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순례중에 주일을 한번 산 죠바니 로똔도에서 보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새로 지은 성전을 향했다.
이날은 오상의 비오신부님께서 오상 받으신 곳도
그분이 미사드리신 곳도
생활하시고 돌아가셨던 방도
사람이 있는 곳은 싫었다.
새 성전은 오상의 비오신부님 시신을 지하 성당에 모셔
사람들이 순례하면서 관을 보고 만지며 기도할 수 있게 배려된 곳이다.
그런데 오전 6시 30분이 다 되어 문이 열렸다.
그래서 시신이 모셔진 지하 성당으로 가서 앉아 있었다.
이태리 어느 곳엔가 신부님과 순례 교우들이 와서 미사를 드렸다.
시신이 모셔진 곳에 분명 제단이 있는데,
순례자들이 많아 미사를 할 수 없는 것 처럼 생각되었던 곳이다.
아~~ 이 장소도 자국민에겐 이런 시간에 미사가 허락되는 것 같아
마음 한 쪽으로는 부러웠다.
미사가 시작되자, 나는 나와서 1층의 아무도 잘 찾지 않는
성체조배실로 들어가 한 시간 동안 조배했다.
오래간만에 깊은 침묵속에 성체안의 주님과 오봇한 시간을 가졌다.
한참 조배중에 어떤 이태리 아주머니와 딸이
오상의 비오 신부님 시신이 어디 있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지하에 있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나 한참 후에 못 찾았다고 울상이 되어 또 물으러 왔다.
나는 성체조배실을 나가 미사 중인 지하 성당 제단 뒤의
벽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는 돌아와 다시 조배를 했다.
주님께서 조배중에 이런 깨달음을 주셨다.
“사랑하는 아들아!
왜 이곳에 많은 순례자들이 오는지 아느냐?
그래, 내 사랑하는 아들 비오 신부를 보고 싶어 왔다.
내가 그 안에서, 그의 인격안에서 50년간 함께 하며
이 시대의 성화(聖化)를 위해 고난받으며
내가 살아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엇이냐?
물론 그의 시신 안에도 그의 위격(位格)이 함께 할 수 있고,
그를 통해 나로부터 은혜를 입을 수 있다.
그러나 내 아들 비오 신부가 그토록 사랑하고 증거하고
고통을 통해 알리고자 한 것이 무엇이냐?
바로 나와 내 아버지의 영혼들에 대한 치열한 사랑이 아니더냐?
그는 많은 영혼들을 나에게로 바로 인도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어디에 있느냐?
나는 여기 네가 바라 보고 있는 감실 안에 있다.
내 아들 비오신부를 기념하는 이 성전의 주인은 나다.
너도 알다시피 나를 찾아오는 사람은 그야말로 소수이구나.
나는 여전히 감실안에서 냉담과 무관심과 배은망덕으로
나의 자녀들로부터 잊혀지고 있구나.
나를 먼저 찾기를, 내 아들 비오신부가 그렇게 가르치고
증거했건만, 사람들은 무엇이 더 본질적이고
누가 더 중요한지를 모르는구나.
내 아들 비오 신부를 통한 기적의 의미를,
미사성제의 의미를,
성체성사 안의 나의 현존과 고통스런 사랑의 의미를
알아주는 사람이 그야말로 소수이구나.
가슴이 아프구나.
너라도 제대로 '주님 중심 주의'를 가르쳐주렴.
성인이 손가락으로 해를 가리키면,
해를 보아야지, 왜 손가락을 바라보는지 답답하구나.”
이런 깨달음을 얻고 성체조배실을 나왔다.
산 조바니 로똔도의 맑은 공기, 빛나는 태양을 바라보며
우리 주님은, 성체 안의 우리 주님은
세상의 모든 성당 안에 다 계시는데.
그토록 가까이 계시는 주님, 살아계신 주님을
오상의 성 비오신부님께서 증거하려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어디서든지, 정말로 단 한사람만이라도
주님을 흠모하며 잘 살 때에
주님께서는 당신의 살아 계심을 드러내 주시는데,
내가 사는 그곳이 또 하나의 산 죠바니 로똔도가 될 수 있고,
부족한 내가 감히 또 하나의 비오 신부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한, 순례의 주일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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