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천상의책1-5권

(천상의책 3권-21~30) 사랑이 겉옷처럼 모든 행위를 감싸게 해야/굴욕과 극기/고해성사/자기인식과 겸손

Skyblue fiat 2014. 7. 28. 20:00

 

3권-21, “사랑이 겉옷처럼 너의 모든 행위를 감싸게 해야 한다.”

 

 1899년 12월 27일

 

1. 그분께서는 계속 그림자처럼, 또는 번쩍 하는 번갯불처럼 나타나신다. 내 마음이 쓰라린 아픔의 바다에 잠겨 있었을 때에 그분께서 갑자기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사랑이 겉옷처럼 너의 모든 행위를 감싸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무엇이든지 완전한 사랑으로 빛나게 하여라. 네가 고통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언짢아할 때 그것은 무엇을 뜻하겠느냐? 너의 사랑이 완전하지 못함을 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너의 뜻이 개재되지 않는다면, 네가 나에 대한 사랑 때문에 고통을 받든지 나에 대한 사랑 때문에 고통을 받지 않든지 다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3. 그런 다음 그분께서는 내 마음을 전보다 더 쓰라리게 하신 채 사라지셨다. 내가 만지기에는 너무 까다로운 하나의 열쇠를 그분께서 손을 대어 몸소 내 안에 넣어 주시고자 하신 것이다.

 

4. 그런데 나는 내 비참한 상태와 흠숭하올 예수님의 부재(不在)로 말미암아 쓰라린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자 그분께서 다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5.나는 의로운 영혼들에게는 의롭게 행동한다. 실제로 그들에게 더없이 큰 은총들을 베풀고 의로움과 거룩함에 대한 말을 들려줌으로써 그들의 의로움을 갑절로 갚아준다.”

 

6. 하지만 나는 매우 당황스럽고 좋지 못한 상태에 있었으므로 단 한 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나의 비참 때문에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7. 예수님께서는 내 안에 신뢰를 불어넣어 주시려고 손으로 나의 목덜미를 받쳐 고개를 들고 있게 하시면서 (왜냐하면 내게는 그럴 힘도 없었으니까) 이렇게 덧붙여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고생하며 괴로워하는 이들의 방패이다. 이 말씀과 함께 그분은 사라지셨다.

 

 

 

3권-22, 굴욕의 감수와 극기의 효과

 

1899년 12월 30일

 

1. 어떤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오늘 아침 예수님께서 잠시 오셨을 때 그 사람을 그분께 맡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굴욕은 감수할 뿐만 아니라 좋아하기도 해야 하는 것으로서, 음식물을 씹는 것과 같이 받아들여야 한다. 맛이 쓴 음식은 씹을수록 더 쓴맛이 난다. 마찬가지 굴욕도 잘 씹으면 극기가 태어나게 한다.

 이 두 가지, 곧 굴욕과 극기는 어떤 어려움에서 빠져 나와서 원하는 은총을 얻게 하는 극히 강력한 수단들이다.

 

3. 굴욕과 극기는 (쓴 음식이 이롭기보다는 해롭게 느껴지는 것과 같이) 인간 본성에는 해로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쇠를 모루 위에 올려놓고 두드릴수록 불꽃을 튀기며 더 잘 정련되는 것처럼, 영혼도 진실로 선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극기라는 모루 위에서 짓눌리며 두들겨 맞을수록 천상적인 불꽃을 튀기며 더 잘 정화된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이라면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

 


3권-23, 예수님께서 할례를 받으신 까닭

1900년 1월 1일

 

1. 나의 가장 크고 유일한 선이신 분께서 오시지 않아 마음이 몹시 무거웠다.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마침내 그분을 뵈었는데, 내 마음속에서 나오시는 것이었다. 그분은 울고 계셨고, 나로 하여금 할례를 받으시면서 얼마나 아프고 굴욕감을 느끼셨는지를 깨닫게 하셨다. 오, 얼마나 가엾어 보이던지! 나 자신이 그 아픔 속에 빨려드는 기분이었다.

 

2. 그리고 복되신 아기께서는 나의 비참한 상태를 보시고 측은히 여기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3. “영혼이 겸손해지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그만큼 더 진리에 다가간다. 그런 다음 진리 안에 몸담고 있게 되면 덕행의 길을 가려고 힘쓰게 된다. 덕행의 길이 아주 멀리 뻗어 있음을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신이 덕행의 길에 있는 것을 보게 되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많이 남아 있는지를 즉시 감지하게 된다. 덕행의 길은 끝이 없고, 내가 그러하듯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4. 그러므로 진리 안에 몸담고 있는 영혼은 언제나 애써 진보하려고 하지만, 결코 자기가 완전해진 것을 볼 정도에 이르지는 못한다. 그런 이유로 그는 시간을 게으르게 허비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여 더 큰 완덕에 도달하려고 힘쓴다. 그러면 나는 그러한 노력이 마음에 들기에 조금씩 진보하게 손을 대 주면서 그의 내면에 나의 형상을 그려 넣어준다.

 

5. 내가 할례를 받은 것은 이 때문이니, 하늘의 천사들마저 경탄하여 마지않는 겸손 - 더없이 깊은 겸손의 모범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3권-24,

평화와 함께 있으면 하느님으로 충만해지지만,

마음이 어지러우면 악마적인 유혹만 가득하다.

 

1900년 1월 3일

 

1. 나는 여전히 비참한점 투성이인데다 불안해하기까지 하는 나 자신을 보고 있다. 예수님의 부재로 속이 온통 부글부글 끓는 것 같았으니, 마음속으로 혼자, “내가 이처럼 죄가 많으니까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나를 떠나버리셔서 다시는 그분을 뵙지 못하게 되어도 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 오, 이 생각이 내게는 얼마나 잔혹한 죽음과도 같았는지 모른다. 참으로 그 어떤 죽음보다 더 가혹한 죽음이다! 다시는 예수님을 못뵙다니! 다시는 그분의 부드러운 음성을 듣지 못하다니! 나의 생명이 달려 있고 내가 모든 선을 얻는 그분을 잃다니! 그분 없이 내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오, 예수님을 잃는다면 내게는 모든 것이 끝장나는 것이다!"

 

3. 이 생각으로 말미암아 나는 그야말로 임종 고통을 느꼈고, 온 내면이 뒤죽박죽이 된 채 예수님을 원하고 있었다.

 

4. 그 순간 강렬한 빛이 번쩍이더니 그분께서 내 영혼에 당신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평화, 평화. 속끓이지 말아라.

향기로운 꽃이 놓여진 자리에서 향기를 내뿜듯이

평화도 하느님과 함께 하고 있는 영혼을 가득 채운다.”

 

5. 그리고 그분께서는 번갯불처럼 사라지셨다.

 

6. - 오, 주님, 주님께서는 이 죄인에게 너무나 친절하십니다! 당신께서는 과연 비길 데 없는 분이시라고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정말로 당신을 잃을 지경이 되었는데도 당신께서는 제가 속끓이거나 불안해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7. 그러니 제가 살아 있는 한, 당신을 떠나려고 하는 쪽은 저 자신임을 깨닫게 해 주십시오.

평화와 함께 있으면 하느님으로 충만하지만, 속을 끓이고 있으면 악마적인 유혹이 가득하니 말입니다.

오, 인자하신 저의 예수님, 당신과 함께 있으려면 참으로 큰 참을성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놀라거나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겠습니다. 언제나 완전한 고요와 평화 속에서 지내기를 당신께서 원하시는 까닭입니다.

 

 

 

3권-25, 죄의 결과와 고해성사의 효력

 

1900년 1월 5일

 

1. 여느 때의 상태로 있는 동안 나 자신의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더니 흠숭하올 예수님을 뵙게 되었다. 그런데, 오, 그분의 현존 앞에서 나는 너무나 죄가 가득한 자신을 보았다! 마음속으로 우리 주님께 죄를 고백하고 싶은 강한 원의를 느꼈고, 그래서 그분을 향하여 내 죄를 고백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귀담아들어 주셨다.

 

2. 내가 그것을 마쳤을 때에 그분께서 대단히 슬픈 표정으로 나를 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딸아, 대죄는 그 죄를 지은 영혼뿐만 아니라 그 영혼 안에 있는 덕행들도 모조리 해치고 죽이는 죄이다.  소죄는 영혼을 매우 약하게 하고 상처 입게 한다. 그러니 그가 쌓은 덕행들도 상처를 입는다. 그러니 죄는 얼마나 치명적인 무기이냐!  죄만이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죽일 수 있다! 다른 무엇도 영혼을 해칠 수 없다. 죄만이 내 면전에 수치스럽고 가증스러운 것이다.”

 

3. 그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을 때에 나는 죄가 얼마나 추한 것인지를 깨달았고, 어떻게 표현할지도 모를 정도로 큰 아픔을 느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내가 완전히 압도되어 있는 것을 보시고 복되신 오른손을 들어 사죄경을 외워 주셨다.

 

4. 그런 다음 그분께서는 이렇게 덧붙이셨다. “죄가 영혼에게 상처와 죽음을 끼치는 것과 같이, 고해성사는 그에게 생명을 주고 그 상처를 치유해 주면서 덕행도 다시 활기차게 해 준다. 그리고 이 일은 영혼의 준비 정도에 따라서 크고 작은 차이가 생긴다. 이것이 성사의 힘이 작용하는 방식이다.”

 

5.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내 죄를 용서해 주시고 나자 영혼이 생명을 받아서 더 이상 그 전처럼 괴롭지 않은 것 같았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감사와 찬미를 받으시기를!

 

 


3권-26, 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선물보다

선물을 바칠 때의 신뢰에 찬 마음이다.

 

1900년 1월 6일

 

1. 오늘 아침 영성체를 한 뒤 예수님과 함께 있는 동안, 여왕이신 엄마께서도 함께 자리하고 계셨다. 그런데, 오, 참으로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어머니를 보고 있자니 그분의 심장이 아기 예수님으로 바뀌고, 아드님을 보고 있자니 이 아기의 심장 안에 어머니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바로 그 순간 오늘이 주님 공현 대축일임이 기억났고, 나도 경건한 동방 박사들을 본받아 아기 예수님께 무언가를 드리는 것이 마땅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었다.

 

2. 이런 나의 가난을 보고 있노라니, 나의 육신과 함께, 지난 12년 이상 침상에만 붙박인 채 겪어 온 고통 및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한 오래도록 그렇게 계속 고통을 감수하겠다는 자발적인 마음을 몰약으로 바치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3. 그리고 황금으로는,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을 때 겪는 비탄으로 바칠 수 있을 터였다. 이는 내게 가장 고통스럽고 비참한 것이기 때문이다.

 

4. 또한 유향으로는 나의 변변찮은 기도를 여왕이신 엄마의 기도와 합쳐서 바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면 아기 예수님께서 이 기도를 더 기쁘게 받아 주실 것이니까)

 

5. 그러므로 나는 아기께서 기꺼이 받아들이시리라는 것을 온전히 확신하면서 이를 다 바쳤다. 과연 예수님은 나의 보잘것없는 예물을 매우 기뻐하시며 받으시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분께서 더 좋아하신 것은 내가 그것을 바칠 때의 그 신뢰에 찬 마음이었다.  그러기에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6. “신뢰는 두 개의 팔을 가지고 있다. 영혼은 한 팔로는 나의 인성을 싸안고 이를 나의 신성에로 올라가는 사다리로 사용한다. 다른 팔로는 나의 신성을 싸안고 천상 은총들이 강물처럼 흘러내리도록 끌어당긴다.

그리하여 영혼은 거룩하신 분 안에 빨려 들어간다.

 

7. 이와 같이 영혼이 신뢰를 가지고 있으면 그가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틀림없이 얻기 마련이다. 나는 그런 영혼에게 내 팔을 묶어 두고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허락하고, 내 마음 안으로 더 깊이 들어오게 하며, 내게 청하는 것을 스스로 가져가게 한다. 내가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폭행을 당하는 느낌이 들 것이다.”

 

8. 아기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동안, 그분의 가슴과 어머니의 가슴으로부터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흘러나왔다. 내가 물줄기라고 일컫고 있을 뿐 어떻게 묘사할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좌우간 이것이 내 온 영혼에 넘쳐흘렀다. 그러자 여왕이신 어머니께서 모습을 감추셨다.

 

9. 그런 다음 아기 예수님과 나는 하늘 속으로 갔다. 예수님의 아름다운 얼굴에 슬픔이 서려 있는 것이 보이기에, 어쩌면 여왕이신 어머니의 어루만짐을 원하실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나는 내 가슴에 그분을 꼭 껴안았다. 그러자 아기 예수님의 얼굴에 기쁜 빛이 가득하였다. 이 예수님과 나 사이에 일어난 일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나로서는 그 방법을 모르겠고, 묘사에 필요한 어휘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3권-27, 이 글을 쓰는 동안 “나 자신이 너의 손을 잡고 이끌어 간다.”

 

1900년 1월 8일

 

1. 나는 마음속으로, “내가 기록하고 있는 이 글 속에 큰 실수나 틀린 곳이 참으로 많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럭저럭하다가 의식을 잃었는데, 복되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실수들마저 도움이 된다. 이것이 네가 능통하게 아는 것이 없다는 점과 따라서 무슨 박사가 아니란 점을 사람들에게 알릴 터이니 말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너 자신이 알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단순하게 쓰여진 이 글을 통해서 너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나라는 사실이 더 뚜렷이 드러나기도 할 것이다.

 

3. 분명히 말하지만 여기에서 사람들은 어떤 악덕의 그림자나 덕행과 무관한 말을 결코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네가 기록하고 있는 동안 나 자신이 너의 손을 잡고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기껏해야, 첫눈에는 틀린 것 같이 보이나 자세히 보면 참된 어떤 것을 찾아내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4. 이 말씀을 마치고 그분은 사라지셨고,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오셨다. 나는 그분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불안해하기도 했으므로 그분께서 이렇게 덧붙이신 것이다.

 

5. 나의 유산(遺産)은 확고함과 견실함이다. 나는 어떤 변화도 타지 않는다. 영혼이 내게 다가와서 덕행의 길을 따라 진보할수록 선을 행하는 데에 더욱 확고부동하고 견실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내게서 멀어질수록 마음이 더 잘 변하고 선과 악 사이에서 동요하게 된다.”

 


3권-28, 자기 인식과 겸손의 차이

 

1990년 1월 12일

 

1. 평소와 같은 상태로 있노라니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가엾은 모습으로 오셨다.

양손이 꽁꽁 묶여져 있고 얼굴을 침으로 뒤덮여 계셨는데, 몇 사람은 그분을 무지무지하게 때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분께서는 아무런 동작이나 슬퍼하는 기색 없이 고요하고 침착하셨다.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으시는 품이 겉으로 뿐만 아니라 속으로도 그러한 모욕을 받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었다.

 

2. 그것은 아무도 굳은 마음도 아프게 할 만큼 감동적인 광경이었다! 지저분한 것으로 더럽혀지고 걸쭉한 침으로 뒤덮인 그 얼굴이 얼마나 많은 것을 표현하고 있는지! 나는 무서워 몸이 부들부들 떨렸는데, 그것은 예수님 앞에 있는 나 자신이 단지 교만 덩어리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3. 이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신 그분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작은 자들만이 내가 원하는 대로 다루도록 그들 자신을 맡긴다. 인간적인 기준에서 작은 자들이 아니라 신적인 기준에서 작은 자 말이다.

 

4. 내가 겸손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는 홀로 나 뿐이다. 인간의 겸손이라고 하는 것은 그 보다도 오히려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은 이미 그릇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5. 예수님께서는 잠시 침묵을 지키셨고, 나는 그분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하고 있는 사이에 등불을 든 손이 하나 보였는데, 이 불빛이 나의 내면을 가장 깊숙한 곳까지 두루 탐색하고 있었다. 내 안에 나 자신에 대한 인식이 있는지, 그리고 수치와 무안과 모멸을 기꺼이 당할 마음이 있는지 어떤지를 살펴보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빛은 나의 내면에서 하나의 빈자리를 찾아내었고 나도 그것을 보았는데, 이는 내가 복되신 예수님을 본받아 수치와 무안으로 채웠어야 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한 공간이었다.

 

6. 오, 그 빛과 내 앞에 계신 거룩하신 분의 모습에서 나는 참으로 많은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렇게 혼잣말을 하였다.

 

7. 하느님께서는 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수치와 무안을 당하셨건만 죄인인 내게는 그런 면모가 없다니!

하느님이신 그분께서는 그 역겨운 침을 털어 보려는 동작조차 하지 않으시고, 흔들림 없이 그 많은 모욕을 굳건히 받으신다. 그렇다. 하느님 앞에 계신 그분의 내면이 내게 드러나 보이고, 사람들 앞에 계신 그분의 외면도 보인다. 그리고 그분께서 모든 고통과 모욕을 물리치고자 하신다면 그 모든 것에서 해방되시리라는 것도 알 수 있다.

 

8. 내가 보니 그분을 묶고 있는 것은 사슬이 아니라 그분의 확고한 뜻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어떤 희생도 감수하시겠다는 그 뜻이다.  그런데, 나는, 나는? 나의 수모는 어디에 있는가? 나의 확고함은?

예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선행을 행하는 한결같은 항구함은?

오, 예수님과 나는 너무도 다른 희생 제물이다! 오, 우리는 조금도 닮지 않았다!

 

9. 내 변변찮은 머리로 그런 생각에 몰두해 있었을 때에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10. “오로지 인성만이 모멸과 수치로 가득 차 있어서 밖으로 넘쳐흐를 지경이었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이 나의 덕행 앞에서 부들부들 떤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영혼들은 이 나의 인성을 사다리로 쓰며 올라와서 내 덕행의 몇 모금을 마시는 것이다.

 

11. 이 말에 대답해 보아라. 나의 겸손 앞에서 너의 겸손은 어디에 있느냐? 홀로 나만이 참된 겸손을 가지고 있음을 자랑할 수 있다.

나의 신성은 (하고자만 했다면) 나의 인성과 결합하여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말과 행적으로 놀라운 기적들을 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대신 나는 자진해서 나 자신을 인성의 범위 안에 국한시켰다. 더없이 가난한 사람으로 나를 드러내었고 죄인들과 어울리기도 하였다.

 

12. 극히 짧은 순간에 말 한 마디로 구속 사업을 완성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는 장기간에 걸쳐 숱한 고생과 고통을 겪으면서 인간의 비참을 나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내가 그토록 다양한 활동들을 여러 모로 펴려고 했던 것도 인간이 온전히 새로워져서 아주 작은 일들 속에서도 거룩한 사람들이 되게 하려는 것었다. 내가 수행한 그 일들은 신적이면서도 인간적인 것이어서 새로운 광채를 내는 영광을 받았으며 신적인 업적이라는 도장도 받았던 것이다.

 

13. 나의 신성은 내 뜻에서 나오는 단 하나의 행위로도 무수히 많은 세상을 창조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인성 안에 숨은 채 스스로를 낮추어 인생 행로의 과정을 따르면서 보통의 흔한 일들을 하면서 지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의 비참과 나약을 마치 나 자신의 인성처럼 느꼈다. 이것이 인간이 모든 죄들로 뒤덮인 채 하느님의 정의 앞에 있음을 보는 것이야말로 (그것도 내가 헤아릴 수 없는 고통으로 온 피를 쏟으며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보는 것이야말로), 심오하고 영웅적인 겸손의 끊임없는 실천이었다.

 

14. 오, 딸아, 여기에 나의 겸손과 사람들의 겸손 사이의 엄청난 차이가 있다. 나의 겸손 앞에서 그들의 겸손은, 설사 내 모든 성인들의 겸손이라 할지라도, 있으나마나한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일개 조물이어서 죄의 무게를 내가 아는 것만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15. (나를 본받아 다른 이들의 고통을 받기 위하여 자기를 바친) 용감한 영혼들의 고통 다른 이들의 고통과 별개의 것은 아니다. 같은 질료로 되어 있기 때문에 새로운 무엇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고통으로 말미암아 다른 이들에게 새로운 선익을 얻어 주고 하느님께는 영광을 드리게 된다면 그 생각만으로도 큰 영예가 되는 것이다.

 

16. 더군다나 사람은 하느님께서 자리잡게 해 주신 범위에 한정되어 있으므로 이 한정된 경계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사람이 만약 마음대로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을 능력이 있다면, 다른 일들도 얼마나 많이 할 수 있겠느냐! 각 사람이 별들(의 높이)에까지 이르기도 할 것이다.

 

17. 이와 반대로 나의 신성은 한계가 없지만 자진해서 스스로를 제한했으니, 이는 영웅적인 겸손으로 행해진 나의 모든 행적 안에 숨어 있기 위함이었다. 겸손의 결핍이 지상에 넘쳐흐르는 모든 악의 원인이기에, 내가 이 덕행의 실천으로 하느님의 정의에서 모든 선을 끌어당겨야 했던 것이다.

 

18. 겸손을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은총의 재결(裁決)도 내 옥좌에서 나올 수 없고, 겸손의 도장이 찍히지 않은 증서는 그 어떤 것도 내게 받아들여질 수 없다. 겸손의 향기가 풍기지 않는 기도는 내 귀에 들리지 않으며, 따라서 가엾게 여기고픈 마음도 들지 않는다.

 

19. 사람이 영예욕과 자만심의 씨를 죽여 없앨 정도가 되지 않으면, (그것도 멸시와 수치와 무안을 당하는 것을 좋아하게 됨으로써 없애지 않으면), 엮어 짠 가시들이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듯한 아픔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마음은 공허를 느낄 터이니, 이것이 언제나 그를 괴롭히며 나의 지극히 거룩한 인성을 닮지 못하게 할 것이다.

 

20. 그러니 수모를 당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고작 조금밖에 알지 못하게 되고,

결코 겸손의 아름답고 매력적인 의상을 입고 내 앞에서 빛을 내는 일도 없게 될 것이다.”

 

21. 덕행에 대해서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과 겸손의 차이에 대해서 내가 이해한 모든 것을 어떻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 두 가지 덕행의 차이를 이해한 것 같지만 표현할 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므로 이를 설명하기 위해 하나의 예를 들어 보겠다.

 

22. 가난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자기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더러, 그를 모르기 때문에 어쩌면 그가 무언가를 조금은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여길 수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가난을 솔직히 드러내기도 한다고 하자. 말하자면 그는 자기를 알고 있으며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다른 이들에게서 더 많은 사랑을 받고 그들로 하여금 그의 비참한 사정을 동정할 마음이 들게 하므로 모두 그를 도와주게 된다. 이와 같은 것이 자기 인식이다.

 

23. 그러나, 이 가난한 사람이 자기의 가난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며 부자라고 자랑하고자 한다면, 그것도 그가 걸칠 옷도 없으며 굶어 죽을 것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는 터에 그렇게 하고자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누구든지 그를 업신여기며 아무도 도와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니, 그는 자기를 아는 모든 이의 놀림감이 되고 웃음거리될 것이다. 그러면 이 비참한 사람은 갈수록 처지가 더 나빠져서 결국 죽고 말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이 하느님 앞이나 인간 앞에 있는 교만의 모습이다. 그런즉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은 이미 진실을 벗어나서 거짓의 길로 황급히 내리닫는 것이다.

 

24. 따라서, 자기 인식 덕분에 지니게 되는 또 다른 형태의 영웅적인 겸손이 위의 예에 따라온다.

안락과 부요함 속에서 태어난 한 부자를 상상해 보자. 그는 자기가 부유하며 물질적인 갖가지 선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겪으신 깊은 수모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거룩한 겸손을 사랑하게 되어, 자기의 재산과 모든 안락을 버린다.

 

25. 값비싼 옷가지들을 벗어버리고 초라한 누더기를 걸친 채 남모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 자신의 신분을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고 가난한 이들과 어울려 그들 중의 한 사람인 것처럼 살면서, 멸시를 받고 무안을 당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 것이다.

 

26. 그러므로 성인들에게 일어나는 일이 그에게도 일어난다. 성인들은 자기를 낮출수록 주님께서 그들 자신의 공로와 상관없이 은총과 선물로 채워 주신다 것을 아는 지식이 커짐에 따라 더욱더 자신을 낮추게 되는 것이다.

 

27. 먼저 예를 든 극빈자와 마찬가지로 이 부자의 경우에 있어서도 분명한 것은, 겸손이 없는 자기 인식은 해롭고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지만 이 인식이 겸손을 낳을 때는 대단히 소중한 것이 된다는 점이다.

 

28. 오, 그렇다. 겸손은 은총을 부르고, 사슬을 끊어 버리며, 영혼과 하느님 사이를 갈라놓는 장벽을 처부수어 그를 하느님께로 돌아가게 한다. 겸손은 언제나 푸르고 꽃이 피어 있으며 아무런 해충도 갉아먹지 않는 작은 푸성귀이다. 바람도 우박도 열기도 그것을 해치거나 말라죽거나 하는 일이 결코 없다.

 

29. 겸손은 푸성귀 중에서 가장 작지만 가장 높이 가지들을 뻗어 하늘 속까지 뚫고 들어간다. 그리하여 우리 주님의 성심 주위에 뒤얽힌다. 이 작은 푸성귀에서 나온 가지들만이 그 흠숭하올 성심에 자유로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30. 손은 현세의 삶이라는 풍랑이 거센 바다 속에서 평화의 닻이다. 겸손은 모든 덕행에 맛을 내며 죄의 부패로부터 영혼을 보존하는 소금이다. 겸손은 나그네들이 자주 다니는 길을 따라 돋아난 작은 풀잎이니, 밟혀서 사라졌다가도 금방 전보다 더 아름답게 돋아나는 것이 보이는 풀잎이다. 겸손은 들풀을 고상하게 만드는 자가(自家) 접목이다.

 

31. 겸손은 일몰(日沒)이다. 겸손은 은총의 주화(鑄貨)이다. 겸손은 현세 삶이라는 밤의 어둠 속에서 우리의 발길을 인도하는 달이다. 겸손은, 재물 거래의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약삭빠른 장사꾼과 같이, 자신이 받은 은총을 단 한 푼도 허비하지 않는다.

 

32. 겸손은 하늘의 문을 여는 열쇠이니, 이 열쇠를 안전하게 보관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하늘에 들어갈 수 없다. 끝으로 - 왜냐하면 이렇게 “끝으로”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 끝내지를 못하고 자꾸 계속할 것 같으니까.

겸손은 하느님과 온 천국의 미소이고, 온 지옥의 울음이다.

 

 

3권-29, 특별한 모양으로 인간의 사악과 간교를 보상하다.

 

 1900년 1월 12일

 

1.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오늘 아침에는 계속 오락가락하셨지만 언제나 침묵을 지키셨다. 나중에 나는 내 몸 밖에 나와 있는 것을 느꼈는데, 그분께서 내 뒤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2.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제 올곧음이라는 것이 없어졌다.

악한 자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사태가 지금과 같이 계속되는 한, 결코 우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덕행을 갖춘 것처럼 가장하고 마음씨가 올곧은 체하자. 겉으로만 진정한 벗인 척하자. 그래야 더 쉽게 함정을 만들어 그들을 속일 수 있다. 그러면 우리가 드러나게 그들의 영혼을 약탈하고 멸망시킬 때에, 그들은 우리를 벗으로 여기고 아무 저항 없이 우리 손아귀로 들어올 것이다. 보아라. 인간의 간교함이 어떤 정도가 되었는지를!"

 

3. 복되신 예수님게서는 이 말씀을 하신 다음, 특별한 보상 행위로 나를 하느님의 정의에 봉헌하시려고 내게서 생명을 꺼내시는 것 같았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시는 동안, 나를 이 세상살이에서 (저 세상으로) 건너가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그분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4. 주님, 저는 당신의 특별한 표시가 없이는 하늘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 먼저 저를 십자가에 못박으신 후에 데려가십시오.”

 

5. 그리하여 그분께서 내 손발에 못을 박으셨는데, 매우 실망스럽게도 그렇게 하신 그분은 사라지셨고 나는 다시 내 몸속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6. “내가 아직 여기에 있다니! ... 오, 사랑하올 예수님, 당신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저로 하여금 곧 죽을 것이라고 여기게 하시고는 번번이 이렇게 살려 놓으시니 무슨 특별한 기술이라도 가지고 계시나이까?

 

7. 제가 세상과 고통과 당신을 보면서 웃기 시작하자마자 - 왜냐하면, 당신과 헤어져 있는 시간이 끝장나고 더 이상은 이별의 순간이 없을 것이기에 -또다시 이 허약한 육신이라는 감옥의 담장 안에 갇혀 있는 자신을 보게 되니, 방금 웃기 시작했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린 채 끊임없이 울면서 당신과 떨어져있음을 탄식하며 한숨짓고 있습니다. 오, 주님, 제가 가지 않을 수 없는 느낌이오니 당신께서 서둘러 (오셔) 주십시오!”

 

 

 

3권-30, 화응의 메아리

 

1900년 1월 22일

 

1. 예수님을 못 뵙는 쓰라린 고통 속에서 며칠을 지내고 나니, 나의 하찮은 마음은 그분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어쩌면 다시 뵙게 되리라는 희망 사이에서 씨름을 하고 있었다. 맙소사! 이 보잘것없는 마음이 얼마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견뎌야 했는지! 그 고통이 하도 격심해서 어떤 때는 염통이 싸늘하게 얼어붙고, 어떤 때는 압착기에 눌려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2. 이와 같은 상태에 있었을 때에 인자하신 예수님께서 곁에 계신 느낌이 들었다.

베일에 가려져 내게는 그분이 보이지 않았는데 그분께서 그것을 걷어 치우셨기에 마침내 뵐 수 있었다.

그러자 나는 즉시, 오 주님, 당신께서는 이제 저를 사랑하지 않으시는군요! 하고 외쳤다.

 

3. 그러자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니다. 아니다. 사랑한다. 내가 너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나의 은총에 화답하며 응하라는 것이다. 여기에 충실하려면 메아리가 빈 공간에서 되울리듯이 해야 한다. 누군가가 어떤 말을 큰 소리로 하자마자 메아리가 지체 없이 곧바로 공중에 울려 퍼지는 것과 같이, 너도 은총을 받기 시작하자마자 내가 다 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곧바로 화응의 메아리가 울려 퍼지게 하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