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 24권
9장
‘사랑합니다.’로 사람이 하느님께 드리는 것.
하느님의 수많은 탄생을 이루는 놀라운 신비.
주님의 행위들을 맡아 간직한 거룩하신 동정녀.
하느님의 뜻이 영혼의 숨쉬기와 같은 이유.
1928년 4월 26일
1 늘 하듯이 ‘거룩하신 피앗’ 안을 순례하면서 나의 후렴, 곧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흠숭합니다, 찬미합니다......’로 모든 피조물을 뒤덮었다. 그러면서 혼자 속으로,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며 오래 전부터 거듭해 온 이 말씀들로 내가 내 하느님께 드리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였다.
2 그러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나오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순수하고 거룩하며 올곧은 사랑은 바로 하느님의 탄생(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에게서 나오기에 높이 솟아올라 하느님 안으로 들어갈 힘이 있다. 그러기에 그런 탄생들을 더욱 증가시키면서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하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분 자신을 모셔 갈 수 있다.
3 그러므로 영혼이 이 사랑에 감싸여 그 탄생을 받으며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고 말씀드리면, 그렇게 하는 것과 같은 수의 다른 탄생들을 얻어낼 수 있다. 그의 ‘사랑합니다.’가 하느님 앞으로 날아오르면, 지극히 높으신 그분께서 사람이 그분에게 보내는 그 ‘사랑합니다.’를 눈여겨보시고, 그 작은 ‘사랑합니다.’ 안에 당신 전부가 있음을 보신다. 그러기에 그분은 그 사람에 의해 당신 전부를 받고 있는 느낌이 드시는 것이다.
4 과연 그 작은 ‘사랑합니다.’ 안에 놀랍기 짝이 없는 신비가 들어있다. 그것이 완전함과 무한성과 권능을 내포하고 있어서, ‘나는 하느님을 하느님께 드린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무한하신 분께서 피조물의 그 작은 ‘사랑합니다.’에 의해 그분의 신적인 속성 전체가 만져지는 것을 느끼시기 때문이다. 그 사랑이 그분에게서 태어난 것이기에 그것 안에서 당신 전체를 보시는 것이다.
5 네가 너의 그 수많은 ‘사랑합니다.’들로 나에게 주는 것은 바로 이것이니, 그렇게 말하는 횟수와 같은 수의 나를 나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 그리고 네가 이처럼 나 자신 전체를 주는 것이야말로 네가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위대하고 가장 내 마음에 드는 것이다.
6 네 안에서 나에 대한 너의 ‘사랑합니다.’의 생명을 기르는 내 ‘피앗’은 기꺼이 우리 (성삼위)로부터 많은 탄생들이 일어나게 한다. 그리고 네 안에서 너의 ‘사랑합니다.’와 보조를 맞추어 그 ‘사랑합니다.’ 라는 신적인 화폐를 줄곧 주조하기를 열망하는데, 이는 각각의 피조물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서다. 그런 다음 내 ‘피앗’은 우리가 창조한 만물에 놀라운 신비인 너의 ‘사랑합니다.’가 진주알처럼 온통 박혀 있는지 어떤지 살펴본다.
7 딸아, 그러니 우리는 사람이 하는 일이 큰 것인지 작은 것인지 하는 것은 보지 않는다. 우리가 보는 것은 거기에 우리의 놀라운 신비가 있는지 없는지, 그의 극히 사소한 행위나 생각이나 탄식이 우리 뜻의 권능에 싸여 있는지 아닌지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이 안에 있고, 이것이 우리의 전부인 까닭이다.”
8 그 후에도 나는 예수님께서 구원 사업을 통하여 행하신 모든 업적을 동반하려고 내 ‘피앗’ 순례를 계속하였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하기를, ‘존귀하신 엄마가 예수님과 함께 계셨을 때 행하신 대로 나도 할 수 있으면 참 좋겠는데! 엄마는 틀림없이 아무것도 빠뜨리지 않고 예수님의 모든 행위를 따라 하셨을 거야.’ 하였다. 내가 그런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을 때에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덧붙이셨다.
9 “내 딸아, 실로 그 무엇도 내 엄마에게서 빠져나가지 못했다. 내가 행하고 겪은 모든 것이 그윽한 메아리처럼 그분 영혼의 깊숙한 데서 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분께서 얼마나 주의 깊게 그 내 행위들의 반향을 기다리고 계셨는지, 그것이 내가 행하고 겪었던 모든 것과 함께 그분 안에 인장처럼 찍히곤 하였다.
10 또 그 존귀하신 여왕께서는 나의 반향 안에 그분 자신의 반향도 발하시어 나의 내면 깊은 데서 울리게 하셨다. 그리하여 그분과 내가 서로 안에 내뿜는 빛과 사랑의 바다들이 우리 사이에서 도도하게 물결치고 있었다. 나는 그래서 나의 모든 행위를 그분의 어머니다우신 마음에 맡겨 두었다. 여왕께서 늘 그렇게 나와 함께 계시지 않았다면, 즉, 내 반향 안에 울리면서 내 심장 박동과 숨까지 끌어당겨 그분 안에 간직한 그분의 그 끊임없는 반향이 느껴지지 않았다면, 나는 만족할 수 없었을 것이다.
11 이와 마찬가지로, 그때부터 이미 내 거룩한 뜻 안에서 나의 모든 행위를 따라 하고자 하는 네가 없었다면, 나는 만족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그때부터 내가 내 행위들을 네 안에 맡겨 두었고, 여왕이신 내 엄마의 반향이 네 영혼 깊은 데로 내려가게 하였다. 내가 오랜 세기를 통하여 네 안에서 내 엄마의 반향을 들은 것은 그 때문이었고, 그렇게 네 안에 ‘내 거룩한 뜻의 나라’를 세워 온 것이다.
12 이런 이유로 너는 무엇에 끌리는 느낌을 받으며 나의 행위들을 따라 하는데, 그것은 바로 네 안에 되울리는 그분의 어머니다우신 소리의 반향이다.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너의 내면 깊은 곳에 그것을 맡겨 둔다. 내 ‘영원한 피앗’이 네 안에서 다스릴 은총을 네게 주려는 것이다.”
13 그때 나의 하찮은 정신은 ‘거룩하신 피앗’의 바다에 잠겨 있는 느낌이었는데, 그 피앗의 빛이 나를 온통 휩싸고 있어서 그 높이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다만 내게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으로 여겨지는 이 피앗이 나의 내면 곳곳에 흘러들고 있음이 느껴질 따름이었다. 그러자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이동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14 “딸아, 내 뜻은 피조물의 생명이요 공기이며 숨이다. 이는 다른 덕목들과 달리 사람의 지속적인 생명이며 숨이어서 어느 때 어떤 상황에서든지 수련될 수 있는 덕이다.
15 하지만 인내라는 덕은 언제나 닦을 수 있는 덕이 아니다. 인내를 수련할 수 있게 하는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덕은 사람에게 그 자체의 지속적인 생명을 주지 못한 채 하릴없이 빈둥거리기 일쑤이다.
16 순명이나 애덕도 그렇다. 그것들 자체의 생명을 만들어 줄 수 없는 것이다. 계속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없을 뿐더러, 애덕을 실천할 대상도 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덕행들은 따라서 영혼의 장식물은 될지언정 영혼의 생명이 될 수는 없다.
17 그 반면에 내 뜻은 모든 인간 행위의 원초적 행위이다. 사람이 생각하고 말하며 숨 쉬는 것은 내 뜻이 그에게 생각과 말을 형성해 주고 숨을 주면서 혈액 순환과 심장 박동과 체온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18 그런즉 숨을 쉬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것과 같이 내 뜻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사람이 계속 살아가려면 늘 내 뜻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내 뜻의 지속적인 숨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토록 단 한 순간도 내 뜻 없이는 지낼 수 없을 정도로 그들에게 내 뜻은 필수적인 것이다. 이 뜻에 모든 인간 행위의 열매가 맺힐 뿐더러 모든 피조물도 주렁주렁 달려 있기 때문이다.
19 내 피앗은 태양의 원초적 행위로서 피조물로 하여금 빛을 들이마시게 한다. 내 피앗은 또한 대기의 원초적 행위, 물과 불과 바람의 원초적 행위로서, 피조물이 숨쉬는 대기 속에서 그들이 마시는 물속에서, 난방용 불 속에서, 그들을 정화시키는 바람 속에서 내 뜻을 들이마시게 한다. - 그 무엇 속에서나 내 뜻을 들이마시게 하는 것이다.
20 그러기에 크건 작건 모든 것 속에서, 심지어 숨쉬기 속에서도, 사람은 언제나 내 뜻을 실행할 수 있다. 그것을 실행하지 않음으로써 그가 잃는 것은 하느님 뜻의 생명 활동이니, 계속해서 하느님 뜻의 숨통을 막는 셈이다. 즉, 하느님 뜻의 생명과 그 숨을 받고서도, 이를 몸소 내 거룩한 뜻으로 변화시키기보다 그 자신의 인간적인 뜻으로 바꾸고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