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첫 박해와 스테파노의 순교
-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복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령강림과 교회의 창립. 성서에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이 사건들은 앞으로 전개될 그리스도 교회의 장밋빛 미래와 박해라는 두가지 상반된 역사를 예견하고 있었다. 사도행전은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생활상과 발전상을 비교적 소상하게 전해준다. 성령의 강림으로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 새로운 교회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초대 교회 공동체는 공산(共産)과 공유(共有)의 정신으로 번창해 나갔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한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사도 2,44~47).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닌, 헌신과 순수한 열정에서 비롯된 이러한 종교적 윤리적 공산주의는 이교인들을 자극했고, 그들의 관심을 교회에 쏠리게 만들었다.
앞서 교회창립편(2회)에서 지적한 것처럼 우정과 친교(코이노니아), 기도, 빵의 나눔,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대변되는 초대 교회 공동체의 특징들도 교회의 발전과 무관하지 않았다. 또 한 가지 초대 교회 발전을 뒷받침한 것이 있다.
사도들의 설교에 뒤따르는 치유 기적이 그것이다. 사도행전 2장 43절은 사도들이 놀라운 일들과 기적들을 행했다고 전한다. 이를 토대로 3장 1~10절에서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서 행한 치유에 관한 진술이 이어진다. 나는 돈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이것입니다.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가시오(사도 3,6).
계속되는 설교와 치유. 그것은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세상 것과는 다른 것이라는 불멸의 그리스도교 정신을 강력하게 대변하고 있었다.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치유는 곧 예수가 메시아, 주님, 하느님의 아들임을 고백하도록 이끌었다. 신자의 수는 나날이 증가하고(사도 2,47)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고친 후에는 남자만도 5000명이나 믿게 되었다(사도 4,4).
1) 박해의 그림자
그러나 이즈음 교회엔 박해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워지고 있었다.
첫 번째 박해는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고 기적을 행하던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날로 늘어가는 신도들의 무리를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유다교 지도자들과의 갈등 양상으로 나타났다. 이 상황은 묘하게도 예수가 사두가이파의 반대를 샀던 당시와 절묘하게 연결되고 있다.
부활을 가르친 예수는 부활이 없다 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의 반대를 샀다(루가 20,27~38 참조). 그러나 이제 그들은 예수가 부활했다고 주장하고 예수 안에서 죽은 이들의 부활을 가르치는 베드로와 요한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원로, 대사제, 율법학자들이 예수를 거슬러 회의를 소집한 것(루가 22, 66)과 마찬가지로 베드로와 요한의 주장에 대처하기 위해 유다 의회가 소집됐다(사도 4,5~6). 법정(Synedrium)에 선 베드로와 요한. 그들에게 사두가이파인 유다 원로들과 율법학자들이 말한다.
당신들은 누구의 이름으로 이런 일을 했소? 기적에 초점을 두고 다그치는 이 물음에 베드로의 답변은 확신에 차 있다. 불구자였던 저 사람이 성한 몸으로 여러분 앞에 서게 된 것은 바로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된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지만 하느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입니다(사도 4,10). 베드로의 언변에 놀란 유다 지도자들은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권고하는 선에서 물러난다. 그들 역시 치유 사실을 목격한데다 온 예루살렘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 부활을 증언하고 그가 주님이라고 가르치는 사도들의 행동을 누가 막을 것인가. 계속되는 사도들의 설교와 치유 기적은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심사를 건드렸고 결국 사도들을 감옥에 가두기에 이른다. 대사제의 심문에 베드로의 대답이 걸작이다.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 보다 오히려 하느님께 복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사도 5,29). 격분한 사두가이들로부터 죽을 고비를 넘긴 사도들은 매질을 당하고 다시한번 예수의 이름으로 아무 것도 말하자 말라는 다그침을 받았다.
그러나 이것은 미구에 닥칠 박해의 시작에 불과했다. 신도들의 무리가 급증하자 사도들의 말씀의 봉사가 방해를 받기 시작했다. 식량을 배급하고 가난한 이를 돌보기 위해 7명의 보조자를 선발한 것도 사도들이 기도와 전교에 온 힘을 쏟기 위해서였다. 스테파노는 이렇게 뽑힌 7명의 보조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2) 스테파노의 순교
초대교회 공동체가 조직과 체제를 갖추면서 하느님의 말씀은 널리 퍼져나갔고 신도들의 무리도 날로 늘어갔다. 이러한 때 격노한 유다 원로들과 율법학자들에 의해 처참한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바로 일곱 보조자 중 한명인 스테파노의 순교가 그것이다. 성령의 힘으로 놀라운 일들을 행하던 스테파노가 자유인의 회당 사람들과 논쟁을 벌인 것이 화근이었다. 회당 사람들은 키레네, 알렉산드리아,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디아스포라 유다인들, 즉 본토를 떠나 사방에 흩어져 살던 유다인들이었다.
거짓 증인들과 모함에 의해 유다 의회에 끌려나온 스테파노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예언된 구세주를 배척하고 죽인 유다인들의 배반 행위를 고발했다. 그의 말을 들은 의회의원들은 스테파노를 성 밖으로 끌어내 돌로 쳐죽였다. 스테파노가 순교한 자리엔 현재 그리스정교회의 기념성당이 세워져 있다. 이슬람 대사원 아래쪽에 위치해 있는 이 성당엔 순교지점에 다윗의 별이 새겨져 있고 스테파노의 순교 모습을 담은 이콘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하느님은 이렇게 박해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당신 교회를 단련시키려 하셨다.
그러나 주 예수님, 제 영혼을 받아주십시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지우지 말아주십시오라는 스테파노의 마지막 외침은 숱한 고난과 박해를 견디어낼 교회의 생명력을 또한 예견하고 있었다.
[가톨릭신문, 2000년 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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