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정 때문에 미국 여기 저기를 다니면서 처음 있는 일이다.
비행기가 잘못 되어 그 자리에서 몇 시간 기다렸다가 탄 적은 있었다.
오래 전에 로스엔젤레스에서 하와이 꾸리아 피정을 갈 때
셀프 서비스하는 티켓팅하는 머시인을 가지고
마귀들이 장난을 쳐서 그 기계가 다른 예약 번호와 항공사를 주어
비행기를 못 탈 뻔 했던 일이 있었다.
시간도 없는데 이 항공사에서 저 항공사로 똥개훈련을 시키면서
피정을 포기하게끔 했는데, 영어를 잘하는 봉사자의 재빠른 처신으로
겨우 천신만고끝에 비행기를 타보니
원래 그 비행기의 가장 좋은 비상구 옆자리에
내 자리가 예비되어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번의 이틀에 걸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안풀림 내지는
설상가상으로 저주에 가까운 방해는 처음이다.
주일 미사를 마친후 공항에 갔더니 경유지 공항에 불이 나서
비행기가 떠지 않아 6시간을 기다렸다.
25불 돈내고 부친 가방을 못 찾아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그 가방이 이미 떠나간 것을 확인했다.
그 다음날 새벽에 출발하는 다른 항공사의 비행기표를 끊어
잠도 못자고 새벽에 나갔는데, 그 비행기가 또 출발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직도 어제 그 일이 해결이 안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국내선은 여러 군데 경유하는 완행 열차와 같아
시카고, 샌 안토니오에 이어 나의 목적지 Ft. Lauderdale(FL)가려는 사람도
내려서 비행기를 갈아 타라고 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준비하고 있던 중요한 글이 담겨있던 봉투와
비행기 안내 책자의 겉표지가 색깔이 같아
그냥 먼저번 비행기에 놓고 내려 분실해 버렸다.
갈수록 태산이다. 너무나 어이없는 일이 일어나
이제 체념상태, 멘붕에 가까워졌다.
샌 안토니오에 내려 Tampa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좁을 뿐만 아니라 보수 공사중인 공항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여기서 무려 네 시간을 기다려 비행기를 타야 한다.
나는 좁은 공항, 많은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멕시칸 음식과 과일즙을 파는 레스토랑에 앉아 세 시간을 버텼다.
물론 앉아서 성무일도를 다 바치고, 남은 시간에 들려오는 음악에 맞춰
앉아서 춤을 추며 아이패드로 여기 저기를 보았다.
피정 지도하고 성령 운동하는 나를 하느님께서
직접 다루거나 고통을 요구한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수동적으로 끌려간다.
사실은 화를 낼 필요도 없고 그 순간을 즐기는 것이 제일 좋다.
무장해제 당한 채 그리고 배째라 하고 끌려가면 된다.
물론 그냥 사고일 수도 있지만, 신앙인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고찰해야 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원인이 무엇이며, 지금 무엇을 다루고 있는지
무엇때문에 이런 상황을 허락하고 있는지를 곰곰히 생각해 본다.
도대체 내가 가야 하는 그 공동체에 영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어
이런 고통을 보태야 하는지를 생각해 본다.
원래 비행기대로라면 이미 도착지에 도착할 시간에
겨우 다시 출발하여 무려 세시간 반을 더 가서
그곳에서 또 기다렸다가 한시간 반을 또 가야 한다.
새벽에 출발해서 12시간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목적지에서 계속 걱정이 되어 걸려오는 회장님의 전화와
그리고 무슨 섭리가 있겠지요~ 하면서 안심하라는 문자를 보았다.
그리고 공항에서 성당까지 가는 퇴근길의 교통 체증 시간에서도
내 앞에 펼쳐지는 것은 두 차례나 이어지는
끊임없는 교통 사고 접촉 사고의 현장이었다.
나는 드디어 머리에 두껑이 열려 여기 못올 때를
온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강의 시간이 늦어 30분 늦게 저녁도 굶고
따뜻한 물, 찬 물 두 잔을 마시고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그냥 웃으면서 강의를 시작했다.
강의의 화두는 스티븐 코비의 90대 10의 원칙이었다.
내가 할 수 없는 영역, 내 앞에 펼쳐진 10이라는 일 앞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하는
90이라는 나의 몫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어떤 예감이 들어 여기저기 기도 부탁을 해놓고 왔었다.
삼년만에 이루어진 피정 그리고 몇 안되는 참석 교우들 앞에서
하느님의 나라는 양이 아니라 질의 나라임을 확인했다.
사흘 간의 피정을 통해 나름대로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가시적이거나 비가시적인 은총의 손길을 보면서
이안에서도 내가 모르는 여러 사람들의 희생의 제사가
봉헌되어야 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번 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공항에서의
아이들의 성탄 캐롤 연주를 보면서 나름 기분이 좋았고,
엘파소에 도착했을 때의 하늘은 아름다움을 발하고
비온 뒤의 쌍무지개가 떴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제 다 마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5일간의 여정을 마치면서 떠오르는 성경 말씀은 이것이다.
"무화과나무는 꽃을 피우지 못하고
포도나무에는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나무에는 딸 것이 없고
밭은 먹을 것을 내지 못할지라도
우리에서는 양 떼가 없어지고
외양간에는 소 떼가 없을지라도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내 구원의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리라.
주 하느님은 나의 힘,
그분께서는 내 발을 사슴 같게 하시어
내가 높은 곳을 치닫게 해 주신다." (하바쿡서 3,17~19)
남부 유다가 신바빌로니아에 의해 침공당하고(B.C.598)
지도층 인사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갔을 때
예레미아 에언자와 동시대 인물로서
여호야킴과 여호야킨의 통치 시절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활동하던 예언자가 하바쿡이다.
우상숭배 때문에 하느님께 벌을 받아
나라를 잃고 정치적, 사회적 피폐를 겪는 상황에서
밭의 나무에는 먹을 열매가 없는 경제적 비참과
심지어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동물도 없는
종교적 예배가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하바쿡 예언자는 하느님의 정의를 신앙으로 노래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먼저 신바빌로니아를 통해
남부 유다 안의 불의를 심판하시지만,
그러나 이어서 지나치게 폭력을 행사하고 남부 유다를 수탈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한 신바빌로니아도 징벌하시는
하느님의 엄정한 정의를 내다보면서
하바쿡이 이 기도를 바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엄정한 정의 앞에서 남부 유다가 살아남을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제까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인도해 주신
주님께 희망을 두고 그분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그것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의 차원에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이다.
그분은 내 존재와 생명의 근원이시요 목적이시며
내 영혼, 육신 생명의 참 부모이시며
나는 그분의 참 자녀이니 결코 이 부자관계는
끊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에서 살아남을 길이 생긴다는 것이다.
http://cafe.daum.net/FiatLove/ba08/1079 (피앗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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