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시

II 37. 예수께서 베들레헴에 가셔서 농부의 집과 동굴에 들르신다

Skyblue fiat 2020. 1. 8. 17:44


돌과 먼지가 많고 여름 햇볕으로 바싹 마른 들판길이다. 겨우 열매가 맺힌 작은 올리브가 다닥다닥 달린 풍성한 수확을 약속하는 올리브나무들 사이로 길을 간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땅에는 수정 후에 떨어진 올리브나무의 아주 작은 꽃들이 좍 깔려 있다.

예수께서는 세 제자와 같이 한 줄로 서서 올리브나무 아래 풀이 아직 파란, 먼지도 덜나는 길 가장자리로 해서 걸어가신다.

길은 직각으로 구부러지고, 그 다음에는 커다란 말 편자 모양으로 생긴 작은 도랑을 향하여 비스듬히 올라가는데, 그 위에는 꽤 많은 크고 작은 집들이 널려 있어 마을을 이루고 있다. 길이 갑자기 구부러지는 바로 그곳에 낮은 둥근 지붕이 얹혀 있는 입방체의 건물이 하나 있는데, 완전히 문이 닫혀 있고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다.

“여기가 라헬의 무덤이 있던 곳입니다” 하고 시몬이 말한다.
“그러면 거의 다 왔구만. 바로 시내로 들어갑니까?”

“아니다, 유다야. 우선 너희들에게 어떤 곳을 하나 보여주겠다….그런 다음 시내로 들어갈터인데, 아직 어둡지 않고 또 달이 밝을 것이니까, 우리가 주민들에게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말을 듣고 싶다면 말이다.”

“그 사람들이 선생님의 말씀을 듣지 않기를 원하십니까?”
일행은 오래 되기는 하였어도 잘 보존되고 하얗게 회칠을 한 무덤에 이르렀다.

예수께서는 아주 가까이에 있는 투박한 우물에서 물을 드시기 위하여 걸음을 멈추신다. 어떤 여인이 물을 길으러 왔었는데, 그 물을 예수께 드린다. 예수께서는 여인에게 “베들레헴에 사십니까?”하고 물으신다.

“예, 그렇지만 지금은 수확하는 시기라서 남편과 같이 이 시골에 와서 야채밭과 과수원을 돌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갈릴래아 분이세요?”
“나는 베들레헴에서 났소. 그러나 지금은 나자렛에서 살고 있소.”
“선생님도 박해를 당하셨습니까?”
“내 가족이 당했소. 그런데 왜 ‘선생님도’라고 말하시오? 베들레헴 주민들 중에 박해받은 사람이 많아요?”
“그걸 모르세요?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데요?”
“서른 살이오.”
“그럼 바로 그 때 나셨군요. …아이고! 끔찍도 하지! 아니 그런데 그 사람이 왜 여기서 났지요?”
“누구 말입니까?”

“그야 사람들이 구세주라고 말한 그 사람 말이지요. 술에 취해서 몽롱한 가운데 천사들을 보았다고 하고, 양들이 매애매애 울고 나귀들이 항항 울고 있는 가운데 하늘에서 목소리를 들었다고 하고, 술에 취해 몽롱한 가운데에서 하찮은 인간 셋을 보고 세상에서 제일 거룩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 얼간이들을 저주합니다. 그자들과 그자들의 말을 믿는 자들도 저주합니다!”

“그런데 부인은 그렇게 저주는 하면서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설명해 주지 않는군요, 왜 그렇게 저주합니까?”
“그건… 아니 그런데 어딜 가시려는 겁니까?”
“내 친구들과 같이 베들레헴에 가려고 해요. 거기에 이해관계가 있어서요. 옛날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고 내 어머니의 인사도 그들에게 전해야 되오. 그러나 우리 가족이 이곳을 떠나 온지가 하도 여러 해가 되니까, 우선 알고 싶은 일이 대단히 많소. 우리는 내가 난지 몇 달 되었을 때 이 도시를 떠났었소.”
“아니 그럼, 그 불행이 있기 전이었군요. 이거보세요, 농사꾼의 집도 괜찮으시다면, 저희와 같이 식사를 하세요. 선생님과 동행하는 분들과 저녁식사 하는 동안에 말을 합시다. 그리고 내일 아침까지 재워 드리지요. 집은 작습니다. 그렇지만 외양간 바닥에는 건초가 잔뜩 깔려 있습니다. 밤은 따뜻하고 맑으니, 쉬고 싶으시면 쉬실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주께서 부인의 환대를 갚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꺼이 부인 집에 가겠소.”
“나그네는 축복을 가지고 다닙니다. 자, 가십시다. 저는 갓돋아난 야채에 아직 물 여섯 항아리를 주어야 합니다.”
“내가 도와주겠소.”
“안됩니다. 선생님은 양반이신데, 선생님의 행동거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부인, 나는 목수요. 이 사람은 어부이고, 이 사람들은 유다인들인데, 부유하고 지위도 있소.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우물에 둘러친 매우 낮은 담 바로 곁에 뉘어 있는 항아리를 들어 줄에 매서 내려보내신다. 요한이 도와드린다. 다른 제자들도 역시 도우려고 한다. 그들은 여인에게 말한다. “야채밭이 어디 있는지 보여 주시오. 우리가 항아리를 들어다 주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피로해서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아요. 오세요…”
그리고 예수께서 물병을 꺼내시니, 동행 세 사람은 오솔길로 내려갔다가… 빈 물병 둘을 가지고 돌아와서 채워 가지고는 또 간다. 그리고 이렇게 하기를 세번뿐 아니라, 열번은 한다. 그리고 유다가 웃으면서 말한다. “저 여자는 하도 축복을 많이 해서 목이 쉬어가고 있네. 우리가 야채에 물을 하도 많이 주어서 적어도 이틀 동안은 땅이 축축한 채로 있을 거고 저 여자는 허리를 혹사하지 않게 될 거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돌아와서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그런데 우리가 잘못 걸린 것 같습니다.”
“왜?”
“그 여자가 메시아를 원망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저는 저 여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지 마시오. 하느님의 백성에게 가장 큰 은총이 메시아라는 것을 모르시오? 야훼께서 메시아를 야곱에게 약속하셨고, 그 다음에는 이스라엘의 모든 예언자와 의인들에게 약속하셨는데, 메시아를 미워하세요?’그랬더니 저 여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메시아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술취한 목자들과 고약한 동방의 점장이들이 메시아라고 부른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하고요. 그런데 그 사람이 바로 선생님이시니 말입니다….”
“아무래도 좋다. 나는 내가 많은 사람에게 시련과 반대의 표가 되게끔 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내가 누구라는 것을 그 여자에게 말하였느냐?
“아니오. 저는 바보가 아닙니다. 선생님의 어깨와 저희들의 어깨를 보호하고자 했습니다.”
“잘 하였다. 어깨 때문에 잘 했다는 것이 아니고, 내가 적당하다고 판단하는 때에 내 존재를 나타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자, 가자.”
유다는 예수를 야채밭으로 인도한다. 여자는 마지막 세 물병의 물을 주고는 과수원 안에 있는 촌스러운 집으로 일행을 인도한다. “들어오세요, 남편은 벌써 집에 들어와 있습니다”하고 여자가 말한다.
그들은 낮고 연기가 나는 부엌을 향하여 나아간다. “평화가 이 집에 있기 바랍니다” 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선생이 누구시든지, 선생께와 일행에게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하고 남자가 대답한다. 그리고 네 사람이 몸을 식히고 손을 씻으라고 물 한 대야를 우선 가져온다. 그리고 일행은 들어가서 모두 투박한 식탁에 둘러앉는다.
“아내의 일로 해서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아내가 말해 주었습니다. 나는 갈릴래아 사람들을 가까이 한 적이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거칠고 싸움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친절하고 착하시군요. 벌써 피곤하실텐데… 그렇게 일을 많이 하시다니! 멀리서 오십니까?”
“예루살렘에서 옵니다. 이 사람들은 유다 사람이고, 나와 또 한 사람은 갈릴래아에서 왔습니다. 그러나 정말이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어디에나 있는 법입니다.”
“맞습니다. 나는 갈릴래아 사람들을 처음 만나는데, 착한 분들을 만났군요. 나는 운이 좋습니다. 여보, 음식을 가져와요. 나는 빵과 야채, 올리브 치즈밖에는 없습니다. 나는 농사꾼이거든요.”
“나도 양반은 아닙니다. 나는 목수요.”
“선생이? 그런 행동거지를 하시면서요?”
여인이 끼어든다. “당신에게 말했지만 손님은 베들레헴에서 나셨대요. 그리고 부모가 박해를 당하셨대요. 그분들이 어쩌면 우르의 요수에와 이사악의 마티아와 아브라함의 레위 모양으로 부자고 유식했는지도 몰라요. …가엾고 불쌍한 사람들!…”
“당신한테 말을 묻지 않았어. 내 아내를 용서하세요. 여자들이란 저녁 때는 언제나 참새들보다도 더 수다스러우니까요.”
“아까 말한 사람들이 베들레헴의 가족들이었습니까?”
“뭐라구요? 베들레헴에서 나셨다면서 그 사람들이 누군지 모르세요?”
“우리는 내가 난지 몇 달밖에 안되었을 때 피신을 했거든요…”
수다쟁이일 것이 틀림없는 여자가 다시 말을 시작한다. “학살이 있기 전에 떠나셨대요.”
“오! 그건 잘 알겠어. 그렇지 않았으면 살아 있진 못했을테니까. 그래 한번도 와보지 않았습니까?”
“안와 보았습니다.”
“정말 커다란 불행이었지요! 선생이 만나서 인사하고 싶다고 하신다고 사라가 말한 그 사람들을 별로 만나지 못하실 것입니다. 많이 죽고, 많이 도망쳤지요. 많이…흩어졌어요. 가엾게도. 그 사람들이 광야에서 죽었는지 또는 그들의 반란에 대한 벌로 옥에서 죽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반란이었습니까? 그렇게 많은 어린이들이 참살당하는 걸 보고 태연하게 앉아 있을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럴 수가 없지요. 그렇게 많은 어린아이가 죽어 갔는데 레위와 엘리야가 아직 살아있다면 그건 옳지 않은 일입니다!”
“이 두사람은 어떤 사람들이고, 무슨 일을 했습니까?”
“아니… 선생은 적어도 헤로데의 학살 이야기는 들으셨지요. …시내에서 어린아이 천 명 이상, 인근 시골에서 또 천 명 가량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거의 모두가 사내아이들이었지요. 거의 모두라고 말한 것은 살인자들이 밤중에 몹시 흥분한 가운데 뒤엉키는 바람에 포위당한 집의 요람에서나 엄마의 침대에서 어린 계집아이들까지도 빼앗아서 마치 물을 먹고 있는 양들을 활잡이들이 겨냥하듯이 겨냥해서 무찔러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밤의 추위를 물리치려고 술을 꿀꺽꿀꺽 마신 한떼의 목자가 정신착란을 일으켜, 천사들을 보고 노래를 듣고 메시지를 받았다고 이야기하며 우리 베들레헴 사람들에게 ‘와서 경배하시오. 메시아가 나셨습니다’ 하고 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메시아가 동굴에서 나다니!

정말이지 우리 모두가, 아직 젊은이였던 나와 몇 살밖에 되지 않았던 내 아내까지도 흥분했었다고 말해야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믿었으니까요. 그리고 갈릴래아 보잘 것 없는 여자를 아기를 낳는 동정녀로, 예언자들이 말한 그 동정녀를 보려고 했으니까요. 그러나 그 여자는 어떤 교양없는 갈릴래아 남자와 같이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남편이었겠지요. 그 여자가 아내라면 어떻게 ‘동정녀’일 수가 있었겠습니까? 요컨대 우리는 믿었어요. 선물이다. 경배다, 그들을 맞아들이기 위해 대문을 활짝 연다. …아! 일들을 잘 할 줄 알았습니다. 가엾은 안나! 안나는 그로 인해서 재산과 목숨을 잃고, 딸의 아들들까지도 잃었어요. 이 맏딸만은 예루살렘의 상인과 결혼했었기 때문에 일을 모면했었지요. 그러나 이들도 재산은 잃었습니다. 헤로데의 명에 의해서 집은 불살라지고 온 소유지가 완전히 파괴되었으니까요. 그곳은 지금 가축떼들이 풀을 뜯어먹는 황폐한 땅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모두 목자들의 탓이었습니까?”
“아니지요. 사탄의 나라에서 온 세 마술사의 탓도 있었지요. 어쩌면 목자들이 그 세 사람의 마술사와 공범이었는지도 모르지요. … 그런데 우리는 얼간이 같이 그들에게 지극한 경의를 표했지! 저 보잘 것 없는 회당장! 그 사람은 예언들이 목자들과 마술사들의 말을 진리로 인정했다고 단언했기 때문에 우리가 죽였습니다…”

“모든 것이 목자들가 마술사들의 탓으로 된 것입니까?”
“갈릴래아 양반, 아니지요, 우리의 탓도 있었지요. 우리가 고지식한 탓도 있었어요. 메시아를 기다린지가 참 오래 되었었지요! 수백년 동안을 기다렸지요. 마지막 판에는 거짓 메시아들에게 속기도 많이 했지요. 한 사람은 선생처럼 갈릴래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테오다스라고 했지요. 거짓말쟁이들! 그자들이 메시아라구요? 그자들은 재물을 추구하는 협잡꾼들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교훈이 됐어야 하는건데, 그 반대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당신들 모두가 목자들과 마술사들을 저주합니까? 만일 당신들이 당신들 자신도 어리석었다고 판단한다면, 그 때에는 당신들 자신도 저주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주는 사랑의 계명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당신들은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계시하신 진리를 말하였다는 것이 사실일 수는 없습니까? 왜 그들이 거짓말쟁이였다고 믿으려고 합니까?”

“그것은 예언의 햇수가 다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후 우리는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정원의 연못들과 시냇물들이 피로 붉게 물들고 나서야 우리 이해력의 눈이 뜨였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이 너무나 당신 백성을 사랑하신 나머지 구세주가 오는 시기를 앞당기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 사람들이 동방에서 왔다고 했지요…”

“어떤 새로운 별에 대한 그들의 계산에 근거를 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야곱에게서 한 별이 날 것이고, 이스라엘에서 왕권이 일어나리라’고! 또 야곱은 위대한 성조가 아니십니까? 그리고 이 베들레헴 땅은 야곱이 지극히 사랑하던 라헬이 죽은 곳이기 때문에 그에게 지극히 소중한 이곳에 머무르지 않았습니까?

또 어떤 예언자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옛세의 줄기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꽃이 피어나리라’고! 다윗의 아버지 이사야는 이곳에서 태어났습니다. 폭군들의 찬탈로 인하여 밑둥까지 잘린 나무의 그루터기에서 돋아난 싹은 남자에 의하여 수태하지 않고 -그렇게 되면 ‘동정녀’가 아닐 터이니까요- 하느님의 뜻에 의하여 수태한 아들을 낳을 ‘동정녀’가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 아들은 ‘임마누엘’이라고 불릴 것이 아닙니까? 그 아들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하느님일 것이고 따라서 그 이름이 나타내는 것과 같이 하느님의 백성 가운데 하느님을 모셔다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언이 미리 말하는 것과 같이 그 임마누엘이 ‘큰 빛으로’ 어둠 속에 있는 백성들에게, 즉 이방인들에게 알려지지 않겠습니까? 또 마술사들이 본 그 별이 발라암과 이사야 두 예언에서 말하는 큰 빛인 야곱의 별일 수 있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헤로데에 의하여 저질러진 학살까지도 예언들과 들어맞지 않습니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라헬이 아들들을 잃고 우는 소리였다. …’하고? 라헬의 뼈가 에프라타의 무덤 속에서 구세주에 의하여 거룩한 백성에게 상이 올 시대에 비명을 지르고 울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아라, 청명한 날씨가 너희에게 주어진다’고 말하는 소나기의 마지막 물방울들로 이루어지는 무지개와 같이 천상의 미소로 변할 그 눈물들입니다.”


“선생은 대단히 유식하시군요. 선생님이십니까?”
“그렇소.”
“저도 깨닫겠습니다. 선생님의 말에는 빛과 진리가 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아이고! 이 베들레헴 땅에서는 진짜건 가짜건… 메시아 때문에 너무나 많은 상처에서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나는 메시아에게 절대로 이곳에 오라고 권하지도 않겠습니다. 서자(庶子) 때문에 적자(謫子)들이 죽었으면 사람들이 그 서자를 쫓아내는 것과 같이 이 땅은 메시아를 배척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긴… 그가 메시아였다 하더라도… 학살당한 다른 어린아이들과 같이 죽었습니다.”

“레위와 엘리야가 지금 어디 삽니까?”
“그 사람들을 아십니까?” 그 사람은 수상하게 생각한다.
“그 사람들은 알지는 못합니다. 그 사람들의 얼굴은 몰라요. 그러나 그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들인데, 나는 항상 불행한 사람들을 동정합니다. 그 사람들을 만나러 가고 싶어요.”
“흠! 선생님이 거의 30년 만에 처음일 겁니다. 그 사람들은 지금도 목자인데, 예루살렘의 돈많은 헤로데파 사람에게 봉사하고 있지요. 이 사람은 죽임을 당한 많은 사람의 재산을 가로챘지요. …무엇이나 이용하는 사람은 언제나 있는 것이니까요. 헤브론 쪽으로 가는 산에 가시면 가축떼를 데리고 있는 그 사람들을 만나실 것입니다. 그 사람들과 말하는 것을 베들레헴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하세요. 후회하시게 될테니까요. 우리가 그들을 그냥 놔두는 것은… 헤로데파 사람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않으면…”

“오! 증오! 왜 미워합니까?”
“이것이 정당한 일이니까요. 그들이 우리에게 해를 끼쳤거든요.”
“그 사람들은 잘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해를 끼쳤으니, 그로 인해 죽어야 합니다 그들이 터무니없는 말로 어린아이들을 죽이게 했으니, 우리는 그들을 죽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이 빠져 있었고… 그 다음에는 저 헤로데파 사람이 있었지요.”
“헤로데파 사람이 아니면, 넉넉히 이해할 수 있는 최초의 반란 움직임이 있은 뒤에도 그 사람들을 죽였을 것이라는 말입니까?”
“지금이라도 그들의 주인에 대한 공포심만 아니면 죽일 것입니다.”

여보시오, 분명히 말하지만, 미워하지 마시오. 악을 원하지 말고, 악을 행할 욕망을 가지지 마시오. 여기에는 잘못이 없습니다. 그러나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용서하시오. 제발 용서하시오. 다른 베들레헴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말하시오. 당신들의 마음 속에서 증오심이 사그라지면, 메시아가 올 것이고, 그 때에는 당신들이 그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는 살아 있으니까요. 분명히 말하지만, 메시아는 학살이 행하여질 때에 이미 살아있었습니다. 학살이 행하여진 것은 목자들과 동방 박사들의 잘못으로 된 것이 아니고, 사탄의 잘못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메시아가 이곳에서 났습니다. 메시아는 그의 조상들의 고향에 빛을 가져다주러 왔습니다. 다윗 가문의 동정녀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난 메시아는 다윗가의 폐허에서 영원한 은총의 강물을 세상에 터놓았고, 사람에게 생명의 길을 뚫어 주었습니다…”

“가시오, 가요. 여기서 나가시오! 당신은 거짓 메시아의 편을 드는구려. 그는 우리 베들레헴 사람들에게 불행을 갖다 주었으니 가짜일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당신은 그를 옹호하다니…”
“여보시오, 입닥치시오. 나는 유다인이고 친구인 고관들이 있소. 당신이 모욕한 것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오”하고 유다가 덤벼들며 농부의 옷을 붙잡고, 분노로 과격하게 되고 흥분하여 그를 마구 흔든다.

“안되오 안돼. 가시오. 나는 베들레헴 사람들과도 로마와 헤로데와도 난처한 일을 겪고 싶지 않소. 저주받은 사람들, 내가 당신들에게 두고두고 기억할 만한 것을 남기는 것을 원치 않거든 가시오. 나가요!…”
“유다야, 가자, 반항하지 말아라. 저 사람을 그의 원한과 함께 내버려두자. 증오가 있는 곳에는 하느님께서 들어가지 않으신다. 가자.”
“예, 가십시다. 하지만 당신 두고 봅시다.”
“그러지 말아, 유다야, 그러지 말아.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 그들은 소경들이다… 내가 가는 길에는 소경이 너무나 많을 것이다!..”


예수와 유다는 시몬과 요한을 뒤따라 나온다. 이들은 벌써 밖으로 나와서 외양간 한 구석에서 여인과 말을 하고 있다.
“선생님, 제 남편을 용서하십시오. 저는 그렇게까지 해를 끼칠 줄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 이것을 받으세요. 내일 아침에 드세요. 오늘 낳은 생생한 것입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어요. …용서하세요, 어디서 주무실 겁니까?”
그 여자는 달걀 몇 알을 준다.
“염려 마시오. 나는 갈 데를 압니다. 부인의 친절 때문에 평화로이 사시오. 안녕히 계시오.”
그들은 말없이 몇 미터를 가다가 유다가 감정을 터뜨린다. “왜 선생님을 경배하게 만들지 않으십니까? 메시아이신 선생을 모욕한 것 때문에 설설 기게, 끽소리 못하게 하지 않으십니까? …아! 저 같으면 그렇게 했겠습니다. 사마리아인들에겐 그저 기적으로 잿더미를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이것 밖에는 그들에게 충격을 주는 것이 없습니다.”
“아이고! 그 말을 내가 얼마나 많이 듣게 되겠느냐? 하지만 내게 대한 어떤 죄에 대하여도 잿더미를 만들어야 하겠느냐? …아니다. ..유다야, 나는 창조하러 왔지 파괴하러 오지는 않았다.”
“좋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다른 사람들이 선생님을 파멸시킬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대꾸를 안하신다.
시몬이 묻는다. “선생님, 이제는 어디로 갑니까?”
“나를 따라오너라. 한 군데 아는 곳이 있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피난을 가신 뒤로 여기 한번도 안와 보셨다면서 어떻게 그곳을 아십니까?” 하고 유다가 아직도 성이 나서 묻는다.
“나는 그곳을 안다. 아름다운 곳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 한번 갔었다. 베들레헴에 있지 않고, 조금 교외에 있다. …이쪽으로 가자.”
예수께서 앞장을 서시고, 그뒤에 시몬, 또 그뒤에 유다, 끝으로 요한이 따라간다. …오솔길의 모래에 샌들이 부딪치는 소리만이 깨뜨리는 고요 속에서 흐느낌 소리가 들린다.
“누가 우느냐?” 하고 예수께서 돌아다보시며 물으신다.
그러자 유다가 말한다. “요한입니다. 요한은 무서웠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허리에 차고 있는 고기칼에 벌써 손이 갔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죽이지 말고 용서하여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선생님은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그러면 왜 우는거야?” 하고 유다가 묻는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보고 괴로워하는거야. 세상은 예수님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단 말이야. 아이고! 이것이 얼마나 큰 고통이야! 내 가슴에 불붙인 가시들을 찔러 넣는 것과도 같단 말이야. 내 어머니를 누가 짓밟고 내 아버지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을 본 것이나 마찬가지야. …그보다도 훨씬 더해 …로마인들의 말들이 거룩한 궤에 담은 예물을 먹고 지성소에서 자는 것을 본 것과도 같단 말이야.”

“내 요한아, 울지 말아라. 너는 이번에도 이런 말을 할 것이고, 이 다음에도 수없이 이런 말을 할 것이다. ‘그분은 어둠을 비추러 온 빛이었으나, 어둠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은 당신을 통하여 창조된 세상에 왔으나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은 당신의 도시에, 당신 집에 오셨지만 백성들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하고. 아이고! 그렇게 울지 말아라!”

“이런 일이 갈릴래아에서는 일어나지 않습니까” 하고 요한이 한숨을 짓는다.
“그럼 유다에서도 안일어나” 하고 유다가 대꾸한다. “예루살렘은 유다의 수도인데, 사흘 전에는 사람들이 선생님을 ‘호산나’라고 외치면서 메시아로 모셨습니다. 여기는 교양없는 목자들과 농사꾼과 채소가꾸는 사람들의 고장입니다. …그 사람들을 기초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갈릴래아 사람들도 뭐 모두가 착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가짜 메시아 유다는 어디 사람이었습니까? 사람들의 말로는…”

“그만 해두어라, 유다야. 혼란에 빠지는 것은 좋지 않다. 나는 침착하다. 너희들도 침착하여라. 유다야, 이리 오너라. 네게 말할 것이 있다.” 유다가 예수께로 간다. “돈주머니를 받아라. 내일 먹을 것을 사도록 하여라.”
“그런데 당장 어디에 묵습니까?”


에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이 없다. 밤이 되었다. 달이 모든 것을 흰 빛으로 감싼다. 밤꾀꼬리들이 올리브나무에서 노래한다. 개천, 그것은 소리가 나는 은빛 리본이다, 풀을 벤 풀밭에서는 건초 냄새가 풍겨 오는데, 따뜻하고 살아 있는 듯한 냄새여서 꼭 사람의 냄새 같다. 소는 얼마나 많이 울고, 양들은 또 얼마나 매애매애 하고 우는가! 그리고 별, 별, 별… 하늘의 장막에 별들을 뿌려 놓은 것 같고, 베들레헴의 야산들 위에 살아 있는 보석으로 꾸민 닫집을 씌운 것 같다.

“그런데 여기는!… 폐허인데요. 선생님은 저희들을 어디로 데려가시는 것입니까? 여기는 시내가 아닙니다.”
“나도 안다. 내 뒤로 개울을 따라 오너라. 이제 몇 걸음만 더 가면,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이스라엘의 왕의 집을 네게 보여주마.”
유다는 어깨를 들썩 하고는 침묵을 지킨다.
또 몇걸음 더 가니 폐허가 된 집이 한 무더기, 집들의 잔해가 나타난다…. 높은 담이 갈라진 두 틈바퀴 사이에 동굴이 하나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부싯깃이 있느냐? 불을 켜라.”
시몬이 그의 배낭에서 초롱을 꺼내 불을 켜서 예수께 드린다.
“들어들 오너라”하고 스승은 등불을 쳐들면서 말씀하신다. “들어들 오너라. 이곳이 이스라엘의 왕이 탄생한 방이다.”
“선생님이 잘못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여기는 고약한 냄새가 나는 동굴입니다. 아! 저는 정말이지 여기 머무르지 않겠습니다. 이 동굴은 제게 혐오감을 일으킵니다. 축축하고, 차고, 고약한 냄새가 나고 전갈투성이이고, 어쩌면 뱀이 우글거릴지도 모르고…”

“그러지만, 이 사람들아, 여기서 엔세니(Encenie)의 달 25일 밤에 동정녀에게서 그리스도 예수, 임마누엘,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육체를 취한 하느님의 말씀이 태어났다. 즉 너희들에게 말하는 내가 태어난 것이다. 그 때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세상은 마음에 대고 말하는 하늘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고… 어머니를 물리쳤다. …그래서 여기서…유다야, 그러지 말아라. 날아다니는 저 올빼미들과 저 푸른 도마뱀들과 거미줄에서 진저리가 나는 듯한 태도로 눈을 돌리지 말아라. 짐승의 똥이 좍 깔린 땅바닥에 수놓은 네 아름다운 옷이 더럽혀 질까봐 기분나쁜 듯이 치켜 올리지 말아라. 저 올빼미들은 천사들이 ‘영광’이라고 노래한 그 아기의 눈 앞에서 흔들린 첫번째 장난감이었던 올빼미의 손녀들이다. 그 ‘영광’이라는 노래를 다름아닌 황홀한 기쁨, 진짜 기쁨에 취해서 들었던 것이다. 저 도마뱀들은 내 눈동자에 처음 비친, 어머니의 옷과 얼굴의 흰 빛깔 다음으로 처음으로 내 눈동자에 비친 에머랄드 빛깔이었다. 저 거미줄은 내 왕으로서의 요람의 장식휘장이었다. 이 땅바닥은, 아니, 멸시하는 태도를 짓지 않고 밟아도 된다. …짐승들의 배설물이 깔려있지만, 어머니의 발로 거룩하게 된 곳이다. 어머니, 거룩하신 분, 지극히 거룩하신 분, 깨끗하시고, 침범되지 않으신 하느님의 어머니, 아기를 낳아야 하였기 때문에 아기를 낳으신 어머니, 남자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고 또 하느님께서 친히 수태시키셨기 때문에 아기를 낳으신 어머니의 발로 거룩하게 된 땅바닥이다. 티없으신 그분이 밟으신 땅이다. 네가 이곳을 밟아도 된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 어머니에게서 발산된 순결이 네 발바닥을 통해 네 마음으로 올라가게 해 주셨으면 한다….”


시몬은 무릎을 꿇었고, 요한은 직접 구유로 가서 머리를 구유에 기대고 운다. 유다는 겁이 났다. …그러다가 감격에 못이겨 이제는 그의 아름다운 옷은 생각하지 않고 땅바닥에 엎드리며 예수의 옷 한자락을 붙잡고 입맞춤을 하며 가슴을 치면서 말한다. “아이고! 인자하신 선생님, 종의 무분별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제 교만이 사라지고… 있는 그대로의 선생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왕으로서가 아니라 영원하신 왕으로, 장차 올 시대의 아버지로, 평화의 왕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내 주님, 내 하느님,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불쌍히 여겨 주세요!”

“그러마, 너를 더없이 불쌍히 여기마. 이제는 아기가 잤던 자리와 동정녀가 있던 자리에서 자도록 하자. 요한이 자리잡은 곳은 어머니가 경배하고 있었던 자리이고, 거기 있는 시몬은 내 양부와도 같다. 혹은 너희들이 좋다면 그 밤에 대해 얘기해 주마…”

“아! 그래 주십시오. 선생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신 상황을 알려 주십시오.”
“그것이 저희들의 마음 속에서 빛나는 진주가 되고, 또 저희들이 그것을 세상에 다시 말해 줄 수 있게 그렇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선생님의 어머니를 공경하게 그렇게 해 주십시오. 선생님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에만 공경하는 것이 아니고, 동정녀이시기 때문에.. 아! 정말이지 동정녀이시기 때문에 공경하게 말씀입니다!”
처음엔 유다가 말하였고, 그 다음에는 시몬이, 그리고 요한이 말하였다. 바로 구유 곁에 있는 요한의 얼굴에는 눈물과 미소가 뒤섞여 있다!…

“건초에 와서 앉아 들어라…” 그러시면서 예수께서는 당신이 태어나신 밤에 대하여 이야기하신다. “…

이미 해산할 시기에 이르신 어머니는 아우구스토(Augustus) 황제의 명령과 황제의 특사 뿌블리우스 술피치우스 퀴리노(Publius Sulpicius Quirinus)의 공시(公示)에 따라 센시우스 사투르니누스(Sentinus Saturninus)가 팔레스티나의 총독이었을 때 여기에 오셨다. 공시는 로마제국 전체의 주민들의 호구조사를 명령하는 것이었다. 노예가 아닌 사람들은 그들의 고향으로 가서 제국의 명부에 등록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남편 요셉은 다윗 가문이었고, 어머니도 역시 다윗 가문의 분이었다. 그러므로 이 공시에 따라서 나자렛을 떠나 왕족의 발상지인 베들레헴으로 오신 것이다. 날씨는 추웠었다….” 예수께서 이야기를 계속 하신다.

-이렇게 환상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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