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은 아들이 아빠에게 하는 것처럼 하느님과 대화하라고 가르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6월 3일 수요 일반알현에서 기도에 관한 교리 교육 여정을 이어가며, 신앙 선조인 아브라함의 기도에 대해 설명했다. 교황은 아브라함의 기도가 토론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주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순응을 특징으로 하는 주님과의 대화였다고 설명했다.
번역 김호열 신부
기도에 대한 교리 교육: 5. 아브라함의 기도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아브라함의 생애에 갑자기 울리는 한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터무니없는 것임을 알고 있는 여정을 시작하라고 부르시는 목소리입니다. 새로운 미래, 색다른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자 조국에서 떠나고, 자기 가족의 뿌리에서 떠나라고 부추기는 목소리입니다. 이 모든 것은 약속에 기초한 것입니다. 오직 그 약속을 신뢰하는 것만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약속을 신뢰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신뢰했습니다.
성경은 신앙 선조인 아브라함의 과거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 정황 논리에 따르면 그가 다른 신들을 숭배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아마도 지혜로운 사람이었을 것이고, 하늘과 별들을 관찰하는데 익숙했을 것입니다. 사실 주님은 그에게 그의 후손들이 하늘에 떠있는 별들만큼이나 많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떠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말씀을 신뢰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의 출발로 인해 하느님과의 관계를 인식하는 새로운 방법이 생겨납니다. 이러한 까닭에, 신앙 선조인 아브라함이 유다교와 그리스도교 및 이슬람교의 위대한 영적 전통 안에서, 완벽한 하느님의 사람으로, 또한 자신의 의지로는 감당하기 어렵고 이해할 수 없을 지라도 하느님께 순종할 줄 아는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말씀의 사람’입니다. 하느님이 말씀하실 때, 인간은 그 말씀의 수용자가 되고, 인간의 삶은 말씀이 육화되기를 요구하는 곳이 됩니다. 이는 인간의 신앙 여정 안에서의 크나큰 새로움입니다. 믿는 이의 삶은 소명, 곧 부르심이며, 약속이 성취되는 장소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새로움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세상에서 단순히 불가사의함의 무게로 움직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언젠가 이루어질 약속의 힘으로 움직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는 믿었으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났습니다(히브 11,8 참조). 그러나 그는 하느님의 약속을 신뢰했습니다.
창세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어떻게 자신의 여정에 주기적으로 나타난 하느님 말씀에 대한 변함없는 충실성 안에서 기도하는 삶을 살았는지 발견하게 됩니다. 요약하면, 아브라함의 삶에서 믿음은 역사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역사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아브라함은 그의 삶과 모범을 통해 믿음이 역사가 되는 이 여정을, 이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하느님은 더 이상 멀리 계신 분,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존재처럼 우주 현상 안에서만 볼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은 나의 발걸음을 인도하시고, 나를 버리지 않으시는, 나의 개인적인 역사의 하느님, 곧 “나의 하느님”이 됩니다. 나의 일상의 하느님, 나의 모험의 동반자, 섭리이신 하느님이십니다. 저는 제 자신과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이러한 체험이 있습니까? “나의 하느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 나의 개인적인 역사의 하느님, 나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느님, 나를 버리지 않으시는 하느님, 나의 일상의 하느님이십니까? 우리는 이러한 체험이 있습니까? 잠깐 생각해 봅시다.
아브라함의 이 체험은 또한 영성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텍스트 중 하나인 블레즈 파스칼의 저서 『회고록』(Memoriale)이 다루기도 했습니다. 이 저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철학자들과 학자들의 하느님이 아닌,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가슴 깊이 느껴지는) 확신, 감성, 기쁨, 평화.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이 회고록은 파스칼이 작은 양피지에 써서 윗옷 안쪽에 붙이고 다녔으며, 파스칼이 죽은 후에 발견되었습니다. 이 회고록은 파스칼 자신과 같은 학자가 하느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는 지성적인 생각을 말하는 게 아니라, 생생하고 풍부한 체험을 일으킨 하느님 현존에 관해 말하는 것입니다. 파스칼은 자신이 그와 같은 현실을 느끼고, 마침내 그 현실을 체험한 순간을 정확하게 기록했습니다. 바로 1654년 11월 23일 저녁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추상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하느님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가 체험한 하느님은) 인격적인 하느님, 부르심의 하느님,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요셉의 하느님, 확실하신 하느님, 감성의 하느님, 기쁨의 하느님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는 먼저 행동으로 표현된다. 말이 없는 사람 아브라함은 머무는 곳마다 주님께 제단을 쌓는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570항」. 아브라함은 성전을 짓지 않고, 하느님의 지나가심을 기억하는 돌의 길을 흩뿌립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은) 세 손님의 모습으로 그를 방문하여 아들 이사악의 탄생을 알렸을 때 그가 아내 사라와 함께 친절하게 맞이했던 놀라우신 하느님이십니다(창세 18,1-15 참조). 당시 아브라함의 나이는 백 살이었고, 그의 아내는 구십 살 정도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믿고, 신뢰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내는 잉태했습니다. 그 나이에 말입니다! 그러한 분이 바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하느님과 가족처럼 가까워졌습니다. 그는 하느님과 논쟁할 수도 있었지만, 항상 하느님께 충실했습니다. 하느님과 대화하고 토론했습니다. 하느님이 그에게 유일한 상속자인 아들 이사악을 희생시키라고 요구하는 최고의 시련을 받을 때까지 충실했습니다. 그 순간 아브라함은 별빛 없는 하늘 아래에서 손을 더듬어 가며 밤을 보내는 것과 같은, 극적인 믿음을 체험합니다. 이처럼 어둠 속에서도 믿음을 가지고 걷는 일은 우리에게도 종종 일어납니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이 진정으로 온전하게 순응한 모습을 보셨기 때문에 (이사악을) 희생시킬 준비가 되어 있는 아브라함의 손을 멈추게 하셨습니다(창세 22,1-19 참조).
형제자매 여러분, 아브라함에게서 배웁시다.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법을 배웁시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걸어가고, 토론에 이르도록 대화합시다. 우리는 하느님과 토론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단처럼 보이는 것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저는 자주 사람들이 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저에게 이러저러한 일이 일어났고, 그래서 저는 하느님께 화가 났습니다.” “당신은 하느님에게 화를 낼 용기가 있습니까?” “네, 저는 화가 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의 한 형태입니다.” 왜냐하면 아들만이 아빠에게 화를 낼 수 있고, 다시 아빠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기도하고, 대화하고, 토론하되, 항상 하느님의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것을 아브라함에게서 배웁시다. 아들이 아빠에게 하는 것처럼 하느님과 대화하는 방법을 배웁시다. 하느님 말씀을 듣고, 응답하고, 토론하는 것을 배웁시다. 하지만 아들이 아빠에게 하는 것처럼 솔직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기도하라고 우리를 가르칩니다. 고맙습니다.
6월 3일 2020,21:08
바티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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