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종실화-나는 왜 천주교로 개종하였는가?'
13. 천주교회의 세계적 일치성의 권위
전 감리교 목사 한인수
1881년 6월 20일 출생, 40년간 목사직 수행 후 1949년 천주교로 개종
나는 어릴 때부터 한문을 공부하고 20여 세까지 한학을 연구했다. 한학은 다만 수양에 관한 교훈이 있을 뿐 그것도 마음에 맞지 않는 문구가 많고 더욱이 알고 싶은 사후 문제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23세 때에 감리교인을 만나 사후상벌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끌려 그 교회에 나가서 여러 가지로 설교를 들었다. 듣고 보니 기독교가 아니고는 인생의 원리를 알 수 없다고 생각하고 이왕이면 기독교를 철저히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당시 협성신학교에 입학하여 5년 만에 졸업하였다.
처음에는 목사가 될 생각도 없이 다만 기독교를 철저히 공부해 보겠다는 생각뿐이었으나 신학교를 졸업하고 보니 교회에서도 목사가 되라고 강권하고, 또 나도 남의 구령을 위하여 헌신해야 되겠다고 생각되어 졸업 후 즉시 목사에 취임했다. 그래서 첫 번째로 담당한 교회가 서울 수표교예배당이었고 그 후 춘천, 화천, 원산, 안변, 통천 등 각 교회를 거쳐 다시 원산 교회에 재임하였고 그 후 포천교회에 재임 중 정년인 60세가 되어 목사직을 사퇴하고 그 후는 명예목사로 책임교회가 없이 청탁 하는 각 교회의 교역을 도와주었다.
이렇게 하여 근 40년간 목사직에 있었는데 우리나라 감리교에서는 초창기부터 일해 왔으므로 국내 각 교회 사정도 잘 알고 교역자들도 대부분이 나의 후배였으므로 그 동향도 잘 알고 있는데 어쩐 일인지 복음을 실천하는 교인이 극히 드물고 어느 교회에서나 명예와 재물로 인하여 충돌과 투쟁이 그치지 않아서 몇몇 뜻이 있는 교역자들은 항상 한탄하고 지냈다.
그래서 우리 동지 몇 사람은 모범을 보이기 위하여 주연(酒煙)을 금하는 외에 보통 음식점에도 출입하는 것을 일절 자금자숙하고 내가 50세에 상처한 후 지금까지 독신생활을 하면서 자성자계(自省自戒 : 자신의 태도나 행동을 스스로 반성하고,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함)하며 지내보았다. 그 중에 가장 덕망이 높아 동지 중에서도 존경을 받던 분은 그 후 천주교에 귀정하신 정춘수 목사였다.
그러나 몇몇 교역자가 아무리 애를 써도 교회의 내부는 항상 한 모양으로 무질서, 혼란을 계속하므로 기독교의 종가라고 하는 천주교의 내막을 냉정한 태도로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 지금부터 십여 년 전 일이었다.
천주교를 알아보니 신부들의 동정헌신(童貞獻身 : 결혼하지 않고 순결을 지키며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함) 이라든지 실천궁행(實踐躬行 :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실천하는 것), 그리고 신도들의 단합, 무분열, 무투쟁, 교회 기도 예식 중의 신성미, 이런 모든 각도로 보아 이 교회가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인도하시는 교회라고 믿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일생을 감리교에서 지낸 나로서는 천주교회에 개종한다는 것이 참으로 용이한 일이 아니었는데, 1949년 가을에 정춘수 목사가 만난을 배제하고 천주교에 귀정하시면서 우리 함께 천주교에 귀정하여 참된 구령의 길을 걸어가자 하셨으므로 일시에 용기가 나서 정 목사보다 한 달 뒤늦게 천주교에 귀정하였다.
나는 당년 74세 홀아비, 독자 하나 있던 것이 공보처 보도과장으로 있다가 6․25 때 공산군에 납치되어 지금까지 행방불명이며, 출가한 딸의 집에 얹혀서 그날그날 성경을 읽으면서 귀천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귀정 후의 감상
예수교는 신자 간의 친절미가 있고 천주교에는 신자 간에 냉정하다 한다. 그는 사실이다. 그러나 진심으로 구령을 생각한다면 인간끼리 친절한 교제로써 서로 위로를 받는 것은 다 쓸데없는 일이요, 천주의 사랑으로 위안을 받기 힘써야 할 것이다. 신자들이 육신 생활을 위한 친절을 주고받는 것으로 재미를 삼는다는 것은 아주 헛된 일이다.
참으로 구령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 천주교에 귀정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인도하는 활동이 좀 부족한 것이 유감이다.
오하영 목사를 비롯하여 천주교에 귀정할 분이 몇몇 분 있었는데 대부분이 납치되어 행방불명이다. 나는 이미 늙어 활동이 부자유하고 또 한쪽 눈이 폐안되어 전교에 노력할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내가 본명을 ‘베드로’라 한 것은 예수께서 고기 잡는 베드로를 보시고 이제부터 나를 따르라 하시니 고기 잡던 배, 그물, 동무, 그 아버지까지 일시에 다 버리고 예수를 좇았으므로 나도 감리교의 끊기 어려운 모든 관계를 끊는다는 뜻으로 베드로를 주보성인으로 정하여 모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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