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천주교로 개종하였는가?-개종실화

7. 루터는 신신학파(新神學派)의 시조

Skyblue fiat 2023. 11. 20. 17:37

 

'개종실화-나는 왜 천주교로 개종하였는가?'

 

7. 루터는 신신학파(新神學派)의 시조  

 

전 장로교 신학교 졸업 유을준

1915년 8월 11일 출생, 1943년 일본 동경 제국대학 의학부 전공과 졸업

1946년 장로교 조선 신학교 학부 입학

1950년 4월 장로교 대한 신학교 졸업(목사 후보생)

1950년 5월 27일 천주교로 개종하여 영세

 

내가 천주교에 귀정한 것은 하루아침에 된 것도 아니었고 단순한 동기로 돌변한 것도 아니었다. 실로 여러 해를 지나는 동안 몇 가지 문제를 연구할 때 만족한 해답을 얻지 못함에 따라 정신상 불안이 하나씩 둘씩 늘어갔다.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비판적으로 나가게 되었다. 이제 생각나는 대로 그 대강을 적어 보자.

 

내가 천주교를 전연 모르고 있던 조선신학교 2학년 때였다. 그때 장로교회의 일을 보던 미국 부인들 중에는 결혼생활을 안하고 독신으로 일생을 보내는 이들이 몇 분 있었다. 일반 신도들은 이분들을 결혼한 다른 부인들보다 더 알아주는 듯하였다. 이렇게 독신으로 지내는 것을 ‘동정’이라고 함을 알았다.

 

그런데 사도신경에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를 낳았다고 말하였다. 과연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도 일생을 동정으로 지냈을 것, 또 응당 그렇게 지냈어야만 될 것이라고 느꼈다. 이것은 무슨 논거에 의한 것도 아니고 다만 내가 타고난 종교적 본능에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하느님의 전능에 의하여 동정으로 예수님을 낳는 특전을 받았으니, 보통 사람의 자녀를 낳아주기 위하여 몸을 더럽힘으로써 그 특전을 버리는 일이 없었어야만 될 것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목사님이나 교수에게 물어보니, 성경에 예수의 형제와 누이들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또는 예수를 맏아들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하여 마리아가 평생 동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나는 말문이 꽉 막혔다. 그렇다고 내 마음까지 설복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하여 장로교회에서 너무나 무관심하고 간혹 냉대하는 듯한 태도는 은연중 나를 불쾌하게 했다. 예수님께 홀로 혈육을 드려 낳아준 마리아! 예수를 품에 안아 길러준 마리아! 십자가상 운명까지 보고 나서 장례까지 지내준 마리아! 그때 만일 내가 있었고, 또 될 수 있었다면 마리아를 우리 집안에 모시고 내 정성을 다하여 받들어 섬겼을 터인데…….

이렇게 지내는 중 언젠가 일본 광명사에서 발행한 천주교 성인전을 읽을 때 사도 야고보는 예수의 친척이라는 말을 보았다. 이 야고보가 예수의 형제라고 하는 이가 아니냐? 그렇다! 예수의 형제니, 누이니 하는 이들은 우리 한국에서처럼 친척이나 인척간으로 되는 형제요 누이인 것이다. 마리아의 평생 동정에 대한 나의 소신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월은 흘러 그대로 일 년이 지났다. 독일 사람 쉴러가 저술한 「전쟁」을 읽었다. 종교개혁 후 일어난 30년 전쟁의 참상이 눈에 보이는 듯 자세히 적혀 있다. 가슴이 선뜻하다. 다 읽고 난 다음의 감상은 어떠했는가?

천주교의 부패상을 그대로 두고 지냈던들 이 개혁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신앙의 저 무서운 분열이며 동족끼리 서로 철천지한 원수를 맺고 무수한 인명을 서로 살상하며, 무수한 가정을 파멸한 이 30년 비극보다 더 불행한 결과가 과연 일어났을 것인가? 그러고 보니 이 종교개혁도 후세의 찬미를 받을 만한 무슨 좋은 운동은 아닌 것 같다.

나는 그때도 루터를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그 역시 한 신신학파라고 나는 보았다.

신신학파라는 것은 과거의 신앙 내용이나 성경까지도 현대인의 사상이나 지능에 적응시켜야 될 것이므로 여기에 맞지 않는 것은 거부해 나가자는 인물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성경까지도 비판적 태도로 대하여 현대인의 상식이나 구미에 맞지 않는 것은, 예를 들면 기적이나 부활이나 예수의 신성 같은 문제는 인정하지 않으려 든다. 내가 신학교에 재학할 때도 이런 사상 때문에 장로교가 동요되었고, 현금에는 두 파로 분열되어 수습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 있다.

이런 사상은 미국 장로교회에서 건너온 것이다. 미국 북장로교회에서는 목사들을 독일에 유학시키는 전례가 있다. 그런데 루터의 고향인 독일에 가서 공부하고 오는 목사들은 대부분이 신신학파가 되더니, 드디어 신신학파의 신앙강령이 새로 선포되었다. 이것은 장로교의 전통을 숭상하자는 전통파에게는 커다란 폭탄선언이었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전통파의 거물인 프린스턴 신학교의 교수인 메친 박사는 미국 북장로교를 이탈하여 정통장로교를 세우고 자기 교파 신학교로 필라델피아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창설하고 자파의 선교사를 한국에까지 보내어 부산에 자파의 신학교인 고려신학교를 설립한 지도 벌써 6~7년에 이른다.

따라서 한국 장로교도 신신학파와 보수신학파의 두 파로 분열되어 조선신학교(현 한국 신학대학)는 신신학파의 교수로 운영되었고 보수파의 교수로 영도되어 간 다른 신학교도 있었다. 이때에 벌써 총회는 두 파로 분열 투쟁하므로 수습하지 못할 국면에 이르렀다.

 

내가 볼 때 이 신신학파는 무종교로 넘어가는 한 과정에 불과하다. 자기 구미에 따라 성경까지 비판하여 거기서 인정할 것과 인정할 수 없는 것을 가린다는 것은 성경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깊이 생각해 보니, 루터가 바로 이 신신학파를 건설한 인물이다. 그가 성경을 번역할 때 때로는 위역(僞譯)도 하고 때로는 말마디를 빼놓기도 했다.

내가 이것을 아는 것은 천주교회 서적을 읽고서 아는 것이 아니다. 프로테스탄트 서적에도 이것은 자세히 실려 있다. 다른 학생들은 이것을 무심히 보아 넘겼는지 모르나 나는 이것을 중대한 문제로 알았다. 한 사람이 제 마음대로 위역도 하고 말마디를 빼내버려도 좋을 만한 성경인가! 더구나 루터는 야고보서를 초개 같은 편지라고 신약전서에서 빼내버렸고 구약전서에서는 마카베오서를 비롯하여 몇 편을 빼내버렸다.

그런데 이 신구약전서는 예전 니케아공의회에서 깊이 토론하고 연구한 다음 규정짓고 반포한 것이 아니었던가? 내가 실제로 연구하여 진가를 밝힐 수 없는 이상 나는 둘 중에 한 편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저 공의회에 모였던 옛적 성현학자들의 일치한 공론인가, 혹은 16세기의 루터인가? 루터는 한 신신학파요, 성경비판주의자임에는 틀림없다.

 

이제 나는 종교개혁을 비판의 눈으로 재검토하게 되었다. 그때 로마교회가 부패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프로테스탄트 서적에서는 그 실례를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그러나 부패한 것은 사람들이었다. 교역자들이었다.

천오백 년 동안 아무런 이의도 없이 믿어 오던 교리에 미신이 섞여서 교리가 부패한 것은 아니었다. 프로테스탄트 서적에도 이 교리부패에 대해서는 말한 바가 없다.

 

그런데 루터는 무엇을 하였는가? 저 부패한 교역자들을 개과천선 시켰는가? 아니다. 그러면 폭력을 써서라도 저 무리들을 숙청하였는가? 그것도 아니다. 다만 자기를 추종하는 자들을 데리고 저 테두리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렇다면 이것이 분열이지 어찌 개혁이라 할 것인가!

또 부패되지 않은 교리, 천오백 년 동안 일반적으로 믿어오던 교리의 대부분을 폐기해 버린 것은 무슨 ‘이유’인가? 이유……? 없다. 다만 루터는 신신학파요 성경비판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위역하고 그 말씀을 빼내버리고, 성경 몇 편쯤은 아주 내동댕이친 신신학파요 성경비판주의자이다. 이 앞에 교리 같은 것이 무슨 행세를 할 것이냐 말이다.

 

지금 장로교회 안의 신신학파들도 만일 루터처럼 정치적 세력과 결탁할 수만 있다면, 그 세력을 이용해서 전통파를 뒤집어엎지 않을까? 그러고 나서 장로교 개혁을 했다고 후세를 향해서 외치지 않을까?

나는 루터의 종교개혁이 이것과 다름없음을 깨달았다. 예전 질서를 폭력에 의해서 뒤집어엎은, 어느 민족에서나 볼 수 있는 혁명운동……! 이것을 종교개혁이란 미명으로 분장해 놓았다. 생각하면 앞길이 캄캄하다. 한숨만 나온다.

 

세월은 여전히 흐른다.

나는 위에 말한 가톨릭 성인전을 읽고서 더 알게 된 것이 있다.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예수 성탄 때 동방에서 왔던 세 분의 박사들의 무덤은 어디 있고, 예수께서 고난 받으실 때 쓰셨던 가시관은 어떤 성당에 보관되었고, 그 손과 발을 뚫어 거룩한 피를 흘린 못은 어떤 성당에, 그 시체를 염습했던 염포는 어떤 성당에 보관되었고, 십자가는 어떻게 나누어져 어디어디 보관되었고, 십자가 곁에 섰던 형리들 중 누구누구는 그 다음 신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성인까지 되었고, 로마에서 루터가 올라가다가 말고 내려온 그 계단 위에는 예수께서 결박을 당한 그대로 총독 빌라도 앞에 서 계실 때 밟고 서셨던 그 돌이 있음을 알았다.

 

프로테스탄트 측에서는 그런 것들은 천주교회에서 지어낸 거짓말이라고 하지만 거짓말이라는 논거는 없다. 무엇보다도 있음직한 일이 아닌가? 예수를 위하여 악형 중 죽기를 간절히 바란 초대교회 신도들이, 예수와 직접 관련되는 저런 사물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등한하게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렇게 큰 감격을 내게 주는 종교적 지식이지만, 성경에는 이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없다.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성경은 신앙의 유일한 규범’이라고 하여 모든 것을 거기서만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좀 어색하다. 종교적 지식을 주는 원천이 또 다른 데도 있을 법하다.

 

복음서는 무슨 목적으로 언제쯤 저술되었을까?

문자가 생기기 전에는 어느 사실이 입으로 전해 내려가다가 문자로 기록되는 것이 상례이다. 저 아이누 족에는 장편의 서사시가 장구한 기간 동안 이렇게 후세에 전해진 것이 아닌가?

모세 성인이 모세오경을 쓰신 것도 태고적부터 그 민족 안에 일어나 대대손손 입으로 전해오던 사실을 문자로 기록했을 것이다. 세계 어떤 민족이든지 제 품에서 일어난 큰 사실은, 문자를 통하든지 않든지, 여하간 후대로 전해 내려가고 있다.

 

복음서가 저술된 것도 같은 과정을 밟은 것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 행하신 것과 가르치신 것을 처음에는 사도들이 입으로 가르쳐 얼마동안 전하다가 나중에야 문자로 기록하여 붙들어 매었다. 이것은 성서강의 시간에 우리가 듣고 아는 것이다.

그러면 이 복음서 속에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을까? 요한은 자기 복음서 끝에 말하기를 예수께서 행하신 것과 가르치신 것을 다 기록한다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 내지 못하리라고 말하고 붓을 놓았다.(요한 21,25)

 

그 뿐 아니라 예수께서는 당신 사도들에게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모든 진리를 가르쳐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요한 16,12-13) 그런데 복음서 네 편을 들고 보면 서로 비슷비슷하다. 예수의 간단한 전기이다. 간단한 역사에 불과하다. 예수의 가르치신 비밀은 여기뿐 아니라 다른 데도 있을 듯하다.

세력을 잃지 않고 오랫동안 내려가는 가족이나 민족 간에는 의례히 무슨 비방, 비전 같은 것이 전해지고 있다. 유독 종교에만 이런 비전이 없어야만 될 것인가? 아니 종교인만큼 더욱 그런 것이 있을 법하지 않은가? 예수께서 가르치신 비전은 복음서 뿐 아니라 다른 데에도 전해오고 있을 듯하다. 그것이 무엇일까? 알 듯 하고도 모를 일이다. 가슴이 답답하다.

 

어느덧 일 년이 지났다.

사람들은 뜻 맞는 동지끼리 한 군데 모여서는 예배를 보면서 ‘교회’라 한다. 다른 어떤 기성교파와 대립하면서 교회라 한다. 다른 누구의 지배를 받지 않는 독립한 교회다. 이런 교회가 세상에는 퍽 많이 생겨났고 또 생겨날 것이다. 그리스도 교회는 본시 이런 것일까?

예수께서 열두 사도를 선택하시고 72인의 제자를 선택하셔서 가르치시며 사방으로 파견하실 때 벌써 교회가 성립되었다고 볼 만하지 않은가? 예수를 중심으로 열두 사도와 그 밑으로 72인의 특선제자들이 연결되어 활동하고, 이들의 말을 믿는 무리들이 따르고……. 그렇다. 이것이 적어도 예수 교회의 기초 공작은 완성된 것이다. 비록 본격적 활동은 그 후 오순절 성령강림날 본격적으로 전개되었을지라도…….

 

신약성서가 저술되기 오래 전에 벌써 창립되어 있던 예수의 교회! 얼마나 권위 있는 교회이며 우리의 신뢰와 존경을 받아야 할 교회인가! 거기에는 아무런 분열도 없고 또 없어야만 한다. 주도 하나요, 신앙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이다.(에페 4,3-6) 예수의 몸은 찢어질 수 없는 몸이시다. 따라서 그의 신비체인 교회도 분열될 수 없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 교회의 홍수시대를 연출하고 있는 것은 무슨 일인가? 독립한 교회가 이백이니 삼백이니 오백이니 하는 것은 웬일인가? 교회 창립 이후에 생겨난 신약성경을 둘러싸고 각기 독특한 해석을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시대마다 신신학파와 성경비판주의자들의 장난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이제 그렇다면 초창기의 저 권위 있는 교회는 어떻게 되었을까? 모두 부패되고 분열되는 통에 아주 없어진 것일까? 그렇다면 예수의 업적이 아주 소멸된 다음 사람들의 연극만 세상에 남아 있는 것이 되는데 그렇게 인정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저 권위 있는 교회는 이것이라고 지적할 만한 것도 생각나지 않고. 날이 갈수록 정신의 불안만 커진다.

 

1949년 ○월 ○일

○○○교수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천주교에서는 화체설(化體說)을 주장하여 빵과 포도주 형상 속에 실제로 예수의 살과 피가 있다고 가르치지만 신교 각 파에서는 상징설(예수의 살과 피를 상징한다는 말) 혹은 기념설(예수의 최후만찬을 기념한다는 말)을 지지합니다.……”

이때 내가 즉각적으로 느낀 것은 천주교가 성경 말씀을 솔직하게 그대로 알아듣는다고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감히 그 자리에서 이에 대한 질문을 할 수는 없었다. 이설을 주장하는 혐의가 농후한 학생은 퇴학 처분을 당하기 때문이다.

 

며칠 지난 다음 선생님을 그 사택으로 방문하고 ‘화체설’이 성경 그대로가 아니냐고 물어보았다. 선생님은 정색하고 나더니 “그것은 안 될 말이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서 소화시킨다는 것은 예수님께 대한 큰 불경이오!” 하고 말을 끊으신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어 다시 질문을 했다. “요한 복음 6장을 보면 예수께서 누구든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않는다면 영생을 얻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실 때, 그 제자 중에는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하고 예수님을 떠나갔는데, 만일 그때 선생님도 계셨더라면 역시 믿을 수 없다고 떠나셨겠습니까?” “……”

 

“나는 성경 그대로 알아듣겠습니다. 아무런 예비도 없이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라고 말씀하신 것도 아니고 이 6장에서와 같이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은 내 살이요 내 피라고 장황히 말씀하셨고 기적으로 빵 다섯 개를 가지고 오천 명을 먹이신 다음 그 남은 조각을 소중히 거두어 모으게 하신 것도 심상히 볼 수 없어 미리 예표로 이렇게 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더구나 코린토 전서 10장 16절이며 11장 23절 이하를 깊이 연구하면 어떻게 이 화체설을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무어 그리 깊이 파고들어갈 것까지는 없소. 우리 장로교회에 유명한 신학자들이 모여 우리 교회의 신앙강령을 선포했으니 그저 그대로 따르는 것이 옳지요.”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장로교 신학자들이 다른 교회 신학자들보다 더 초월하다는 증명은 무엇인가? 어찌하여 자기들끼리도 서로 분열되고 있는가? 입으로는 성경을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성경의 참뜻을 무시하여 버리니 이 무슨 모순인가!

 

일반 프로테스탄트 측에서는 형식을 너무나 무시한다. 예수께서 사도들의 발을 씻어 주신 것은 형식이 아닌가?, 또 병자를 고쳐주실 때 당신 손가락을 그 귀에 넣으시며 침을 뱉어 그 혀에 바르신 것이라든지, 소경을 고쳐 주실 때 침으로 흙을 개어 눈에 발라주신 것 등은 모두 무슨 의미가 있는 형식이 아닌가?

성경을 그대로 실천하는 교회를 하나 세우고 싶다. 그 이름은 세족(洗足)교회라고 할까? 이것은 없는 일이 아니다. 오순절 지킴을 강조함으로써 오순절교회가 세워졌고, 침례로 세례 받음을 주장함으로써 침례교가 생겨나지 않았던가? 다른 이들이 한 것을 유독 나만 못한다는 법은 없다.

 

천주교회에서 화체설을 주장하는 것은 성경을 그대로 실천함이다. 천주교 교리도 참작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서 천주교 서적을 구해보고 싶은데 천주교회에 나가서 구해 볼 생각도, 용기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온종일 시내 서점을 더듬어 사 온 것이 「진리본원」, 상지대학편찬 「가톨릭대사전」 두 권, 그리고 파피니의 저서 「그리스도전」이다. 많은 참고가 되었다.

 

1949년 ○월 ○일

대구에서 한국 장로교회 총회가 열렸다. 신도들이 장로를 추천하고 장로들이 모여 노회(老會)를 구성하고, 여러 노회가 모여 총회가 된다. 이 총회는 장로교회의 최고지도기관이요 행정기관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총회도 처음부터 끝까지 분쟁, 아니 투쟁으로 일관했다. 몽둥이까지 왔다 갔다 했다. 천주 성령이 계시다는 티끌만한 표시도 없다. 이런 분쟁을 진정시킬 아무런 권위도 그 위에는 없다! 딱한 노릇이다. 이런 총회의 지도를 받아야 하는 장로교회의 앞길은 어찌 될 것인가……?

나는 이때 장로교회를 탈출할 것을 결심했다.

 

내가 천주교 교리를 참고하여 그것을 신교 교리와 조화시켜, 성경을 그대로 실천하는 세족 교회를 세운다 할지라도 그 앞길은 어찌 될 것인가? 차차 신도가 많아진 후에는 아무런 분쟁도 없으리라는 조그마한 보장도 없고, 분쟁이 일어난 경우엔 그것을 진정시킬 권위는 이것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도 없다. 답답하다.

신교의 저 모든 교파가 언제나 분열되고 분쟁 중에 있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알아들을 수 있다. 그러면 예수께서는 이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마련치 않고 그대로 훌쩍 하늘로 올라가고 마셨을까?

 

사도 시대의 저 존경하올 교회! 저 권위 있는 교회! 이 교회가 그 후로 아주 없어지고 말았을까? 예수께서 친히 세우신 교회가 없어질 수가 있을까? 세상 마칠 때까지 항상 같이 계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저 권위 있고 존경하올 교회의 계통으로 내려오는 교회가 있다면 그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성공회? 아니다. 모두 아니다. 그것들은 16세기 이후에 생겨난 것은 모든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천주교다. 맨 처음에는 이것 하나만 있었다.

사도들의 교회가 후대로 넘어왔다면 이 천주교 안에 있을 수밖에 없다. 중세기에 부패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다음 완전히 청신하게 되었다. 4억여 신도를 포용하고 있지만 거기는 아무런 동요도 없고 분쟁도 없고 분열도 없다. 나도 거기로 넘어가야겠다. 내가 천주교에 대해서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여하간 거기로 넘어가서 차차로 연구해 보자.

 

어떤 청년이 「교부들의 신앙」이란 책을 주면서 한번 읽어 보라 한다. 재미있게 읽었다. 내가 전부터 교회는 이러해야 된다고 느껴오던 문제가 전부 여기 실려 있다. 그중에 제일 통쾌하게 느낀 것은 교회의 지일성, 교회의 사도전래성, 성전, 성모 마리아의 평생 동정, 성모공경의 정당성, 성체성사 등이었다.

나의 최후 문제를 완전히 정리해 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예수께서 친히 세우신 교회가 바로 천주교회요, 이 교회는 처음부터 오늘까지 아무런 본질적 변질도 없이 전해 내려옴을 확실히 알았다. 이 교회를 신봉치 않고서는 내 영혼을 구할 수 없음을 더욱 느꼈다.

 

그런데 난처한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는 장로교 태중신자이다. 우리 아버지는 장로이고 집안은 물론 가까운 친척이며 친구가 전부 장로교 신자이다. 장로교는 바로 나의 세계이다. 이 세계에서 나 혼자 떨어져 나가야 한다. 그래서 천주교로 넘어간다……, 거기는 내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 생각만 해도 무서운 고독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하다.

금번 졸업생 중 몇 명은 미국 유학시키기로 내정되었고 나도 그 후보자 중 한 사람이다. 천주교로 넘어가자면 이 미국 유학의 영광과 행복을 헌신짝처럼 내버려야 한다.

 

이제 몇 달 지나면 졸업을 하고 교회의 안수례를 받고 나면 나는 목사가 된다. 예배당에 가득한 남녀 신도들 앞에 나서서 설교를 하고 예배를 지도하는 내 형상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새로 된 이 ‘목사님!’을 부르며 나를 환영하는 신도들! 나를 존경하며 나의 지도를 청하는 신도들……! 힘들여 신학교를 졸업만 하고서 이 영광스러운 목사직엔 올라보지도 못하고 그만둔다. 천주교로 귀정하면 나는 한낱 평신도, 그것도 무명의 평신도로 주저앉아야 한다.

내 영혼을 구하느냐, 내게 약속된 행복스러운 생애를 취하느냐?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남모르게 이런 고민으로 그날그날을 지내는 중 악성 안질에 걸렸다. 두 주일 동안 집에만 박혀 있었다. 전문의사의 말에 의하면 실명될 위험까지 있다고 한다. ‘이것은 성모께서 보내시는 채찍이다. 진리를 알아듣고 어찌 귀정을 미루어 가느냐 하는 성모의 채찍이다!’ 이런 생각이 홀연 머리를 지배한다.

 

나는 용기를 내어 결심했다. 만난을 극복하고 - 필요하다면 눈까지 빼버리고 손까지 끊어버리고(마태 18,8) - 천주교로 속히 귀정할 것을 결심했다. 그런데 이 결심을 한 날부터 내 안질은 점차로 나아진 것을 지금도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1950년 5월 2일

나는 이른 아침에 일어났다. 집을 나서서 길을 물어가며 동자동(현 후암동) 성당에 갔다. 교우들이 모여 조용히 기도를 드리고 있다. 나도 그들이 하는 대로 행동을 따라하면서 미사성제에 참례하였다. 이날부터 예배당에는 나가지 않았다. 날마다 미사에 참례했다. 성당에서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 듯하였다.

어느 날 그곳 신인균 신부를 정식으로 방문하고 나의 소감을 전부 말하였다. 신부님은 크게 찬성하시면서 신학교를 졸업하고서 귀정해도 좋다고 하셨다.

그달 20일에 졸업식이 있었다. 같은 달 27일 성령강림대축일 전날 나는 동자동 성당에 가서 신인균 신부 앞에서 귀정식을 행하여 완전한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이제 나는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자가 되었다! 남모르는 천상 평화가 가슴 속에 스며든다.

 

다음날 내가 천주교로 입교한 사실을 장로교회와 신학교에 서신을 보내 선언했다. 어떠한 파동이 일어났고 어떤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 어떻게 했을는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나는 이 귀정의 이유를 매번 설명해 주었다.

그러면 나의 이 귀정에 대하여 장로교 측(물론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에서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나의 짐작이 틀리지 않는다면 십분의 일쯤은 내 성격이 괴상해서 그렇다고 인정하고 또 십분의 일쯤은 내가 의사의 자격이 있으니 목사로 ‘취직’할 필요가 없어서 그렇다고 인정하고 나머지 십분의 팔쯤은 생각해보는 이들로서 내가 연구의 결과로 천주교에 진리가 있다고 인정한 연고라고 생각하였다.

내 자랑 같지만, 내가 무슨 일에든지 경솔히 굴지 않아 일반의 신임을 받고 있었던 까닭이다. 특히 우리에게 교회사를 가르치신 어떤 교수는, 그 이름을 여기에 발표하지는 않지만, 자기도 연구해 보아 천주교로 개종할지도 모른다고 말하던 그 정중한 태도는 아직도 내 기억에 새롭다.

천주교도들에게 말하는 바이다. 너무나 소극적이고, 진리를 남에게 전하려는 사상이 너무나 결핍되어 있다. 천주교가 이런 줄을 내가 벌써 알았더라면 그 당시에 내가 귀정했을 것은 틀림없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내 생각이 어떻게 뚫고 들어갔는지 이상에서 말했고, 또 내가 지금 생각하든지 천주교인들이 생각해 보든지 사리가 응당 그러한 것이지만, ‘예수를 믿으면 그만이다’ 하는 프로테스탄트 분위기 안에서 태어났고 또 자라난 당시의 나 혼자로서는 그렇게 생각해 나가기는 정말 지극히 어려웠다.

「교부들의 신앙」 같은 훌륭한 책을 사서 읽고 또 그것을 프로테스탄트 친지들에게 선사할 만한 아량들은 없는가! 기초적 신앙을 가진(천주의 존재, 영혼불멸, 예수의 천주성,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믿는) 솔직하고 양심적인 프로테스탄트 신자라면, 그 책을 읽고서도 그 자리에 안심하고 눌러앉아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에게 말하는 바이다. 천주교라는 ‘실물’에 한번 접촉해 본 일도 없이, 프로테스탄트 항간에 떠도는 그런 말만 듣고서 천주교는 그러한 것이거니 하는 선입견을 버리고 진지한 태도로 연구해 보시라!

나는 프로테스탄트와 천주교 이 두 가지를 깊이 연구해 보고서 하는 말이다. 사람이 세운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영혼을 구할 수 없다. 거기서 주는 세례는 유효한지 무효한지 큰 의문이다. 만일 무효하다면 죄가 사해지지 않는다. 이 상태로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는가!

 

세례를 유효하게 받았다 할지라도 사람이 일생에 큰 죄를 한 번도 범하지 않기는 지극히 어렵다. 그런데 이런 죄는 미지근한 회개로는 사해지지 않는 것으로써 고해성사를 받아야만 하는데, 프로테스탄트에는 고해성사가 없다. 고해성사를 못 받는다면 상등통회를 발해야 되는데, 이 상등통회는 천주를 만유 위에 사랑함을 본질로 하는 것인 만큼 ‘믿으면 된다’고 가르치는 프로테스탄트 세계에서 이것은 상상도 못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 영혼의 구원을 얻으려면 예수께서 친히 세우신 교회로 들어와야만 한다. 이 교회가 바로 천주교회이다. 이 천주교를 신봉하는 것이 예수를 정말 믿는 것이다. 사람이 세운 교를 신봉하는 것은 예수를 거짓 믿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