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새번역)/2권 공생활 첫해

하사시 2권 p140~p152 [68. 가리옷 사람과 함께 성전으로 가서 설교하시다~69. 가리옷의 유다를 가르치시다]

Skyblue fiat 2024. 12. 7. 21:16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2권 공생활 첫해 p140~p152 
 

※ 통독한 뒤 마음에 세길 구절 1~2개를 나눕니다

 

68. 가리옷 사람과 함께 성전으로 가서 설교하시다

1945. 1. 1.

나는 예수께서 유다와 나란히 성전 구내로 들어오시는 것을 본다. 그분께서는 첫 번째 테라스를 지나 여러 빛깔의 대리석이 깔려 있는 큰 마당 옆에 있는 현관에서 걸음을 멈추신다. 그곳은 아름답고,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예수께서는 주위를 둘러보시다가 그분의 마음에 드는 지점을 발견하신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곳을 향하여 그분의 발걸음을 옮기시기 전에 유다에게 말씀하신다.

“이곳의 관리를 나에게 불러오너라. 나는 아무도 내가 관습을 무시하고 존경심이 없다고 말하지 않도록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선생님, 당신께서는 관습 위에 계십니다. 그리고 당신께서는 하느님의 메시아시니 하느님의 집에서 당신보다 더 말할 자격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도 알고, 너도 알지만, 그들은 알지 못한다. 나는 사람들을 분개하게 하거나 백성들에게 율법은 물론 관습까지도 어기라고 가르치려고 오지 않았다. 반대로 나는 존경, 겸손, 순종을 가르치고 추문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왔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말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이곳의 관리로부터 인정받아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할 수 있는 허가를 받도록 요청하기를 원한다.”

“당신께서는 지난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는데요.”

“지난번에 나는 너무 많은 것들로 모독당하는 하느님의 집에 대한 열성으로 불타고 있었다. 지난번에 나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리고 내 집에 대한 사랑으로 행정관리들과 사제들보다 더 높은 그의 권위를 가지고 행동한 상속자였다. 지금 나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므로 그것도 이스라엘에게 가르쳐주려는 것이다. 그런데 유다야, 너는 제자가 자기 스승보다 높다고 생각하느냐?”

“아닙니다. 예수님.”

“그런데 너는 누구고, 나는 누구냐?”


“당신께서는 스승이시고, 저는 제자입니다.”

“그렇다면, 만일 네가 그렇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너는 왜 스승을 가르치기를 원하느냐? 가거라. 그리고 순종해라. 나는 내 아버지께 순종한다. 너는 네 스승에게 순종해야 한다. 이것이 하느님의 아들이 되기 위한 첫째 조건이다. 즉 아버지께서는 거룩한 명령들밖에 내리실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명령들에 대하여 따지지 않고 순종하는 것이다. 제자의 첫째 조건은 자기의 스승은 알고 있고 올바른 명령밖에 내릴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에게 순종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저는 순종하겠습니다.”

“나는 너를 용서한다. 가보아라. 그리고 유다야, 또 한 가지를 잘 듣고, 이것을 기억해라. 나중에 항상 마음에 새겨라.”

“순종하는 것 말씀입니까? 예, 저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니다. 내가 성전에게 경의를 표하고 겸손했다는 것을. ‘성전에게’라고 함은 ‘지배계급들에게’라는 뜻이다. 가거라.”

유다는 생각에 잠긴 채 캐묻듯이 그분을 쳐다보지만… 감히 다른 질문들을 하지는 못하고 생각에 잠긴 채 간다.
…그는 화려한 겉옷을 입고 있는 사람과 함께 온다.

“선생님, 이분이 행정관입니다.”

“평화가 당신과 함께 있기를. 나도 이스라엘의 라삐들 중 한사람으로서 가르칠 것을 허락해주시기를 당신에게 청합니다.”

“당신은 라삐십니까?”

“그렇습니다.”

 

“당신의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나에게 그분의 지혜로 말씀하시고, 성경의 모든 말씀을 밝혀주시는 하느님의 성령이십니다.”

“당신은 힐렐보다 더 위대하시나요? 당신은 스승 없이 모든 교리들을 안다고 하시니 말입니다. 자기를 함양시켜주는 사람이 없는데, 사람이 어떻게 함양될 수 있습니까?”


“다윗이 세워진 것과 같습니다. 그는 무명의 작은 목동이었지만, 주님의 뜻에 의하여 강력하고 지혜로운 왕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나는 다윗 가문 야곱의 아들 나자렛의 요셉과, 다윗 가문의 요아킴과 아론 가문의 안나의 딸 동정녀 마리아의 아들 예수요. 고아였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율법에 따라 대사제의 주례로 성전에서 혼인한 동정녀 마리아 말입니다.”

“누가 그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그 사건을 기억하는 몇몇 레위인들이 아직 있을 것입니다. 내 친척인 아비야 계열의 즈카르야와 동년배인 사람들 말입니다. 만일 당신이 내 진실성을 의심한다면, 그들에게 물어보시오.”

“나는 당신의 말을 믿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가르칠 능력이 있다는 것을 누가 나에게 증명할 수 있습니까?”

“내 말을 들으시오. 그러면 당신을 직접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가르칠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나자렛 사람이 아닙니까?”

“나는 카이사르가 명한 인구조사가 실시되었을 때 유다의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습니다. 불공평한 명령들에 의하여 추방된 다윗의 후손들은 지금 사방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문은 유다 가문이에요.”

“당신도 아시겠지만… 바리사이들과… 모든 유다인들이… 갈릴래아를 통틀어…”

“나도 압니다만, 안심하시오. 나는 베들레헴, 우리 가문의 출신지인 베들레헴 에프라타에서 태어났소. 지금 내가 갈릴래아에서 살고 있는 것은 오로지 주어진 예언이 성취되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행정관은 누군가가 부르는 곳으로 달려가느라 다른 곳으로 몇 미터 가량 간다.

 

유다가 묻는다.
“당신께서는 왜 당신이 메시아라는 말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내 말이 그렇게 말할 것이다.”

“이루어질 표징이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말씀의 가르침 아래 이스라엘을 일치시키는 일이다. 나는 예언자들이 말하는 목자이며, 그래서 나는 모든 지역의 모든 양들을 모으려고 왔다. 나는 병든 양들을 고쳐주고, 방황하는 양들을 좋은 풀밭으로 데려다놓으려고 왔다.
나에게는 유다나 갈릴래아, 데카폴리스나 이두매아가 없고 오직 한 가지가 있을 뿐인데, 그것은 일별하여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 구원하기 위해서만 품에 안는 사랑이다…”

예수께서는 영감을 받으셨다. 그분께서는 그분으로부터 빛살들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그분의 꿈에 대하여 미소 지으신다. 유다는 감탄하며 그분을 응시한다.

 

호기심 많은 몇 사람들이 서로 다른 품위로 매혹하고 충격을 주는 두 사람에게 다가온다.
예수께서는 그 작은 무리를 보시고 그들에게 미소 지으시는데, 어떤 화가도 결코 그 감미로움을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미소이고, 어떤 신자라도 그것을 보지 않고서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그런 미소이다.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영원한 말씀을 듣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오시오.”

예수께서는 회당의 어떤 아치형 현관 아래로 가셔서 기둥에 기대어 서서 말씀을 시작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의 사건을 언급하시며 말문을 여신다.

“오늘 아침 나는 시온으로 들어오다가 몇 푼이 동전 때문에 두 명의 아브라함의 후손이 서로를 죽이려고 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저주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너희는 사람을 죽이지 마라’고 말씀하셨고, '율법을 어기는 자는 저주받을 것이다‘라고도 말씀하셨으니까요.
그러나 나는 율법의 영(spirit)에 대한 그들의 무지에 연민을 느껴 그들이 회개할 기회를 얻고, 하느님을 알고, 순종하며 그분을 섬기고,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그들의 원수들도 사랑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그들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막기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여, 그렇습니다. 여러분에게 새 날이 밝아오고 있고, 사랑의 계명은 더 밝아지고 있습니다. 안개 낀 에타님(Ethanim) 달(키슬레우 달(11월-12월)의 다른 이름), 낮들이 꿈보다 짧고 밤들이 재앙보다 긴 음산한 키슬레우(Chislev) 달로 한 해가 시작됩니까?아닙니다. 한 해는 모든 것이 미소 짓고, 가장 가난하고 가장 우울한 사람의 마음도 희망을 향하여 열리는 꽃이 만발하고, 날씨가 화창하고, 행복한 니산(Nisan) 달로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여름이 그 곡식들과 햇빛과 열매와 함께 다가오고 있고, 별이 빛나는 하늘 아래 꽃들로 가득한 풀밭 위에서 자도 즐거운 시절이며, 모든 땅이 채소와 과일을 내어 사람의 허기를 달래주기 때문에 먹고 살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여, 기다림의 때인 겨울은 지나갔고, 성취되고 있는 언약의 기쁨이 지금 여기 있습니다. 빵과 포도주(the Bread and Wine: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 즉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제헌을 말하며 성체성사를 암시하고 있음)가 여러분의 허기를 달래주기 위하여 준비되려 하고 있고, 태양(the Sun)이 여러분 가운데 있습니다. 모든 것이 이 태양 아래에서 더 자유롭고 더 기쁘게 숨 쉽니다. 우리 율법의 계명 즉 거룩한 계명들 중 첫째이고 가장 거룩한 계명인 ‘네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 하는 계명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주어졌던 희미한 빛 안에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너희의 원수들을 미워해라.’ 사실 아담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 죄로 인하여 하느님의 진노가 아직 여러분을 내리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분은 더 낫게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조국의 국경을 침범하는 사람만이 여러분의 원수가 아니라 사적으로 여러분을 모욕했거나 여러분이 모욕했다고 생각한 사람도 여러분의 원수였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의 마음에 증오심이 은밀하게 불타고 있었습니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형제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또한 모욕당하지 않고 늙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을 모욕하는 사람들도 사랑하시오.’ 아담과, 그를 통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께 대한 죄인이고, ‘나는 하느님께 죄짓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렇게 하시오. 그분께서는 한번만이 아니라 수십 번, 수천 번 용서해주시는데, 땅 위에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용서해주시는 것처럼 여러분도 용서해주시오. 만일 여러분이 여러분에게 해를 끼친 형제에 대한 사랑으로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여러분에게 빵과 생명을 주시고, 여러분의 세속적 필요를 채워주시고, 그분의 품안에서 여러분을 위한 영원한 평화를 얻게 하시기 위하여 모든 사건들을 안배해 오신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그렇게 하시오.
이것은 새로운 율법, 하느님의 봄날의 율법입니다. 이 봄날은 사람들 가운데 계시는 은총(Grace)이 꽃피는 시간이며,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의 문들을 열어줄 유례없는 열매를 맺을 시간입니다.

광야에서 말했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습니다만, 그것이 벙어리가 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느님께 말씀드리고 있으며, 여전히 정직한 모든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시는 주님께 길들을 준비해드리기 위하여 여러분에게 회개하라고 가르치고, 잉여의 것을 생활필수품조차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사랑을 가지라고, 남의 물건을 강탈하지 말고 남을 모욕하지 말라고, 정직하라고 가르친 다음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들을 없애시는 이, 성령의 불로 여러분에게 세례를 줄 이가 여러분 가운데 있습니다. 그는 자기 타작마당을 깨끗이 치우고, 자기의 낟알을 거두어들일 것입니다.’


선구자가 여러분에게 가리키는 그 사람을 알아보려고 애쓰시오. 그의 고통은 여러분에게 빛을 주시도록 하느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보시오. 나는 여러분의 영적인 눈이 뜨이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오고 있는 빛을 알아보게 될 것입니다.

나는 메시아를 예고하는 예언자의 목소리를 받아 내가 아버지에게서 받는 힘으로 그 목소리를 증폭시키고, 나 자신의 권위를 그것에 합쳐 여러분을 율법의 진리로 부릅니다. 다가오는 구속의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여러분의 마음을 준비하시오. 구속자(the Redeemer)는 여러분 가운데 와 있습니다. 착한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구속받을 자격을 가지게 될 사람들은 복됩니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누군가가 묻는다.
“당신은 세례자의 제자이십니까? 당신이 그분에 대하여 그토록 경의를 가지고 말씀하시니 말입니다.”

“나는 세례자가 옥에 갇히기 전에 요르단 강둑에서 그분에게 세례 받았습니다. 그분이 하느님이 보시기에 거룩하기 때문에 나는 그분을 존경합니다.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아브라함의 후손 중에서 그분보다 은총에 있어 더 큰 사람은 없습니다. 그분의 출생 시부터 사망 시까지 하느님의 눈은 그 복된 사람 위에 멸시의 감정 없이 머무실 것입니다.”

“그분은 당신에게 메시아에 대하여 어떤 확증을 주었습니까?”

“거짓말하지 않는 그분의 말이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살아 있는 메시아를 가리켜주었습니다.”

“어디서요? 언제요?”

“그렇게 할 시간이 되었을 때요.”

그러나 유다는 모든 사람에게 말할 필요를 느낀다.
“메시아는 지금 여러분에게 말씀하시고 계시는 분입니다. 나는 그것을 선언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분을 알고, 이분의 첫 번째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분이!… 오!”


사람들은 놀라서 물러선다. 그러나 예수께서 참으로 부드러우시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시 그분 주위로 모여든다.

“이분께 기적들을 행해달라고 청하시오. 이분께서는 능력 있으십니다. 이분께서는 병을 고쳐주실 수 있습니다. 이분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분께서는 여러분의 모든 질문들에 답하실 수 있으십니다.”

“내가 병자라고 내 대신 말씀해주시오. 내 오른쪽 눈은 멀었고, 내 왼쪽 눈은 안 보이기 시작합니다…”

“선생님.”

“유다야.”

어린 소녀를 쓰다듬어주고 계시는 예수께서 돌아보신다.

“선생님, 이 사람은 거의 장님이 되었는데, 보기를 원합니다. 저는 당신께서 하실 수 있다고 이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믿음을 가진 사람을 고쳐줄 수 있다. 여보시오, 당신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저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믿습니다. 저는 벳자타의 못에 들어가려고 이곳에 왔습니다. 그러나 항상 저보다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은 나를 믿을 수 있소?”

“저는 연못의 천사를 믿는데, 당신의 제자가 메시아라고 말하는 당신을 믿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께서는 미소 지으시며, 그분의 한 손가락에 침을 묻혀 병든 눈에 가볍게 대신다.
“무엇이 보입니까?”

“제 눈에 낀 안개 없이 물건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당신께서는 반대쪽 눈은 고쳐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예수께서는 다시 한 번 미소 지으시며 병든 눈에 다시 그 손짓을 하신다.
“지금 당신은 무엇을 봅니까?”
그분께서는 보이지 않는 눈에서 그분의 손가락을 떼시며 말씀하신다.

“아! 이스라엘의 주님! 저는 제가 어렸을 때 풀밭들을 뛰어다닐 때처럼 볼 수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영원히 찬미 받으십시오!”
그는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운다.

“가시오. 하느님께 대한 감사로 착하게 사시오.”

기적 끝 무렵에 온 레위인이 묻는다.
“당신은 무슨 권위로 그런 일들을 하십니까?”

“당신은 그것을 나에게 묻고 있습니까? 만일 당신이 내 질문에 대답한다면, 나는 당신에게 그것을 말해드리겠습니다. 당신이 보시기에 메시아를 예고하는 사람과 메시아 자신 중 누가 더 위대합니까?”

“이 무슨 질문입니까! 메시아가 더 위대하지요. 그분께서는 지극히 높으신 분에 의하여 언약되신 구세주니까요.”

“좋습니다. 그렇다면 예언자들은 왜 기적들을 행했습니까? 무슨 권위로요?”

“하느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증명하도록 하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권위로요.”

“그렇다면 나도 같은 권위로 기적들을 행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는 그분과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는 것이 진리이고, 메시아는 더 큰 권리와 더 큰 능력을 가지고 예언자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증명합니다.”

레위인은 생각에 잠긴 채 가고, 환상이 끝난다.

 


 

69. 가리옷의 유다를 가르치시다

1945. 1. 3.

 

나는 다시 한 번 예수와 유다를 본다. 그들은 유다인 남자들에게만 접근이 허용된 지성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기도한 다음 성전에서 나오고 있다.

유다는 예수와 함께 있고 싶어 하지만, 그분께서는 그의 청을 거절하신다.

 

“유다야, 밤 시간에 나는 혼자 있고 싶다. 밤에 내 영혼은 아버지로부터 그 자양분을 얻는다. 나에게는 기도와 묵상과 고독이 물질적인 음식보다 더 필요하다. 영에 따라 살고 다른 사람들을 같은 생활로 인도하려는 사람은 육체는 무시하고―나는 그것을 죽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자기의 모든 주의를 영에 기울여야 한다.

 

유다야, 너도 알다시피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해야 한다. 만일 네가 진정으로 하느님께, 즉 초자연적인 것에 속해 있기를 원한다면, 너도 그렇게 해야 한다.”


“선생님,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땅 위에 살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가 육체를 돌보지 않고 영혼만을 돌볼 수 있겠습니까? 당신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너희는 살인하지 말라’는 하느님의 계명과 반대되지 않습니까? 계명은 자살도 금지하지 않습니까? 만일 생명이 하느님의 선물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사랑해야 합니까,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까?”

“나는 너에게는 단순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내가 대답하는 것과는 다르게 대답하겠다. 그런 사람은 자기의 영혼이나 생각을 초자연적인 영역들로 들어올리기만 하면, 우리는 그를 우리와 함께 영의 왕국들(spiritual kingdoms)로 날아 올라가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너는 단순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너는 너를 세련되게 만드는 환경 속에서 너 자신을 형성했고… 그것은 그 트집들과 가르침들로 너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였다.

유다야, 너는 솔로몬을 기억하느냐? 그는 지혜로웠다. 그는 그 시대에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너는 그가 그 시대의 모든 지식을 섭렵하고 나서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기억하느냐?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 사람이 해야 할 일의 전부이다.’

지금 나는 독이 아니라 음식으로부터 영양을 얻을 줄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너에게 말하겠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어떤 음식이 그것의 결과들을 중화시킬 수 있는 우리의 유익한 체액들보다 더 강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해로운 반응들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우리에게 해롭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설사 그것이 맛있다 해도 더 이상 먹지 말아야 한다. 담백한 빵과 샘에서 길어 온 물이 어지럽히고 중독시키는 약물들을 포함하고 있는 왕의 식탁의 세련된 음식들보다 낫다.”

“선생님, 저는 무엇으로부터 떠나야 합니까?”

“너는 네가 너를 어지럽힌다는 것을 아는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야 한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평화이시므로, 만일 네가 하느님의 길을 따르기를 원한다면, 너는 혼란을 만들어내고 야기하는 평화가 아닌 모든 것을 네 생각, 네 마음, 네 육체에서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의 생활방식을 고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너를 돕기 위하여 여기 있다. 나는 사람이 다시 하느님의 아들이 되고, 새 창조 즉 사람 자신이 원하는 자기창조(autogenesis)를 통하여 자신을 재창조하는 것을 돕기 위하여 여기 있다.

그러나 나는 네가 내 탓으로 잘못된 생각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고 네가 말하지 않도록 네 질문에 대답하겠다. 자살이 다른 사람들을 죽이는 것과 같다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 자신과 타인들의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이고, 그래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만이 그것을 가져가실 권위를 가지고 계신다. 자살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교만을 고백하는 것인데, 하느님께서는 교만을 미워하신다.”

“그가 자신의 교만을 고백한다고요? 저는 그의 실망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실망은 교만이 아니고 무엇이냐? 유다야, 생각해보아라. 사람이 왜 실망하느냐? 불행들이 집요하게 그를 동요시켜 그가 자기 혼자서 그 불행을 극복하기를 원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거나, 자기가 죄지어 하느님께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 경우 모두 교만이 근본적인 이유가 아니냐?


자기 혼자서 모든 것을 하려 하는 사람은 더 이상 아버지께 자기의 손을 내밀고 그분께 ‘저는 할 수 없지만, 당신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당신께 모든 것을 바라고 당신을 기다리오니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말씀드릴 만큼 겸손하지 못하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용서해주실 수 없다’고 말하는 다른 사람은 하느님을 자기 자신의 척도들로 재서, 자기가 하느님을 모욕한 것 같은 모욕을 당한 다른 사람이 자기를 용서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 역시 교만이다.


겸손한 사람은 설사 자기가 받은 모욕으로 인하여 고통당한다 해도 이해하고 용서해주지만, 교만한 사람은 용서해주지 않는다. 그는 자기의 머리를 숙이고 ‘아버지, 저는 죄지었으니, 당신의 불쌍한 죄 많은 아들을 용서해주십시오’ 하고 말할 줄 모르기 때문에 그도 교만하다. 유다야, 너는 새 생활로 다시 올라가기를 원하는 진실하고, 뉘우치고, 겸손한 마음으로 용서받기를 간청한다면,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용서해주신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나 어떤 죄들은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네가 하는 말이다. 그리고 사람이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기를 원하기 때문에만 그것이 사실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하는데, 만일 사람이 자장 큰 죄(crime of crimes)를 지었다 해도 그 죄지은 사람이 아버지―유다야,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서 아버지라고 불리시는 것인데, 그분께서는 무한히 완전하신 아버지시다―의 발아래 달려가 울고 용서해주시기를 간구하며 실망하지 않고 속죄의 제물을 드린다면, 아버지께서는 그가 속죄할 수 있게 해주시고, 그래서 그가 용서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어 자기의 영혼을 구할 힘을 주실 것이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당신께서는 성경에 자살했다고 기록된 사람들은 잘못했다고 말씀하시는군요.”

“누구에게도, 자기 자신에게도 폭력을 행하는 것이 적법하지 않다. 그들은 잘못한 것이다. 선에 대한 그들의 불완전한 지식으로 인하여 그들은 어떤 경우들에는 하느님에게서 자비를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말씀이 모든 진리를 밝혀주고, 그의 영으로 영혼들에게 힘을 준 다음에는 자포자기하여 죽는 사람은 더 이상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사심판(the personal judgement) 때에도, 게헨나에서 여러 세기들을 지낸 후의 공심판(Doomsday) 때에도 말이다. 결코.

이것이 하느님 편의 냉혹함이냐? 아니다. 그것은 정의이다.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실 것이다. ‘나에 의하여 자유롭게 창조되고 이성과 초자연적인 지식을 부여받은 피조물인 너는 신실한 내 품으로 오기만 하면 더 이상 가책을 느끼지 않으리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너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겠다고 결정하며 말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용서해주시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하느님과 영원히 분리된다. 나는 나 자신의 죄에 대하여 내 스스로 법을 적용한다. 나는 가책을 피하기 위하여 목숨을 끊고 있다.’ 네가 판단한 대로 너에게 되게 해라. 나는 내가 너에게 준 자유에 대하여 폭력을 행사하지 않겠다.’

이것이 영원하신 아버지께서 자살자에게 하실 말씀이다. 유다야, 그것을 묵상해라. 생명은 선물, 사랑받아야 할 선물이다. 그것은 어떤 선물이냐? 거룩한 선물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거룩하게 사랑해야 한다. 육체가 버텨내는 동안 생명이 지속된다. 그 다음에 위대한 생명(the great Life), 영원한 생명이 시작된다. 의인들에게는 복된 행복의 생명이고, 불의한 사람들에게는 저주의 생명이다.

생명이 목적이냐, 수단이냐? 그것은 수단이다. 그것은 영원인 목적을 위하여 그것을 섬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이 지속되게 하고, 영혼을 그 다스림 안에서 섬기는 데 필요한 것을 생명에게 주어야 한다. 육체의 모든 정욕들을 절제해야 한다. 모든 정욕들을. 생각의 모든 갈망들을 절제해야 한다. 모든 갈망들을. 모든 인간적인 격정들을 절제해야 한다. 그 대신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 선과 성덕에 있어서의 영웅적인 정신(heroism) 등 천국의 정열들을 위한 열심에 무한해야 한다.

유다야, 나는 네 질문에 대답했다. 너는 납득했느냐? 이 설명이 충분하냐? 항상 정직해라. 그리고 네가 아직 충분히 알지 못한다면 질문해라. 나는 네 스승이 되어주려고 여기 있다.”

“저는 알아들었는데,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해한 것을 행하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당신께서는 거룩하시니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만… 저는 젊고 생명이 넘치는 남자입니다…”

“유다야, 나는 천사들이 아니라 사람들을 위하여 왔다. 천사들은 선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고 그분의 낙원에서 살고 있지만 사람들의 격정을 모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명이신 지성(the Intelligence)께서는 사람들의 수호천사들이 아닌 천사들에게도 모든 것을 알게 해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신령하므로 그들 중 한 천사가 가지고 있었고, 사랑이 더 약한 천사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짓게 한 한 가지 죄밖에 지을 수가 없는데, 그것은 교만이다. 교만은 대천사들 중 가장 아름다운 대천사였던 루치페르의 모습을 흉하게 만들어 심연의 소름끼치는 괴물이 되게 한 화살인 것이다.


나는 천사들을 위하여 오지 않았다. 그들은 루치페르가 타락한 후 교만한 생각의 그림자도 두려워한다. 나는 사람들을 위하여 왔는데, 그들을 사람 천사들(angels of men)로 만들려고 왔다.

사람은 창조의 완성이었다. 그는 천사의 영혼을 가지고 있었고, 동물의 충만한 아름다움 즉 그 모든 동물적이고 정신적인 부분들에 있어 완전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와 동등한 피조물은 없었다. 그는 하느님께서 하늘의 왕이신 것처럼 땅의 왕이었고, 땅 위에서 마지막으로 잠든 어느 날 하늘에서 아버지와 함께 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탄은 천사인간(angel-man)의 날개들을 찢고, 맹수의 발톱들을 달아주고, 음란에 대한 갈증을 넣어주고, 그를 단순히 사람이 아닌 사람마귀(man-demon)로 묘사되는 편이 더 나은 존재가 되도록 유혹했다.

나는 사탄에 의하여 야기된 손상과 더럽혀진 육체의 타락한 갈망을 제거하기를 원한다. 나는 사람에게 그의 날개들을 돌려주고, 다시 한 번 그를 왕, 아버지와 하늘 왕국의 공동 상속자(co-heir)가 되게 하기를 원한다. 만약 사람이 원한다면, 그는 내가 말하는 것 즉 다시 왕과 천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너희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불가능한 교리들을 설파하는 수사학자들 중의 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진짜 육체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 육체의 경험을 통하여 사람의 유혹들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죄들은 어떻습니까?”

“모든 사람은 유혹당할 수 있지만, 죄인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만이 죄인이 된다.”

“예수님, 당신께서는 죄지으셨던 적이 있습니까?”

“아니다. 나는 결코 죄짓기를 원하지 않았다.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의 아들이 죄짓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그가 죄짓지 않고, 사람도 죄짓기를 원치 않는다면 죄짓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사람에게 증명하기를 원했고, 원하기 때문이다.”

“당신께서는 유혹당하신 적이 있습니까?”

“유다야, 나는 30세이다. 그리고 나는 산 위의 동굴에서 살지 않았고, 사람들 가운데에서 살았다. 그런데 만일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외딴 곳에 있었다면, 너는 나에게 유혹들이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우리는 우리 안에 선과 악 둘 다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지니고 있다. 하느님의 숨결이 선 위로 불어와 향내 나는 거룩한 향로처럼 그것을 활성화시킨다. 그리고 사탄은 악에 입김을 불어 맹렬한 불을 붙여놓는다. 그러나 부지런한 선의와 항구적인 기도는 지옥 불 위의 젖은 모래와 같아서 그것을 질식시키고, 끈다.”

 

“하지만 만일 당신께서 결코 죄지으신 적이 없다면, 당신께서는 어떻게 죄인들을 판단하실 수 있습니까?”

“나는 사람이고, 하느님의 아들이다. 나는 내가 사람으로서 모르고 잘못 판단할 수 있는 것을 하느님의 아들로서 알고 판단한다. 결국!… 유다야, 나의 이 질문에 대답해라. 배고픈 사람이 ‘나는 지금 식탁에 앉겠구나’ 하고 말하는 것과 ‘내가 먹을 음식이 없구나’ 하고 말하는 것 중에서 어떤 경우가 더 괴롭겠느냐?”

“그는 후자의 경우에 더 괴로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먹을 것이 없다는 생각만으로도 맛있는 음식 냄새를 맡게 되고, 먹고 싶은 욕망으로 그의 창자가 뒤틀릴 테니까요.”

“맞다, 유다야. 유혹은 그 욕망처럼 사람들을 괴롭힌다. 사탄은 그것을 어떤 만족된 욕구보다 더 강렬하고, 더 실제적이고, 더 유혹적인 것으로 만든다. 나아가 그 행위는 만족시키지만 때로는 역겹게 하기도 하는 반면, 유혹들은 약해지지 않고 전지된 나무들처럼 점점 더 강해진다.”

“그런데 당신께서는 한 번도 유혹에 넘어가셨던 적이 없습니까?”

“전혀 없다.”

“당신께서는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었습니까?”

“‘아버지, 제가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주십시오’ 하고 나는 말했다. ”

“뭐라고요? 메시아이신 당신께서, 기적들을 행하시는 당신께서 당신의 아버지께 도움을 청하셨다고요?”

“도움만 청한 것이 아니다. 나는 나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주십사고 그분께 청했다. 너는 내가 나라는 이유만으로 아버지 없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오! 아니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하는데,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그분의 아들에게 주시고, 아들은 모든 것을 아버지로부터 받는다. 또한 내가 너에게 말하겠는데,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면 모든 것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내가 기거하는 겟세마니에 다 왔구나. 담장들 너머로 올리브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너는 토펫 너머에 살고 있지. 날이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너는 저기까지 가지 않는 편이 낫겠다. 내일 같은 장소에서 다시 만나자. 잘 가거라. 평화가 너와 함께 있기를.”

“선생님, 평화가 당신과 함께 있기를… 하지만 저는 다른 것을 당신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키드론 개울까지 당신과 함께 갔다가 돌아오겠습니다.
당신께서는 왜 이렇게 초라한 곳에 머무르십니까? 당신께서도 아시다시피 사람들은 아주 많은 것들을 다 살핍니다. 당신께서는 시내에 아름다운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알지 못하십니까? 만일 당신께서 원하신다면, 저는 당신을 몇 명의 친구들에게 모시고 갈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제가 그들에게 잘 대했기 때문에 당신에게 숙소를 제공할 터인데, 그 집이 당신께 더 어울릴 것입니다.”

“너는 그렇게 생각하느냐?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백성의 모든 계급들은 합당하거나, 합당하지 않다. 사랑을 결여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정의에 어긋나지 않도록 내가 너에게 말하겠는데, 합당하지 않은 사람들, 악의적으로 합당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주 유력자들 중에서 발견된다.
착하게 되거나 하느님의 눈에 착하게 보이거나 죄들이 가려지는 데 있어 유력하게 되는 것이 불필요하고 무익하다. 모든 것이 내 표지 아래서 뒤바뀔 터인데, 위대한 사람은 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겸손하고 거룩한 사람일 것이다.”

“그렇지만 존경받고 군림하려면…”

“헤로데가 존경받느냐? 카이사르가 존경받느냐? 그렇지 않다. 그들을 사람들의 입술과 마음에서 인내와 저주의 대상이다. 유다야, 내가 말하는데, 나는 착한 사람들에게나 단순히 선의를 가진 사람들에게 위엄으로보다는 겸양으로 군림하는 편이 더 쉬울 것이다.”

“하지만… 당신께서는 항상 유력자들을 경멸하실 겁니까? 당신께서는 그들을 원수로 만드실 텐데요! 저는 제가 아는 영향력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당신에 대하여 말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나는 아무도 업신여기지 않겠다. 나는 부자들과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들도, 왕들과 마찬가지로 노예들도, 죄인들과 마찬가지로 순결한 사람들도 만나겠다.
나는 그 집과 음식이 어떻든 내 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나에게 빵과 숙소를 제공해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워하겠지만, 항상 소박한 것들을 선호할 것이다.


유력자들은 이미 많은 즐거움들을 누리고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정직한 양심, 충실한 사랑, 자녀들, 자신들 위에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듣는 즐거움만을 가지고 있다. 나는 항상 가난한 사람들, 고통당하는 사람들, 죄인들에게 다가가겠다.

 

나는 너의 좋은 의향에 감사한다. 하지만 이 기도와 평화의 장소에 나를 두고 가거라. 하느님께서 너에게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너에게 알려주시기를.”

예수께서는 유다를 떠나 올리브나무들 있는 곳으로 들어가신다. 환상이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