정신이 이 신비 속을 헤매며 갈팡질팡하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11 딸아, 내 수난의 가장 굴욕적인 단계가 바로 이것이었다. 미친 사람처럼 옷 입힘을 당하고 그런 취급을 받은 것 말이다. 나는 그때 유다인들의 노리개 ― 그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이는 내 무한한 지혜가 참아 견딘 최대의 굴욕이었다. 그럼에도 이 고통을 겪는 것이 하느님의 아들인 내게 필요한 일이었다.

 

12 인간은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광기에 빠져든다. 이보다 더한 광기는 있을 수 없으니, 왕의 신분에서 전락하여 그지없이 천한 격정들의 노예며 노리개가 된다. 격정들이 인간을 억압하면서 미친 사람보다 더 힘껏 묶어 진창 속으로 던져 넣고, 더럽기 짝이 없는 것들로 칠갑하는 것이다.

 

13 , 정말이지 죄는 심각한 광증이다! 이 증세를 지니고도 지고하신 임금님 앞에 있을 수 있는 인간은 결코 없다. 나는 그래서 그 굴욕적인 고통을 참아 받고자 하였다.

 

14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 나 자신을 바쳐 인간의 광기가 마땅히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음으로써 인간이 그것에서 벗어나도록 간구하기 위함이었다. 그 메아리가 내 귓전에 윙윙 울리면서 나를 고통과 멸시와 비웃음과 조롱 및 온갖 고문에 휩싸이게 했던 것이다.

 

 

142, 192229 : 모진 고문으로 끔찍해진 예수님의 몸은 죄 지은 인간의 모습이다. 그지없는 자비를 거부하는 인간의 배은망덕으로 인한 주님의 고통.

 

1 평상시와 같이 지내면서 「수난의 시간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채찍질을 당하시는 고통의 신비 속의 예수님을 동반하는 시간에 이르자, 그분께서 살이 온통 해어진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2 그분의 몸은 옷만 벗겨진 것이 아니라 살도 벗겨져 있어서, 하나하나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뼈가 드러나고 있었다. 보기에 처참하다 못해 무시무시하기까지 한 모습에, 두려움과 경악과 존경과 사랑이 동시에 가슴을 치는 것이었다.

 

3 나는 이 가슴 아픈 광경 앞에서 말을 잃었다. 예수님의 고통을 덜어 드리기 위해 뭔가를 하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그분을 뵙자 갑작스런 죽음의 엄습을 받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러나 그지없이 인자하신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4 사랑하는 딸아, 네가 내 고통을 깊이 알 수 있도록 나를 잘 보아라. 이 몸은 죄를 지은 인간의 참모습이다. 죄는 인간에게서 내 은총의 옷을 벗긴다. 내가 이렇게 옷 벗김을 당한 것은 인간에게 은총의 옷을 다시 입혀 주기 위함이었다.

 

5 죄는 인간을 흉하게 변형시킨다. 내 손에서 나온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인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역겹고 혐오스러운, 가장 추한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6 나는 가장 아름다운 인간이었지만, 인간에게 본래의 아름다움을 돌려주기 위해 내 인성이 가장 추한 모양새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나를 보아라. 얼마나 지긋지긋한 모습이냐! 채찍질에 의해 살가죽이 뜯겨 나가서, 나 자신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7 죄는 아름다움을 앗아갈 뿐만 아니라, 세포조직이 덩어리로 썩어 괴사(壞死)하는 깊은 상처를 내기도 한다. 이 상처가 가장 내적인 부위까지 침식해 들어가면서 인간의 생기를 소진시킨다. 그러므로 그가 행하는 모든 것은 해골처럼 메마르고 죽은 작업이 된다. 그것은 또한 인간에게서 본연의 고결함과 이성의 빛을 빼앗아 눈이 멀게 한다.

 

8 나는 인간의 그 깊은 상처를 채워 주려고 내 살점이 조각조각 뜯겨 나가게 하였다. 나 자신을 온통 하나의 상처 덩어리가 되게 하고 피를 강물처럼 쏟아냄으로써, 인간 영혼 안에 생기가 흘러들게 하였다. 다시금 인간에게 생명을 돌려주기 위함이었다.

 

9 , 내가 만약 생명의 샘인 내 뜻을 내 안에 지니고 있지 않았다면, 수난이 시작될 무렵에 이미 죽었을 것이다. 내 인성은 고통을 당할 때마다 죽었지만 내 뜻이 생명으로 바꾸어 주곤 했기 때문이다.

 

10 나의 그 고통과 피, 조각조각 떨어져 나간 살점들은 언제나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생명을 받지 않으려고 내 피를 거부하고, 상처가 움푹 파인 상태로 있으려고 내 살점을 짓밟는다. , 이 배은망덕이 내게 얼마나 무겁게 느껴지는지!

 

11 그러고 나서 그분은 내 팔에 몸을 던지시며 울음을 터뜨리셨다. 나는 그분을 가슴에 붙여 안았지만 그분은 더 크게 소리 내어 우셨다. 예수님께서 통곡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울음을 그치게 할 수 있다면 무슨 고통이라도 받을 수 있을 듯한 마음이었다.

 

12 나는 그래서 따뜻한 동정심을 표현하며 그분의 상처들에 입 맞추고 눈물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위로를 받으신 듯 이 말씀을 덧붙이셨다.

13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아느냐? 나는 아들을 매우 사랑하는 아버지처럼 행동한다. 이 아들은 장님인데다 흉하게 생겼고 다리를 저는 불구자다. 그럴수록 아버지는 그를 미치도록 사랑한다. 그러니 어떻게 하겠느냐? 자기의 눈을 뽑고, 다리를 자르고, 살점을 뜯어낸다. 이 모든 것을 아들에게 주면서 말한다.

 

14 얘야, 네가 앞을 볼 수 있고 똑바로 걸으며 아름다운 모습이 된 것을 볼 수만 있다면, 나는 장님에다가 절름발이로, 추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있는 게 더 행복할 거다.

 

15 아버지는 아들이 자기의 눈으로 보고 자기의 다리로 걸으며 자기의 아름다움으로 덮여 있는 것을 보면, , 정말 행복해할 것이다!

 

16 그러나 아들이 배은망덕하게도 아버지가 준 눈과 다리와 살갗을 냅다 집어 던지고 제 흉한 모습대로 있는 것에 만족한다면, 아버지는 얼마나 참담한 심경이 되겠느냐! 내가 바로 그러하다. 모든 것을 돌봐 주었건만, 인간은 배은망덕하게도 내 가장 큰 비통이 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1634, 1924114 : 예수님께서 옷 벗김과 매질을 당하신 것은, 참담한 알몸이 된 인간에게 하느님 뜻의 왕다운 옷을 되찾아 주시기 위함이었다.

 

1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원수들 한가운데서 옷 벗김을 당하시고 얼굴을 붉히시며 폭우처럼 쏟아지는 매질을 당하신 신비를 묵상하면서, 측은하기 그지없는 마음으로 그런 그분을 동반하고 있었다. 그러자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채찍질을 당하셨던 당시의 모습으로 나의 내면에서 나오셔서 이르셨다.

 

2 딸아, 내가 매질을 당하기 전에 왜 옷 벗김을 당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으냐? 내 수난의 각 신비마다 내가 가장 먼저 행한 것은 인간의 뜻과 하느님의 뜻 사이의 갈라진 틈을 다시 붙이는 일이었고, 그다음에는 이 단절이 초래한 죗값을 갚는 일이었다.

 

3 사람은 에덴동산에서 하느님의 지고한 뜻과 자기의 뜻을 묶는 일치의 유대를 끊어 버렸다. 그때 그는 내 뜻의 왕다운 옷을 벗어던지고 그의 뜻이라는 참담한 누더기를 걸치게 되었으니, 그것은 나약하고 변덕스럽고 선을 행할 능력이 없는 것이었다.

 

4 내 뜻은 그 감미로운 매력으로 사람을 황홀하게 하였고, 그를 극히 순수한 빛 안에 잠겨 있게 했으며, 그로 하여금 자기가 태어난 하느님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게 했고, 그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행복을 주었다. 사람은 자기 하느님이 주시는 그 많은 것들 속에 얼마나 깊이 빨려 들었는지 그 자신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 사람은 그토록 행복하였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피조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도까지 당신 존재의 많은 부분을 사람에게 주어 당신을 닮게 하시는 것에서 얼마나 큰 즐거움을 느끼셨는지 모른다!

 

5 그러나 사람이 우리 (성삼위)의 뜻과 그의 뜻의 일치를 깨어 버리자 즉시 왕다운 옷을 잃었고, 그 황홀과 그 빛과 그 행복을 잃었다. 나의 빛 없이 그 자신을 보았고, 그를 빨아들이고 있었던 황홀도 없이 보았기 때문에 자신을 알게 되었고, 부끄러움을 느꼈으며 하느님을 무서워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의 본성 자체도 이 일의 통탄할 결과를 느꼈으니, 추위와 자신이 알몸임을, 따라서 필사적으로 자신을 덮어 싸지 않을 수 없는 욕구를 느꼈던 것이다.

 

6 우리의 뜻이 사람을 무한한 행복의 항구 안에 있게 했던 것과 같이, 사람의 뜻은 사람을 비참의 항구 안에 집어넣고 말았다. 우리의 뜻은 사람에게 모든 것이었으니, 사람은 이 뜻 안에서 모든 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 우리에게서 태어나 우리의 뜻 안에서 어린 아기로 지냈으니 우리의 뜻으로 살아가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고, 그러면 이 뜻이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었을 것이다.

 

7 그런고로 사람이 제 뜻으로 살기를 원하자 모든 것이 아쉬운 신세가 되었다. 사람의 뜻은 모든 필요를 채워 줄 능력이 없고, 그 자체 안에 선의 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생활필수품을 얻기 위해서도 허덕이며 고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의 뜻이 나의 뜻과 일치해 있지 않은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제 알겠느냐? !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안다면, 내 뜻이 땅에도 와서 다스리기를, 오직 이것만을 간절히 바라게 될 것이다.

 

8 만약 아담이 이 거룩한 뜻을 배척하지 않았다면, 그의 본성도 옷가지를 걸칠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발가벗고 있는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을 것이고, 추위와 더위와 배고픔과 나약에 시달리는 처지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자연적인 모든 것들은 거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느 쪽이냐 하면 그의 영혼이 잃고 만 크나큰 선의 상징이었을 뿐이다.

 

9 딸아, 그런 이유로 나는 기둥에 묶여 매질을 당하기 전에 옷 벗김부터 당하기를 원하였다. 사람이 스스로 내 뜻의 왕다운 옷을 벗어던지고 알몸이 된 것을 겪으며 보속하기 위함이었다. 나를 조롱하는 원수들 가운데에서 발가벗겨진 나 자신을 보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너무나 큰 수치와 고통을 느낀 나머지 사람의 알몸을 두고 탄식하면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 나의 알몸을 바쳤다. 사람이 다시금 내 뜻의 왕다운 옷을 입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10 그리고 나의 이 간청이 거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속전으로 내 피를, 갈기갈기 찢어진 살을 바치기도 하였다. 내 옷뿐 아니라 살갗도 벗김을 당하게 하여, 사람이 스스로 알몸이 된 그 죗값을 치르며 보속했던 것이다.

 

11 그런데 나는 이 신비에서 다른 어디에서보다 더 많은 피를 쏟았다. 그것은 사람을 또 하나의 옷인 피 옷으로 덮어 싸기에 넉넉한 양이었다. 이 옷으로 그를 감싸 따뜻하게 하고 깨끗이 씻어 주면서 내 뜻의 왕다운 옷을 받아 입을 준비를 시키기 위함이었다.

 

12 나는 이 말씀을 듣고 다소 아연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랑하올 저의 예수님, 사람은 당신의 뜻을 저버렸기 때문에 옷을 입을 필요와 부끄러움과 무서움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셨고 아버지와 하나이셨으며, 당신의 엄마께서도 그분 자신의 뜻을 행하신 적이 결코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두 분 다 옷과 음식을 필요로 하셨고 추위와 더위를 느끼셨으니, 어떻게 그것이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13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하지만, 딸아, 바로 네 말대로 사람이 자신의 알몸을 부끄러워하고 여러 가지 자연적인 불행을 겪게 된 것은 바로 내 뜻의 감미로운 매력을 잃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악을 저지른 것은 그의 혼이었지 몸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몸도 사람의 사악한 뜻의 공범자가 된 것처럼 간접적으로 그렇게 하였다. 사람의 본성이 그의 악한 의지에 의해 더럽혀진 듯한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혼과 몸이, 저질러진 악의 고통을 같이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14 나로 말하자면, 과연 항상 지고한 뜻을 실천하였다. 그러나 내가 세상에 와서 만나고자 한 것은 무죄한 인간이 아니라 죄 앞에 있는 인간이었다. , 죄 있는 인간과 그의 모든 비참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모든 죄악을 스스로 떠맡고, 그들 중의 한 사람인 것처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의 제약을 받으면서 그들과 연결되어 있어야 했다.

 

15 그러나 내 안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옷이든 음식이든 다른 무엇이든 아무것도 아쉽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 능력을 행사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인간에 대한 나의 뜨거운 사랑을 증명하려고, 모든 것 속에서, 심지어 내가 창조했던 지극히 깨끗한 것들 속에서도 나 자신을 희생하기를 원하였다.

 

16 게다가 그 희생은 내 거룩하신 아버지로부터 이것을 얻어 내기 위한 간청으로 쓰였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시고, 아버지께 완전히 바쳐진 나의 뜻을 보시고, 인간에게 우리 뜻의 기품 있고 왕다운 옷을 다시 입혀 주시는 것 말이다.

 

 

174, 192471 : 신적 정의의 권리 앞에서 인간을 지키는 예수님의 피. 자기를 하느님께 내드린 사람의 유일한 권리는 영복을 보장하는 하느님 뜻을 소유하는 것이다.

 

1 흠숭하올 예수님의 부재 때문에 몹시 괴로웠다. ! 마음이 얼마나 피를 쏟고 있는지 계속 죽음을 치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분 없이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것 같았고, 고통도 이보다 더 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2 그런데 예수님 수난의 여러 신비들 속에서 그분을 따라다니려고 애를 쓰다가 고통스럽게 채찍질을 당하시는 신비에 이르게 되었을 때, 그분께서 나의 내면에서 움직이시며 흠숭하올 그분 자신으로 나를 완전히 채우셨다. 나는 그런 예수님을 뵙자 이 괴로운 처지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했지만, 그분은 입을 열지 못하게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딸아, 우리 함께 기도하자. 피조물의 악행 때문에 참을 수 없어진 내 정의가 새로운 징벌들로 땅을 뒤덮으려고 하는 슬픈 시기들이 있다. 그러니 내 뜻 안에서 바치는 기도가 꼭 필요하다. 이 기도는 모든 것 위로 퍼져 나가면서 피조물을 의 방어선으로 자리하고, 그 힘으로 내 정의가 피조물에 접근하여 후려치는 것을 막는다.

 

4 예수님의 기도 소리는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들리던지! 내가 그분께서 채찍질을 당하시는 고통의 신비 속에 함께 있었으므로 그분은 피를 펑펑 쏟으시는 모습을 보여 주시며 이렇게 기도하고 계셨던 것이다.

 

5 아버지, 저의 이 피를 아버지께 바칩니다. 이 피가 모든 피조물의 지성을 덮어, 그들의 악한 생각을 무위(無爲)로 만들고 그 욕정의 불길을 끄며 거룩한 지성으로 되살리게 하소서. 이 피가 그들의 눈을 덮고 눈길을 가리는 베일이 되어, 악한 쾌락에 대한 매력이 그 눈들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이 땅의 진창으로 그들 스스로를 더럽히지 않게 하소서.

 

6 저의 이 피가 그들의 입을 덮고 채워, 모독과 저주와 나쁜 말들에 대해서는 그 입술들이 죽게 하소서. 아버지, 저의 이 피가 그들의 손을 덮어, 숱한 악행에 대한 공포를 불어넣게 하소서. 이 피가 우리의 뜻 안으로 흘러들어, 모든 것을 덮고 지키며 우리 정의의 권리 앞에서 피조물을 보호하는 방어 무기가 되게 하소서.

 

7 하지만 아무도 예수님께서 어떻게 기도하셨는지에 대하여, 또 그분께서 바치신 그 기도 전체를 다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8 그런 뒤 그분은 침묵을 지키셨고, 나는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나의 작고 미천한 영혼을 손에 드시고 꽉 짜시거나 톡톡 두드리시거나 바라보시기도 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저의 사랑이시여, 무얼 하시는 중이십니까? 혹시 제 안에 당신 마음에 들지 않는 무엇이 있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9 그러자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영혼을 내 뜻 안에 확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하기야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너한테 보고할 의무는 없다. 너 자신을 완전히 내게 주었으니 너의 권리란 것은 없고, 모든 권리가 내 것이니 말이다.

 

10 너의 권리는 딱 한 가지뿐인데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그것은 내 뜻을 소유하는 권리이니, 내 뜻이 시간 속에서나 영원 속에서나 너를 행복하게 할 모든 것을 너에게 주는 것이다.

 

 

16) 17시간 : (오전 9-10)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

, 이 사람이오. 사형 선고를 받으시다.

 

520, 19031012 : 가시관의 의미

 

1 오늘 아침에는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가시관을 쓰시고 나의 내면에 나타나셨다. 그런 모습의 그분을 뵈면서 나는 이렇게 여쭈었다. 인자하신 주님, 채찍질을 당하셔서 그토록 큰 고통을 겪으시며 그 많은 피를 쏟아내신 당신의 몸을, 당신의 머리가 시샘이라도 하신 것 같으니 어찌 된 일입니까? 몸보다 머리가 덜 존경받기를 원하지 않으셔서 원수들로 하여금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가시관을 씌우게끔 부추기기까지 하신 듯 하니 말입니다?

 

2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딸아, 내가 가시관을 쓰고 있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어서, 아무리 많은 말을 하더라도 언제나 할 말이 남아 있을 것이다. 나의 머리가 어찌하여 몸과 경쟁이나 하는 듯이 머리 고유의 독특한 고통, 곧 몸의 전반적인 고통과 구분되는 고통 및 출혈에 의해서 영예를 입고자 했는지, 창조된 인간 정신이 그 까닭을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3 머리는 온몸과 온 영혼을 하나로 통합하기에 머리가 없는 몸이란 아무 것도 아니다. 다른 지체는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머리가 없고서는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인즉, 머리는 온전한 인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는 것은, 몸이 고통을 받거나 선행을 한다면 머리가 그렇게 하도록 시키는 것이고 몸은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4 그러므로 (내가 가시관을 쓴) 이유 중의 하나는, 통치와 지배력의 회복으로 은총의 새 하늘과 진리의 새 땅이 인간 정신 안으로 스며들게 하는 일을 내 머리가 해야 했고, 또한 혹독한 고통이 될 정도로 깊어진 죄의 새 지옥도 몰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온 인류 가족에게 영광과 영예와 존귀의 관을 씌워 주고 싶었던 것이다. 따라서, 비록 더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가시들이었지만 먼저 내 인성에 그것으로 관을 씌워 영예롭게 하고자 했으니, 이는 죄가 인간에게서 앗아갔으나 내가 다시 돌려 준 불멸의 관을 상징하는 것이다.

 

5 게다가 가시관은 가시가 없는 영광이나 영예는 없다는 것을 뜻한다. 육신과 정신이 가시에 찔리지 않으면 격정을 지배할 수 없고 덕행을 획득할 수도 없다. 참된 지배력은 고행과 희생의 가시로 자기 자신을 정복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6 더욱이 이 가시들은 내가 유일하게 참된 왕임을 뜻한다. 오로지 나를 자기 마음의 왕으로 삼는 사람은 평화와 행복을 누리고, 나는 그를 내 나라의 왕으로 세운다. 그러므로 나의 머리에서 흘러나온 작은 물줄기 같은 피의 갈래들은 같은 수의 작은 끈들처럼 나의 통치에 대한 지식에다 인간의 지성을 동여 묶는 것이다.

 

7 내가 내적으로 듣게 된 그 모든 것을 누가 제대로 옮길 수 있을까? 나의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다. 사실, 조금밖에 옮기지 못했지만 그것마저 두서없이 표현한 것 같다. 하긴, 신적인 것에 대해서 언급할 경우 누구나 그렇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고상하고 탁월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건, 하느님은 창조되지 않은 분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이기에 하느님에 관한 한 서툴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1190, 1915424 : 예수님의 가시관 고통에 대하여. 가시들보다 더 심하게 그분의 머리를 찔러댄 것은 피조물의 모든 사악한 생각들이요, 그 죄들이었다.

 

1 평소와 다름없이 있으면서, 가시관이 들씌워졌을 때 복되신 예수님께서 얼마나 큰 고통을 겪으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 모습을 보여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내가 겪었던 그 고통은 피조물의 정신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3 저 가시들보다 한층 더 고통스럽게 내 마음을 찔렀던 것은 피조물의 모든 사악한 생각들이었으니, 이 생각들 중 어느 하나도 내 안으로 느껴지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였다.

 

4 그러니 나는 단지 가시들만이 아니고 가시들이 내 머리에 박아 넣는 역겹기 짝이 없는 죄들도 고스란히 다 느꼈던 것이다.”

 

5 사랑하올 예수님을 바라보니, 예수님 안에서 나온 가시들이 둥근 테를 이루어 그분의 거룩하신 머리를 두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피조물의 모든 생각들이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이었다.

 

6 이 생각들이 예수님으로부터 그들 안으로, 그들에게서 예수님께로 흘러가는 품이 마치 함께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오, 예수님께서 얼마나 괴로워하셨는지!

 

7 그때 그분께서 이렇게 덧붙여 말씀하셨다.

 

8 “딸아, 오로지 내 뜻 안에서 사는 영혼들만이 내게 참된 보속을 줄 수 있고 이토록 날카로운 가시들로 인한 고통을 덜어 줄 수도 있다.

 

9 사실, 이 영혼들은 내 뜻 안에 살고 있고 내 뜻은 모든 곳에 있기 때문에, 그들은 내 안에 있으며 또한 모든 사람들 안에도 있다. 피조물 속으로 내려가고 나에게로 올라오곤 하면서 내게 모든 보속과 위로를 가져오는 한편, 피조물의 마음속에서는 어둠을 빛으로 바꾸는 것이다.”

 

 

1452, 1922819 : 예수님의 내적 고통과 수난 고통의 관계 및 차이

 

1 평소와 같이 있노라니,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나로 하여금 각 사람을 위해 겪으신 당신의 고통들과 죽음들 일부를 겪게 하셨다. 그 일부를 통해 예수님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하고 치명적인 것이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때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나의 고통은 인간 본성의 이해력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 내적 고통에 비하면 내 수난의 고통은 내적 고통의 그림자 내지 비유에 지나지 않았다.

 

3 내 내적 고통은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것이어서 힘줄 한 가닥도 그분의 타격을 비켜갈 수 없는 것이었지만, 내 수난 고통은 전능하지도 전지하지도 않는 인간이 끼친 고통이어서 그들이 원한 대로 내 힘줄 하나하나까지 사무칠 수는 없는 것이었다.

 

4 내 내적 고통은 내 인성 안에 육화되었다. 그러므로 내 인성 자체가 못과 가시와 채찍과 상처로, 순교적 고통으로 변화되었다. 너무나 잔혹한 고통이어서 이것이 내게 계속적인 죽음들을 주면서 나와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내 생명이 되었다.

 

5 반면에 내 수난 고통은 외적으로 주어진 것이었다. 가시며 못이 내부로 파고들었지만 결국은 뽑혀 나갈 수도 있는 것이어서, 그 아픔이 제거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만 해도 위안이 되는 것이었다.

6 하지만 내적 고통은 바로 나 자신의 살이 되어 있었으므로, 뽑혀 나간다거나 가시와 못이 꿰찌르는 격통이 제거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마저 없는 것이었다.

 

7 내 내적 고통은 그토록 크고 종류도 가지가지였기 때문에, 정작 수난 고통은 이 내적 고통에 주어지는 위안이요 입맞춤이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 두 가지 고통이 한데 뭉쳐, 영혼들을 구원하려는 내 크고 넘치는 사랑의 최종 증거가 되었던 것이다.

 

8 내 외적 고통은 따라서 내적 고통의 바다 속으로 들어오도록 모든 사람을 부르는 목소리였다.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구원을 위해 내가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렀는지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9 그러므로 너도 네가 받게 된 내 내적 고통의 일부를 통하여 어느덧 내 고통의 지속적인 강도를 깨닫게 되었다. 용기를 내어라. 나를 이리로 몰아대고 있는 것은 사랑이니 말이다.

 

 

4181, 190336 : , 이 사람이다!

 

1 고통스럽도록 오래 기다린 끝에, 복되신 예수님께서 내 내면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나를 원하는지 어떤지 한 바퀴 둘러보러 가자.

 

2 물론 그들은 주님을 원할 것입니다. 더없이 사랑스러운 분이시니까요. 누가 감히 당신을 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내가 대답하자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3 가자. 그러면 네가 그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4 그래서 우리는 출발했는데, 사람들이 많이 있는 어떤 곳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님께서 내 안쪽에서 머리를 내미시고 빌라도가 사람들에게 그분을 보여 주면서 했던 것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보라, 이 사람이다!(Ecce homo!; 요한 19,5 – 역주)

 

5 나는 이 말씀을, 그들이 주님께서 그들의 왕으로 다스리시며 그들의 마음과 정신과 활동을 지배하시기를 원하는지 아닌지를 물으시는 것으로 이해했다.

 

6 그런데 그들은, 그를 데려가시오! 우리는 그를 원하지 않소. 그에 대한 기억이 모조리 없어지도록, 정말로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 이는 얼마나 번번이 되풀이되곤 했던 광경인가!

 

7 그 때 주님께서 모든 이에게 말씀하셨다. 보라, 이 사람이다!

 

8 이 말씀이 들리자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여기저기서 웅성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한 사람이, 나는 그를 나의 왕으로 모시고 싶지 않소. 나는 재물을 원하오. 하고 말하였다. 또 한 사람은 쾌락, 다른 사람은 명예, 또 다른 사람은 관직,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은 다른 것들을 원하는 것이었다.

 

9 나는 진저리를 치며 그들의 말을 들었고, 예수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원한다고 하는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지? 그러나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이제 여러 계층의 신앙인들에게로 가서 나를 원하는지 어떤지 보기로 하자.

 

10 그리하여 우리는 사제와 주교와 수도자 및 신자들 가운데로 갔다. 예수님께서는 우렁찬 음성으로, 보라, 이 사람이다! 하고 외치셨다.

 

11 어떤 사람이, 우리는 그분을 원하지만 또한 안락도 원합니다. 하고 말하니까, 우리는 그분을 원하지만 우리의 이권도 원합니다. 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이들은, 우리는 그분을 원하지만 존경과 명예도 원합니다. 수도자가 존경을 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였고, 또 다른 이들은, 우리는 그분을 원하지만 사람들에게서 약간의 기쁨도 얻기를 바랍니다. 아무도 우리에게 기쁨을 주지 않는다면 우리끼리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12 예수님께서 아주 슬퍼하시면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여기를 떠나자. 아무도 나를 원치 않는 것을 보았지? 기껏해야 그들이 좋아하는 어떤 것과 나를 함께 원할 따름이다. 이는 내게 기쁨을 주지 않는다. 참된 지배는 오직 홀로 다스리는 것이니까.

 

13 이 말씀을 하시고 그분은 사라지셨고 나는 내 몸 속에 돌아와 있었다.

 

 

1928, 1926620 :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소리들과 같은 수의 죽음을 통감하신 예수님. 무려 육천 년에 걸친 긴 싸움의 전말.

 

1 다정하신 예수님의 부재로 몹시 괴로운 날들을 보내고 나자, 더 이상은 참고 견딜 수 없는 심경이었다. 영혼과 육신을 짓눌러 으깨는 압착기에 짓눌린 듯 신음하면서 천국을 애타게 열망하였다. 천국에서는 나의 전 생명이며 지고하고 유일한 선이신 분 없이 지내는 순간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2 그런데 예수님의 그 부재 (고통이) 극에 달한 순간, 내가 그분으로 완전히 채워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내가 장막이 되어 그분을 둘러싸고 있는 것 같았다. 때마침 그분의 수난 고통을 생각하며 그분을 동반하고 있었던 나는 특히 빌라도가 사람들에게 그분을 보이며 , 이 사람이오!(요한 19,5) 하고 말하는 대목에 이르러 있었다.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3 딸아, 빌라도가 , 이 사람이오(Ecce Homo).하자 모든 이가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없애 버리시오! 하고 외쳤다. 바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도, 나와 불가분적이며 (고통으로 영혼이) 꿰찔리신 내 엄마도,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없었던 사람들도, 과거와 미래의 모든 세대들도 내가 죽기를 원하고 있었다.

 

4 입으로 표현하지 않은 사람은 실제 행동으로 그 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살아 있기를 원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으니, 침묵을 지키는 것으로 다른 이들이 원하는 것에 대한 확실한 동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5 그처럼 모두가 외치는 그 죽이라는 소리가 내게 여간 큰 고통이 아니었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외치는 소리들과 같은 수의 죽음을 통감했으니, 흡사 고통과 죽음의 바다에 빠져 익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이를 더욱더 사무치게 느낀 것은, 나의 각 죽음이 각 사람 모두에게 생명을 가져오지는 않으리라는 점과 내 죽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은 사람도 내 수난과 죽음의 완전한 열매를 받지는 못하리라는 점을 내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6 비탄에 잠긴 나의 인성은 너무나 큰 고통으로 인해 바야흐로 마지막 숨을 거두려는 참이었다. 그러나 내가 죽어가고 있는 동안 나의 지고한 뜻이 그 전지전능한 능력으로 사람들을 내 눈앞에 보여 주었는데, 그들은 다 하느님의 영원하신 의지가 절대적인 통치권을 가지고 자기들 안에서 다스리도록 할 사람들이었고, 따라서 내 수난과 죽음의 완전한 열매도 먹게 될 사람들이었다.

 

7 그들 가운데에 내 사랑하올 어머니가 보였는데, 바로 그들의 머리이셨다. 그분은 나의 삶과 수난과 죽음에 담겨 있는 모든 재보(財寶)와 열매들을 맡아 가지고 계셨다. 나의 숨결 하나도 허비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고, 그 고귀한 열매를 소중히 간직하는 일을 게을리 하신 적도 없었다.

 

8 (모든) 것이 내 어머니에게서 내 뜻의 조그만 갓난이에게, 또 하느님의 지고하신 의지로 하여금 자기 안에 그 의지 자신의 생명과 나라를 가지게 해 드릴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지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

 

9 (생명의 불이) 꺼져 가고 있었던 내 인성은 내 생애와 수난과 죽음의 완전한 열매가 (그토록) 안전하고 든든하게 세워지며 수호되는 것을 보자, 그 고통스러운 수난의 길을 다시 계속 갈 수 있었다. 창조사업과 구원사업과 성화사업에 담긴 재보와 열매를 완전히 가져오는 것은 홀로 내 뜻뿐이다. 그러므로 내 뜻이 다스리는 곳은 어디든지 우리의 모든 사업에 생기가 충만하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어중간하거나 불완전한 것이 하나도 없다.

 

10 한편, 내 뜻이 다스리지 않는 곳에서는, 설령 어떤 덕행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이 볼품없이 비참하고 불완전하다. 어쩌다 무슨 열매를 내놓더라도 생것이거나 덜 익은 것이고, 내 구원사업의 열매를 먹는다고 해도 얼마 안 되는 분량만 먹기 때문에 약하고 열이 있고 병들기 쉬운 몸으로 자라고, 약간의 선행을 한다고 해도 하는 수 없어 하기 때문에 그 부담감에 짓눌린다.

 

11 나의 뜻은 그 반면에 인간적인 뜻을 비우고 그 빈자리에 신적인 힘과 선의 생명을 넣어 둔다. 그러니 내 뜻이 자기 안에서 통치하게 하는 영혼은 압박감 없이 선을 행하고, 그가 받아 지닌 선의 생명이 저항 없이 선행을 하도록 그를 이끈다.

 

12 내 인성은 따라서 나의 수난과 죽음에서 생명을 얻고, 또한 내 뜻이 (자기들을) 다스리게 하는 사람들 안에서 생명을 얻는다. 그러므로 내 뜻이 영혼들 안에 자신의 나라를 세울 때, 그때에야 비로소 창조사업과 구원사업도 완성될 것이다.

 

13 그 후 나는 지고하신 의지 안에서 내 일상적인 행위를 하고 있었는데,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나오시어, 나의 그 행위들을 시선으로 전부 따라다니셨다.

 

14 그분께서는 나의 그 모든 행위들이 당신의 행위들에 동화되어 있음을 보셨으므로, , 지고하신 뜻에 힘입어 그분의 행위들과 같은 길을 밟으면서 같은 선을 거듭 행하고 우리의 천상 아버지께 같은 영광을 드리는 것을 보셨으므로, 북받치는 사랑으로 나를 가슴에 붙여 안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15 딸아, 너는 내 뜻 안에 갓 태어난 작은 사람으로 내 뜻의 나라에서 살고 있지만, 너의 그 작음이 곧 나의 승리이다. 네가 내 뜻 안에서 활동하는 것을 보면, 오래도록 전쟁을 치른 끝의 임금처럼 내가 내 뜻의 나라에 있음을 깨닫는다.

 

16 이 임금의 최고 목표는 승리였으므로, 승리를 거둔 자신을 보자, 그동안 겪었던 유혈의 전투와 고생과 아직도 몸에 남아 있는 상처 자국으로부터 격려를 받는 기분이 된다. 그리고 (적에게서 빼앗은) 전리품들에 에워싸여 있는 자신을 볼 때에 그의 승리감이 고조된다.

 

17 그 임금은 그 모든 것을 보기를 원한다. 그의 눈길이 자신이 정복한 나라 안에서 즐거워하기를 원한다. 득의양양한 임금은 그리하여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잔치를 연다.

 

18 나도 그렇다. 창조사업 안에서 나의 이상은 피조물의 영혼 안에 있는 내 뜻의 나라였다. 나의 일차적인 목표가, 사람에 대한 내 뜻의 성취에 의해 사람을 성삼위의 모상으로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 내 뜻에서 물러가고 말아, 나는 사람 안의 내 나라를 잃었고, 무려 육천 년에 걸친 긴 싸움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 그러나 얼마나 길든지 간에 나는 나의 이상과 일차적인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구원사업을 통하여 이 세상에 온 것은 나의 그 이상과 일차적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영혼 안에 내 뜻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었다.

 

20 사실이 그러했으므로 나는 이 세상에 오기 위해서 원죄 없으신 내 엄마의 티 없으신 성심 안에 최초로 내 지고한 의지의 나라를 세웠다. 내 나라 안이 아니었다면, 내가 어떻게 이 세상에 올 수 있었겠느냐?

 

21 그런 다음 나는 쓰디쓴 고뇌와 고난을 겪었고 마침내 살해되었다. 그러나 내 뜻의 나라는 실현되지 않았다. 내가 기초를 놓았고 약간의 준비도 했지만, 인간의 뜻과 하느님의 뜻 사이의 피 비린내 나는 싸움은 아직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22 그런데, 내 작은 딸아, 네가 내 뜻의 나라에서 활동하는 것을 볼 때, 그리고 그 활동에 따라 내 뜻의 나라가 네 안에 점점 더 확장되는 것을 볼 때, 나는 오랜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느낌이고, 내 주위의 모든 것도 승리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모습이다.

 

23 나의 고난과 고뇌와 상처들이 나에게 미소를 짓고, 나의 죽음마저 네 안에 있는 내 뜻의 생명을 내게 돌려준다. 그러므로 나는 창조사업과 구원사업 안에서 승리감을 맛본다. 게다가 그들은 내 뜻의 갓난이를 위한 긴 순례 여정을 이루는 역할을 한다. 내 뜻의 나라 안에서 행하는 이 갓난이의 신속한 비행(飛行)과 그 끝없는 순례 여정 말이다.

 

24 나는 그래서 당당한 표정으로 자랑스러워한다. 그리고 즐거워하면서 내 작은 딸의 모든 발걸음과 행동을 나의 시선으로 따라다닌다.

 

25 보아라. 만물은 저마다 이상을 품고 있고, 그 이상을 실현했을 때 비로소 만족을 느낀다. 조그만 아기도 자기의 이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엄마의 젖가슴에 달라붙어 있는 것이다. 아기는 큰 소리로 앙앙 울다가도 엄마가 품에 안는 즉시 울음을 그치고 생글거리며, 냅다 그 가슴에 달라붙는다. 그리고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배가 부를 때까지 젖을 빨고 또 빤다. 그러다가 흡족한 나머지 스르르 단잠에 빠져 든다.

 

26 나도 그렇다. 오래도록 소리 내어 울다가, 내 뜻의 나라에 자리를 주려고 나에게 문을 열어 주는 영혼의 품을 보면, 나는 울음을 그치고 그 품에 몸을 던지며 달라붙어, 그 영혼의 사랑과 내 뜻의 나라의 열매를 빨아먹는다. 그리고 단잠에 빠져 들어,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으로 쉰다.

27 아주 작디작은 새도 이상을 품고 있는데 그것의 이상은 (먹이인) 씨앗이다. 새는 그것을 발견하면 날개를 치며 돌진하여 덮친다. 그리고 기세 좋게 부리로 움키고, 의기 당당하게 날기를 계속한다.

 

28 나도 그렇다. 영혼 안에 내 뜻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날고 또 날며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영혼이 나를 먹여 기를 종자를 형성하게 하려는 것이다. 나는 내 나라에서 만들어지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양식도 쓰지 않기 때문인데, 그리하여 이 천상적 씨앗이 보이면 저 작디작은 새보다 더 빨리 날아간다. 내 양식으로 삼기 위해서다.

 

29 그러므로 만물은 저마다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도상에 있다. 나는 네가 내 뜻의 나라에서 활동하는 것을 볼 때 나의 이상이 실현되고 있음을 보기에, 창조사업과 구원사업이 갚음을 받는 것과 내 뜻의 승리가 네 안에 확립되는 것을 실감한다. 그러니 주의를 기울여, 네 예수의 승리가 네 안에서 영구적인 것이 되도록 하여라.

 

30 다정하신 예수님은 이 말씀 끝에 나의 내면에서 걸음을 옮기시며 부드럽기 그지없는 음성으로 물으셨다. 딸아, 너의 이상, 너의 목표에 대하여 말해 보아라. 그것은 무엇이냐?

 

31 나는 예수님, 저의 사랑이시여, 저의 이상은 당신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고 입을 열었다. 저의 목표는 제 생각과 말과 심장 박동과 활동이 그 어느 하나도 당신의 지고하신 뜻의 나라 밖으로 나가지 않을 정도에 이르는 것입니다. 더욱이, 저의 그것들이 이 나라 안에서 잉태되고 젖을 먹으며 양육되고 생명을 형성하고, 필요할 경우에는 죽음도 형성하는 것입니다.

 

32 하기야 당신의 뜻 안에서는 어떤 행위도 죽지 않고, 일단 태어나면 영원히 존속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말입니다. 그런즉 제가 갈망하는 것은 제 가련한 영혼 안의 당신 뜻의 나라입니다. 이것이 저의 이상이고, 일차적이고도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33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애정과 기쁨에 겨우신 음성으로 이어서 말씀하셨다. 딸아, 나의 이상과 너의 이상이 하나이니, 우리의 목표도 하나이구나. 좋다, 좋다, 내 뜻의 작은 딸! 너의 이상과 나의 이상이 하나인 까닭에, 너도 내 뜻의 나라를 정복하기 위하여 오랜 기간에 걸쳐 싸움을 계속해 왔다.

 

34 고통과 나의 부재를 참아 내어야 했고, 네 작은 방의 작은 침대에 갇힌 수인이 되기도 하였다. 나와 네가 간절히 원하고 갈망해 온 그 나라를 정복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우리 두 사람에게 너무나 비싼 대가를 요구하는 일이었으니, 이제 우리는 다 같이 승리자요 정복자가 되었다.

 

35 따라서 너도 내 뜻의 나라의 작은 여왕이 되었다. 비록 작지만 그래도 늘 여왕이다. 왜냐하면 네가 대왕의 딸, 곧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딸이기 때문이다.

 

36 너는 그러니 이토록 큰 나라의 정복자로서 창조사업과 구원사업의 모든 것과 온 천국을 소유한다. 일체가 너의 것이다. 너의 () 소유권은 내 뜻이 전체적으로 또 영구적으로 다스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확대되는 권리인 까닭이다. 만물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 너의 승리에 합당한 경의를 표하려는 것이다.

 

37 너 역시 조그만 아기이다. 네 예수를 갈망하며 많이도 울어댄 아기이다. 너는 그러나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그치고 내 무릎 위로 몸을 던지며 내 가슴에 달라붙어, 당당하게 내 뜻과 내 사랑(이라는 젖)을 빨아먹었다. 당당하게, 그러나 내 팔에 안겨 잠이 들었고, 나는 (요람에 태운 듯 살살) 흔들어 주었다. 너를 더 많이 자게 하면서 내 갓난이를 바로 내 팔에 안고 있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득의양양하게 내 뜻의 나라를 네 안에 확장하기 위해서였다.

 

38 너는 또한 내 주위를 빙빙 돌아다니는 작디작은 비둘기이기도 하다. 내가 내 뜻에 대하여 말하면서 이에 관련된 지식과 내 뜻의 좋은 것들과 놀라운 것들 및 비통한 것까지도 드러내 보이면, 너는 날개를 치며 내가 네 앞에 놓은 많은 씨앗을 덮쳐 부리로 움킨다. 그리고 당당하게 내 주변에서 계속 날아다니며, 내가 내 뜻에 관한 씨앗을 더 많이 네 앞에 놓아 주기를 기다린다.

 

39 그리고 다시 네 부리로 그것들을 움켜서 먹고, 내 뜻의 나라를 드러내 보이면서 의기양양하게 날기를 계속한다. 그러니 나의 특권이 너의 것이고, 나의 나라와 너의 나라가 하나이다. 우리가 함께 고난을 받았으니, 당연히 전리품도 함께 가지기 마련이다.

 

40 나는 이 말씀을 듣고, 하지만 내 가련한 영혼 안에 하느님의 지고하신 뜻의 나라가 있다는 것이 정말 사실일까? 하고 자문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처럼 몹시 당황하면서도 이 글을 쓴 것은 순명하기 위해서였다.

 

41 한데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예수님께서 기습적으로 나타나셔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하셨다. (불시에) 나의 내면에서 나오시어 두 팔을 내 목 언저리에 두르시고 너무나 세게 껴안으시는 바람에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을 지경이었고, 머리가 내게 붙어 있는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즉시 예수님께서 사라지셨고, 나는 그래서 지금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42 그런데, 내가 두려움에 싸여 있었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나의 천상엄마는 나를 다른 사람들에게 주실 수 있었다. 나를 잉태하시고 돌보시며 양육하셨기 때문이다. 아무도 자기에게 없는 것을 남에게 줄 수 없다. 내 어머니께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주실 수 있었던 것은 나를 소유하셨기 때문이다.

 

43 만약 내가 네 안에 내 뜻의 나라를 세우기를 원하지 않았다면, 내 뜻에 대하여 그토록 많은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그것이 너의 소유가 아니었다면, 네가 그토록 애지중지하지도 않을 것이다. 사람은 자기 소유가 아닌 것은 아무래도 꺼리고 귀찮아하며 부담감을 느낀다.

 

44 만약 네가 네 안에 내 뜻의 나라의 물이 솟아오르는 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내가 너에게 말한 것을 반복할 수도 종이에 옮겨 쓸 수도 없었을 것이다. 소유하지 않은 탓에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빛과 사랑도 없었을 것이다.

45 그러므로 네 안에 태양이 빛난다면, 그리고 그 태양이 스스로의 광선으로 너에게 말과 지식을 먹여 주며 다스리기를 간절히 원한다면, 그것은 네가 그 태양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과 사람들에게 그것을 알리는 것이 너의 임무라는 것을 나타내는 표징이다. 이 임무는 존귀하신 여왕의 임무와 흡사한 것이다. 여왕께서는 만인의 구원을 위하여 나를 알리기도 하고 주기도 하셨으니 말이다.

 

2448, 1928103 : 2015. 6. 25 현재 23권까지 번역됨

 

 

18) 18시간 : (오전 10-11) 십자가를 지고 칼바리아에 오르시어

거기에서 옷 벗김을 당하시다.

 

733, 1906727 :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영혼들에게 지참금을 주시고 당신 배필로 삼으신다.

 

1 오늘 아침에는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얼싸안고 계신 모습을 보여 주시기에 나는 속으로 “십자가를 받아들이셨을 때 그분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십자가를 받아들인 나는 이를 내 가장 소중한 보물로 여기며 얼싸안았다. 왜냐하면 내가 십자가를 통하여 영혼들에게 지참금을 주고 그들을 내 배필로 삼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십자가를 보면서, 그 길이와 너비를 보면서 나는 기뻐하였다. 십자가 안에 나의 모든 배필들을 위한 지참금이 충분히 들어 있음을 보았고, 그런즉 그들 중 그 누구도 나하고 혼인을 할 수 없을까 봐 염려할 이유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것은 내가 내 양손에, 곧 십자가에, 그들의 혼인 지참금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3 그러나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영혼이 내가 그에게 주는 작은 선물들을, 곧 십자가들을, 나를 자기 배필로 받아들인다는 서약으로 받아들인다면 혼인이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그에게 지참금을 선물로 준다. 그런데 작은 선물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서 내 뜻에 그 자신을 맡기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성립되지 않으니 내가 지참금을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어진다. 혼인이 성립되려면 쌍방 간의 뜻이 맞아야 하는데 영혼이 내 선물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혼인을 수락할 의사가 없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146, 1922224 : 하느님 뜻 안에 사는 이들의 십자가는 그 길이와 너비가 예수님의 것과 같다.

 

1 보통 때와 같이 지내다가 흠숭하올 예수님을 뵈었는데, 십자가를 받아 그 거룩하신 어깨에 짊어지시는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십자가를 지기 전에 나는 우선 그것의 위쪽에서 아래쪽까지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각 영혼이 내 십자가 안에 차지하게 될 자리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 수많은 영혼들 가운데서 내가 더 큰 사랑으로 각별히 주목한 이들은, 자신을 내맡기고 내 뜻 안에서의 삶을 살게 될 영혼들이었다.

 

3 나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 십자가와 같은 너비와 길이를 가진 그들의 십자가도 보았다. 그것은 내 뜻이 그들 십자가의 모자라는 부분을 전부 채우면서 그 너비와 길이를 늘려 내 십자가와 똑같이 만들기 때문이었다.

 

4 그런데, ! 너의 긴 십자가가 얼마나 유난히 눈에 띄던지! 그렇게 긴 까닭은 네가 침상에만 붙박여 지낼 긴 시간과 오로지 내 뜻을 이루려고 받게 될 고통 때문이었다.

 

5 내 십자가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고 있었고, 네 십자가는 내 뜻을 이루려고 있었던 것이다. 이 두 십자가는 서로에게 영예가 되었다. 또한 크기가 똑같기 때문에 한데 어우러지고 있었다.

 

6 그런데 내 뜻은 단단한 것을 부드럽게 하고, 쓴맛을 단맛으로 바꾸며, 짧은 것을 길게 늘이는 힘이 있다. 그런고로 십자가가 내 어깨를 짓눌렀을 때 내 뜻 안에서 고통을 받게 될 영혼들의 십자가가 주는 부드러움과 단맛을 나는 미리 느꼈다. , 그래서 내 마음이 그야말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7 또한 이 영혼들의 십자가들의 부드러움이 내 십자가를 내 어깨에 꼭 맞게 했기 때문에 움푹 파고들어 깊은 상처가 생기게 했다. 이로 인해 나는 극심한 아픔을 느끼면서도 내 뜻 안에서 고통을 겪을 영혼들의 부드러움과 단맛도 함께 느꼈다.

 

8 게다가 내 뜻은 영원하기에, 그들의 고통과 보속과 행위들이 내 피의 방울방울마다, 모든 상처마다, 그리고 각각의 죄 속에 흘러들고 있었다. 내 뜻이, 사람이 처음으로 죄를 지은 순간부터 과거의 모든 죄들을 현행적인 것으로, 또 미래의 모든 죄들도 현행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9 따라서 저 영혼들이 내게 내 뜻의 권리들을 되돌려 주었고, 나는 그들에 대한 사랑으로 구원 사업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다른 사람들이 이 안에 들어와 구원을 얻는 것은 그들 덕분이다. 그들로 말미암지 않은 선은, 하늘에서건 땅에서건, 내가 선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611, 19031217 :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만나신 순간,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께서 하신 흠숭 행위.

 

1 여느 때와 같이 머물러 있다가 복되신 예수님을 잠깐 뵈었는데, 십자가를 지시고 지극히 거룩하신 어머니를 만나고 계신 모습이었다. 나는 그분께 이렇게 여쭈었다. 주님, 더없이 고통스러운 이 만남 속에서 당신 어머니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분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2 딸아, 그분은 오로지 참으로 깊고 단순한 흠숭 행위를 하셨을 따름이다. 그런데 행위가 단순할수록, 지극히 단순한 영이신 하느님께 그만큼 더 쉽게 결합된다. 따라서 그분은 그 행위를 통하여 내 안에 당신 자신을 부어 넣으시어, 내가 내적으로 하고 있었던 일을 계속하셨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내 마음에 드는 일이었으니, 그분께서 한층 더 위대한 다른 무엇을 하신 것보다 훨씬 더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진정한 흠숭의 정신은 사람이 스스로를 버리고 신적 영역 안으로 들어가 서 하느님이 행하시는 모든 것을 흠숭하며 그분께 결합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3 입으로는 흠숭의 말을 하면서 정신은 딴 생각을 하는 것이 참된 흠숭이 되겠느냐? 혹은 정신으로는 나를 흠숭하면서 의지는 나와 멀리 떨어져 있거나, (인간의) 한 능력, (이를테면 지성으로는) 나를 흠숭하면서 다른 능력들은 온통 불온한 상태로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모든 것을 원한다. 내가 그에게 준 일체가 다 내 안에 있기 바란다. 이것이 피조물이 나에 대하여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예배 행위 - 흠숭 행위인 것이다.

 

 

699, 1905328 : 어수선한 마음이 초래하는 결과 예수님과 영혼의 계속적인 만남

 

1 나의 일상적인 상태로 있을 때 복되신 예수님께서 잠시 오셨다. 그런데, (그분께서 오시기 전에) 어수선한 마음으로 안절부절못하는 어떤 사람에게 내가 이렇게 말한 일이 있었다. “당신 자신의 선익을 위해서나 더욱이 우리 주님께 대한 사랑을 위해서나 어수선한 마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해 보세요. 마음이 어지러운 사람은 자기만 뒤숭숭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도 산란하게 하니까요.” 그때 나는 속으로 ‘이게 무슨 실없는 소리람? 예수님은 마음이 산란해지실 리가 없는데!’ 하고 중얼거렸었다.

 

2 그 뒤 그분께서 오시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딸아, 네가 말한 건 오히려 실다운 소리였다. 왜냐하면, 나는 각각의 영혼 안에 하느님의 생명을 기르고 있거니와, 영혼이 산란하면 내가 기르는 이 생명도 어수선해질 뿐더러 결코 완성에 이르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3 그리고 그분은 번갯불이 번쩍 하듯 사라지셨다. 이후 나는 날마다 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내적인 일을 계속하였다. 그리하여 십자가의 길에서 예수님과 마리아께서 만나시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그분께서 한 번 더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4 “딸아, 나는 끊임없이 영혼을 만나기도 한다. 이 만남 속에서 영혼이 덕행을 실천하며 나와 일치해 있는 것을 보면, 그런 그에 의해서, 나 때문에 그토록 괴로워하신 내 어머니를 만났을 때 내가 겪었던 비통함이 보상됨을 느낀다.”

 

102, 19101112 : 하느님께서는 영혼이 자기를 드리는 것만큼 많이 아니 그 세 곱절로 당신 자신을 영혼에게 주신다.

 

1 나는 복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산으로 올라가셨던 때를, 특히, 온통 피범벅이 되신 얼굴을 닦으시도록 그분께 수건을 드린 베로니카와 만나신 순간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올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2 제 사랑이신 예수님, 제 마음의 마음이시여, 베로니카는 수건 한 장을 드렸지만, 저는 당신께서 피를 닦으시도록 하찮은 천 조각이 아니라 제 심장을, 그 끊임없는 박동을, 제 모든 사랑을, 제 보잘것없는 지성을, 제 숨을, 제 피의 순환을, 제 몸의 동작들을, 요컨대 제 온 존재를 드리고자 합니다. 그것도 당신의 얼굴만이 아니고 지극히 거룩하신 몸 전체에 흐르는 피도 닦아 드리기 위함입니다.

 

3 또한 저는 당신의 상처들과 비통과 쓰디씀과 당신께서 흘리신 핏방울의 수만큼 저 자신을 산산조각으로 쪼개서 당신의 모든 고통들에 배치할 작정입니다. 어떤 부위에는 제 사랑이, 어떤 부위에는 위로가, 어떤 부위에는 입맞춤이, 어떤 부위에는 보속이, 어떤 부위에는 연민의 행위가, 어떤 부위에는 감사가, 기타 등등이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제 존재의 가장 작은 부분이나 피 한 방울도 남김없이, 온전히 당신을 돌보는 일에 전념하고자 합니다.

 

4 , 예수님, 그 상급으로 제가 무엇을 받기를 바라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가장 작은 부분에 이르기까지 제 온 존재에 당신의 모습을 박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가 모든 것 속에서 또 어디서든지 당신을 발견하면서 제 사랑을 증식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5 나는 그 밖의 다른 소리들도 실없이 숱하게 늘어놓았다.

 

6 그런데, 영성체 후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니 내 몸의 각 부분에 불꽃에 싸여 계신 예수님의 전신상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불꽃은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7 내 딸이 흐뭇해하는군. 이는 내 딸이 자기 자신을 나에게 준 방식대로, 그것도 그 세 곱절로 많이 나 자신을 그녀에게 주는 방식이다.

 

 

943, 191092 : 전념할 것은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이지 이러쿵저러쿵하는 이들의 말이 아니다.

1 십자가를 지고 해골산으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특히 그분께서 여인들을 만나신 순간에 대해서 생각하였다. 그때 그분은 당신의 고통은 잊으신 채 저 가련한 여인들을 위로하시고 응답과 가르침을 주시기도 하는 일에 전념하셨다.

 

2 예수님께는 얼마나 모든 것이 사랑이었는지! 위로가 필요한 이는 바로 그분이었건만 오히려 위로를 주신 것이다. 그것도 그토록 참혹한 처지에서! 온몸이 상처로 뒤덮인데다가 가시들이 극도로 아프게 찔러대는 머리, 십자가의 무게에 짓눌려 숨을 헐떡이며 이미 초주검이 되신 그런 처지에서 남들을 위로하셨던 것이다!

 

3 조그만 십자가 하나만 있어도 남들을 위로해야 하는 본분을 잊기 십상인 우리에게 그분은 얼마나 빛나는 모범을 보여 주시며 또 얼마나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시는가!

 

4 그래서인지 예수님께서 수난의 이 단계에서 당신이 행하신 바를 본받으라고 내게 여러 번 촉구하신 일이 기억에 떠올랐다. 그것은 나의 내면을 찔러 마구 찢어발기는 듯한 그분 부재의 고통에 짓눌린 상태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였다. 그분께서 당신을 본받으라고 몰아대시니 그토록 뼛속까지 쑤시는 고통 속에서도 나 자신을 잊고, 그들을 위로하며 가르침을 주려고 무진 애를 쓰곤 했던 것이다.

 

5 그러나 지금은 순명으로 말미암아 또 순명 덕분에 사람들과 상대하지 않는, 자유로운 처지에 있기에, 더는 그런 상황에 처해 있지 않게 해 주신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었던 참이다... 더 자유로운 공기를 마실 수 있고, 오직 나 자신에게 전념할 수 있어졌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6 그런데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움직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7 딸아, 그러나 내게 있어서 그것은 하나의 위안이었다. 특히, 참으로 선행을 베풀려고 와 있었던 그들 안에서 내가 회복되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8 이 시대에는 진실로, 참된 내적 기백을 영혼들 안에 던져 넣는 이들이 별로 없다. 그들 자신이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다른 이들 안에 파급시킬 수 없기 때문이니, 만물과 만인으로부터의 이탈이라는 참된 기초도 없이, 과민하고 세심하며 경박하게 굴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덕행을 낳지 못한다. 꽃이 피려고 하다가 죽어 버리기 때문이다.

 

9 그럼에도 자기네 덕분에 영혼들이 꼼꼼하고 세심해졌으니 진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진보는 고사하고, 이런 이들은 그야말로 영혼들을 멸망으로 이끄는 장애물인즉, 그들 때문에 내 사랑은 아무것도 먹지 못한 빈속으로 있게 된다.

 

10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내적인 길에 대해 많은 빛을 주어 참된 덕행과 참사랑에 대한 진리를 깨닫게 하였다. 네가 그래서 진리 안에 있게 되었으니 너의 입을 통하여 내가 다른 이들로 하여금 덕행의 참된 길을 알아듣게 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기쁨을 느꼈던 것이다.

 

11 나는 하지만, 복되신 예수님, 제가 저 희생을 한 뒤 사람들은 돌아다니며 말질을 해댔습니다. 그들의 방문을 금지하는 명령이 내린 것은 합당한 조처였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12 하기로 되어 있는 선을 행하기보다 남들의 입방아에 신경을 쓰는 것은 잘못이다. 사람들은 나를 놓고서도 그렇게 말질을 일삼곤 했는데 내가 그런 것에 신경을 쓰려고 들었다면 인류 구원 사업을 성취하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전념할 것은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이지 이러쿵저러쿵하는 이들의 말이 아니다. 그런 말들은 그렇게 하는 이들에게나 남을 뿐이다.

 

 

1174, 1914410 : 예수님의 머리를 찌르는 가시들의 의미. 예수님의 지상 중심은 당신 뜻을 행하는 영혼이다. 예수님 뜻에 일을 맡기는 영혼에게는 안식이 있다.

 

1 오늘 아침에는 언제나 상냥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모습으로 오시어 나랑 고통을 나누셨다.

 

2 그분은 나를 세차게 끌어당기셔서 당신 수난의 바다 속에 있게 하셨으므로 나는 수난 중이신 그분을 한 걸음 한 걸음 거의 다 따라갈 수 있었다.

 

3 그러나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을 누가 다 말할 수 있으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를 것이 많기도 많은 것이다.

4 다만, 예수님의 가시관이 터져 갈라지는 광경을 본 것만 말해 보겠다. 피가 밖으로 쏟아지지 못하게 막고 있었던 가시들이 뽑히자 그 작은 구멍들을 통해 쏟아지는 피가 큰 물줄기처럼 그분의 얼굴과 머리털을 적시며 온 몸에도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5 “딸아, 내 머리를 찔러대는 이 가시들은 인간의 교만과 자만심과 가장 깊이 숨어 있는 상처들을 찔러 고름이 빠져나오게 할 것이다. 그리고 내 피에 잠긴 가시들이 인간을 치유하여, 죄로 인해 빼앗긴 왕관을 인간에게 돌려 줄 것이다.”

 

6 그런 뒤 그분께서는 나로 하여금 수난의 다른 단계로 넘어가게 하셨다. 그분께서 그토록 많은 고난을 겪고 계시는 것을 보면서 내 마음은 꿰뚫리는 아픔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분은 오히려 나를 위로하시려는 듯 당신의 지극히 거룩한 뜻에 대해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7 “딸아, 지상의 내 중심은 내 뜻을 행하는 영혼이다.

 

8 보아라, 해는 지상 모든 곳에 빛을 퍼뜨리지만 그 자신의 중심을 보존하고 있다. 천상에 있는 나는 복된 이들 저마다의 생명이지만 그래도 나의 중심, 나의 어좌를 가지고 있다.

 

9 이와 한가지로 나는 지상 어디에나 있는데, 그래도 나의 중심 󰠏󰠏 내가 다스리려고 어좌를 세우는 곳, 나의 은사들, 나의 만족, 나의 승리, 바로 고동치는 내 심장이 있는 곳, 곧 내 온 존재가 있는 곳은, 내 지극히 거룩한 뜻을 자기 자신의 중심으로 삼고 그 안에 있으면서 이를 행하는 영혼이다.

 

10 이러한 영혼은 나와 깊이 일치해 있기 때문에 나에게서 떨어져 나갈 수 없고, 내 모든 지혜와 능력도 나를 그에게서 떼어 놓을 추호의 방도도 찾아내지 못한다.”

 

11 그다음에 그분은 이렇게 덧붙여 말씀하셨다. “사랑에는 염려와 갈망과 열정과 불안이 있다. 그 대신 나의 뜻에는 항구적인 안식이 있다. 너는 그 까닭을 아느냐?

 

12 왜냐하면 사랑은 일의 시작과 과정과 목적을 내포하고 있어서 목적에 도달할 때까지는 염려와 불안이 일고, 이런 것에 인간적이며 불완전한 것들이 섞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3 그러니 매 걸음마다 나의 뜻과 사랑이 하나 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감스럽게도 사랑은 더없이 위대하고 거룩한 일 속에서마저 부끄러운 상태에 있게 된다.

 

14 반면에, 영혼이 일의 전 과정에 걸친 의향을 내 뜻에 맡기면 내 뜻은 단일한 현동(現動)으로 활동하고, 내 뜻이 활동하는 동안 영혼은 쉰다.

 

15 따라서, 활동하는 것이 영혼이 아니라 영혼 안에 있는 내 뜻이기에 염려나 불안이 없고, 그의 일에도 아무런 결함이 없게 된다.”

 

 

19) 19시간 : (오전 11-12) 십자가에 못 박히시다.

 

1165, 19131118 : 인간의 뜻과 하느님의 뜻이 대립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십자가가 된다. 십자가는 인간의 일부분을 못 박지만 하느님 뜻은 전부를 못 박아 성화한다.

1 나는 자신의 초라한 처지와 어째서 십자가마저 내게서 사라졌는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두 뜻이 대립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십자가가 된다. 나와 사람들 사이가 바로 그렇다. 그들의 뜻이 나의 뜻과 대립할 때면 나는 그들의 십자가가 되고 그들은 나의 십자가가 되는 것이다.

 

3 그리하여 나는 수직으로 뻗어 내리는 긴 세로대가 되고 그들은 짧은 가로대가 되어 서로 교차하면서 십자가를 이룬다.

 

4 그런데 영혼의 뜻이 나의 뜻과 하나가 되면 두 막대가 가로세로로 서로 교차하지 않고 하나가 된다. 그러므로 그 십자가는 더 이상 십자가가 아니다. 알아들었느냐?

 

5 더욱이 내가 내 수난의 십자가를 거룩하게 했지, 십자가가 나를 축성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즉 거룩하게 하는 것은 십자가가 아니라, 십자가를 거룩하게 하는 나의 뜻에 대한 맡김이다.

 

6 따라서 십자가도 나의 뜻과 관련을 맺고 있는 정도만큼만 선한 일을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는 사람의 일부분을 거룩하게 하고 못박기도 한다.

 

7 반면에 나의 뜻은 아무것도 그냥 두지 않는다. 사람의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고, 그 생각과 욕망과 의지와 애정과 마음 따위 모든 것을 못박는다.

 

8 그리고 나의 뜻은 빛이기에 영혼으로 하여금 이 완전한 성화와 못박힘의 필요성을 깨닫게 한다. 그러면 영혼이 나를 고무하여 내 뜻의 일을 자기에게 완성하도록 한다.

 

9 십자가와 다른 덕행들은 뭔가를 얻어 내기만 하면 만족해하기에, 사람에게 못 세 개를 박을 수만 있어도 승리를 구가한다.

 

10 반면에 나의 뜻은 불완전한 일을 할 줄 모르기에 못 세 개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내가 그 사람에게 안배하는 내 뜻의 행위만큼 많은 수의 못을 박아야 비로소 만족하는 것이다.”

 

 

12130, 1920515 : 하느님의 뜻에 의한 완전한 못 박힘의 방식.

 

1 당신의 약속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제는 십자가도, 당신을 닮은 모습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제게 남은 것이라고는 제 고통스러운 종말을 한탄하는 일뿐입니다. 하고 다정하신 예수님께 내가 또 우는소리를 하자, 그분께서 움직이는 기척을 내시며 내 안에서 말씀하셨다.

 

2 딸아, 나의 십자가 못 박힘은 완전한 못 박힘이었다. 왜 그런지 알겠느냐? 왜냐하면 그것이 내 아버지의 영원한 뜻 안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3 이 뜻 안에서 십자가가 길고 넓게 확장된 나머지 모든 세기를 싸안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인간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내가 못 박힌 채 각 사람의 마음 안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4 이 하느님의 뜻은 나의 내면 전체를 못 박았다. 못이 나의 갈망과 애정과 심장 박동 속까지 뚫고 들어왔으니, 나 자신의 삶이 없었고 영원하신 뜻의 생명만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생명이 모든 피조물을 내 안에 집어넣고 내가 그 모두를 책임지기를 원했던 것이다.

 

5 그런즉 만일 그 영원한 의지가 행위의 주체가 아니었다면 나의 못 박힘은 모두를 싸안을 정도로 그렇게 완전할 수도 그렇게 넓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6 나는 네 안에도 이 못 박힘이 완전하고 모든 이에게로 확장되는 것이 되기를 바란다. 이런 이유로 내 뜻 안으로 끊임없이 부르면서 너를 독려하여 온 인류 가족을 지고하신 임금님 앞에 데려오게 하고, 네가 모든 사람의 이름으로 그들이 행하지 않는 행위들을 하게 해 온 것이다.

 

7 자기 망각, 자기 의견의 부재가 바로 내 뜻에 의한 못 박힘이다. 그런데 내 뜻은 사소하거나 불완전한 일을 할 줄 모른다. 영혼을 둘러싸는 둥근 모양을 이루어 영혼이 그 안에 있기를 바라면서 영혼으로 하여금 그 영원한 의지의 전 영역 안으로 퍼져 나가게 하고, 이 뜻의 완성이라는 인장을 영혼에게 찍어 준다.

 

8 내 뜻은 또한 인간의 내면에서 인간적인 것을 모조리 비우고 온통 신적인 것으로 대치한다. 그리고 더 확실히 하기 위해서 인간 안에 생겨날 수 있는 인간적인 행위들의 수와 같은 수의 못으로 그의 내면 전체를 각인하고, 같은 수의 신적인 행위들로 대치한다.

 

9 이와 같은 식으로, 잠시 동안이 아니라 평생토록, 인간 안에 진정한 못 박힘이 내 뜻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1433, 192266 : 하느님 뜻 안에 사는 사람이 지는 십자가의 성격

 

1 혼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선하신 예수님께서 달라지셨다. 어째서일까? 종전 같으면 내가 고통 받는 것을 무척 기꺼워하셨고, 모든 것이 못과 십자가와 관련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그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말았다. 더 이상은 내가 고통 받는 것을 기꺼워하시지 않는다. 어쩌다가 고통 중에 있을 때에도 그런 나를 무심히 바라보신다. 더는 지난날의 즐거운 기색을 보이시지 않는다.

 

2 그런 생각에 잠겨 있노라니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기척을 내시며 한숨을 쉬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보다 뛰어난 낙이 있을 경우 보다 못한 것은 그 즐거운 느낌과 매력을 잃는다. 그러므로 이를 무심히 보게 된다.

 

3 십자가는 은총을 결합시키지만, 누가 그것에 영양분을 주느냐? 누가 적당한 크기로 자라나게 하느냐? 내 뜻이다. 내 뜻만이 모든 것을 완성하고, 영혼 안에 내 지고한 계획이 실현되게 한다. 내 뜻이 없다면, 얼마나 강력한 힘과 위대성을 지니고 있건, 십자가조차 영혼들을 어중간한 상태에 머무르게 하고 만다.

 

4 , 얼마나 많은 고통이, 내 뜻의 지속적인 영양을 받지 못한 탓으로 목표점에 다다르지 못하는지! 이 목표점은 다름아닌 인간 의지의 소멸인데, 하느님의 뜻이 신적 성덕의 이 끝손질을, 마지막 붓질을 해 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5 너는 못이며 십자가가 다 사라졌다고 하는데, 틀렸다, 딸아, 그건 맞는 말이 아니다. 종전에는 네 십자가가 작고 불완전했지만, 지금은 내 뜻이 너를 내 뜻 안으로 들어 올려 네 십자가가 커지게 하고 있고, 네가 내 의지 안에서 행하는 하나하나의 행위가 너의 의지에 박히는 못이 되고 있다.

 

6 네가 내 뜻 안에서 살아감에 따라 너의 십자가가 개개의 피조물 안에 너를 퍼뜨릴 정도로 확장되고,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대신해서 내게 생명을, 곧 내가 그들에게 주었던 생명을 주고 있다. 그리하여 내게 영예와 영광을 돌려주며 내가 피조물을 창조한 목적을 이루고 있다.

 

7 보아라, 네 십자가는 너뿐만 아니라 각 사람을 위해서도 커지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도처에서 네 십자가를 본다. 종전 같으면 네 안에만 보이던 것이 이제는 어디든지 보이는 것이다.

 

8 네가 내 뜻 안에 녹아드는 것 ― 사적인 이익 때문이 아니고 오로지 모든 사람이 내게 마땅히 주어야 할 것을 주려고, 또 내 뜻이 지닌 모든 선을 만인에게 주려고 내 뜻 안에 녹아드는 것은 다만 신적인 생명에 속하는 것일 뿐 인간적인 것이 아니다. 따라서 오직 내 뜻만이 영혼 안에 이 신적인 성덕을 기른다.

 

9 반면에 너의 이전 십자가들은 인간적인 성덕이었고, 인간적인 것은 제아무리 거룩해도 작은 일이나 할 뿐 위대한 일은 하지 못한다. 하물며 영혼을 들어 높여 자기 창조주와 하나 되어 활동하는 성덕에 이르게 할 수 없다. 언제나 피조물의 한계에 머무를 뿐이다.

 

10 하지만 내 뜻은 인간적인 장해 요인을 전부 없애고 피조물을 하느님의 무한성 속으로 던져 넣어, 그의 모든 것이, 곧 십자가와 못과 성덕과 사랑과 보속이 무한한 것이 되게 한다.

 

11 내가 네 안에 이루고자 한 목표는 인간적인 성덕이 아니었다. 작은 일부터 먼저 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내가 고통 중인 너를 보며 그토록 기꺼워했지만 말이다.

 

12 이제 내가 너를 내 의지 안에 살게 함으로써 그것을 뛰어넘게 하고 있다. 그리하여 너의 작음, 너라는 티끌이 무한성을 싸안고 한 사람 한 사람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내게 사랑과 영광을 주고, 피조물 전체에 대한 나의 권리를 되돌려 주고 있다. 이를 보는 것이 너무나 기꺼운 나머지 다른 모든 것에는 더 이상 내 마음이 끌리지 않는 것이다.

 

13 그런즉 너의 십자가와 못은 내 뜻이다. 내 뜻이 간혹 너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아니라 영구적으로 못 박아, 진정한 못 박힘을 완성할 것이고, 이는 못 박힌 채 잉태되어 못 박힌 채 죽은 나의 십자가와 완전히 똑같은 십자가가 될 것이다.

 

14 내 십자가는 오직 영원하신 뜻만을 섭취하며 자라났다. 그러므로 나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든 사람을 위하여 여기에 못 박혔다. 내 십자가가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표상을 각인한 것이다.

 

 

1456, 192291 : 거절당하는 사랑의 그지없이 혹독한 고통과 보상

 

1 평소와 같은 일상 속에 있노라니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숨이 가빠 몹시 힘겨워하시는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하지만 그분을 가장 숨차게 하는 것은 그분 사랑의 불꽃이었다. 인간의 배은망덕이 그분에게서 뿜어져 나온 사랑을 다시 그분 안에 억지로 가두기 때문이었다.

 

2 ,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심장이 그 자신의 불꽃 때문에 얼마나 심한 질식 상태에 떨어지곤 하는지! 그러므로 그분은 내게 위로를 청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딸아, 이 고통을 덜어 다오. 더는 못 견디겠다. 내 불꽃이 나를 집어삼키려고 든다. 네 심장을 넓혀서 그 안에 이 거절당한 사랑과 내 사랑의 고통을 쏟아 넣어야 하겠다. , 내 사랑의 고통이야말로 내 모든 고통을 합친 것보다 더 큰 고통이다!

 

4 그렇게 말씀하신 그분은 내 심장 자리에 입을 대시고 세게 숨을 불어넣으셨고, 나는 그것이 부풀어 나는 것을 느꼈다. 그런 다음 그분은 내 심장에 손을 대시고 더 부풀리려는 듯 다시 숨을 불어넣으셨다. 나는 곧 죽을 것 같았지만 그분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계속 숨을 불어넣으셨다. 이윽고 부풀만큼 부풀자 마치 도장을 찍으시는 것처럼 손으로 그것을 봉하셨으므로, 그 고통이 줄어들 희망은 조금도 없어 보였다.

 

5 그리고 그분은 말씀하셨다. 내 마음의 딸아, 내가 네 안에 내 사랑과 고통을 넣어 두고 내 도장으로 봉한 것은, 너로 하여금 속박당하는 사랑, 거절당하는 사랑의 고통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를 느끼게 하려는 것이다. 딸아, 인내하여라. 이것이야말로 가장 심한 고통이니 너는 무척 괴로울 것이다. 하지만 이 위로를 너에게서 얻고자 하는 이는 네 생명인 예수다.

6 내가 그 후 무엇을 느끼며 겪었는지는 오직 예수님만이 아신다. 그러니 이에 대해서는 글로 옮기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다.

 

7 끊임없이 죽음을 실감하며 종일을 보내고 나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밤 시간에 다시 오셨다. 내 심장을 더 넓히려고 하시기에 나는, 예수님, 더 이상은 제가 못 견딜 것입니다. 지금 지니고 있는 것만도 감당할 수 없는데 여기에다 더 보태시렵니까? 하고 부르짖었다.

 

8 그러자 그분은 힘을 주시려고 나를 팔에 안으시며 말씀하셨다. 딸아, 기운 차리고, 내가 그렇게 하도록 허락해 다오. 이는 필요한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너에게 그리도 많은 고통을 줄 턱이 있겠느냐?

 

9 악이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 네가 내 고통을 겪는 것이, 그것도 마치 내가 지상에 다시 살고 있는 것같이 생생하게 겪는 것이 그만큼 더 필요한 것이다.

 

10 땅이 인간을 벌하기 위해 바야흐로 불길을 토해 내려고 한다. 인간을 향해 달리며 은총으로 덮어 주는 내 사랑도 거절을 당하고 있기에 인간을 치는 불길로 바뀌려고 한다. 그러니 인류는 두 가지 불 사이에 놓여 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불과 땅에서 솟는 불이다.

 

11 악의 수가 지나치게 많은 나머지 이 두 불이 하나로 합치려고 한다. 반면에 내가 너에게 겪게 하는 고통은 그 둘 사이에 흘러들어 하나로 합치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내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가련한 인류에게 모든 것이 끝장날 것이다.

 

12 이런 이유로 내가 너에게 네 심장을 더 넓히도록 허락해 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 고통을 참아 낼 힘을 주면서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13 그러면서 예수님은 다시 내 심장 속에 숨을 불어넣으셨다.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는 지경이 되자 나는 당신 손을 내게 갖다 대어 주시기를, 그렇게 나를 떠받치며 힘을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과연 그분은 내 심장에 손을 갖다 대셨지만, 그것을 너무나 세게 쥐어짜시는 바람에 그분만이 아시는 고통을 겪게 하셨다.

 

14 그러나 그분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으셨다. 양손으로 내 목을 꽉 조르셨는데 목뼈와 심줄이 우지직거리며 숨이 막힐 정도였다. 나를 얼마간 그런 상태로 있게 하신 뒤 자애롭기 그지없는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15 용기를 내어라. 이것이 현 세대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처해 있는 상태다. 그들은 많기도 많은 격정들의 지배를 받고 있어서 그들 자신의 격정과 더없이 추악한 악습의 늪에 빠져 숨이 막히고 있다. 썩은 진창이 광범위하게 퍼져 그들을 익사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16 내가 네 목을 졸라 숨 막히는 고통을 겪게 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극단적인 고통이니, 인류가 그들 자신의 악덕으로 인해 숨이 막혀 죽어가는 모습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어서 너에게 보상을 요구한 것이다.

 

17 하지만 나 역시 같은 고통을 겪었다는 것을 알아라. 저들이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았을 때 팔다리를 얼마나 세게 잡아당겼는지 심줄이 죄다 찢어지며 우지직 뒤틀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목의 심줄이 더 심한 통증을 일으키며 찢어지는 바람에 숨이 막히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18 그것은 격정의 늪에 잠겨 죽어 가는 인류의 비명이었으니, 내 목구멍을 죄며 고통의 바다에 빠뜨리고 있었다. 나의 이 고통은 과연 오싹하도록 무섭고 끔찍한 것이었다. 목뼈와 심줄이 팽팽히 잡아당겨지면서 머리와 입과 심지어 눈의 신경조직까지 우지직 찢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19 몸의 그 긴장상태가 극에 달해 있었으므로 조금만 움직여도 그럴 때마다 치명적인 통증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손끝 하나 까딱 않고 멎어 있었다. 그런가 하면 때로는 몸을 마구 뒤틀며 십자가를 탕탕 치곤 했으니 원수들마저 기겁을 할 정도였다.

 

20 그런고로 내가 너에게 다시 말한다. 용기를 내어라. 내 뜻이 모든 것에 필요한 힘을 줄 것이다.

 

 

20) 20시간 : (오후 0-1) 십자가의 고뇌 첫째 시간

예수님의 첫째 말씀

 

1474, 19221116 : 먼저 일하신 다음 그 성과를 보존하시는 하느님의 뜻.

하느님 뜻 사업을 위해 다시 활동을 개시하신 예수님. 하느님 뜻 안에서 죄의 용서를 받다.

 

1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 속에 있노라니,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오시어 나를 완전히 당신의 거룩하신 뜻 안으로 끌어당기셨다. 그러자 창조 사업 전모가 눈앞에 펼쳐진 것 같았다.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피조물을 위하여 이루신 그 모든 것 속을 누비고 다녔는데, 나중에 그분께서도 이 여정을 함께하신 후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내 뜻은 색다른 방식으로 활동한다. 일부터 먼저 하고, 이 일을 통해 이룬 바를 그다음에 보존하는 것이다. 창조 사업으로 만물의 질서를 잡으며 모든 일을 다 한 다음에는 내 뜻이 만물의 보존자로 있었다. 그때 이래 내 뜻이 만물의 질서 안에 새로운 어떤 것을 행한 적이 없었다.

 

3 나중에 내 뜻이 다시 활동 현장 속으로 들어왔으니, 그것은 내가 인간을 구원하려고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왔을 때였다. 이 일은 창조 사업처럼 짧은 기간이 아니라 무려 삼십삼 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런 다음 나는 구원 사업을 통해 이루었던 모든 것을 보존하려고 다시 돌아갔다.

 

4 따라서 태양이 모든 존재의 선익을 위해 내 보존 의지로 존속하는 것과 같이, 구원 사업의 은혜도 모두를 위해 상존(常存)하는 것이다.

 

5 내 뜻은 이제 다시 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무슨 일을 하려는지 알겠느냐? 내 인성 안에서 했던 일을 피조물 안에서 하고자 한다. 이는 구원 사업보다 더 오랜 기간이 걸릴 일이다.

 

6 내가 구원 사업을 하기 위해 내 인성을 잉태할 어머니를 빚어내었던 것과 같이 이제는 너를 뽑아 내 뜻이 내 인성 안에서 했던 일을 하려는 것이다. 그러니 보아라, 딸아, 이는 내 사업, 내 지고한 뜻 사업이다.

7 너는 나로 하여금 태양과 별들과 달과 공기 및 하늘 궁창에 존재하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과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든 좋은 것들을 창조하여 배치하게 하려고 스스로를 내놓은 공간과도 같을 것이다. 또한 내 인성과도 같아서 내 뜻이 행하고자 하는 바를 저해하는 요소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나는 그러므로 지고한 뜻이 내 안에서 행한 모든 것을 네 안에 넣을 작정이다. 그 일을 거듭하기 위함이다.

 

8 나중에 나는 (고해 사제에게) 죄의 용서를 받으면서 마음속으로, 예수님, 저는 이를 당신 뜻 안에서 받고자 합니다.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내게 말 한마디 덧붙일 겨를도 주시지 않고 즉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9 그러면 내가 내 뜻 안에서 네 죄를 용서한다. 그리고 내가 네 죄를 용서하는 동안 내 뜻이 사죄경을 외운다. 누구든지 죄 사함을 원하면 사해 주고 용서를 원하면 용서하기 위함이다.

 

10 내 뜻은 한 사람만이 아니고 모든 사람을 포괄한다. 하지만 좋은 뜻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이 받는다.

 

 

188, 19251021 : 하느님 뜻 안에서 하는 행위의 놀라운 효과. 각 죄마다 그 특유의 고통을 느끼시는 예수님.

 

1 오늘 아침에는 예수님께서 오시자마자, 딸아, 내가 너한테 온 천국의 입맞춤을 가지고 왔다. 하시면서 내게 입 맞추셨다. 그런 뒤 이 말씀을 덧붙이셨다. 온 천국이 내 뜻 안에 있다. 그들 모두가 이 지고한 뜻 안에 있기에 내가 하는 모든 행위들의 메아리를 듣고, 여기에 응답하듯이 내 행위들을 반복한다.

 

2 그러고 나서 그분은 모습을 감추셨다. 그러나 두세 시간이 지난 다음 다시 오셔서, 딸아, 너한테 준 입맞춤에 대한 보답을 내게 다오. 온 천국이, 내 엄마와 우리 천상 아버지와 성령께서 네 보답의 입맞춤을 기다리고 계신다. 그들의 그 행위가 내 뜻 안에서 나그네살이 중인 땅의 한 피조물을 향해 나왔기 때문에, 그 보답도 같은 뜻 안에서 그들에게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3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고 입을 내 입 가까이로 내미셨고, 나는 두려움으로 떨다시피 하면서 내 입맞춤을 드렸다. 그러자 일찍이 들어본 적 없는 아름다운 소리가 났고, 이 소리가 높이 떠오르면서 만물과 만인에게로 퍼져 나갔다. 예수님은 형언할 수 없도록 애정 어린 어조로 이렇게 말씀을 이으셨다.

 

4 내 뜻 안에서 하는 행위들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 너는 내 뜻 안에서 하는 하나의 행위가 지니는 능력과 위대함과 경이로움을 잘 모르고 있다. 이 행위는 모든 것을 - 하늘과 땅을 - 움직인다. 이들이 마치 단 하나의 행위인 것처럼 움직인다. 그러니 모든 피조물이, 모든 천사와 성인들이 그 행위의 보답을 주고받는다.

 

5 그러므로 내 뜻 안에서 수행된 행위는 보답 없이 지낼 수 없다. 보답이 없으면 그 거룩한 행위가 느끼는 고통을 누구든지 느낄 것이다. 만인을 움직이며 그들 안에 스스로를 넣어 둔 행위였건만 보답을 못 받고 있기 때문이다.

 

6 내 뜻 안에서 하는 영혼의 활동은 낭랑하면서도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와 같다. 어찌나 우렁찬지 모든 이의 주의를 불러 모으는 소리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나 감미롭게 거듭거듭 울리는 바람에, 모두가 이 소리를 내 뜻 안에 있는 영혼의 활동으로 알아보면서 그 거룩한 행위의 영광과 영예를 받게 된다. 이 말씀 끝에 그분은 다시 사라지셨다.

 

7 나는 거룩하신 뜻 안에 녹아들기를 계속하는 동안, 첫 사람에서부터 세상에 태어날 마지막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예수님께 지었고 또 지을 각각의 죄를 가슴 아파하며 통회했고, 통회하면서 용서를 청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다가 혼잣말로, 저의 예수님, 저의 사랑이시여, 이처럼 통회하며 용서를 청하는 것만으로는 넉넉하지 않습니다. 무슨 죄든 깨끗이 근절시켜 당신께서 다시는 절대로 모욕당하시는 일이 없도록 하고 싶습니다. 하였다.

 

8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기척을 내시며 이르셨다. 딸아, 나는 각 죄마다 그 특유의 고통을 느꼈고, 내 고통 위에 그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한 용서를 매달아 두었다. 나의 이 고통은 이제 죄인이 나를 모욕하는 순간에도 그를 기다리며 내 뜻 안에 매달려 있다. 그가 나를 모욕한 일에 대해 마음 아파하며 뉘우치면, 내 고통이 내려와 그와 함께 아파하고 그 즉시 용서를 주기 위함이다.

 

9 하지만 나를 모욕하고서도 통회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 그러니 내 고통과 용서가 마치 격리된 것처럼 내 뜻 안에 홀로 매달려 있는 것이다.

 

10 고맙다, 딸아. 너는 내 뜻 안으로 들어와 내 고통과 용서와 함께 있어 주니 말이다. 모쪼록 내 뜻 안의 순례를 계속하여라. 내 고통을 너의 것으로 삼고, 각 죄에 대해서 통회! 용서!를 크게 외쳐라. 그러면 내가 다만 홀로 아픔을 느끼며 용서를 간구하지 않고, 나하고 같이 아픔을 느끼는 내 뜻의 작은 딸과 함께하게 된다.

 

 

21) 21시간 : (오후 1-2) 십자가의 고뇌 둘째 시간

예수님의 둘째, 셋째, 넷째 말씀

 

2028, 19261121 : 사람의 임종 순간과 예수님의 자애.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이의 탁월성.

 

1 나의 한 언니의 돌연한 죽음 때문에 여간 슬프지 않았다.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언니와 함께 계시지 않으면 어쩔까 하는 두려움이 가슴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 그때 내 지고한 선이신 예수님께서 오셨으므로 그 고통을 말씀드렸더니, 더없이 인자하신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두려워하지 마라. 죽어가는 불쌍한 사람에게 주어질 수 있는 모든 것, 곧 성사들과 모든 도움을 대신하는 것이 바로 내 뜻이 아니냐? 그 사람의 뜻이 그 최후의 순간에 성사들과 어머니인 교회가 주는 도움을 받겠다고 하면 더욱더 그러하다.

 

3 네가 알다시피 내 뜻은 그 영혼을 이 세상에서 갑자기 채가면서 나로 하여금 내 인성의 자애로 그녀를 에워싸게 하였다. 인간적이며 신적인 내 마음이 더없이 큰 사랑을 그 활동 현장에 넣어, 그녀의 결점과 약점과 나쁜 격정들이 무한하고 거룩한 자애의 우아함을 입고 또 그렇게 보이게 하였다.

 

4 그리고 내가 나의 자애를 현장에 넣을 때에는 따뜻한 동정심을 가지고 그 영혼을 안전한 항구로 건너가게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네 예수의 자애의 승리인 것이다. 게다가, 인간의 도움이 없는 곳에는 하느님의 도움이 풍부하다는 것을 너는 모르느냐?

 

5 그녀 주위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도움을 청하고 싶어도 청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너는 걱정하지만, , 딸아, 그 순간은 인간의 도움이 그치는 순간이요, 그것이 아무 가치도 효력도 못 내는 순간이다. 임종자는 창조주와의 유일하고 일차적인 행위 속으로 들어가고, 다른 누구에게도 그 속에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까닭이다.

 

6 그러므로 타락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돌연사가 악마의 활동이 그 현장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악마는 임종자를 유혹하거나 간교한 방식으로 (하느님에 대한) 공포심을 불어넣는 따위 활동을 하는데, 돌연사의 경우에는 그가 임종자를 유혹하거나 따라다닐 겨를도 없이 (하느님에게) 빼앗기고 만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런즉 사람이 보기에 실총(失寵)으로 여겨지는 것이 흔히 더 큰 은총일 수 있다.

 

7 나중에 지고하신 의지 안에 나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있는데,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시기 시작하셨다. 딸아,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은 모든 것을 뛰어넘고 피조물의 모든 행위를 뛰어넘는 수위성을 지닌다. 그는 자기 창조주 앞에서 사랑을 첫 행위로 삼은 사람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사랑한다고 해도, 사랑하는 일에 첫째가는 사람은 내 뜻 안에서 사는 영혼이다. 그다음에 다른 사람들이 오는데, 그들 사랑의 강도에 따라, 어떤 이들은 둘째로, 어떤 이들은 셋째로, 또 어떤 이들은 넷째로 온다.

 

8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흠숭하고 찬양하며 내게 기도한다고 해도, 나를 흠숭하고 찬양하며 내게 기도하는 일에 첫째가는 사람은 내 뜻 안에서 사는 영혼이다. 이는 지당한 일이니, 내 뜻이 모든 피조물의 생명이요 일차적인 행위인 까닭이다.

 

9 (다시 말하자면)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은 내 뜻의 일차적인 행위 안에 있으므로, 하느님 앞에서 모든 피조물의 모든 행위를 하거나 모든 피조물이 하지 않은 모든 행위를 하거나 언제나 그들 모두를 능가하는 첫째가는 사람이다.

 

10 그러므로 천상의 존귀하신 여왕께서는 주권과 유사한 권한을 가지고 계신다. 그분 자신의 뜻에 결코 생명을 주신 적이 없고 오히려 그분의 생명을 온전히 내 뜻 안에 맡겨 두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따라서 우리 (성삼위)를 사랑하고 우리를 찬양하며 우리에게 기도하는 일에 있어서 단연 첫째가는 분이시다.

 

11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우리를 사랑하는 것을 본다. 하지만 그것은 천상 여왕의 사랑에는 결코 못 미치는 사랑이다. 그들도 우리를 찬양하고 우리에게 기도를 바치지만, 모든 것을 뛰어넘고 지배하는 권한을 가진 천상 여왕의 찬양과 기도에는 결코 못 미치는 것들이다.

 

12 그분은 사람들이 우리를 사랑한다고 해서 사랑의 첫자리를 내어 주지는 않으신다. 언제나 그 자리를 굳게 지키시니 얼마나 보기에 좋은지 모른다! 더군다나 당신 자신을 일차적인 행위로 만드시어, 당신 사랑의 바다로 하여금 임금님 둘레로 흘러들게 하신다. 이 천상 엄마의 사랑의 바다에 비하면, 다른 사람들은 단지 몇 방울의 사랑을 이루어 멀리 뒤처져 있는 격이다. 다른 모든 행위들도 그렇다.

 

13 ! 딸아, 내 뜻 안에서 사는 삶이란 말은 한 토막의 말에 지나지 않지만, 영원만큼이나 장중한 무게가 실린 말이다. 만물과 만인을 두루 싸안는 말이기 때문이다.

 

 

3539, 1938322 : 2015. 6. 25 현재 번역이 않됨

 

 

12142, 19201218 : 그것이 회리바람처럼 들이닥치리라. 하느님께서 흐뭇해하시는 보답 방식.

 

1 예수님 없이 혼자 무척 괴로워하면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그분께서 곁에 계시는 느낌이 들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2 ! 딸아, 사태가 악화되고 있다. 그것이 회리바람처럼 들이닥쳐 모든 것을 뒤흔들 것이다. 회리바람이 일체를 휩쓸듯이 휩쓸 것이고, 회리바람이 끝나는 것과 꼭 같은 모양으로 끝날 것이다.

 

3 이탈리아 정부는 발판을 잃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리라. 하늘이 내리는 벌이다!

 

4 그 후 나는 나 자신의 바깥에 있는 것 같았는데 과연 다정하신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분께 아주 단단히 달라붙어 있는데다 그분도 그러하셨으므로 그분의 거룩하신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 된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렇게 말씀드리고 있었다.

 

5 예수님, 이처럼 당신께 밀착되어 있는 동안 제 사랑과 감사를 증거하고, 피조물이 마땅히 해야 할 모든 것을 증거하고 싶습니다.

 

6 왜냐하면 당신께서 우리의 원죄 없으신 여왕이시며 엄마이신 분을 ― 지극히 아름답고 지극히 거룩하며 은총의 놀라운 기적이신 분을 창조하셨고, 그분을 모든 선물로 부요하게 하시며 또한 우리 어머니도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7 이를 또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피조물의 이름으로 행합니다. 피조물의 각 행위를, 각각의 말과 생각과 심장 박동과 걸음을 하나하나 붙잡고 그 각각의 이름으로, 당신께서 하늘에 계신 당신 엄마이시며 저의 엄마이신 분 안에 행하신 모든 것에 대해, 당신을 사랑합니다, 감사드립니다, 당신을 찬미합니다, 흠숭합니다. 하고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8 예수님께서는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흐뭇해하셨고, 흐뭇하신 나머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나는 모든 세대의 이름으로 행하는 너의 이 행위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9 내 정의와 내 사랑이 이런 보답의 필요를 느끼고 있었던 것은, 내 엄마를 그토록 부요하게 한 이상 모든 사람에게 내리는 은총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내게 고맙습니다.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10 또 다른 어느 날은 내가 사랑하올 예수님께, 제게는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고통도 당신의 방문을 받는 것도 다 끝났습니다. 한 적이 있었다.

 

11 그분께서 즉시, 아마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과 내 뜻을 행하는 것을 멈춘 모양이지? 하셨다. 아닙니다. 결코 그런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하고 내가 대답하자, 그러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하셨다.

186, 19251010 : 하느님 아버지와 성모님 사이의 뜻의 교환. 루이사에게 같은 교환을 바라시는 하느님. 하느님 뜻의 자녀들에 대한 성모님의 역할.

 

1 평소와 같은 상태로 있는 중에 내 하찮은 마음이 극히 숭고한 어떤 분위기에 싸여 있음을 알았다. 하느님을 뵙고 있는 것 같았는데, 과연 천상 아버지의 한쪽 무릎 위에 여왕이신 엄마가 마치 돌아가신 것처럼 꼼짝도 않고 계셨다. 아무래도 생명이 없어 보였다.

 

2 깜짝 놀란 나는 내 엄마가 돌아가셨다. 하지만 얼마나 행복한 죽음이랴! 우리 창조주의 무릎 위에서 죽는 것은! 하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엄마의 몸에서 분리된 듯한 그분의 뜻이 거룩하신 아버지의 손에 들려 있었다. 나는 놀라움에 잠겨 바라보고 있었을 뿐, 눈앞에 보이는 이 광경이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 하느님의 옥좌로부터 이렇게 말씀하시는 음성이 들렸다.

 

3 이는 뽑힌 자들 중에서도 뽑힌 사람, 온전히 아름다운 사람이다. 우리 (성삼위)에게 자기의 뜻을 선물로 바친 유일한 피조물이니, 그것을 우리 손에 맡기고 우리 무릎 위에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그 보답으로 우리의 뜻을 선물로 주었는데,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이었다.

 

4 왜냐하면 이 지고한 뜻을 받아 가짐으로써 말씀을 세상에 내려오게 하여 인류 구원 사업이 이루어지게 할 능력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간적인 뜻이었다면 우리를 지배하거나 끌어당길 능력이 없었겠지만, 우리가 이 비할 데 없는 사람에게 준 신적인 뜻은 우리를 이기고 정복하며 황홀하게 하기도 하였다. 그러기에 저항할 수 없어진 우리는 말씀을 땅으로 보내달라는 그 청원에 항복했던 것이다.

 

5 이제 우리는 네가 우리의 다른 쪽 무릎 위에 올라와서 네 뜻을 우리에게 주고 죽은 듯이 가만히 있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하여 너의 뜻이 너에게 더는 없는 것처럼 우리 손안에 죽은 상태로 있는 것이 보이면, 우리의 뜻을 선물로 줄 작정이다. 또한 그런 너를 통해서, , 너에게 주어진 우리의 이 뜻을 통해서, 우리의 피앗이 땅에서도 살기 위해 다시 갈 것이다.

 

6 우리의 양 무릎 위에 죽은 듯이 가만히 있는 이 두 뜻이 수많은 반항적인 뜻들을 배상하는 몸값이 되리니, 우리는 그들을 다른 사람들의 모든 죄악들을 기워 갚을 소중한 보증으로 간직하겠다. 그들이 우리의 뜻으로 우리에게 보속을 바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7 그 음성이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무렵, 아버지의 다른 쪽 무릎 위에서 내가 마지막 숨을 쉬며 죽어가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나 자신 안에 돌아와 있는 나를 보기도 했는데, 그 내가 내적으로 느낀 것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만 나의 뜻이 다시는 결코 내 안에 들어오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의 뜻만이 내 안에서 생명을 지니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뿐이다.

 

8 , 그렇다! 하느님의 뜻만이 모든 선을 가져오며 영혼들 안에 예수님을 재현할 수 있다. 또한 창조 피앗을 되울리면서 마치 단숨에 하는 것처럼 순식간에 만물과 만인을 싸안고 하느님께 창조와 구원과 성화 사업에 대해 보답할 수도 있다. 우리 안에서 활동하는 이 거룩하신 뜻은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으니, 정녕 만물 위에 군림하여 다스리는 참된 여왕이다.

 

9 나중에 나는 아기 예수님을 팔에 안고 계신 내 천상 엄마를 뵈었는데, 입 맞추며 아기를 가슴께로 추어올려 지극히 깨끗한 젖을 주시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엄마, 그런데 저에게는, 저에게는 아무것도 주시지 않으시렵니까? 제발, 적어도, 엄마가 예수님께 입 맞추실 때에 저의 사랑합니다.를 엄마의 입과 예수님의 입 사이에 두는 것만은 허락해 주십시오. 저의 작은 사랑합니다.가 두 분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 안에 흘러들게 하려는 것입니다.

 

10 그러자 어머니께서 이르셨다. 딸아, 부디 그렇게 하여라. 너의 작은 사랑합니다.를 나와 내 아들의 입뿐만 아니라 우리 둘 사이의 모든 행위들 안에도 갖다 놓아라.

 

11 너는 이 점을 알아야 한다. 내가 내 아들에게 행한 모든 것에는 장차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게 될 영혼들에게도 그렇게 하려는 지향이 들어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느님의 뜻 안에 있으면 내가 예수에게 행한 모든 행위를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고 있을 것이니, 내가 그것들을 맡길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12 그러므로 내 아들에 대한 나의 입맞춤은 그들에 대한 입맞춤이 되기도 하였다. 그들이 내 아들의 지고한 뜻 안에 그와 함께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들은 내 아들 안에 정렬한 듯 늘어선 첫 사람들이었으니, 내가 내 아들에게 행한 모든 것에 그들도 참여시키는 것이 내 모성적 사랑의 요구이기도 했던 것이다. 또한 이 거룩한 뜻 안에서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은총이 필요하기에, 나는 나의 모든 재보와 은총과 고통들을 그들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곳에 두어, 그들의 도움과 보호와 힘과 지주 및 빛이 되게 하기도 하였다.

 

13 이리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 뜻의 자녀들을 내 자녀들로 가지게 된 나는 행복감을 맛보았고 더없이 큰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나 또한 아버지의 뜻을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을 내게서 태어난 자녀들로 여길 수 있었던 것이다.

 

14 더욱이 내 아들과 관련하여 첫 세대 사람들을 장차 올 구원자의 공로로 구원을 얻은 세대라고 하는 것과 같이, 이 영혼들, 곧 장차 태어날 이 자녀들도 그들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뜻에 힘입어 미래의 세대들을 위한 구원과 은총을 끊임없이 간구할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고 예수님도 그들 안에 있으리니,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이 속에 품고 있는 모든 것을 반복할 것이다.

 

15 그런즉 내가 내 아들에게 행한 것을 너에게도 거듭하기를 바란다면, 네가 언제나 내 아들의 뜻 안에 있어야 한다. 내 눈에 그런 네가 보이면 내 총애를 아낌없이 베풀겠다.

 

 

1276, 191914 : 하느님의 뜻 안에서 겪는 고통의 효과.

 

1 평소와 같은 상태로 있었으나 다정하신 예수님의 부재로 매우 괴로웠다. 그래도 ‘수난의 시간들’을 실천하면서 그분과 일치하려고 힘썼다.

 

2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시간’에 이르자 그 절정에서 내적으로 그분을 느낄 수 있었는데, 내 안에서 양손을 합장하신 채 마디마디 또록또록한 목소리로 이렇게 기도하시는 것이었다.

 

3 “아버지, 저의 이 딸의 희생을 - 저의 부재로 인해 겪고 있는 이 고통을 받아 주십시오.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보이시지 않으십니까? 고통 때문에 거의 숨이 끊어질 지경인데 저를 보는 은혜도 누리지 못하고 있으니, 제가 숨어 있으면서도 힘을 주기 위해서 함께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죽고 말 것입니다.

 

4 오, 아버지, 이는 제가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에게서도 버림받은 채 겪었던 것과 하나 된 고통이니, 부디 받아 주십시오. 그리하여 이 딸이 통감하는 저의 부재가 다른 영혼들 안에서는 빛과 지식과 하느님 생명이 되고, 제가 몸소 저를 맡기며 간구했던 모든 것이 되게 해 주십시오.”

 

5 그렇게 말씀하신 후 그분은 다시 숨으셨다. 나는 고통 때문에 멍하니 넋 나간 꼴로 굳어 있었지만 그래도 소리 내어 울면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제 생명이신 예수님, 아 그렇습니다! 저에게 영혼들을 주십시오.

 

6 당신 부재의 이 격렬한 고통이 당신으로 하여금 저에게 영혼들을 주시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가장 강력한 보증이 되기 바랍니다. 또한 이 고통이 당신의 뜻 안으로 흘러들어, 모든 사람이 제 고통의 손길과 끊임없는 외침을 느끼고 들으면서 항복하게 되기 바랍니다.”

 

7 그 뒤 날이 어두워질 무렵, 복되신 예수님께서 잠시 오시어 이렇게 덧붙이셨다. “내 딸이며 피난처인 얘야, 너의 고통이 오늘 내 뜻 안에서 얼마나 아름다운 해조(諧調)를 이루었는지 모른다!

 

8 나의 뜻은 하늘에 있었고 너의 고통은 내 뜻 안에 있었으니, 너의 고통이 고운 음색으로 하늘에 울려 퍼지면서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께 그 흐느낌으로 영혼들을 청하고 있었다.

 

9 나의 뜻은 천사들과 성인들 안에 흐르고 있었으니, 너의 고통이 그들에게도 영혼들을 청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너의 아름다운 소리에 감동되어 너의 고통과 함께 내 어좌 앞에서 ‘영혼들, 영혼들!’ 하며 외치고 있었다.

 

10 나의 뜻은 모든 피조물 안에서 흐르고 있었고, 너의 고통은 모든 마음들을 감동시키며 그들 모두에게 ‘여러분의 영혼을 구하십시오, 영혼을 구하십시오!’ 하고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11 나의 뜻은 네 안에 집중되어 있었고, 찬란한 태양처럼 모든 이를 보살피며 지키는 자리를 점하고 있었다. 그들을 회개시키기 위함이었다.

 

12 보아라, 얼마나 위대한 선이냐! 하지만 누가 내 뜻의 진가를, 그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알려고 애쓰고 있느냐?”

 

 

1448, 192282 : 예수님의 생애 중 가장 큰 고통은 인성과 신성이 분리된 느낌이 들 때였다.

1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 속에 있었으나, 다정하신 예수님에게서 따로 떨어져 있는 듯해서 마음이 여간 착잡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오시자 이렇게 말씀드렸다.

 

2 저의 사랑이시여, 사정이 참 많이 변했습니다. 전에는 제가 주님과 하나 되어 있는 느낌이 하도 강해서 주님과 저는 나눌 수 없는 사이인 것 같았고, 제가 고통 중에 있을 때면 주님도 함께 계셔 주셨습니다.

 

3 이제는 정반대입니다. 제가 고통 중에 있을 때면 주님과 갈라져 있는 느낌이고, 제 앞이나 제 안에 계신 주님을 뵐 때도 주님은 저에게 형벌을, 사형 언도를 내리시는 재판관의 모습이십니다. 그리고 친히 제게 주신 고통에 더 이상 동참하시지 않으십니다. 그저 더욱더 높이 솟아올라라. 하시는데, 저는 내려가고 있습니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내 말을 가로막으시며 말씀하셨다. 딸아, 네가 참 잘못 생각하고 있다. 이는 네가 내 도장을 받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것은 내가 각 피조물을 대신하여 겪은 죽음과 고통의 도장이었다.

 

5 내 인성 역시 이 고통스러운 상태에 놓여 있었다. 내 신성과 불가분의 관계 속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성은 본성상 고통이 범접할 수 없을 뿐더러 추호도 고통을 겪을 수 없으므로 인성이 홀로 고통을 받고 있었으니 말이다. 내 신성은 다만 고통과 죽음을 겪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방관자였을 뿐이다.

 

6 더욱이 내 신성은 엄한 재판관이어서 모든 피조물의 모든 고통을 형량으로 치르도록 요구하였다. , 내 인성이 얼마나 떨렸는지! 나는 모든 사람의 죄로 뒤덮이고 그 각 사람이 받아 마땅한 고통과 죽음으로 뒤덮인 나 자신을 보면서, 그 지고하신 빛과 엄위 앞에서 온통 으스러진 상태로 있었다.

 

7 이것이 내 생애 최대의 고통이었으니, 신성과 하나이며 갈라질 수 없는 내가 마치 따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고통 중에 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8 그런데 나는 너를 나의 모상이 되라고 불렀다. 그러니 네가 네 안에 있는 나를 느낌에도 불구하고, 내가 몸소 너에게 준 고통의 방관자로 여겨지고 네가 나와 갈라져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네 고통은 내 고통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9 하지만 내 인성이 실제로 신성과 갈라진 적이 없는 것과 같이 나도 결코 너와 갈라지지 않을 것임을 확언한다. 지금은 네가 나와의 분리를 느끼고 있지만, 그 뒤에는 내가 전보다 더욱 긴밀히 너와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런즉 용기를 내어 충실하여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1515, 1923312 : 예수님 부재의 고통을 빈번히 겪는 이유와 의미

1 다정하신 예수님의 부재 고통으로 반죽음 상태에 빠져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분께서 어쩌다 오신다고 해도, 번쩍하다 사라지는 섬광 같기 때문이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자, 그분께서 측은한 마음이 드셨는지 내 안에서 나오셨고, 나는 그분을 뵙자마자 대뜸 우는소리부터 늘어놓았다.

 

2 저의 사랑이시여, 너무 지독한 고통입니다! 당신 없이는 죽어 가는 느낌이건만, 죽지 않으면서도 죽어 가는 이것이야말로 죽음 중에서도 가장 가혹한 죽음입니다. 인자하신 당신 마음이, 오직 당신 때문에 계속 빈사지경을 헤매는 저를 어떻게 참고 보실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3 예수님께서는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너무 낙심하지 마라. 하시고 말씀을 이으셨다. 이 고통은 너만 홀로 겪는 것이 아니다. 내 사랑하올 엄마도, 나도 겪었다. , 그것은 너의 고통보다 훨씬 더 혹독한 것이었다.

4 하느님과 불가분의 관계 속에 있는 내가, 마치 신성이 나를 떠나 버린 것처럼, 신음하는 내 인성 안에 얼마나 자주 홀로 남아 있었던지! 그것은 속죄와 고통에 자리를 내 주기 위함이었는데, 이런 것들은 신성과 접촉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 나 역시 하느님 부재의 고통을 그토록 사무치게 절감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꼭 필요한 일이었다.

 

5 너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창조 사업을 하시면서, 각 피조물이 현세에서뿐만 아니라 천상 본향에서도 받게 될 모든 영광과 모든 선과 행복도 함께 내셨다. 그런데 어떤 영혼들에게 주려고 예정되어 있었던 몫은, 받을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전부 보류되어 있었다. 그들이 멸망했기 때문이다.

 

6 나는 모든 것을 완성하고 모든 것을 내 안에 흡수해야 했으므로, 바로 그 멸망한 영혼들이 지옥에서 겪는 고통을 겪기로 자원하였다. , 이것이 내게 얼마나 엄청난 희생을 요구하던지! 지옥의 실고(失苦)와 무자비한 죽음의 고통을 치러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꼭 필요한 일이었다.

 

7 내가 모든 것을, , 창조 사업을 통해 우리에게서 나온 모든 것과 모든 영광, 모든 선과 행복을 나 자신 안에 흡수해야 했던 까닭은, 이들을 받아들여 누리기를 원하는 모든 이들 안에 다시 넣어 주기 위해서였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어떻게 줄 수 있었겠느냐? 그러므로 나는 모든 고통과 내 신성의 부재까지도 흡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8 이제, 창조 사업 전반의 이 모든 선을 내 안에 흡수하여 모든 세대들 위에 흘러내리게 하는 우두머리가 된 나는, 고통이며 활동에 있어서 나를 닮은 영혼들을 찾고 있다. 그들로 하여금 내 인성이 담고 있는 이 큰 영광과 영예를 나누어가지게 하기 위함이다.

 

9 그런데 모든 영혼들이 그것을 받아 누리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 자신과 현세적인 것을 비우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기에 나는 먼저 나 자신을 알릴 영혼들을 찾고 있다. 그런 다음 내 모습을 그들에게서 감추려는 것이다. 그들의 이 빈자리에, 나에 대해 알게 된 이 앎의 공간에, 내 부재의 고통을 양성하기 위함이다. 영혼은 이 부재의 고통을 겪으면서 내 인성의 이 영광을, 남들이 거부하는 영광을 자신 안에 흡수하게 되기 때문이다.

 

10 만일 내가 거의 언제나 너와 함께 있지 않았다면, 너는 나를 알지도 사랑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내 부재의 이 고통을 느낄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이것이 네 안에 양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곧 이 고통의 씨앗과 양분이 네 안에 없었을 것이다.

 

11 ,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나 없이 있는지, 그리하여 죽은 상태로 살아 있는지! 그들은 어떤 작은 쾌락을 잃거나 하찮은 무엇이 없으면 비통해하지만, 내가 없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않으며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12 그런즉 이 고통이 너에게는 위로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내가 너에게 오고 있다는 것과 네가 나를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남들이 거부하는 영광과 선과 행복을 네 안에 넣어 주기를 네 예수가 바라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확실한 표가 되기 때문이다.

 

 

22) 22시간 : (오후 2-3) 십자가의 고뇌 셋째 시간

예수님의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말씀

숨을 거두시다.

 

936, 191074 : “‘동산의 고뇌가 죽어 가는 이들을 위한 특별한 도움이었다면 십자가의 고뇌는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을 위한 도움이었다.

1 주님의 부재와 이로 인한 괴로움이 가득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그래도 주님의 고뇌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노라니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나는 특히 죽어 가는 모든 사람들의 선종을 도와주려고 동산의 고뇌를 겪고자 하였다. 나의 고뇌가 그리스도인들의 고뇌와 얼마나 깊이 결부되어 있는지 잘 보아라. 그 노고와 슬픔과 번뇌와 피땀을 -. 나는 개개인 모두의 죽음을 느꼈다. 특히 각 사람을 위하여 실제로 죽어 가고 있는 것 같았으니,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노고와 슬픔과 번뇌와 피땀을 내 안으로 느꼈고, 나 자신의 것으로 모든 이에게 도움과 위로와 희망을 주었다. 그들의 죽음을 내 안으로 겪음으로써 그들 모두가 단 하나의 숨 안에서 곧 나의 숨으로 내 안에서 죽는 은총을 받고 나의 신성에 의해 즉각 지복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었다.

 

3 동산의 고뇌가 죽어 가는 이들을 위한 특별한 도움이었다면, 십자가의 고뇌는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을 위한 도움이었다. 둘 다 고뇌이지만 서로 차이가 있는 것이다. , 동산의 고뇌는 슬픔과 두려움과 근심과 공포가 가득한 것이었지만 십자가의 고뇌는 평화와 차분한 고요가 가득한 고뇌였다.

 

4 그런데 내가 목마르다! 하고 외친 것은 모든 사람이 내 마지막 숨 안에서 그들의 마지막 숨을 거두게 하려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 마지막 숨을 벗어나려고 하는 것을 보면서 비탄에 잠겨 외쳤던 것인데, 목마르다!는 지금도 여전히 각 사람 모두에게, 그 마음의 문에 달린 초인종처럼 이렇게 외치고 있다.

 

5 목마르다, 오 영혼아, 나는 너를 갈망한다! 부디 내 밖으로 나가지 말고 내 안으로 들어오너라. 그리하여 내 안에서 너의 마지막 숨을 거두어라!

 

6 그러니 내 수난 중 여섯 시간을 사람들에게 주어 선종하도록 하게 하였으니, 동산의 세 시간은 임종 중에 있는 이들을 위하여, 십자가 위의 세 시간은 바로 죽음 직전의 마지막 한숨을 위한 것이었다. 그 뒤에는 미소를 지으며 죽음을 바라보지 못할 사람이 없지 않겠느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 사랑하기 때문에 바로 나의 십자가에 자기 자신도 희생으로 바치려고 하는 사람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7 너는 죽음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얼마나 사태를 바꾸어 놓는 것인지 알겠느냐? 지상 생활 동안 나는 멸시를 받았으며, 내가 행한 기적들 자체도 내 죽음만한 효과를 내지 못했다. 십자가 위에까지 욕설이 올라오고 있었지만, 내가 마지막 숨을 거두자마자 죽음이 사태를 일전(一轉)시키는 역량을 발휘했던 것이다.

 

8 모든 이가 가슴을 치며 내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고, 바로 내 제자들도 용기를 내었으니, 특히 평소에 남의 눈을 피해 숨어 지내던 이들마저 대담해져서 내 시신을 내어 달라고 청하여 훌륭히 안장하기에 이르렀다. 하늘과 땅이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목청껏 외쳤던 것이다.

 

9 죽음은 이처럼 위대한 것, 숭고한 그 무엇이다.

 

10 그리고 그러한 일은 내 자녀들에게도 일어난다. 그들은 생전에 멸시와 억압을 받는다. 그들의 저 덕행들도, 사실은 빛과도 같이 주변인들을 환히 비추어 줄 수 있는 것이지만, 반쯤은 가려져 있다. 고통을 감수하는 그들의 용맹과 극기 및 영혼들(의 구원)에 대한 열정이 그들 주변의 사람들에게 빛과 의혹을 동시에 던지는 것이다. 게다가 나도 그러한 가림을 허용한다. 그것은 내 소중한 그 자녀들의 덕행을 더욱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들이 죽자마자 나는 즉시 그 가리개를 거두어 버린다.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11 그러면 의혹은 확신이 되고 빛은 뚜렷이 환해지기에, 이 빛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용맹을 인정하게 하며 아주 사소한 일까지 모든 것을 존중하게 한다. 그러므로 살아생전에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죽음에 의하여 보완되는 것이다.

 

12 이것이 여기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니 저기 천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진실로 놀라운 것이어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망해 마지않을 일이다.

 

 

363, 1938420 : 2015. 6. 25 현재 번역이 안됨

 

 

1117, 191259 : 사랑으로 불타는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

1 보통 때와 다름없이 있었지만, 오늘 아침에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사랑으로 불타는 사람들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복되신 예수님께서 오시자마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의지가 오로지 나만을 원하고 지성이 오로지 나를 알려는 일에만 전념하며 기억이 오로지 나만을 기억하는 것 - 이것이 바로 영혼의 이 세 가지 능력이 사랑으로 불타는 방법이다.

 

3 감각 기능들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나에 대해서만 말하고, 오로지 나에 관한 것만 듣고, 오로지 나의 것들만 즐기고, 오로지 나를 위해서만 일하며 걷고, 그 마음이 오로지 나만을 사랑하고, 그 열망이 오로지 나만을 열망하는 것이 감각 기능들도 사랑으로 불타는 방법이다.

 

4 딸아, 사랑은 감미로운 매력을 지니고 있어서 영혼으로 하여금 사랑인 모든 것에 대해서는 온 몸이 눈이 되어 주시하게 하지만 사랑이 아닌 것에는 숫제 소경이 되게 한다.

 

5 그러므로 사랑을 품은 사람은 그의 의지가 그 무엇과 마주치건 그것이 사랑이기만 하면 온통 눈이 되고, 사랑이 아니면 눈멀고 아둔하여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6 그의 혀도 마찬가지다. 사랑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면, 자기의 말 속에 여러 개의 눈들이 빛나고 있음을 느끼면서 조리 있고 힘차게 열변을 토하지만, 사랑에 대해서가 아니라면, 말을 더듬거리다가 결국은 아무 말도 못하는 벙어리가 되고 만다. 여타 모든 것도 그렇다.”

 

 

1153, 1913521 : 단순하면서도 실행 가능한 자기 소멸 방법.

 

1 평소와 같이 있는데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내가 원하는 것은 상상적인 것이 아닌 진정한 소멸이 네 안에 일어나는 것이다. 단순하면서도 실행 가능한 방법으로 말이다.

 

3 이를테면 너에게 나를 위한 생각이 아닌 생각이 떠올랐다고 가정해 보아라. 너는 그 생각을 없애고 신적인 생각으로 대치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인간적인 생각이 소멸되는 대신 신적 생각의 생명을 얻게 된다.

4 같은 방식으로, 눈이 나를 불쾌하게 하거나 나하고 상관이 없는 것을 보려고 한다면 그런 너 자신을 억제하고 그 인간적인 눈을 죽임으로써 신적 생명의 눈을 얻게 된다. 네 존재의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5 그러면, 오, 이 새로운 신적 생명들이 내가 행하는 모든 것에 참여하면서 내 안으로 흘러드는 것이 내게 얼마나 생생하게 느껴지겠느냐! 나는 이 생명들을 참으로 사랑하기에 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모든 것을 내주게 된다.

 

6 그런 영혼들이야말로 내 앞에서 첫째가는 영혼들이니, 내가 그들에게 강복하면 그들을 통해 다른 이들도 복을 받는다. 또한 은혜와 사랑을 받는 것에도 그들은 첫째가는 사람들이니, 그들을 통해 다른 이들도 은혜와 사랑을 받는다.”

 

 

1258, 191887 : 영혼들 안에서 계속되는 예수님의 죽음.

 

1 예수님의 부재를 두고 그분을 향해 우는소리를 하다가, “이젠 만사 끝장이야. 얼마나 쓰디쓴 나날인지! 내 예수님은 사라지셨어. 나를 떠나셨어. 어떻게 내가 계속 살아갈 수 있담?” 하고 혼잣말을 하였다.

 

2 이 말 외에도 이런저런 군소리를 주절대고 있노라니,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당신의 지력에서 솟아나는 빛을 통하여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딸아, 나의 십자가상 죽음은 아직도 영혼들 안에서 계속되고 있다. 착한 의향을 가진 영혼이 나에게 자기 안의 생명을 줄 때에는 내가 내 인성 안에서 살듯이 그 영혼 안에서 다시 살아간다.

 

4 사랑의 불꽃이 나를 태우고 있기에 이를 피조물에게 증명해 주고 싶어서 나는 애가 탄다. 그래서 말한다. ‘내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느냐? 너희에 대한 사랑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나 자신을 완전히 소진시킨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기 안의 생명을 내게 준 이 영혼 안에서도 너희에 대한 사랑으로 타 죽기를 원한다.’

 

5 그러므로 나는 그 영혼으로 하여금 자기 안의 내 생명이 소멸되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러니 그는 궁지에 몰리며 임종 고통을 겪게 된다. 자기 안에서 예수의 생명을 더 이상 느낄 수 없어졌기에 그 자신도 소멸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6 자기 안의 내 생명을 사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가 이 생명이 사라지자 버둥거리며 온 몸을 부들부들 떨게 되는데, 이는 내 신성이 십자가에 달린 내 인성에게서 힘을 거두고 죽게 했을 때, 그때의 내 인성과 거의 같은 모습이다.

 

7 영혼의 이 소진은 인간적인 것이 아니고 온전히 신적인 것이다. 나는 또 하나의 내 신적 생명이 나에 대한 사랑으로 소진된 듯한 만족을 느낀다. 사실 소진된 것은 영혼의 생명이 아니고 나의 생명이었다. 영혼은 이를 더 이상 느끼거나 볼 수 없기 때문에 그에게는 내가 죽은 거나 다름없이 보이는 것이다.

 

8 그리하여 나는 피조물을 위한 내 죽음의 효과를 새로이 하는 한편, 이 영혼을 위한 은총과 영광도 갑절로 늘린다. 나로 하여금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하게 했던 내 인성의 감미로운 황홀과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9 그러니 너도 내가 네 안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게 해 다오. 네가 나를 자유롭게 해 주면 내 생명을 계속 살아가겠다.”

 

10 또 다른 날 다시 내가 우는소리로 “당신께서 저를 떠나셨으니 어찌 된 일입니까?” 하자, 예수님께서 엄숙하고도 위압적인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잠자코 있어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나는 너를 떠나지 않았다. 네 영혼 깊은 곳에 있다. 이래서 네가 나를 보지 못하는 거다.

 

11 네가 나를 보게 되는 것은 그때 내가 네 영혼의 표면에 올라와 있기 때문이다. 정신이 흐트러진 상태로 있지 마라. 나는 네가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기 바란다. 그래야 만인의 선익을 위해서 내가 너를 보존할 수 있게 된다.”

 

 

1324, 19211016 : 잉태되시자 모든 피조물을 당신 안에 다시 태어나게 하신 예수님

 

1 평소와 다름없는 상태로 있는데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인성으로부터 모든 피조물이 나오는 모습을 보여 주셨다. 그리고 더할 수 없이 다정하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크나큰 기적인 성()육신의 광경을 바라보아라. 잉태와 더불어 나의 인성이 형성되자 나는 모든 피조물을 내 안에 다시 태어나게 하였다.

 

3 피조물이 내 인성 안에 다시 태어나고 있었기에 나는 그들의 행위 하나하나를 뚜렷이 느낄 수 있었고, 내 머리 속에는 그들의 모든 생각들이, 착한 것이건 악한 것이건, 고스란히 다 들어 있었다.

 

4 착한 생각들에 대해서 나는 이를 더욱 착하게 굳히며 내 은총으로 에워싸고 내 빛으로 감싸 주었다. 내 정신의 거룩함으로부터 다시 태어난 그들을 내 지혜에 어울리는 훌륭한 부분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5 악한 생각들에 대해서는 보상하고 속죄하며 내 생각들의 수를 무한히 불어나게 하였다. 이는 피조물의 각 생각이 아버지께 마땅히 드려야 할 영광을 대신 드리기 위함이었다. 또 나의 눈길과 말과 손발과 마음 안에도 각 사람의 눈길과 말과 손발과 마음을 담고 있었다.

 

6 그렇게 모든 것이 내 안에 다시 태어났기에 내 인성의 거룩함으로 굳건하게 되었다. 나는 모든 것을 보상하였고, 하나하나의 죄에 대해서는 각각으로 특별한 고통을 치렀다. 이와 같이 그들 모두를 내 안에 다시 태어나게 한 다음, 지상 생활 전 과정에 걸쳐 내 안에 품고 다녔다.

 

7 그러면 내가 언제 그들을 낳았겠느냐? 그것은 십자가 위에서, 내 쓰디쓴 고통의 그 침상에서, 온몸이 뒤틀리는 참혹한 경련 가운데 내 삶의 마지막 숨을 거둘 때였다.

 

8 나의 죽음으로 그들은 새로운 삶에 태어났고, 모두가 내 인성의 모든 업적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이는 내가 새로운 탄생을 준 것에 그치지 않고 각 사람에게 내 업적도 전부 내주어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9 너는 이제 사람이 지닌 거룩함이 어떤 것인지 알겠느냐? 그것은 나와 닮지 않은 부당한 자녀들을 낳을 줄 모르는 내 인성의 거룩함이다. 내가 사람을 너무나 끔찍이 사랑하는 것은 그렇게 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10 하지만 사람은 늘 배은망덕해서, 그리도 엄청난 사랑과 고통으로 자기를 낳아 준 아버지를 알아보지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

 

11 그 후 예수님은 온통 불길에 휩싸이신 모습을 보여 주셨는데, 그 불길에 타고 또 타서 마침내 보이지 않으셨다. 내게 보이는 것이라고는 다만 불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시는 그분이 보였지만, 또다시 불에 태워지시는 중이었다. 그때 이 말씀이 들렸다.

 

12 딸아, 나는 타고 있다. 사랑이 나를 태운다. 사랑이, 그 불길이 얼마나 맹렬히 태우는지 내가 피조물 하나하나에 대한 사랑으로 죽어 가고 있다. 나는 그 당시에도 다만 고통 때문에 죽었던 것이 아니다. 사랑으로 인한 죽음이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상쾌함을 얻도록 자신의 사랑을 내게 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구나!

 

 

23) 23시간 : (오후 3-4) 돌아가신 후 창에 찔리시고 십자가에서 내려지신 예수님

 

936, 191074 : “‘동산의 고뇌가 죽어 가는 이들을 위한 특별한 도움이었다면 십자가의 고뇌는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을 위한 도움이었다.

 

1 주님의 부재와 이로 인한 괴로움이 가득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그래도 주님의 고뇌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노라니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나는 특히 죽어 가는 모든 사람들의 선종을 도와주려고 동산의 고뇌를 겪고자 하였다. 나의 고뇌가 그리스도인들의 고뇌와 얼마나 깊이 결부되어 있는지 잘 보아라. 그 노고와 슬픔과 번뇌와 피땀을 -. 나는 개개인 모두의 죽음을 느꼈다. 특히 각 사람을 위하여 실제로 죽어 가고 있는 것 같았으니,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노고와 슬픔과 번뇌와 피땀을 내 안으로 느꼈고, 나 자신의 것으로 모든 이에게 도움과 위로와 희망을 주었다. 그들의 죽음을 내 안으로 겪음으로써 그들 모두가 단 하나의 숨 안에서 곧 나의 숨으로 내 안에서 죽는 은총을 받고 나의 신성에 의해 즉각 지복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었다.

 

3 동산의 고뇌가 죽어 가는 이들을 위한 특별한 도움이었다면, 십자가의 고뇌는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을 위한 도움이었다. 둘 다 고뇌이지만 서로 차이가 있는 것이다. , 동산의 고뇌는 슬픔과 두려움과 근심과 공포가 가득한 것이었지만 십자가의 고뇌는 평화와 차분한 고요가 가득한 고뇌였다.

 

4 그런데 내가 목마르다! 하고 외친 것은 모든 사람이 내 마지막 숨 안에서 그들의 마지막 숨을 거두게 하려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 마지막 숨을 벗어나려고 하는 것을 보면서 비탄에 잠겨 외쳤던 것인데, 목마르다!는 지금도 여전히 각 사람 모두에게, 그 마음의 문에 달린 초인종처럼 이렇게 외치고 있다.

 

5 목마르다, 오 영혼아, 나는 너를 갈망한다! 부디 내 밖으로 나가지 말고 내 안으로 들어오너라. 그리하여 내 안에서 너의 마지막 숨을 거두어라!

 

6 그러니 내 수난 중 여섯 시간을 사람들에게 주어 선종하도록 하게 하였으니, 동산의 세 시간은 임종 중에 있는 이들을 위하여, 십자가 위의 세 시간은 바로 죽음 직전의 마지막 한숨을 위한 것이었다. 그 뒤에는 미소를 지으며 죽음을 바라보지 못할 사람이 없지 않겠느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 사랑하기 때문에 바로 나의 십자가에 자기 자신도 희생으로 바치려고 하는 사람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7 너는 죽음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얼마나 사태를 바꾸어 놓는 것인지 알겠느냐? 지상 생활 동안 나는 멸시를 받았으며, 내가 행한 기적들 자체도 내 죽음만한 효과를 내지 못했다. 십자가 위에까지 욕설이 올라오고 있었지만, 내가 마지막 숨을 거두자마자 죽음이 사태를 일전(一轉)시키는 역량을 발휘했던 것이다.

 

8 모든 이가 가슴을 치며 내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고, 바로 내 제자들도 용기를 내었으니, 특히 평소에 남의 눈을 피해 숨어 지내던 이들마저 대담해져서 내 시신을 내어 달라고 청하여 훌륭히 안장하기에 이르렀다. 하늘과 땅이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목청껏 외쳤던 것이다.

 

9 죽음은 이처럼 위대한 것, 숭고한 그 무엇이다.

 

10 그리고 그러한 일은 내 자녀들에게도 일어난다. 그들은 생전에 멸시와 억압을 받는다. 그들의 저 덕행들도, 사실은 빛과도 같이 주변인들을 환히 비추어 줄 수 있는 것이지만, 반쯤은 가려져 있다. 고통을 감수하는 그들의 용맹과 극기 및 영혼들(의 구원)에 대한 열정이 그들 주변의 사람들에게 빛과 의혹을 동시에 던지는 것이다. 게다가 나도 그러한 가림을 허용한다. 그것은 내 소중한 그 자녀들의 덕행을 더욱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들이 죽자마자 나는 즉시 그 가리개를 거두어 버린다.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11 그러면 의혹은 확신이 되고 빛은 뚜렷이 환해지기에, 이 빛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용맹을 인정하게 하며 아주 사소한 일까지 모든 것을 존중하게 한다. 그러므로 살아생전에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죽음에 의하여 보완되는 것이다.

 

12 이것이 여기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니 저기 천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진실로 놀라운 것이어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망해 마지않을 일이다.

 

 

1279, 1919127 : 예수 성심의 치명적인 세 가지 상처.

 

1 일상적인 상태로 머물러 있노라니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오시어 상처투성이인 당신의 흠숭하올 심장을 보여 주셨는데 거기에서 피가 강물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그 극심한 고통 속에서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내 마음이 받아 지닌 수많은 상처들 가운데서 다른 모든 상처를 합한 것보다 더 혹심하고 치명적인 상처가 세 가지 있다.

 

3 (우선) 나를 사랑하는 영혼들의 고통이다. 온전히 내 사람인 한 영혼이 나 때문에 괴로워하고 심한 고통에 짓눌리면서 나를 위해서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도 불사할 각오로 있는 것을 보면, 나는 그의 고통을 내 고통처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절감한다. 아! 사랑은 더할 수 없이 깊은 상처를 낼 수 있어서 다른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할 정도이다.

 

4 이 첫째 상처 속에 맨 먼저 들어온 이는 내 사랑하올 엄마이시다. 나의 고통 때문에 꿰뚫린 그분의 마음이 내 마음을 어찌나 가득 채우며 넘쳐흐르는지 그 모든 꿰뚫림이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5 사랑하올 엄마가 나의 죽음으로 인해 죽음 아닌 죽음을 겪고 계시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분의 순교자적 잔혹한 고통과 그분의 마음이 느끼는 내 죽음의 고통을 느꼈으니, 내 마음이 그분의 마음과 함께 죽어가고 있었다. 나의 모든 고통이 내 엄마의 고통과 결합되면서 모든 것을 능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6 그러므로 내 천상 엄마가 고통에 있어서나 사랑에 있어서나 내 마음의 첫 자리를 차지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에 대한 사랑으로 겪으신 각각의 고통이 저마다 은총과 사랑의 바다를 열어, 그분의 꿰뚫린 마음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기 때문이다.

 

7 이와 같이 나 때문에, 그것도 오직 사랑 때문에 고통을 겪는 모든 영혼들이 나의 이 상처 안으로 들어온다. 너 자신도 이 안으로 들어온다. 설령 모든 이가 나를 모욕하고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지라도 나는 네 안에서 그 모두를 대신해서 보상할 수 있는 너의 사랑을 보게 되는 것이다.

 

8 따라서 피조물이 나를 몰아내어 내가 그들로부터 달아나지 않을 수 없어질 때면 나는 마치 내가 숨을 장소를 찾듯이 부랴부랴 네 안으로 와서 피신한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이 아니라 나 자신의 사랑을, 오로지 나만을 위하여 고통 받는 사랑을 보면서 말한다.

 

9 ‘나는 하늘과 땅을 창조한 것과 그토록 많은 고난을 받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를 사랑하고 나 때문에 고통 받는 한 영혼이 나의 모든 낙이요 만족이며 행복이고 내가 행한 모든 것에 대한 보답이니까.’ 그리하여 다른 모든 일은 제쳐 둔 것처럼 그 영혼과 함께 놀며 즐거워한다.

 

10 한데 내 마음의 이 상처는 모든 것을 능가할 만큼 극히 고통스러운 것인 한편, 동시에 두 가지 파급 효과를 내포하기도 해서, 극심한 고통과 지고한 기쁨을 내게 준다. 즉,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형언할 수 없는 감미로움, 고통스러운 죽음과 영광스러운 삶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것이다.

11 이러한 것이 바로, 피조물의 정신으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내 사랑의 극단성이다. 사실, 못 박힌 듯 꿰뚫린 내 엄마의 고통 속에서 내 마음은 수없이 많은 만족감을 얻기도 했던 것이 아니냐?

 

12 내 마음에 치명적인 둘째 상처는 배은망덕이다. 피조물이 배은망덕으로 내 마음을 잠근다. 더군다나 이중 잠금장치의 자물쇠를 채운다. 내 마음은 은총과 사랑을 쏟아 주고 싶어 부풀어 오르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들이 이를 잠그고 배은망덕의 인장으로 밀봉해 두기 때문이다.

 

13 나는 실신 상태가 된다. 계속되는 배은망덕이 이 상처를 점점 더 악화시켜 내게 치명적인 고통을 주기 때문에, 이것이 치유되리라는 희망이 없는데도 필사적으로 몸부림친다.

 

14 셋째 상처는 완고함이다. 이 또한 내 마음에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인지! 완고함은 내가 피조물을 위해서 행한 모든 선의 파괴이다. 그것은 피조물이 더 이상은 나를 모른다는, 더 이상은 내게 속해 있지 않다는 선언에 서명하는 것인즉, 그들 스스로 돌진해 들어가는 지옥의 열쇠이다.

 

15 이로 인해 내 마음은 쥐어뜯김을 느낀다. 갈가리 찢어진다. 이 찢어진 조각들 가운데 하나가 내게서 떨어져 나감을 느낀다. 완고함은 그러니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이냐!

 

16 딸아, 너는 내 마음 안으로 들어와서 나의 이 상처들에 참여하여라. 갈가리 미어진 내 마음을 측은히 여겨 다오. 나랑 함께 괴로워하며 기도하자꾸나.”

 

17 나는 그분의 마음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괴로워하며 기도하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럽고도 멋진 일이던지!

 

 

147, 1922226 : 구원 사업으로 인간을 아름답게 꾸미신 예수님

 

1 복되신 예수님께서 구원 사업을 통해 우리에게 베푸신 크디큰 선에 대해 생각하고 있노라니, 그분께서 매우 자애로우신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나는 사람을 아름답고 고결하게, 영원한 신적 근원을 가진 존재로, 행복으로 충만하게, 그리하여 내게 어울리게 창조하였다. 그러나 죄가 인간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망치고 말았다.

3 죄가 사람의 고결한 품위를 무너뜨리고, 흉한 모습으로 바꾸며, 가장 불행한 피조물이 되게 하고, 자랄 수 없는 존재로 만들었다. 죄는 사람의 성장을 중단시키며 상처투성이로 만들어, 보기만 해도 역겨움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4 내 구원 사업은 그러므로 사람을 죄의 종살이에서 속량하였다. 내 인성이, 갓 태어난 아기를 데리고 있는 자상한 어머니처럼 행동한 것이다. 어머니는 아기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음식이 달리 없기 때문에 젖가슴을 열고 아기가 거기에 달라붙게 한다. 젖으로 변한 그 자신의 피로 아기에게 생명을 줄 음식을 대는 것이다.

 

5 내 인성은 채찍질에 의해 그런 어머니 이상으로 자신 안에 수많은 구멍이 열리게 했다. 이것이 거의 같은 수의 가슴처럼 피를 강물같이 쏟아내었으니, 내 자녀들이 여기에 달라붙어 생명을 주는 음식을 빨아먹으며 성장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6 그리고 내 상처들로 그들의 보기 흉한 모습을 덮어 전보다 더 아름답게 하였다. 창조 사업으로 그들을 더없이 맑고 고결한 하늘처럼 지어내었다면, 구원 사업을 통해서는 더없이 찬란한 별들을 흩뿌려 그들의 추함을 덮고 전보다 더 아름답게 꾸며 주었으니 이 별들이 다름 아닌 내 상처들이었다.

 

7 그들의 상처와 흉한 부위에 내 고통의 다이아몬드와 진주와 여러 보석들을 붙였으니, 죄악을 가리고 원래의 상태를 뛰어넘을 정도로 화려하게 입혀 주기 위함이었다. 이런 이유로 교회가 복된 탓이여!(긴 부활 찬송 중 한 구절 - 역주) 하고 외친다. 죄로써 구원자를 얻게 되었으니 말이다.

 

8 내 인성은 그 피로 자녀들을 양육할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을 입혀 주고 그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꾸며 주기도 한다. 그래도 내 가슴은 자녀들을 먹이려고 언제나 한껏 팽팽하게 부어 있다.

 

9 그러니 여기에 달라붙어 생명을 받으며 자라나고 흉한 데를 덮어 가리고자 하지 않는 이들은 얼마나 엄중하게 단죄를 받겠느냐?

 

 

246, 1928412 : 2015. 6. 25 번역이 안됨

 

 

 

24) 24시간 : (오후 4-5) 무덤에 묻히시다.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의 비탄

 

1179, 1914100 : 「수난의 시간들」 기도의 가치와 효과 및 상급.

 

1 ‘수난의 시간들’을 쓰면서 혼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 복된 ‘수난의 시간들’을 종이에 옮겨 적는다는 것이 내게는 기막힌 희생이다. 특히, 오직 예수님과 나 사이에서만 일어난 어떤 내적 행위들은 글로 쓰기가 여간 어렵지 않으니! 이 희생에 대해서 그분께서는 내게 어떤 상급을 주실까?”

 

2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감미롭고 다정한 음성을 들려주시면서 딸아, 수난의 시간들을 쓴 상급으로, 네가 쓴 낱말 하나하나에 대해서 한 번의 입맞춤을, 한 영혼을 네게 주마. 하고 말씀하셨다.

 

3 나는 그래서, 제 사랑이시여, 그건 제게 주실 상급이겠지요? 하지만 이 기도를 바치는 다른 이들에게는 무엇을 주시렵니까? 하고 여쭈었다.

 

4 예수님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수난의 시간들의 효과는 사람들이 나와 어느 정도로 긴밀히 일치하여 바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5 그러므로, 그들이 나와 함께, 나 자신의 뜻으로 이 기도를 바친다면, 그들에게도 역시 발음하는 낱말 하나하나에 대해서 한 영혼을 주겠다.

 

6 또한, 나의 뜻과 하나 되어 이 기도를 바침으로써 그들은 나의 의지 안에 숨어들게 된다. 따라서 활동은 나의 의지가 하게 되므로 단 하나의 낱말로도 내가 원하는 모든 선을 낳을 수 있다. 그것도 네가 이 기도를 바칠 때마다 그렇게 할 작정이다.

 

7 또 한 번은 이 수난의 시간들을 쓰기 위하여 그토록 많은 희생을 치른 뒤에도 정작 이를 실행하는 사람은 너무나 적기 때문에 내가 예수님께 한탄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8 딸아, 애통해하지 마라. 이를 실천하는 사람이 딱 한 사람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너는 기뻐해야 한다. 나는 다만 한 영혼만이 구원될 수 있었다고 해도 내 수난의 전 과정을 겪지 않았겠느냐?

 

9 너도 마찬가지다. 이용하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해서 네가 이 선행에 게을러선 안 된다. 손해를 입게 될 쪽은 다만 이를 활용하지 않는 사람들뿐이다.

 

10 그리고 나의 수난은 내 인성으로 하여금 모든 사람이 구원될 공로를 얻게 하였다.

 

11 모든 사람이 다 구원되는 것은 아닌데도 그러한 공로를 얻은 것은, 나의 뜻이 모든 이를 구원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것은 내가 원한 것에 따라 얻은 공로이지 사람들이 거기에서 끌어낼 이득에 따라 얻은 것이 아니다.

 

12 너도 이와 꼭 마찬가지다. 너의 뜻이 어느 정도로 나의 뜻과 하나 되어 모든 이에게 선을 베풀고자 했는가에 따라 상급을 받게 될 터이니 말이다. 손해를 입게 될 쪽은 이를 실행할 수 있으면서도 하지 않는 사람들뿐이다.

 

13 시간들은 모든 기도 중에서 가장 고귀한 기도이다. 내가 지상생활 동안 행했던 일과 지극히 거룩한 성사 안에서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일을 되풀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4 그러니 이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하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거기서 나 자신의 음성과 기도를 듣게 된다. 기도를 바치는 사람의 영혼 안에서 모든 이의 선익을 갈망하며 모든 이를 위하여 보속하고 있는 나의 뜻을 보게 되고, 그리하여 그 영혼이 행하고 있는 바를 나도 그 안에서 할 수 있기 위하여 그에게로 거처를 옮기는 나 자신을 느낀다.

 

15 , 도시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이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바친다면 내 마음에 참으로 큰 기쁨이 일 것이다! 도시마다 나 자신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 테니 말이다!

 

16 그러면 이 시대에 몹시 분노하고 있는 나의 정의가 부분적으로나마 그 노여움을 풀게 될 것이다.

 

17 여기에서 한 가지 덧붙여 보면, 어느 날 나는 천상 엄마께서 예수님을 무덤에 안장하시는 시간 (24시간) 기도를 바치면서 극심한 비탄에 잠기신 어머니를 동정하며 끝까지 곁에 남아 있었다.

 

18 그러나 이 시간을 묵상할 때마다 늘 그렇게 하지는 않았고 간혹 그렇게 했을 뿐이다. 그런데, 앞으로도 늘 그렇게 해야 할지 어떨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노라니, 복되신 예수님께서 온통 사랑에 젖은, 또 내게 간절히 청하시는 듯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19 딸아, 나는 네가 그것을 빠뜨리지 않기 바란다. 내 엄마를 기억하면서 나에 대한 사랑으로 언제나 그렇게 하여라.

 

20 네가 그렇게 할 때마다 내 엄마는 몸소 세상에 계시면서 당신 삶을 다시 살고 계시는 것처럼 느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어머니께서 지상생활 동안 내게 주신 영광과 사랑을 받으시게 된다.

 

21 그리고 나는 내 엄마가 다시 세상에 계시면서 어머니다우신 자상함과 사랑과 모든 영광을 내게 주시는 것처럼 느낀다. 따라서 나는 너를 어머니로 여기게 될 것이다.

 

22 그리고 그분께서는 나를 껴안으시면서 아주 부드럽게 내 엄마, 엄마. 하셨고, 또한 자애로우신 엄마께서 이 시간에 행하시고 겪으셨던 모든 것을 내게 속삭여 주셨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따라 함께 하였다.

 

23 그때부터 예수님 은총의 도움으로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그렇게 하였다.

 

 

2116, 1927416 : 당신의 성사적 생명을 엄마의 마음에 맡기신 예수님. 하느님 뜻에서 생겨난 생명이 할 수 있는 위대한 선. 성모님께서 고통 중에서도 비상한 힘을 얻으신 까닭.

 

1 (『수난의 시간들』중) 예수님께서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를 세우신 시간에 대해 묵상하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기동하시며 내게 이르셨다. 딸아, 내가 하나의 행위를 할 때에는 나의 행위를 그 안에 맡길 사람이 적어도 한 사람은 있는가, 그리하여 그가 내가 행하는 선을 안전하게 수호하며 보존할 수 있는가 하는 것부터 먼저 살펴본다.

 

2 그런데, 지극히 거룩한 성사를 제정하면서 바로 그런 한 사람을 찾았을 때, 여왕이신 내 엄마가 나의 이 행위와 이 위대한 선물을 받아 맡으시려고 당신 자신을 봉헌하시면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3 아들아, 나는 잉태의 순간부터 너를 안전하게 수호하려고 나의 태와 내 온 존재를 너에게 바쳤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제는 이 위대한 선을 받아 맡기 위하여 내 모성적 마음을 너에게 바치고, 너의 성사적 생명 주위에 내 애정, 내 심장 박동, 내 사랑, 내 생각을 - 나 자신 전체를 늘어세운다. 이들이 행렬을 이루어 너를 에워싸고 지키며 사랑하고 보호하게 하려는 것이다.

 

4 또 네가 주는 이 위대한 선물에 대하여 내가 몸소 책임지고 너에게 보상하겠다. 네 엄마를 신뢰하여라. 그러면 이 엄마가 너의 성사적 생명을 지키며 돌보겠다. 그리고 네가 나를 만물의 여왕으로 봉했으니, 나는 존경과 흠숭의 표시로 태양의 모든 빛을 네 주위에 늘어서게 할 권리가 있다. 별들과 하늘과 바다 및 하늘의 모든 주민, 곧 만물을 네 주위에 두어, 사랑과 영광을 네게 돌려주게 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5 그러니 나는 내 성사적 생명의 이 큰 선물을 신탁할 자리를 확보하면서 내게 충실성의 모든 증거를 주신 내 엄마에 대한 신뢰로 지극히 거룩한 성사를 제정하였다. 그분만이 홀로 합당한 피조물로서 내 행위를 유지하고 지키며 보호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6 그러니, 보아라, 사람들이 나를 영할 때에, 나는 나와 떨어질 수 없는 내 엄마의 행위들과 함께 그들 안으로 들어가고, 바로 이 사실로 말미암아 내가 내 성사적 생명을 영속화시킬 수 있다. 나는 따라서 내게 합당한 어떤 큰 일을 하고자 하면, 그때마다 먼저 한 피조물을 선택한다. 그럴 필요가 있다. 이는 첫째, 내 선물을 넣어 둘 자리를 얻기 위해서이고, 둘째, 그것에 대한 보답을 받기 위해서다.

 

7 그와 같은 일은 자연계의 질서 속에도 일어난다. 씨를 뿌리고자 하는 농부는 그것을 길 가운데에 뿌리지 않는다. 작은 밭을 찾아가서 먼저 땅을 일구고 고랑을 만든 다음 거기에 씨를 뿌린다. 그리고 씨를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하여 흙으로 덮은 뒤 간절히 수확을 기다린다. 그 자신의 노고와 땅에 맡긴 씨앗에 대해 보상을 받기 위함이다.

 

8 또 어떤 아름다운 조형물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원료를 준비하고 완성품을 넣어 둘 자리를 마련한다. 그런 다음 작업을 시작한다. 나도 너에게 그렇게 하였다. 너를 선택하여 준비시킨 다음 위대한 선물을 너에게 맡겼으니, 이 선물은 곧 내 뜻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내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내 성사적 생명의 운명을 맡겼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너를 믿고 내 뜻의 나라의 운명을 맡기고자 했던 것이다.

 

9 그 후에도 나는 내 사랑하올 선이신 분께서 당신 생애를 통하여 행하시고 겪으셨던 모든 것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을 이으셨다. 딸아, 내 지상 생활은 매우 짧은 기간 동안 계속되었고, 그 대부분을 나는 숨은 생활로 보냈다. 그러나 그처럼 짧은 기간이었다고 해도, 아주 많은 선을 행하지 않았느냐? 그것은 하느님 뜻이 내 인성에 생명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10 그러니 온 교회가 내 생명에서 양식을 취하고, 내 가르침의 샘에서 한껏 물을 마신다. 내 말은 각 낱말마다 각 그리스도인의 입에 놓인 샘이다. 내 모범은 그 하나하나가, 빛과 열을 주며 땅을 비옥하게 하는 태양보다 더 밝고, 더없이 위대한 성덕들을 성숙시킨다.

 

11 누군가가 모든 성인들과 모든 선, 그들의 모든 고통과 영웅적 행위를 매우 짧은 내 생애 앞에 놓고 비교하기를 원한다고 하자. 그 모든 것이 큰 태양 앞에 놓인 작디작은 불꽃에 불과할 것이다.

 

12 그리고 거룩한 뜻이 내 안에 군림해 있었으므로, 내 생애와 수난의 전 과정에 걸쳐 원수들이 나에게 끼친 모든 고통과 굴욕과 당혹과 반대와 고발이 - 이 모든 것이 그들 자신의 굴욕과 더욱 큰 당혹을 위해 쓰이게 되었다. 실상 하느님 뜻이 내 안에 있었으므로, 태양에게 일어나는 것과 같은 일이 내게 일어났다.

 

13 , 구름이 대기의 아래층을 통해 퍼져나가면서 땅 위를 어둡게 하고 강렬한 태양 빛을 한 순간 덮어 가림으로써 태양을 모욕하려고 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럴 때에도 태양은, 대기 중에 떠도는 구름이 영구적인 생명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구름을 비웃는다. 과연 구름의 생명은 쏜살같이 지나가는 덧없는 것이어서 약간의 바람결에도 흩어지고 만다. 그 반면에 태양은 온 땅을 지배하며 채우는 충만한 빛으로 언제나 승리를 구가하는 것이다.

 

14 같은 일이 내게도 일어났으니, 내 원수들이 내게 행한 모든 것이, 바로 내 죽음까지도 내 인성을 덮은 구름 같았다. 하지만 그 구름이 내 신성의 태양에 접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내 거룩한 뜻의 권능이라는 바람이 일자마자 그것은 흩어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나는 원수들을 종전보다 더 큰 굴욕 속에 있게 한 채, 승리와 영광에 싸여 부활하였다.

 

15 딸아, 내 뜻이 완전히 다스리는 영혼 안에서는 생명의 몇 분이 몇 세기와 맞먹고, 그 몇 세기도 모든 선이 충만한 세기들이다. 이와 반대로 내 뜻이 다스리지 않는 곳에서는 생명의 몇 세기가 그 속에 담긴 좋은 것의 몇 분에 불과할 뿐이다.

 

16 그러니 만일 내 뜻의 다스림을 받는 영혼이 굴욕과 반대와 고통을 겪는다면, 그 굴욕과 반대와 고통은 구름과도 같다. 내 영원한 의지의 전달자에게 감히 손을 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거룩한 피앗의 바람이 수치스럽게도 그들 위에 짐을 부리듯 부리는 구름 말이다.

 

17 나중에 나는, 미어지는 가슴으로 예수님의 시신을 무덤에 남겨 두고 그분과 작별하신 순간의 엄마의 고통에 대해 생각하였다. 그러면서 혼자 중얼거리기를, 어머니에게 예수님을 떠나실 수 있을 만큼 큰 힘이 어떻게 있을 수 있었을까? 과연 예수님은 돌아가셨지만, 그래도 아무튼 예수님의 시신이었는데, 어머니의 사랑이, 이 예수님에게서 한 걸음이라도 발을 떼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불길로) 어머니를 삼키지 않았을까? 어머니는 그러나 예수님을 떠나셨다. 그러니 얼마나 큰 용맹이며 힘이겠는가! 하였다.

 

18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기척을 내시며 이르셨다. 딸아, 내 엄마에게 어떻게 나를 떠나실 힘이 있었는지 알고 싶으냐? 그분 힘의 모든 비밀은 그분을 다스린 내 뜻 안에 있었다. 그분은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으로 사셨으므로 측량할 길 없는 힘을 지니셨다.

 

19 더구나 너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고통에) 꿰뚫리신 내 엄마가 무덤에 있는 나를 떠나신 순간, 내 뜻이 그분을 두 개의 끝없는 바다에 잠기게 하였으니, 하나는 고통의 바다였고, 하나는 더 넓게 펼쳐진 기쁨과 지복의 바다였다. 그러기에 고통의 바다가 온갖 순교적 고통을 끼치는 한편, 기쁨의 바다는 그분에게 온갖 만족을 드렸던 것이다.

 

20 그분의 아름다운 영혼은 저승으로 나를 따라오시어, 모든 성조들과 예언자들과 그분의 부모님과 우리의 소중한 성 요셉이 나를 위해 마련한 잔치 자리에 참여하셨다. 저승은 나의 현존으로 말미암아 낙원이 되었으니, 나는 고통 중에 있는 나와 불가분적 관계에 있었던 분을 사람들의 이 첫 축제 자리에 참여시키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었다.

 

21 그리하여 그분은 너무나 기쁘신 나머지 내 시신을 떠날 힘을 얻으셨으므로, 물러가시어 구원 사업의 완성인 내 부활의 성취를 기다리셨다. 기쁨이 고통 중에 계신 그분을 지탱하였고, 고통이 기쁨 중에 계신 그분을 지탱했던 것이다.

 

22 내 뜻을 소유한 사람에게는 힘도 능력도 기쁨도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모든 것을 마음껏 누릴 수 있을 만큼 가지고 있다. 너는 네가 나의 부재로 불길에 삼켜지는 느낌이 들 때, 이를 내적으로 체험하지 않느냐? 거룩한 피앗의 빛이 이 피앗의 바다를 만들어, 너를 행복하게 하며 생기를 주니 말이다.

 

 

1626, 19231124 : 하느님 뜻의 기쁘고 슬픈 역사. 성모님께서 하느님 뜻의 어머니요 여왕이시며 피앗 볼룬타스 투아 사업의 탁월한 모범이신 까닭.

 

1「수난의 시간들」중 고통의 엄마께서 숨을 거두신 아드님을 받아 안으시고 무덤에 안장하시는 시간을 묵상하면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엄마, 예수님과 함께 모든 영혼들을 엄마의 팔에 안겨 드립니다. 그들 모두를 엄마의 자녀로 여기시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엄마의 마음에 새기시어, 예수님의 상처들 속에 넣어 주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2 그들은 엄마의 한없는 고통의 자녀들이니 그렇게 여기시고 사랑해 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모든 세대를 하느님의 지고하신 뜻 안에 넣겠습니다. 아무도 빠지지 않게 하여 그들 모두의 이름으로 엄마한테 위안과 따뜻한 동정과 하느님의 위로를 드리려는 것입니다.

 

3 내가 그러고 있는 동안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걸음을 옮기시면서 딸아, 내 고통의 엄마께서 이 모든 자녀들을 어떤 양식으로 기르셨는지 네가 안다면... 하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 저의 예수님? 나의 물음에 그분은 다시 말씀을 이으셨다.

 

4 너는 내가 나의 뜻 사명을 위해 뽑은 작은 사람이고, 피앗으로 창조되어 그 안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내 영원한 뜻의 역사를 알려 주고 싶다. 이 영원한 뜻의 기쁨과 슬픔, 그 효과와 무한한 가치, 이 뜻이 행했던 것과 받았던 것, 그리고 이 뜻의 수호를 마음속 깊이 새기고 있었던 사람에 대해서 말이다.

 

5 작은 사람들은 내 말을 더 주의 깊게 듣는다. 그들의 정신이 다른 것들로 가득 차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비운 이들 같아서 누군가가 다른 어떤 음식을 주려고 들면 속이 메슥거리는 것을 느낀다. 작기 때문에 내 뜻의 젖만을 먹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6 내 뜻은 사랑이 깃든 어머니 이상으로 그 거룩한 가슴에 그들을 붙여 안고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게 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입을 벌린 채 내 가르침의 젖을 기다리고, 나는 마냥 즐거워한다. ! 내 뜻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때로는 미소를 짓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엉엉 울기도 하는 그들을 보는 것은 얼마나 유쾌한 일인지!

 

7 그런데, 내 뜻의 기원은 영원 속에 있다. 내 뜻 안에 슬픔이 들어온 적은 도무지 없었다. 성삼위 사이에서는 이 뜻이 지극히 높은 일치를 이루고 있었다. 완전히 하나였다. 이 뜻에서 나오는 각각의 행위는 내적인(ad intra) 것이건 외적인(ad extra) 것이건 다 우리에게 끝없는 기쁨과 새로운 만족과 무한한 행복을 주었다.

8 그리고 우리가 삼라만상의 기구를 조성하고자 했을 때에 이 뜻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영광과 조화와 영예를 주었는지 모른다! 피앗이 발해지지마자 이 피앗이 우리의 아름다움, 우리의 빛, 우리의 권능과 질서와 조화와 사랑과 거룩함 및 모든 것을 널리 퍼뜨렸다. 우리는 그러므로 우리의 피앗에 의해 피어난 우리 신성의 꽃송이들이 온 우주에 덮여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 자신의 덕행들에 의해 영광을 받았다.

 

9 우리의 뜻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사랑에 사로잡혀 사람을 창조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에 대해서는 네가 이미 알고 있으므로 다음으로 넘어가겠다.

 

10 ! 우리의 뜻에 처음으로 슬픔을 끼친 것은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를 그토록 사랑하며 행복하게 해 준 이를 비탄에 잠기게 하려고 들었다. 우리의 뜻은 그러므로, 아들이 어머니의 뜻을 저버린 탓에, 오직 그 이유로 불구자가 되고 소경이 되었기 때문에 슬피 우는 자애로운 어머니보다 더 슬피 울었다.

 

11 나의 뜻은 사람 안에서 첫 행위자가 되기를 원했었다. 오직 사랑과 기쁨과 행복과 풍요의 선물을 주기 위해서였다. 언제나 주기를 원하기 때문에 행동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의 뜻을 행하기를 원했고, 그래서 하느님의 뜻에서 떨어져 나갔다. 절대로 그러지 말았어야 했건마는! 결국 내 뜻은 물러가고, 사람은 온갖 악의 깊은 구렁 속으로 추락하였다.

 

12 그러자 이 두 뜻을 다시 결합하기 위하여, 자신 안에 하느님의 뜻을 지닐 사람이 필요하였다. 영원한 말씀인 내가 이 사람을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할 것이기에, 우리 성삼위는 내가 육화하여 사람이 되기로 함께 결정하였다. 세상으로 가서 인간을 구원하고 단절된 두 뜻을 다시 결합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어디로 내려갈 것인가? 누가 자기 창조주에게 자기의 살을 빌려 줄 것인가?

 

13 이런 이유로 우리는 한 피조물을 택하였고, 장차 올 구원자의 공로를 선취하여 이 사람에게서 원죄를 면해 주었다. 이 사람의 뜻은 우리의 뜻과 하나였다. 우리 뜻의 역사를 알아들은 천상적 피조물이었으니, 우리가 어린아이에게 하는 것처럼 그 자초지종을 낱낱이 설명해 주었던 것이다.

 

14 우리 뜻의 슬픔에 대해서, 곧 배은망덕한 인간이 우리의 뜻에서 자신의 뜻을 갈라놓음으로써 우리의 뜻을 신적 영역 안에만 머물러 있게 했고, 그렇게 우리 뜻의 계획을 방해하여 이 뜻으로 하여금 그 자신의 선익과 인간이 창조된 목적을 알려 줄 수 없게 가로막았다는 것에 대해서였다.

 

15 우리에게는 주는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또한 우리에게서 받는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그것은 가난해짐 없이 부요하게 하는 것이요, 본성으로 우리 자신인 것을 은총으로 피조물 안에 형성하는 것이며, 우리가 소유한 것을 주려고 우리 자신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주면서 우리의 사랑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가고, 우리의 뜻이 축제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주지 않을 작정이었다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모든 피조물을 만들려고 했겠느냐?

 

16 그러므로 우리의 소중한 모상들, 곧 우리의 자녀들에게 줄 수 없어지는 것이 우리 지고한 뜻에게는 애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우리의 뜻과 아무 관계없이 - 왜냐하면 인간 스스로 이 관계를 끊어버렸으니까 - 움직이고 말하며 걸어 다니는 것을 보면서, 또 그가 우리와 함께 있었다면 은총과 빛과 성덕과 지식 등이 강물처럼 그에게로 흘러갔을 터인데 그럴 수 없어진 것을 보면서, 우리의 뜻은 비탄에 잠겼던 것이다.

 

17 피조물의 각 행위가 우리에게는 하나하나 다 슬픔이었으니, 그 행위마다 신적인 가치가 비어 있고 아름다움도 거룩함도 없어서 우리의 행위들과는 완전히 딴판임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 이 천상적인 아기는 우리의 그 지극한 슬픔과 우리의 뜻을 떠난 인간의 엄청난 불행을 얼마나 깊이 이해했는지 모른다! 우리의 그 슬픔과 인간의 그 불행을 보고, , 얼마나 자주 뜨거운 눈물을 쏟곤 했던지!

 

18 그러므로 이 천상 아기는 두려움으로 떨면서 자기 자신의 뜻에는 단 하나의 행위로도 생명을 주기를 원치 않았다. 이 때문에 언제나 작은 사람으로 있을 수 있었다. 자기의 뜻이 자기 안에서 도무지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어떻게 클 수 있었겠느냐?

 

19 하지만 그가 행하지 않았던 것을 우리의 뜻이 행하였다. 우리의 뜻이 그를 온전히 아름답고 거룩하고 신적인 사람이 되게 길렀고, 얼마나 풍요하게 해 주었는지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큰 사람이 되었다. 이 사람이야말로 우리 뜻의 기적 - 은총과 아름다움과 거룩함의 기적이었다.

 

20 그럼에도 그는 너무나 작은 사람으로 남아 있어서 결코 우리의 품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우리를 수호하기로 가슴 깊이 다짐하였고, 지고한 뜻이 표현하는 모든 비탄에 대해 보상을 바쳤다. 그 자신이 우리의 뜻과 완전히 조화로운 관계 속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모든 행위들을 자기의 것으로 삼고 있기도 했으므로, 그들에게 배척당한 우리의 뜻 전체를 자기 안에 흡수하여 이 뜻에 보상을 바치며 이 뜻을 사랑했던 것이다.

21 또한 그는 우리의 뜻을 그 순결한 마음 안에 맡아 가진 듯 간직하고서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의 뜻을 양식으로 줄 준비도 하였다.

 

22 그러니 이 지극히 사랑하올 어머니께서 어떤 양식으로 당신 자녀들을 기르시기로 하셨는지 이제 알겠느냐? 하지만 이와 같이 그분 자신 안에 내 뜻의 이 양식을 넘치도록 맡아 간직하여 자상하고 사랑 깊은 어머니로서 모든 자녀들을 먹여 기를 준비를 갖추는 일은, 그분의 전 생애와 일찍이 알려진 적 없는 그분의 고통과 바로 그분 아들의 생명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일이었다.

 

23 그분은 그 이상일 수 없을 만큼 당신 자녀들을 사랑하셨다. 그러므로 그분이 지닌 수많은 칭호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칭호가 그분께 주어질 수 있었으니, 바로 하느님 뜻의 어머니요 여왕이라는 칭호였다.

 

24 그런데, 딸아, 내 엄마께서 구원 사업을 위하여 하셨던 일을 이제 네가 피앗 볼룬타스 투아 사업을 위하여 해야 한다. 그러니 너의 뜻이 네 안에 살아 있으면 안 된다. 그리고 각 사람을 위해 내 뜻의 모든 행위를 너 자신의 것으로 맡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의 이름으로 내 뜻에 보상을 바치면서, 내 뜻의 양식으로 모든 세대들을 기르는 데 필요한 양식을 전부 네 안에 형성해 두어야 하는 것이다.

 

25 내 뜻에 대한 각각의 말과 효과마다, 또 하나의 지식이 더해질 때마다, 그들은 이 음식에 더욱더 입맛이 당기는 것을 느끼며 게걸스레 먹게 될 것이다. 내 의지에 대하여 내가 하는 모든 말이 그들의 식욕을 돋우는 역할을 하리니, 결국 그들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다른 음식은 먹지 않게 될 것이다.

 

26 만약 어떤 음식이 맛깔스럽고 사람의 기운을 회복시키며 병을 낫게 하고 온갖 좋은 맛이 다 들어 있다고들 한다면, 더군다나 생기를 주며 사람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한다고들 한다면, 누구든지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고 이 음식을 먹고자 하지 않겠느냐? 내 뜻이 바로 그런 음식이 될 것이다.

 

27 그런데 사람들이 내 뜻을 사랑하고 갈망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지식이 필요하다. 그러니 너는 주의를 기울여 내 뜻이 맡기는 이 지식의 보고를 네 안에 받아들여라. 그러면 또 한 사람의 어머니로서 우리 자녀들을 위한 양식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일을 하면서 내 엄마를 본받아라. 너 역시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하겠지만, 내 뜻 앞에서는 어떤 희생도 별것 아니게 보일 것이다. 작은 사람으로서 그렇게 하며 결코 내 품에서 떠나지 마라. 그러면 내 뜻의 역사에 대해 내가 계속 이야기해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