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 교리서
제3편 14강 십계명(1) 하느님을 흠숭하라!
지난 내용)
십계명을 소극적,형식적, 의무적으로 실행하는 것을 넘어 → 사랑의 계명을 적극적으로 실천하자.
십계명: 구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을 해방과 자유의 삶으로 인도하셨음을 전재로 하고 열가지의 계명을 나열했음.
1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
2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3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
4 부모에게 효도하여라
5 사람을 죽이지 마라
6 간음하지 마라
7 도둑질을 하지 마라
8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
9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
10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
<제1계명>
한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셨다. 하느님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감사의 예로 하느님을 흠숭하여라는 계명이 제일 먼저 나옴.
1. 믿음, 희망, 사랑 (향주덕: 주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덕)
하느님만을 믿고, 하느님만을 희망하고, 하느님만을 사랑한다는 것을 향주덕이라고 말한다.
▶‘희망’에 어긋나는 것
1 절망
2 자만
① 하느님 없이도 구원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태도 (무신론, 유물론)
② 회개하지 않고 선한 공로 없이도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믿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과신.
예) '예수천국,불신지옥!' - 심리적, 정신적으로 사람들을 겁박, 압박하는 것. 지옥이라는 표현의 스트레스가 심각하다. 불신의 해석이 잘못됨. 불신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를 교회에 등록해서 교회를 다닌다는 것으로만 해석해서 문제. 회개와 공로 없이 예수님을 믿고 교회만 다니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 해석한 것.
신앙이라는 것은 하느님 사랑에 대한 응답인데, 하느님 사랑에 대한 응답의 태도는 ‘회개’와 ‘공로'를 전재로 한다. 회개와 공로 없는 신앙은 겉으로는 신앙일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자기자신을 스스로 구원하겠다는 것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마태 19,16-21 참조)
< 공로란? >
부자청년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어떤 선한 일을 해야합니까? ' 하고 예수님께 물었을때
예수님의 첫째 말씀은 '계명을 지키라'는 것이었고, 그 계명을 요약한 것이 '네 이웃을 네 몸처럼,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것이었고 '제가 그것을 다 지켰습니다. 뭐가 또 부족합니까?' 물었을때 예수님은 '가진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공로라는 것은 해야할 최소한의 도리에 머무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미사때 고백의 기도, 참회의 시간에 '생각과 말과 행위로' 다 하지 못한 것. 의무를 소홀히 한 것까지도 우리가 뉘우치지 않습니까? 공로는 해야 마땅할 도리에 머무는게 아니라 예수님의 계명의 완성인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 까지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없이도 교회에 등록해서 다니는 것 만으로, 혹은 마음으로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 만으로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믿는 것도 자만이고, 이 자만은 희망을 거스르는 것이다. 자만은 향주덕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맞습니다.
가끔 가다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이 우리 그리스도교(천주교, 개신교) 신자들을 보고, '교회 다니나 안다니다 별 차이가 없더라' 오히려 '교회다니는 사람이 더하다' 고 혹평할때의 내용은 바로 이런 내용일 겁니다.
'분명히 교회나 성당을 다니긴 다니는데 그 사람의 행실을 보면 오히려 더 독하더라.'는 평가가 나올때는 바로 이 부분을 자만한 것입니다..
▶‘사랑’과 관련해서 어긋나는 것
<하느님을 흠숭한다면서 하느님을 미워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예를 들면, 예전에 이라크(이슬람) VS 미국(그리스도교)의 무력충돌이 났을때 인터넷에서 비난이 일어났다.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은 과연 사랑의 하느님이냐?
자비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하는데 구약성경에서보면 전쟁을 일삼고 응징하고 벌하신다. 그런 하느님을 인류의 하느님이라고 보겠느냐고 인터넷상에서 비난이 일었다. 그런 하느님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전쟁, 응징, 벌을 떠올리며 하느님을 사랑하기보다 미워하기까지 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에 어긋나고 있다. 이건 하느님이 그러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태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은 나중에 제대로 다루겠음)
회개, 공로 없이 하느님의 선하심에 무조건 의탁하는 태도도 옳지 않다.
하느님께 대한 흠숭에 공로와 회개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느님을 사랑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미워하게 만드는 일, 하느님에게서 등돌리게 하는 일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하느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잘못때문에 생기는 경우들이 허다하다.
전쟁은 하느님이 행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행한 것. 그것이 폭력에 의한 테러든, 정당한 전쟁이든 전쟁 그 자체는 하느님이 벌이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벌인 것이다. 믿는다는 자들이 하느님을 미워하게 만든 경우 하느님을 흠숭하라는 계명을 어긴 것
하느님을 흠숭하기 위해 많이 실천하는 것
2. 기도, 흠숭, 희생제사, 종교자유, 사회적의무.
< 희생 제사 - 미사(성찬례) >
사회적인 약자, 과부, 고아, 노동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면서, 성대하게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를 하는 모습에 대해서 예언자들의 입을 빌어 하느님께서 역겹다고 하실 정도이다. 구약성경에서 아모스서, 예언서 이사야서에 등장한다.
공로와 회개와 사랑의 정신이 결여된 희생제사는 껍데기일 뿐이다. (하느님께서는 역겹다고 하실 정도로 싫어하신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마태 9,13)
성전은 거룩한 공간인데,
성전이 거룩하려면 외적인 양식이나 형식이나 행위로 드러나기 보다, 사랑, 연민, 이웃에 대한 자선들을 하나하나, 한땀한땀 모아서 그것을 예절이나 전례를 통해 봉헌하는 것이고, 이럴때에만 정신과 형식이 일치한 것이다.
이런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아무리 많은 희생 제물을 놓고 제사를 올린다 하더라도 하느님을 흠숭하는 희생제사가 될 수 없다. 오히려 거꾸로 하느님을 업신여기거나 우습게 여기는 것이다.
< 한국천주교회가 개선해야 할 점> 1984년 한국천주교회200년을 기념하면서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진단.
1. 교회가 중산층화되고 있다.
2.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안정된 사람들의 모임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3. 예수님처럼 가난한 사람들, 제자들처럼 신분이 낮은 사람들, 예수님을 따랐던 세리나 죄인같은 사람들이 설 자리가 없다.
- 오늘날은?
희생제사는 곳곳에서 거룩하게 봉헌되는 것 같은데, 사랑과 정의, 나눔과 섬김과 봉사의 정신을 찾기가 어려운 것은 아닌가!
만약에 그렇다면 이 희생제사는 하느님을 흠숭하는 의무를 다하는게 아니라 하느님을 업수이 여기거나 욕보일 수 있다.
< 종교의 자유 >
종교 자유의 취지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하느님을 흠숭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였음.
- 이것이 타종교에 대한 폄하, 타종교에 대한 억압, 타종교를 부정하는 것으로 이용되는 것은 참 곤란하다.
하느님은 모든 인류의 하느님이십니다. 비록, 문화와 역사에 있어서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한 처음부터 역사를 주재하신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비록 역사와 문화, 문명 안에서 다른 종교의 길과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와 대화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나와 다른 신앙을 갖는 것을 존중해줘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존엄함에서 나오는 기본적인 권리, 인간의 존엄함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는 데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사회적 의무 >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살고 있는 공동체의 정신, 풍습, 법률, 구조(시스템) 등을 그리스도 정신으로 충만하게 할 의무가 있다.
▶ 적극적인 의미의 '복음화'
삶 속에서 개개인이 속해있는 공동체의 정신, 풍습, 법률, 시스템에 그리스도의 정신인 사랑과 정의가 스며들게 하는 것이 하느님을 흠숭하는 것이다.
3. 우상숭배
권력, 인종, 국가, 재물 이런 것을 신격화하는 것도 우상숭배다.
절대권력이라고 표현하는 것, 재물을 이야기할 때 '재물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하는 말. 재물은 수단에 불과한데 재물이 목적으로 전락한 것이죠. 재물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우상숭배라고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박동호신부님 가톨릭교리 - YouTube강의목록 26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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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서 간추림
2133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5).
2134 첫째 계명은 인간에게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바라고, 하느님을 모든 것 위에 사랑할 것을 요구한다.
2135 “주 너의 하느님을 경배하여라”(마태 4,10). 하느님을 흠숭하고, 하느님께 기도하고, 그분께 마땅한 예배를 드리고, 하느님께 드린 약속과 서원을 지키는 것은 첫째 계명을 준수하는 경신덕의 행위들이다.
2136 하느님께 진정한 예배를 드릴 의무는 인간에게 개인적으로 또 집단적으로 관계되는 것이다.
2137 인간은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종교를 자유로이 신봉할 수 있어야 한다.(66)
2138 미신은 우리가 참하느님께 드려야 할 예배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미신은 우상 숭배, 그리고 점이나 마술 등의 여러 형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2139 말이나 행위로 하느님을 시험하는 행위, 신성 모독, 성직 매매 등은 첫째 계명으로 금지된 불경 죄이다.
2140 하느님의 존재를 배척하거나 거부하는 무신론은 첫째 계명을 거스르는 죄이다.
2141 성화 공경은 하느님 ‘말씀’의 강생 신비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첫째 계명을 어기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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