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인 성녀/성녀 글라라 st.Clara

기도는 고요의 심장

Skyblue fiat 2011. 4. 6. 08:33

 

글라라는 자신의 생애를 침묵의 너울 안에 숨겼다.

그것은 침묵과 기도 안에서 자신의 전존재를

하느님과 피조물에게 개방하여 내어준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는 기도하며 하느님 안에 있음으로써 자신과 모든 피조물을

하느님께 인도하는 사랑의 움직임을 감지했다.

무엇보다 그가 침묵의 삶에 자신의 생애를 바친 것은

그 안에서 하느님과 사랑을 나누며 하나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기도는 고요의 심장이다.

그래서 글라라는 40년이 넘게 침묵하며 숨어 살았다.

 

- "아시시의 성 글라라(바오로딸)"에서 발췌 -

 

그리스도께선 지금 이 지상에서 당신의 것을 제외하고는

몸도 없고, 손도 없고, 발도 없습니다. 

당신의 눈이, 당신의 눈을 통해서,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연민을 찾아야만 하는 그분의 눈입니다. 

또한 당신의 발이 그분이 선을 베풀기 위해 갈 수 있는 발이며,

당신의 손이 그분이 지금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그분의 손입니다.

 

- 깔멜의 성인 아빌라 데레사의 기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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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청 훈령인 <관상 생활과 수녀승의 봉쇄>에서 나타난 봉쇄의 영성적.신학적 의미

'세상으로부터의 격리'가 관상 생활의 특징적 형태의 기초를 이루고 있음을 드러낸다.


1. 봉쇄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더 깊이 일치하게 하고 파스카의 신비에 특별한 양식으로 참여하게 하며,

   이 세상에서 천상 고향으로 가는 주님의 여정에 참여하게 한다.

2. 봉쇄는 "활동에 열렬하면서도 또한 관상에 전념하는 특성을 지닌 교회" 신비의 관상적 특성을드러낸다.

3. 봉쇄는 정신을 혼란시킬 수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멀리하도록 하면서, 인격성을 충만히 하면서

   하느님께 더 완전히 전념하게 한다. 그리하여 물리적인 봉쇄는 영적이고 내적인 봉쇄가 되어야 한다.

4. 봉쇄는 세속에 대해 낯선 곳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이 만나는 장소, 그리스도를 통해 메마른 세상이 낙원이 되게 하는 곳이며,

    인간적인 안일함이 아니라 형제들의 일과 고통, 희망에 더욱 폭 넓게 참여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봉쇄 구역은 "고독과 침묵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 예배에 참여하며,

  개인의 수덕.기도.극기.형제애의 친교 안에서 그들의 생활 전체와 모든 활동을 하느님께 대한

  관상으로 향하게 하는 곳이다."



<토마스 머튼 >

그가 결정적으로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들어가게 된 계기는 전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다음 해인 1939년에 머튼은 수도원에 입회했다.

그는 물었다. "나는 어떻게 평화의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는 자기를 에워싸고 있는 파괴의 강렬한 힘에서 벗어나는 길은 자발적인 자기절멸(絶滅)뿐이라고 자각했다.

 

더 많은 땅과 자원을 정복하려는 세상의 열망을 보면서, 

머튼은 이를 모든 소유에서 자발적으로 거리를 두고 살라는, 벌거벗은 채 살아가라는 초대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내가 소유한 것에 대한 집착이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일기에 썼다. 

그는 수도원에 들어가서 적응하면서, 자발적인 가난이 폭력을 막을 뿐 아니라

개인으로 하여금 위험의 한복판에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수도원이 상징하는 초연함은 책임을 회피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심없이 두려움 없이 악의 한복판으로 뛰어들도록 해주는 최고의 행위라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지켜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비폭력의 한복판에 뛰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를 비운 사람만이 진정한 혁명가'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자기 생명조차 자기 소유라 주장하지 않는다.



† 토마스 머튼의 기도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저는 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저는 당장 제 눈 앞에 있는 길도 보지 못합니다. 저는 그 길이 어디서 끝나는지도 확실히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가 당신을 기쁘게 해드리려는 그 목마름이 당신을 기쁘게 해드린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하는 모든것 안에서 그러한 목마름을 지니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런 목마름을 떠나서는 어떤것도 결코 원하지 않습니다.

비록 제가 당신께 이르는 길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를지라도,

당신께서 저를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시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저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처럼 보이고,

제가 죽음의 그늘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저는 언제나 당신을 믿고 의탁하겠습니다.

당신이 늘 저와 함께하시니, 저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당신께서는 제가 홀로 위험에 직면하도록 저를 떠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