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은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함께하신 성모님의 고통을 기억하는 날이다. 자식의 아픔은 어머니에게 더 크게 다가오는 법이다. 시메온은 성모님의 고통을 이렇게 예언하였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4-35). 성모님의 고통을 묵상하고 기억하는 신심은 오래전부터 널리 퍼져 있었으며, 1688년 인노첸시오 11세 교황이 이 기념일을 정하였다. 1908년 비오 10세 교황은 이 기념일을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다음 날인 9월 15일로 옮겨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과 연계하여 기억하게 하였다.
십자가에 못 박히심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루카 23,34
너의 주님이 떨리는 다리로 기다리고 서있다. 그가 힘이 다 빠진 채 머리를 숙이고 있다. 오직 불굴의 의지만이 남아있다.
사람들이 시몬에게서 나무기둥을 받아 땅에 내려놓는다. 마지막 절차가 시작된다.
그들이 그의 몸에서 옷을 잡아채어 벗겼다. 옷이 그의 등과 어깨, 허벅지와 팔다리, 심지어 가슴에까지 달라붙어 있다. 옷이 상처와 말라 붙은 피 속에 박혀있다.
그들이 옷을 떼어내자 상처들이 다시 벌어지고 몸에서 살점들이 떨어져 나간다. 의사들은 몸에 가해진 끔찍한 폭력으로 그가 겪은 아픔에 관해 글을 쓰면서 그가 충격과 고통으로 기절하지 않은 것을 의아해했다.
그들이 상상한 것을 나는 내 눈으로 직접 보았다.
집행자들이 그의 팔을 벌려 못 박을 곳을 표시했다.
그들이 그의 손을 단단히 잡는다. 팔목에 못이 닿는다. 들어 올린 망치가 내려쳐지고 못이 그의 살을 뚫는다. 못이 빠르게 박힌다.
이 일을 글로 쓴 의사들은 그의 엄지손가락이 경련을 일으켜 손바닥에 부딪쳤을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들은 알고 있다. 손목의 신경중추가 건드려지는 것이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의 불길이 그의 팔을 휩쓸어 뇌 속에서 화염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을 것이다. 신경이 완전히 잘리지 않고 찢어진 채로 있어서 신경이 못에 눌린 채로 있으면 매 순간 미세한 움직임에도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반복되고, 아무리 경미한 고통이라도 네 시간은 지속된다고 의사들은 말했다.
의사들은 상상하는 바를 썼지만, 내가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을 너에게 말한다면 너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말하겠다. 그 육체적 고통은 끔찍한 것이었지만 내 아들의 가장 큰 고통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큰 고통은 정신적 고통이었다. 이 정신적 고통으로 나중에 그의 입에서 황량함의 성시가 나온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마르 15,34
그들이 그의 다른 팔을 잡아당겨 못을 대고 망치질할 자세를 취한다. 조금 전에 나는 그의 얼굴이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차마 다시 볼 수 없다.
그러나 고문의 '소리'가 어쩔 수 없이 들린다.
망치질이 멈췄다. 그들이 그의 팔이 못 박혀있는 기둥을 들어 올리며 그를 일으켜 세운다.
나는 중추신경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고통은 안다.
줄어들지 않는 고통! 경련을 일으키는 고문!
그들이 땅에 단단히 박아놓은 수직 버팀대로 그를 데려가 등을 기대게 한 다음, 위로 올려 횡대를 버팀대 위에 고정시킨다.
그의 몸이, 못 박힌 약한 손목으로 지탱된 채 축 늘어지고 머리가 앞으로 떨구어져 있는 모습을 네가 보았다면!
무릎을 구부려 그의 발이 수직 버팀대에 딱 닿게 한 다음, 빠르게 못을 박는다.
내가 끝까지 얘기해야 하느냐? 충분히 보고 듣지 않았느냐? 그가 존경과 신뢰를 잃은 채 거의 친구도 없이 그토록 무섭게 혼자서 여러 시간 동안 하늘과 땅 사이에 걸려있는 모습을 내가 얘기해야 하느냐?
그의 팔목과 발에 박힌 큰 못들이 보이느냐? 찢어진 무릎과, 수많은 상처와, 어깨의 채찍자국과, 머리를 찌르고 있는 가시관과, 부어오른 입술과 코가 보이느냐? 파리들이 상처에 달라붙어 있는 것이 보이느냐? 그가 힘없이 떨구어진 머리를, 조금씩 옮겨야 하는 무거운 물건처럼 온 힘을 다해 천천히 들어 올린다.
그가 기도한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루카 23,34
그도 용서해 준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루카 23.43
그가 말한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
이어서 요한에게 말한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 이제 너는 내 자녀이고, 나는 네 어머니다.
그가 나를 바라본다. 30여 년을 살면서 나를 자주 바라보았지만 지금만큼 부드럽게 바라본 적이 없었다. 그의 말이 쉽게 나온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는 말을 할 때마다 몸을 들어 올려야 했다. 말을 하기 위해 숨을 들이쉬어 폐 속으로 공기를 끌어당겨야 했다. 몸을 바로 세우기 위해 못 박힌 손과 발에 힘을 줄 때 다시 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그에게는 심한 고통 중에도 다른 사람들을 위한 말과 생각과 기도가 우선이었다. 말로 나타낸 것이든 무언의 것이든 그들의 간청을 들은 다음에야 그는 말한다.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마르 15,34 “목마르다.”요한 19,28
이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몸을 끌어당겨 세운다. 그리고 승리에 차서 외친다.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루카 23.46
희생과 속죄와 미사가 끝났다.
나는 기쁘다. 생명이 다한 그의 몸을 내 품에 안고 있어서 기쁘다. 그는 고통을 받았다. 이제 다시는 고통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는 성부를 사랑하여 고통을 받았다. 그분을 위해 십자가에 달렸다. 아버지를 찬미하고,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고, 아버지를 위해 무수한 영혼들을 구하고자 자신의 생명을 내놓았다.
그는 하느님께 사람들이 거부한 인간 의지의 완전한 복종을 바쳤다. 그는 한 남자와 여자가 전능하신 하느님에게서 훔친 바로 그것을 되돌려드림으로써 하느님의 정의를 바로 세웠다.
얘야, 그에게 너 자신을 바쳐라. 그의 사랑에 마음을 열고 온 세상에 오직 하나의 뜻과 하나의 사랑만이 존재하도록, 오직 자애로운 그리스도의 뜻과 사랑만이 존재하도록 네 뜻을 그의 뜻과 일치시켜라.
-나를 닮은 너에게 (그리스도와 나눈 대화)/ 클래런스 J. 엔즐러/ 바오로딸
<클래런스 J. 엔즐러>
저자 클래런스 J. 엔즐러는 아이오와 주 더뷰크에서 자랐으며 컬럼비아 대학을 다닌 후 1930년대 중반에 가톨릭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32년 동안 농림부 장관의 정보 전문가와 연설문 작성자로 일했다. 1972년에는 워싱턴 대교구에서 부제품을 받았고 1976년 때 이른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워싱턴 중심부에 있는 천주의 성모 마리아 성당(ST. MARY, MOTHER OF GOD CATHOLIC CHURCH)에서 봉사했다. 네 권의 책과 많은 논문을 썼고 신앙 서적인「십자가의 길」STATIONS OF THE CROSS을 썼다. 39년의 결혼생활 동안 아내에 대한 성실함과 자녀들에 대한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유산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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