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특별한 축복”이란
메주고리예의 목격증인 마리아가
크리자바치(십자가산) 산정에서
성모님에게서 받은 말씀으로
1989년 임마누엘 수녀님과 나눈 대화 속에서,
“어머니의 특별한 축복”이 있으며
살아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
성모님의 특별한 축복을 건네주라고
우리에게 부탁하신 기도 말입니다.
어머니의 특별한 축복을 건네어드립니다.
+ 하느님께 사랑과 흠숭, 찬미와 감사, 모든 영광을 드리기 위하여
찬미 예수님!!!
어머니의 특별한 축복에 대하여
다음 5가지의 사례를 보시면 어머니의 특별한 축복이 무엇인지를 아시게 될 것입니다.
어머니의 특별한 축복을 우리의 생활 속에서 활용하시면 많은 체험을 하시게 될 것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체험과 같이 알려주시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 인간다움의 삶, 다시 말하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으로 돌아가서 사람들로 하여금 질서와 그 본연의 위치를 다시 찾으므로 우리에게는 구원이 되고 하느님께는 영광이 되는 하느님 뜻의 나라가 사람들 가운데 이루어져 아버지 하느님의 뜻이 하루 빨리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이 글을 드립니다.
1. 어머니의 특별한 축복
(메주고리예의 기적. 저자-임마누엘 수녀 p78에서 발췌)
쏘냐는 10년 가까이 심한 우울증에 시달려 왔다. 가족들의 사랑이나 약물 치료도 그녀가 빠져있는 깊은 우울증으로부터 구해낼 수는 없었다. 온 가족은 그녀가 자살을 시도할지도 모르는 최악의 경우를 우려하고 있었다. 강력한 화학요법은 너무도 비인간적인 방법이었기에 가족들은 온갖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이 쏘냐의 집에서 차라도 한잔하자고 모였다. 그들 중에는 메주고리예에 다녀온 에릭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는 쏘냐를 그날 처음 보았는데도, 그녀의 심한 고통을 보자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그래서 “어머니의 특별한 축복” 기도를 아무도 모르게 그녀에게 조용히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연락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후, 에릭은 우연히 쏘냐의 집에 같이 갔던 친구를 만나게 되어 쏘냐의 안부를 물었다.
“그럼 아직도 모르고 있었어요?” 그가 이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완전히 회복되었답니다! 믿어지지 않지요? 그렇게 건강을 빨리 되찾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을 못했어요! 그리고 그녀가 나한테 무어라고 말 한지 알아요? ‘좀 우스꽝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날 당신들이 방문하고 간 이후로 나는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 안에서 무언가 찰깍하는 느낌이 있었고 한 달이 채 못 되어 정상으로 돌아온 거죠!’”
파리에 살고 있는 베르뜨랑이라는 남자 간호사는 젊은이들이 영적 도움도 받지 못하고 매일 같이 에이즈 병으로 죽어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아야만 했고 자신도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처지로 자신의 직장을 몹시 싫어하고 있었다. 그가 근무하고 있는 큰 병원은 재정적 이유로 의사나 간호사들이 부족하여 언제나 손이 모자라는 상태였다. 간호사들은 환자에게 최소한의 치료만 해주고는 다음 병실로 달려 가야하는 형편이었다. “이건 비인간적인 정도가 아니야.” 그가 중얼거렸다. “이건 범죄행위라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이렇게 처리하는 법이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베르뜨랑이 메주고리예에 머물고 있던 어느 날, 그는 “어머니의 특별한 축복”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1년 후 다시 집으로 돌아 왔을 때는 전혀 새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건 정말 대단해요! 성모님께서 나에게 해결책을 주셨지요! 에이즈 환자를 치료해주기 위해 급히 달려갈 때 나는 그 환자를 위해 “어머니의 특별한 축복”을 해 준답니다. 물론 아무도 모르게 나 혼자서 속으로만, 그러면 나는 그의 임종시에도 성모님의 망토로 그를 싸주시는 걸 믿고 있지요. 어떤 때는 에이즈 병으로 죽어가던 환자가 살아난 적도 있었습니다.
이 “어머니의 특별한 축복”이란 메주고리예의 목격증인 마리아가 크리자바치(십자가산) 산정에서 받은 말씀으로 1989년 임마누엘 수녀님과 나눈 대화 속에서, “어머니의 특별한 축복”이라고 하는 것에 관하여 이야기했던 것으로, 수녀님께서는 그 당시 크로아티아 문화라든가 성모님께서 하시는 “방식”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기 때문에 그만 엉뚱한 질문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수녀님 : 마리아, 성모님께서 이곳에서 주시는 축복에는 여러 가지가 있던데, 그 차이는 어떤 것이지요?
마리아 : 성모님께서는 1985년 8월 15일, ‘신성한 축복’을 주셨고, 그 해 12월 19일에는 ‘어머니의 축복’을, 1987년 6월 25일에는 ‘하느님의 축복으로 너희를 축복한다.’라고 하셨고요, 1988년 7월 25일에는 ‘기쁨의 축복’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유명한 ‘어머니의 특별한 축복’이 있지요. 살아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 성모님의 특별한 축복을 건네주라고 우리에게 부탁하신 그 기도 말입니다.
수녀님 : 이런 여러 가지 축복의 차이점을 설명해 주겠어요?
마리아 : 저는 모릅니다. 성모님께서 그 차이점을 말씀하신 적이 없으니까요.
마리아는 수녀님의 질문에 인색한 대답을 해 주었다. 수녀님의 실망이 얼마나 컸는지 여러분이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직접 해 보아야 제대로 배운다고 합니다. 목격증인들이 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그들에게 묻는 대신 삶에 충실해야 한다는 자극을 받습니다!
누군가가 내게 과일을 주면, 나는 그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 과일을 받아먹는다. 어떤 과일이건 내 몸 안에서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역할을 다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과일이 내게 영양분을 준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과 같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유익한 것을 주시며, 우리는 그것을 받거나 또 거절할 수도 있다.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면, 창조주께서는 그분의 법에 따라, 우리 안에서 그 선물이 열매를 맺게 하신다. 우리는 이것만 알면 충분하다. 그 나머지는 하느님만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마음 편히 살아가면 족하다. 최후의 만찬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것을 받아먹어라.”라고 하셨지, “이것을 이해하고 먹어라.”라고 하시지 않았다.
메주고리예 성모님께서 “어머니의 특별한 축복”을 주셨다. 그러면 나는 그냥 감사히 받으면 된다. 그 축복을 모든 피조물에게 건네어 주라고 하셨으므로, 그냥 건네어 주면 되는 것이다. 성모님께는 그 축복에 관한 “사용법 책자”를 주시지 않았지만, 대신 온 마음을 다해 그 축복을 넘겨주면 된다는 것이다.
하루는 마리아가 “어머니의 특별한 축복”을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아주 간단하게 건네주었다고 하면서 예를 들어,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여기에 성모님께서 내게 주신 ‘어머니의 특별한 축복’이 있으니, 나는 지금 그것을 당신에게 드립니다.”
수녀님 : 성모님께서 이런 식으로 하라고 가르쳐 주셨나요?
마리아 : 아니오, 우리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좋아하는 기도를 자유롭게 하면 되지요.
수녀님 : 손을 얹고 하지는 않나요?
마리아 : 아니오, 성모님께서 그런 말씀은 없으셨어요.
수녀님 : 그러면 이 축복을 많은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건네줄 수도 있나요?
마리아 : 아니오, 한 번에 한 사람에게만 건네주도록 되어있어요.
우리의 마음이 그분께 귀 기울이고 있으면, 내가 누구를 축복해 주어야 할지는 성모님께서 친히 알려주시는 것을 느낀 적이 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기도를 전적으로 거부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우리는 마음으로 조용히 이 축복을 건네줄 수 있다. 이렇게 해 주면, 하느님께서는 평화, 기쁨, 또는 회개와 같은 다른 종류의 은총을 그런 사람들에게 부어주신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은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성모님께서 그분의 축복을 건네주기를 우리에게 정말 부탁하셨다는 것을 마리아가 단호히 주장하고 있으며 성모님께서는 “내가 이곳에서 전하는 메시지를 충분히 이해하려면, 성서를 읽어야 한다.”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히브리어로 “축복(berakhah)”의 어원은 “무릎”이다.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그분 앞에 나 자신을 굴복시킨다는 의미이다.
축복(berakhah)의 파생어로는 선물과 은총과 평화를 뜻한다. 그리스어나 라틴어는 축복이라는 단어의 놀라운 의미를 거의 상실하고 말았다. 아이가 어머니의 태를 떠나 이 세상으로 나오게 되면, 그 후로는 밤이나 낮이나 주로 어머니의 무릎 위에서 지낸다. 이렇게 유아가 첫 선물을 받는 곳이 어머니의 무릎인 것이다.
“Benedire” 라는 단어는 글자 그대로는 “선한 것을 말한다.” 라는 뜻이다. “축복”을 의미하는 라틴어이다. 그렇다면 무릎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부드러운 손길로 애무를 받고 위안을 받으며 또 어머니의 넘치는 사랑을 받는 곳이 아닐까?
우리가 하느님의 이름을 찬미하고, 그분을 경배 드리는 것은 그분의 선물과 은총을 이 세상 만인에게 주시도록 구하는 것이다.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는 수직적이다. 즉 상하의 관계이다. 반면 사탄은 하느님의 지위를 끌어내리려고 기를 쓴다.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과 모든 선물은 하느님으로부터 얻는다. 1985년 8월 15일 성모님께서는 “나는 하느님께서 내게 복을 허락하셨으니 이것으로 너희를 축복한다.” 라고 말씀하셨다. 성서에 보면, 아브라함처럼 특별한 복을 받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 복을 건네주는 전달자가 되고 있다. “너를 통하여 온 세상 뭇 백성이 덕을 입으리라.” 그리고 “너에게 복을 비는 사람들에게 내가 복을 내릴 것이다.”[창세 12,3]
시초에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축복하여 주시고 다음에 그들에게 동물과 식물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권한을 주셨다. 이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여러 가지 좋은 선물을 사람을 통하여 그 피조물들에게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창세 1,28]
노아도 자기 차례가 되자, 하느님의 특별한 축복을 자기 아이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들은 아비의 축복을 통해 자비가 충만한 새로운 인간성을 창립했고, 다시 성령으로 충만해졌다.[창세 9,1]
족장들은 자식들에게 축복을 무조건 물려주었고, 그 축복은 족장들이 예언한 것을 성취시켰으며 그리고 자식들이 물려받은 축복은 차례로 그들의 후손들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적용되었다.[창세 48,18. 창세 49,28]
아론, 모세, 다윗, 솔로몬 그리고 백성의 목자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복을 매우 구체적인 방법으로 전했다. 의식, 거룩한 집회, 말씀, 몸동작 그리고 전례 등이 이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다.
나자렛의 성모 마리아 자신도 엘리사벳으로부터 그리고 성전에서 시메온으로부터 축복을 받았다. 의로운 요셉도 안식일 기간에 아들 예수를 축복했다. 요셉이 예수를 축복할 때 사용한 기도문은 베냐민과 므나쎄에게 허락되었던 초창기 축복 형식을 본 딴 것이었고 마리아의 아버지가 마리아를 축복할 때 사용한 기도문은 여자 아이들을 위하여 마련된 것으로 라헬과 레아에게 사용되었던 축복 형식을 본 딴 것이었다.
이러한 축복들은 성 가정 생활의 일부분이었고, 나아가서는 전 유태인들에게 생활화 되었으며, 훗날에는 유대-그리스도인 모두에게 보편화되었다. 아버지들은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에게 허락되었던 성스러운 축복을 자기 자식들에게 대대손손 물려주도록 유태인 법으로 정해져 있다.
축복은 또한 종말론적인 은총이라고 성서는 우리에게 가르친다. 왜냐하면 축복을 해주는 사람의 기도 속에는 언제나 메시아를 기다리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마치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의 첫 번째 임하심을 예비했던 것처럼, 메주고리예에 오신 성모님께서도 바로 당신 아들 예수님의 재림을 대비해서 당신의 자녀들을 준비시키시려고 오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세례자 요한의 축일인 6월 24일을 택하시어 메주고리예에 처음 발현하신 것도 의미심장한 일이라 하겠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비하여 우리 자신을 준비하기 위해 “어머니의 특별한 축복”이 필요하다.
성서에 의하면, 남을 위해 축복하면 할수록 자기 자신은 더욱 부유하게 된다. 내가 먼저 줌으로써 백배로 되돌려 받는다. 그것이 하늘나라의 원동력이다! 남을 축복하는데 인색한 사람은 가난해지거나 아니면 하느님의 은총을 자기 자신 속에 없애버리는 위험이 따른다. 성모님께서도 우리가 그분의 메시지를 실천하고, 널리 전파하며, 그 말씀의 증인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렇다면 왜 우리를 축복해 주시는 걸로 만족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건네주기를 원하시는 걸까?
그 회답으로, 증언은 축복을 대치하지 못한다는 것이며, 이는 전적으로 별개의 본체라고 하겠다. 성모님께서는 부모들에게 아이들의 모범이 되어주고 평화의 사도가 되어주기를 바라신다. 그러나 역시 또 아이들을 축복해주기를 바라신다. 아이들이 자라가기 위해서는 부모의 축복이 필요하며, 증언은 축복처럼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한다. 또한 증언만으로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계약을 물려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증언은 좋은 영향을 가져다주며, 사람들을 이끈다. 그러나 축복기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활동이다. 예를 들면,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을 우리에게 건네주신다. 그 축복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영혼을 직접 변화시킨다.
평화의 모후께서는 오실 때마다 목격증인들과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을 축복해 주신다. 우리들이 목격증인이 아니라 해서 축복의 양이 적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나의 보잘것없는 지식으로 내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성모님께서는 오셔서 내 영혼의 빈곤하고 초라한 모습을 보신다.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가장 좋은 선물들을 가져오신다. 그분은 나의 어머니이시니 내게 주실 여러 가지 선물을 가져오실 것이다. 어머니의 순수한 사랑으로 오늘 내게 최고의 축복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망설임 없이 그분께서 주시는 것을 받으리라. 그것이 천국을 맛볼 수 있는 최상의 방법임을 나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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