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2권 공생활첫해 p1~p10
※ 통독한 뒤 마음에 세길 구절 1~2개를 나눕니다
44. 예수의 모친과의 작별과 나자렛으로부터의 출발
1944. 2. 9. 오전 9:30
(환시는 영성체 때 시작되었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은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요한1,19-28)
그리하여 요한은 요르단 부근의 모든 지방을 다니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이는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말씀의 책에 기록된 그대로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길은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요한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군중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주더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는 말은 아예 혼잣말로라도 꺼내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군중이 그에게 물었다.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세리들도 세례를 받으러 와서 그에게 “저희는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요한은 그들에게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여라” 하고 일렀다.
백성은 기대에 차 있었으므로, 모두 마음속으로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하게 치우시어, 알곡은 당신의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버리실 것이다.” 요한은 그 밖에도 여러 가지로 권고하면서 백성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루카3,3-18)
나는 나자렛 집의 내부를 본다. 이것은 가족들이 식사도 하고 낮 시간에 휴식을 취하기도 하는 거실처럼 보이는 방이다. 이것은 장방형의 식탁 하나와 벽에 붙여놓은 궤 옆에 소박한 탁자 하나가 있는 아주 작은 방이다. 궤는 의자로도 쓰인다. 다른 벽들 중 하나에 베틀과 등받이 없는 걸상이 놓여 있고, 다른 벽들에는 베틀 하나와 스툴 하나, 그리고 기름등잔들과 다른 물건들이 놓여 있는 일종의 책장과 함께 두 개의 스툴이 더 있다.
텃밭 쪽으로 문이 열려 있다. 지금은 틀림없이 거의 저녁 무렵이다. 최초의 잎들로 푸르러지기 시작하는 키 큰 나무의 꼭대기의 잎사귀들에 약간의 희미한 햇살만이 비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식탁에 앉아 계신다. 그분께서는 음식을 잡수고 계시고, 마리아께서는 작은 문으로 들어오고 나가시며 예수께 시중들고 계시는데, 그 문은 아궁이가 있는 방으로 나가게 되어 있고, 열린 문을 통하여 그 불빛이 보인다.
예수께서는 앉아서… 자신과 함께 잡수시자고 마리아께 두세 번 말씀하신다. 그러나 마리아께서는 원치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서글프게 미소 지으시며 머리를 흔드신다. 마리아께서는 처음에는 약간의 삶은 야채들을 내오신 다음 구운 생선을 내오시고, 그 다음에는 개울바닥에서 볼 수 있는 자갈들처럼 둥그스름한, 신선하게 보이는 꽤나 무른 치즈를 내오시고, 그 다음에는 몇 개의 작은 검은 올리브들을 내오신다. 접시 크기의 작고 둥글넓적한 빵들은 이미 식탁 위에 놓여 있다. 그 빵은 마치 밀기울이 밀가루에서 제거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암갈색 빵이다. 예수의 앞에는 물이 들어 있는 암포라와 잔이 놓여 있다. 그분께서는 서글프지만 다정한 시선으로 그분의 어머니를 바라보시며 말없이 드시고 계신다.
마리아의 마음이 슬프시다는 것은 아주 분명하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일에 골몰하신 채 왔다 갔다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직 어둡지 않은데도 등불 하나를 켜 예수 가까이에 놓은 다음 한 팔을 뻗어 그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신다.
그 다음에 마리아께서는 내가 보기에 수제 순모이고, 그래서 물이 스미지 않는 밤색의 배낭을 열고 그 안을 뒤지시다 말고 작은 텃밭으로 나가 일종의 창고가 있는 곳으로 끝까지 걸어가신다.
그분께서는 분명히 지난여름부터 보관했을 꽤나 시든 몇 개의 사과를 가지고 거기서 나오신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그것들을 배낭에 넣으신다. 그러자 예수께서 이미 배낭에 충분한 음식이 들어 있다며 더 이상 넣지 말라고 말씀하시는데도, 마리아께서는 빵 한 덩이와 치즈 한 조각을 거기에 더 집어넣으신다.
그 다음에 마리아께서는 예수의 왼쪽, 식탁의 좁은 쪽으로 다시 와 예수께서 식사하시는 모습을 사랑과 흠숭의 태도로 지켜보신다. 마리아의 얼굴은 고통으로 인하여 여느 때보다 창백하고 늙어 보이신다. 그분의 두 눈에는 다크 서클이 있고 그래서 그것들은 더 커 보이는데, 그것을 보면 그분께서 이미 눈물을 흘리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눈들은 마치 안에 고여 있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물로 씻긴 듯 더 맑아 보인다. 슬프고 피로에 지친 두 눈이다.
예수께서는 천천히 잡수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분명히 그분의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하여 억지로 잡수시는 것이 분명하다. 예수께서는 여느 때보다 더 생각에 잠기신 채 얼굴을 들어 마리아를 바라보신다. 그분들의 눈들이 마주치자 예수께서는 어머니의 두 눈에 눈물이 잔뜩 고여 있는 것을 보시고, 어머니께서 자유롭게 우시도록 고개를 숙이신다.
예수께서는 말없이 식탁 가장자리에 놓여 있는 어머니의 날씬한 손을 자신의 왼손으로 잡아 그것을 자신의 뺨으로 가져가 떨리는 그 가엾은 작은 손이 어루만지도록 자신의 뺨에 비비신다.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는 크나큰 사랑과 존경으로 그 손등에 입 맞추신다.
나는 마리아께서 마치 흐느낌을 억제하시려는 듯 자유로운 자신의 왼손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시는 것을 본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자신의 눈에서 떨어져 뺨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그 손으로 닦으신다. 예수께서는 다시 잡수기 시작하시고, 마리아께서는 지금은 거의 어두워진 텃밭으로 급히 나가신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왼쪽 팔꿈치를 식탁에 올려놓으신 다음 이마를 그 손에 얹으신 채 생각에 잠기신다. 그분께서는 식사를 멈추고 계신다.
그러다가 그분께서는 무언가에 귀를 기울이시더니 일어서신다. 그분께서는 텃밭으로 나와 둘러보신 다음 집의 오른쪽으로 가 암벽의 입구로 들어가신다. 나는 그분께서 들어가시는 방이 목공실이라는 것을 알아본다. 거기에는 지금 널빤지들이나 바닥에 널려 있는 대팻밥들이 없이 아주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고, 불은 꺼져 있다.
마리아께서는 작업대에 엎드려 울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어린이처럼 보이신다. 그분의 머리는 그분의 구부린 왼팔에 얹혀 있는데, 그분께서는 소리 없이, 그러나 매우 비통하게 울고 계신다. 예수께서 아주 조용하게 들어가 어머니에게 소리 없이 다가가신 나머지 마리아께서는 아들이 애정이 듬뿍 담긴 낮은 소리로 “어머니!” 하고 부르시며 그분의 손을 어머니의 머리에 가져다대실 때에야 그분의 아들이 거기 있는 것을 알아차리신다.
마리아께서는 고개를 들어 눈물이 글썽이는 눈으로 예수를 바라보시며, 양손을 모으고 예수의 오른팔에 기대신다. 예수께서는 자기의 넓은 소맷자락으로 그분의 어머니의 얼굴을 닦아드린 다음에 그분을 끌어당겨 가슴에 안으시며 그분의 이마에 입 맞추신다. 예수께서는 위엄 있으시고 여느 때보다 더 씩씩해 보이시는 반면, 마리아께서는 그분의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만 아니라면 더 어린 소녀처럼 보이신다.
“어머니, 가십시다.”
예수께서는 어머니께 말씀하시며 자신의 오른팔로 그분을 꼭 껴안고 걸어서 텃밭으로 걸어오시어 두 분은 집의 벽에 기대놓은 벤치에 앉으신다. 지금 텃밭은 고요하고 어둡다. 달빛과 주방에서 나오는 희미한 불빛이 있을 뿐이다. 고요한 밤이다.
예수께서는 마리아께 말씀하고 계신다. 처음에 나는 조용히 속삭이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데, 그 말씀에 마리아께서는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 다음에 나는 듣는다.
“당신의 친척들을 오게 하세요. 여기 혼자 계시지 말고요. 어머니, 그러면 저는 더 행복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께서는 제가 제 사명을 수행하는 데 있어 얼마나 평화를 필요로 하는지 아십니다. 당신께서는 제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으실 거예요. 저는 자주 오겠어요. 그리고 저는 제가 갈릴래아에 돌아와 있으면서 집에 올 수 없을 때에는 당신께 알려드릴게요. 어머니, 그때는 당신께서 저에게 오세요.
이 시간은 와야 했습니다. 그것은 천사가 당신께 나타났을 때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그 시간이 되었고, 우리는 이 시간을 살아야 합니다. 어머니, 그렇죠? 우리가 그 시련을 이긴 다음 우리는 평화와 기쁨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조상들처럼 언약된 땅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이 광야를 건너가야 합니다.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는 그분께서 우리 조상들을 도와주셨듯이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어려운 시련의 순간에 우리의 영혼들에게 영양을 공급해줄 영적 만나로서 그분의 도움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함께 우리 아버지께 기도드립시다…”
예수와 마리아께서는 일어서서 하늘을 우러러보신다. 이것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두 명의 산 제물들이다.
예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천천히 단어 하나하나를 강조하며 맑은 목소리로 암송하신다.
그분께서는 다음 두 문장을 나머지로부터 떼어 강조하신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분께서는 두 팔을 앞으로 내밀고 기도하시는데, 정확히 십자 모양으로 벌리시지 않고 사제들이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할 때와 같은 모양으로 벌리신다. 마리아의 두 손은 합장한 채로 있다.
그 다음에 두 분께서는 집안으로 돌아오신다. 나는 지금까지는 예수께서 포도주를 드시는 것을 본 적이 없었는데, 그분께서는 책장 위의 암포라에서 약간의 백포도주를 잔에 따라 식탁으로 가져가신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마리아의 손을 잡아 자신 곁에 앉히시고는 강권하여 그 포도주를 드시게 하시고, 포도주에 작은 빵조각을 담갔다가 마리아께 드시게 하신다. 마리아께서는 예수의 간청에 굴복하실 수밖에 없다. 예수께서는 남아 있는 포도주를 드신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자신의 어머니를 가슴에 꼭 껴안으신다. 예수께서도, 마리아께서도 그 시대의 연회들에서 관례화된 대로 누워 계시지 않고, 우리가 식사할 때처럼 앉아 계신다. 두 분 다 기다리시며 침묵하신다. 마리아께서는 예수의 오른손과 무릎을 어루만지시고, 예수께서는 마리아의 팔과 머리를 쓰다듬으신다.
그 다음에 예수께서는 일어서시고, 마리아께서도 일어서신다. 두 분께서는 서로 껴안고 아주 다정하게 여러 번 입 맞추신다. 그분들은 그때마다 서로 떨어져 이별하려는 것 같다. 그러나 매번 마리아께서 자신의 아들을 껴안으신다. 그분께서는 성모님시지만 여전히 한 어머니, 자기의 아들과 헤어져야 하고, 그의 출발의 최종 목적지를 완전히 아시는 어머니시다. 마리아께서 고통당하지 않으셨다고 나에게 말하지 마라. 전에는 나도 약간 의구심을 가졌었지만, 지금은 전혀 그것을 믿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군청색 겉옷을 들어 양어깨에 걸치시고 두건을 머리에 쓰신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걷는 데 방해되지 않도록 배낭을 어깨에서 등 뒤로 비스듬히 메신다. 마리아께서는 예수를 도우시면서 그분의 튜닉, 겉옷, 두건을 고르시며, 간간이 아들을 어루만지시며 끝없이 출발을 지연시키신다.
예수께서는 방 안에서 강복하시는 손짓을 하신 다음에 출입문 쪽으로 가신다. 마리아께서는 예수를 따라가시고, 문지방에서 다시 한 번 서로 입 맞추신다.
길은 조용하고, 인적이 없으며, 달빛으로 하얗다. 예수께서는 출발하여 걸어가신다. 그분께서는 대문 문설주에 기대어 서계시는 그분의 어머니, 달빛보다 더 창백하고 침묵의 눈물로 두 눈을 반짝이는 그분의 어머니를 보시려고 두 번 돌아보신다. 예수께서는 하얀 좁은 길을 따라 점점 더 멀어져 가신다. 마리아께서는 여전히 문설주에 기대서서 울고 계신다. 마침내 예수께서는 어떤 길모퉁이에서 모습을 감추신다.
골고타 위에서 끝날 그분의 전도여행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 마리아께서는 눈물 흘리며 집안으로 돌아가 문을 닫으신다. 그분께서도 자신을 골고타로 이끌어갈 여행을 시작하신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이것이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네 번째 고통이다. 첫 번째 고통은 나를 성전에서 바치실 때였고, 두 번째 고통은 이집트로의 피난이었으며, 세 번째 고통은 요셉의 죽음이었고, 네 번째 고통은 나와의 이별이었다.”
나는 네 영적 지도 신부의 바람을 알기에 ‘우리의’ 고통들에 대한 묘사를 서둘러 그것들이 알려지게 하겠다고 어제 저녁에 너에게 말했었다. 그러나 너도 보다시피 내 어머니의 몇 가지 고통들은 이미 분명히 묘사되었다. 나는 봉헌보다 먼저 그 도망을 설명했는데, 그 이유는 그날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안다. 너는 그것을 이해하니, 네가 신부에게 그 이유를 말로 설명해주어라.
나는 너에게 환시들을 보게 하고, 곧이어 내가 설명하는 것과 협의(狹義)의 받아쓰기들을 번갈아 하도록 계획했는데, 그 이유는 너에게 환시의 지복을 주면서 너와 네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서이고, 또한 이렇게 하여 네 작문과 내 작문의 문체의 차이가 분명해지게 하기 위해서이다.
나아가 나를 다루는 수많은 책들이 무수한 수정들, 변경들, 윤색들을 거쳐 비현실적인 것이 되었기 때문에 나는 나를 믿는 사람들에게 실제의 나의 인간생활의 나날들을 보여주기를 원한다. 나는 그것으로 인하여 왜소해지지 않고 오히려 너희를 위한 실제적인 양식이 되는 내 겸손으로 인하여 더 위대하게 되어, 너희와 같은 사람이면서도 인간생활 안에서 하느님의 완전함을 지니고 있었기에 너희가 나처럼 겸손해지도록 너희를 가르친다. 나는 너희의 모범이 되어야 했는데, 모범들이란 항상 완전해야 한다.
나는 환상들을 보여주는 데 있어 복음서들의 시간적 순서를 따르지 않겠다. 나는 내 자신의 가르침과 선의 방침에 따라 그날에 내가 너와 다른 사람들에게 더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점들을 택하겠다.
내 이별의 환상의 교훈은 특히 하느님의 뜻이 어떤 더 큰 사랑을 위하여 서로를 포기하도록 부르시는 부모들과 자녀들에게 주어지는 것인데, 이는 고통스러운 포기에 직면해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다.
너희는 너희 인생에서 그런 고통스러운 상황들을 얼마나 많이 당하느냐! 그것들은 땅 위의 가시들로서 나는 그것들이 너희의 마음들을 꿰뚫는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것들을 체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그것들은 영원한 장미꽃들로 변한다.
내가 ‘그것들을 바라고, 그것들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에 유의해라. 그것은 이미 완전이기 때문이다. 나는 ‘체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것들을 체념으로 받아들인다.
너희는 마치 보채는 어린 나귀들처럼 아버지의 뜻에 완강하게 반항하고 주저하며, 심지어 때로 너희는 영적인 발길질들과 물어뜯음으로써, 다시 말해 하느님께 반항하고 그분을 모독함으로써 좋으신 하느님을 때리려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지 마라. ‘내가 가진 좋은 것이라고는 이것밖에 없었는데,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빼앗아가셨다.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이 애정밖에 없었는데,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빼앗아가셨다’고 말이다. 완전한 애정을 가진(왜냐하면 은총이 가득한 동정녀 안에서는 애정들과 감각들도 완전했기 때문이다) 온유한 여인 마리아께서도 땅 위에서 유일한 좋은 것, 유일한 사랑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자기의 아들이었다. 그것은 그분에게 남은 유일한 좋은 것이었다.
그분의 부모님들은 오래 전에 돌아가셨고, 요셉도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났었다. 마리아를 사랑하고, 그분이 혼자라는 것을 느끼지 않게 해주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분의 친척들은 내 신적 기원을 모르기 때문에 나로 인하여 그분께 약간 적대적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분께서 상식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물질적인 도움은 물론 가문에 위신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결혼 제안들을 거절하는 자기의 아들에게 자기의 뜻을 강요할 줄 모르는 어머니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분의 친척들은 상식과 인간적인 생각에 따라 추론했다. 너희는 그것을 양식이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인간적인 감각 즉 이기심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내 인생이 자기들의 용법을 따르기를 원했던 것이다. 결국 그들은 어느 날 자기들이 보기에 너무 이상주의적인 아이디어들과 회당을 자극할 수도 있는 생각을 감히 표현하는 나로 인하여 곤경에 빠지지 않을까 항상 노심초사했다.
히브리 역사는 예언자들의 운명에 관한 가르침들로 가득하다. 예언자의 사명은 쉬운 것이 아니었고, 자주 그 예언자에게는 죽음을, 그의 친척들에게는 곤경을 가져왔다. 그리고 어느 날 자신들이 내 어머니를 돌보아야 할 것이라는 염려가 항상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분이 어떤 것에 있어서도 나에게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의 아들 앞에서 끊임없는 숭배의 태도를 가지는 것처럼 보이는 사실들로 인하여 화가 났다. 이 갈등은 내 공생활 3년 동안에 점점 더 커져서 그들이 군중에 둘러싸여 있는 나를 만날 때마다 공공연하게 비난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그들은 내가 유력한 계급들을 화나게 하는 것을 내 괴벽으로 보고, 그것을 부끄러워하게까지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나와 가엾은 내 어머니를 비난했다.
마리아께서는 그분의 친척들의 기분들을 알고 계셨고, 그들이 미래에 분노를 터뜨릴 것을 예견하셨다. 그들은 야고보, 유다, 시몬이나 그들의 어머니 클레오파의 마리아 같지 않았다. 그러나 비록 마리아께서 그분의 운명이 내 공생활 3년 동안에 어떻게 될지, 그리고 그 3년의 끝에 그분의 운명과 내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분께서는 너희처럼 완강하게 반항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우셨다.
그런데 어떤 어머니가 내가 내 어머니를 사랑했듯이 자신을 사랑하는 아들과의 이별로 인하여, 또는 내가 없는 외로운 집에서 지내야 할 긴 나날들의 전망으로 인하여, 또는 자기들의 죄의식 때문에 죄 없는 사람을 죽음에 이르도록 공격하여 복수하는 죄인들과 충돌해야 할 운명을 가진 아들의 음울한 전도(前途)로 인하여 울지 않겠느냐?
그분께서는 공동구속자(the Co-redeemer)이시기 때문에, 그리고 하느님에게 다시 태어나고 있는 인류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에 우셨다. 또한 그분께서는 자신들의 어머니로서의 고통을 영원한 영광의 관으로 바꿀 줄 모르는 모든 어머니들을 위하여 우셔야 했다.
자기의 품안에 있는 자기 자식들을 죽음에게 빼앗기는 어머니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으냐! 초자연적인 뜻에 의하여 자기 곁에 있는 자기의 아들들을 빼앗기는 어머니들이 얼마나 많으냐! 마리아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어머니로서 그분의 모든 딸들을 위하여,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고통 속에서 그분의 모든 자매들을 위하여 우셨다.
또한 그분께서는 여인에게서 태어나 하느님의 사도들이 되고, 하느님에 대한 그들의 충실함으로 인해서나 사람의 잔인함으로 인하여 하느님을 위하여 순교자가 되어야 하는 그분의 모든 아들들을 위해서도 우셨다.
내 피와 내 어머니의 눈물은 영웅적인 운명으로 부름 받은 사람들을 강화시켜주고, 그들의 불완전성들과 그들이 그들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저지른 죄들을 지워 없애는 혼합물인데, 그 이유는 만일 그들이 하느님을 위하여 고통당했다면 그 어떤 길에서 고통당했든 하느님의 평화를 그들에게 가져다주고, 나중에는 하늘의 영광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선교사 신부들은 그 혼합물이 만년설에 덮인 지방들에서 자신들을 따뜻하게 해주는 불꽃이 되고, 폭염이 내리쬘 때 이슬이 된다는 것을 안다. 마리아의 눈물은 그분의 사랑에서 발원하고, 한 송이 백합꽃 같은 그분의 마음에서 솟아난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랑(Love)의 정배인 동정녀의 사랑의 불과 같고, 이슬 내리는 밤에 한 송이 백합꽃 잔에 고인 물방울들과 같은 동정녀의 순결의 향기로운 신선함을 소유한다.
잘 이해된 수도생활의 사막에서 봉헌된 사람들은 우리의 혼합물을 발견한다. 그들은 하느님과의 일치 안에서만 살고, 부모들, 친구들, 상사들, 부하들에 대한 다른 모든 애정들은 멀어져 그들 자신이 순수한 초자연적인 사랑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 사람들은 그들을 이해해주지도, 사랑해주지도 않는 세상에서도 그것을 찾아낸다. 그들은 나를 위하여 전혀 이해받지 못하고 조롱거리가 되어 마치 그들이 홀로 있는 것처럼 살아가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세상은 사막이다.
내 소중한 ‘희생자들’은 우리의 혼합물을 찾아낸다. 왜냐하면 마리아께서는 예수의 사랑을 위한 첫 번째 희생자셨고, 어머니이시자 의사이신 그분의 손들로 그분의 추종자들을 다시 새롭게 해주시고, 그들에게 더 큰 희생을 고취시키는 그분의 눈물을 주시기 때문이다. 내 어머니의 거룩한 눈물!
마리아께서는 기도하신다. 그분께서는 하느님께서 고통을 주셔도 기도하기를 거부하지 않는다. 그것을 기억해라. 그분께서는 예수와 함께 기도한다. 그분께서는 아버지, 우리와 너희의 아버지께 기도한다.
최초의 ‘주님의 기도’는 마리아의 마음 고통을 위로해드리기 위하여, 내 목숨의 희생과 자기 아들의 죽음에 대한 내 어머니의 수용과 함께 절정에 이르게 될 점점 더 큰 희생들의 기간이 우리에게 막 시작되려고 할 때 나자렛의 텃밭에서 드려졌다.
우리가 아버지께 용서받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죄 없는 우리는 한숨 한번 쉰 것에 대해서도 용서받고 나서 우리의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 합당하게 되려고 겸손하게 아버지께 용서를 빌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희가 하느님의 은총 안에 더 많이 있을수록 너희의 임무가 더 복되고 더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공경과 겸손을 가르치기를 원했다. 완전한 남자와 여자인 우리도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꼈고, 그래서 우리는 용서를 간청했다. 우리가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청했던 것과 똑같이 말이다.
무엇이 우리의 빵이었느냐? 오! 그것은 마리아의 깨끗한 손으로 반죽되어 우리의 작은 화덕에서 내가 그토록 자주 준비해둔 장작들과 불쏘시개로 구워지는 빵이 아니다. 사람이 땅 위에서 사는 동안에는 그런 빵도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일용할 양식은 날마다 사명 중 우리의 몫을 행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날마다 그것을 주시기를 청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임무를 다하는 것이 ‘우리의’ 하루의 기쁨이기 때문이다.
내 작은 요한아, 그렇지 않느냐? 만일 관대하신 주님께서 고통의 임무를 주시지 않은 채 너에게 하루를 주신다면, 마치 그날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날은 잃어버린 날이 된다고 너도 말한다.
마리아께서는 예수와 함께 기도하신다. 내 자녀들아, 너희를 정당화해주는(justify) 것은 예수이다. 너희의 기도들이 열매 맺고, 아버지께 받아들여지게 하는 것은 나 예수이다. 나는 말했다. ‘너희가 무엇이든 아버지께 청하면, 그분께서는 내 이름으로 그것을 주실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라고 말함으로써 자기의 기도들을 고양시킨다.
너희는 기도할 때 항상 나와 일치해라. 나는 하느님-사람인 내 목소리로 인간인 너희 목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너희를 위하여 큰 소리로 기도할 것이다. 나는 너희의 기도들을 꿰뚫린 내 양손에 받아 그것들을 아버지께 들어 올리겠다. 그것들은 그렇게 하여 무한한 가치가 있는 제물들이 될 것이다.
너희의 목소리들과 합쳐진 내 목소리는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입맞춤처럼 올라갈 것이고, 내 상처들의 피는 너희의 기도들을 값진 것들이 되게 할 것이다. 만일 너희가 너희 안에, 너희와 함께,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를 가지고 싶다면, 내 안에 있어라.
너는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도…’라는 말로 이 이야기를 마쳤는데, 네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었다. ‘우리를 위하여 칼바리아로 올라가셨던 두 분에게 몹시 배은망덕한 우리를 위해서도.’ 네가 그 말들을 쓴 것은 아주 잘한 일이다. 내가 우리 고통들 중의 하나를 너에게 보여줄 때마다 그것들을 덧붙여라. 그것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묵상하고 뉘우치라고 울리고, 부르는 교회의 종소리처럼 되게 해라.
지금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쉬어라. 평화가 너와 함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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