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리/가톨릭 십계명

가톨릭 십계명(3계명)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 -박동호 신부님

Skyblue fiat 2023. 8. 14. 20:03

가톨릭교회 교리서

제3편  십계명(3)주일을 거룩히 지내라

 

 

 

지난 내용)

지난시간에  2계명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를 설명했는데 2계명 중 한가지만 더 다루고 

3계명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가톨릭 교리서 십계명(원문보기) 

 

 

2계명.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세례명

세례성사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베풀어진다. 세례에서 하느님의 이름은 인간을 성화시키며 그리스도인은 교회에서 부르는 자기 이름을 세례 때 받는다. 그것은 어떤 성인의 이름, 곧 자기의 주님께 모범적으로 충성을 다 바친 한 제자의 이름일 수 있다. 

 

가톨릭 신자들은 세례명으로 예수님, 성모님, 성인들과 천사들의 이름을 받는데 모두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른 분들입니다. 세례명을 받는 그 뜻도 그분들이 우리를 통공의 교리를 통해 돕고, 우리 역시 성인들처럼 하느님께 사랑하고 끝까지 섬기는데 소홀함이 없게 하겠다는 다짐도 이름안에 들어있습니다.

 

성호

성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성호경을 바치며

이마와 가슴, 어깨에 우리 '몸'에 십자 모양을 긋는 행위. 그리스도교 신앙을 나타내는 상징.

 

가톨릭 신자들은 성당에서 모임을 할때,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때, 기도할 때 성호를 긋는데, 자신의 생활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모임을 할 때에도, 각 단체의 활동마다 그것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뜻이 이 모임안에서 실현되기를 바랍니다'는 뜻으로 성호를 그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 보면 모임을 시작할 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해놓고, 즉 모임을 통해 사랑 실천, 자선, 정의 실천, 평등 실천을 하겠다는 의미로 성호를 긋고 모임을 시작한뒤 모임 중간에 분열이나 다툼, 미움, 증오까지 갑,을, 병 등이 싸움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래놓고서는 마침기도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으로 끝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납니다.

 

개인적으로도 하루를 시작할 때에 성호경을 하고 시작했는데, 생활 속에서는 악, 불의, 거짓 이런 것을 해놓고 끝날때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이런 것은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행위이므로 극렬히 피해야 합니다.

 

 

† 우리 몸에 십자성호를 긋는 행위의 의미

 

나 자신을 십자가에 매달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처럼 희생과 헌신을 하겠다는 의미.

희생과 헌신의 행위의 목적은 훗날 더 큰 현세적 이익을 얻겠다는 의미가 아니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처럼 타인의 이로움을 위해서 타인에게 생명을 가져다 주기 위해서 나 자신을 십자가에 매달겠다는 뜻으로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고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천주교 신자는 하루에도 여러번 성호경을 긋는데, 나는 내 몸에 십자가를 그었다. 나를 십자가를 매단다. 나를 타인의 구원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기 위해 나를 십자가에 매단다는 의미를 세기기를 되세기고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지 성찰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3계명>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

 

주님의 날(주일)  

안식일 -

하느님께서 창조사업을 끝내고 복을 내리신 날. 한 주간의 마지막 날, 곧 이렛날, 오늘날의 토요일

쉬셨다고 알고 있지만, 성경에 보면 복을 내리셨다고 되어있습니다. 안식일을 복을 내리면서 거룩한 날로 삼으셨습니다. 

 

그런데

월요일에 원래 술먹고

화요일에 화나서 술먹고

수요일에 술술 넘어간다고 술먹고

목요일날 목말라서 술먹고

금요일날 술먹고

토요일날... 그럴때까지 술먹고...

그러다가 주일이 되었을 때, 주일이 주님의 날이 되겠느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나머지 6일이 하느님 창조의 날이었다면, 우리 인간은 하느님 창조사업의 협력자로 부름받은 거룩한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월화수목금토가 하느님 보시기 참 좋은 생활을 했는가? 사랑, 정의의 삶으로 월화수목금토 6일 동안 꾸려가는 것이 하느님 보시기 좋은 생활일 것입니다.  그 6일의 생활의 결실에 감사하면서 그날  쉬고, 그런 생활의 결실이 하느님 보시기 좋기 때문에 이 결실에 복을 내리시는 것. 말하자면 그날들을 봉헌하고 주님께서 축복해주시며 하느님의 것으로 삼는다. 우리의 삶을 거룩하게 하신다. 주중에 땀 흘리고 희생하여 사랑한 결실로 안식일을 맞아야 할 것입니다.

 

② 주님의 날

부활 -> 새 창조이고, 창조의 완성입니다.

주일 -> 안식일의 완성.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참된 생명,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는 것. 

 

하느님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영원한 생명에 미리 참여하는 것으로써 주일을 맞을 수 있습니다.

 

③ 성찬례 (미사)

예수님 수난과 부활의 신비를 경축합니다.

우리가 기념하는 주일의 성찬례에 재물이 있어야 하는데, 예수님이 재물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재물입니다. 우리의 삶을 예수님과 합하여 하느님께 재물로 봉헌하는 것입니다.

 

성찬례의 재물: 예수 그리스도 + 우리의 삶

 

이것이 우리가 주일에 미사를 거행하고 봉헌하는 참 뜻인데,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 봉헌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재물로써 하느님께 받아들이시기에 합당해야 하지 않을까? 하느님이 우리의 삶을 예수님의 삶과 합하여 봉헌했을때 기특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이 무엇인가를 한번 성찰해봅시다.

 

개신교든 천주교든 교회에서 회중, 신자, 신도, 혹은 성도들이 하느님께 바치는 것을 자꾸 돈이라는 것으로 가름하려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교회 자체도 그것을 가만히 놔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됩니다.

헌금이 무어냐?

교회에 내는 돈을 하느님께 바치는 돈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화폐단위가 원이고, 미국은 달러고 일본은 엔이고, 유럽은 유로화인데 화폐에도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하느님께서 만일 돈을 받으신다면 어떤 돈을 받으실까요? 가치가 떨어지는 돋보다 더 높은 가치의 화폐의 돈으로 받고 싶지 않으실까요? 왜 이런 농담을 하냐면, 헌금을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헌금은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 = 예수님 자신과 우리의 삶 (헌금 ×)

 

★강조! 성찬례의 제물로서의 우리의 삶 ☞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삶

 

월화수목금토의 우리의 삶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이어야 합니다. 세상을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 땀, 눈물, 희생으로 일군 삶인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타인의 이로움과 타인의 생명을 위해서 나자신을 축내고 땀흘리며 사는 삶을 하느님께서는 어여삐 여기시며 재물로 받아들이시지, 우리가 내는 몇 푼의 돈을 재물로 받아들이실까요? 

 

주일의 성찬례를 이야기 할때 가톨릭교리는 재물은 예수님 자신이시고,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삶이 예수님과 덧붙여서 하느님께 봉헌된다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리상으로는 그러한데, 왜 우리 교우들은 내는 돈이 하느님께 내는 돈이라고 믿게 된 것일까요? 왜 그런 경향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하지 않을까 의아한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우리 교우들이 교회나 성당에 내는 돈은 뭘까?

용처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분명하게 가난한 이웃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교무금이나 주일 미사 봉헌행렬을 할때, 여러분이 돈을 내고 하느님께 나아간다는 의미는 절대로 아닙니다. 유럽에서는 앞에 나와서 헌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자리에서 거둬갑니다. 우리는 재대가 앞에 있고 사람들이 앞으로 나가니까 마치 내는 헌금이 재대에 바쳐지는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신부님들이 보는 빨간 책자에 쓰여진 봉헌예절을 보면

'이때 교우들은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 또는 교회 운영에 필요한 재물을 낼 수 있다.' 라고 쓰여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삶이 하느님께 봉헌하는 재물입니다. 우리의 실생활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꾸려질때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는 재물로써 예수님과 합해서 재대위에 올려질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축복하셔서 인간적인 삶이 아니라 하느님의 복이 스며든 거룩한 삶으로 매듭을 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일의 성찬례라고 이해하는 것이 맞습니다.

 

 

④ 은총의 날 / 휴식의 날

이렇게 한주동안의 우리의 삶을 봉헌했을때 여기에 은총을 내리셔서 거룩하게 해주시니까 은총의 날입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휴식의 날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로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은총의 날임과 동시에 휴식의 날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도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 세겨야 할 점 말씀드립니다.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같은 필요와 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난과 고생 때문에 쉴 수 없는 형제들을 기억해야 한다.

주일은 전통적으로 그리스도인다운 신앙심으로써 자선 활동과 병자, 장애인, 노인들에게 겸손하게 봉사하는데 바쳐져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절제와 사랑으로써 집단적 여가 활동으로 생겨나는 휴식의 날에 폭음, 폭식, 폭력을 피하도록 유의해야 한다."

-가톨릭 교리서

 

주일이 소중한 이유는 은총의 날이기도 하지만 휴식의 날이고, 그 휴식의 날은 나만의 휴식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휴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유의하고, 배려하고, 마련해줄 의무까지도 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경제 사정이 어렵더라도, 공권력은 시민들에게 휴식과 예배를 위한 시간을 보장하도록 유의해야 한다.

고용주들도 고용인들에 대해 공권력과 유사한 의무를 지고 있다."   -가톨릭 교리서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는 계명에는 이렇게 여러 뜻이 담겨있습니다. 

 

 

박동호신부님 가톨릭교리 - YouTube강의목록 26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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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서 간추림

2189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여라”(신명 5,12). 
“이렛날은 안식일, 주님을 위한 거룩한 안식의 날이다”(탈출 31,15).
2190 첫째 창조의 완성을 표현하던 안식일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시작된 새로운 창조를 상기시키는 주일로 대치되었다.
2191 교회는 여덟째 날에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데, 이날은 마땅히 주님의 날 또는 주일이라고 불린다.
2192 “주일은……보편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의무 축일로 지켜야 한다.” “신자들은 주일과 그 밖의 의무 축일에 미사에 참여할 의무가 있다.”
2193 신자들은 주일과 그 밖의 의무 축일에, “하느님께 바쳐야 할 예배, 주님의 날의 고유한 기쁨이나 마음과 몸의 합당한 휴식을 방해하는 일과 영업을 삼가야 한다.”
2194 주일의 제정은 모든 사람이 그들의 “가정, 문화, 사회, 종교 생활을 영위하기에 충분한 휴식과 여가를 누리는 데”에 이바지한다.
2195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일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일을 쓸데없이 남에게 강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