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새번역)/2권 공생활 첫해

하사시 2권p577~p588 [130. ‘맑은 내’에서의 예수. “너희는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 131.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

Skyblue fiat 2025. 2. 13. 16:42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2권 공생활 첫해  p577~p588
 

※ 통독한 뒤 마음에 세길 구절 1~2개를 나눕니다

 

130. ‘맑은 내’에서의 예수. “너희는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

1945. 3. 14

“사람들이 참 많이도 온다!”

마태오가 탄성을 지른다.
그러자 베드로가 대답한다.

“저기 좀 봐! 갈릴래아 사람들도 몇 명 있어…아! 아! 선생님께 가서 말씀드리세. 저자들은 양반인 척하는 세 날강도들이야!”

“저 사람들은 아마 나 때문에 오는 모양인데. 여기까지 쫓아와서 나를 괴롭히는구먼…”

“아니야, 마태오. 상어는 잔챙이를 먹지 않아. 그놈은 멋진 먹이인 사람을 원해. 그놈이 그런 먹이를 발견하지 못할 때만 큰 물고기를 삼키지. 자네나 나나 다른 사람들은 별 볼일 없는 잔챙이에 불과해.”

“자네는 선생님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나?”
마태오가 묻는다.

“물론이지! 저자들이 사방을 얼마나 샅샅이 둘러보고 있는지 자네는 보지 못하나? 저자들은 영양 냄새를 맡는 맹수들과 같아.”

“나는 선생님께 가서 말씀드리겠어…”

“기다리게! 알패오의 아들들에게 말하세. 그분께서는 너무 착하셔. 저자들에게 꿀꺽 삼켜지기에는 친절이 아깝단 말씀이야.”

“자네의 말이 옳아.”
두 사람은 강으로 가서 야고보와 유다를 부른다.

“이리로 오게. 희귀종들이 왔어…교수형에 처해져도 싼 놈들이 말이야. 그자들은 틀림없이 선생님을 귀찮게 하려고 온 거야.”

“가세. 그분께서는 어디 계시나?”
“그분은 아직도 부엌에 남아 계셔. 서두르세. 만일 그분께서 아신다면 그분은 반대하실 테니까.”

“그래, 근데 그건 그분께서 잘못하시는 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들은 타작마당으로 돌아온다. ‘갈릴래아 사람들’ 이라고 불린 한 떼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거만하게 말한다. 알패오의 유다가 우연을 가장하여 그들에게 다가간다. 그는 이런 말을 듣는다.

“…말이란 모름지기 사실들로 뒷받침되어야 해.”
“뒷받침됩니다. 어제도 그분께서는 마귀 들린 로마인을 고쳐주셨습니다.”

“끔직도 하지! 그자가 이교도를 고쳐주다니! 이 무슨 추문이람! 엘리, 자네도 들었나?”
“그자에게는 모든 죄들이 있어. 그자는 세리들, 창녀들과 친하지, 이교도들과 접촉하지, 그리고…”

“그리고 그분께서는 중상자들을 견뎌내기도 하시는군요. 중상이야말로 잘못이고, 내가 보기에는 제일 큰 죄인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알지 못하시고 자기를 방어하기를 원치 않으시니 나에게 그것을 말하시오. 나는 그분의 형(히브리어 ‘형제’라는 말은 친형제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을 뿐 아니라 다른 친척들 특히 사촌 간에도 쓰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이오. 이분은 큰형이고요. 크게 말하시오.”
 
“당신은 왜 그렇게 화내고 계십니까? 당신은 우리가 메시아를 비난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오! 우리는 그분의 명성을 듣고 아주 먼 곳에서 왔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말하고…”

“거짓말쟁이 같으니라고! 당신은 너무 역겨워서 나는 당신에게 등을 돌리겠소.”

알패오의 유다는 아마 자기의 원수에 대한 자기의 사랑이 위태롭다고 느꼈는지 다른 데로 가버린다.

“우리가 했었던 말이 사실이 아니오?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말할 수 있을 거요…”

그러나 ‘모든 사람’ 즉 그 갈릴래아 사람들과 말하던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 그들은 거짓말하기는 싫고 그렇다고 감히 유력자들이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기도 싫다. 그래서 그들은 침묵하고 있다.

“우리는 그분이 어떠신지 모릅니다…”
갈릴래아 사람 엘리가 말한다.

“당신은 내 집에서 선생님을 모욕하지 않았지요, 그렇지요? 아니면 당신은 병 때문에 기억력을 잃어버렸소?”

마태오가 빈정거리며 묻는다.
‘갈릴래아 사람’은 대답하지 않고 겉옷을 입은 다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버린다.

“비겁자!”
베드로가 그의 등 뒤에서 외친다.

“저 사람들은 그분에 대하여 끔찍한 것들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설명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업적들을 보았고, 저 바리사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도 압니다. 그러니 우리가 누구를 믿겠습니까? 참으로 좋으신 착하신 분을 믿겠습니까, 아니면 착하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재앙에 지나지 않는 악인들을 믿겠습니까?

나는 여기 오기 시작한 다음부터 내가 더 이상 나 자신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많이 변했습니다. 나는 내 아내와 아이들에게 폭력적이었고, 냉혹했고, 내 이웃들을 존경하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동네 사람들 모두가 말합니다. ‘아자리야’는 더 이상 아자리야가 아니야.’
그렇다면? 여러분은 마귀가 사람들을 착하게 만든다는 말을 들어보았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그는 누구를 위하여 일한단 말입니까? 우리를 거룩하게 하나요? 오! 만일 그놈이 주님을 위하여 일한다면, 그놈은 정말 이상한 마귀일 거예요!”

“당신의 말이 옳소. 당신은 잘 이해하고, 잘 보고, 잘 행하니 하느님께서 당신을 보호해주시기를. 그렇게 계속하시오. 그러면 당신은 복되신 메시아의 참 제자가 될 것이고, 당신의 착함을 원하시고 당신을 그리로 인도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견디시는 그분의 기쁨이 될 것이오. 참된 악에게만 분개하시오. 그러나 그분께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일하시는 것을 당신이 볼 때 분개하지 마시오. 그리고 그분께서 새로운 일들을 하시는 것을 당신이 볼 때 분개하도록 당신을 설득하려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마시오.

지금은 새 시대요. 이때는 뿌리들이 여러 세기 동안 활동한 후에 피는 꽃처럼 와 있습니다. 만일 그분이 오시기 전에 기다림의 세기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오.

그러나 시나이 산의 율법에 대한 여러 세기 동안의 순종으로 인하여 우리는 최소한의 준비를 할 수 있었는데, 그 준비는 관대하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게 해주신 새 시대에 하느님의 꽃의 모든 향기를 들이마셔 우리를 깨끗하게 하고, 우리를 강화시켜주고, 우리를 제단처럼 성덕의 향기를 풍길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새 시대는 율법에 반대되지는 않지만 자비와 사랑이 가득 찬 새 시스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오신 자비이고 사랑이시기 때문이에요.”

야고보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집을 향하여 간다.

“자네는 정말로 말을 잘 하는구먼!” 베드로가 감탄하며 말한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어. 나는 ‘착하시오. 선생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믿으시오’ 하고 말할 줄 밖에 몰라. 나는 그분께서 어떻게 나에게 만족하실 수 있는지 정말 모르겠어.”

“하지만 그분께서는 자네에게 만족하고 계셔.”
알패오의 야고보가 대답한다.

“자네는 자네의 진심을 말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자네가 친절해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건가?”

“그것은 사실이야. 어제도 그분께서는 나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어.”

“그분께서? 그렇다면 오늘 나는 내가 장가든 날보다 더 행복하네. 그렇지만 자네는… 어디에서 그렇게 말을 잘하는 법을 배웠나?”

“그분의 어머니의 무릎에서 그분의 곁에서 배웠어. 어떤 강의들이었는지! 어떤 말씀들이었는지! 그분의 어머니보다 더 말씀을 잘하는 분은 선생님밖에 없어. 어머니께서는 힘에 있어 선생님보다 약간 부족하다면, 상냥함으로 그 부족함을 보충하시지…

그런데 그 말씀이 속속들이 스며들어. 오! 어머니의 강의들이란! 자네는 향기로운 기름이 그 한 귀퉁이에 닿은 천을 본 적이 있나? 그 천은 기름만을 천천히 빨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향기도 빨아들이기 때문에 기름이 사라져도 향기는 여전히 남아 ‘내가 여기 있었다’고 말하지. 어머니께서는 그와 같으셔. 그분께서는 원래 거친 데다 생활로 더럽혀진 천인 우리 안에 그분의 지혜와 은총을 주입하셔서, 그분의 향기가 우리에게 남아 있게 되는 거야.”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왜 그분의 어머니를 모셔 오지 않으시지? 그분께서는 모셔 오시겠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우리가 더 착해지고, 이토록 꽉 막히지는 않았을 텐데… 적어도 나는 그럴 거야. 그리고 저 사람들도… 그리고 이따금씩 오는 악인들도 더 착해질 텐데…”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우리는 나아질 거야. 그리고 서민들도 더 나아지겠지. 하지만 유력자들과 악인들은!…
오! 요나의 아들 시몬! 다른 사람들도 자네처럼 올바른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게! 자네는 실망하게 될 거야… 저기 선생님께서 오고 계시네. 그분께 아무 말씀도 드리지 말세…”

예수께서 올리브기름을 바른 빵을 먹으면서 예수님 곁에서 종종 걸음을 치는 어린 사내아이의 손을 잡고 부엌에서 나오신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보폭을 그분의 친구의 짧은 다리들에 맞추시며 기쁘게 말씀하신다.

“나는 한 사람을 얻었다. 아스리엘이라고 하는 이 네 살 먹은 사람이 제자가 되고, 설교하고 병든 어린이들을 고쳐주고 12월에도 포도넝쿨에 포도송이가 달리게 하는 법 등 모든 것을 배우고 싶고, 그 다음에는 산에 올라가 모든 사람에게 ‘이리로 오시오, 메시아가 여기 계십니다’ 하고 말하고 싶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렇지, 아스리엘아?”

미소 짓고 있는 꼬마가 그렇다고 말하며 계속 빵을 먹는다.

“너는 먹을 줄도 잘 모르는데, 뭘! 너는 메시아가 누구신지도 말할 줄 모르잖아.”
토마스가 꼬마를 놀리면서 말한다.

“그분은 나자렛의 예수님이야.”

“그럼 ‘메시아’라는 말은 무슨 뜻이냐?”

“그것은… 그것은 착해지고, 우리 모두를 착하게 만들려고 보내진 분이야.”

“그분께서는 우리를 착하게 만드시려고 무엇을 하시니? 그리고 너 같은 개구쟁이는 무엇을 하겠니?”

“나는 예수님을 사랑할 거야. 그리고 나는 모든 것을 할 거야. 그리고 내가 그분을 사랑하니까 그분도 모든 것을 할 거야. 당신도 그렇게 해. 그럼 당신도 착해질 거야.”

“토마스야, 이 교훈은 너를 위한 것이다. 그 계명은 이렇다. ‘나를 사랑해라. 그러면 너는 모든 것을 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도 너를 사랑할 것이고, 사랑이 네 안에서 모든 것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말씀하셨다. 아스리엘아, 이리 오너라. 전도하러 가자.”

예수께서 어린이와 함께 계실 때 그분께서는 어찌나 기뻐하시는지 나는 모든 어린이들을 그분께 데려가고 싶고, 모든 어린이들에게 그분을 알리고 싶다. 그런데 그분의 이름조차 모르는 어린이들이 매우 많다.

그분께서는 베일을 쓴 여자 앞을 지나쳐 가시려 하시는데, 그분께서는 아직 그 여자에게 못 미치셨을 때 어린이에게 말씀하신다.

“저 여자에게 ‘평화가 당신과 함께’ 하고 말해라.”
“왜?”

“왜냐하면 저 여자는 네가 넘어져서 다쳤을 때처럼 아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 여자는 울고 있다. 그렇지만 만일 네가 저 여자에게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지나갈 것이다.”

“아줌마, 평화가 당신과 함께 있기를. 울지 마. 메시아께서 나한테 그렇게 말했어. 당신이 그분을 많이 사랑한다면, 그분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고쳐주실 거야.”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지 않고 아스리엘을 이끌고 가시는 동안에 그가 외친다. 아스리엘은 선교사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 비록 지금 당장은 그의 설교들은 다소… 시의적절하지 않고, 말하라는 것보다 더 많은 말을 하기는 하지만.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
‘너희는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탈출20,16)

거짓말쟁이보다 더 역겨운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가 불순함에 잔인함을 결합시킨다고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물론 우리는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중대한 문제들에 있어 거짓말하는 사람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그는 잔인합니다. 그는 자기의 혀로 사람의 평판을 죽이기 때문에 살인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아니 그는 살인자보다 더합니다. 살인자는 육체만을 죽이는데, 거짓말쟁이는 한 사람의 좋은 명성과 추억을 죽이기 때문에 이중의 살인자입니다.

그는 피를 흘리게 하지 않기 때문에 처벌받지 않은 살인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중상당한 사람과 그 가족 전체의 명예를 손상시킵니다. 나는 거짓증언으로 자기의 이웃을 죽게 하는 사람의 사안은 고찰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사람의 머리 위에는 이미 지옥의 숯불이 쌓여 있습니다.

나는 다만 거짓 암시를 주어 죄 없는 사람에게 불이익이 되도록 다른 사람들을 부추기는 사람에 대해서만 말하겠습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 합니까? 아무런 이유 없는 증오,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욕심, 또는 두려움으로 인하여 그렇게 합니다.

증오로 인하여. 오로지 사탄의 친구인 사람만이 증오합니다. 착한 사람은 미워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유로도 결코. 설사 그가 모욕당했거나 손해를 입었다 해도, 그는 용서합니다. 그는 결코 미워하지 않습니다. 증오는 잃어버린 영혼이 자기 자신에게 하는 증언이고, 무죄한 사람을 위한 최선의 증언입니다. 왜냐하면 증오는 선에 대한 악의 반항이기 때문입니다. 착한 사람은 용서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탐욕으로 인하여. ‘그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그것을 가지고 싶다. 그를 깎아 내려야만 그의 자리를 빼앗을 수 있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해야겠다. 나는 거짓말하려고 하는가? 그것이 무슨 문제이겠는가? 나는 도둑질하려는 것인가?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나는 일가족을 파멸시키려 하는가? 그것이 무슨 상관있겠나?’

교활한 거짓말쟁이는 자문하는 많은 질문들 중 한 가지 질문, 즉 ‘그러다가 내가 발각되면 어쩌나?’라는 질문을 망각하고, 망각하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교만과 탐욕의 노예가 되어 눈을 감고 있는 사람과 같게 되기 때문에 자신에게 그런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위험을 보지 못합니다. 그는 술 취한 사람과도 같습니다. 그는 사탄의 술에 취해 있어, 하느님께서는 사탄보다 더 강하시고, 중상당한 사람들의 원수를 갚아주신다는 것을 숙고하지 못합니다. 거짓말쟁이는 거짓말쟁이인 마귀(Falsehood)에게 자신을 내어주고, 어리석게도 그의 보호에 의존합니다.

두려움으로 인하여.
많은 경우에 사람은 자신을 변호하기 위하여 중상합니다. 이것은 거짓말의 가장 흔한 형태입니다.

잘못은 행해졌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소행으로 드러날까 봐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아직까지 타인들에게서 받고 있는 존경을 활용하고 남용하여 상황을 왜곡하고, 우리가 보기에 정직할까 봐 두려워하는 다른 누군가에게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뒤집어씌웁니다.

우리도 그렇게 합니다. 왜냐하면 때로 우리의 이웃이 본의 아니게 우리의 악행을 목격했기 때문에 우리가 그의 증언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를 인기 없게 만들어서 그가 말해도 아무도 그를 말을 믿지 않게 하려고 그를 비난하는 것입니다.

올바르게 행동하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결코 그런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거짓말할 때 여러분 자신에게 얼마나 무거운 부담을 지우는지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악령에 대한 예속, 발각될 것에 대한 영속적인 두려움, 여러 해가 지난 뒤에도 자가당착에 빠지는 일없이 그 거짓말을 했을 때의 모든 상황과 세부사항과 함께 그 거짓말을 기억해야 할 필요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갤리선 노예의 강제노역입니다. 그것이 천국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면 모르지만, 그것은 지옥에 자리를 준비하는 데만 이바지할 뿐입니다.

솔직하시오. 거짓말을 모르는 사람의 입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가 가난하고, 무식하고, 무명입니까? 그는 그럴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는 여전히 왕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진실하기 때문입니다. 진실성은 황금이나 왕관보다 더 왕다운 것이고, 그를 옥좌보다 사람들 위로 높이 들어 올려주며, 군주가 가진 것보다 착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더 큰 조정을 얻게 됩니다.

정직한 사람과의 친교는 안전과 위안을 주지만, 진실하지 않은 사람과의 우정 아니 그런 사람과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거북한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진실은 머지않아 천 가지 방법들로 빛으로 드러날 터인데, 거짓말하는 사람은 왜 나중에 자기가 항상 의심받을 것이라는 점을 숙고하지 못합니까?

어떻게 그 사람의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비록 그가 진실을 말한다 해도, 그의 말을 듣는 사람이 그 말을 믿고 싶어 한다 해도 의심은 항상 남아 있을 것입니다. ‘저 사람은 지금도 거짓말하고 있나?’ 하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물을 것입니다. ‘거짓 증언이 어디 있는가?’ 법적인 증언만이 거짓 증언인 것이 아니라 모든 거짓말이 다 거짓 증언인 것입니다.

하느님과 어린이처럼 순박하시오. 여러분 일생의 모든 순간에 진실하시오. 여러분은 착한 사람으로 인정받기를 원합니까? 진정으로 착하게 되시오. 설사 어떤 중상가가 여러분에 대하여 악담하려 해도 착한 사람 백 명이 말할 것입니다. ‘아니오, 그것은 사실이 아니오. 그는 착한 사람이오. 그의 행실들이 그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소.’

한 지혜의 책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악인은 그 입에 음흉한 미소를 띠고 다니고… 그 비뚤어진 마음으로 항상 악을 계획하고 있으며, 불화의 씨를 뿌린다… 주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이 여섯 가지 있고, 그분의 영은 일곱째 것을 몹시 싫어하신다. 즉 거만한 시선, 거짓말하는 혀, 무죄한 피를 흘리는 손, 악한 음모들을 구상하는 마음, 악행을 저지르기 위하여 급히 달려가는 발, 숨 쉴 때마다 거짓말하는 거짓증인, 그리고 형제들 사이에 불화의 씨를 뿌리는 사람이다.(잠언6,15-19)

악인이 덫에 걸릴 때 그 자신의 입술에 책임이 있다. 거짓 증언은 속임수일 뿐이다. 진실을 말하는 입술은 영원히 굳건히 서나 거짓말하는 혀는 한 순간만 지속한다. 험담가의 말은 소박하게 들리나 사람의 마음을 파고든다. 반역을 꾸미고 있는 원수는 그의 말로 알아볼 수 있다.

속삭이는 자의 말을 믿지 마라. 왜냐하면 그는 그의 마음속의 일곱 가지 악의를 그 말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그는 기만적으로 자기의 증오를 숨기고 있으나 그의 사악함은 결국 드러날 것이다…

구덩이를 파는 사람은 그것에 빠질 것이고, 돌은 그것을 굴리는 사람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거짓말의 죄는 세상만큼이나 오래되었고, 그것에 대한 지혜로운 사람의 생각은 거짓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과 마찬가지로 변하지 않습니다.

나는 말합니다. 항상 한 가지 말만을 하시오. 당신의 ‘예’는 항상 ‘예’여야 하고, 당신의 ‘아니오’는 권력자들과 폭군들 앞에서라도 항상 ‘아니오’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당신은 하늘에서 그것으로 인하여 큰 상을 얻게 될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본능적으로 자기가 착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가고, 착함 외에는 다른 것을 찾지 않는 어린이처럼 솔직하게 되시오. 그는 자기가 말을 너무 많이 한다거나 그것으로 인하여 꾸중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의 착함이 그에게 생각하게 하는 대로 말합니다.

평안히 가시오. 진리(the Truth)가 여러분의 벗이 되기를.”

자기 아빠 새의 노래를 듣는 새끼 새처럼 머리를 쳐든 채 줄곧 예수의 발 앞에 앉아 있었던 어린 아스리엘은 아주 사랑스러운 몸짓을 한다. 그는 자기의 작은 얼굴을 예수의 무릎에 비비며 말한다.

“당신은 착하고, 나는 당신을 사랑하니, 나와 당신은 친구야. 지금 나는 그렇게 말할 거야.”

그러면서 그는 넓은 방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들리도록 목소리를 높이고, 예수께서 하시는 것 같은 몸짓을 한다.

“모두들 들으세요. 나는 거짓말하지 않고 나자렛의 예수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아요. 그 사람들은 야곱의 사다리로… 천사들과 함께 높이, 높이, 아주 높이 올라가서 주님을 만나면 거기서 멈추는 거야.”

아이는 자기의 작은 치아를 드러내며 기쁘게 웃는다.

예수께서는 그를 쓰다듬어주시고 사람들 가운데를 지나가신다. 예수께서는 아이를 엄마에게 데려다주시며 말씀하신다.

“아주머니, 당신의 아이를 나에게 주어서 고마웠습니다.”
“이 애가 당신을 귀찮게 해드렸지요…”

“아닙니다. 이 아이는 나에게 사랑을 주었습니다. 이 아이는 주님의 어린이입니다. 주님께서 항상 이 아이와 아주머니와 함께 계시기를. 안녕히 가세요.”

모든 것이 끝난다.

 


 

131. ‘맑은 내’에서의 예수.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

1945. 3. 15.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합니까? 호사입니까? 수많은 하인들입니까? 무수한 땅들입니까? 황혼부터 새벽까지 계속되는 연회입니까? 아닙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집과 빵과 옷이 전부입니다. 생활에 불가결한 것들입니다.

여러분의 주위를 둘러보시오. 누가 가장 행복하고 가장 건강합니까? 노년의 건강한 평온을 즐기는 사람입니까? 향락자들입니까? 아닙니다. 정직하게 살고, 정직하게 일하고, 정직한 것을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음란에 중독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건강하고, 주지육림에 중독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민첩하며, 시기심에 중독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명랑합니다. 반면 점점 더 많이 소유하기를 갈망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평화를 죽이고, 기쁨이 없으며, 시샘과 남용으로 소진되어 일찍 늙어갑니다.

나는 ‘너희는 도둑질하지 마라’는 계명을 ‘너희는 너희 이웃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는 계명과 연결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과도한 욕심은 그를 도둑질하도록 충동합니다. 그 두 개의 거리는 매우 짧습니다.

모든 욕구가 죄 되는 것입니까?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밭이나 공장에서 일하며 자기의 가족을 위한 음식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것을 얻기를 원하는 가장은 확실히 죄짓는 것이 아니라 가장으로서의 자기의 의무를 다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더 즐기기만을 원하고, 향락을 더 누리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의 재물을 취하는 사람은 죄짓습니다.

시샘! 남의 재물을 탐내는 것은 탐욕과 시샘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나의 소중한 자녀들이여, 시샘은 하느님으로부터 사람을 갈라놓고, 그를 사탄과 결합시킵니다.

여러분은 루치페르가 자기의 것이 아닌 것을 탐낸 최초의 존재였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그는 대천사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천사였고, 하느님을 뵙는 지복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으로 만족했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하느님을 부러워하여 하느님이 되기를 원했고, 그래서 마귀(demon)가 되었습니다. 최초의 마귀 말입니다.

두 번째 예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모든 것을 부여받아 지상낙원과 하느님의 우정을 누리며,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은사들로 축복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과 악에 대한 하느님의 지식을 시샘했고, 그래서 에덴에서 추방되었고, 하느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습니다. 최초의 죄인들이 된 것입니다.

셋째 예입니다. 카인은 아벨의 주님과의 우정을 시샘하여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아론과 모세의 누이인 마리아(미리암)는 자기의 오라비를 시샘하여 이스라엘 역사에서 첫 번째 나병환자가 되었습니다.나는 하느님의 백성의 전체역사를 통하여 한걸음씩 여러분을 인도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과도한 욕심은 사람들을 죄인들로 만들고, 나라에 재앙을 불러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 세기를 두고 쌓이고 쌓인 모래알들이 산사태들을 일으켜 마을들과 그 주민들을 뒤덮어버리는 것처럼 개인들의 죄들이 쌓이면 나라에 재앙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나는 자주 어린이들을 예로 들었는데, 그들은 순진하고 잘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는 여러분에게 욕심이 없는 새들을 본받으라고 말하겠습니다.

보시오. 지금은 겨울이어서 과수원들에 먹을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그놈들이 여름에 먹이를 쌓아두려고 애씁니까? 아닙니다. 그놈들은 주님을 믿습니다. 그놈들은 작은 벌레 한 마리, 낟알 하나, 빵 부스러기 하나, 먹다 남은 것 하나, 물에 떠 있는 각다귀 한 마리쯤은 언제나 잡을 수 있다는 것, 겨울에 둥지를 틀 수 있는 따뜻한 굴뚝이나 양털뭉치 하나쯤은 항상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놈들은 둥지를 만드는 데 쓸 건초가 필요하고 새끼들에게 줄 더 많은 양식이 필요할 때가 되면, 목장에는 향기로운 풀이 있고 과수원과 밭고랑에는 맛있는 먹이가 있고 공중과 땅에는 곤충이 가득할 거라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그놈들은 천천히 노래합니다. ‘조물주시여, 당신께서 저희에게 주시는 것과 주실 것에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놈들은 사랑의 계절이 되어 짝짓기를 즐기고, 자기들의 새끼들이 많이 불어나는 것을 보게 되면, 재빨리 목청껏 찬미가를 부릅니다.

새보다 더 명랑한 피조물이 있습니까? 그런데 사람의 지능에 비하여 그놈의 지능은 무엇입니까? 산 앞의 차돌 한 개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놈은 여러분에게 교훈을 줍니다.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아무런 불순한 욕구들이 없이 사는 사람은 새의 기쁨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느님을 신뢰하고, 하느님께서 자기의 아버지라고 느낍니다. 그는 떠오르는 해를 보고 미소 짓고, 내리덮이는 밤을 보고 미소 짓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태양은 자기의 벗이고, 밤은 자기의 자양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는 악의 없이 사람들을 보고, 그들의 복수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어느 모로도 그들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정직한 생활은 질병들을 막아주고, 평화로운 휴식을 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기의 건강과 잠에 대하여 걱정하지 않습니다.

끝으로 그는 항상 올바르게 살아와서 하느님께서는 자기에게 미소만을 지으시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왕도 죽고, 부자도 죽습니다. 왕권도 죽음을 피하지 못하고, 돈도 영생불멸을 사지 못합니다. 왕들의 왕, 주들의 주 앞에서는 왕관과 금전은 가소로운 것일 뿐이고, 율법에 따라 산 생활만이 가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방의 끝에 있는 저분들은 지금 무엇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말하시오.”

“저희는 안티파스의 죄는 무슨 죄인가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습니다. 도둑질입니까, 아니면 간통입니까?”

“나는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이 아닌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나는 그는 하느님보다 육체를 숭배하기 때문에 우상숭배의 죄가 있고, 간통, 도둑질, 불법적인 욕망들을 품은 죄가 있고, 곧 살인죄를 저지를 것이라고 여러분에게 대답하겠습니다.”

“그는 구세주이신 당신에 의하여 구원받겠습니까?”

“나는 뉘우치고 하느님께로 돌아오는 사람들을 구원할 것입니다. 뉘우치지 않는 사람들은 구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그가 도둑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는 무엇을 훔쳤습니까?”

“자기 동생의 아내를 훔쳤습니다. 돈을 훔치는 것만이 도둑질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평판을 짓밟는 것, 처녀를 유혹하는 것, 남편에게서 아내를 빼앗는 것도 남의 소나 나무를 훔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도둑질입니다. 도둑질은 간통, 간음 또는 거짓증언에 의하여 가중됩니다.”

“그러면 매음하는 여자는 무슨 죄를 짓습니까?”

“만일 그녀가 유부녀라면, 간통과 자기의 남편에 대한 도둑질의 죄를 짓습니다. 만일 그녀가 미혼이라면, 간음과 자기 자신에 대한 도둑질의 죄를 짓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요? 그 여자는 자기의 것을 주는데요!”

“아닙니다. 우리의 육체는 하느님의 성전인 영혼의 성전이 되도록 하느님에 의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온전하게 보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혼에게서 하느님과 우정과 영원한 생명을 훔치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창녀는 사탄에게만 속해 있겠군요.”

“모든 죄는 사탄과의 매음(prostitution)입니다. 죄인은 몸을 파는 여자처럼 부정한 이익을 얻기를 바라며 부정한 사랑으로 사탄에게 자기를 내어줍니다. 사람을 더러운 짐승처럼 만드는 매음죄는 중한 죄, 매우 중한 죄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다른 모든 대죄(capital sin)가 매음죄보다 덜 중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우상숭배에 대하여 뭐라고 말할까요? 살인죄는? 그런데도 하느님께서는 금송아지 사건 후에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분은 다윗의 두 가지 범죄 후에 그를 용서해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회개하는 사람을 용서해주십니다.

회개는 죄들의 수와 중대성에 비례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더 많이 뉘우치는 사람은 더 많이 용서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뉘우침도 일종의 사랑, 적극적인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회개하는 사람은 자기의 회개로 하느님께 말씀드립니다. ‘저는 당신의 진노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당신을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말합니다. 더 사랑하면 더 사랑받습니다. 완전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완전히 용서받습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가시오. 그러나 그 전에 나는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마을 입구에 많은 자녀를 거느린 한 과부가 굶어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빚 때문에 세 들어 살던 집에서 쫓겨났는데도, 그 여자는 그래도 집주인이 자기를 내쫓기만 했다며 그에게 ‘고맙다’고 말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준 기부금으로 그들에게 식량을 사주었습니다만, 그들에게는 안식처가 필요합니다. 자비는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희생입니다. 자비를 베푸시오. 그러면 나는 여러분에게 그분의 이름으로 상급을 약속합니다.”

사람들은 속삭이고, 서로 상의하고, 토론한다.

그 동안에 예수께서는 실명 직전인 사람을 고쳐주시고, 자기의 병든 며느리에게 가서 그녀를 고쳐달라고 그분께 청하려고 도코에서 온 작은 노파의 말을 들으신다. 그것은 눈물겨운 긴 이야기인데, 오늘 나는 녹초가 되어 그것을 기록하지 않겠다.

그런데 다행히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다행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세 시간 동안 계속되어 눈까지 어른거리게 하는 심장발작 때문에 글을 계속 쓸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