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에우제니아는 어떤 사람인가?
마더 에우제니아는 1907년, 이탈리아의 (베르가모 지방) 소읍인 산제르바시오의 한 평범한 가정에서,
어머니 펠리시타와 아버지 카를로 라바시오 사이)에 태어났다.
엘리사벳타 -마더 에우제니아의 세례명-(Eugenia Elisabetta Ravasio) 는 아주 일찍부터, 그러니까 태어난 순간부터 수년 동안 곤궁과 고통을 체험하였다. 은행이 파산하는 바람에 가족은 물질적인 시련에 처하게 되었으니, 이 재정적 불행으로 말미암아 어머니 펠리시타는 임신한 지 여섯 달 만에 아기를 낳았고, 그 힘든 출산 이후 일곱 해 동안 몸져눕게 되었다. 의사는 여섯 달 반에 태어난 아기를 보면서, “아기는 아무래도 못 건질테니, 어머니나 돌봅시다!” 하고 말했다.
엘리사벳타는 그 신체적인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살아 남았는데, 이는 그녀의 할아버지가 얻어 낸 기적 덕분이었다. 그러나 네 살이 되어도 말을 하지 못했고 걷지도 못했다.
그녀의 할아버지 베드로는 (이탈리아 북부의) 바레세 성모 성지까지 도보로 순례하기로 결심했다. 하느님께서 이 아이를 치유해 주시기를, 아니면 당신 곁에 데려가 주시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였다. 할아버지가 성지에 도착한 순간, 베티나 -엘리사벳타에게 가족이 붙여 준 애칭- 는 일어나서 매우 아름다운 ‘귀부인’의 도움으로 옷을 입고 부모에게 나타났다. 부모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생각했고, 놀라움과 큰 기쁨을 동시에 느끼면서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 성모님께 감사를 드렸다. 나중에 부모도 그 성모 성지로 감사의 순례를 하기 위하여 딸애를 데리고 갔는데, 성지의 성모상을 보자마자 베티나는 이렇게 외친 것이다. ;
“바로 저 귀부인이 내게 옷을 입혀 주셨어요!”
이와 같이 마더 에우제니아의 생애는 그 초기부터 거룩하신 동정녀의 현존을 체험한 삶이었고, 이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그 후에도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 안으로 그녀를 이끌어 가셨다.
이 성삼위에 대한 지식이 그녀의 영혼에 깊이 새겨졌으므로, 어떻게 해서든지, 즉 어떤 희생을 치르든지,
그 신적 ‘일치’를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기도하였다.)
“동정 마리아님, 예수님의 어머니이시며 지극히 아름다우신 저의 어머니!
모든 것 안에서 언제나 아버지의 ‘거룩하신 뜻’을 흠숭하면서,
저의 삶 전체를 어머니의 손에 맡기오니,
성령님의 ‘사랑’안에서 예수님께 바쳐 주소서.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아버지의 집’에 올 수 있게 하시어,
마침내 우리 아버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영원한 ‘지복’을 누리는 한 가족이 되게 해 주소서.
저는 자녀들 중 아무도 멸망하지 않도록 어떤 희생이든지 감수할 각오로 있나이다.
저의 어머니, 어머니께서 저를 도와 주시어, 아버지의 참된 딸(아들)로서
복음 말씀을 온전히 충실하게 실행하며 살게 하소서!
일치의 모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엘리사벳타의 할아버지는 매우 경건한 사람이어서 그 가족을 기도에로 이끌었고 그들에게 값진 가르침들을 주기도 했으니, 그런 가르침에 힘입어 아이는 종교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루는 (롬바르디아 지방의) 아다강을 가리키면서 그는 손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굽이치며 멀리로 흘러가는 저 강물을 보아라.
물이 흐르지 않으면 썩은 물이 고인 늪이 될 거다.
너의 고통과 눈물과 아픔도 마찬가지다.
여기 있지만 지나가는 거야. 그 흐름을 막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다가는 네가 불행해질 테니까, 모든 것은 지나가기 마련이다.
다 하느님께 바쳐 드리고 날마다 그분의 ‘뜻’을 받아들여라.
너에게 고통을 끼치는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하느님의 손에 맡겨 드려라.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란 결코 없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피조물이 어디를 가든지 걸음마다 함께 하신다.
그분께서는 확실히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
우리가 그 사랑의 의미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어도 그렇다.
용기를 내어라. 항상 앞으로 나아가면서 고통이 지나가기를 기다려라.”
엘리사벳타는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이 가르침들을 유익하게 활용할 줄 알았다.
그래서 수도회 총장이 된 후에도 그것을 떠올리며 말하곤 했다.;
“나는 이것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면서 노래를 부른답니다.”
주위 사람들도 “마더 에우제니아가 노래를 부를 때면 무슨 일이 잘 안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나이 스무 살이 된 해인 1927년에, 그러니까 직공(직공)으로 8년 동안 근무한 이후, 그녀는 마주치는 모든 방해에도 불구하고 선교회 수녀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
“오 아버지, 당신 뜻을 이루려고 제가 여기 왔나이다!”
그리하여 프랑스 그르노블 교구 관할인 ‘사도들의 성모’수녀원에 들어갔는데, 이곳에서 1932년 특별한 은총을 받았다. 바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사람들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그녀에게 받아쓰게 하신 것이다.
그녀는 수녀원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은 이상으로 환멸을 느끼기도 하였다.
수녀원 안에 있다고 해서 성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날이면 날마다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투쟁을 해야 성인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남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하느님과 일치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다른 이들이 규칙에 따라 사는지 아닌지를 알려고 들 일이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각 사람은 그 고유의 책임 의식을 가지고 홀로 하느님께 응답해야 하는 것이다.
다른 이들을 바라보는 것은 다만 그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기 위해서여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확신이었다.
그런 확신이 있으면, 하느님께서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
“그러니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가거라!”
그리하여 그녀는 매우 젊은 나이에 수련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1935년에는 만 28세를 미처 채우기도 전에 수도회 총장으로 선출되었고, 정력적인 힘과 초인적인 애정을 기울여 12년 동안 그 직무를 수행하였다.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하여 자신을 남김없이 내어 주면서, 마치 하느님께 무한한 신뢰를 둔 사람처럼 행동한 것이다.
그녀의 학력은 초등학교 3학년까지 재학한 것이 전부였지만, 총장직을 맡게 되자 그 직무를 이루는 수많은 문제들을 관리감독하면서 여러 언어를 배워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하느님께 대한 그녀의 신뢰가 더욱 강화되었으니, 하느님께서 도움을 주시어 직무를 계속하는 데 필요한 힘을 주신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사제들과 라틴어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여러 권의 수도 지침서를 집필하기도 하였다.
사명의 영역
이는 외관만 보면 충분히 잘못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사실 누가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토록 젊고 바싹 마른 한 조그만 수녀가 그토록 크고 함정투성이인 일을 성취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담대한 용기와 불굴의 끈기 및 크나큰 고통과 치열한 투쟁들로 말미암아, 그녀는 수하 수녀들을 위해서 그들의 선교 사업에 대한 존중과 존엄성을 얻어 낼 수 있었다. 또한, 그 당시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적용된 것과 같이, 그녀의 수녀들에게도 열등한 역할을 부여하면서 스스로 그럴 권리가 있다고 자처하는 자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 시대의 남성 우월주의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더 에우제니아의 견해에 의하면 하느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모두가 같은 아버지의 자녀들이다. 피부색이나 종족이나 사회 계층이나 성별(성별)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사람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마더 에우제니아가 그녀의 의무를 온전히 다한 것은, ‘복음’에서 얻은 힘과 비상한 용기로 살아갔기 때문이다.
나환자의 어머니
마더 에우제니아의 열성을 인도한 것은 오직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었다.
이 사랑의 충동에 대해서는 그녀가 쓴 책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남김없이 자신을 내어 주었고, 사람들의 판단이나 경계를 두려워하지 않고 내어 주었다.
그녀의 유일한 목적은 복음 말씀에 따라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데 있었다.
그런 그녀가 1939년에 아프리카에 가서 나병으로 온통 만신창이가 되어 어느 섬에 격리 수용되어 있는 환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것은 빠져나올 수 없는 섬이었으니, 그들은 그렇게 나병과 고독과 절망 속에 버려진 사람들이었다. 어느 날 마더 에우제니아를 태운 수상 비행기가 이 섬 가까이에 착륙했고, 그래서 그 버림받은 이들은 하늘에서 “사랑의 선교사”가 내려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마더 에우제니아는 그들을 만나자 이렇게 물었다.
“여러분은 무엇을 좋아하시지요? 터놓고 말씀들 해 보세요.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어떤 분이 여러분을 도와 드리고 싶대요.”
그 가련한 사람들은 자기네에게 말을 걸고 있는 이 낯선 여인을, 다소 놀라면서도 경계하지는 않는 표정으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여러분의 소유인 한 작은 도시에서 살고 싶지요?”
그러자 나병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한 젊은이가 용기를 내어 물었다.
“성벽이 없는 도시 말입니까?”
“물론 없구말고요.” 하고 마더 에우제니아는 대답하였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나병은 전염되니까 우리는 격리되어 살아야 합니다.
바다가 우리를 에워싸 가두고 있으니, 아무도 나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끼리만 살다가 죽도록 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절망하지 마세요. 제가 꼭 다시 오겠어요. 곧 오겠어요.”
그리고 마더 에우제니아는 나병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손으로 그들을 어루만졌다.
자기가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확실히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라울 폴르로는 “단 하나의 진리는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는 제목이 붙은 그의 자서전 속에
위의 이야기를 끼워 넣었다. 그리고 이렇게 쓰기도 하였다. ;
“무성한 식물군이 분포해 있는 대지레 섬은 행복과 안식과 평화를 위하여 만들어진 곳이다.
그렇지만 이 지상낙원은 지옥과 같은 곳이 되었다.
더없이 혹독한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 환경을 개선하여 좀 더 인간답게 살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했겠는가?
그 당시는 나병 환자 요양 시설에 대한 규제가 매우 엄격한 때였다.
그러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마더 에우제니아는 이런 생각을 품고 있었다. ;
“처녀림 한복판에 나환자 마을을 건립하여, 그들이 마음대로 왕래할 수 있게 하자. 그러면 그 마을 안에서는 정말 자유로운 기분이 들지 않겠는가? 더 이상은 우리에 갇힌 짐승들처럼 지내지 않아도 될 마을, 마땅한 존중과 존엄성을 누리며 살아갈 권리가 있는 마을을!”
오늘날에는 그 모든 것이 간단하고 당연한 것으로 보이지만, 1939년 무렵에는 미친 짓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한두 사람이 아닐 정도로 그것은 혁명적인 계획이었다. 원조를 청하기 위해 프랑스 국무 장관을 찾아간 마더 에우제니아가 그 장관에게서 얻어 낸 답변도 이것이었다. ;
“그것은 꿈 같은 희망입니다. 망상에 가까운 유토피아라니까요! 우거진 숲 한가운데에 어떻게 도시를 건설한단 말입니까? 물론 수녀님도 너그러운 분이지만, 그 애덕 덕분에 가능한 것의 경계를 넘어서고 말았어요.....”
나병 치료제의 개발을 위한 분투
마더 에우제니아는 결국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아낌없이 지원하겠다는 응답을 받아 내었다. 그러나 (나환자 마을이 건설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환자들에게는 응급 치료라도 해 주어야 했지만, 그 당시는 나병약이란 것이 아예 없는 시대였다.
그녀는 썩어 문드러진 살이 넝마 조각처럼 떨어지는 그 가련한 사람들을 도와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픔으로 미어지는 가슴으로 자기 주위를 둘러보면서 누구에게나 도움을 청하는 모습이었다.
어느 날 그녀는 앞에 있는 한 식물 (‘살모그라’라는 열대 식물)을 발견하였다.
창문을 통해 자신의 눈길을 끈 이 식물을 향하여 문득 이렇게 말한 것이다. ;
“어쩌면 너희가 나를 도와 줄 수 있을 거야. 암, 그렇고말고!
주님께서 너희를 창조하셨으니, 유익하게 쓰일 거야. 나를 도와 다오!”
희망으로 부푼 가슴으로, 그녀는 그 식물을 짓이겨 끈적끈적한 고약 모양이 되게 하였고, 그것을 온통 곪아 터진 환자들의 팔다리에 발라 주었다. 그러자 상처가 더 이상 번지지 않는 효과가 나타났다.
마더 에우제니아는, 그러니 얼마나 예측 불허의 인물인가!
마더 에우제니아의 이 발견을 완성한 것은 파리에 있는 파스퇴르 연구소였다.
이 연구소는 그렇게 나병 극복을 위한 새로운 활기를 과학계에 불어넣었던 것이다.
우리는 마더 에우제니아의 선교사적 생애에 대해서 몇 가지 에피소드만 상기해 보았거니와,
이를 통해서도 그녀의 힘과 용기, 다른 사람들의 선익을 위한 열성,
하느님께 대한 지극히 큰 신뢰를 짐작할 수 있고,
바로 이 복음 말씀을 실행하며 살아갔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다. ;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누구나 등불을 켜서 등경 위에 얹어 둔다.
그래야 집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밝게 비출 수 있지 않겠느냐?” (마태 5,13-15)
라울 폴르로로 하여금 나환자들을 위하여 투신하게 하다
마더 에우제니아는 자기의 그 관심사를 라울 폴르로에게 맡겼다. 그 무렵 폴르로는 박해를 피하여 수도원에 은신하고 있었는데, 마더 에우제니아는 분노가 서린 떨리는 음성으로 그에게 말했다. ;
“유럽 사람들은 전쟁을 하고 있소. 저기 (아프리카)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주림과 병으로 죽어가고 있는데, 여기서는 전쟁 놀이나 하고 있단 말이오! 나는 나환자들이 인간으로 대접받고, 마땅한 존중과 존엄성을 누리며 지낼 수 있는 마을을 짓고 싶소.”
폴르로는 이 작은 수녀의 음성에서 불굴의 의지와 끈기를 느끼면서 말했다.
“원장 수녀님, 수녀님의 일을 계속 하십시오. 저는 모금하는 일을 맡겠습니다.”
그 순간부터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 폴르로는 용감하게 수도원을 떠났다.
많은 사람들의 선의와 마더 에우제니아가 전할 줄 알았던 신뢰 덕분에,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50년, 마침내 환자 마을이 조성되었다. ‘불가능한 꿈’이 실현된 것이다.
얼마나 규모가 큰 설립 계획을 완성시켰는지 정부에서 그 마을을 코트 디봐르의 ‘국립 나환자 협회’로 지정했을 정도이다. 이 마을이 들어선 아좁트는, 마더 에우제니아를 통하여, 다른 곳에서도 나환자 진료소를 열게 하는 고무적인 상징이 되었다.
프랑스 당국은 사회 사업 분야에서 가장 영예로운 것으로 인정되고 있는 국가 유공 훈장을 마더 에우제니아가 설립한 이 사업에 수여하였다. 마더 에우제니아에 관한 한 인터뷰에서 라울 폴르로는 이렇게 말했다.;
“마더 에우제니아로 말하자면, 그분에게는 ‘불가능’이라는 단어가 없다는 말로 충분할 것입니다..... ”
마더 에우제니아의 카리스마
마더 에우제니아는 1948년, 어느 추기경의 격려로 새로운 수녀원을 창립하려고 ‘사도들의 성모’ 수도회를 떠났다. 이는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을 알리기 위하여, 또 “거룩하신 아버지, 모든 사람이 하나 되게 하소서.”(요한 17,11)라고 기원하신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일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서였다.
그러나 그것은 고통의 갈바리아를 오른 지 40년 만인 1988년에야 비로소 가능해진 것이니, 마더 에우제니아의 정신이 계속 활기차게 살아 있는 수도회인 “그리스도 안에 일치하여 아버지께로” 선교회가 그 해에 교회의 인가를 받았던 것이다.
마더 에우제니아의 카리스마는 예수님께서 간절히 바라시는 일치를 실현하는 것에 있다.
이는 맨 위에 아버지 하느님이 계시는 단일한 가정이다.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어질고 자애로우신 아버지,
끊임없이 인자하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외아들을 보내 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시다.
하느님께서는 마더 에우제니아의 사명을 준비시키시려고 그녀에게 특별한 선물과 은총들을 한껏 베푸셨고, 크나큰 고통을 겪게 하심으로써 견실한 덕행에 이르도록 그녀를 이끄셨으니, 그러한 고통 속에서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 더욱 강화된 것이다.
또한 아버지께서 나타나실 때가 가까워질 무렵,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 말씀을 주시기도 하였다. ;
“모든 세기에 걸쳐서 하느님은 이미 수많은 선물들을 마련해 주셨다.
그러나 이번 것은 선물 중의 선물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인류에게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는 아버지,
아버지 하느님의 도래를 손동작으로 그려 보여 주셨다.
마더 에우제니아는 아버지께서 친히 주신 임무,
즉 아버지의 사랑의 메시지를 아버지의 자녀인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것은 예수님을 드러내 보여 주신 인류의 아버지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고 자상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또 그것을 보호해 주시니,
아버지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흠숭하며 신뢰해야 한다는 메시지이다.
“생각해 보아라. ; 나는 내 아들을 지정하여 사람들 앞에 내세웠다.”
마더 에우제니아의 사명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 기묘한 실재를 의식하게 하는 것이니, 곧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시라는 것과 이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아버지 집의 영광 속으로 데려가고자 하신다는 것이다.
마더 에우제니아는 일치를 목적으로 하는 아버지의 수도회를 창설했으니,
곧 ‘그리스도 안에 일치하여 아버지께로’선교회이고, 이것이 그녀의 정신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아버지께서는 마더 에우제니아에게 친히 말씀하시기를,
열린 마음으로 이 메시지를 읽는 사람에게는 그 때마다
아버지께서 당신 사랑과 살아 계신 현존으로 함께 계실 것이며
그에게 당신 마음을 털어놓으시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 책 서두에 나오는 ‘저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기도의 주에서 이미 언급한 대로,
아버지께서 직접 불러 주신 이 기도를 바치는 사람은
마더 에우제니아 엘리사벳타 라바시오의 전구를 통해서 아버지의 은총을 풍성히 받을 수 있다.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삶』, 지은이 마더 에우제니아, 옮긴이 정진석 니꼴라오 추기경, 펴낸곳 가톨릭출판사,
취급처 불모임 교재 연구실, 1999년 10월 15일 교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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