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가 중요한 이유... 인간은 “하느님께 비는 걸인”이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리코에 사는 눈먼 거지 바르티매오에 관해 설명하면서 ‘기도’에 관한 수요 일반알현 교리 교육 여정을 새롭게 시작했다.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에게 자신의 믿음을 ‘고함치고’, 다시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그는 “우리를 억압하는 악”에 적응하지 않는 “인내의 사람”이자 구원받을 희망을 외치는 사람이다.
번역 김호열 신부
기도에 대한 교리 교육: 1. 기도의 신비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기도를 주제로 하는 교리 교육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합시다. 기도는 믿음의 숨결이며, 믿음의 가장 적절한 표현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외침과 같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인물인 바르티매오의 이야기를 생각해 봅시다(마르 10,46-52 참조). 이 이야기는 저에게 있어서 다른 모든 이야기보다 가장 귀여운 이야기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고백합니다. 그는 장님이었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던 예리코의 변두리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익명의 인물이 아니라, 얼굴과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였습니다. 어느 날 그는 예수님이 자신이 앉은 곳을 지나가시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실 예리코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던 곳이었습니다. 순례자들과 상인들이 지속적으로 지나다니는 교통의 중심지였습니다. (거기서) 바르티매오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역시 그렇게 했습니다. 나무에 올라 갔던 자캐오를 기억해 봅시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려고 했습니다. 자캐오 역시 그러했습니다.
이처럼 바르티매오는 고함치는 목소리처럼 복음서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는 눈이 멀었기에, 예수님이 가까이 있는지 멀리 있는지 알지 못했지만, 어느 순간 사람들이 예수님이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고, 예수님이 가까이 오셨다는 것을 느낍니다. (…) 하지만 그는 완전히 혼자였습니다.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르티매오가 무엇을 합니까? 그는 소리칩니다. 외치고 또 외칩니다. 그는 자기가 가진 유일한 무기를 사용합니다. 목소리를 사용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47절) 하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고함쳤습니다.
그가 반복해서 외치자 사람들은 귀찮아졌습니다. 예의 바른 행동으로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꾸짖으며 잠자코 있으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지 말고, 예의 바르게 구시오!” 하지만 바르티매오는 잠자코 있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큰 소리로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47절). 은총을 구하고, 하느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리는 사람들의 이런 고집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그는 외치고 두드립니다. “다윗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표현은 ‘메시아”를 뜻합니다. 메시아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이들에게서 멸시를 받던 바르티매오의 입에서 나온 신앙 고백입니다.
예수님이 그의 고함소리를 듣습니다. 바르티매오의 기도는 예수님의 마음과 하느님의 마음에 닿았습니다. 그를 위한 구원의 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불러오라고 하십니다. 그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에게 조용히 하라고 말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를 스승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합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물으십니다. 그에게 소원을 말하라고 말하십니다. 이는 아주 중요합니다. 곧, 외침이 청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청합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51절 참조).
예수님이 그에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52절)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힘없고, 멸시받는 바르티매오에게서 하느님의 자비와 힘을 끌어내는 믿음의 온전한 힘을 다시 인식하십니다. 신앙은 들어올린 두 손과 고함치는 목소리를 갖는 것입니다. 구원의 선물을 청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교리서는 “겸손은 기도의 초석”(『가톨릭교회 교리서』, 2559항)이라고 말합니다. 기도는 땅에서 나옵니다. 기도는 흙(humus)에서 나옵니다. 흙이라는 말에서 “겸손함(umile)”과 “겸손(umiltà)”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기도는 우리 불확실성의 상태와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끊임없는 갈증에서 나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560-2561항 참조).
우리는 바르티매오에게서 믿음이 외침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믿음이 아닌 것은 그 외침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바로 바르티매오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했던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그들은 믿음이 없었으나, 바르티매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외침을 질식시키는 것은 일종의 “묵비권 행사(omertà)”입니다. 신앙은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거슬러 저항하는 것이지만, 신앙이 아닌 것은 우리가 적응한 상황을 (다시) 경험하는 것에 그치고 맙니다. 신앙은 구원받기를 희망하지만, 신앙이 아닌 것은 우리를 억압하는 악에 적응하여 계속 그런 식으로 지속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바르티매오의 외침과 함께 수요 일반알현 교리 교육 여정을 시작합시다. 어쩌면 그의 모습에 이미 모든 게 적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바르티매오는 인내의 사람입니다. 그의 주변에는, 청원해도 소용이 없다고, 청원하는 것은 응답 없는 외침일 뿐이라고, 그냥 귀찮은 소음일 뿐이라고 설명하면서, 그러니 소리지르지 말라고 꾸짖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침묵하지 않았고 결국엔 바라는 것을 얻었습니다.
사람의 마음 안에는 그 어떤 반대 주장보다 더 강력하게 청원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목소리가 있습니다. 아무도 명령하지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나오는 목소리입니다. 특히 우리가 어둠 속에 있을 때, 이 세상에서 우리 여정의 의미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입니다.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는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 말들은 피조물 전체에 아로새겨져 있지는 않은지요? 모든 것이 자비의 신비를 통해 자신의 궁극적인 완성을 찾으려고 청원하고 간청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혼자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기도의 고함소리를 모든 이와 함께 나눕니다. 지평은 아직도 넓어질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모든 피조물이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로마 8,22)고 말합니다. 예술가들은 종종 이러한 피조물의 ‘침묵의 고함소리’를 표현합니다. 그 침묵의 고함소리는 모든 피조물 안에서 억압받은 것이지만 인간의 마음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무엇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느님께 비는 걸인이기” 때문입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559항 참조). 인간이 “하느님께 비는 걸인”이라는 표현은 아름답습니다. 고맙습니다.
5월06일 2020, 18:18
출처: 바티칸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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