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두려움을 사라지게 한다.
자신의 마귀, 자신의 약점을 식별하는 일이 누구에게나 중요한 까닭은,
약한 고리 하나가 참 고통의 순간에 그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마귀를 아는 은사를 주십사 청하는 기도를 바쳐야 한다.
2022. 8. 31.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남양성모성지
이상각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
마귀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
“예수 성심께 제 생명을 드립니다.”
- 글쓴이: 짐 윌리그 신부님
( 도서: 한 젊은 사제의 인생 레슨)
(글쓴이 짐 윌리그 신부님은 1999년 7월 6일 신장암 선고를 받는다. 젊은 나이에 암 선고를 받고 힘겹게 투병하면서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결국에는 모든 것을 주님의 축복으로 받아들이고 그 과정을 ‘고통의 학교’라고 부른다. 짐 신부님은 ‘고통의 학교’에서 배운 교훈들을 『한 젊은 사제의 인생 레슨』이라는 책을 통해 전해주시고, 책의 출판 2개월 후인 2001년 6월에 선종했다.)
누구에게나 마귀가 있다.
일생동안 내가 싸운 마귀 중 가장 고질적인 것은 ‘낙담’이다. 천성적으로 나는 낙천적이고 열성적이다. 긍정적인 태도를 지니려고 애쓴다. 하지만 때로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아주 낙담하기도 한다. 그런 일이 생기면, 내 마음 속 반대편 목소리가 음량과 강도를 높이고는 자기 비판적이고 부정적이며 실의에 빠뜨리는 생각으로 나를 미치게 하기 시작한다. 부정적인 생각이라는 이 하강 소용돌이로 일단 미끄러져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어렵다.
누구나 수시로 자신을 거꾸러뜨리는 자기만의 ‘마귀’가 있다는 점을 우리는 모두 알아야 한다. 내가 말하는 ‘마귀’는 꼭 극악무도하거나 흉악한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자기 자신이나 남의 신세를 망치거나 상처 주는 것을 마귀라고 규정한다.
이 마귀는 종종 ‘주의’라는 이름을 달고 있기도 한데, 여기에는 자기중심주의, 완벽주의, 물질만능주의, 알코올 중독,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등이 있다. 아니면 마귀는 조급함이나 남을 판단하기, 게으름, 무관심, 오만, 화를 못 참기, 지나치게 비판적으로 굴기 같은 사소한 죄이기도 하다.
나는 마귀를 알고 분명하게 식별하는 일이 아주 값지고 유용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귀는 우리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깨닫기도 전에 우리 삶을 쉽게 쥐락펴락한다. 잘못된 점을 알지 못하면 잘못을 바로잡기 힘든 법이다.
고통을 겪은 후 내가 알게 된 점은 시련이 닥치면 어김없이 마귀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마귀는 전쟁에서의 적군처럼, 우리가 가장 약한 시기에 가장 약한 영역을 가장 반격하기 힘들 때 기다렸다가 공격하는 듯하다. 마귀가 우리를 지배하는 힘을 어떻게 갖는지를 깨달으면 도움이 된다. 우리는 혼자 힘으로 다 알아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려는 탓에 이것만해도 자신을 낮추는 고백이다. 따라서 우리는 도움을 청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또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아야 한다.
이미 시인했듯이 내 마귀는 낙담이며, 나는 암과의 전쟁에서 이 마귀와 부단히 싸워야 했다. 의사를 만나러 진료실에 가면 한 번 걸러 한 번꼴로 낙담할 이유만 더 늘어나는 상황에서는 낙담하기 아주 쉽다. 나는 암 자체보다 암 치료로 더 낙심했다. 치료를 받는 동안 더 심한 고통을 겪는데다가 지금껏 치료를 받아도 낫지 못한 탓이다.
낙담은 정말 맥 빠지게 한다. 이런저런 병과 싸워 본 사람은 병이 악화되면 얼마나 힘들고 허탈한지 이해하리라 확신한다. 조금이나마 나아지려고 날마다 차근차근 열심히 애쓰지만, 병이 도지는 불운을 만나면 감정을 다스리기가 아주 어렵다.
낙담이 나의 약점이자 나의 마귀인 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가만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저항 세력과 특급 보루를 구해야 했다.
나에게 그 저항 세력과 특급 보루는 신앙이다.
나에게 신앙은 낙담이라는 내 마귀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믿음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보장한다.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로마 8, 31) 큰 성인들이 지독한 고통과 어려움을 극복한 것은 믿음 덕이다. 그리고 믿음은 내가 만나는 특권을 누린 몇몇 훌륭한 분들에게도 도움을 주었다.
이런 훌륭한 분 가운데 한 분이,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공연 중에 나에게 왔다. 나는 마이클 스패로우 신부를 우리 성당에 초대해서 주님의 마지막 나날에 관한 이 굉장한 연극을 본당 신자와 지역 주민과 함께 관람하게 했다. 나는 앞좌석에 앉아 있었기에 한 사람이 뒤늦게 도착하는 것을 알아챘다. 그가 대부분의 지각한 사람들처럼 뒤에서 자리를 찾지 않고, 가운데 통로를 걸어 앞좌석으로 와서는 내 옆에 앉아 흥미가 일었다. 누구인지 보려고 고개를 돌렸다가 그를 알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베트남 전쟁의 포로였던 은퇴한 해군 제독 제레미아 덴턴이었다. 그가 7년 반 동안 독방에 감금되어 형언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우리는 멋진 연극으로 시선을 돌렸다. 연극 공연이 끝나자, 덴턴 제독과 나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제독은 눈물이 그렁그렁해서는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을 주제로 한 이 연극에 얼마나 감동했는지 말했다. 나는 그가 7년 반 동안 예수님의 모진 고통을 함께 나눈 사람임을 이해했다. 그는 이와 유사한 괴로움과 고통, 고초를 겪었던 것이다. 그 때 제독은 이런 말로 나를 놀라게 하는 동시에 뭉클하게 했다.
“짐 신부님, 신부님이 암으로 고통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신부님께 해 드리고 싶은 말이 있군요.” 그런 다음 덴턴 제독이 해 준 이야기는 아직도 나를 북돋아준다.
“베트남 감옥 독방에 갇혀 있을 때 나는 끊임없이 고문을 당했습니다. 어느 날인가는 나를 고문대에 묶어 놓고는, 젊은 병사에게 나를 고문해서 고분고분하게 만들라는 명령을 내리더군요. 이 고문을 받으면서 솔직히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는 한계점에 이르렀다고 느끼자, 내가 기도를 했던 것도 아닌데 아름다운 기도가 퍼뜩 떠올랐습니다. ‘예수 성심께 제 생명을 드립니다.’ 라는 기도였지요. 그래서 나는 그 기도를 되풀이하여 바쳤습니다. 그 기도를 거듭해서 바치자 내가 진짜 주님께 내 생명을 바치고 있는 듯했어요. 그러자 주님의 평화가 포근한 담요처럼 나를 덮어 주어서, 더 이상 아프지 않고 평화롭기만 했습니다. 고문하던 병사가 내 얼굴에 나타난 이 변화를 보고는 고문을 멈추었습니다. 그는 지휘관에게 가서 ‘죄송하지만 저는 못하겠습니다.’하고 말했지요. 그러자 그들은 나를 감방으로 되돌려 보냈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예수 성심께 제 생명을 드립니다.’ 하고 그 평화의 기도를 꾸준히 바쳤습니다.”
나는 덴턴 제독이 들려준 놀라운 믿음 이야기에 너무나 감동받아서 그에게 말했다.
“제독님, 예수님이 바로 지금 제독님을 통해 저에게 말씀하시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기도를 매일 바치겠다고 약속하지요.”
내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그가 대답했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신부님, 그 기도를 바치면 고통을 적게 겪느냐 많이 겪느냐, 오래 사느냐 얼마 못 사느냐 하는 것은 개의치 않게 될 겁니다. 평화로워질 테니까요.”
그 때 이후 나는 날마다 하루 온종일 그 기도를 바친다. 가끔 암으로 괴롭고 몹시 외롭다고 느낄 때, 나의 한계점에서, 나는 그 기도를 기억한다.
“예수 성심께 제 생명을 드립니다.”
믿음은 우리의 약점을 강하게 해 준다. 이 신앙을 통해 나는 진정한 평화를 찾는다. 이것은 내가 평생 낙담할 때마다 거기서 빠져나오기 위해 애용해 온 방법이다.
두려움이나 걱정이 나를 덮친다고 느껴지면, 그런 일은 불치병에 걸린 사람에게는 다반사인데, 그럴 때마다 나는 그 기도를 바친다.
“예수 성심께 제 생명을 드립니다.”
“예수님, 당신께 의탁합니다.” 그 기도를 주문처럼 여러 번 반복해서 바치면, 내 믿음이 어떤 근심이든지 막아 주는 것을 서서히 느낀다.
성경은 말한다.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잡으십시오.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불화살을 그 방패로 막아서 끌 수 있을 것입니다.” (에페 6, 16)
믿음은 두려움을 사라지게 한다. 자신의 마귀, 자신의 약점을 식별하는 일이 누구에게나 중요한 까닭은, 약한 고리 하나가 참 고통의 순간에 그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마귀를 아는 은사를 주십사 청하는 기도를 바쳐야 한다. 자신의 마귀를 알고 나면, 자신의 약점을 보강해 줄 것을 식별해야 한다. 믿음은 우리의 방패도 될 수 있다. 이것은 복음이 보증하는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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