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시

II 47. 예수께서 유다 때문에 울으시고, 열성당원 시몬이 예수를 위로한다

Skyblue fiat 2020. 3. 12. 04:48

 

 

예수께서 계신 들판은 기름지다. 훌륭한 과수원들과 금빛과 루비빛을 띠기 시작하는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눈부신 포도밭들이 있다. 예수께서는 어떤 과수원에 앉으셔서 농부가 드린 과일을 드신다. 아마 조금 전에 예수께서 말씀을 하신 모양이다. 그러기에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선생님의 목마름을 풀어 드려서 기쁩니다. 제자분이 선생님의 지혜에 대해 저희들에게 말을 했었습니다만,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는 감짝 놀랐습니다. 저희는 성도(聖都) 가까이 살기 때문에 과일과 야채를 팔러 자주 갑니다. 그 때에는 성전에로 올라가서 선생님들의 말을 듣습니다. 그렇지만 이 사람들은 선생님처럼 말하려면 어림도 없습니다. 성전에서 돌아올 때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어?’ 하고. 그런데 선생님은 그와 반대입니다 ! 아이고 ! 마음이 가벼워진 것 같습니다. 어른으로 있으면서 다시 어린애가 되는 마음 같습니다. 저는 무식해서‥‥ 제 생각을 설명하지 못하겠습니다. 자, 이렇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분명 알아들으시지요.”


 “그렇소, 알아듣소. 어른 특유의 성실함과 사물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당신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난 다음에는 당신 마음 속에 순박함과 믿음과 깨끗함이 다시 살아나서 다시 어린아이가 되는 것 같다고 말하려는거지요. 죄도 없고 악의도 없으면서, 당신이 엄마의 손을 잡고 처음으로 성전에 올라가 엄마의 무릎 위에 앉아 기도를 드리던 때와 같은 믿음을 가진 어린아이가 된다는 말이지요. 당신이 말하려는 것은 이런 것이었소.”

 


 “예,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 사람은 낮은 담에 걸터앉아 맛있는 무화과를 먹고 있는 요한과 시몬과 유다에게 “당신들은 늘 선생님을 모시고 있으니 행복하십니다” 하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맺는다. “저도 선생님을 하룻밤 환대한 것이 기쁩니다. 제 집에는 선생님의 축복이 들어왔으니까 이제는 제 집에 불행이 올까 염려는 하지 않겠습니다.”
예수께서는 대답하신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율법과 내 가르침을 충실히 지키면 축복이 효력이 있고 지속되오. 반대의 경우에는 은총이 사라져요. 그리고 이것은 당연하오. 그것은 하느님께서 태양과 공기를 착한 사람들이나 악한 사람들에게 모두 골고루 주셔서 그들을 살게 하시고, 또 착한 사람이면 더 착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악한 사람이면 회개하게 하신다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편 아버지의 보호가 악한 사람에게는 벌이 되게 하시어 마음의 고통으로 인하여 다시 하느님을 기억하게 하신다는 것도 당연하기 때문이오.”
“고통이 언제나 악은 아닙니까?”

 


 “아니오.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악이지마는, 인간적인 것을 초월하는 관점에서는 선이요. 고통은 실망하지 않고 반항하지도 않고 참아받는 의인들의 공로를 증가시키고, 그들의 인종(忍從)으로 자기 자신을 그들 자신의 과오와 세상 사람들의 잘못을 위한 속죄의 제물로 바치면서 그 고통을 바치는 의인들의 공로를 더해주오. 고통은 의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속죄가 되는 것이오.”


 “고통을 당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 하고 농부가 말한다. 어른 아이 합해서 열명쯤 되는 집안 식구들이 농부 있는 데로 와 있었다.
“사람이 그것을 어렵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나도 압니다. 그래서 사람이 고통을 얼마나 어렵게 생각했을까 하는 것을 아시고 아버지께서는 당신 아들들에게 고통을 주지 않으셨던 것이지요. 고통은 죄에 따라 온 것이오. 그러나 고통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오래 가오? 사람의 일생에 얼마 안되는 시간이지요. 사람의 일생 동안 계속한다하더라도 여전히 얼마 안되는 시간이지요. 이제 당신들에게 말하겠지마는 항상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 잠깐동안 고통을 당하는 것이 낫지 않아요? 연옥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 여기서 당하는 것이 낫지 않아요? 생각해 보시오, 거기에서는 시간이 천배가 됩니다. 오 ! 정말 잘들어 두시오. 고통을 저주할 것이 아니라 축복을 해야 할 것이고, 고통을 ‘은총’이라고 부르고 ‘동정’ 이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아이고 ! 선생님의 말씀 ! 저희들은 그 말씀을 여름에 시원한 항아리에서 따라서 마시는 꿀물로 목마름을 푸는 사람과 같이 받아들입니다. 선생님, 벌써 내일 떠나십니까?”
“그렇소, 내일 떠나오. 그러나 또 와서 당신이 나와 내 친구들인 이 사람들에게 베풀어준 모든 것에 대하여 감사를 하고, 또 빵과 휴식을 청하겠소.”
“선생님, 여기 오시면 그런 것은 언제나 드리겠습니다.”
어떤 남자가 야채를 실은 나귀 새끼를 끌고 온다.


“자, 여기 왔습니다. 선생님의 친구분이 가기를 원하면‥‥ 제 아들이 안식일 전날 큰 장을 보려고 예루살렘에 갑니다.”
“요한아, 가거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알지? 나흘 후에 다시 보자. 내 평화가 너와 함께 있기를.” 예수께서는 요한을 껴안고 입맞춤하신다. 시몬도 그렇게 한다.
“선생님” 하고 유다가 말한다. “선생님이 허락하시면, 저도 요한과 같이 가겠습니다. 친구 한 사람을 꼭 보고 싶습니다. 그 친구는 안식일마다 예루살렘에 있습니다. 저는 요한과 같이 벳파게까지 가고. 그 다음에는 제 일을 보러 계속 가겠습니다‥‥그 사람은 제 집안의 친구입니다‥‥아시겠어요?‥‥ 제 어머니는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네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선생님을 떠나는 것이 슬픕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나흘 뒤에는 다시 선생님을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귀찮아하실 정도로 충실하겠습니다.”
“자, 가거라. 나흘 후 새벽 동이 틀 때 물고기 성문에 와 있어라, 잘 가라. 그리고 하느님께서 너를 지켜 주시기 바란다.”
유다는 선생님께 입맞춤하고 먼지가 많은 길로 종종걸음을 치는 나귀 새끼곁으로 간다.


조용해지는 들에 어둠이 내리깔리기 시작한다. 시몬은 밭고랑에 물을 주는 원예농업을 하는 농부들이 일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예수께서는 얼마 동안 계시던 곳에 그대로 계시다가 일어나셔서, 집뒤로 돌아 과수원 안으로 들어가시어 혼자가 되신다. 나무가 우거진 작은 숲까지 가시는데, 그곳에는 굵은 석류나무들이 있고, 그 앞으로는 별로 키가 크지 않은 덤불로 경계가 지어져 있는데, 구즈베리(goosberry) 나무들 같다. 그러나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 덤불에는 열매가 없고 그 잎도 잘 모르겠다. 예수께서는 그 뒤로 몸을 숨기신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신다‥‥그런 다음 몸을 굽혀 얼굴을 땅바닥 풀 위에 대시고 우신다. 가끔 깊은 한숨을 쉬시는 것으로 그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흐느낌은 없지만, 몹시 슬퍼하는 낙담한 울음이다. 예수께서 오랫동안 그러한 자세로 계신다. 이제는 황혼의 약한 빛이다. 그러나 아직 물건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둡지는 않다. 그런데 이 약한 빛 속에서 구즈베리나무 위로 시몬의 보기 흉하지만 성실한 얼굴이 보인다. 그는 둘러보며 찾다가 짙은 청색 겉옷에 완전히 덮이신 선생님의 웅크린 형태를 알아본다. 그 겉옷으로 인하여 예수의 형태는 어두운 지면에서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금발의 머리와 손목에 의지하고 머리 위로 올라온 기도의 자세로 합장한 손이 겨우 보일 뿐이다. 시몬은 어지간히 소눈 같은 눈으로 바라본다. 그는 예수께서 한숨을 쉬시는 것으로 슬퍼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두껍고 저의 자주빛이 도는 입을 벌려 “선생님” 하고 부른다.
예수께서는 얼굴을 쳐드신다.
“선생님, 울고 계시군요. 왜 우십니까? 선생님께로 가도 되겠습니까?” 시몬의 얼굴은 놀람과 마음의 고통을 나타낸다. 시몬은 정말로 추남이다. 짙은 올리브빛깔을 한 보기 흉한 얼굴모습에다가 그의 병이 남긴 푸르스름하고 깊은 흉터자국이 보태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눈길이 하도 선량해서 그의 추함이 사라질 정도이다.
“내 친한 벗 시몬아 오너라.”
예수께서 풀 위에 앉으셨고, 시몬도 예수 곁에 앉는다.
“선생님, 왜 슬퍼하십니까? 저는 요한이 아니라. 요한이 선생님께 드리는 모든 것을 드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 안에는 선생님께 어떤 위안이라도 드리겠다는 욕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 가지 고통밖에 가지고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선생님께 그렇게 해 드릴 능력이 없다는 고통입니다. 말씀해주십시오. 선생님이 저와 같이 계셔야 하는 것이 괴로우실 정도로 제가 요 며칠동안 선생님을 화나시게 해드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다. 너는 내가 너를 본 그 순간부터 나를 화나게 한 적이 결코 없다. 그리고 너로 인하여 괴로움을 당할 이유는 결코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신뢰를 받을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 나이로 보아 거의 선생님의 아버지뻘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아들을 하나 가지기를 항상 몹시 바랐습니다‥‥그러니 선생님이 제 아들이신 것처럼 애무하게 해 주시고, 그렇게 괴로워하실 때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을 하게 가만두십시오. 그것은 선생님이 많은 일을 잊기 위해 어머니가 필요하시기 때문입니다‥‥.”
“오 ! 그렇다. 내 어머니가 필요하다 !”
“그러면 선생님이 어머니 곁에서 위로를 받으실 수 있을 때까지 선생님을 위로해 드리는 기쁨을 종에게 허락하십시오. 선생님은 선생님을 화나게 한 어떤 사람이 있기 때문에 우시는 거지요.여러 날 전부터 선생님의 얼굴은 구름에 가려질 때의 해와 같습니다. 선생님은 인자하시기 때문에 선생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들이 미워하지 않도록 선생님의 고통을 숨기십니다. 그러나 그 마음의 상처는 선생님을 괴롭히고 불쾌감을 가지시게 합니다. 그렇지만 주님, 왜 그 고통의 근원을 멀리 쫓아버리지 않으십니까?”
“그것은 인간적으로는 무익한 일이고, 또 사랑에 위배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 ! 선생님은 제가 유다에 대해서 말씀드린다는 것을 아셨군요 ! 그 사람 때문에 고통을 당하시는 것이지요. 어떻게 진리이신 선생님이 저 거짓말쟁이를 용납하실 수 있습니까? 그 사람은 얼굴빛도 변하지 않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 사람은 여우보다도 더 교활하고 바위보다도 더 무감각한 사람입니다. 이제 그 사람이 떠나갔습니다. 뭣하러 갔습니까? 그 사람이 친구가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선생님을 혼자 두고 가는 것은 괴롭습니다만, 그 사람을 따라가서 보고 싶습니다‥‥오 ! 우리 예수님 ! 저 사람을 멀리하십시오. 주님.”
“무익한 일이다. 와야 할 것은 오고야 말 것이다.”
“무슨 말씀입니까?”
“특별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선생님이 그 사람을 기꺼이 가게 내버려두신 것은‥‥ 예리고에서 그가 취한 태도로 인해 선생님께 혐오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지요.”
“시몬아,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와야 할것은 오고야 말 것이다. 그리고 유다도 그 미래에 속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도 이 미래에 있어야한다 !”
“그렇지. 요한의 말로는 시몬 베드로는 더없이 솔직하고 더없이 격렬한 사람이라는데‥‥ 베드로가 저 사람을 용납하겠습니까?”
베드로도 그를 용납해야 한다. 베드로도 맡아야 할 역할이 있는데 유다는 베드로가 그의 몫을 짜야 하는 씨실이 된다. 유다는 베드로가 다른 어떤 사람에게서보다도 더 많은 교양을 쌓게 될 학교이다. 요한 같은 사람들과 좋게 지내고 그와 비슷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은 바보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유다 같은 사람과 좋게 지내고 그와 같은 정신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 사람들의 의사가 되고 사제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유다는 너희들의 산 교훈이다.”
“저희들이요?”
“그렇다 너희들의. 선생은 이 세상에 영원히 있지 않는다. 선생은 가장 딱딱한 빵을 먹고 가장 떫은 포도주를 마신 다음에 떠날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남아서 내 후계자가 될 것이다‥‥그러니까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세상은 선생과 더불어 끝나지 않고, 그 후 그리스도가 최후로 돌아올 때까지, 사람들의 최후의 심판때까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 잘 들어두어라. 요한, 베드로, 시몬, 야고보,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토마 같은 사람 한 사람에 대하여 유다 같은 사람이 적어도 일곱 명은 있을 것이다. 그보다도 더, 더 많이 !‥‥”
시몬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입을 다문다. 그러다가 이렇게 말한다. “목자들은 착합니다. 유다는 그 사람들을 업신여기지만, 저는 그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나도 그들을 사랑하고 칭찬한다.”
“선생님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는 그래야 하는 것처럼 그 사람들은 소박한 사람들입니다.”
“유다는 도시에서 살았다.”
“그것이 그 사람의 유일한 구실입니다. 그러나 도시에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그래도‥‥ 언제 제 친구의 집에 가시겠습니까?”
“내일 가자. 시몬아. 나와 너 두 사람만 있기 때문에 아주 기꺼이 가겠다. 그 사람은 교양이 있고 또 너와 같이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 생각된다.”
“그 사람은 고통을 많이 당하고 있습니다‥‥육체적으로도 그렇고 마음 속으로는 더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만일 그 사람이 그의 슬픔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으면, 선생님은 그의 집에 대해 질문을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겠다. 나는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왔다. 그러나 속내 이야기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슬픔에는 그 나름대로의 조심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저는 그 조심성을 존중하지 않았습니다‥‥하지만 저는 많은 마음 고통을 느꼈습니다‥‥.”
“너는 내 친구이고 벌써 내 고통을 확실히 꼬집어 말했었다. 네 친구에게는 내가 알지 못하는 선생이다. 그가 나를 알게 되면‥‥ 그때에는‥‥ 가자. 밤이 되었다. 피로한 우리 주인들을 기다리게 하지 말자. 내일 새벽에 베다니아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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