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새번역)/2권 공생활 첫해

하사시 2권 p10~p22 [45. 요르단 강에서 세례 받으시다~46. 예수께서 광야에서 마귀(the Devil)에게 유혹당하시다]

Skyblue fiat 2024. 11. 21. 14:00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2권 공생활 첫해  p10~p22
 

※ 통독한 뒤 마음에 세길 구절 1~2개를 나눕니다

 

 

45. 요르단 강에서 세례 받으시다

1944. 2. 3. 저녁.


나는 마을들도, 식물들도 없는 메마른 평지를 본다. 경작된 밭들은 없고, 토양이 깊고 덜 메마른 곳에 약간의 이상한 식물들이 여기저기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다. 이 메마르고 버려진 땅이 내 오른편에 있고, 내 등 뒤에 있는 북쪽에서부터 황량한 지역이 남쪽으로 뻗어나간다는 것을 상상해보라.

반면 나는 내 왼쪽에서 제방들이 아주 낮은 강을 보는데, 그것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천천히 흐르고 있다. 유속이 아주 느린 것으로 보아 나는 이 강의 하상에 낭떠러지들이 없고, 이 평지에서 이 강이 물길을 만들어 흘러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의 흐름은 겨우 늪지들이 형성되는 것을 피할 정도이다. 이 강은 아주 얕아 바닥이 보일 정도이다. 나는 그 수심이 1미터, 아니면 기껏해야 1.5미터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의 너비는 산 미니아또 엠뽈리 근처의 아르노 강 정도로서 약 20미터쯤 될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눈대중이 좋지 못하다. 그럼에도 그것의 색깔은 강기슭 가까이에서는 연초록빛이며, 강기슭들의 축축한 땅에는 띠 모양의 무성한 초록빛 식물들이 있어 보기에 아주 유쾌하다. 반면 이곳의 앞에는 극히 단조로운 돌들과 모래로 덮인 황량한 광경이 있을 뿐이다.

내가 무엇에 주의해야 하고,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를 나에게 말해준다고 내가 당신에게 말했던, 내가 듣는다는 그 내적인 목소리는 지금 내가 요르단 강 계곡을 보고 있다고 나에게 말해준다. 나는 이것을 계곡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 이유는 강이 흐르는 곳을 흔히 그렇게 부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것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 부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왜냐하면 계곡이라면 산들의 존재를 상정하는데, 나는 이 근처에서 어떤 산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요르단 강 가까이에 있고, 내 오른쪽의 황량한 벌판은 유다의 사막이다.

집들이나 인공물들이 없는 곳을 사막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다 해도, 그것은 사막에 대한 우리의 관념에 그리 잘 들어맞지 않는다. 이곳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사막의 모래언덕들은 없고, 홍수 후의 충적토처럼 돌들과 돌무더기들이 널려 있는 메마른 땅이 있을 뿐이다. 먼 곳에는 산들이 있다.

그러나 요르단 강 근처에는 트라시메노 호숫가에서 우리가 자주 느끼듯이 큰 평화, 특별하고 예외적인 무언가가 있다. 이곳은 날아다니는 천사들이나 천상의 목소리들에 대한 기억들로 충만한 것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나는 내가 느끼는 것을 정확하게 묘사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내가 내 영혼과 대화하는 곳에 있다고 느낀다.

내가 이것들을 관찰하고 있는 동안에 나는 요르단 강의 우안에(내편에서 보기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는 것을 본다. 다양한 복장의 많은 사람들이다. 그중 일부는 서민들이고, 일부는 부자들이며, 바리사이들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튜닉이 술들로 장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나는 그들이 바리사이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 가운데에 한 남자가 바위 위에 서 있는데, 나는 그를 처음 보지만 그가 세례자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본다. 그는 군중에게 말하고 있는데, 나는 그의 설교가 결코 부드럽지 않다는 것을 당신에게 단언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야고보와 요한을 ‘천둥의 아들들’이라고 부르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과격한 웅변가를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세례자 요한은 벼락, 눈사태, 지진이라는 이름들과 어울릴 것 같은데, 그만큼 그는 연설과 몸짓들에 있어 과격하고 준엄하다.

그는 메시아를 선포하고, 모든 장애물들을 뿌리 뽑고, 자기들의 생각을 바로잡아 그분의 오심을 위하여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라고 사람들에게 권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격렬하고 거친 화법이다. 선구자는 예수께서 마음의 상처들을 치유하시는 데 사용하셨던 부드러운 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상처를 노출시키고, 그것을 철저히 조사하여 무자비하게 잘라내는 의사이다.

내가 그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에―나는 그 말들을 되풀이하지는 않겠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복음사가들에 의하여 말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것들은 그 충동성에 있어 증폭되어 있다―나는 내 예수께서 요르단 강변의 풀이 나 있고 그늘진 사면에 나 있는 오솔길을 따라 오고 계시는 것을 본다. 이 시골길은―이것은 도로라기보다는 오솔길이다―물이 아주 얕아 쉽게 건널 수 있는 지점으로 가기 위하여 여러 해, 여러 세기들 동안에 다닌 대상들과 여행자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 오솔길은 강 건너편으로 이어진 다음 건너편 기슭의 초록빛 띠 속으로 시야에서 사라진다.


예수께서는 혼자시다. 그분께서는 천천히 걸어서 앞으로 나아가 요한의 뒤에 이르신다. 그분께서는 소리 없이 다가가시며 마치 그분 자신도 세례를 받고 메시아의 오심을 위하여 정화되려고 요한에게로 오는 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신 것처럼 광야의 속죄자의 우레와 같은 목소리를 들으신다.

예수께서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분의 옷차림은 서민층의 그것과 같지만, 그분의 몸가짐과 잘 생긴 외모는 귀족처럼 보이신다. 그러나 그분을 군중과 구별하게 해주는 모종의 신성한 표지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그분으로부터 발산되는 특별한 영성(spirituality)을 느끼는 것 같다. 그는 뒤돌아서고, 즉시 그 발산의 근원을 알아본다. 그는 강단처럼 쓰던 바위에서 충동적으로 내려와 군중에게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멈추어 한 나무의 줄기에 기대어 서 계시는 예수를 향하여 빨리 간다.

예수와 요한은 잠시 서로를 응시한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몹시 다정한 파란 눈으로 바라보시고, 요한은 대단히 엄격한 검고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본다. 가까이서 보니 두 분의 모습은 완전히 정반대이다. 두 분 모두 다른 사람들보다 키가 큰데, 그것이 그분들의 유일한 같은 점이고, 나머지 모든 점에 있어 그분들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예수께서는 금발이시고, 머리카락은 길고 단정하며, 얼굴빛은 흰 상아색이고, 눈은 푸르고, 옷은 수수하지만 위엄이 있다.

요한은 털북숭이고, 검은 직모는 들쭉날쭉하게 그이 양어깨에까지 내려와 있고, 성긴 검은 수염은 그의 얼굴 전체를 거의 덮고 있고, 두 뺨은 단식으로 인하여 움푹 들어가 있으며, 열띤 눈은 검고, 얼굴은 햇볕과 비바람으로 인하여 구릿빛으로 그을려 있고, 몸은 털로 덮여 있다. 그는 가죽 끈으로 허리에 졸라매진 채 그의 야윈 옆구리들까지 내려오지만 그의 오른쪽은 덮지 않아 완전히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의 맨살을 드러나게 하는 낙타털 가죽 옷을 걸치고 있는 반라의 몸이다.

 

두 분이 가까이 서 있으니 그들은 마치 야만인과 천사 같다.

요한은 그의 찌르는 듯한 눈으로 예수를 찬찬히 살피고 나서 부르짖는다.
“여기 하느님의 어린양이 계십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예수께서는 조용히 대답하신다.
“회개의 의식을 행하기 위해서요.”


“나의 주님, 결코 안 됩니다. 제가 거룩하게 되기 위하여 당신께로 가야 하는데, 당신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분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있는 요한의 머리에 한 손을 얹으신 채 대답하신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하시오. 그렇게 하여 모든 정의가 실현되고, 당신의 의식(儀式)이 더 높은 신비의 시작이 되게 하고, 희생자(Victim)가 세상에 있다는 것이 알려지게 하시오.”

요한은 눈물로 인하여 부드러워진 눈으로 그분을 응시하고 나서 앞장서서 강둑을 향하여 간다. 예수께서는 겉옷과 무릎까지 내려오는 튜닉을 벗으시고 일종의 반바지만을 입고 요한이 앞서 들어가 있는 물로 내려가신다. 그는 자기의 허리띠에 매달려 있는 잔으로 강물을 떠서 예수의 머리에 부어 세례를 준다. 그것은 조개껍데기나 반으로 쪼개 속을 파내고 말린 호박 같다.

예수께서는 참으로 어린양이시다. 그분의 몸의 하얀 피부색으로도, 겸손한 몸가짐들로도, 눈빛의 온유함으로도 그분께서는 어린양이시다.


예수께서 강둑으로 올라와 옷을 입으신 다음에 기도에 집중해 계시는 동안에 요한은 군중에게 그분을 가리키며, 하느님의 성령께서 자기에게 구속자(Redeemer)라고 지목하는 틀릴 수 없는 표로 자기에게 알려주셔서 자기가 그분을 알아보았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나는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데 도취되어 있었기 때문에 강둑의 초록빛을 배경으로 한 그분의 빛나는 얼굴만을 볼 뿐이다.

 
1944. 2. 4.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요한은 그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런 표징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자기 어머니의 태중에서 미리 성화된 그의 영혼은 만일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다면 모든 사람들이 가졌을 초자연적인 지성의 관통(penetration of supernatural intelligence)을 가지고 있었다.

만일 사람이 은총, 무죄성, 자기의 창조주에 대한 충성을 보존하였다면, 그는 외적인 모습을 통하여 하느님을 보았을 것이다. 창세기에 하느님께서는 죄 없는 사람과 허물없이 말씀하셨고, 사람은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기절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목소리를 혼동 없이 식별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들이 자기의 아버지를 보고 이해하는 것과 정확히 똑같이 하느님을 뵙고 이해하는 것이 사람의 운명이었다. 그러다가 사람이 죄를 지었고, 그래서 그는 더 이상 감히 하느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되었고, 하느님을 뵙고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은 지금 점점 더 하느님을 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요한은, 내 종형제 요한은 은총이 가득하신 분(the Full of Grace)께서 불임이었다가 임신하게 된 엘리자벳을 다정하게 포옹했을 때 정화되었다. 작은 아기는 그녀의 태중에서 기뻐 뛰었다. 왜냐하면 그는 마치 상처가 나을 때 그 상처에서 딱지가 떨어지듯이 죄의 딱지들이 자기의 영혼에서 떨어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마리아를 구세주의 어머니로 만드셨던 성령께서 육화하신 구원의 살아 있는 성막(the Living Tabernacle of Incarnate Salvation)이신 마리아를 통하여 태어나려는 그 아기에 대한 그분의 구원사업을 시작하셨던 것이다. 그 아기는 그의 핏줄보다는 더 사명으로 나와 결합하도록 정해져 있었다. 그 사명에 의하여 우리는 말을 표현하는 입술들과 같았다. 그는 복음과 순교 둘 다에 있어 선구자였고, 나는 나의 하느님으로서의 완전성으로 요한이 시작한 복음과 하느님의 율법을 지키기 위하여 당한 그의 순교를 완전하게 해주었다.

요한에게는 아무런 표징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표징은 다른 사람들의 영혼의 어둠을 위하여 필요했다. 요한이 퇴영적이고 둔한 청취자들의 눈과 귀에 분명한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아닌 무엇에 자기의 주장의 근거를 둘 수 있었겠느냐?

나는 세례 받을 필요가 없었지만, 주님의 지혜는 우리의 만남의 순간과 방식을 선택하셨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요한을 그의 동굴에서 광야로 나오게 하시고 나를 내 집에서 나오게 하시어 그 시간에 우리를 결합시키신 다음, 내 위에서 하늘을 여시고,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어야 할 그 위에 신성한 비둘기이신 그분 자신께서 내려오시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선언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들리게 하셨다.

그 선언은 천사의 목소리보다 더 강력했는데, 그것은 내 아버지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그분께서는 사람들이 나를 따르거나 따르지 않는 데 있어 변명하거나 의심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공현들(the manifestations of Christ)은 무수히 많았다. 그의 탄생 후 첫 번째 표징은 동방박사들의 것이었고, 두 번째는 성전에서였으며, 세 번째는 요르단 강변에서였다. 그 다음에는 무수한 다른 표시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것들을 너에게 알려주겠다. 왜냐하면 내 기적들은 내 부활과 승천 같은 마지막 기적들에 이르기까지 내 신성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내 조국은 내 공현들로 가득했다. 마치 사방에 뿌려진 씨앗들처럼 그것들은 모든 계층과 모든 장소에서 일어났다. 목자들, 권력자들, 학자들, 회의적인 사람들, 죄인들, 사제들, 통치자들, 어린이들, 군인들, 유다인들과 이교도들에게 말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과거와 마찬가지로 세상은 그것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세상은 현재의 공현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과거의 것들을 잊어버린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를 구원하기 위하여, 나에 대한 믿음을 가지도록 너희를 설득하기 위하여 같은 일들을 되풀이할 것이다.

마리아야, 너는 네가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바꾸어 말하면, 너에게 복음을 보여줌으로써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너는 아느냐? 이것은 사람들을 나에게로 데려오려는 더 강력한 시도이다. 너는 네 열렬한 기도들로 그것을 갈망했다.

나는 더 이상 말들만으로 나 자신을 제한하지 않을 것이다. 말들은 사람들을 지치게 하고, 멀어지게 한다. 그것은 잘못이지만, 사실이니 어쩌겠느냐? 그래서 나는 내 복음서의 환시들을 포함하여 환시들을 사용할 것이고,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더 매력 있게 하고 더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그것들을 설명할 것이다.

나는 너에게는 그것들을 보는 위안을 주고, 모든 사람에게는 나를 알기를 원할 가능성을 준다. 그런데 만일 그것이 소용없고, 그래서 그들이 무정한 어린이들처럼 그 선물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던져버린다면, 너는 내 선물을 가진 채로 남아 있을 것이고, 그들은 내 의분을 가진 채로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번 오래 전의 질책을 반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피리를 불었는데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우리가 애가들을 불렀는데 너희는 울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상관없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머리 위에 뜨거운 숯불을 모아놓도록 내버려두고, 그들의 목자를 알려고 애쓰는 어린양들 쪽으로 돌아서자. 목자는 나이고, 너는 그들을 나에게로 데려오는 지팡이이다.”


당신(신부님)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저는 서둘러 이 세부적인 것들을 보탰습니다. 그것들이 사소한 것들이기 때문에 저는 주의하지 않았었는데, 당신은 그것을 알기를 바라셨습니다. 저는 오늘 제가 적어놓은 것을 읽다가 당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한 문장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당신은 제 독특한 문체로 인하여 제가 묘사한 것들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제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매우 기뻤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그것이 선생님께서 이 공책의 최근의 받아쓰기에서 말씀하시는 것과 배치된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네가 보는 것을 묘사는 데 있어 그것이 더 세심하고 정확하다면 그럴수록 나에게 오게 될 사람들의 수가 많아질 것이다.”

이것은 묘사가 알려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많은 영혼들이 그것들로 인하여 예수께로 갈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 점에 대하여 당신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으니 그 다음에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시기에 최선인 것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에 관한 한 저는 아무래도 좋으니까요. 아니 인간적으로 말하면, 저는 당신과 동감입니다. 그러나 이 사안에 있어 이것은 인간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대변자의 인간적인 면모는 사라져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오늘의 구술에서도 말씀하십니다.

“…너에게 복음서를 보여줌으로써 나는 사람들을 나에게로 데려오기 위하여 더 강력한 시도를 한다. 나는 더 이상 말들로만 나 자신을 제한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환시들을 사용할 것이고, 그것들을 더 매력 있게 하고, 더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그것들을 설명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나 저는 미천한 사람이고 쉽게 움츠러들기 때문에, 저는 당신의 말씀이 저를 어지럽게 했다고 당신에게 말씀드립니다. 그래서 시기하는 자(the Envious One)는 이 상황을 이용합니다. 저는 몹시 혼란스러워서 제가 더 이상 제가 보는 것을 묘사하지 않고, 불러주시는 것들만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제 귀에 속삭입니다.

“너 자신도 그것을 알겠지? 너의 그 유명한 환상들은 네가 미친년으로 취급받게 하는 것을 빼놓고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 사실 너는 미쳤다. 네가 보는 것이 무엇이냐? 동요하는 네 정신의 속임수들일 뿐이다. 하늘을 볼 자격을 얻으려면, 이것보다 훨씬 더한 것이 필요하다.”

그는 오늘 하루 종일 그의 집요한 유혹으로 저를 고문했습니다. 저는 저의 쓰라린 육체적 고통도 이것으로 인하여 제가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 것만큼 괴롭지는 않았다고 당신에게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는 저를 실성하게 만들기를 원합니다. 이번 금요일은 저에게 영적인 유혹의 금요일입니다. 저는 광야의 예수님, 겟세마니의 예수님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교활한 마귀가 웃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마귀와 저의 더 약한 영적 부분과 싸우면서 저의 현재의 기쁨을 알려드리기 위하여 당신에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에 관한 한 만일 예수께서 제 가장 큰 기쁨인 이 보는 은혜를 거두어 가신다면 저는 매우 기쁠 것이라고 당신에게 확언합니다. 그분께서 계속 저를 사랑해주시고, 저를 불쌍히 여겨주신다면 말입니다.

 


46. 예수께서 광야에서 마귀(the Devil)에게 유혹당하시다

1944. 2. 24. 재의 수요일 다음 목요일

나는 내가 예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 받으시는 환상을 보았을 때 내 왼쪽에 있는 것을 이미 보았던 적막한 땅을 본다. 그러나 내가 광야 안으로 어느 정도 들어와 있는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나는 아름답고 푸르고, 물이 천천히 흘러내리는 강도 보지 못하고, 그 물에서 생명을 얻어 강 양쪽 기슭에 강을 따라 형성된 초록색 띠들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적막함, 돌들, 누르스름한 먼지가 된 햇볕에 바싹 마른 흙밖에 아무것도 없는데, 이따금씩 뜨거운 입의 숨결과도 같은 바람이 불어 먼지의 작은 회오리들이 일어난다. 그것들은 코와 목을 찌르는 먼지로 인하여 아주 고통스럽다. 신기하게도 이토록 황폐한 곳에서도 불과 몇 포기의 가시 돋친 작은 덤불들이 살고 있다. 그것들은 대머리에 남아 있는 몇 가닥의 머리털과도 같다. 위에는 무자비한 푸른 하늘이 있고, 아래에는 메마른 땅이 있으며, 주위에는 바위들과 침묵이 있다. 이것이 내가 보는 자연의 전부이다.

예수께서는 동굴 입구의 한 바위 위에 앉아 그 모양으로 인하여 그 밑에 일종의 동굴을 만들어놓고 있는 돌출해 있는 거대한 바위에 등을 기대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작열하는 태양을 피하여 거기서 쉬고 계시는 것이다. 내 안에서 알려주시는 분께서는 그분께서 앉아 계시는 바위가 그분의 장궤틀(kneeling stool)도 되고, 그분께서 별이 빛나는 밤의 찬 공기 속에서 겉옷을 두르고 몇 시간 동안 쉬실 때에는 베개도 된다고 나에게 알려주신다.

그분 곁에는 그분께서 나자렛을 떠나실 때 메시는 것을 내가 보았던 배낭이 놓여 있다. 이것이 그분께서 가지고 계시는 것의 전부이다. 그것이 접혀 있는 것으로 보아 나는 마리아께서 거기 넣어주셨던 소량의 음식이 다 떨어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예수께서는 매우 수척하고 창백하시다. 그분께서는 팔꿈치들을 양 무릎에 얹으시고, 두 손은 깍지 끼어 합장하시고, 양팔의 하박부를 앞으로 내미신 채 앉아 계신다. 그분께서는 묵상하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이따금씩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신 다음 해가 거의 남중해 있는 푸른 하늘을 쳐다보신다. 그분께서는 가끔 주위를 둘러보시고 해를 쳐다보신 다음에 마치 현기증을 느끼시는 듯 두 눈을 감고 그분께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는 바위에 기대신다.

나는 사탄의 추악한 얼굴이 나타나는 것을 본다. 그는 우리가 그에 대하여 상상하는 것처럼 뿔들과 꼬리 따위를 가진 모습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는 도미노처럼 보이는 커다란 겉옷으로 온몸을 휘감고 있는 베두인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머리에 터번을 쓰고 있는데, 그 흰 자락들이 그의 두 뺨을 따라 양어깨까지 내려와 덮어 그것들을 보호한다. 이렇게 하여 그의 얼굴의 아주 작은 삼각형만이 그의 얇은 물결 모양의 입술들, 아주 새까맣고 움푹 들어간, 자석처럼 빨아들이는 섬광들로 가득한 두 눈과 함께 노출되어 있다. 그의 두 눈은 사람의 마음의 밑바닥까지 꿰뚫어 보고 읽지만, 상대방은 그 눈에서 아무것도 읽을 수 없거나 수수께끼(mystery)라는 한 마디만을 읽을 수 있다.

그것들은 예수의 눈과는 정반대인데, 사람의 마음을 읽은 그분의 눈도 참으로 흡입력 있고 매혹적이지만, 우리는 그분의 마음속에서 우리를 위한 사랑과 관대함도 읽을 수 있다. 예수의 눈은 사람의 영혼을 어루만지나, 사탄의 눈은 우리를 찌르고 태우는 양날의 단도이다.

그는 예수께 다가와 말한다.

“당신은 혼자시오?”

예수께서는 그를 바라보시지만 대답하시지는 않는다.

“당신은 어떻게 이곳으로 오시게 되었소? 당신은 길을 잃으셨소?”

예수께서는 다시 그를 바라보시고 침묵하신다.

“만일 내 호리병에 물이 있다면, 나는 당신에게 그것을 나눠드릴 텐데. 하지만 나도 물을 가지고 있지 않소. 내 말이 죽어서 지금 나는 여울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소. 나는 거기서 물을 구할 수 있을 거고, 나에게 약간의 빵을 줄 사람도 만날 수 있을 거요. 나는 길을 아오. 나와 같이 갑시다. 나는 당신을 그리로 인도하겠소.”

예수께서는 이제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으신다.

“당신은 대답하지 않으실 거요? 만일 당신이 여기 그대로 남아 있다면, 당신이 죽을 거라는 것을 당신은 아시오?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데, 잠시 후면 이 바람은 폭풍우로 변할 거요. 갑시다.”

예수께서는 묵묵히 기도하시며 양손으로 깍지를 끼신다.

“아! 그럼 당신이군요? 나는 아주 오랫동안 당신을 찾고 있었소! 그리고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당신을 지켜보아 왔소. 당신이 세례 받았을 때부터요. 당신은 영원한 분을 부르고 계시오? 그분은 아주 멀리 계시오. 지금 당신은 땅 위에, 사람들 가운데 있소. 그리고 나는 사람들을 다스리고 있소.

그렇지만 나는 당신에게 안타까움을 느끼오. 그래서 나는 당신을 돕고 싶소. 왜냐하면 당신은 몹시 착하고, 아무 대가 없이 당신 자신을 희생하러 왔기 때문이오. 사람들은 당신이 착하기 때문에 당신을 미워할 거요. 그들은 돈, 음식 그리고 쾌락밖에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오. 그들에게 희생, 고통, 순종은 여기 우리 주위의 땅보다 더 메마른 말들이오. 그것들은 이 먼지보다 더 메마른 것이오.

여기에는 물려고 숨어서 기다리고 있는 뱀과 갈기갈기 찢어발길 재칼들밖에는 없소. 나와 함께 갑시다. 그들을 위하여 고통당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오. 나는 당신이 아는 것보다 그들을 더 잘 아오.”

사탄은 예수 앞에 앉아 끔찍한 두 눈으로 그분을 뜯어보며 뱀 같은 입으로 비웃는다.

“당신은 나를 믿지 않는군요. 당신은 틀렸소. 나는 땅의 지혜요. 나는 당신의 선생이 되어 당신에게 승리하는 방법을 가르쳐줄 수 있소. 보시오. 중요한 것은 승리하는 것이오. 일단 세상에게 우리 자신을 강요하고 그들을 매혹시킨 다음에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곳이 어디든 그들을 그리로 끌고 갈 수 있소. 그러나 먼저 우리는 그들이 우리가 되기를 원하는 대로 되어야 하오. 그들처럼 말이오. 우리는 우리가 그들을 우러러보고 그들의 생각들을 따른다고 믿게 하여 그들을 유혹해야 하오.

당신은 젊고 미남이니 여자와 함께 시작하시오. 항상 여자로부터 시작해야 해요. 내가 여자를 불복종하게 만든 것은 실수였소. 나는 그녀에게 달리 조언했어야 했어요. 나는 그녀를 더 좋은 도구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하느님을 이길 수 있었을 거요. 나는 서둘렀소.

하지만 당신은! 나는 당신을 가르치고 싶소. 왜냐하면 어느 날 나는 천사의 기쁨으로 당신을 쳐다볼 때가 있었는데, 그 기쁨의 파편이 아직 내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이오.
그러니 당신은 내 말을 귀담아듣고, 내 경험을 활용하시오. 여자를 만나시오. 당신이 성공하지 못하는 곳에서 그녀는 성공할 것이오. 당신은 새 아담이니 당신의 하와를 가져야 하오.

어쨌든 만일 당신이 관능들의 질병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그것들을 이해하고 고칠 수 있겠소? 씨앗이 있는 곳에서 탐욕과 거만의 나무가 싹트는 줄을 당신은 모르시오? 왜 사람들은 지배하기를 원할까요? 왜 그들은 부유하고 권세 있기를 원할까요?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서요.

그녀는 종달새와 같소. 그녀는 반짝이는 것에만 끌릴 것이오. 황금과 권력은 여자의 마음을 끄는 거울의 양면이고, 세상의 악의 원인들이오. 보시오. 천 개의 서로 다른 범죄들의 배후에는 적어도 구백 개가 여자를 소유하려는 정욕이나, 남자가 아직 만족시켜주지 못했거나 더 이상 만족시켜줄 수 없는 욕망에 불타는 여자의 갈망에 그 뿌리를 두고 있소. 만일 당신이 인생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싶다면 여자에게로 가시오. 그 다음에만 당신은 인류의 질병들을 치료하고 고칠 수 있을 거요.

당신도 알다시피 여자들은 아름답소! 세상에 그보다 더 멋진 것은 없소. 남자는 두뇌와 힘을 가지고 있소. 그러나 여자는! 그녀의 생각은 향수와 같고, 그녀의 접촉은 꽃들의 애무요. 그녀의 우아함은 마시기에 유쾌한 포도주와 같고, 그녀의 연약함은 남자의 손 안의 비단 실타래나 아기의 머리털의 컬과도 같소. 그녀의 애무는 우리 자신의 힘 위에 부어져 그것을 불붙이는 힘이오. 우리가 여자 곁에 누울 때 고통, 피로, 근심은 잊히오. 그리고 그녀는 우리 품안에서 꽃다발과 같소.

그런데 나는 참 바보로군요! 지금 당신은 시장한데, 나는 당신에게 여자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으니 말이오. 당신의 기력은 바닥났소. 그래서 땅의 이 향기, 우주의 이 꽃, 사랑을 주고 자극하는 이 과일이 당신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거요. 하지만 이 돌들을 보시오. 지는 햇빛에 금빛으로 반짝이는 이것들이 얼마나 둥글고 매끄럽소! 이것들은 빵처럼 보이지 않소?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이니 ‘내가 원한다’고 말하기만 하면, 이것들은 지금 주부들이 자기의 가족들의 저녁식사를 그들의 화덕들에서 꺼내고 있는 것과 똑같은 맛있는 냄새가 나는 빵 덩어리들이 될 거요. 그리고 만일 당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이 메마른 아카시아 나무들도 달콤한 과일들과 꿀처럼 단 대추야자들로 가득하게 되지 않겠소? 하느님의 아들이여, 실컷 드시오. 당신은 땅의 주인이니 땅은 당신의 발아래 엎드려 당신의 허기를 달래줄 거요.

당신은 빵에 대한 말만 듣고서도 당신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떨리는 것을 보지 않소? 불쌍한 예수! 당신은 기적 하나도 행할 수 없을 정도로 연약하오? 내가 당신을 위하여 기적 하나를 행할까요? 나는 당신과 같지는 않지만, 나도 무언가를 할 수 있소. 나는 일 년 내내 힘을 쓰지 않고 그 힘을 죄다 모으겠소. 하지만 나는 당신을 섬기고 싶소. 왜냐하면 당신은 착하고, 비록 내가 지금은 당신을 내 하느님이라고 부를 자격을 잃었지만, 나는 항상 당신이 여전히 내 하느님이라는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당신의 기도들로 나를 도와주시오.”

“조용히 해라.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마귀가 분노로 펄쩍 뛴다. 그는 이를 갈고 주먹들을 불끈 쥔다. 그러나 그는 자제하고, 꽉 다문 입 대신 미소를 지어 보인다.

“나는 이해하오. 당신은 땅의 필요들을 초월해 있고, 그래서 당신은 나를 활용하는 것이 혐오스럽다는 말이지요? 나는 그런 취급을 받아 마땅했소. 하지만 그렇다면 이리 와서 하느님의 집 안에 있는 것을 보시오. 당신은 심지어 사제들마저 얼마나 영혼과 육체 사이에서 타협하기를 거절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될 것이오. 결국 그들은 사람들이지 천사들이 아니오.

영적인 기적을 행하시오. 내가 당신을 성전의 첨탑으로 데려갈 테니 그 위에서 변모하여 대단한 미남자가 되시오. 그 다음에 당신은 천사들의 무리들을 불러 그들의 날개들을 서로 엮어 당신의 발을 위한 발판을 만들고, 그렇게 하여 당신을 중앙 마당으로 내려가게 하라고 말하시오. 그래서 사람들이 당신을 보고 하느님께서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시오.

사람은 기억력이 약하고, 특히 영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니, 때때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야 하오. 당신은 당신의 발을 위하여 발판을 마련해주고, 당신이 내려갈 수 있도록 사다리를 만들어주는 것을 천사들이 얼마나 기뻐할지 상상할 수 있어요.”

“‘너희는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고 기록되어 있다.”

“당신은 당신의 발현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것이고, 성전은 부패로 가득 찬 장터로 계속 남아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아는군요. 하느님인 당신의 지혜는 성전의 사제들의 마음이 권력을 잡으려고 서로를 잡아먹는 독사들의 소굴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들은 오로지 인간의 권력에만 복종하지요.

좋소, 그럼 오시오. 나에게 경배하시오. 나는 당신에게 땅을 주겠소. 알렉산데르, 키루스, 카이사르 기타 과거와 현재의 모든 위대한 정복자들은 당신에 비하면 초라한 대상의 두목들과 마찬가지일 거요. 당신은 당신의 왕권 아래 세상의 모든 나라들을 모든 부, 땅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 여자들, 말들, 군대들, 신전들과 함께 가지게 될 테니까요. 당신은 당신이 왕들의 왕과 세상의 주가 될 때 모든 곳에 당신의 표를 세울 수 있을 거요. 그때 백성들과 사제들은 당신에게 복종하고 당신을 존경할거요. 모든 계급들이 당신을 공경하고 섬길 거요. 왜냐하면 당신은 강한 자, 유일한 자, 주님일 것이기 때문이오.

나에게 한 순간만 경배하시오! 경배 받고 싶어 하는 나의 이 갈망을 가라앉혀주시오! 그 갈망이 나를 파멸시켰는데, 그것은 여전히 나에게 남아 있고, 그래서 나는 그것으로 인하여 불타고 있소. 내 안에 불타고 있는 이 맹렬한 갈망에 비하면 지옥의 불길들은 상쾌한 아침의 산들바람과도 같소. 이 갈증, 이것은 내 지옥이오.

그리스도여, 한 순간, 오로지 한 한순간만! 당신은 참으로 착하오! 영원히 고통당하는 자에게 한 순간의 기쁨을! 하느님인 것이 무엇인지를 내가 느끼게 해주시오. 그러면 나는 당신의 일생과 당신의 모든 사업들을 위하여 당신에게 헌신적이고 순종적인 하인이 되겠소. 한 순간, 오로지 한순간만, 그러면 나는 더 이상 당신을 괴롭히지 않겠소!”

사탄은 무릎 꿇고 간청한다.

반대로 예수께서는 일어나신다. 그분께서는 여러 날 동안의 단식으로 인하여 수척해지셨고, 그래서 키가 더 커 보이신다. 그분의 얼굴은 몹시 준엄하고 강력하다. 그분의 눈들은 두 개의 불타는 사파이어들 같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 그분의 목소리는 거대한 바위 밑 동굴 안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바위들과 황량한 땅에 울리는 천둥소리와도 같다.

사탄은 무서운 고통과 형언할 수 없는 증오의 외침과 함께 펄쩍 뛰어 일어나는데, 분노를 터뜨리는 흐릿한 그의 모습은 끔찍하다. 그는 마지막 저주의 외침을 남기고 사라진다.

예수께서는 피로에 지쳐 바위에 기대 앉아 머리를 돌 위에 올려놓으신다. 그분께서는 기진맥진하게 보이신다. 그분께서는 땀을 흘리고 계신다. 그러자 천사들이 동굴 가까이에서 그들의 날갯짓으로 숨 막힐 것 같은 공기를 깨끗하게 해드리고, 시원하게 만들어드린다. 예수께서는 눈을 뜨고 미소 지으신다. 나는 예수께서 음식을 드시는 것을 보지 못한다. 나는 그분께서 천국의 향기로 영양을 취하시고, 그것으로 원기를 회복하신다고 말할 수 있다.

해가 저물었다. 그분께서는 빈 배낭을 집어 드시고 그분의 머리 위에서 날며 날이 아주 빨리 어두워지고 있는 동안에 부드러운 빛을 발산하고 있는 천사들과 함께 동쪽 혹은 동북쪽을 향하여 가신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평소의 얼굴 표정을 다시 찾으셨고, 걸음걸이는 침착하시다. 그분의 오랜 동안의 단식의 흔적이라고는 그분의 야위고 창백한 얼굴과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기쁨에 사로잡혀 있는 그분의 눈들과 함께 보다 더 고행자다운 표정뿐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어제는 내 뜻인 힘이 너에게 없었고, 그래서 너는 반쯤 죽어 있었다. 나는 네 몸을 쉬게 하였고, 너에게 괴롭게 여겨지는 유일한 단식재 즉 내 말을 듣지 못하는 단식재를 지키게 하였다. 가엾은 마리아야! 너는 재의 수요일을 지켰다. 너는 네 선생님과 함께 있지 못하였기 때문에 모든 것에서 재의 맛을 느꼈다. 나는 네가 나를 느끼게 하지는 않았지만, 거기 있었다.

우리 고통은 상호적이기 때문에 오늘 아침 네가 잠을 어렴풋이 깼을 때 나는 너에게 속삭였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여,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Agnus dei qui tollis peccata mundi, dona nobis pacem).’

나는 그것을 너에게 여러 번 되풀이하게 하였고, 나도 그것을 너에게 여러 번 되풀이했다. 너는 내가 너에게 그것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먼저 내가 너에게 보여주었는데, 나에게는 그것에 대하여 너에게 언급할 것이 있다. 그 다음에 오늘 저녁에 나는 이 다른 주제를 보여주겠다.

너도 보았듯이 친절은 사탄이 그 자신을 드러낼 때 항상 쓰는 가면이다. 그는 보통사람처럼 보인다. 만일 영혼들이 주의 깊고, 특히 하느님과의 영적 접촉 안에 있다면, 그들은 자신들을 주의하게 하고, 마귀의 덫들과 싸우도록 준비하게 만드는 경고신호를 감지한다.

그러나 만일 영혼들이 주의가 산만하고, 압도적인 관능성으로 인하여 하느님과 분리되고, 그들을 하느님과 결합시키고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힘을 부어주는 기도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그들은 무죄한 겉모습 속에 숨어 있는 덫들을 거의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래서 덫에 빠진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자유롭게 되기는 매우 어렵다.

영혼들을 정복하기 위하여 사탄이 채택하는 가장 흔한 수단은 육욕(sensuality)과 탐욕(gluttony)이다. 그는 항상 물질적인 것들로부터 시작한다. 일단 그가 물질적인 측면을 해체하고 굴복시킨 다음에는 영적인 부분을 공격한다.

먼저 정신적인 면들이다. 그는 그들의 교만과 탐욕과 함께 생각들을 공격하고, 그 다음에는 영혼을 공격하여 그것의 대한 사랑―사람이 하느님의 사랑을 다른 인간적인 사랑들로 대체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만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도 없앤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즐기고, 점점 더 즐기겠다는 이유만으로 자기의 몸과 영혼을 사탄에게 넘겨준다.

너는 내가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보았다. 침묵과 기도이다. 침묵. 왜냐하면 만일 사탄이 유혹자로서의 자기의 일을 수행하고, 그래서 우리 주위를 배회한다면, 우리는 어리석은 조급함이나 비겁한 공포 없이 그 상황을 견뎌내야 한다. 우리는 그의 존재에 대하여 단호하게 반응해야 하고, 그의 유혹들에는 기도로 저항해야 한다.

사탄과 토론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그는 논리에 능하기 때문에 그가 이길 것이다. 하느님만이 그를 이기실 수 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를 위하여, 너희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느님께 의지해야 하고, 종이에 쓰이거나 나무에 새겨진 것이 아닌, 너희 마음에 쓰이고 새겨진 그 이름과 그 표를 사탄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내 이름과 내 표를 말이다.

사탄이 자기가 하느님과 같다고 암시할 때에만 너희는 하느님의 말씀을 써서 그에게 대꾸해야 할 것이다. 그는 그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렇게 싸움이 끝난 다음 승리가 오고, 천사들이 승리자를 섬기고, 사탄의 증오에 대하여 그를 보호해준다. 그들은 하늘의 이슬들, 충실한 아들의 마음에 듬뿍 부어주는 은총, 그의 영혼을 애무해주는 축복으로 그를 회복시켜준다.

사탄을 이기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가져야 하고, 하느님과 그분의 도우심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하고, 기도의 힘과 주님의 관대하심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사탄은 우리를 해칠 수 없다.


잘 있어라. 오늘 저녁에 나는 나머지로 너를 기쁘게 해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