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가리옷 사람 유다가 성전의 성벽에 나 있는 어떤 문 근처를 왔다갔다 하는 것이 보인다.
“그 사람이 꼭 오리라고 생각하십니까?” 하고 유다가 묻는다.
“꼭 온다. 그는 베다니아에서 새벽에 떠났고, 게쎄마니에서 내 첫번째 제자와 만났을 것이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그러다가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유다의 얼굴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신다. 예수께서는 유다의 앞에 서서 그를 살펴보신다. 그리고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고 물으신다.
“유다야, 왜 네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내게 말하지 않느냐?”
“제가 생각하는 것이라구요? 선생님, 저는 지금 아무 별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질문을 너무 많이 하는 편입니다. 선생님은 제가 말을 안한다고 불평은 못하실 것입니다.”
“네가 많은 질문을 하고, 이 도시와 시민들에 대하여 많은 것을 말해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네 진심을 토로하지 않는다. 이러저러한 가정의 재산이 어떻고 식구가 어떻고 하는 정보가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나는 여기에 시간이나 보내려고 온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 너는 내가 왜 왔는지 알고 있으니, 내가 우선 내 제자들의 스승이 되는 것에 관심을 쏟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제자들이 진실성과 신뢰를 가지기를 원한다. 유다야, 네 아버지가 너를 사랑하셨느냐?”
“무척 사랑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자랑거리였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리고 후에 예루살렘에서 가리옷으로 돌아오면 무엇이든지 다 말하라고 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에는 무슨 일에나 관심을 가지고 계셨는데, 잘 하는 일에는 기뻐하시고, 썩 잘 하는 일이 아닌 때에는 저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어쩌다 제가 잘못해서 -누구나 어쩌다 잘못하는 일이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일 아닙니까?-그러니까 잘못해서 비난을 받은 일이 있었으면, 제가 받은 책망이 충분히 근거가 있다는 것이나 또는 제 행동이 전적으로 잘못 되었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시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아주 부드럽게 해 주셔서… 마치 형님이라도 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끝내 가서는 으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내 유다가 올바른 사람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아들을 통해 축복받기를 원한다….’ 제 아버지는…”
아버지의 추억에 진정으로 감격한 제자를 줄곧 주의깊게 바라보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유다야, 그렇다. 내가 이제 말해 주는 것을 명심하여라. 어떤 행동도 네가 내 충실한 제자가 된다는 사실보다 네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지 못할 것이다. 네 아버지의 영은 그가 빛을 기다리는 그곳에서 -너를 그렇게 기르신 것을 보면 의인이었음이 틀림없으니까 말이다- 네가 내 제자 된 것을 보고 기뻐 어쩔 줄을 모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 위하여는 네가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내가 잃었던 아버지를, 형님과 같던 아버지를 다시 찾았다. 나는 내 예수님에게서 아버지를 도로 찾았다. 그러니까 내가 아직도 애통해 하는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했던 것처럼 예수님께 모든 것을 다 말씀드려서 지도를 받고 축복을 받거나 정다운 책망을 듣거나 하겠다.’ 영원하신 분과 네가, 특히 네가 이 예수로 하여금 ‘착하게 살아라, 그러면 축복하겠다’ 하고만 말할 수 있게 해주기 바란다.”
“아이고! 그러믄요! 예수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선생님이 저를 이토록 사랑하시면 저는 선생님이 원하시고 제 아버지가 원하셨던 것처럼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 어머니의 마음에서는 그 고통이 없어질 것입니다.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너는 이제 지도하는 사람이 없다. 너는 아직도 지도하는 사람이 꼭 있어야 하는데.’ 선생님을 지도자로 모셨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머니는!”
“나는 다른 어떤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보다도 더 너를 사랑하겠다. 너를 대단히 사랑할 것이고, 지금도 몹시 사랑하고 있다. 나를 실망시키지 말아라.”
“그렇게는 안하겠습니다. 선생님, 그렇게는 안하겠어요. 제 안에는 샘, 질투, 권세에 대한 강한 정열, 쾌락에 대한 사랑 따위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제 안에서는 모든 것 이 좋은 영감과 충돌했습니다. 아시겠어요? 조금전만 하더라도 선생님은 제게 마음에 고통을 주셨습니다. 아니 선생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 고약한 성질이 마음에 고통을 준 것입니다…. 저는 선생님의 첫번째 제자인 줄 알았었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은 다른 제자가 벌써 있었다고 말씀하셨거든요.”
“네가 직접 보았는데. 내가 과월절을 지내려고 갈릴래아 사람 여러 명과 같이 성전에 왔던 것이 기억나지 않느냐?”
“저는 그 사람들이 친구들인 줄 알았습니다…. 저는 이런 신분으로 선택되기는 제가 첫번째라고, 따라서 선생님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마음 속으로 꼴찌와 첫째를 구별하지 않는다. 만일 꼴찌가 거룩한데 첫째가 실수를 하게 되면, 그 때에는 하느님의 눈으로 보아 구별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똑같이 사랑할 것이다. 거룩한 사람은 매우 행복한 사랑으로 사랑하고, 죄인은 괴로워하는 사랑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런데 저기 요한이 시몬과 같이 온다. 요한은 내 첫번째 제자이고, 시몬은 내가 이틀 전에 네가 말한 그 사람이다. 시몬과 요한은 벌써 보았다. 시몬은 병자였었다.”
“아! 문둥병자요! 기억합니다. 벌써 선생님의 제자가 되었군요!”
“그 이튿날부터.”
“그런데 저는 왜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습니까?”
“유다야?!”
“그렇지요, 용서하십시오.”
요한은 예수를 보았고, 시몬에게 저기 계시다고 가리킨다. 그들을 걸음을 빨리 옮긴다. 요한의 인사는 스승과 서로 입맞춤하는 것이다. 시몬은 반대로 예수의 발 아래 엎디어 발에 입맞춤하면서 큰소리로 말한다. “내 구세주께 영광을 드립니다! 선생님의 종에게 강복하시어 제 행동이 하느님의 눈에 거룩한 것이 되게 해 주십시오. 저는 선생님을 제게 주신 것에 대해 하느님께 찬미를 드립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머리에 손을 얹으시고 말씀하신다. “그러마, 네가 한 일을 고맙게 생각해서 네게 강복한다. 시몬아 일어나거라. 요한과 시몬을 소개한다. 이 사람은 내 마지막 제자이다. 이 사람도 진리를 따르기를 원한다. 그러니까 너희 모두의 형제이다.”
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눈다. 두 유다인은 조심성있는 태도로, 요한은 감정을 나타내며,
“시몬아, 피곤하냐?” 하고 예수께서 물으신다.
“아닙니다. 건강과 더불어 전에는 알지 못했던 기운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네가 그 기운을 훌륭하게 쓰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많은 사람에게 말을 하였는데, 모두가 네 말을 하더라. 네가 벌써 그들에게 메시아에 대한 말을 해 주었다고.”
시몬은 좋아서 빙그레 웃는다. “어제도 성실한 이스라엘 사람인 어떤 사람과 선생님 말씀을 했습니다. 언젠가 그 사람을 알게 되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선생님을 그 사람에게로 모시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못할 것도 없다.”
유다가 이야기를 가로 막는다. “선생님은 저와 함께 유다에 오시기로 약속하셨는데.”
“그리로 가마. 시몬은 내가 온 것을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가르쳐라. 시간은 많지 않은데 가르칠 사람은 많다. 지금 나는 시몬과 같이 가겠다. 오늘 저녁, 너희들은 올리브나무 동산길로 나를 마중 나오너라. 그래서 거지들에게 돈을 나누어주자, 자, 가보아라.”
시몬과 둘이서만 있게 되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물으신다. “베다니아의 그 사람은 참다운 이스라엘 사람이냐?”
“참다운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요새 유행하는 사상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메시아를 참으로 기다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메시아가 우리 가운데 와 계시다’고 말했을 때 그 사람은 곧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시간에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스러운 일인가!’ 하고요.”
“언젠가 그의 집에 축복을 갖다주러 가자. 너 새 제자를 보았지?”
“보았습니다. 젊고 총명해 보이더군요.”
“그렇다, 젊고 총명하다. 유다인인 너는 그의 사상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너그럽게 보아주어라.”
“이것은 그러기를 희망하시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고 명령하시는 것입니까?”
“다정스러운 명령이다. 너는 고통을 당해 보았으니 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고통은 많은 것을 가르쳐 주는 선생이다.”
“선생님이 명령하시면, 그 사람에 대해서 아주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겠습니다.”
“맞았다. 어쩌면 내 베드로는 내가 이 제자를 그렇게까지 정성스럽게 보살피는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사람이 베드로 하나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들이 깨달을 것이다. …성격이 잘못 형성된 사람일수록 더 많이 보살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야!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만으로 스스로 자신을 형성할 수 있다. 나는 모든 것을 내가 직접 하기를 원치 않는다. 나는 그 사람의 의지를 요구하고, 또 어떤 사람을 육성하는데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요청한다. 나는 너희들에게 도와주기를 부탁한다. …그리고 너희들이 도와주는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선생님은 그 사람에게서 실망이 오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다, 그러나 그는 젊고, 또 예루살렘에서 자랐으니…”
“그야! 그 사람도 선생님을 모시고 있으면, 이 도시의 모든 악습을 고칠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확신합니다. 벌써 늙고 또 원한으로 인해서 감정이 메말랐던 저도 선생님을 뵙자마자 아주 딴 사람이 되었는걸요…”
예수께서는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하고 속삭이신다. 그리고는 소리를 높혀 “나와 같이 성전으로 가자, 백성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겠다.” 하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여기서 환상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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