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천주교로 개종하였는가?-개종실화

17. 죽음의 경계선에서 - 성결교 이신덕

Skyblue fiat 2023. 11. 16. 21:46

'개종실화-나는 왜 천주교로 개종하였는가?'

 

 

17. 죽음의 경계선에서

 

이신덕
1913년 8월 19일 출생, 1934년 5월 진남포 성결교회 부인회 부회장

 

 

온 천하가 다 어지럽고 요란스러운 이 세대를 당하여, 더욱이 우리 민족으로서는 전무후무한 민족적 비애의 오늘의 현실에서 웃음과 기쁨이 사라진 이즈음, 무한한 기쁨을 가진 나는 천주의 특별한 성총을 받고, 40여 년간 신봉하던 신교를 버리고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오 주 예수의 사랑하는 자녀가 됨을 천주께 무한히 감사하며 진정으로 기쁨을 금할 수 없다.


나는 모태에서 영아세례를 받았으며, 고향은 지금 3․8선 이북인 진남포시 억양기리 장로교회의 원로 장로이신 아버지(현재 인천시 제일교회 장로 이경모 씨)의 슬하에서 고이고이 자라나게 되었다. 원체 열심하신 부모님께서는 순전히 프로테스탄트 가정과 환경 속에서 교육을 하셨으며 결혼 생활도 물론 그러하셨다.

 

개종한 동기를 쓰려면 현 계성 여자 중고등학교장으로 계신 샬트르 성 바오로회 수녀인 박상일 벨나지아 수녀님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다. 수녀님은 학창 시절부터 유달리 서로 정을 통하던 둘도 없는 친구였다. 그는 학교를 마친 후 고향으로 돌아가서 곧 수녀원으로 들어가고 나는 결혼을 하였다.


마음과 정이 통하던 벗이었건만 종교적으로 합치지 못한 고로 그만큼 간격이 있었으며, 수녀원에 들어간 것도 가톨릭 때문에 사랑하는 친구를 빼앗긴 것이라고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수녀원에 들어가 어느 기간이 지나서, 서로 서신 왕래며 간혹 면회할 기회를 얻게 되어 다시 옛 친구를 찾은 듯 반가웠다. 사랑하는 그는 말끝마다 글구(句)마다 ‘오직 가톨릭만이 오주예수께서 친히 세우신 참 종교니……’ 하며 나에게 개종을 권하였다. 그러나 본시 판에 박힌 신교도인지라 좀처럼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배운 교회사로 보나, 학교에서 배운 교재로 보나, 단연코 루터의 소위 종교개혁이야말로 그 당시 암흑세계에 한 줄기 광명을 던진 것이라고, 수녀님께 대들며 반항했던 것이다. 서로 친한 사이였지만 종교 문제에 있어서는 대립을 면치 못하였다. 그러나 끊임없이 그는 여러 가지로 종교의 진가를 밝혀 설명해 주며 개종을 종용하였다.

 

나는 원체 고집쟁이인 데다가, 더구나 ‘믿음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프로테스탄트의 어둠이 가미되어 움직일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대답하기를 “나는 절대로 천당 갈 자신이 있으니 내 걱정은 말고 다른 외교인에게나 전교하라.”고 하였다. 그러면 그는 겸손한 태도로 “나의 기도가 아직 부족한 탓이다.”라고 하는 것이 내게 대한 유일한 항변(?)이었다.


이렇게 지내기를 십여 년! 그러나 내심 충격은 받았었다. 그렇다 하여도 내가 믿는 종교를 버리고 천주교로 가야만 되겠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사실 체면상으로나 친분상으로나 도저히 불가능한 일로만 생각하고, 나의 환경과 생활이 평범하게 계속되는 한 개종은 가망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6․25 사변 후 큰 병을 앓게 되어 생사를 걸고 큰 수술을 하게 되었다. (즉 1950년 11월 8일 서울대학병원에서 자궁암 수술을 하였다.) 수술대에 오르는 그 순간! 죽음 앞에서 나의 고집과 체면도 일순간에 사라지고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고민하며, 겁이 나서 자문자답하고 있는 중, 내 친구이며 천주교 신자인 오 마리안나 씨(현재 후암동성당 회장이며 나의 대모이다.)가 문득 들어오기에 얼마나 반가웠는지 막 매달렸더니, 그는 걱정 말고 ‘예수 마리아!’를 부르라고 하였다.


그 말이 참 구세주를 만난 듯이 기쁘고 안심이 되었다. 아! 그때 나의 진정한 부르짖음, 애걸(?)을 성모께서 들어주셨다. 다섯 시간이나 되는 오랜 수술을 받는 동안, 정신이 있는 한 ‘예수 마리아!’를 절대적인 신앙심으로 불렀다. 그날 밤부터 성모를 알았으며 천주교로 가야만 구원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옆에서 정성껏 나의 병을 돌보아 주시느라고 며칠 밤을 새워가며 애써 주신 우리 교회 목사님 안형주 씨(현재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 1가 영화교회 목사)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목사님, 저는 천주교회로 가지 못한 것이 후회됩니다. 꼭 제가 죽기 전에 천주교 신부님을 불러서 그 식대로(그때는 병자성사를 몰라서) 꼭 하여 주십시오. 또 죽은 후에라도 꼭 천주교 신부님을 불러 주세요. 만일 목사님이 그렇게 안 해 주시면 나의 영혼이 구원 못 받고, 따라서 목사님이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고 하며 나는 천주교만이 구령할 수 있다고 그냥 야단하였다.


그랬더니 그 목사 말이 “신앙이 깊으니 구령은 염려 없다. 안심하라.”고 하며, 또 놓기 어려워 “신교도 구교도 다 그만두어라. 믿으려면 잘 믿으면 되니 아무데나 잘 믿으라.”고 하였다.

 

3, 4일은 대단히 경과가 좋지 못하여 염려했으나, 차차 회복되어 간신히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건강을 잃은 몸이라 전 같이 자유로이 교회에 갈 수도 없으므로 마음으로만 통회를 발하며 ‘만일 제가 살아나면 꼭 천주교로 나가 당신을 위하여 몸을 바쳐 일하겠습니다.’ 하고 마음으로 또는 큰 소리로 굳게 맹세하였다.


이렇게 죽음에 직면한 병상에서 옳다고 생각한 참 종교-가톨릭을, 그 후 2년이라는 피난 생활과, 한편 병고 속에서 연구하고 알아보고 교리에 관한 토론도 하고 하였다. 이렇게 죽음의 준비에만 열중하여 오던 차에 건강도 다소 회복되었다.

 

어느 날 생전 처음으로 혜화동 성당에 가게 되었다. 그날의 감상을 무어라고 써야 좋을지! 그 오랜 나의 고집이 오늘 비로소 송두리째 다 없어졌다. 그리고 병중에 천주님께 약속한 ‘다시 살아 천주교인이 되겠다.’는 것을 이행하게 되어 참으로 기뻤다. 그리고 그 후로는 매일 아침, 기다려 미사참례를 하며 또한 교리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정식으로 천주교에 나가게 되니, 아버님이 말씀하시기를 ‘아비의 체면은 어떻게 되느냐? 또한 천주교는 형식적이다 운운……’ 하시며 극구 만류하였고, 또 어머님도 ‘천주교는 우상숭배교이며 마리아교라 운운……’ 하시며 절대 반대하였다.
이런 부모님의 절대적인 반대와 신도들의 반대, 친히 우리를 지도하여 주던 목사님이 구절구절을 들어 간곡히 반박(?) 설명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수십 일을 두고 천주교로 개종하지 말기를 권면하였다. 인정으로나 애정으로나 수십 년간 지도받던 목사님인 만큼 나는 눈물을 흘리며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한번 사경에 처하여 영혼의 구원에 대해서 통절히 느꼈으며 천주님과 약속을 하였고, 또 몇 해를 두고 「교부들의 신앙」 등 책을 읽어가며 연구하여 보니, 천주 친히 세우신 교는 천주교요, 천주 다만 천주교 하나만 세우셨다는 것, 한편 성모 공경의 당연함과 베드로 사도의 수위권, 루터는 개혁자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것 등을 잘 알고 승복하게 되었다.


아무리 정든 목사님이나, 또 나를 낳고 길러 주신 부모님이 막으셔도, 또 세상 체면도 아무것도 진정한 구령길 앞에 걸릴 것이 없었다.


드디어 작년 6월 8일 성삼주일에 인천 임 신부님께 오랫동안 신봉하던 열교를 끊어버리는 서약을 하고, ‘분다’라는 본명으로 세례를 받고 천주의 의자(義子 : 의로운 자녀)가 되었다.

 

아! 이날의 기쁨! 그때 감상을 쓴 일기 한 구절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오늘의 기쁨이야말로 그 무엇에도 비할 것이 없어 천상의 기쁨에다 비할까 한다. 이 날을 주시기 위하여 세상에 내시고 이 날을 주시기 위하여 질병과 괴로움과 번민을 주셨으나, 오늘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간택을 받은 주의 종 분다는 죽음이든 괴로움이든 주의 이름을 위하여 바치오니 명하소서. 순명하리이다.’

 

 

이제 개종 후 느끼는 바 몇 가지를 말하려 한다.


미사성제! 이것이야말로 이 세상에 이 이상 더 완전한 제사가 어디 있으랴! 옛날 구약시대에도 양과 비둘기 같은 짐승을 제물로 천주께 제사를 드렸으되, 그 옛날에 제사를 명하신 천주께서 이 시대라고 제사를 폐하라고 하시지는 않았을 터인데, 개량했다는 프로테스탄트에는 전혀 제사의 그림자도 없다. 그러나 천주교에서는 그 옛날 예수께서 바치신 십자가상 제사를 새롭게 미사성제로 천주성부께 매일매일 바치고 있다.

 

고해성사에 대하여 - 사죄권에 대한 것은 지면 관계로 생략하고, 다만 인간사회 우리 죄인들에게 있어서 이 제도야말로 사람의 생각이나 지혜로서 제정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즉, 예수 친히 세우신 성사이다. 40여 년간 소위 종교라고 믿었지만 고해성사를 한 번 본 후처럼 만족을 맛보지 못하였다. 나는 이 고해성사 한 가지로도 천주 세우신 교회임을 증명할 수 있다.

 

기적적 사실 - 파티마 성모 발현 사실이나, 스페인의 요세파 수녀에게 친히 가르치신 일이나 갖가지 많은 영적을 볼 때 천주 친히 지도하심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성체성사에 대하여 -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성체 중에 실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않는다고 하며, 우상숭배라고들 말하나, 예수님께서 세상 마치시는 전날 유언하신 제일 중요한 부탁을 거역하는 역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단언하고 싶다.
그 외에도 감화와 감동을 받은 것, 깨달은 것 등 부지기수이나 다 논할 수 없고, 본시 박식하게 설명할 수가 없으나, 불행히 나와 같이 오랜 세월을 헛되게 보내지 말고, 여러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은 잘 연구하여 속히 바른 길로 들어오는 분이 많기를 바라는 바이다.

 

현 세대에 있어 두 세계의 투쟁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공산주의냐, 비공산주의냐? 의 분수령을 타고 승리를 지향하는 현재인들은 과연 무엇을 갈망하고 있는가? ‘일치!’ 이것이야말로 현대인이 해결해야 할 선결 문제이다. 그러나 비공산주의 세계인을 이끌고 나가야 할 그리스도교인에 있어서 분열은 평화를 지향하는 전도에 암영을 던지고 있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거룩한 이름을 부르는 종교라면, 천주께서 세우신 계시의 종교! 종교 중의 종교! 가톨릭으로 일치되어 전 세계가 통일되는 날이 오기를 바라마지 않으며, 끝으로 친구 수녀님의 20년간의 끊임없는 기도와 오 마리안나 대모님과 음 세실리아 회장님 두 분의 간곡한 지도를 감사하며 이만 그친다.

 

 

 분다(베네딕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