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권-31, 구원에 이르는 좁은 길
1910년 3월 16일
1. 대화 중에 신부님께서 “구원에 이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까 예수님께서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태 7,13).’고 하신 것이오.” 하고 말씀하셨다.
2. 그 뒤 영성체를 하고 나자 예수님께서 “내가 아주 딱하게 되었군! 나를 얼마나 째째한 존재로 보고들 있는지!” 하셨다. “고해사제에게 일러라. 사람들은 자기네 째째함으로 나를 판단한다고 말이다. 그들은 나를 위대하고 무한하고 끝없고 힘있는 존재, 넓음 자체를 통해서보다 비좁음을 통해서 큰 군중을 통과시킬 수 있는, 모든 완전함으로 무한한 존재라고 여기지 않는 것이다.”
3. 그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동안 내 눈에 작고 좁은 문에 이르는 매우 좁은 길이 보이는 듯 하였다. 그런데 여기에 사람들이 콩나물 시루처럼 빽빽하게 들어서 누가 먼저 가서 문으로 들어가는지 보려고 서로 경쟁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이으셨다.
4. “보아라. 딸아, 얼마나 큰 군중이 앞으로 몰려가고 있는지를. 게다가 그들은 누가 먼저 도착하는지 보려고 경쟁까지 하고 있다. 그런데 이 경쟁을 통해서 많은 이득을 볼 수 있다.
5. 만약 길이 넓다면 언제라도 원하는 때에 접어들어 걸어갈 수 있는 공간적 여유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아무도 구태여 서두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가하게 늑장을 부리다 보면 죽음이 올 수 있고, 그런데도 좁은 길에 들어서 있지 않았으니 지옥 넓은 문의 문지방 앞에 가 있게 될 것이다.
6. 오, 그러니까 이 비좁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유익한 작용을 많이 하는지 모른다! 이런 일은 너희 가운데에도 일어나는 것인 바, 만약 무슨 잔치나 예식이 있는데 그 장소가 비좁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서둘러 갈 것이고, 그러면 잔치에 참여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을 것이다. 그러나 장소가 넓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아무도 구태여 서두르지 않기 때문에 참여자가 그만큼 적을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공간적 여유가 있음을 알고 있어서 모두 한가하게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어떤 이는 잔치 중간에 들어오고, 어떤 이는 끝 무렵에, 또 어떤 이는 숫제 다 끝난 뒤에 들어와서 아무것도 즐기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7. 만일 구원에 이르는 길이 넓다면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구태여 서두르려고 하는 이가 별로 없기 때문에 천상 잔치가 그만큼 극소수의 사람들을 위해 베풀어질 것이니 말이다.”
9권-32, 하늘과 땅에 있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선
1910년 3월 23일
1. 보통 때처럼 지내면서 예수님을 뵙지 못해 슬퍼하고 있노라니, 그분께서 오시자마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너는 나의 뜻 바깥으로 절대 나가지 말아라. 이 뜻은 영혼에게 새로운 세례와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다. 아니, 세례성사 자체보다 더 위대하다. 성사들 안에는 내 은총이 부분적으로 있는 반면에 나의 뜻 안에는 은총이 전체적으로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즉, 세례성사로 원죄는 없어져도 격정과 나약은 그대로 남지만, 나의 뜻 안에서는 영혼이 그 자신의 의지를 없앰으로써 격정과 나약과 인간적인 요소를 다 없애고 덕행과 힘 및 모든 신적 자질로 살아가는 것이다."
3. 이 말씀을 듣고 나는 “그분께서는 이제 곧 당신이 뜻이 영성체 자체보다 더 좋은 것이라고 말씀하시겠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분은 즉시 이렇게 덧붙이셨다.
4. “물론 그렇다! 그렇다마다! 성사적인 일치는 몇 분밖에 계속되지 않는 일시적인 것이지만 나의 뜻과의 일치는 항구적인 것이니 말이다. 게다가 그것은 천국의 영원 속으로 들어가는 영원한 일치이다.
5. 영성체는 질병이나 불가피한 사정 때문에, 또는 성체성사를 집전하기로 되어 있는 사람들의 사정 때문에 지장을 받을 수 있지만, 나의 뜻과의 일치는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는다. 영혼이 원하기만 하면 전부 이루어지는 것이다!
6. 하늘과 땅의 행복을 이루는 이 크나큰 선 - 이 선의 소유는 마귀이건 인간이건 그 누구도 가로막을 수 없고, 심지어 나 자신의 전능으로도 가로막을 수 없다. 이렇듯 영혼은 자유롭다. 내 뜻의 이 점에 대해서는 아무도 영혼을 지배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7. 이런 이유로 나는 내 뜻을 기묘하게 내밀면서 사람들이 이를 소유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것이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고 가장 소중한 것이니 말이다. 다른 모든 것은, 설령 더없이 거룩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만큼 내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런즉 영혼이 내 뜻 안에서 살게 될 때야말로 내가 승리감을 만끽할 때이다. 이것이 하늘과 땅에 있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선이기 때문이다.”
9권-33, 이상적인 영성체 준비와 감사기도
1910년 4월 10일
1. 순명하기 위해서 글을 쓰려고 하지만, 너무 힘들어 가슴이 터질 것 같다. 하지만 순명 만세! '하느님의 뜻' 만세! 한데 이렇게 쓰고 있으면서도 두려워 떨린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나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2. 실은 내가 어떻게 준비하여 영성체를 하는가. 그때 복되신 예수님께 어떻게 감사를 드리는가에 대해서 글을 좀 써 보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다. 이에 대하여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내가 알 수 없는 것은, 인자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무능 및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보시고 친히 그 모든 것을 해 주시기 때문이다. 즉 그분께서 내 영혼을 준비시키시고 몸소 감사기도도 일러 주시기에 나는 그분을 따라 하는 것이다.
3. 그런데 예수님께서 (내 영혼 안에서 쓰시는) 방식은 언제나 굉장한 것이기 때문에 그분과 함께라면 나도 비상해져서 뭔가를 할 줄 아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때 예수님께서 당신 현존을 거두시면 나는 항상 실제 그대로의 멍청한 바보로, 무지하고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인간으로 남아 있게 된다.
4. 바로 이 점 때문에, 그러니까 내가 무지하고 아무것도 아닌 자이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다. 또한 내가 무슨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분을 받아 모시기를 원한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내 안에 오실 때 치욕이 아니라 더없이 큰 영예를 받으시고자 내 하찮은 영혼을 친히 준비시키시는 것이니, 그분 자신의 것들을, 곧 그분의 공로, 그분의 의상, 그분의 업적, 그분의 열망을, 요컨대 그분의 모든 것을 내게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할 경우 성인들이 행한 모든 것을 - 왜냐하면 모든 것이 그분 자신의 것이니까 - 내게 주시고, 또 필요한 경우 지극히 거룩하신 엄마께서 행하신 모든 것도 내게 주신다.
5. 그러므로 나도 그 모든 분들에게 이렇게 말씀드린다.
“예수님, 제 안에 오실 때에 당신 자신께 영예를 드리십시오.
저의 여왕이신 엄마, 그리고 모든 성인들과 천사들이여,
저는 이다지도 가난한 자이오니, 당신들이 가지신 모든 것을 제 마음 안에 넣어 주십시오.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영예를 위해서 그렇게 해 주십시오.”
6. 그러면 온 천국 주민이 나를 준비시키는 일에 이바지한다. 그 뒤 예수님께서 내 안에 내려오시면 당신 자신의 것들로 영예로우심을 보시고 무척 기뻐하시는 것 같고, 때로는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하신다.
“브라보! 내 딸에게 브라보! 내가 얼마나 흐뭇한지,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구나! 네 안이 어디를 보든지 내게 합당한 것들만 보이니, 나의 것인 모든 것이 또한 너의 것이니라. 네가 나로 하여금 참으로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도 보게 하는구나!"
7. 나는 그러나 내가 너무나 가난한 줄 알기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내 것이 아닌 줄 알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렇게 흐뭇해하심을 보면서 웃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아아 고마워라. 예수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시니! 그분께서 오시기만 하면 된다. 내게는 그것으로 족하다. 내가 그분 자신의 것들을 활용했다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가난한 자는 무릇 부유한 이에게서 받아야 하니까.”
8. 그런데, 영성체와 관련하여 예수님께서 쓰시는 저 방식에 대한 어렴풋한 빛 몇 가닥이 나의 내면 여기저기에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나는 이 빛들을 재결합시킬 수 없고, 따라서 (단독으로는) 그 준비 및 감사기도를 작성할 수도 없다. 그럴 능력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나로서는 예수님 자신 안에서 나를 준비시키고 예수님 자신과 함께 그분께 감사를 드린다고 할 수밖에 없다.
9권-34,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은 변화를 타지 않는다
1910년 5월 24일
1. 여느 때처럼 있다가 보니 내가 정말 쓸모없는 인간으로 여겨졌다. 죄니 냉담이니 열성이니 하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을 똑같이 보고 있는 것이다. 매사에 무관심한 모양이다. 그저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에만 전념하고 있는데,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고 오히려 극히 완전한 평온 속에서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므로 절로 이런 독백이 솟는 것이었다. “이건 얼마나 좋지 못한 상태인가! 적어도 내 죄들에 대해서만은 생각해야 하거늘 도리어 기뻐하고 있는 듯하니, 오 거룩하신 하느님, 이 얼마나 망신스러운 일입니까!”
2. 그러고 있는데 복되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딸아, 모든 사람이 다 마시는 공기를 마시며 이 아래 낮은 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추위, 더위, 비, 우박, 바람, 야간과 주간 등 다양한 기상(氣象) 변화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대기권을 벗어나 저 위 높은 데서 사는 사람은 이러한 기상 변화를 겪지 않는다. 대기권이 끝난 곳에는 완전한 낮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변화를 타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아무런 걱정이 없다.
4. 똑같은 현상이 저 위 높은 데서 신적 공기만 마시고 사는 이들에게도 일어난다. 내가 변화를 타지 않는 존재인 이상, 따라서 언제나 한결같고 언제나 평화로우며 충만한 기쁨 속에 있으니 만큼, 내 안에서 나의 뜻과 나의 공기로 사는 사람이 아무 걱정도 하지 않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5. 그럼에도 네가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이 아래 낮은 데서, 다시 말하자면 나를 벗어나서 인간적인 공기와 격정으로 살고 싶어지겠느냐?.....”
9권-35, 모든 것에 대해서 죽어야 더 아름답게 되살아난다
1910년 6월 8일
1. 만사가 끝장난 것처럼 마음이 너무나 침통했으므로, 예수님에 의한 이 완전한 버림받음에 대하여 그분께 슬피 호소하였다. 그러자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끊임없이 죽고 또 되살아나는 것 - 이것이 신적 방식이다. 보아라, 자연 자체도 이러한 죽음과 되살아남을 (계속) 겪는다. 이를테면 꽃은 피어났다가 죽지만 더욱 아름답게 다시 살아난다. 만약 죽지 않는다면 시들시들 늙게 되고, 그러면 그 얼굴빛이 생기를 잃고 향기로운 냄새도 잃고 만다..... 여기에, 언제나 유서 깊고 언제나 새로운 내 존재와 직결되는 비유가 있거니와, 씨는 마치 죽기 위해서 묻히는 것처럼 땅 속에 뿌려진다. 사실 그것은 분해되어 가루가 될 정도로 죽지만, 나중에 더 아름답게, 훨씬 더 많은 개체 수로 다시 살아난다. 다른 모든 것들도 그와 같다.
3. 이런 일이 자연계 속에서 일어난다면 하물며 영적인 세계 속에서야! 그런 죽음과 되살아남을 영혼은 한층 더 많이 겪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쳐이기고 많은 열성과 은총과 나와의 결합과 덕행으로 무슨 일에서나 그만큼 많은 새 생명을 얻은 것 같다가도 내가 숨어 버리면 그 영혼 주위의 모든 것이 죽고 만다. 내가 진정한 스승의 매처럼 타격을 주어 모든 것이 죽게끔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이 다 죽었다고 여겨지면 내가 태양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면 그 모든 것도 더 아름답고 더 활기차며 더 신실하게, 더 깊은 감사와 더 큰 겸손을 가지고 나와 함께 되살아난다. 인간적인 무엇이 남아 있으면 죽음이 그것을 없애 버리면서 일체를 새로운 생명에로 다시 일으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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