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주님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VII. 부활과 성령강림 21. 예수께서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나타나신다

Skyblue fiat 2021. 5. 16. 08:06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VII. 부활과 성령강림

 

21. 예수께서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나타나신다 – 평화의 오아시스 (medjugorje.kr)

 

 

 

그들은 나자렛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나무가 많은 또 다른 산 위에 있다. 이 산에는 산밑을 끼고 도는 길로 해서 올라간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빙 둘러 앉게 하신다. 가장 가까이에는 사도들이 있고, 그 뒤에는 제자들(일흔 두제자 중에서 이리저리 가지 않은 사람들)이 있고, 그밖에 즈가리야와 요셉이 있다. 마루잠은 예수의 발 앞에, 특별한 위치에 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앉아서 모두 조용히 당신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자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지금 말하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니까 내 말에 온 주의를 기울여라. 너희들은 내 말을 아직은 모두 알아 듣지는 못할 것이고, 또 모두 썩 잘알아듣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실 분이 너희들에게 그것을 알아 듣게 하실 것이다. 그러니까 내말을 귀담아 들어라.


하느님의 도움이 없으면, 사람은 원죄로 인하여 약해진 아주 허약한 그의 체질 때문에 쉽게 죄를 짓는다는 것을 너희들보다 더 확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너희들을 구속하기 위하여 너희들에게 그렇게도 많은 것을 주고 나서 내 희생의 결과를 보존하는 방법도 아울러 주지 않으면, 나는 무모한 구속자가 될 것이다. 너희들은 죄를 쉽게 범하는 것이 모두 원죄에서 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원죄는 사람들에게서 은총을 빼앗아 감으로써 그들의 힘을, 즉 은총과의 결합을 빼앗는다.

 

너희들은 ‘그렇지만 주님은 저희들에게 은총을 돌려 주셨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은총은 내가 죽을 때까지 있었던 의인들에게 다시 주어졌다. 이제부터 올 사람에게 은총을 돌려주는 데에는 어떤 방법이 필요하다. 이 방법은 의식적(儀式的)인 상징이 될 뿐아니라.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아담과 하와가 그랬던 것과 같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실제적인 인호(印號)를 정말로 박아 줄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영혼은 은총으로 생명을 얻어 하느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피조물에게 주신 가장 고상한 선물들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이 어떠하였었고 무엇을 잃었는지를 너희들은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내 희생 덕택으로 은총의 문이 다시 열렸고, 은총은 내게 대한 사랑으로 그것을 청하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 올 수 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사람들 중의 맏아들, 지금 너희에게 말하는 사람, 너희들의 구속자, 너희들의 영원한 대사제, 아버지를 통한 너희들의 형, 너희들의 스승의 공로로 하느님의 자녀라는, 인호를 받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덕택으로 지금 사람들과 미래의 사람들이 하늘나라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고, 사람의 최종 목적이신 하느님을 누릴수 있다. 그 때까지는 가장 의로운 의인들이라도 비록 선택된 민족의 아들로 할레를 받았다 하더라도 이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하였다. 그들의 덕행은 하느님께서 참작하시고, 그들의 자리는 하늘에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하늘의 문은 그들에게 닫혀 있었고, 하느님을 누리는 것은 거부당했었다. 그것은 모든 덕행의 꽃이 핀 축복된 화단인 그들의 영혼에는 원죄라는 저주 받은 나무도 있었기 때문인데, 아무리 거룩한 행동이라도 그 나무를 없애버릴수가 없었고, 또 그처럼 해로운 나무의 뿌리와 잎을 가지고는 하늘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안식일 전날에 성조들과 예언자들과 이스라엘의 모든 의인들의 한숨이 구속이 완성된 기쁨으로 가라 앉았다. 그들의 덕행으로 인하여 산위에 있는 눈보다도 더 흰 영혼들에게서는 그들을 하늘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던 오직 하나의 흠마저 없어졌다. 그러나 세상은 계속된다. 사람들이 대를 이어 일어나고 있고, 또 일어날 것이다. 민족들이 뒤를 이어 그리스도에게로 올 것이다. 그리스도는 새 세대가 생길 때마다 그 세대를 위하여 , 또는 그에게로 오는 민족 하나하나를 위하여 죽을 수 있느냐?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는 오직 한번만 죽었고, 다시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이 세대들과 이 민족들은 내 말의 덕택으로 착하게 되어야 하면서도, 원죄로 인하여 손상되었기 때문에 하늘을 차지하지도 못하고 하느님을 누리지도 못해야 한단 말이냐? 그렇지 않다. 그것은 내게 대한 그들의 사랑이 쓸 데 없는 것이 되겠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공평하지 못할 것이고, 또 나는 너무나 적은 수효의 사람을 위하여 죽은 것이 되겠기 때문에 내게 대해서도 공평치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물건들을 어떻게 일치시켜야 하겠느냐? 수많은 기적을 행한 그리스도가, 사람들을 위하여 죽기를 원하기까지 그들을 사랑하고 나서, 세상을 떠나 하늘에 올라가기 전에 어떤 새로운 기적을 행하겠느냐? 그리스도는 튼튼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음식으로 그의 몸과 피를 너희들에게 남겨 줌으로써, 그리고 그의 사랑을 기억하기 위하여 나를 기억하여 내가 한 것과 같이 하고, 그것을 제자들을 위한 성화의 방법을 삼으라고 하는 명령을 너희들에게 줌으로써 이미 한 가지 기적을 행하였다.


그러나 그날 저녁에는 너희들이 겉으로는 깨끗하였는데, 내가 어떻게 하였는지 기억하느냐? 수건을 허리에 매고 너희들의 발을 씻었다. 그리고 너무 굴욕적인 이 행동을 분개하는 너희 중의 한사람에게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이제 나와 한 몫을 받지 못하게 된다’ 고 말하였다. 너희들은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내가 무슨 몫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지, 내가 어떤 상징을 보여 주는 것이지 이해하지 못하였다. 자, 이렇게 된 것이다.


너희들에게 겸손을 가르치고, 내 나라에 한 몫 끼게 되기 위하여는 깨끗하게 되어야 하는 필요성을 가르친 것 말고도 하느님께 의로운 사람에게는, 즉 정신과 지능이 깨끗한 사람에게서는 의인들에게 있어서도 사람들 가운데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깨끗한 지체와 그들의 살에 앉게 되는 먼지로 인하여 가장 쉽게 더러워질 수밖에 없는 부분을 마지막으로 씻으라고 요구하신다는 것을 친절하게 지적해 주었다. 그외에, 또 다른 것 한 가지를 가르쳐 주었다. 나는 너희들의 발을 씻어 주었다. 몸에서 가장 아래 있는 부분, 진흙과 먼지 속으로 때로는 오물 속으로까지 가는 부분인 발을 씻어 주었는데, 그것은 사람의 물질적인 부분인 육체는 하느님의 작업으로, 혹은 천주성으로 원죄가 없는 사람들을 빼놓고는 언제나 결점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때로는 하느님께서만 보실 수 있을 정도로 극히 작은 것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그것들이 천성적인 습성이 되다시피해서 힘을 가지게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며, 그것들을 뿌리뽑기 위하여 억제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내가 너희들의 발을 씻어 주었다. 언제 씻었느냐?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며, 그것을 내 몸과 피로 본질적으로 변하게 하기 전에 그렇게 하였다. 그것은 내가 하느님의 어린 양이어서 사탄이 자국을 남긴 곳에는 내려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선 너희들을 씻어 주고 나서 나를 너희들에게 주었다. 너희들도 내게로 올 사람들을 세례로 씻어 주어라. 그래서 그들이 내 몸을 자격없이 받음으로써 내 몸이 그들에게 무서운 사형선고로 변하게 되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들은 몹시 걱정하는구나. 그래서 서로 바라보는구나. 너희들의 눈길로 너희들은 서로 이렇게 묻는다. ‘그럼 유다는?’ 하고. 나, 너희들에게 말한다마는 ‘유다는 그의 죽음을 먹었다.’ 최후의 사랑의 행위로 그의 마음을 감동시키지는 못하였다. 그의 스승의 마지막 시도(試圖)는 돌 같은 그의 마음에 부딪혔다. 그돌에 T(도)자 대신에 사탄의 소름끼치는 약자, 동물의 기호가 새겨져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들의 죄의 고백을 듣기 전에, 너희들에게 성령을 불어넣기 전에, 따라서 다시 은총을 견고하게 가지게 된 참된 그리스도인과 내 사제들로서의 특징을 붙여주기 전에 너희들을 씻어 주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라고 너희들이 준비시킬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해야 한다.


한분이시고 세위이신 하느님의 이름과 내 이름으로, 또 내 무한한 공로 때문에 물로 세례를 주어서, 사람들의 마음에서 원죄가 지워지고, 죄가 사해지고, 은총과 덕행들이 쏟아넣어지며, 성령께서 내려오셔서 주님의 은총으로 사는 사람들의 육체인 축성된 성전에서 머무르실 수 있게 하여라. 물이 죄를 없애는 데 필요하였느냐? 물은 영혼에는 미치지 못한다. 미치지 못하고 말고, 그러나 비물질적인 표로 모든 행동에 있어서 지극히 물질적인 사람의 시력에는 작용하지 못한다.
나는 눈에 보이는 방법을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생명을 불어넣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누가 그것을 믿었겠느냐? 보지 않고서 굳게 믿을 줄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느냐? 그러므로 옛날의 모세의 율법에서 사람들이 시체와 접촉하여 오염한 다음에 부정한 그들을 깨끗하게 해서 다시 장막 안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하여 쓰던 깨끗하게 하는 물을 떠오너라. 사실 사람은 누구나 은총에 죽은 영혼과 접촉하고 있기 때문에 오염된 상태로 태어난다. 그러므로 영혼은 깨끗하게 하는 물로 더러운 접촉이 깨끗이 씻어져서 영원한 성전에 들아갈 수 있는 자격을 얻어야 한다. 그리고 너희들은 물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수난으로 끝을 맺은 33년 동안의 피로한 생활로 속죄하고 구속한 다음, 사람들의 죄를 위하여 내 피를 전부 흘린 다음, 피가 다 빠져나간 희생자의 몸에서는 원죄를 씻는데 유익한 물이 빠져 나왔다. 나는 완성된 희생으로 너희들을 원죄에서 구해냈다. 만일 내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 내 편에서 하느님으로서의 기적을 행하여 내가 십자가에서 내려왔더라면, 확실히 말하지만 내가 흘린 피로 죄들을 깨끗하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원죄는 깨끗이 씻지 못했을 것이다. 원죄를 위하여는 전적인 소모가 필요하였다. 정말이지, 에제키엘이 말하는 몸에 이로운 물이 내 옆구리에서 나왔다. 영혼들을 이 물에 담가서 성령을 받도록 더럽혀지지 않은 상태로 나오게 하여라. 성령께서는 창조주께서 아담에게 영을 불어넣어주시기 위하여, 따라서 당신의 모습을 닮게 하기 위하여 불어넣어 주신 그 입김을 기억해서, 구속된 사람들의 마음에 돌아오셔서 입김을 불어주시고  그 안에서 사실 것이다.


내 세례로 세례를 주어라. 그러나 세위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여라. 그것은 참말이지 아버지께서 원치 않으시고 성령께서 이루지 않으셨더라면 말씀이 사람이 되지 않으셨을 것이고, 너희들은 구속을 받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든지 생명을 주고자 하는 뜻을 함께 가지셨던 분들의 이름으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을 부르면서 세례를 주는 행위로 생명을 받는 것이 마땅하고 또한 의무이다. 그 사람은 나에게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받게 될 것인데, 이것은 세례를 과거와 미래의 다른 의식들과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 다른 의식들은 의식은 되겠지만 죽지 않는 부분에 새겨지는 지워지지 않는 표는 되지 못할 것이다.


내가 한 것과 같이 빵과 포도주를 들고 내 이름으로 강복하여 나누어서 돌려 주어라.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나를 먹고 살게 하여라. 또한 빵과 포도주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제물로 바쳐라. 그런 다음 내가 너희들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바치고 완성한 제사를 기념하여 그 제물을 먹어라. 사제임과 동시에 희생제물인 나는 자진해서 나를 바치고 소모되었다. 내가 그렇게 하고자 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아무도 나를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 사제인 너희들은 나를 기억하여, 또 내 희생의 무한한 보배가 간구하며 하느님께로 올라가서 받아들여진 다음,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내 희생에 호소하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게 하기 위하여 이것을 행하여라.


확실한 믿음이라고 말하였다. 성체의 양식과 미사성제에서 이익을 얻는 데에는 지식이 요구되지 않고 믿음이 요구된다. 나와 내 뒤에 올 사람들 – 즉 새 교회의 새 대사제인 너 베드로, , 너 알패오의 야보고, 너 요한, 너 안드레아, 너 시몬, 너 필립보, 너 바르톨로메오, 너 토마, 너 유다 타대오, 너 마태오, 너 제베대오의 야보고에게서 – 권한을 받은 어떤 사람이 내 이름으로 축성하는 그 빵과 포도주는 내 진짜 몸이요 내 진짜 피이며, 그것을 받아 먹는사람은 살과 피와 영혼과 천주성을 가진 나를 받는 것이고, 또 나를 바치는 사람은 에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죄를 위하여 자기를 바친 것과 같이 그를 실제로 바친다는 것을 믿는 믿음말이다.  어린이와 무식한 사람도 학자와 어른과 같이 나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어린이와 무식한 사람도 너희 중의 누구든지 받을 것과 같은 은혜를 받을 것이다. 그들에게 믿음과 주님의 은총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새 세례를 받을 것이다. 그것은 성령의 세례이다. 나는 성령을 너희에게 약속하였고, 너희들은 성령을 받을 것이다. 성령께서 친히 너희들 위에 내려 오실 것이다. 언제 오시겠는지 내가 말해주마. 그러면 너희들은 성령을 충만히 받고, 사제로서의 선물을 풍성하게 받을 것이다. 따라서 너희들도 내가 너희들에게 한 것과 같이 너희들 안에 가득하신 성령을 그리스도인들의 은총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것이고, 성령의 은혜들을 쏟아 넣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사제직보다도 별로 못하지 않은 장엄한 성사이므로 안수와 옛날에 사제들을 축성하기 위하여 사용한 향기로운 기름을 바름으로써 모세가 제정한 축성과같이 장엄하게 행해져야 한다. 아니, 그렇게 겁에 질린 얼굴로 서로 바라보지 말아라! 나는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나는 하느님을 모독하는 행위를 너희들에게 가르치지 않는다! 되풀이해서 말하지만, 그리스도인의 품위는 아주 높은 것이어서 사제직보다 별로 떨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사제들은 어디에서 사는냐? 성전에서 산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살아 있는 성전이다. 사제들은 무슨 일을 하느냐? 그들은 기도와 제사와 신자들을 돌봄으로 하느님을 섬긴다. 그들은 이렇게 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도 기도와 제사와 형제적인 애덕으로 하느님을 섬길 것이다. 내가 너희들의 죄의 고백과 많은 사람의 죄의 고백을 듣고, 진실한 뉘우침을 본 곳에서는 용서해 준것과 같이 너희들도 죄의 고백을 들어라.


불안해지느냐? 왜? 구별할 줄을 모를까봐 겁이 나느냐? 나는 죄와 죄에 대한 판단에 관해서 이미 여러번 말하였다. 그러나 너희들이 판단할 때에 어떤 행동이 죄가 될 수 있거나 하는, 그리고 경중(輕重)이 다를 수 있는 일곱가지 조건을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여라. 그것들을 다시 일깨워 주겠다. 언제, 몇번, 누가, 누구와, 무엇을 가지고 죄를 지었는가? 죄의 소재는 무엇이고, 원인은 무엇이며, 왜 죄를 지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아라. 성령께서 너희들을 도와주실 것이다. 내가 진심으로 너희들에게 실천하라고 간절히 부탁하는 것은 거룩한 생활이다. 거룩한 생활은 너희들 안에 초자연적인 빛을 대단히 많아지게 해서,  너희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틀림없이  읽게 되고, 그들의 잘못을 드러내보이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고백하기를 거부하는 죄인들에게 사랑으로 또 권위로 그들의 심리상태를 말해 주어 소심한 사람들은 도와주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창피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죄를 사해 주던 분을 잃게 되고, 너희들은 내가 그랬던 것과 같이 공평하고 참을성있고 자비로워야 하지만, 약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여라. 너희들이 세상에서 푼 것은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고, 너희가 세상에서 맨 것을 하늘에서도 매여 있을 것이라고 나는 너희들에게 말하였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에게도 동정이나 반감이나, 또는 선물이나 위협으로 타락하는 일 없이 곰곰히 또 신중히 판단하며, 사람이 약하다는 것과 원수들의 계략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하느님이 그러신 것과 같이 어떤 일에나 누구에게 대해서나 공평무사하게 판단하여라.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하신 사람들이 죄를 짓게 허락하시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죄짓는 것을 보는 것이 좋아서가 아니라, 죄에서 장차 더 큰 이익이 올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너희에게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넘어지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라. 그렇게 넘어지는 것이 어쩌면 영원히 죽어서 구원을 주는 정화를 핏속에 넣어주게 되는 악의 최후의 발작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구원이란 우리 경우에는 성덕을 – 말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내 피를 존경하지 않고, 영혼이 하느님이 주시는 목욕물로 깨끗하게 된 다음 수없이 여러 번 진흙탕 속에 딩구는 사람들에게는  엄하게 굴어라. 그들을 저주하지는 말아라. 그러나 엄하게 굴고, 격려하고, 충고하기를 일흔 번씩 일곱 번을 하고, 그들을 선택된 백성과 갈라놓는 극단적인 벌은 다음과 같은 경우만 주도록 하여라. 즉 그들이 형제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죄를 계속 지어서, 그들의 행동의 공범자가 되지 않으려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때에만 그런 벌을 주라는 말이다. 내가 너희들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여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지었으면 너와 단둘이 있을 때 나무라도록 하여라. 그래도 네 말을 듣지 않으면, 증인 두 세사람앞에서 나무라도록 하여라. 그것도 부족하면 교회에 알려라. 만일 그 사람이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취급하여라’ 하고 말했었다.


모세의 종교에서는 결혼은 하나의 계약이다. 그런데 새로운 종교인 그리스도교에서는 부부를 인류 전파에 있어서의 주님의 대리자 중의 두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하여 주님의 은총이 내려오는 신성하고 파기 할 수 없는 행위가 되어야 한다. 너희들은 처음시기부터 새 종교에서 오는 남편이나 아내에게 아직 신자가 아닌 배우자를 개종시켜 교회 안에 들어와 신자들의 일원이 되라고 권고하도록 힘써서, 우리들 가운데에서까지도 볼 수 있었던 가슴아프게 생각이 갈라지는 일들, 즉 평화가 깨짐을 피하도록 하여라. 그러나 주님께 충실한 부부들로 말하면, 하느님께서 결합시키신 것을 어떤 이유로도 사람이 갈라 놓아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인이면서 외교인과 결혼하게 된 남편이나 아내의 경우에는 그 남편이나 아내에게 그의 십자가를 인내와 온유를 가지고 또한 힘을 가지고 지고 갈 것이요, 그의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는 죽을 줄을 알기까지 하되, 완전히 동의해서 결합한 배우자는 버리지 않도록 하라고 권고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어 신자들끼리 결혼 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결혼신분에서 더 완전한 생활을 하라고 주는 내 권고이다. 그러면 이 유대는 신성하고 파기 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하고 사랑은 거룩해야 한다.


만일 남자들의 마음이 냉혹함으로 인하여 새 종교에서도 옛날 종교에서 일어 났던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된다면, 즉 남자의 음란으로 인하여 스캔들을 피하기 위하여 이혼과 결혼해소를 허가하게 된다면 나쁠 것이다. 정말 너희들에게 단단히 말한다마는, 어떤 신분에서든지, 결혼신분에서도 각자가 자기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 그리고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부부 중의 한사람이 죽기 전에 새로 결혼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고 너희들이 말할 때, 어떤 압력에도 너희들의 권위가 굴복되어서는 안 된다. 썩어가는 부분을 교회의 몸에 붙들어 매두기 위하여 결혼의 신성성(神聖性)에 반대되는 일을 허락하여, 소박한 사람들을 분개하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사제들의 청렴에 불리한 말을 하게 하고, 또 재물과 권력의 가치에 대하여 불리한 말을 하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썩어가는 부분만 단독으로 또는 다른 부분까지 포함해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 더 낫다. 결혼은 중대하고 거룩한 행위이다. 그리고 그것을 너희들에게 보여 주려고 결혼식에 참석하였고, 거기서 내 첫 번째 기적을 행하였다. 그러나 만일 결혼이 음란이나 일시적인 사랑으로 변질하면 불행한 일이다. 남자와 여자의 자연적인 계약인 혼인이 이제부터는 영적인 계약으로 향상되어야 한다.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영혼이 주님께 자녀를 드리기 위하여 생산을 하라시는 명령에 복종하려고 그분께 드린 서로의 사랑으로 주님을 섬기기로 맹세하는 영적인 계약으로 말이다.


또… 야보고, 너는 가르멜산에서 있었던 대화가 생각나느냐? 그 때부터 나는 이것에 대해서 네게 말을 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너희들은 베다니아에서 안식일 만찬에서 라자로의 마리아가 내 수족에 기름을 바르는 것을 보았지. 그 때 나는 너희들에게 ‘이 여자는 내 장사 준비를 한 것이다’하고 말했었다. 정말이지 마리아는 기름을 발랐었다. 마리아는 그 고통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장례를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길에서 묻은 모든 더러운 것을 내 수족에서 깨끗이 씻어내고 내 수족을 향기롭게 해서, 방향성(芳香性) 기름으로 내가 향기롭게 되어 옥좌에 올라가게 하려고 그렇게 한 것이다. 사람의 일생은 길과 같다. 사람이 저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은 왕국에 들어가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어떤 왕이든지 옥좌에 올라가 백성앞에 나타나기 전에 기름을 발라 향기롭게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도 아버지께서 부르시는 나라로 가는 길을 걸어가고 있는 왕의 아들이다.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아버지께서 그에게 마련해 놓으신 옥좌에 올라가려고 나라에 들어가는 것일 뿐이다. 자기가 하느님의 은총 지위에 있다는 것을 알고 하느님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무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옥좌에 올라가야 할 사람은 그 옷이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하게 되어 부활 때까지 아름답게 보존되어야 하고, 그 정신도 깨끗해져서 아버지께서 그에게 마련해 주신 옥좌에서 빛나게 되어야 하고, 그렇게도 위대하신 왕의 아들에게 어울리는 위엄을 갖추고 나타나게 되어야 한다.


기름바름은 은총을 커지게하고, 사람이 진심으로 뉘우치는 죄를 없애고, 선을 향한 열렬한 충동을 일으켜야 하며, 마지막 싸움을 위한 힘을 주어야 한다. 죽어가는, 아니 오히려 새로 태어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기름바름은 이러해야 한다. 너희들에게 진정으로 말하지만 주님 안에서 죽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태어나기 때문이다.


마리아가 한 행동을 선택된 사람들의 손발에 되풀이하여라. 그리고 아무도 이 행동을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나는 향기로운 그 기름을 한 여자에게서 받아들였다. 어떤 그리스도인이든지 이 기름을 받은 것을 자기의 어머니인 교회로부터 최고의 은총을 받아 명예롭게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마지막 얼룩을 씻기 위하여 그것을 사제에게서 받아야 한다. 그리고 어떤 사제든지 고통받는 그리스도에게 행한 마리아의 사랑의 행위를 죽어가는 형제의 몸에 행하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너희들이 한 여자가 너희들보다 더 낫게 하게 내버려두면서 행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몹시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그 행동을 미래에는 행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도 죽어가는 어떤 사람이 하느님을 만나뵙는 것을 준비시키기 위하여 그에게로 사랑을 가지고 몸을 숙일때마다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거지들과 죽어가는 사람들 안에, 나그네와 고아들과 과부들과 죄수들안에, 배고프고 목마르고 추위에 떠는 사람들안에, 몹시 슬퍼하거나 피로한 사람들안에 있다. 나는 내 모든 신자들의 결합체인 그리스도의 내 신비체의 모든 지체안에 있다. 그들을 통하여 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내게 큰 기쁨을 주고 너희들에게는 지극히 큰 영광을 줌으로써 너희들의 수많은 사랑의 부족을 보상하여라.


끝으로 세상나이시간박해가 너희들에 대하여 도당을 이루어 결탁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여라. 그러므로 너희들이 가진 것을 아끼지 말고 조심성없는 사람이 되지 말아라. 이 때문에 제자들 중에서 가장 나은 사람들에게 내 이름으로 사제직을 전해주어 이 세상에 사제가 없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런데 이 신성한 자격은 철저한 심사를 한 후에 주어야 한다. 말에 대한 심사가 아니라, 사제가 되겠다고 청하는 사람이나 사제가 될 수 있다고 너희들이 판단하는 사람의 행동에 대한 심사를 한 후에 말이다. 사제과 무엇인지, 사제가 어떤 선을 할수 있고, 어떤 악을 할 수 있는지 곰곰히 생각하여라. 그 신성한 성격을 잃은 사제직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그 예를 너희들은 보았다. 너희들에게 진정으로 말한다마는, 성전의 잘못 때문에 이 민족이 흩어질 것이다. 그러나 정말 잘 들어 두어라. 극도의 불신이 새로운 사제직 안에 들어와서 사람들을 배교(背敎)로 이끌어 지옥의 가르침을 믿게 하면 이 세상도 그와 같이 멸망할 것이다. 그 때에는 사탄의 아들이 나타날 것이고, 모든 민족들은 무서운 공포에 사로잡혀 신음할 것이고, 주님께 충실한 사람은 적을 것이며, 그 때에는 또 소름끼치는 격변 속에 하느님과 그분의 선택받은 사람들의 승리와, 모든 저주받은 사람들에 대한 하느님의 분노와 더불어 종말이 올 것이다.얼마 안되는 수의 충실한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성전의 마지막 보루(堡壘)인 성인들이 없으면 불행하다. 세 번 불행하다! 최초의 그리스도인을 위하여 참 사제들이 있을 것 처럼 최후의 그리스도인을 튼튼하게 해주기 위한 참 사제들이 없으면 불행하다. 세 번 불행하다. 정말이지 마지막 박해는 소름끼치는 박해일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꾸미는 박해가 아니라 사탄의 아들과 그 일당의 박해이겠기 때문이다. 사제들은? 마지막 시간의 사제들은 사제 이상이어야 할 것이다. 가(假) 그리스도의 무리들의 박해는 그만큼 맹렬하겠기 때문이다. 에제키엘의 환상에 나타나는 주님 곁에 남아 있을 수 있을 만큼 거룩한 아마포옷을 입은 사람과 같이 사제들은 얼마 되지 않는 신자들의 영에 그들의 완덕으로 지치지 않고 도(Tau), 즉 십자가( T)의 기호를 박아주어 지옥의 불이 그 기호를 지우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  사제들은? 천사들이어야 한다. 사탄의 장기(壯氣)를 흩어 공기를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그들의 덕행의 향을 넣은 향로를 흔드는 천사들이어야 한다. 천사들이어야 한다고? 천사이상이어야 한다. 마지막 시기의 신자들이 끝까지 항구 할 수 있도록 사제들은 다른 그리스도, 다른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


사제들은 이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음에 올 선과 악의 뿌리는 현재에 있다. 눈사태는 눈송이 하나에서부터 시작된다. 자격없고, 부도덕하고, 이단적이고, 의심많고 냉담하거나 아주 차갑고, 활기가 없고, 싫증이 나고, 음란한 사제 한 사람이 같은 죄를 짓는 신자 한 사람보다 열배나 더 해를 끼치고, 다른 많은 사람을 죄로 이끌어 간다. 사제직에 있어서의 태만과 사제직 안에 불순한 가르침과 이기주의와 탐욕과 사욕(邪慾)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디로 귀착하는지 너희들은 안다. 하느님을 죽이는 죄로 이끌어 간다. 그런데 미래 시대에는 하느님의 아들은 죽임을 당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난님께 대한 믿음과 하느님의 사상은 죽임을 당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부활이 없을 것이므로 더 돌이킬 수 없는 하느님 죽이는 죄가 저질러 질 것이다. 오! 하느님을 죽이는 그 죄가 저질러질 수 있고 말고, 내게는 그것이 보인다. …장차 올 여러 시대의 너무나 많은 가리옷의 유다들 때문에 그 죄가 저질러 질 것이다. 소름끼치는 일이다!…


내 교회가 그 자신의 사제들에 의해서 제 자리에서 벗어나다니! 그리고 나는 희생들의 도움을 받아 그 교회를 떠받치고, 그런데 사제의 옷만 입고 있고 사제의 정신은 가지고 있지 않은 사제들인 그들은 네 작은 배를 뒤집어 엎으라고 지옥의 뱀이 휘저은 물의 솟구침을 도와주니, 오 베드로야, 일어서라! 일어서! 네 후계자들에게 이 명령을 전해 주어라. ‘한 손으로 키를 잡고, 한 손으로는 파선을 원해서 파선한 사람들, 하느님의 배를 나아가지 못하게 하려 애쓰는 자들 위에 채찍을 휘둘러라’ 하고. 채찍으로 쳐라. 그러나 구원하고, 앞으로 나아가라. 엄격하여라. 강도들을 치는 것은 정당한 일이니까. 믿음의 보배를 지켜라, 뒤흔들린 물위에 빛을 등대처럼 높이 쳐들어, 네 배를 따라오는 사람들이 보고 죽지 않게 하여라. 무서운 시기에 목자와 키잡이로서 사람들을 모으고 인도하고 내 복음서를 쳐들어라. 구원은 복음서에 있지 다른 지식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인 우리의 경우와 같이, 아니 이보다도 한층 더 심각하게, 사제직이 없어도 되는 것을 알고 필요불가결한 것은 모르거나, 또는 필요불가결한 것을 지금 사제들이 율법을 아는 것 같은 죽은 형태로, 즉 그 정신을 아는 것이 아니라, 술들을 달아 지나치게 무거워진 옷과 같은 형태로 알기 때문에 선택된 계급이라고 믿는 그런 때가 올 것이다. 모든 책이 성경 대신이 되고 성경은 어떤 물건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 그저 그것을 기계적으로만 다루는 것같이 쓰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즉 엎은 땅에 뿌린 씨앗이 하느님의 자애로운 사랑의 덕택으로  대와 이삭이 되고, 그 다음에는 밀가루가 되고, 또 그 다음에는 빵이 되는, 해마다 되풀이 되는 이씨앗의 번식은 깊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밭갈고 씨뿌리고 거둬 들이는 농부와 같이 말이다. 누가 입에 빵 한 입거리를 넣으면서, 첫 번째 씨앗을 다시 나게 하시고 자라게 하시며, 비와 열을 조절하시어 씨앗이 썩거나 타죽지 않고 벌어지고 올라오고 여물게 하시는 분께로 정신을 들어올리느냐?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복음을 학문적으로는 잘 가르치고, 영적으로는 잘못 가르칠 때가 올 것이다. 그런데 만일 지혜가 없으면 그 학문은 무엇이겠느냐? 지푸라기이다. 배는 부르게 하지만 영양은 주지 못하는 짚이란 말이다. 정말 잘들어 두어라. 너무나 많은 사제들이 잔뜩 부풀어 오른 밀짚가리같이, 잔뜩 부풀었다고 으스대는 교만한 밀짚가리같이 되는 때가 올 것이다. 마치 그것들이 밀짚 꼭대기를 장식했던 저 모든 밀이삭을 그것을  자체가 만들어 낸 것처럼, 또는 이삭들이 아직 밀짚 꼭대가 달려 있는 것처럼, 그리고 복음의 정신이라는 진짜 한줌의 양식 대신에 산더미! 같은 밀짚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들의 중요한 것이라고 믿을 때가 올 것이란 말이다. 산더미 같은 밀짚! 그러나 밀짚이 있으면 충분하냐? 밀짚은 짐바리 짐승들의 배에도 충분하지 못하다. 그래서 주인이 귀리와 신선한 풀로 그 짐승들을 튼튼하게 하지 않으면, 밀짚으로만 기른 짐승들은 쇠약해져서 마침내는 죽고 만다.


그렇지만 너희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제들이 내가 얼마 안 되는 밀이삭을 가지고 진리를 사람들에게 가르쳤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또 전적으로 하느님의 지혜에서만 나오고, 하느님의 말씀이 가르쳐 준 이 정신의 참된 빵이 그들의 주님께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게 하였는지를 잊어버리고, 이 하느님의 말씀이 그 교의적인 형태로는 당당하고, 한 번 말한 진리가 잃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되풀이 되지만, 인간의 지식이  야하게 번쩍거리는 옷이 없고, 역사적이고 지리적인 보충적 설명이 없으므로 그 형태는 초라하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시대가 올 것이고, 그 사제들이 복음의 정신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군중들에게 자기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아는지를 보이기 위하여 그것을 번드르르하게 덮을 싸개에만 관심을 가져서, 복음의 정신은 인간 지식의 이 눈사태 속에 파묻히게 될 시대가 올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이 복음의 정신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어떻게 그것을 전해줄 수 있겠느냐? 잔뜩 부풀어 오른 저 짚더미가 신자들에게 무엇을 주겠느냐? 지푸라기를 줄 것이다. 신자들의 정신이 거기에서 무슨 영양을 취하겠느냐? 활기없는 생명이나 질질 끌고 가기에 필요한 것만큼만 받을 것이다. 이 가르침과 복음에 대한 불완전한 지식에서 어떤 열매들이 익겠느냐? 사람들의 마음이 냉담해지고, 유일한 참된 교리 대신에 이단적인 학설과 이단보다도 한층 더 심한 학설들과 사상들이 들어설 것이며, 악마를 위한, 그의 춥고 어둡고 무서운 일시적인 지배를 위한 지반(地盤)준비가 있을 것이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창조주이신 아버지께서 별을 많이 만드시어, 수명이 다해서 죽는 별들로 인하여 하늘이 텅 비지 않게 하시는 것과 같이, 이와마찬가지로 나도 사람들 가운데 오랜 세월을 두고 분산배치할 제자들에게 백번 천번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다. 또 진정으로 너희들에게 말하지만, 그들의 운명은 내 운명과 비슷할 것이다. 즉 유다교와 교만한 자들이 나를 박해한 것과 같이 그들을 박해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나 나나, 우리는 모두 우리의 보상을 받을 것이다. 즉 하느님의 뜻을 행하고, 하느님의 영광이 빛나고 하느님에 대한 지식이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 하느님을 섬기는 보상을 말이다.


그러나 너 대사제와 너희목자들은 너희들 자신과 너희 후계자들을 보살펴 복음 정신이 잃어지지 않게 하고, 너희 안에 끊임없이 성신강림이 새로워져서- 내 말이 무슨 뜻인지를 너희들이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멀지않아 알게 될 것이다 -너희들이 모든 방언(方言)을 알아들을 수 있고, 내 목소리들을 고르고, 그것을 하느님의 흉내를 내는 자, 사탄의 목소리와 구별할 수 있도록 꾸준히 성령께 기도하여라. 그리하여 이 다음에 들려올 내 목소리가 허공 속에 떨어지지않게 하여라. 그 말 하나하나가 내 편에서 너희들을 돕기 위하여 내려 오는 자비일 것이고, 또 하느님이 정하신 이유로 그리스도교가 시대의 돌풍을 극복하기 위하여는 그 말을 들을 필요가 있는 것을 내가 알겠기 때문에 그만큼 더 많아질 것이다.


목자이며 키잡이인 베드로야! 목자와 키잡이. 너는 언젠가 뱃사람이 되지 않으면 목자가 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을 것이고, 목자가 되지 않으면 뱃사람이 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지옥의 촉수(觸手)와 사나운 발톱이 빼앗아 가려고 애쓰나, 지킬 수도 없는 약속의 거짓 노래로 유혹할 어린 양들을 모아서 지키기 위하여, 그리고 동 서 남 북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만나고, 깊은 물의 힘으로 채찍질당하고 얻어맞고, 악마의 사수(射手)들이 쏘는 화살을 맞으며 용의 입김으로 불타고, 용의 꼬리로 뱃전이 휩쓸려 조심성없는 사람들은 불에 타거나 소용돌이치는 물 속에 빠져 죽게 된 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하여는 목자임과 동시에 키잡이로 되어야 한다.


무서운 시대의 목자이며 키잡이… 네 나침반은 복음이다. 복음안에 생명과 구원이 들어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모든 말씀이 들어 있다. 복음에는 거룩한 법전의 모든 조항과 영혼들의 수많은 문제에 대한 해답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사제들과 신자들이 복음에서 빗나가지 않게 하고, 복음에 대하여 의심이 생기지 않게 하고, 복음을 변질시키거나 바꾸거나 변조하지 못하게 하여라. 복음은 나 자신이다. 내가 태어난 때부터 죽을 때가지. 복음 안에는 하느님이 계시다. 복음 안에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업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복음은 사랑이다. 나는 ‘내 말은 생명이다’ 하고 말하였고,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가지기 위하여 내 말을 알아야 하고, 그들 안에 사랑을, 즉 하느님을 모셔야 한다. 하느님안에 있지 않은 사람은 그의 안에 생명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며, 아버지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을 사람들은  하늘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과 더불어 오직 하나가 되지 못할 것이고, 내가 바라는 바와같이 거룩하고 유일한 양떼에 속해 있지 못하겠기 때문이다.  내 말을 전부나 부분적으로 배척하는 사람은 생명의 액이 돌아다니지 않게 된 지체이기 때문에 포도나무에 달려 있는 가지가 아닐 것이다. 내 말은 영양을 주고,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는 수액(樹液)이다.


이것을 너희에게 가르쳐 준 나를 기억해서 이 모든 것을 행하여라. 내가 지금 너희들에게 말한 것에 대하여 아직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씨만을 뿌렸다. 성령께서 그것을 싹트게 하실 것이다. 나는 너희들의 마음을 알고, 두려움으로 인해서 정신적이고 비물질적인 계명에 대하여 어떻게 너희들이 망설이게 되겠는지를 알기 때문에, 나 자신이 너희들에게 씨를 뿌려 주고자 하였다. 틀리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너희의지를 완전히 마비시킬 것이다. 이 때문에 내가 먼저 모든 것을 너희들에게 말해 주었다. 그런 다음 성령께서 내 말을 너희들에게 상기시키시고 자세히 부연해서 설명하실 것이다. 그러면 너희들은 내가 첫 번 씨앗을 너희들에게 뿌려 주었다는 것을 기억하겠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성령께서 너희들을 인도하시게 맡겨드려라. 너희를 인도하는 내 손도 부드러웠지만, 성령의 빛은 말할 수 없이 부드러울 것이다. 성령은 하느님의 사랑이시다. 따라서 나는 기쁘게 떠난다. 성령께서 내 대신 들어서서 너희들을 인도하여 하느님을 알게 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하느님께 대하여 그렇게도 많이 말해 주었지마는, 너희들은 아직 하느님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은 너희 탓이 아니다. 너희들은 나를 이해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무죄가 증명되었다. 은총이 부족해서 너희들의 정신이 무디어졌던 것이다. 비록 하느님의 은총이 내 십자가에서 너희들 위에 내려 왔지만, 지금도 너희들은 별로 이해하는 것이 없다. 너희들은 불을 받을 필요가 있다. 어느 날 나는 요르단강으로 가는 길에서 너희 중의 한 사람에게 여기에 대한 말을 하였다. 그 때가 올 것이다. 나는 아버지께로 돌아간다. 그러나 너희들을 혼자 매버려 두지 않는다. 성체를, 즉 사람들을 위하여 양식이 된 너희 구세주를 너희들에게 남겨 두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희들에게 벗을 남겨둔다. 성령 말이다. 성령께서 너희들을 인도하실 것이다. 나는 너희들의 영혼을 내 빛에서 성령의 빛으로 넘겨 준다. 그래서 그분이  너희들의 교육을 끝마치시실 것이다.


“주님은 여기서 저희들을 떠나십니까? 지금이요? 이 산위에서요?” 그들은 모두 섭섭해한다.
“아직은 아니다. 그러나 시간은 빨리 흐른다. 그래서 그 때가 멀지 않아 올 것이다.”


“아이고, 저를 주님없는 이 세상에 남겨두지 마십시오. 저는 주님을 나실 때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돌아가신때부터 부활하신 때까지 늘 사랑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이 이제는 저희들 가운데 안 계시다는 것을 아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일 것입니다! 주님은 엘리세오의 아버지의 기도를 들어 주셨고, 수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 주셨습니다. 주님, 제 소원도 들어주십시오” 하고 이사악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내 밀고 애원한다.


네가 아직 누릴 수 있는 생명은 나를 전파하는 일일 것이고, 또 어쩌면 순교의 영광을 가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너는 내가 어릴 적에 내게 대한 사랑으로 순교자가 될 줄 알았는데 지금은 영광스럽게 된 나를 위하여 순교자가 되는 것을 겁내느냐?”


“주님, 제 영광은 주님을 주님을 따르는 일일 것입니다. 저는 가난하고 어리석습니다. 제가 드릴 수 있던 것은 기꺼이 드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이나 언제나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는 한 손을 이사악의 머리에 얹으신채 오랫동안 어루만지신다. 그동안 다른 모든 사람에게 몸을 돌리시고 말씀하신다. “질문 할 것이 없느냐? 이것들이 내 마지막의 지시들이다. 너희 선생님에게 말하여라. …어린아이들은 나를 얼마나 탁 믿는지 알겠지?”


사실 오늘도 마루잠은 예수께 꼭 붙어서 그분의 몸에 머리를 기대고 있고, 또 이사악은 수줍어하지 않고 그의 소원을 말씀드렸다.


“정말이지… 있습니다.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하고 베드로가 말한다.
“그러면 물어라.”
“이렇습니다.…어제  저녁 주님이 떠나신 다음 저희들은 주님이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서로 말들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주님이 말씀하신 것 때문에 다른 다른 말씀들이 저희들 머리에 꽉 찼습니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주님은 이단과 분리가 일어나야 하는 것처럼, 그것도 오래지 않아서 일어나야 하는 것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문에 저희들은 저희들에게로 오기를 원할 사람들에 대해서 대단히 신중해야겠구나 하고 곰곰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틀림없이 이단과 분리의 씨가 있을테니까 말입니다.”


“너는 그렇게 생각하느냐? 그런데 이스라엘이 내게로 오는 데에도 벌써 갈라져 있지 않느냐? 네 말은 이런 뜻이지. 나를 사랑한 이스라엘은 절대로 이단자가 되지 않고 분열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지? 그러나 이스라엘이 여러 세기 전부터 옛날 조직에 있어서까지도 혹 일치한 적이 있었느냐? 또 혹 나를 따르는 데에도 일치 하였더냐? 진정으로 말하지만 이스라엘에는 이단의 뿌리가 있다.”


“그렇지만…”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러 세기 전부터 겉으로는 충실한 체하면서 우상숭배자이고 이단자이다. 너희들은 그들의 우상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고 그들의 이단이 어떤 것인지도 알고 있다. 이교도들이 그들 보다 나을 것이다. 이 때문에 나는 이교도들을 배제하지 않았고, 너희들에게도 내가 한 대로 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너희들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중의 하나일 것이다. 나도 그것을 안다. 그러나 예언자들의 말을 기억하여라. 예언자들은 부르심과 유다인들의 냉혹을 예언하고 있다. 나를 사랑하고, 그들의 영혼이 찾는 빛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너희들은 왜 나라의 문을 닫으려고 하느냐? 그들이 지금까지 하느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이 그들의 종교를 따랐고 또 우리 종교에 끌려 올 때까지는 그들의 종교를 따르겠기 때문에 너희들보다 더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거룩하지 않은 종교를 가지면서도 의로울 줄을 알고 있기에 너희들보다 더 훌륭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어떤 민족에도 어떤 종교에도 의인들이 없지 않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의 행실을 보시지, 그들의 말을 보시지 않으신다. 그런데 어떤 이교도가 그 마음이 올바르기 때문에 시나이산의 율법이 명하는 것을 자연적으로 행하는 것을 하느님께서 보시면, 왜 하느님께서 그 사람을 업신여길 사람으로 생각하셔야 하겠느냐? 사람의 목적이신 하느님을 알고, 또 하느님께 다다를 수 있게 하는 율법을 알면서, 완전한 계명을 그의 타락한 뜻에 적응시키려고 끊임없는 타협과 계속적인 계산을 서슴치 않고 하는 사람과 비교하여, 이러저러한 일을 나쁜 것이니까 하지 말라고  하는 하느님의 명령은 모르면서도, 그의 이성이 좋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지 말라는 계명을 스스로 만들어 가지고 그것을 충실하게  지키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한층 더 공로가 되는 일이 아니겠느냐? 너희들에게는 어떻게 생각되느냐? 자기의 욕망을 너무 희생하지 않아도 되게끔 순종을 하지 않으려고 이스라엘이 생각해낸 이 핑계 저핑계를 하느님께서 인정하실 것 같으냐? 어떻게 생각되느냐? 자기의 양심이 스스로 떠맡은 올바른 법을 따랐기 때문에 하느님의 눈에 의인으로 비친 이교도가 세상을 떠났을 때, 하느님께서 그를 마귀라고 인정하실 것 같으냐? 나는 너희들에게 분명히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의 행동을 심판하실 것이고, 모든 사람의 심판자인 그리스도는 영혼의 갈망으로 인해서 자기의 창조주와 다시 결합한다는 인간의 최종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마음속의 법의 목소리를 가졌던 사람들에게 상을 주실 것이다. 창조주는 외교인들에게 있어서는 알지 못하는 신이지마는,  그래도 올림퍼스산의 거짓 신들을 그린 장식을 초월하여 참되고 거룩하다고 느끼는 신이다. 너희들이 이교도들에게 걸려 넘어지는 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경계까지도 하여라. 하느님의 백성의 자손들의 행동으로 인하여 이교도들 사이에서 하느님의 이름이 웃음거리가 된일이 이미 너무나 자주 있었다. 너희들을 내 선물과 내 공로를 독립적으로 맡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말아라. 나는 유다인과 이교도들을 위하여 죽었다. 내 나라는 모든 민족의 것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하느님께서 너희들을 다루신 인내를 남용해서 ‘우리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너희에게 분명히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제는 이런 백성, 저런 백성 따로 없고, 내 백성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내 백성 안에서는 성전에 쓰여진 소모된 그릇이나 지금 하느님의 탁자 위에 놓여 있는 그릇이나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또한 성전에 쓰이느라고 소모되었지만, 하느님을 섬기느라고 소모되지 않은 많은 그릇히 폐기되고, 그 대신 아직 향과 기름과 포도주와 향료를 알지 못하지만, 그것들을 가득채워서 주님의 영광에 쓰이기를 갈망하는 그릇들을 제단에 놓이기까지 할 것이다. 이교도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 하지 말아라. 그들은 믿음을 가지고 내 말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새로운 할례가 예전 할례 대신이 된다. 이제부터는 사람이 마음으로 할례를 받는다. 아니 마음으로보다는 오히려 영으로 할례를 받는다. 그것은 하느님과의 친자(親子)관계에서 아담을 배제한 욕망을 깨끗하게 씻는다는 것을 가리키기 위한 할례받은 사람들의 피에 지극히 깨끗한 내 피가 대체 되었기 때문이다. 내 피는 육체적으로 할례를 받은 사람에게 유효하고, 또 육체적으로 할례를 받지 않았더라도, 내 세례를 받고 내게 대한 사랑으로 마귀와 세속과 육신을 끊어버리기만 하면 그 사람에게도 유효하다. 할례받지 않은 사람들을 업신여기지 말아라.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업신 여기지 않으셨다. 그의 올바름 때문에 할례로 그의 육체가 쏠리기도 전에 하느님께서는 그를 당신 백성의 시조(始祖)로 택하셨다. 하느님께서 할레를 받지 않은 아브라함에게 가까이 가셔서 당신의 명령을 건네주셨으니, 너희들도 주님의 율법을 가르치기 위하여 할례받지 않은 사람들을 가까이 할 수 있다.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죄에, 또 어떤 죄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생각하여라. 그러므로 이교도들에게 냉혹하게 굴지 말아라.”


“그렇지만 주님이 저희들에게 가르쳐 주신 것을 이교도들에게 말해야 하겠습니까? 그 사람들은 율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알아 듣지 못할 것입니다.”
“너희들은 그렇게 말하지만 혹시 율법과 예언자들의 예언을 아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알아 들을 줄 아느냐?”
“그렇군요.”


“그러나 조심하여라. 성령께서 암시하는 것을 두려워 말고, 너희들 자의로 하려고 하지도 말고 구두로 말하여라. 그런 다음 신자들 가운데에서 그들의 사상을 영감받은 사상처럼 내세우고, 그래서 이단자가 되는 거짓 예언자들이 생기면, 그 때에는 이단적인 교리를 말보다 더 단호한 방법으로 반대하여라. 그러나 걱정하지 말아라. 성령께서 너희들을 인도하실 것이다. 나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그러면 이단자들을 저희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단 자체는 전력으로 반대 하여라. 그러나 이단자들은 모든 방법을 다 써서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도록 힘써라. 길잃은 양들을 양의 우리로 도로 데려오기 위하여 지칠 줄을 모르고 찾아 다녀라. 너희들이 기도하고 애쓰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기도하고 애쓰라고 부탁하고, 깨끗하고 착하고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희생과 고통의 선심을 청해서 형제들이 회개하게 하여라. 그리스도의 수난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계속된다. 나는 세상의 구속이라는 이 위대한 사업에서 너희들을 제외하지 않았다. 너희들은 모두 오직 하나인 몸의 지체들이다. 너희들은 서로 도와라. 그래서 힘이 세고 건강한 사람은 더 약한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고, 일치해 있는 사람은 멀리 떨어진 형제들에게 손을 내밀고 그들을 불러라.”


“그렇지만 오직 하나인 집에서 형제로 있었던 사람들인데 돌아오겠습니까?”

“돌아올 것이다.”
“왜요?”
“여러가지 이유로. 그들은 아직 내 이름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이 이름을 영광으로 생각하기까지 할 것이다. 그들은 이 이름을 알게 하려고 애 쓸 것이다. 그들은 내가 이 세상 끝에까지 알려지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너희들에게 다시 상기시킨다마는, 나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내 편이니까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어라. 그러나 불쌍한 자식들! 그들의 일은 언제나 부분적일 것이고, 그들의 공로는 항상 불완전할 것이다. 그들이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나가 있으면 내 안에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행동은 언제나 불완전 할 것이다. 너희들은 – 나는 미래에 너희들의 후계자가 될 사람들에게 말하면서도 너희들이라고 말한다 – 그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라.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같이 ‘나는 오염하지 않기 위해 거기 가지 않겠다’ 고 말하지 말아라. 또는 게으른 사람들처럼 ‘주님을 전하는 사람이 벌써 있으니까 나는 거기 가지 안 가겠다’고 말하지 말아라. 또는 비겁하게 ‘나는 쫓겨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거기 가지 않겠다’고도 말하지 말아라. 가거라. 가란 말이다. 모든 민족에게, 세상의 끝까지 가거라. 그래서 내 가르침 전부와 내 유일한 교회가 알려지고, 사람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 그 일원이 되게 하여라.”


“그런데 주님이 하신 모든 일을 말하거나 써야 하겠습니까?”
“너희들에게 이미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 말하는 것이 좋은가 또는 말하지 않는 것이 좋은가 하는 것에 대하여는 성령께서 너희들에게 조언을 하실 것이다. 알겠지! 내가 행한 것을 사람들은 믿거나 부인한다. 또 어떤 때는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의 손으로 제시되므로 그것을 가지고 나를 공격하는 무기를 만들기 까지 한다. 내가 스승으로 모든 사람 앞에서 기적을 행했을 때 나를 벨제붓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그러니 내가 이다지도 초자연적으로 행동한 것을 알게 되면 이제는 무엇이라고 말하겠느냐? 그들은 나를 모독하는 말을 한층 더 많이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은 처음부터 박해를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말을 할 시간이 될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라.”


“그렇지만 증인인 저희들이 죽은 다음에 이 시간이 오면 어떻게 합니까?”


“내 교회 안에는 언제나 사제들과 박사들과 예언자들과 마귀를 쫓는 사람들과 증거자들, 그리고 기적을 행할 사람들과 영감을 받을 사람들이 있을 터인데,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교회에서 받기에 필요한 만큼은 있을 것이다. 천국, 즉 승리한 교회는 가르치는 교회를 혼자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고, 또 가르치는 교회는 싸우는 교회를 도울 것이다. 몸이 셋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한 몸이 있을 뿐이다. 그 교회들 사이에는 구별이 없고, 오히려 공통된 사랑과 목적이 있을 뿐이다. 그 목적이란 사랑 자체이신 분을 사랑하고, 그분의 나라인 하늘에서 그분을 누리는 것이다. 또한 이 때문에 이미 승리한 교회의 일원이 되기로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사함은 받았어도 완전한 하느님의 정의 앞에 온전히 다 갚지는 못한 잘못에 대하여 보속 해야 하기 때문에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은 부분을 위한 기도를 싸우는 교회가 사랑으로 대신 해 주어야 할 것이다. 신비체 안에서는 모든 것이 사랑 안에서, 사랑으로 행해져야 한다. 사랑은 그 몸 안을 돌아 다니는 피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죄갚음을 하고 있는 형제들을 도와 주어라. 육체적인 자비가 하늘에 너희들의 상급을 마련한다고 내가 말한 것과 같이, 영적인 행동도 마찬가지로 너희들에게 상급을 마련해 준다고 말하였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죽은 사람들이 평화에 들어가도록 그들을 위하여 대신 기도 하는 것은 훌륭한 자비의 행위이고,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너희들에게 강복하실 것이고,  그 덕을 본 사람들이 고맙게 생각할 것이다. 육신이 부활해서 모든 사람이 심판자인 그리스도 앞에 모였을 때, 내가 강복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있는 형제들의 평화를 위하여 희생을 바치고 기도를 드려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었던 사람들도 끼여 있을 것이다. 내가 너희들에게 분명히 말한다. 착한 행동은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고, 전도도 하지 않고, 성사도 베풀지 않고, 사도로서의 여행도 하지 않고, 특별한 신분을 가지지도 않은 많은 사람이 다만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또 사람들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기도하고 고통을 겪는 것으로 인하여 하늘나라에서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사제이고, 알려지지 않은 사도이며, 하느님만이 보시는 희생인 그들도 그들의 일생을 가지고 형제를 위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끊임없는 사랑의 희생을 만들었기 때문에 주님의 일꾼들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너희들에게 분명히 말하지만, 사실 영원한 생명에는 여러 가지 길로 가게 되는데. 이것도 그 길 중의 하나이며, 내 마음에 대단히 소중한 길이다. 다른 것 또 물을 것이 있느냐? 말하여라.”


“주님, 어제, 어제뿐이 아닙니다만, 주님이 저희들들에게 ‘너희들은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 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희는 열한 명입니다….”


“열두째를 골라라. 베드로야, 이것은 네 소관이다.”
“제가요? 주님, 저는 안 됩니다! 주님이 정해 주십시오.”


“나는 한 번 열두 제자를 선택해서 가르쳤다. 그런 다음 그들의 우두머리를 골랐고, 그 다음에는 그들에게 은총을 주고, 성령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제 걸어가는 것은 너희가 할 일이다. 너희들이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젖먹이들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적어도 어느 방향으로 저희들이 눈길을 돌려야 할지는 말씀해 주십시오. …”
“이 사람들이 양떼의 선택된 부분들이다.” 하고 말씀하시면서 예수께서는 일흔 두 제자들 중에서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을 휘 둘러 가리키신다.
“저희는 안 됩니다. 주님, 저희는 안돼요. 배반자의 자리가 저희는 무섭습니다.” 하고 그들은 애원하며 말한다.
“라자로로 정하십시다. 주님, 좋습니까?”
예수께서는 잠자코 계시다.
“아리마태아의 요셉은요? 니고데모는요?”
예수께서는 잠자코 계시다.
“그렇구 말구요! 라자로로 정합시다.”
“너희들이 갖고 싶지 않은 그 자리를 완전한 벗에게 주려고 하느냐?” 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주님, 제가 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고 열성당원이 말한다.
“말하여라.”
“라자로는 주님께 대한 사랑으로 이 자리라도 받을 것이고, 그것도 아주 완전하게 그 자리를 지켜서 이 자리가 누구의 것이었는지를 잊게 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러나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그렇게 하는 것이 적당치 않은 것 같습니다. 라자로가 가진 영적인 덕행들은 주님의 양떼 중에 보잘 것 없는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덕행만을 따지지 않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하는 것과 같이 권력과 재산을 추구했다고 신자들이 말하지 않게 그 소박한 사람들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이 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시몬아, 네가 잘 말하였다. 그리고 라자로에 대한 네 우정 때문에 네 입이 봉해지지 않고 공평하게 말할 만큼 더 잘 말하였다.”
“그러면 마루잠을 준미의 열두 번째 사도로 삼으십시다. 어린아이 입니다만.”
“저는 이 소름끼치는 빈 자리를 채우게 받아들이겠습니다만, 자격이 없습니다. 어린아이인 제가 어떻게 어른들에게 말을 하겠어요? 주님,말이 옳은지 말씀해 주셔야 해요.”
“네 말이 옳다. 그러나 서두르지 말아라. 때가 올 것이고, 그 때에는 너희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상히 여길 것이다. 그 때까지는 기도를 하여라. 나는 가겠다. 너희들도 물러가서 기도하여라. 지금은 너희들을 떠나 보낸다. 둘째달 열나흗 날에 모두 베다니아에 가 있도록 준비하여라.”   

                                                     
예수께서는 일어나시고, 모든 제자들은 무릎을 꿇고 얼굴을 풀에 대고 엎드린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강복하시는데, 오실 때에 미리 알리고 앞서 오고 떠나실때에도 맞아들이는 종인 빛이 다시 한 번 예수를 감싸고 빨아들여 보이지 않게 한다.

 

 

 

출처

21. 예수께서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나타나신다 – 평화의 오아시스 (medjugorj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