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은 대부분 언어와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때로는 그 말 너머에 있는 의미를 해석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우리는 그것을 오해하기도 하지요.
무탄다에서 살 때 사제관 주변에 늘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사제관 주변을 어슬렁 거리다가 사탕이라도 하나 주면
기분좋게 돌아가거나 다시 아이들 무리에 섞여 놀고는 했지요.
저는 사제관 주변에 아이들이 어슬렁 거리는 이유가 단순히 뭔가 먹을 것을 바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고, 교만한 생각이었는지... 늦었지만 이제서야 깨닫습니다.
이곳 무신다모에서도 가끔 아이들이 사제관에 찾아옵니다.
주임신부님이 시킨 일이 있어서 그 일 때문에 오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무런 일이 없이 그냥 사제관 앞에 앉아 있습니다.
왜 왔냐고 물으면 그냥 아무것도 아니라고만 대답합니다.
언어에 있어 자유롭지 못한 나는 그냥 아이들을 내버려 두지만
주임신부님은 아이들과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마치 친구처럼...
어느 한가한 월요일 오후 혼자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있는데,
복사 아이 한 명이 친구들 둘을 데리고 와서 사제관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으나 그냥 아무일도 아니라고 하고서는
한 시간이 넘도록 그냥 앉아만 있었습니다. 열린 문으로 사제관 안을 들여다 보면서...
아이들이 계속해서 사제관 앞에 앉아 있으니 조금씩 불안하고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아이들이 뭘 원하는 걸까? 먹을 것을 원하나? 과자를 좀 줄까?
주는 사람의 이미지를 좀 벗어버리고 싶었는데, 또 과자나 주는 선교사처럼 여겨지면 어쩌지?
그리고 그게 습관이 되어서 아이들이 자꾸 사제관 앞을 서성거리면 어쩌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은 과자를 한 봉지씩 주면서 '여기서 이러고 앉아 있지 말고 이거 먹고 운동장에 가서 뛰어 놀아라'하고 보냈습니다.
아이들은 순순히 과자를 받고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사제관에 자주 찾아 오는데,
일이 있어서 찾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가끔은 인사나 하러 왔다면서
사제관 앞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돌아갑니다.
'참 싱거운 사람들이네. 특별한 일도 없이 찾아와 한 시간이 넘게 수다를 떨다 가다니...'하는 생각도 들지만,
문득, 특별한 일이 아니어도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친구사이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사제관에 찾아와 그냥 하릴없이 앉아 있던 아이들이나 어른들 모두
그냥 내게 친구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특별히 뭔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함께 시간이나 보내고 이야기나 나누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저 친구처럼...
그러한 그들의 메세지를 나는 자꾸만 뭔가를 바라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 오후에 누군가가 사제관으로 찾아왔습니다.
무슨 일로 왔냐고 물으니 아프다고 합니다.
무탄다에서는 아주 흔히 있던 일입니다. 클리닉 시간이 오전9시부터 12시까지로 정해져 있지만
멀리 사는 사람들은 때로 그 시간 외에도 사제관 문을 두드리며 약을 청하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무신다모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병원에 가보지 그러냐고 했더니, 가 봤는데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대답합니다.
이 대답도 무탄다에서 수도없이 들었던 사람들의 대답입니다.
무신다모에서는 돌팔이 의사놀이를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고 왔는데 환자가 또 찾아오다니...
무탄다에서의 돌팔이 생활이 여기서도 반복되는 것은 아닌가... 순간적으로 고민이 되더군요.
그래도 아프다고 찾아온 사람을 그냥 돌려보낼 순 없어서, 말라리아 검사라도 해 볼 양으로 사제관으로 들어와 비상용으로 가져온 말라리아 테스터를 꺼내며
옆에 있던 식복사 자매님께 '난 의사가 아닌데...'하고 투덜거렸더니,
'신부님께 기도를 청하러 온 것 같은데요?'하고 대답합니다.
아차 싶어 말라리아 테스터를 두고 다시 나갔습니다.
그리곤 물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는지. 약을 주기를 바라는지, 아니면 기도를 해 주기를 바라는지.
그랬더니 기도를 해달라는 겁니다.
아.... 순간적으로 어찌나 부끄럽던지...
아프다고 호소하는 그의 메세지를 저는 잘못 해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요. 아픈사람이 병원을 두고 신부를 찾아왔을 때, 그가 원하는 것은 약이 아니라 기도겠지요.
부랴부랴 성수와 기도서를 챙겨서 그를 따라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정성껏 기도를 해주고 안수를 해주고, 집에서 쓸 수 있도록 성수도 축복해 주고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며 그동안 내가 수도없이 잘못 해석했을지도 모를 사람들의 호소와 메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동안 누군가가 아프다고 호소하면 그건 당연히 약을 바라는 것이라고 해석했고,
누군가가 힘든 이야기를 하면 당연히 무언가 물질적인 도움을 바라는 것이라 해석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아픈 이에게 약이 필요하지 않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에게 물질적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누군가가 그런 문제를 사제에게 호소했을 때에는
약이나 물질을 넘어선, 세상의 것이 아닌 하느님의 것을 청하고 있었을 텐데, 그것을 깨닫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이었습니다.
사람들의 호소에 약으로, 물질적 도움으로 응답하며 '난 신부지 의사가 아닌데...난 선교사지 사회복지사가 아닌데...'하고 투덜거릴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사람들의 메세지를 잘못 해석해서
나 스스로를 의사나 사회복지사로 자처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깊이 반성하게 됩니다.
내가 사제로서, 선교사로서 좀 더 잘 할 수 있는 일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축복하고, 안수로 하느님의 위로를 전하고,
그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일일텐데 말입니다.
언어에 자유롭지 못해 사람들과 대화도 잘 안 되는데,
이렇게 알아듣는 사람들의 말조차도 오해하고 있으니... 참 갈 길이 머네요.
그래도 보다 선교사답게, 사제답게 살 수 있도록 실수를 통해 배워나갑니다.
여러분들은 상대의 말이나 행동이 담고 있는 의미를 잘 해석하시기 바래요.
뭔가 큰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할때,
그가 그 문제의 해결책을 찾고 있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훨씬 간단한, 여러분이 충분히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여러분에게 기대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우리 함께 화이팅입니다요.
(잠비아 무신다모에서 선교중인 양현우 바오로 신부님 2016.05.18) |
'사랑해요주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브리엘 보시 '그와 나' 중에서... (0) | 2016.08.09 |
---|---|
그와 나 2 - 가브리엘 보시 (0) | 2016.08.09 |
영혼이 천상에서 누리는 영광과 지복과 행복을 지상에서 하느님 뜻을 소유한 정도에 비례한다. (0) | 2016.08.07 |
[33일 봉헌]자기자신을 알기- 이요한 십자가의 요한 신부님 20160807 (0) | 2016.08.07 |
오직 나만을 사랑하려고 노력하여라 (0) | 2016.08.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