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시간
오후 4시 - 5시
무덤에 묻히신 예수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비탄
═ 준비기도 ═
주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의 거룩하신 현존 안에 엎드려
사랑이 지극하신 성심께 간청하오니,
저로 하여금 당신께서 24시간 동안 겪으신
고난의 묵상 안으로 들어가게 해 주소서.
그 때 당신께서는 저희에 대한 사랑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까지
당신의 흠숭하올 몸과 지극히 거룩하신 영혼으로
그토록 많은 고난을 받기를 원하셨나이다.
이제 제가 제(24)시간을 묵상하는 동안
도움과 은총과 사랑과 당신을 동정하는 마음과
당신 수난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해 주소서.
제가 묵상하지 못하는 시간들에 대해서는
그 시간들을 묵상하겠다는 의지를 봉헌하오며,
일과에 전념하거나 잠에 빠져드는 모든 시간에도
이 지향으로 그들을 묵상하겠나이다.
오 자비로우신 주님,
저의 이 사랑 깊은 지향을 받아들이시어,
제가 하고자 하는 바대로 거룩하게 이미 실행한 것처럼
저 자신과 많은 이들에게 유익이 되게 해 주소서.
오 제 예수님,
기도를 통하여 당신과 결합하도록
저를 불러 주시니 감사하나이다.
저는 더욱더 당신 마음에 들기 위하여
당신의 생각과 말씀과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제 온 존재가 당신의 뜻과 사랑 안에 녹아들게 하겠나이다.
이제 팔을 벌려 당신을 포옹하며
당신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시작하겠나이다.
(‘준비기도’를 바친 후)
통고의 어머니, 이제 어머니께서는 마지막 희생을, 곧 숨을 거두신 아들 예수님을 무덤에 묻어야 하는 희생을 치를 준비가 되셨으니, 하늘 뜻에 온전히 맡기시고, 예수님을 동반하셔서 어머니의 손으로 무덤에 안장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팔다리와 손발을 가지런히 매만져 정돈한 후 작별 인사와 마지막 입맞춤을 하시려고 하는 순간, 심장을 가슴에서 비틀어 뜯어내는 듯한 심한 아픔을 느끼십니다. 사랑이 어머니를 예수님의 지체에 못박고, 그 사랑과 비통함 때문에, 생명이 없는 아드님과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생명도 막 꺼지려고 합니다.
가엾으신 엄마, 예수님 없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그분은 엄마의 생명, 엄마의 모든 것이 아니십니까?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되는 것이 영원하신 분께서 원하신 뜻입니다. 엄마는 그러니까 뛰어넘을 수 없는 두 개의 힘, 곧 사랑과 하느님의 ‘뜻’ 사이에서 몸부림치십니다.
사랑은 엄마를 못박아 예수님과 떨어질 수 없게 하고, 하느님의 뜻은 희생을 요구하며 엄마를 내리누르고…… 가엾으신 엄마, 어떻게 하시렵니까? 저는 엄마가 너무 애처롭습니다! 하늘의 천사들이여, 어서 와서 예수님의 시신에서 엄마를 일으켜 주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엄마마저 돌아가시겠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숨을 거두신 줄 알았던 엄마의 음성이, 흐느낌 때문에 끊어지곤 하는 떨리는 음성이 제게 들려오니 말입니다.
“아들아, 사랑하는 아들아, 네 거룩한 몸의 이 상처들 위에 엎드려 경배하고 입맞추는 것이 내게 남겨진 유일한 위안이었고, 사실 내 고통을 반감시켜 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위안마저 내놓아야 하겠구나.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니, 나로서는 그분의 뜻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오 아들아, 그렇게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 다오. 그 생각만 해도 힘이 다 빠지고 생명의 숨줄이 끊어지는 것 같다…….
오 아들아, 이 쓰라린 이별을 할 수 있는 힘과 생명을 받도록, 부디 내 온 존재를 네 안에 묻고, 나 대신 너의 생명과 고통과 보속과 네 모든 것을 가지게 해 다오. 그렇다. 너와 나 사이의 이 생명의 교환만이 너와 헤어지는 희생을 감수할 힘을 내게 줄 수 있다.”
괴로움에 싸이신 엄마, 그렇게 결심을 하신 후에도 어머니는 다시 예수님의 지체들을 각각 흠숭하기 시작하십니다. 우선, 예수님의 머리에 엄마의 머리를 대고 입맞추면서 엄마의 생각들을 그분의 머리 속에 넣으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가시들, 그분의 고통들, 그분의 모욕 받은 생각들 및 그분께서 거룩하신 머리로 겪으신 모든 것을 엄마의 것으로 가지십니다.
오, 어머니의 지성으로 예수님의 지성에 생기를 불어넣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라시는지! 그것은 생명으로 생명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예수님의 생각과 가시들을 어머니의 정신 속에 넣으셨으므로 벌써 생기가 돌아오는 것을 느끼십니다.
통고의 어머니, 어머니는 예수님의 생기 없는 눈에 입맞추십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어머니를 볼 수 없게 되셨으니 어머니의 가슴은 부서져 내립니다. 어머니를 보시는 이 거룩한 눈으로 하여, 어머니는 얼마나 자주 황홀을 느끼셨으며 죽음에서 삶으로 일으켜지곤 하셨습니까!
그런데 더 이상 어머니를 못 보는 눈이 되었으니, 어머니는 자신의 죽음을 느낄 수밖에 없으십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예수님의 눈 속에 어머니의 눈을 넣고, 예수님의 눈과 눈물을, 사람들의 죄와 모욕과 배척 앞에서 몹시도 괴로워하시던 그 쓰라린 눈길을 어머니 것으로 가지십니다.
사무치는 고통 중에 계신 엄마, 제가 보니 어머니께서는 예수님의 거룩한 귀에 입맞추십니다. 몇 번이고 예수님을 부르시며 말씀하십니다.
“내 아들아, 보고 싶어 한숨을 쉴 때마다, 극히 작은 숨소리에도 언제나 응답을 주던 네가 내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다니, 있을 수 있는 일이냐? 지금은 울면서 너를 부르고 있건만, 이 소리마저 들리지 않는다는 말이냐? 그렇다. 사랑이야말로 더없이 잔인한 폭군이다!
내게는 네가 내 생명보다 더 귀한 존재였다. 그런데 이제, 이 고통을 치르고도 살아남아야 한단 말이냐? 그러니, 아들아, 너의 귀 속에 내 귀를 남겨 두는 대신, 네 거룩한 귀가 겪은 고통은, 네 귀에 울려 퍼지던 온갖 모욕은 내가 가져야겠다. 너의 고통, 너의 비통만이 내게 생명을 줄 수 있으니 말이다.”
어머니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면서 너무 슬프고 괴로워 말문이 막힌 채 옴짝도 하지 못하십니다. 가엾으신 엄마, 가엾으신 엄마, 저는 엄마가 너무 애처롭고 불쌍합니다! 얼마나 번번이 가혹한 죽음을 겪곤 하시는지!
통고의 어머니, 하느님의 ‘뜻’이 어머니를 내리누르며 이 무덤에서 나갈 것을 요구하시므로, 어머니는 예수님의 거룩한 얼굴을 보시고 입맞추면서 부르짖으십니다.
“사랑스러운 아들아, 네 얼굴이 이게 뭐냐! 어찌 이다지도 상했단 말이냐! 네가 내 아들이요 내 생명이며 내 전부라는 것을 사랑이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알아볼 수도 없을 지경이 되었구나! 타고난 아름다움이 다 망가지고, 불그레하던 뺨은 멍투성이고…… 오 사랑하는 아들아, 빛과 은총을 내뿜던 네 아름다운 얼굴이, 보기만 해도 황홀하던 얼굴이, 이제는 창백한 죽음으로 바뀌고 말았구나.
아들아, 네 모습이 대체 이게 뭐냐! 죄라는 것이 네 거룩한 몸에 얼마나 흉악한 짓을 저질렀느냐! 너를 떠날 수 없는 이 엄마가 네 본래의 아름다움을 되찾게 해 주고 싶구나! 네 얼굴 안에 내 얼굴이 녹아들게 하고, 나는 네 얼굴을, 네가 이 얼굴로 받은 타격과 침과 조롱과 모든 것을 가져야겠다. 그렇다, 아들아, 내가 살아 있기를 원한다면 너의 고통들을 다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죽게 될 것이다.”
어머니는 격한 슬픔에 숨이 막혀 말씀을 멈추십니다. 그리고 마치 숨을 거두신 것처럼 예수님의 얼굴 위에 엎드려 계십니다. 가엾으신 엄마, 저는 엄마가 너무 불쌍합니다! 천사들이여, 와서 어머니를 부축해 주십시오. 한정 없는 슬픔이 홍수처럼 밀어닥쳐 어머니를 잠그고 숨 막히게 합니다. 이제는 생명도 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이 어머니를 잠그는 이 물살을 갈라지게 하면서 어머니에게 생명을 돌려주십니다.
이제 어머니는 예수님의 입으로 옮아가십니다. 이 입에 입맞추면서, 예수님의 입을 그토록 쓰게 했던 쓸개즙의 맛을 입술로 느끼십니다. 그리고 흐느껴 울면서 말씀을 이으십니다.
“내 아들아, 이 엄마에게 마지막 한 마디라도 하려무나! 네 음성을 다시 못 듣는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이냐? 네가 생전에 내게 해 준 모든 말이, 그만큼 많은 화살들과 같이, 슬픔과 사랑에 찬 내 마음에 박혀 있는데, 네가 지금 입을 다물고 있으니 이 화살들이 가리가리 미어진 내 마음 속에서 자꾸 술렁대면서 수없이 많은 죽음을 겪게 하는구나. 마치 억지로라도 네게서 마지막 말을 뽑아내려고 하는 것 같다. 그래도 그것을 받지 못하자 나를 괴롭히면서 이렇게들 말한다.
‘어머니는 이제 그분의 말씀을 들으실 수 없어요. 그 감미로운 음성을, 말씀마다 어머니 안에 낙원을 지어 주시던 그 창조적인 말씀의 아름다운 선율을, 다시는 들으실 수 없다니까요.’ 그렇다, 아들아, 너의 혀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내 혀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이 거룩한 입으로 겪은 모든 것을, 그 쓸개즙의 맛과 불타는 목마름과 보속과 기도를 내게 다오. 그러면 네가 겪은 모든 것 속에서 네 목소리를 들으면서 슬픔을 견디리니, 그렇다, 이 엄마는 네 고통의 힘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심한 고통에 싸여 계신 어머니, 그럼에도 어머니는 이제 서두르십니다. 주위 사람들이 무덤 입구를 막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급히 예수님의 손으로 옮아가서 그 손을 잡고 입맞추고는 가슴에 붙여 안고 그분의 손 안에 어머니의 손을 넣어 그 거룩한 손이 겪은 고통과 상처들을 어머니 것으로 간직하십니다. 그런 후 예수님의 발로 넘어가서 못에 뚫린 잔혹한 상처들을 보시는 한편, 그분의 발안에 어머니의 발을 넣어 그 상처들을 간직하시고, 예수님 대신 죄인들을 뒤쫓아 지옥문에서 잡아채기 위하여 어머니 자신을 바치십니다.
고통에 잠기신 어머니, 이제 어머니는 창에 찔리신 예수님의 성심에 마지막 작별을 고하려고 하십니다. 그러다가 홀연 멈추십니다. 어머니의 모성적인 심장이 마지막 습격을 받은 것입니다. 사랑과 슬픔의 강력한 힘이 가슴에서 심장을 도려내는 것을 느끼신 순간, 심장이 홀로 빠져나가서 예수님의 성심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자신의 심장이 없는 것을 보시고 서둘러 예수님의 거룩한 심장을 어머니 것으로 가지시고, 동시에 사람들에게서 배척받은 예수님의 사랑을, 사람들의 배은으로 좌절된 그분의 열망을, 또 앞으로 평생토록 어머니를 못박게 될 이 성심의 비통과 꿰뚫린 상처를 간직하십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이 성심의 벌어진 상처를 보면서 입맞추시고, 그 피를 핥기도 하십니다. 이윽고 예수님의 생명이 어머니 안에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끼시게 되자, 이 쓰라린 이별을 할 수 있는 힘도 얻으십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예수님을 포옹하신 후, 무덤을 막는 돌로 그분을 가두도록 사람들에게 허락하십니다.
슬픔에 잠기신 어머니, 울면서 간청하오니, 이제부터 저희가 예수님을 못 뵙는 일이 없도록 해 주십시오. 먼저 저를 예수님 안에 넣으시어 예수님의 생명이 제안에 흘러들게 해 주십시오. 티없이 깨끗하시고, 거룩하시고, 은총이 가득하신 어머니께서 예수님 없이 사실 수가 없다면, 나약하고 비천하고 죄투성이인 저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분 없이 대체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슬픔에 잠기신 어머니, 제발 저를 홀로 남겨두지 마시고, 어머니와 함께 있도록 데려가 주십시오.
그러나 우선 제 온 존재를 예수님 안에 넣어 주십시오. 어머니께서 예수님을 어머니 안에 모신 것처럼, 저도 그렇게 예수님만을 모실 수 있도록 제게서 모든 것을 치워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어머니께 주신 모성적 임무를 저에게서부터 시작하시어, 어머니다우신 그 마음으로 저의 이 극심한 가난을 불쌍히 보시고, 어머니다우신 그 손길로 저를 온전히, 전적으로 예수님 안에 넣어 주십시오.
제 정신에 예수님의 생각을 넣어 다른 어떤 생각도 들어오지 않게 하시고, 제 눈에 예수님을 눈을 넣어 제가 그분을 못 뵙는 일이 없게 하시고, 제 귀에 예수님의 귀를 넣어 언제나 그분 말씀을 들으며 무엇을 하든지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을 이루게 하시고, 제 얼굴에 예수님의 얼굴을 넣어 저에 대한 사랑으로 손상된 그분의 얼굴을 보면서 사랑과 연민과 보속을 드리게 하시고, 제 혀에 예수님의 혀를 넣어 그분의 혀로 말하고 기도하며 가르치게 하시고, 제 손에 예수님의 손을 넣어 저의 모든 활동과 일이 그분의 업적과 활동에서 생명을 얻게 하시고, 제 발에 예수님의 발을 넣어 옮기는 걸음마다 모든 사람을 위한 생명과 구원과 힘과 열성이 되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제, 슬픔에 잠기신 어머니, 저로 하여금 예수님의 성심에 입맞추고 그분의 지극히 보배로우신 피를 핥게 해 주십시오. 제 마음에 예수님의 성심을 넣어 주실 때에는 그분의 사랑과 열망과 고통으로 사는 은총도 허락해 주십시오. 끝으로, 싸늘하게 식은 예수님의 오른손을 잡으시어 저에게 마지막 강복을 베푸시도록 해 주십시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비탄
이제 어머니께서는 큰 돌로 무덤을 막게 하십니다. 어머니는 예수님에게서 몸을 떼신 후 무덤에 입맞추십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예수님께 작별을 고하고 무덤을 떠나십니다. 그 한없는 슬픔 때문에 어머니는 돌처럼 마비되다가 얼음처럼 굳어버리십니다.
슬픔에 못박히신 어머니, 어머니와 함께 저도 예수님께 작별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울면서 어머니께 동정심을 표현하고, 어머니의 비탄 중에 함께 있고자 합니다. 곁에 머물러 있으면서, 어머니께서 탄식하시며 심한 고통을 겪으실 때마다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며, 어머니의 모든 눈물을 모아 두겠습니다. 혹시 기절이라도 하시면 제 팔로 부축해 드리겠습니다.
어머니는 이제 이리로 오셨던 길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얼마 못 가서 벌써, 예수님께서 그토록 많은 고난을 받으시고 숨을 거두신 십자가가 나타납니다. 어머니는 달려가서 십자가에 입맞추십니다. 피로 얼룩진 십자가를 보시자, 예수님의 고통들이 마음속에 새록새록 되살아나니, 어머니는 참을 수 없는 슬픔에 휩싸여 흐느껴 울면서 이렇게 외치십니다.
“오 십자가야! 너는 내 아들에게 어찌하여 그리도 잔인했더냐? 네가 그에게 하지 않은 짓은 하나도 없었으니, 내 아들이 네게 무슨 잘못을 범했더란 말이냐? 너는 이 고통스러운 엄마가 목말라하는 아들에게 물 한 모금 주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바짝 마른입에 쓸개즙과 식초를 주었다. 나는 사무치도록 슬픈 내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고, 이 심장 녹은 물이라도 갈증으로 타는 아들의 입술에 대어 주고 싶었건만, 거절당하는 슬픔을 맛보아야 했다.
그렇다, 오 십자가야, 너는 잔인하다. 그러나 내 아들과 맞닿여 거룩하게 축성되었기에, 너는 또한 거룩하다. 네가 내 아들에게 쏟아 부은 그 잔인함을 가련한 사람들에 대한 자비로 바꾸어라. 그리고 내 아들이 네 위에서 겪은 고통으로, 고통 받는 영혼들을 위한 은총과 힘을 간청하여라. 그러면 어떤 사람도 시련과 십자가 때문에 멸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너무나 비싼 대가를 치르고 영혼들을 얻는다. 그것은 천주 성자의 생명을 바쳐야 할 만큼 비싼 대가이니, 나는 ‘공동 구속자’요 어머니로서 그 영혼들을 너에게 묶는다. 오 십자가야.”
어머니께서는 몇 번이나 십자가에 입맞추신 후 걸음을 계속하십니다. 가엾으신 엄마, 저는 엄마가 너무 애처롭고 불쌍합니다! 걸음을 옮기실 때마다 더욱 크고 더욱 쓰라린 새로운 슬픔들이 치밀어 오르고, 마치 드센 물살처럼 어머니를 짓눌러 그 속에 가라앉게 합니다. 그러니 어머니는 순간마다 죽음을 겪곤 하십니다. 얼마를 더 걸었을까, 이번에는 오늘 아침, 기진맥진한 상태로 피를 줄줄 흘리며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만나신 지점에 이르십니다.
머리에 쓰신 가시다발이 십자가에 부딪히며 점점 더 파고들어 몸을 움직이실 때마다 죽음의 고통을 겪으신 예수님은, 엄마와 눈이 마주치시자 동정을 구하셨건만, 병사들이 엄마와 예수님에게서 이 위안마저 빼앗으려고 예수님을 떠미는 바람에 넘어지셨고 그 때문에 새로운 피를 쏟으셨습니다. 이제 그 피를 빨아들인 땅을 보신 어머니는 꿇어 엎드려 거기에 입맞추며 말씀하십니다.
“내 천사들이여, 와서 이 피를 지켜 단 한 방울도 짓밟히거나 모독되지 않게 해 다오.”
통고의 어머니, 예수님의 피를 통해 죽음의 고통을 겪고 계시니, 제 손으로 엄마를 일으키고 위로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걸어가시면서 새로운 고통을 만나십니다. 예수님의 핏자국이 곳곳에 흩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걸음을 재촉하시고, 다락방으로 들어가셔서 나오시지 않습니다. 저도 다락방에, 예수 성심의 다락방에 들어갑니다. 이 성심 안에서 어머니 슬하로 다가가서 이리도 쓰라린 비탄의 시간을 함께 있겠습니다. 너무나 큰 고통 중에 계신 엄마를 홀로 계시게 할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탄에 잠기신 어머니, 엄마의 이 아기를 보십시오. 저는 너무 작아서 혼자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습니다. 혼자서 살 수 없을 뿐더러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저를 엄마의 무릎에 올려놓고 꼭 껴안아 주시며 돌보아 주소서. 엄마의 이끄심과 도움과 부축이 필요합니다. 저의 비참을 보시고 이 상처에 눈물을 흘려주소서. 제 마음이 흩어지면 엄마다우신 가슴에 껴안아 주시어, 예수님의 생명이 제 안에 다시 돌아오게 하소서.
그런데, 이와 같이 기도하다 말고 저는 엄마의 쓰디쓴 비탄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어집니다. 머리를 움직이면 가시들이 더 깊이 박히는 고통을 겪으시는 것을 보자, 제가 꿰뚫리는 느낌입니다. 이는 아까 무덤에서 예수님의 머리를 흠숭하며 간직하신 가시들이니, 이 가시들이 저희가 생각으로 짓는 모든 죄들과 더불어 엄마의 눈마저 찔러, 피 섞인 눈물이 흐르게 합니다.
그렇게 우시면서 어머니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시고, 눈앞을 스쳐가는 인간의 모든 죄를 보십니다. 오, 이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워 하시는지! 게다가, 예수님께서 어떤 고통을 겪으셨는지를 속속들이 느끼십니다. 그분 자신의 고통을 어머니 것으로 취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고통은 그 다음의 고통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귀를 기울이면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들만이 멍멍하도록 울릴 뿐입니다. 온갖 욕설들이 귀에서 마음속으로 들어와 칼날처럼 찔러댑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후렴을 읊듯이 거듭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들아, 얼마나 고통스러웠느냐!”
비탄에 잠기신 엄마, 엄마가 너무 애처롭고 불쌍합니다! 눈물과 피로 젖은 얼굴을 닦아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주춤 뒤로 물러섭니다. 엄마의 얼굴이 온통 멍투성이어서 알아볼 수도 없을 뿐더러, 죽음의 창백한 그늘이 서려 있기 때문입니다. 아, 알았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받으신 학대를 엄마가 겪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고통도 엄마의 것으로 취하셨으니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입술을 움직이며 기도하시거나 불타는 가슴에서 한숨이 터져 나올 때에, 엄마는 예수님의 갈증으로 타는 입술과 그 쓰디쓴 숨결을 그대로 느끼십니다.
가엾으신 엄마, 엄마가 너무 애처롭고 불쌍합니다! 고통이 갈수록 더 증가하면서 저희끼리 손을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손을 잡는 순간, 저는 못으로 뚫린 상처들을 봅니다. 이 손으로 어머니는 살인과 배반과 독성죄들을, 그리고 반복되는 타격으로 상처를 넓히며 더 아프게 하는 온갖 악행들을 보는 고통도 겪으십니다.
저는 엄마가 너무 애처롭고 불쌍합니다! 발마저 못박히는 고통을 겪고 계시니, 참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신 어머니십니다. 뿐만 아니라, 지옥으로 가고 있는 영혼들의 악한 발걸음들로 말미암아 살이 찢어지는 고통도 함께 받으시면서, 그들이 영원한 불구덩이 속에 떨어지지 않도록 뒤따라 달려가십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도 아닙니다. 오 못박히신 어머니! 어머니의 모든 고통이 함께 모여 마음속에 울려 퍼지면서 일곱 개가 아니라 수천 수 만개의 칼이 되어 찔러댑니다. 특히, 모든 사람의 마음과 그 심장 박동을 싸잡아 안고 계신 예수님의 성심을 어머니 안에 지니신 이후부터 그렇습니다. 이 거룩한 심장은 고동칠 때마다 “영혼들!”과 “사랑!”을 외치십니다. “영혼들!”을 외칠 때는 어머니의 심장 속에 온갖 죄들이 넘치도록 흘러들어 숨을 거두실 지경이고, “사랑”을 외칠 때는 생명이 돌아오는 것을 느끼십니다. 그러므로 어머니는 죽음과 삶의 끊임없는 교체를 겪으십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어머니, 이렇듯 고통 중에 계신 어머니를 뵈니 너무 애처롭고 불쌍합니다! 이루 형용할 할 수 없는 고통들이 아닙니까! 저는 제 존재가 단지 혀와 목소리로만 바뀌어 따뜻한 동정심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 엄청난 고통들 앞에서 제 동정심이란 얼마나 하찮은 것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저는 천사들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을 부르며, 그분들의 조화와 기쁨과 아름다움으로 어머니를 에워싸고 위로하며 그 격심한 고통을 동정해 주시기를 빕니다. 또한 그분들의 팔로 어머니를 부축하시고, 그 모든 고통을 사랑으로 바꾸어 주시기를 빕니다.
비탄에 잠기신 엄마, 이제 저는 모든 사람의 이름으로, 어머니께서 겪으신 모든 고통에 감사 드립니다. 이 쓰디쓴 비탄에 의지하여 비오니, 제가 죽을 때에 어머니께서 오셔서 도와주십시오. 제 영혼이 숱한 근심과 두려움에 싸인 채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고 혼자 있을 때에, 제가 일생 동안 자주 어머니의 동반자가 된 것처럼, 그 때에는 어머니께서 저의 동반자가 되어 주십시오. 오셔서 저를 도와주시고, 제 곁에 계시면서 원수들을 내쫓아 주십시오.
어머니의 눈물로 제 영혼을 씻어 주시고, 예수님의 피로 감싸 주시며, 예수님의 공로로 옷 입혀 주십시오. 어머니의 비탄과 예수님의 모든 고통과 업적으로 저를 아름답게 꾸며 주십시오. 예수님의 고통과 어머니의 비탄으로 제게서 모든 죄를 몰아내시고 그 모든 죄의 용서를 얻게 하시며, 제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에 어머니의 팔에 받아 안고 망토로 감싸서 원수들이 못 보게 숨겨 주십시오. 그렇게 저를 안고 천국으로 날아오르시어, 예수님의 팔에 안겨 주십시오. 사랑하올 엄마, 꼭 그렇게 해 주시겠지요?
또 청하오니, 제가 오늘 어머니와 함께 있는 것처럼, 이 순간에 임종 중인 모든 사람과 함께 계셔 주십시오. 그들 모두를 돌보아 주십시오. 이 마지막 순간은 큰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니, 그 누구에게도 어머니의 모성적인 임무를 거절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제 엄마를 떠나기 전에 한 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어머니께 청하오니, 저를 예수님의 성심 안에 넣어 주십시오. 그리고 엄마, 오 슬픔에 잠기신 엄마, 엄마는 저의 파수꾼이 되시어, 예수님께서 당신 성심에서 저를 내치지 않게 해 주시고, 제가 혹시 떠나고 싶어 한다 하더라도 그러지 못하도록 막아 주십시오. 이제 엄마의 손에 입맞추며 청하오니, 저를 축복해 주십시오.
성찰과 실천
예수님은 무덤에 묻히시고 큰 돌이 그 입구를 막고 있으니, 그분의 어머니는 이제 그분을 보지 못하신다. 이와 같이 우리는 사람들의 눈길에서 숨어 있는가? 모든 사람이 우리를 잊어도 개의치 않는가? 모든 일에 충실하도록 우리를 지켜 주는 이 거룩한 무심(無心)으로 사물들을 대하고 있는가? 예수님께 완전히 버림받았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우리를 끊임없이 그분께로 데려가는 이 거룩한 무심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는가? 우리는 항구한가? 그래서 그분을 우리에게로 끌어당기는 감미로운 사슬을 이루고 있는가?
우리의 눈길을 예수님의 눈길 안에 묻고,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만을 보고자 하는가? 우리의 음성을 예수님의 음성 안에 묻고 있는가? 우리의 발걸음을 예수님의 발걸음 안에 묻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우리의 발자국 대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남기는가? 끝으로, 우리의 마음을 예수님의 마음 안에 묻어, 그분의 마음이 사랑하고 열망하시는 대로 우리도 사랑하고 열망할 수 있게 하는가?
☨☨☨
엄마, 예수님께서 제 영혼의 선익을 위하여 숨어 계실 때에, 엄마가 그분을 보지 못하게 되셨을 때 받으신 은총을 제게 주시어, 무덤에 누워 계신 그분께 엄마가 드리신 모든 영광을 저도 드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오 예수님, 저는 당신 자신의 음성으로 기도하고 싶습니다. 당신 음성이 하늘에 사무치고 모든 이의 음성 안에 울려 퍼지는 것과 같이 제 음성도 그렇게 되게 해 주십시오. 당신 음성이 영예를 받으시도록 제 음성을 하늘에 사무치게 하시고, 당신 자신의 말씀으로 당신께 영광과 사랑을 드리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 제 심장이 뛰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 심장의 고동으로 뛰게 해 주셔야 만족하겠습니다. 그래야 당신 심장의 고동으로,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것처럼 저도 사랑하고, 모든 사람의 사랑을 당신께 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오직 “사랑! 사랑!”이라는 하나의 외침만이 있게 될 것입니다.
오 예수님, 제가 행하는 모든 일에 당신의 권능과 사랑과 영광의 도장을 찍으시어, 모든 영예를 받으소서.
동정 마리아님, 거룩하신 아드님과 함께, 저희에게 축복을 내려 주소서.
(Nos cum Prole pia, benedicat Virgo Maria.)
(이어서 ‘감사기도’를 바친다.)
═ 감사기도 ═
사랑하올 주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께서는 수난의 이 ‘시간’에
당신과 함께 있도록 저를 불러 주셨으니,
번민과 비탄에 잠겨 기도하시며 대속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는 모습을 뵌 것 같나이다.
당신께서는 사랑에 찬 감동적인 음성으로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간청하셨으니,
저도 당신을 따라 그 모든 것을 하고자 했나이다.
이제 당신을 떠나 저의 일과로 돌아가면서
감사와 찬미를 드림이 마땅한 일로 생각되나이다.
그렇습니다, 오 예수님,
저와 모든 사람을 위해서 그 모든 고난을 받으셨으니
천만번 감사하고 또 찬미하나이다.
당신께서 흘리신 피 방울방울마다
당신의 숨과 성심의 고동마다
모든 걸음과 말씀과 눈길마다
참아 받으신 모든 쓰라림과 모욕마다
감사와 찬미를 드리나이다.
오 제 예수님,
그 모든 것에 대하여
저의 ‘감사합니다.’와 ‘찬미합니다.’를
도장처럼 찍어 드리고자 하나이다.
오 예수님,
저의 온 존재가 당신께로 끊임없이 흘러드는
감사와 찬미의 강물이 되게 하시어,
당신의 풍부한 은총과 축복을
저 자신과 모든 이에게 끌어당기게 해 주소서.
그렇습니다. 오 예수님,
저를 당신 가슴에 껴안아 주시고,
제 존재의 작디작은 부분마다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손으로
‘네게 강복한다’ 도장을 찍어 주소서.
그러면 제게서는 오로지 당신을 향한
끊임없는 찬미가만이 흘러나올 수 있겠나이다.
그러므로 저는 모든 것 속에서 당신을 따르려고
저 자신을 당신께 맡기나이다.
저의 생각을 당신 안에 두어
원수들에게서 당신을 지키게 하고,
저의 숨을 당신 안에 두어
당신을 동반하는 행렬이 되게 하고,
저의 심장 고동을 당신 안에 두어
줄곧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게 하면서
다른 이들이 드리지 않는 사랑을 보상하겠나이다.
또한 저의 피를 방울방울 보속의 제물로
원수들이 앗아가곤 하는 영예와 존경을 당신께 되돌려드리며,
제 온 존재를 바쳐 당신을 수호하겠나이다.
오 저의 감미로운 사랑이시여,
일과로 돌아가 있는 동안에도
저는 당신 성심 안에 머물러 있겠나이다.
성심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렵사오니,
당신께서 저를 당신 안에 간직해 주시리라 믿나이다.
그러면 우리의 심장 고동이 서로 전해지고 합쳐지면서
저에게 생명과 사랑을 주고
떨어질 수 없도록 긴밀한 당신과의 일치를 주겠나이다.
저의 예수님,
제가 당신에게서 달아나려고 하는 기색을 보시면
제 안에서 당신 성심의 고동이 빨라지게 하소서.
당신 손으로 저를 더 세게 껴안아 주시고
당신 눈으로 저를 보시며 불화살을 쏘아 주시면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심을 느끼면서
당신과의 합일 속으로 이끌려갈 수 있겠나이다.
오 제 예수님,
저에게 거룩한 사랑의 입맞춤과 축복을 주소서.
저는 더없이 감미로운 당신 성심에 입맞추며
당신 안에 머물러 있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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