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주님

죄의 뿌리인 칠죄종(七罪宗)에 대한 성찰

Skyblue fiat 2015. 6. 1. 20:33

 

"너희는 교만한 말을 늘어놓지 말고 거만한 말을 너희 입 밖에 내지 마라.

주님은 정녕 모든 것을 아시는 하느님이시며 사람의 행실을 저울질하시는 분이시다." (1사무 2,3)

 

 

가톨릭 교리서 (V. 죄의 증식)   

                              
1865 죄는 죄로 이끌며, 같은 행위를 되풀이함으로써 악습을 낳는다. 그 결과 타락한 경향들이 생겨나 양심을 흐리게 하고 선과 악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을 그르치게 한다. 이처럼 죄는 번식하고 더 강력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도의심을 뿌리째 소멸시키지는 못한다.

 

1866 악습들은 그와 반대되는 덕에 따라 분류할 수 있고, 또 죄종(罪宗)과 연관시킬 수 있다. 죄종(peccata capitalia)은 요한 카시아누스 성인과102) 대 그레고리오 성인의103) 뒤를 이어 그리스도인들의 경험으로 식별되었다. 이 악습들을 죄종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것들이 다른 죄들과 악습들을 낳기 때문이다. 죄종은 교만, 인색, 질투, 분노, 음욕, 탐욕, 나태이다.

 

예수님의 풍성한 생명에 참여하려면 자신 안에 숨어서 예수님의 생명에 맞서는 적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어 꺽어버려야 합니다. 주님 안의 풍성한 삶을 방해하는 모든 죄의 뿌리를 칠죄종이라고 부릅니다.

칠죄종이란 그 자체가 죄이면서 동시에 모든 죄의 근원이 되는 7가지 죄를 말합니다. 이것들은 사람이 죄를 짓게 하는 원천으로서 죄원(罪原)이라고도 합니다. 다음의 칠죄종을 보면서 자기 죄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십시오.

 

 

 

죄의 뿌리인 칠죄종(七罪宗)

 

 

1) 교만(驕慢) - 교오 (驕傲), superbia(라틴어), pride(영어)

 

교오는 교만하고 오만하여 자신을 높이고 남을 업신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즉 교만은 자신을 절대화하거나 중심적인 존재로 여기며 남을 무시하거나 그들을 자기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태도를 말합니다.

교만에서 파생되는 죄는 인간 능력 밖의 것을 이루고자 하는 주제 넘음과 자신의 자격 이상으로 명예를 추구하거나 이를 위해 악한 방법을 쓰는 과망(過望), 자신의 탁월성을 나타내려고 절제 없이 애쓰는 허세 등이 있습니다. 교만한 나머지 하느님의 권위와 계시 진리를 업신여기는 죄는 특히 무거운 것입니다.

 

- 자기를 높이 평가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일은 없는지?

- 자신의 우월성을 인정해 주지 않는 사람을 건방지게 생각하고 쌀쌀하게 미움을 품고 대하지 않는지?

- 찬사를 갈망하고 찬사가 부당한 것이어도 좋아하지는 않는지?

- 남의 칭찬의 과녁이 될 만한 놀라운 일만을 꿈꾸고 있지는 않은지?

- 남보다 위에 서려고만 하고 있지는 않은지?

- 일을 할 때 자신이 찾고 있는 것이 그리스도의 영광인지? 자신의 영광인지?

- 높은 위치에서는 헌신적으로 일하고 낮은 위치에서 봉사할 때에는 물러서려고 하지 않는지?

- 자기만 위하지 않는지? 다른 이의 권리도 인정해 주고 다른 이의 괴로움을 덮어주기 위하여

   자기 스스로 괴로움을 받을 줄 아는지?

 

우리가 신앙생활에 열심하고 신심행위가 열렬하고 잘된다고 생각하면서 자기가 한 일과 자신에 대하여 자만할 때에도 교만이 싹트기 쉽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주제 넘는 생각으로 주님의 영광보다는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영적인 일을 남들 앞에서 곧잘 이야기하고 자기가 아는 것 이상으로 남을 가르치려 합니다.

 

 

2) 인색(吝嗇) - 간린(慳吝) avaritia(라틴어), greed(영어)

 

인색이란 재물을 지나치게 탐라고 아끼며 재물 모으기에 급급하여 지나치게 박한 태도를 말합니다. 하느님의 창조로 인하여 주어진 재물은 그 자체가 좋은 것이며 재물을 모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재물을 인생 최고의 가치로 삼거나 재물 모으기를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태도는 물론, 재물이 주는 여러 가지 만족을 얻기 위하여 재물에 몰두함으로써 인생의 궁극 목표인 하느님을 망각하는 태도는 간린에 해당됩니다. 이는 수단에 그쳐야하는 재물을 목적으로 삼는 잘못된 생활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고 말씀하셨습니다.

 

- 나는 하느님을 더 좋아하는가? 아니면 재물을 더 좋아하는가?

- 나는 하느님께 바치는 교무금이나 헌금을 정성껏 바치고 있는가?

- 다른 데에는 돈을 잘 쓰지만 신앙생활을 하는데 쓰는 돈은 아까워 하거나 인색하지는 않는가?

- 나는 이웃을 위하여 기꺼이 나의 것을 내어 놓는가?

- 아니면 다른 이의 눈치를 보고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인색하지는 않는가?

 

영성생활에 있어서도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은총이 마음에 차지 않아 불평을 하면서 어떤 은혜에 대하여 지나친 욕심을 부리며 집착하고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데 인색한 태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하느님의 은혜가 아니라 하느님 자신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 이어야하기 때문입니다.

 

 

3) 음욕(淫慾) - 미색(美色), luxuria(라틴어), lust(영어)

 

미색이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성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미색은 성적 쾌락을 추구하기 위하여 부정한 방법으로 성행위를 하는 직접적인 미색과 성적인 흥분을 유발시킬 수 있는 상황으로 자신의 몸믕ㄹ 드러내는 간접적인 미색이 있습니다.

 미색은 모두 의지의 무질서에 기인한 것이며, 정결의 덕을 위반하는 죄가 됩니다.

 

- 나는 필요 이상으로 육신의 비위를 맞추고 있지는 않은가?

- 음식과 휴식, 그 밖의 매우 저속한 욕망까지도 골고루 만족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지는 않는지?

- 나는 저속한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어떤 그림이나 글이나 영화를 보려고 하지는 않는지?

- 정결치 못한 생각에 잠기거나 저속한 말과 농담을 좋아하지는 않는가?

 

기도 생활과 성사 생활을 잘하면서 하는님께 맛들이고 즐거워할 때에도 본인은 싫어하지만 부정한 충동과 행위를 느끼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런 감서의 반란을 일으키는 원인이 때로는 악마인데, 악마는 우리가 기도 중에 있거나 기도하려고 할 때, 불안과 동요를 부채질하여 그 본성 안에 부정한 충동이 일어나게 합니다. 때로는 그 원인이 우리가 부정한 충동과 더러운 환상에 대하여 일찍부터 품어오던 공포심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충동을 이기지 못하여 기도가 힘이 없어지고 기도를 안하게 될 뿐만 아니라, 기도의 맛을 보기가 무섭게 이런 악습의 맛에 삼켜지듯이 취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4) 분노(忿怒) - ira(라틴어), anger(영어), wrath(영어)

 

분노란 분에 겨워 몹시 화를 내는 것을 말합니다. 절제의 덕이 부족하거나 없어서 일어나는 분노는 투쟁, 복수, 폭행을 유발하여 정의와 사랑을 침해하는 죄를 형성합니다.

그러나 분노가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이기주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류나 악에 대항하는 양심의 반작용에서 나와 의로움을 지향하는 경우에는 정당합니다.

 

- 꾸지람을 받을 때나 예상될 때 화가 치밀지 않는지?

- 남의 실수에 대하여 (비록 그것이 무의식적 실수라도) 활르 내는 일은 없는지?

- 남이 나에게 저지른 잘못을 언짢게 생각하지는 않는지? 쉽게 용서해 줄 수 있는지?

- 남에게 중상모략을 받음으로 해서 마음먹었던 선행을 포기하는 일은 없는지?

 

영성 생활을 할 때에도 영적인 맛이 사라지면 기분이 언짢아서 다른 사람을 대할 때 하찮은 일에도 성을 내는 경우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자신의 불완전한 모습을 보았을 때 겸손하기는커녕 자기 자신이 못 견디게 미워서 성을 내기도 합니다.

 

 

5) 탐욕(貪慾) - 탐도(貪饕), 탐식, gula(라틴어), gluttony(영어)

 

탐욕은 음식과 재물을 탐하여 먹고 마시는 일을 지나칠 정도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절제에 반대됩니다.

 

- 음식을 절제하지 못하여 자주 과식하거나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을 골라 먹지는 않는가?

- 건강에 해로울 정도로 술을 많이 마시면서도 이를 자랑으로 생각하거나,

   주위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데도 혼자만 즐기기 위하여 담배를 피우지는 않는지?

- 외적인 일에 너무 마음을 빼앗기고, 마음을 가라앉히거나 착수한 일을 신중히 다루는데 곤란을 느끼지 않는지?

 

영성 생활을 시작할 때에도 맛을 통하여 생기는 영적 탐식에 떨어지지 않는 이가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영적인 생활의 맛과 재미에 빠져서 하느님이 보시고 기뻐하시는 영의 순결과 분별보다는 영의 맛만을 추구함으로써 덕이 이루어지고 자라는 중용의 한계를 넘어서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6) 질투(嫉妬) - 시기, invidia(라틴어), envy(영어)

질투는 다른 사람의 우수함, 행운, 성공에 대하여 슬퍼하거나 불만을 느끼는 것으로 이웃 사랑을 거스른 죄입니다. 질투는 이기심의 가장 비열한 형식입니다.

 

- 남의 성공을 보고 언짢게 느껴지고, 남의 실패에 은근한 기쁨을 느끼는 일은 없는지?

- 이웃이 칭찬을 듣는 것을 보면 은근히 그를 깍아 내리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고

   그의 단점을 다른 이에게 말하지는 않는가?

 

영성 생활에 있어서 질투란 다른 사람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초자연적인 선물을 시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영적인 질투를 하는 사람은 다른 이들이 덕행에 있어 뛰어나거나 나보다 성령의 은사가 뛰어나면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그의 부족한 점을 다른 이에게 말하면서 자신을 높이려 합니다.

 

 

7) 나태(懶怠) - 해태(懈怠) acedia(라틴어), pigritia(라틴어), sloth(영어)

 

해태는 나태라고도 하며 게으르고 성실치 못한 것을 말합니다.

 

- 나는 노력을 게을리하고 사소한 희생도 꺼려하지 않는가?

- 나는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하거나 약속을 자주 어기거나

   준비성이 부족하여 허둥대는 일이 자주 있지 않은가?

- 처음과 끝이 같지 않고(마음에 들 때와 내키지 않을 때) 여러가지 일을 시작해도 끝을 제대로 맺지 못하지는 않는지?

 

영적인 나태는 영적인 일에 게으름을 피우고 영적인 일을 멀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완덕이란 자기를 버리고 하느님을 따르는데 있는데, 영적으로 나태한 사람은 하느님의 뜻보다 자기 뜻을 따르려 합니다. 그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 일이나 고된 일은 피하고 영의 참된 즐거움이 있는 십자가를 보면 질색을 합니다.

 

 

위에 성찰한 것을 중심으로 고해성사를 받으시면 좋습니다.

 

 

"성모님의 사랑만이 죄인들의 마음에 불을 놓을 만큼 뜨겁습니다." (성 보나벤투라)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에게 다가오고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고

  나에 대한 그들의 경외심은 사람들에게서 배운 계명일 뿐이니" (이사 29,13)

 

 

 

- 출처: '전인적인 치유' 피정강의록 (제 5강의 영적 치유 2단계 - 습관적인 소죄에서 벗어남.) 중에서

           이범주 바오로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