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뜻의 오늘

2017년 4월 22일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Skyblue fiat 2017. 4. 22. 15:05

2017년 4월 22일
부활 팔일 축제 내 토요일

22토 (백) 부활 팔일 축제 내 토요일


입당송 시편 105(104),43 참조
주님이 당신 백성을 기쁨 속에, 뽑힌 이들을 환호 속에 이끌어 내셨네. 알렐루야.
< 대영광송>

 

본기도
하느님, 풍성한 은총을 베푸시어 믿는 이들이 불어나게 하시니, 하느님께서 뽑으신 이 백성을 자비로이 굽어보시어, 세례성사로 새로 난 저희가 불사불멸의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사도들을 통하여 표징이 일어나자 유다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는 말하지도 가르치지도 말라며 사도들을 위협한다. 사도들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대답한다(제1독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시골로 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다. 마침내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불신을 꾸짖으시며,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고 이르신다(복음).

 

제1독서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4,13-21
그 무렵 유다 지도자들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은 13 베드로와 요한의 담대함을 보고 또 이들이 무식하고 평범한 사람임을 알아차리고 놀라워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예수님과 함께 다니던 사람들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14 그러나 병이 나은 사람이 사도들 곁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하였다.
15 그래서 그들은 사도들에게 최고 의회에서 나가라고 명령한 다음, 저희끼리 의논하며 16 말하였다. “저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저들을 통하여 명백한 표징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에게 알려진 터이고, 우리도 그것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17 그러니 이 일이 더 이상 백성 가운데로 퍼져 나가지 않도록, 다시는 아무에게도 그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만 합시다.”
18 그리하여 그들은 사도들을 불러 예수님의 이름으로는 절대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지시하였다. 19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 일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20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1 그들은 백성 때문에 그들을 처벌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거듭 위협만 하고 풀어 주었다. 그 일로 백성이 모두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8(117),1과 14-15ㄱㄴ.16-18.19-21(◎ 21ㄱㄷ 참조)
◎ 주님, 제게 응답해 주셨으니 제가 당신을 찬송하나이다. (또는 ◎ 알렐루야.)
○ 주님은 좋으신 분, 찬송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에게 구원이 되어 주셨네. 의인들의 천막에서 울려 퍼지는, 기쁨과 구원의 환호 소리. ◎
○ “주님이 오른손을 들어 올리셨다! 주님의 오른손이 위업을 이루셨다!” 나는 죽지 않으리라, 살아남으리라. 주님이 하신 일을 선포하리라. 주님은 나를 벌하고 벌하셨어도, 죽음에 넘기지는 않으셨네. ◎
○ 정의의 문을 열어라. 그리로 들어가 나는 주님을 찬송하리라. 이것은 주님의 문, 의인들이 들어가리라. 당신이 제게 응답하시고, 구원이 되어 주셨으니, 제가 당신을 찬송하나이다. ◎
< 부속가는 자유로이 할 수 있다: 217면 참조>

 

복음 환호송 시편 118(117),24
◎ 알렐루야.
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 알렐루야.

 

복음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9-15
9 예수님께서는 주간 첫날 새벽에 부활하신 뒤,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다. 그는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 주신 여자였다. 10 그 여자는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이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였다. 11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며 그 여자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12 그 뒤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돌아가 다른 제자들에게 알렸지만 제자들은 그들의 말도 믿지 않았다.
14 마침내, 열한 제자가 식탁에 앉아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5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 신경 없음>

 

예물 기도
주님, 이 거룩한 파스카 신비로 저희 구원을 이루시니, 저희가 감사하며 드리는 이 제사가, 저희에게 영원한 기쁨의 원천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 부활 감사송 1: “이날에”, 296면 참조>
< 감사 기도 제1양식에서는 부활 고유 성인 기도와 “주님, 물과 성령으로 …….”>

 

영성체송 갈라 3,27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너희는 다 그리스도를 입었다.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파스카 신비로 새롭게 하신 주님의 백성을 인자로이 굽어보시어, 저희가 육신의 부활로 불멸의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 파견 때에 “알렐루야.”를 두 번 덧붙인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마르코 복음사가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가 쉽지 않았음을 전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식탁에 앉아 있는 열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습니다. 제자들이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신 주님 부활에 대한 말을 믿지 않았으며 엠마오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두 제자의 말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부활의 진리는 믿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 “나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있는가?” 하고 물어보아야 합니다. 부활은 그저 막연한 기대나 멋있는 신앙의 장식이 아니라 신앙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1코린 15,14).
우리의 눈은 시야에 들어온 것을 보지만 마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 봅니다. 사람들이 주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부활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부활을 체험하지 못한 것일 뿐입니다. 그들이 주님의 부활에 마음을 열지 않고 완고한 마음을 지녔기에 믿음으로 부활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보지 않고도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행복합니다(요한 20,29 참조).

부활을 체험한 사람은 이웃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부활을 체험한 사람은 자신의 명예나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웃의 약점을 지적하지 않습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기쁘게 주님의 십자가를 지면서 살아갑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사람들 가운데 이루어질 하느님 뜻의 나라

천상의 책​



19권-3, 

하느님 뜻의 진리에 대한 침묵은 무덤을 만들고, 이에 대한 표현은 그 진리의 부활을 이룩한다.

하느님 뜻을 소유한 사람은 천상과 통교하며, 천상 세계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에 참여한다.

  

1926년 3월 2일

 

1. 복되신 예수님께서 내게 말씀하신 것을 나타내 보이려고 마음을 여는 것이 어찌나 싫은지 아무것도 더 이상 알려지지 않도록 영영 입 다물고 있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토록 심한 부담감 때문에 다정하신 예수님께 이렇게 우는 소리를 하였다.

 

2. ‘오! 당신과 저 사이에 일어난 일에 대하여 다시는 그 누구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신다면 저는 정말 기쁘겠습니다. 너무나 큰 부담감에서 놓여나게 하실 것이니 말입니다. 제가 얼마나 꺼리는 일인지, 얼마나 애써 노력해야 그럴 수 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3. 내가 그렇게 중얼대고 있었을 때,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걸음을 옮기시는 기척을 내시며 이르셨다. “딸아, 너는 빛과 은총과 진리를 매장하고 싶으냐? 그렇게 네 예수에게 무덤을 마련해 주고 싶으냐? 어떤 진리에 대한 침묵은 그 진리를 매장하는 무덤을 만드는 반면, 이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 그 진리의 부활을 이룩한다. 즉, 빛과 은총과 선을 다시 일으킨다. 진리에 대한 말은 ‘지고한 피앗’에서 오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4. 말은 내가 피앗 라는 말로 모든 피조물을 창조했을 때에 그것의 신적인 영역을 가지게 되었다.

아무 말 없이 그들을 빚어낼 수 있었음에도 내가 피앗이라는 말을 쓰고자 했던 것은, 말 역시 신적인 기원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였다. 또 말이 창조력을 내포하므로, 내게 속한 것을 표현하기 위해 그것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의 말을 듣는 행운을 잡은 사람들에게 진리들을 전할 힘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였다.

 

5. 너에게는 더 강력한 이유가 있다. 사실 내가 너에게 하는 말의 대부분은 내 지고한 뜻에 관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원초적인 말일 뿐만 아니라 바로 피앗자신이다. 이 피앗이 창조사업에서처럼 다시 현장으로 들어가 뜻이 지닌 무한한 선을 알리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드러내고 있는 모든 것에 매우 큰 힘을 주기에, 족히 영혼들 안에 내 뜻의 새 창조사업을 충분히 이룩할 수 있는 것이다.

 

6. 그런데 네가 침묵으로 내 뜻에 무덤을 만들어 주려고 한다면, 이것이 나에 대한 너의 사랑이 되겠느냐?”

 

7. 나는 덜컥 겁이 났고, 전보다 더 괴로운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께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을 이룰 은총을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그러자 격려해 주시기 위함인 듯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나오시어,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성심에 나를 붙여 안으시고 내 안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 주셨다.

 

8. 그때 하늘이 열리고, 모든 이가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를 일제히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그 다음은 내 차례였다. 그러므로 나는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하고 화답. 그러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누가 말할 수 있으랴?

 

9. 성부란 말이 발해진 순간, 그 창조력이 도처로 흘러들면서 만물을 보존하며 생명를 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낱말을 한 번 발하는 것만으로도 그분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순수하고 아름답고 항상 새롭게 유지하기에 족한 것이었다.

“성자가 발해지자, ‘말씀’이신 분의 모든 업적들이 새롭게 정돈되어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우면서 피조물의 선익을 위해 그들 자신을 내놓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성령이 발해지자, 만물이 사랑에 휩싸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사랑은 말이라도 할 듯 살아 있고 활동적이며 생명을 주는 사랑이었다. 하지만 누가 그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겠는가!

 

10. 나는 내 하찮은 정신이 영원한 지복에 잠겨 있음을 느꼈다. 그러자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나를 나 자신 안으로 다시 불러들이시려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영광송’의 둘째 부분을 말하는 것이 어째서 너의 차례였는지 아느냐?

그것은 내 뜻이 네 안에 있으므로, 네가 땅을 하늘로 데려오는 것이, 리하여 천상 주민들과 함께, 모든 이의 이름으로 ‘영원히’, 결코  끝나지 않을 영광을 주는 것이 합당하기 때문이었다.

 

11. 영원한 것, 결코 끝나지 않는 것은 오로지 내 뜻 안에서만 볼 수 있다. 그리고 내 뜻을 소유한 사람은 천상과 통교한다. 천상의 복된 이들과 함께 활동하는 것처럼 천상 세계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에 참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