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 26권
18장
성 알로이시오를 위한 선물. 하느님 뜻에 대한
계시들 안에 루이사를 섞어 짜야 하셨던 까닭.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상호 소통. 거룩한 권리.
1929년 6월 27일
1 성 알로이시오 기념일인 오늘, ‘거룩한 성체’를 받아 모신 뒤 성인의 영광을 위하여 이 성체를 봉헌하였다. 또한 우리 주님께서 그분의 거룩하신 뜻 안에서 생각과 말씀과 활동과 발걸음으로 행하신 모든 것도 이 성인의 영광을 위한 선물로 바쳤다.
2 내가 그러고 있었을 때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걸음을 옮기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성 알로이시오 축일인 이날, 너는 이 사랑하는 이 성인에게 네가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선물을 주었다.
3 네가 방금 영한 성체와 하느님 뜻 안에서 행한 나의 행위들을 그에게 선물하자, 내가 지상 생활 동안 행한 수많은 행위들과 같은 수의 태양들이 형성되었다. 이 태양들이 죄다 성 알로이시오를 뒤덮었고, 지상에서 올라온 이 뜻밖의 영광들이 어찌나 많은지 그가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였다,
4 이와 같이 내 뜻 안에서 이루어진 행위들은 다만 바치기만 해도 그들의 태양을 형성할 능력이 있다. 왜냐하면 내 거룩한 뜻이 그 행위들을 태양으로 바꾸기에 충분한 빛을 그들 내부에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5 나는 그 뒤 마음속으로 이렇게 혼잣말을 하였다. ‘이것이 어찌 된 일일까? — 복되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거룩하신 뜻에 대해 내게 말씀하신 모든 것 속에, 그 한복판에, 언제나 보잘것없는 존재인 내가 섞어 짜인 상태로 있으니? 그분께서는 그러나 당신의 지극히 높으신 뜻에 대해서만 잠시 이야기하실 뿐이다. 그것도 아주 드물게.’
6 그러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나오시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내가 내 ‘거룩한 피앗’에 대한 계시들을 너에게 주면서 그들 안에 너라는 존재를 섞어 짜는 것은 필요한 일이었다. 그것은 첫째, 그 각 계시가 너와 내 거룩한 뜻을 묶기 위해 내가 그 둘 사이에 만들어 준 끈이기 때문이었다.
7 그리고 그것은 내가 너에게 맡긴 선물이며 재산이었는데, 너에게 그렇게 주어졌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인류 가족이 내 뜻의 나라를 새로이 얻는 일에 함께 묶이게 된 것이다. 내가 만약 너를 그 가운데에 섞어 짜지 않았다면 내가 준 것이 결합의 끈도 선물도 아니고 단지 소식에 불과했을 것이다.
8 그러기에 너에게 내 거룩한 뜻에 대한 계시를 주기 위해서 너의 한 행위나 작은 고통을, 단 한 번의 ‘사랑합니다.’라도 기다려야 할 것이었다. 내가 너의 것을 받기를 원한 것은 나 자신의 것을 주기 위해서, 곧 내 ‘거룩한 의지’라는 큰 선물을 주기 위해서였으니 말이다.
9 우리의 외적 활동은 신적인 것과 인적인 것의 상호 소통으로 이루어진다. 바로 창조 사업안에 그 끊임없는 소통이 있으니, 우리의 ‘피앗’이 하늘을 창조하고 이 하늘에 별들을 온통 박아 두었는데, 그러기 위해서 그 질료가 된 물질이 활력을 띠게 하였다. 또 태양을 창조했는데, 그러기 위해서 그 질료인 빛과 열이 활기를 띠게 하였다.
10 우리의 ‘피앗’은 이윽고 사람을 창조했는데, 나는 먼저 흙으로 그 상(像)의 형태를 빚어내었고, 그 안에 영혼을 불어넣은 다음 이 영혼에 대한 내 사랑의 생명을 창조하였다. 그러고나서 내 거룩한 뜻이 그 자신의 뜻을 사람의 뜻에 전했으니, 이는 내 ‘거룩한 뜻의 나라’를 세우기 위함이었다.
11 이처럼 우리에게서 나온 것, 우리가 창조한 것 가운데에는 사람과 하느님의 상호 전달적인 요소가 빠진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사업인 창조 사업, 티 없이 깨끗하신 여왕, 사람이 되신 말씀 — 이 모든 것 안에 사람과 하느님이 서로 떨어질 수 없도록 함께 묶여 있는 것이다.
12 그러므로 하늘은 하느님이 넘치도록 가득하다. 이 하늘이 나의 영광과 우리의 권능과 지혜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를 낳으신 티 없이 깨끗하신 여왕, 나의 인성, 곧 ‘강생한 말씀’에 대해 이야기한다.
13 그런데 에덴 동산에서 내 첫 메시지가 배척당한 사건이 일어난 이래, 이제는 내 메시지의 두 번째 전달이 필요한 일이 되었다. 내가 내 거룩한 뜻이 알려지기를 원하기 때문인데 이는 내 ‘거룩한 피앗의 나라’를 실제로 다시 내놓기 위해서다.
14 그러니 내가 내 ‘영원한 의지’의 빛과 생명 자체 안에, 그 지식 안에, 거의 분리될 수 없는 유대로 또 하나의 피조물을 섞어 짜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리 할 수 있겠느냐?
15 즉, 내가 내 의지 안에 너를 섞어 짜지 않고 네 안에 내 의지를 섞어 짜지 않았다면, 너는 내 의지의 생명이나 그 영구적인 빛을 내적으로 느끼지 못했을 것이고, 이 의지를 사랑할 필요성이나 이 의지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은 열망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16 이런 이유로 나는 너와 나를 같은 조건 속에, 곧 너는 나에게 너를 주고 나는 너에게 나를 주는 조건 속에 놓아두었다. 그 상호 증여 안에서 나는 너에게 주고 싶은 지식을 만들곤 하였다. 그리하여 내 거룩한 뜻이 너의 뜻에 실질적으로 전달되면서 너를 정복자로 만들었다. — 내가 너에게 행하고 있었던 그 위대한 선의 정복자로.”
17 그러고 나서 ‘거룩하신 피앗’ 안에 나 자신을 계속 맡기고 있었는데……. 하지만 서둘러 이 피앗의 모든 것을 다 건너가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나로서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오히려 빛의 바다인 이 피앗 안에, 한없이 펼쳐져 그 끝이 어디인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이 피앗 안에, 내가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이 보일 따름이었다.
18 나의 여정은 그러므로 아무리 서둘러도 끝나지 않을 터였다. ‘영원하신 의지’ 안에는 언제나 무엇인가 할 일이 있고, 가야 할 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때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덧붙여 말씀하셨다.
19 “딸아, 내 뜻의 바다는 과연 광대무변하다. 시작도 끝도 없는 바다이니, 작은 피조물이 가로질러 갈수도 완전히 다 싸안을 수도 없다.
20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은 그러나 이 바다의 중심부에 있는 길에 있다. 그 중심 밖으로 나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기에 그는 해안 내지 바닷가를, 또는 바다의 어떤 한계선을 찾아낼 수 없다. 그렇기는커녕 전후좌우로 다만 하느님 뜻의 바다만을 보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이 뜻 안에 전하는 행위 하나하나에 대해서 신적인 권리를 돌려받는다.
21 사실 그런 사람의 행위는 내 ‘거룩한 의지’ 안에서 이 거룩한 의지로, 또한 ‘거룩한 정의’로 수행되었으므로, 내 의지가 그 영혼에게 ‘거룩한 빛’의 권리를 전하고, 내 의지 자신의 거룩함과 아름다움과 선성과 사랑의 권리를 전한다.
22 그는 따라서 당연한 권리에 의해 내 뜻의 바다에서 산다. 낯선 방문객이 아니라 주인으로서 사는 것이다. 이는 그의 행위들이 거룩한 권리로 바뀌어, 그로 하여금 내 거룩한 뜻의 정복자가 되게 했기 때문이다.
23 우리가 우리 ‘의지의 바다’에 살고 있는 작은 피조물을 보면서, 그것도 그가 낯선 객이 아니라 주인으로, 종이 아니라 여왕으로, 가난하게가 아니라 우리가 정복하여 얻은 재산으로 부유하게 — 이 엄청난 재산은 그가 우리의 ‘피앗’ 안에서 차지한 것이었다. — 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큰 즐거움과 행복감을 맛보는지 네가 알면 (참 좋겠구나).
24 우리의 ‘거룩한 의지’ 안에서 사는 사람은 당연히 내적으로 빛의 지배, 거룩함의 지배, 아름다움의 지배를 느끼고, 원하는 만큼 자기를 아름답게 할 수 있는 힘을 느낀다. 그리고 그는 마음대로 발휘할 수 있는 선성을, 그의 행위들의 본질인 사랑을, 그 자신의 생명인 내 거룩한 뜻을 온전히 그 자신의 것으로 소유한다. 우리 자신이 그에게 준 거룩한 권리로 그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25 너는 그러니 주의를 기울여, 우리의 흠숭할 만한 ‘피앗’ 안에서 하는 네 행위들의 수가 더욱더 많아지게 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