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묵상 대피정
이범주 바오로 신부
주님 수난 묵상 피정은 여러분들이 주님의 수난을 깊이 이해하고 묵상함으로써 필요한 모든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입니다.
제1강의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이사 53, 5-6). - 고난 받는 종에 대한 예언.
“구속을 위한 예수님의 죽음은 특히 고난 받는 종에 대한 예언을 성취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601).
제1장 주님의 수난 묵상 피정 동기, 과정, 협력방법
1. 주님의 수난 묵상 피정을 하게 된 동기
1) 주님 수난의 신비를 깊이 이해하도록 돕기 위하여
- 많은 이들이 주님 수난의 신비를 잘 모르고 있음
- 묵주의 기도 고통의 신비나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지만 형식적으로
바치는 이들이 많음
- 그래서 주님 수난의 신비를 깊이 이해하고 체험하여, 진정한 마음으로
수난의 신비를 묵상하며 기도하도록 돕기 위하여 이 교육을 실시함
2)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잘 하도록 돕기 위하여
-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기도 중에 가장 효과적인 기도가 ‘수난의 시간들’
기도임
- 이 피정에서는 수난의 시간들 24시간의 요점을 공부하고,
각 시간과 연결된 천상의 책 내용도 공부함
- 이를 통해 여러분들은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더 잘 할 수 있게 될 것임
3) 고통 중에도 기쁘게 살 수 있도록 돕기 위하여
- 예수님과 성모님, 사도들과 성인들은 고통 가운데에서도 기쁘게 사셨음
- 우리도 그분들처럼 고통을 희생 제물로 봉헌하면서 성경 말씀대로
기쁘게 살아야 함
- 이를 돕기 위하여 이 피정을 실시함
2. 주님의 수난 묵상 교육 과정
- 주님의 수난 묵상 피정은 15개의 강의와 질의응답, 미사로 이루어짐
- 제1강의 후 제2강의부터 제10강의까지는 ‘수난의 시간들’과 관련된 강의임
- 제11강의는 예수님의 내적 고통,
제12강의는 성모님의 비탄과 고통,
제13강의와 제14강의는 산제물,
제15강의는 십자가(고통)의 신비 안의 복된 삶에 대한 강의임
3. 앞으로의 협력방법
1) 빠짐없는 참석
- 아무리 좋은 강의가 있어도 듣지 않으면 내 것이 될 수 없음
- 그러므로 주님 수난 묵상 피정을 첫 자리에 놓고 빠짐없이 참석하는
것이 중요함
- 그리고 참석을 하여 강의를 들을 때는 강의 내용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함
2) 수난의 시간들 기도에 충실함
- 수난의 신비를 체험하려면 어떤 기도보다도 ‘수난의 시간들’ 기도에
충실해야 함
- 고리기도를 하고 있는 이들은 자신의 기도 고리가 다른 사람들의 고리와
이어지도록
충실히 해야 함
- 책을 보면서 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은 ‘수난의 시간들’ 녹음을
휴대폰으로 들으면서 기도할 수도 있음
3) 주님의 수난 묵상에 전념함
- 성모님과 루이사는 주님의 수난 묵상을 그친 덧이 없었다고 함
- 하루 종일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여 모든 은총을 얻고 주님으로
충만해졌다고 함
- 우리도 하루 내내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훈련을 하면 좋을 것 같음
- 이를 위해서는 수난의 시간들 24시간의 핵심 내용을 외워야 함
- 루이사와 그의 동료들은 수난의 시간들을 모두 외우고 있었기에
손으로 뜨개질을 하면서도 입으로 수난의 시간들을 바칠 수 있었다고 함
- 우리는 수난의 시간들을 모두 외우지는 못하더라도
각 시간의 제목과 핵심 내용은 외우도록 힘써야 함
- 그래야 생활 속에서 각 시간마다 수난 묵상이 가능해짐
제2장 주님의 수난 영상 보기
- The Passion of the Christ
제3장 예수님의 대속적 고난
“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셨지만,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되살아나셨습니다.”(로마 4, 25)
“예수님께서는 당신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또 아버지께서 구하기를 원하시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당신 수난과 죽음을 자유로이 받아들이셨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609)
-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의 표현이 예수님의 대속적 고난임
- 세례자 요한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29)이라고
부르신 예수님은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시기에 하느님 앞에서 온 인류를
대신하여 자신을 속죄의 희생 제물로 바치셨음
-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영광과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기쁘게 사랑으로
고난을 당하셨음
1.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예수님의 고난
1-5,10 나자렛 집에서 살던 시절의 나를 본받아라. 그때 내 정신은 아버지의 영광과 영혼들의 구원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 거룩한 일에 대해서가 아니면 입을 열지 않았고, 말을 하기 시작하면 아버지를 거슬러 저질러지는 죄들을 보상하도록 힘써 사람들을 설득하였다.
4-106,2 딸아, 내 수난의 첫째 목적은 영광과 찬미와 영예와 감사와 보속을 하느님의 신성에 바치는 것이다. 둘째 목적은 첫째 목적을 이루기에 필요한 모든 은총과 아울러 영혼들의 구원을 얻는 데 있다.
<첫째 목적 -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서, 둘째 목적 - 영혼들의 구원>
4-140,2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만, 매사에 있어서 신성이 인성을 이끌어 간다는 것과 신성은 우리 각자가 평생토록 해야 이룰 수 있는 일을 단 한 순간에 이룰 수 있고 (그보다 더 많이) 이룰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신성은 무한하고 인성은 유한한데 무한한 신성이 이끌어가고 한 순간에 우리가 평생토록 할 것을 다 이룰 수 있다.>
이 신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 안에서 역사하고 있었으므로, 복되신 예수님께서는 전 생애에 걸쳐 모든 사람을 전체적으로 또 각 사람을 개별적으로 하느님을 행해야 하는 모든 것을 (미리) 행하셨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루이사가 이런 것을 깨달았는데 온 인류가 하느님께 드려야 할 것, 우리 각 사람이 하느님께 드려야 할 것을 예수님께서 다 드리셨다.>
3 그러므로 그분은 각 사람을 대신해서 하느님을 흠숭하고 하느님께 감사와 보속과 영광을 드렸으며, 또한 각 사람 대신 하느님을 찬미하고 고난을 받으시며 기도를 바치셨던 것이다. 따라서, 각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하는 모든 것이 예수님의 성심에 의하여 이미 행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천지창조부터 세상 종말까지 모든 사람이 하느님께 드려야할 감사, 보속, 영광, 찬미 이런 것들을 다 예수님이 드리셨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6-141,2 딸아, 나의 내면을 차지하고 있었던 고통의 일차적인 목적은 모든 것 속에서 모든 것에 대하여 내 사랑하올 아버지를 흐뭇하게 해 드리는 것이었고, 그 다음 목적이 영혼들의 구원이었다.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내 마음을 가장 기쁘게 했던 것은 아버지께서 내가 당신에 대한 사랑으로 그토록 많은 고난을 겪는 것을 보시면서 내게 흐뭇함을 드러내시는 것을 보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인정을 하지 않아도 아버지께서 인정을 하시면 다되는 것입니다.>
7-4,2 딸아, 나의 손과 발만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아니라 내 인성의 다른 모든 부분과 내 영혼과 신성까지도 온전히 아버지의 뜻에 못 박혀 있었다. 사실, 십자가에 못 박힘은 아버지의 뜻이었으므로 나는 그분의 뜻에 전적으로 못 박혀 변형되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영혼과 신성까지도 온전히 아버지의 뜻에 못 박혀 있었다. 모든 것을 아버지의 뜻대로 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도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3 이것이 꼭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물리치고 하느님께서 주신 선하고 거룩한 모든 것을 떠나서 인간 자신의 뜻을 중요한 무엇으로 여기며 창조주를 모욕하는 것이 바로 죄이기 때문이었다.
<하느님의 뜻은 선악과를 따먹지 않는 것이었는데 따먹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을 물리쳤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자기 뜻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데 반대로 자신의 뜻을 중요하게 여겨서 하느님을 모욕하는 것이 죄입니다. 하느님을 첫 자리에 놓는다면 그분의 뜻도 첫 자리에 놓아야 합니다.>
4 그래서 나는 인간의 이 방자함과 자기 자신을 우상으로 삼는 짓을 보속하기 위하여 큰 희생을 바쳐서라도 나의 뜻을 완전히 흩어 없애고 아버지의 뜻으로 살고자 했던 것이다.
<자기의 뜻을 첫 자리에 놓으니까 자신이 우상이다. 우리 뜻으로 산 것을 다 보속하기 위해서 아버지의 뜻으로 살고자 하셨다.>
10-43,8 나의 손발이 못 박힌 그 외적 못 박힘은 얼마 동안 지속되었느냐? 다만 세 시간이다. 하지만 내 존재의 모든 부분이 못 박힌 것과 아버지의 뜻에 내 뜻이 못 박힌 것 - 이 못 박힘은 내 온 생애 동안 지속되었다.
12-99,6 나는 각 영혼을 대신하여 그들이 자기네 창조주께 행하기로 되어 있었던 모든 것을 행하였고, 멸망한 영혼들의 것도 제외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모든 피조물을 대신해서 아버지께 완전한 영광과 사랑과 보속을 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2. 우리의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고난
1-24,13 딸아, 만일 내가 사람들이 내 인성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해서 생각하려고 들었다면 확실히 인류 구원 사업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 대신, 나는 오직 인류의 영원한 구원만을 생각하였다.
<내 몸을 그렇게 망가트릴 것을 생각하면 두려워서 못하는데 그것보다 오직 영혼의 구원만을 생각하고 계셨다.>
나를 사로잡고 있었던 것은 무한한 사랑이었으니, 이 사랑이 나로 하여금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으로 바치게 하였다.
<하느님이신 그분은 인간의 무한한 사랑으로 모든 것을 희생으로 바쳤습니다.>
4-63,3 그 뒤 나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칼바리아산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예수님 안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세대를 보았다.
그분께서는 우리 모두가 그분 안에 있기에 각 사람이 그분을 거슬러 저지르는 모욕을 전부 느끼셨다. 그리고 모든 이로 말미암아 전반적으로, 각 사람으로 말미암아 개별적으로 고난을 받으셨다. 그러므로 나의 죄를 감지할 수 있었고 그분께서 특히 나 때문에 받으신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들이 잘못하는 것을 다 느끼신다. 느끼셔야 보상을 드릴 수가 있다. 우리 각 사람을 위해서 다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들 각자가 저지른 죄 하나하나를 다 느끼시면서 거기에 대한 보상으로 고난을 다 받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뭉뚱그려서 인류를 위해서 고난을 받으셨다고 하면 안됩니다. 우리 각 사람을 위해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4-168,7 그 당시에는 모든 사람의 죄로 온통 뒤덮인 산 제물이었으니 나의 그 겉모습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구역질이 나도록 지긋지긋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하느님의 정의가 나의 어떤 부분도 보아 주지 않았고 오히려 나를 버릴 정도로 가차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에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르 15,34 참조) 라고 외침을 하십니다. 완전히 인간의 죄로 다 뒤덮여 있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보시면 구역질이 나도록 지긋지긋한 존재가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부께로부터 버림받으심을 느끼시는 것입니다.>
4-178,1 딸아, 죄는 하느님을 모욕하고 인간에게 상처를 입힌다. 그런데 그것은 인간에 의해 저질러지고 하느님이 그 모욕을 당하시기에, 이를 보상하려면 인간이며 하느님인 한 존재가 반드시 있어야 했다.
10-30,6 나는 구원될 마음이 있는 사람은 모두 구원하겠다.
11-79,10 나의 수난은 내 인성으로 하여금 모든 사람이 구원될 공로를 얻게 하였다.
11 모든 사람이 다 구원되는 것은 아닌데도 그러한 공로를 얻은 것은, 나의 뜻이 모든 이를 구원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구원될 공로를 다 마련해 놓으셨는데 어떤 사람은 받아들여서 구원이 되고, 어떤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아서 예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것이 헛것이 되는 것입니다.>
11-122,4 내 인성의 거룩함에도 불구하고 내게 이 하느님의 의지가 필요했던 것은, 아버지께 완전한 보속을 드림으로써 인류를 속량하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이 하느님의 의지 안에서만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세대를, 동시에 그들의 모든 행위와 생각과 말 따위를 현행 중인 것처럼 찾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의지, 뜻 안에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 안에서 예수님은 모든 보속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영원하고 현재 진행 중입니다. 하느님의 차원으로 올라가면 과거, 현재, 미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행했던 모든 것도 다 현재적인 것으로 그분 안에 있는 것입니다. 미래 사람들이 겪을 것도 다 현행적인 것으로 있는 것입니다.>
5 그리하여 나는 이 거룩한 뜻 안에서 인간의 모든 생각을 나의 정신 속에 담고 그 중 하나도 나를 피해 달아나지 못하게 한 채, 지존하신 하느님 대전으로 나가서 이 생각들 하나하나에 대하여 보속을 바쳤다.
<여러분들이 나쁜 생각을 해도 다 당신의 생각 안에 담아서 그 하나하나에 대해서 보속을 다 바쳐주신 것입니다.>
12-133,6 내 인성은 신성에 동화되어 있었고, 아니 인성과 신성이 하나였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였건만 나는 신성의 심연과 별리의 고통을 느꼈다.
신성이 내 존재 안팎을 에워싸고 있었고 내가 신성과 동화되어 있었는데도, 신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이 하나되어 사셨는데 신성과 인성의 분리라는 고통을 느낀 것은 인간을 하느님의 신성에 접목시켜 주시기 위해서 당신이 그 고통으로 보상을 하시는 것입니다.>
7 나의 가련한 인성이, 악습에 빠진 인류가 죄로 초래하는 징벌과 그 떨어져 나감의 고통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인류를 하느님의 신성에 결합시키기 위하여 그들의 분리로 인한 모든 고통을 치러야 했는데, 그 분리의 매 순간이 나에게는 가혹한 죽음이었다.
<우리를 하느님과 결합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이 신성과 인성의 분리라는 죽음을 매 순간 느끼셨다.>
3. 고난을 기뻐하며 열망하신 예수님
1-52,3 나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 왔을 때에 재산이나 삶의 쾌락을 택하지 않았다. 그 대신, 내가 가장 아끼며 가장 깊은 친교를 맺은 자매들은 바로 십자가와 가난과 치욕과 심한 고통이었다.
이들을 보면서 나는 수난과 십자가상 죽음의 때가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언제나 열렬히 바라고 있었다. 거기에 영혼들의 구원이 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당신을 생각하면 받고 싶지 않은데 영혼의 구원을 생각하면 빨리 받고 싶으셨다. 그것은 영혼을 위한 사랑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66,3 십자가는 꽃이 만발한 나의 침상이다. 내가 혹독한 고통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십자가에 의하여 수많은 영혼들을 은총 안에 태어나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토록 큰 선이 태어나고 있는 것이 보이기에 그 비탄의 침상이 나의 즐거움이 되었으니, 십자가에 달려 고통 중에 있으면서도 나는 즐거웠던 것이다.
<십자가에서 엄청난 고통을 느끼면서도 수많은 영혼들이 은총 안에 태어나는 것,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을 보면서 즐거웠다.>
5-1,3 사실, 하나의 고통은 내 마음을 더 세게 불태워 또 다른 고통을 받고 싶게 하였다. 이것이 신적인 고통의 활동 방식이다.
뿐만 아니라, 나는 활동 중에 오직 거기에서 나올 열매만을 보았다.
나의 상처와 피로 구원될 뭇 나라와 민족들이 받게 될 선익을 보았기에 내 마음은 지겨움 대신 기쁨을 느꼈고, 더 많은 고통을 받고 싶은 열망을 느꼈던 것이다.
<우리들은 하나의 고통이 오면 피하려고 하는데 예수님은 다른 고통을 받고 싶어 하신다. 그것은 고통 중에 나올 열매만을 보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당신의 그 고난으로 많은 사람들이 구원되고 그들이 행복해할 선익을 보면서 그들에게 더 많은 것을 주기 위해서 더 많은 고통을 받고 싶은 열망을 느꼈다.>
14-46,13 나는 겟세마니에서 아버지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마태 26,39) 하고 부르짖었다.
14 너는 그렇게 말한 것이 나였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네 생각이 틀렸다. 나는 고통 받는 것을 미치도록 좋아하였고 죽음도 좋아하였다. 내 자녀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 말이다.
<우리에 대한 것만 생각하니까 고통을 죽음을 좋아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부르짖었느냐?>
15 그러므로 그것은 내 인성 안에 메아리친 온 인류 가족의 부르짖음이었고, 그들에게 힘을 주려고 나도 그들과 함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세 번이나 부르짖었다.
마치 나 자신의 말인 것처럼 그렇게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말하고 있었지만, 짓눌려 으스러지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고통이 오면 비켜가게 해달라고 하는데, 인간들의 비켜가게 해달라는 것을 예수님이 다 느끼시면서 우리를 대신해서 비켜가게 해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 그러니까 당신이 싫어서 고통이 비켜가게 해달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하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4. 사랑에 의한 예수님의 고난
1-65,1 내 안에 잉태된 각 영혼이 얼마나 많은 죄와 나약과 격정이라는 짐을 내게 가져오는지 생각해 보아라. 내 사랑이 나로 하여금 그 각자의 짐을 떠안게 하였다.
그러므로 내 안에 그들의 영혼을 잉태한 나는 그들 각자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 드려야 하는 고통과 보속도 잉태한 셈이었다.
<모든 사람을 포함하고 그들을 대신해서 이제 당신이 사랑으로 모든 것을 바치십니다.
4-108,2 너에 대한 사랑으로 끊임없이 죽는 것 - 이것이 나의 지상 삶이었다. 이 끊임없는 죽음이 너를 위해서 내가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될 큰 희생에 대한 준비였던 것이다.
11-44,2 딸아, 나의 첫 번째 수난은 사랑에 의한 수난이었다. 왜냐하면 인간이 죄로 자기 자신을 악에게 넘겨주는 첫걸음은 사랑 결핍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어서 죄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없어서 하느님을 거스르고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어서 이웃을 거스릅니다. 그래서 사랑의 결핍으로 죄를 짓기 때문에 사랑의 결핍으로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3 나를 통해서 사람들의 그 사랑 결핍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고 누구보다도 더 나를 괴롭힌 것이 바로 사랑이었으니, 사랑이, 압착기에 깔려 으스러지는 것 이상으로 나를 짓누르면서, 이로 인해 생명을 얻게 될 사람들의 수만큼 많은 수의 죽음을 내게 안겨 주었던 것이다.
5 물론 수난은 하나였지만, 세상 끝 날까지 저질러질 죄들의 수만큼 많은 수난들을 겪었다는 말이다. 내가 그리함으로써 아버지의 영광이 회복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한 번 죽은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러나 하느님 뜻 안에서 죽음을 겪으셨기 때문에 하느님 뜻은 창조력이 있어서 무한히 불어날 수 있으니 그래서 그분은 우리 각 사람의 각각의 죄를 위해서 죽음이라는 대가를 지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2-136,2 딸아, 나의 첫째가는 순교는 사랑이었다. 사랑이 두 번째 순교를 낳았으니, 다름아닌 고통이었다. 사랑의 무한한 바다가 하나하나의 고통에 앞서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고통을 먼저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사랑이 앞서고 고통이 뒤따라오는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인간 사랑 때문에 예수님께서 고난을 겪으신 것입니다.>
제4장 우리로 인한 예수님의 현재 고통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1코린 12,26-27)
- 예수님이 현재 천국에서는 영광을 누리지만 지상에서는 당신 신비체의
머리이시기에 당신의 지체들로 인하여 지금도 모욕과 고통을 당하심
- 특히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 때문에 고통을 당하심
- 예수님은 이미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성녀에게 인간에 대한 당신의
사랑 때문에 겪으시는 고통에 대하여 말씀하셨음
- 그리고 루이사를 통해 당신 성심의 내적 고통에 대해 더 깊고 자세하게
알려주시고 계심
1. 인간의 멸망, 징벌, 불행에 인한 예수님의 고통
1-19,3 그들은 이제 진리를 볼 수 있는 눈이 없다. 교만이라는 죄가 그들의 정신을 어둡게 하고 마음을 타락시켜서 절제 없고 천박한 온갖 짓에 몸을 맡기게 하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멸망을 보면서 쓰디쓴 고통과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뇌와 비통을 겪는다.
<우리의 교만이라는 죄로 인간의 정신이 어두워져서 마음이 타락하고 천박한 온갖 짓에 몸을 맡기고 멸망의 길로 가는데 그 멸망을 보면서 예수님은 쓰디쓴 고통과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뇌와 비통을 겪는다. 그러니까 멸망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예수님께서 지금도 고통을 겪고 계시다.>
2-4,4 오 사람아, 너희를 얼마나 사랑해 왔는지! 너희를 책벌하는 것이 내 마음을 몹시 아프게 하지만 내 정의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너희가 안다면 오죽 좋겠느냐! 오 사람아, 오 사람아, 너희의 운명이 얼마나 나를 울리며 괴롭히는지!
<그러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책벌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 책벌하는 것이 예수님을 몹시 아프게 한다.>
3-78,4 딸아, 내게 폭행을 가하는 것은 정의이다. 그리고 더 큰 폭행을 가하는 것은 내가 인간에 대해 품고 있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내가 인간을 책벌할 때면 그것이 내 마음을 죽음의 골짜기로 데려가는 것이다.
<인간을 회개시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책벌을 하는데 예수님은 그것 때문에 너무너무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11-91,5 그때 예수님께서 흐느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죄들이 내 손에서 재앙과 전쟁들을 앗아 간다. 나는 마지못해 하는 수 없이 허락하지만 동시에 피조물과 함께 울며 고통을 받는다.”
<죄로 인해서 재앙과 전쟁이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예수님은 피조물과 함께 울며 고통을 당하십니다. 하느님은 지금 하늘에 계시고 우리만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고통을 당하시는 것입니다.>
11-97,3 딸아, 이 시대에 나는 가련한 불운아가 된 느낌이다.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은 사람과 함께 불행하고,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고 자기 자신의 피에 싸여 죽는 사람 때문에 불행하며, 굶주림에 몸부림치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불행하다.
또한 아들들을 전쟁터에 보내고 가슴에 피멍이 든 수많은 어머니들의 불행을 느낀다.
<그러니까 우리 각 사람의 불행을 지금 다 느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혼자 불행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지금 내 불행을 다 느끼고 계십니다. 우리는 한두 사람 것만 해도 힘들 텐데 예수님은 온 인류의 고통을 다 느끼고 계시니 얼마나 힘이 드시겠습니까?>
11-107,14 딸아, 보아라. 나는 포탄을 맞고 부상당한 가엾은 사람들을 모두 내 안에 품고 있으며 그들과 함께 고통을 겪고 있다.
12-26,5 영혼들을 잃는 것은 영원히 잃는 것이다. 아무도 그들을 내게 돌려줄 수 없다. 아! 나는 영혼들로 인해 울부짖고 있다! 그들은 땅을 얻으려고 하늘을 거부하고 말았다.
<예수님은 영혼을 잃는 것, 그들이 지옥에 가는 것은 영원히 잃는 것이다. 그들이 땅을 얻으려고 하늘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울부짖고 계십니다. 세상 것에 매여서 세상 것을 더 많이 얻기 위해서, 하늘을 생각하고 영원한 생명을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것을 거부하고 있으니까>
2. 징벌하시는 이유
2-86,4 내가 그들을 벌해야 하는 근거 역시 그들에 대한 나의 큰 사랑에,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그 큰 사랑에 있는 것이다.
6 내가 겪는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나의 사랑은 훨씬 더 무거운 징벌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인간을 그 자신의 내면으로 돌아가게 할 수 있는 더 강력한 방법이 달리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 것에 매여서 막 잘난 체하다가 병이 들거나 몸이 망가지면 그때 자기를 돌아보게 되고 거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것에서 벗어나서 영혼이 구원되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3-101,6 내 안에는 어떤 잔인함도 있을 수 없다. 일체가 사랑일 뿐이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잔인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책벌도 인간에 대한 더 큰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더 큰 사랑의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인간보다 더 괴로워하시면서 그것을 허용하시는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12-50,4 피조물은 배은망덕하게도 고의적으로 죄를 지음으로써 이 보호의 망토를 잡아 찢는다. 나의 강복과 은총과 사랑의 그느름에서 달아나 밖으로 나가 버리니, 하느님 정의의 벼락을 맞는다.
<예수님 밖으로 나가니까 벼락을 맞는 것입니다.>
12-63,3 죽음이라는 징벌은 영혼들에게 은총의 도장을 찍어 주기도 한다. 이 때문에 거의 모든 사람이 마지막 성사들을 청한다.
<마지막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 병자성사(종부성사)를 청하는 것이다.>
3. 인간의 죄로 모욕과 고통을 당하심
2-66,3 딸아, 이것이 인간이 짐승처럼 사는 이유이다. 신앙을 잃어 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더 고약한 시대가 올 터인데, 인간이 잠겨 있는 무분별이 그 형벌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보기만 해도 내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온다.
<인간이 신앙을 잃어버렸으니 짐승처럼 살고 있다. 지금이 무분별의 시대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뱃속에 있는 자식을 죽이는 낙태죄를 짓고도 죄 아니다 라고 낙태죄 폐지운동을 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사람을 죽이고도, 자기 자식을 죽이고도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무분별입니다. 그것 때문에 망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을 느끼십니다.>
4-16,4 이렇게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는 것은 내 작은 아기들의 살이니, 그 아픔이 얼마나 지독한지 나 자신의 살이 찢겨져 나가는 것만 같다.
<그러니까 낙태로 태중의 아기들이 찢겨져 나갈 때, 예수님은 당신의 살이 찢겨져 나가는 고통을 느끼신다.>
6-36,9 내 딸아, 이 시대에는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은총을 거부하고 있으니 이를 보는 내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럽겠는지 생각해 보아라.
6-144,8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이는 교인들이다. 그들은 내 인성 안에서 살면서 나를 못살게 괴롭히고 내 인성의 살을 발기발기 잡아 찢기 때문이다. 내 인성 밖에서 사는 이들도 나를 찢긴 하지만 그래도 멀리 떨어져서 찢는 것이다.
<교인들은 한 몸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인성 안에서 괴롭히고 있으니 우리가 짓는 죄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신자가 아닌 사람들이 짓는 죄보다.>
11-82,2 딸아, 세상은 내 수난을 초래한 행위들을 끊임없이 새로이 하고 있다.
3 나의 무한성은 인간 안팎의 모든 것을 휩싸고 있기에 이들과의 접촉으로 말미암아 내가 수난 중에 겪은 것들, 곧 못질과 가시관과 채찍질과 멸시와 침 뱉음과 여타 모든 것을 다시 겪지 않을 수 없으며, 그것도 그때보다 한층 더 심하게 겪고 있다.
<당신의 무한성으로 우리를 다 감싸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것을 다 느끼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의 수난 때보다 한층 더 심하게 그 고통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과거 2,000년 전에 고통을 겪으신 것만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때문에 고통을 겪고 계신다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16-51,5 딸아, 사람들이 내게 주는 모욕이 얼마나 많은지, 내가 그 고통에 빠져 익사할 것만 같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모욕하는 것이 됩니다.>
4. 예수님의 치명적인 세 상처
12-79,2 딸아, 내 마음이 받아 지닌 수많은 상처들 가운데서 다른 모든 상처를 합한 것보다 더 혹심하고 치명적인 상처가 세 가지 있다.
3 (우선) 나를 사랑하는 영혼들의 고통이다. 온전히 내 사람인 한 영혼이 나 때문에 괴로워하고 심한 고통에 짓눌리면서 나를 위해서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도 불사할 각오로 있는 것을 보면, 나는 그의 고통을 내 고통처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절감한다.
<예수님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들, 순교자들, 산 제물로 선택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고통을 당신 고통보다도 더 크게 느끼시는 것입니다.>
12 내 마음에 치명적인 둘째 상처는 배은망덕이다.
14 셋째 상처는 완고함이다. 이 또한 내 마음에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인지! 완고함은 내가 피조물을 위해서 행한 모든 선의 파괴이다.
<안 받아들이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피조물이 더 이상은 나를 모른다는, 더 이상은 내게 속해 있지 않다는 선언에 서명하는 것인즉, 그들 스스로 돌진해 들어가는 지옥의 열쇠이다.
<주님을 거부하고 나는 주님이 필요 없다. 이런 사람들은 지금 바로 지옥을 향해서 돌진하는 것이며 이런 사람들은 주님을 거부하니까 구원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것 때문에 예수님께서 다른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을 느끼시는 것입니다.>
15 이로 인해 내 마음은 쥐어뜯김을 느낀다. 갈가리 찢어진다.
14-20,2 딸아, 내가 심히 괴로웠던 것은 무엇보다도 특히 인간의 지성이 흉하게 변질된 것을 보았을 때였다.
5. 루이사의 책을 읽을 때 유의할 점
루이사가 쓴 책을 읽을 때 유의할 점을 살펴보고자 함
- 첫째, 루이사가 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시간들」을 읽을 때 유의할 점이 있음
- 여기에는 예수님께서 성목요일 오후 5시부터 성금요일 오후 5시까지 24시간 동안의 수난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음
- 그리고 루이사가 현재 예수님의 수난이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의 수난에 참여하여 예수님을 위로해 드리고 예수님과 대화하는 장면이 계속 나옴
- 이는 하느님의 뜻을 소유하고 하느님의 뜻 안으로 들어가면 하느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 예수님의 수난을 현재 진행 중인 사건으로 만날 수 있기 때문임
- 예수님께서는 매순간 하느님의 뜻 안에서 하느님의 뜻대로 사셨기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하느님의 뜻 안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하신 모든 일은 현재 진행적인 일들임
15-36,17 이 행위들은 내가 마치 바로 지금 강생하고 또 지금 고난을 받고 있는 것처럼 아직도 현행적이며 각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다.
- 둘째, 「천상의 책」과 「수난의 시간들」을 읽다보면 루이사와 예수님과의 관계가 입을 맞추고 포옹하는 등 남녀 간의 사랑처럼 묘사되어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음
- 하지만 루이사와 예수님은 「천상의 책」 제1권에서 볼 수 있듯이 영적인 결혼을 한 관계이고 루이사는 예수님과 모든 것을 나누는 깊은 일치 속에서 생활했으며 하느님의 뜻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생각해야 함
- 하느님의 뜻 안에는 거룩함과 순결함 이외에 다른 어떤 티도 들어올 수 없음
- 따라서 루이사의 잦은 입맞춤은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존경의 표시이고 예수님이 당신 고통의 쓴 물을 루이사의 입에 넣어주는 행위는 산 제물로 선택된 루이사와 고통을 나누는 일치된 삶의 표현임
- 또한 거룩하고 순결한 주님과 접촉할수록 더 거룩하고 순결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함
<그러나 우리는 인간적인 사고방식으로 잘못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거룩하고 순결한 예수님과 접촉할수록 더 거룩하고 순결해지는데, 더 더러워진다고 생각하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 셋째, 「천상의 책」을 읽을 때 예수님과 루이사가 서로 다투는 것 같은 장면이 나옴
-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는 정의의 징벌을 내리려 하시고 루이사는 이를 만류하는 장면들임
- 이는 루이사가 다른 이들이 받을 징벌을 만류하고 대신 받는 산 제물로 선택되었기 때문임
- 그리고 루이사는 이미 하느님의 뜻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루이사의 언행도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 안에서 나온 것임
<아니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면서 예수님과 루이사가 이렇게 달라하고 생각하시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루이사의 역할이고 하느님의 뜻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5장 루이사의 생애 연표
- ‘수난의 시간들’과 ‘천상의 책’의 저자인 루이사 피카레타는 현재 시복이 진행 중인 ‘하느님의 종’임
- 루이사의 생애 연표를 살펴보겠음
1. 어린 시절
✠ 1865년 4월 23일, 루이사는 코라토의 무르제 가(街) 10번지(Via Murge 10)에서 비토 니콜라(1829-1907)와 로사 타란 티니(1834-1907) 사이에서 태어나, 그날 저녁 마트리체 성당(Chiesa Matrice)에서 세례를 받음
✠ 1874년, 9살 때 첫 영성체를 받고 같은 날 견진성사를 받음
- 영성체 중에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함
✠ 1876년, “마리아의 딸들”(신심단체)에 가입함
✠ 1877년, 예수님께서 사랑을 위해서 그녀가 자신의 의지를 희생하도록 교육시키심
✠ 1878년, 예수님의 수난에 깊이 잠겨 들어감
✠ 1881년, 성탄 9일 기도를 하고 그 이후에 수난의 시간들을 묵상하게 됨
- 일기 제1권(천상의 책)의 이야기가 시작됨
2. 희생제물(산 제물)의 삶과 하느님 뜻 안의 삶
✠ 1882년, “새로운 삶”의 시작
- 예수님께서 그녀를 희생제물로 택하심(18살에 희생제물로 선택됨)
- “돌처럼 굳어짐”의 첫 번째 현상들이 시작됨
-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코스마 로이오디체 신부의 개입
(강복을 받아야 굳어진 몸이 풀어짐)
- 루이사는 막달레나 수녀라는 이름으로 도미니코회 제3회원이 됨
✠ 1886년, 루이사가 코라토를 콜레라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함(21세 때)
- 코스마 로이오디체 신부가 코라토를 떠나고 교구 사제인 미켈레 데 베네디티스(1844-1910) 신부가 그녀의 첫 번째 영적 지도자가 됨
- 음식 섭취 불가(21세부터 82세까지 60년)
✠ 1887년 11월 후반부터 루이사는 늘 침대에 누워 지내게 됨
- 그녀는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평화가 깃들도록 자신을 자발적인 희생제물로 봉헌함(이태리와 식민지 쟁탈 전쟁이 일어났는데 평화가 옴)
- 첫 번째로 루이사의 영혼이 육체를 벗어남(22세 때)
✠ 1888년 10월 21일, 동정 마리아의 정결례 축일에 동정 마리아와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의 현존 앞에서 첫 번째 신비적인 혼인(카타리나도 도미니코회 제3회원이었으며 예수님과 신비적인 혼인을 한 사이였으므로 시중을 든 것 같음)
✠ 1890년 9월 7일, 천상의 삼위일체의 현존 앞에서 신비적 혼인 갱신
- 지극히 거룩한 삼위일체의 “내주(內住)”(Inabitazione)(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 루이사 안에 와서 사시며 이때 하느님 뜻을 선물로 받음)
✠ 1894년, 미켈레 데 베네디티스 신부가 루이사의 고해사제로 확정됨
- 루이사는 자신의 가족과 함께 오스페달레 벡키오(Ospedale Vecchio) 가(街) 14번지로 이사를 감
✠ 1894년 혹은 1895년 9월 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에 예루살렘의 십자가와의 혼인식과 보이지 않는 오상을 받음(예수님께서 혼인을 할 것이 하나 더 있다고 이야기 하시며 십자가와 혼인을 하고 그때부터 보이지 않는 오상을 받는데 보이지 않게 해달라고 루이사 청하여 오상의 고통은 다 받는데 겉으로는 보이지 않음)
✠ 1898년, 젠나로 데 젠나로(1844-1922) 신부가 미켈레 데 베네디티스 신부 대신 루이사의 고해사제가 됨
✠ 1898년 3월 8일, 일주일에 한 번 루이사의 집에서 미사를 거행할 수 있는 특전을 허락한 레오 13세 교황 칙서
✠ 1899년 2월 28일, 루이사는 고해사제에게 순명하기 위해서 1938년 12월 28일까지 자신의 일기(총 36권)를 쓰기 시작함(34세부터 39년 10개월 동안 일기를 씀)
✠ 1905년 5월 23일, 일주일에 한 번 루이사의 집에서 미사를 거행할 수 있는 특전을 허락한 레오 13세의 칙서를 7년 더 연장해 준다는 비오 10세 교황의 칙서
✠ 1906년 9월, 바리의 대주교이며 트라니의 사도좌 대리였던 줄리오 바카로 몬시뇰이 루이사에게 방문하는 것을 금지시킴
- 그러나 금지는 큰 효과를 보지 못함
✠ 1907년 3월 19일, 루이사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약 15일 뒤에 아버지 역시 세상을 떠남
- 루이사는 집에서 자신이 죽을 때까지 보살펴 준 자매 안젤리나와 함께 홀로 남게 됨
✠ 1908년 3월 17일, 대주교 몬시뇰 프란치스코 파올로 카라노는 집에서 매일 미사를 집전할 수 있도록 확대된 권한을 주는 새로운 교황의 칙서를 얻음
✠ 1910년 4월 2일, 안니발레 마리아 디 프란차(1851-1927) 신부의 안토니오 여자 고아원이 트라니에 개원
- 안니발레 신부와 루이사의 관계가 시작되고 안니발레 신부는 1911년 3월 20일 그녀에게 첫 번째 편지를 씀(안니발레 신부가 루이사에게 펀지를 쓴 것을 모아서 번역된 것이 있습니다. 이범주 신부님이 가지고 계심)
3. 책 출판과 고해신부
✠ 1914년 6월 25일, 대주교 프란치스코 파올로 카라노 몬시뇰은 수난의 시간들의 첫 번째 초고에 대사를 부여함
✠ 1915년, 애정 어린 고찰과 배상이 함께 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시간들의 제1판과 제2판의 출판(10,000부)
✠ 1917년, 수난의 시간들의 제3판이 하느님의 뜻에 대한 논문을 덧붙여 출판됨
- 일기로부터 발췌한 글들의 첫 번째 출판
✠ 1918년 10월, 루이사는 스페인 독감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기도함
✠ 1919년 2월 10일, 루이사는 예수님의 신적 의지에 자신의 “네”(동의)를 발설함(하느님의 뜻에 ‘네’하고 따르는 마리아처럼,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피앗’을 발하시고 ‘네’하고 받아들임으로써 하느님의 피앗과 마리아의 피앗이 이루어져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사람이 되어 오시는데 그것과 같이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그런 시대를 열기 위해서 결정하시고 루이사가 ‘네’하고 응답함으로써 루이사 안에서 이제 하느님 뜻 안의 삶이 완전히 이루어지고, 루이사가 이 신비를 이제 사람들에게 전하는 도구로써 선택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그 시대를 열기 위해서 이 루이사의 ‘네’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54세)
✠ 1919년, 거룩한 열정의 수녀회를 세우고 코라토에 루이사를 머물게 하기 위한 고아원을 세우려는 안니발레 신부의 계획
✠ 1922년 3월 10일, 젠나로 데 젠나로 신부의 죽음
- 프란치스코 데 베네디티스(1868-1926) 신부가 그를 대신함(영적지도 신부는 매일 루이사의 집에 와서 미사를 드림)
✠ 1926년 1월 30일, 프란치스코 데 베네디티스 신부의 죽음
- 베네데토 칼비(1886-1968) 신부가 고해사제로서 그의 뒤를 이음
✠ 1925년, 수난의 시간들의 제4판 출판
✠ 1926년 7월 15일, 루이사는 안니발레 마리아 디 프란차 신부의 뜻에 따라 유년기의 추억이라는 제목의 책을 씀
✠ 1926년 8월 6일, 안니발레 신부는 일기의 친필본 처음 18권에 직접 오류 없음(Nihil Obstat)을 찍어줌(천상의 책 2권부터 19권까지 1권은 일기와 상관없이 쓴 것으로 1권에는 날자가 없습니다.)
✠ 1926년 9월-10월, 트라니의 대주교 주세페 마리아 레오 몬시뇰이 직접 일기의 친필본 처음 18권에 자신의 교회인가(imprimatur)를 주고 출판을 허가함
✠ 1927년 6월 1일, 안니발레 마리아 디 프란차 신부가 메시니에서 세상을 떠남
(메시니는 시칠리섬에 있는 곳이고 안니발레 신부가 수도회를 시작한 곳입니다)
✠ 1928년 10월 7일, 루이사와 그녀의 자매인 안젤리나는 “하느님 뜻의 집”이라고 불리는 거룩한 열정의 수녀회 시설로 옮겨짐
- 그 집에서 10년을 지내게 됨
✠ 1929년 6월 20일, 안니발레 신부의 죽음으로 중단되었던 출판 작업을 자개함
✠ 1930년, 몬대주교 주세페 마리아 레오 몬시뇰의 교회인가를 받고 하느님 뜻의 나라 안에서라는 책이 출판됨
✠ 1930년 9월, 저술들에 대한 첫 번째 몰이해를 당면
(사람들이 어, 이것 내용이 이상하다고 바티칸에 신고를 하여 문제가 생김)
✠ 1931년, 검사성성(오늘날의 신앙 교리성)에 첫 번째 경고가 보내짐
- 일기의 계속적 출판 금지
✠ 1932년, 몬테풀치아노(시에나)의 주교인 주세페 바틴냐니 몬시뇰의 교회인가와 함께 하느님 뜻의 나라의 동정 마리아의 제1판이 출판
✠ 1933년 10월, 베네데토 칼비 신부의 감수로 하느님 뜻의 나라의 동정 마리아 제2판이 타란토 대교구 대리의 오류 없음과 교회인가를 받고 출판되어 타란토의 대교구 인쇄소 S.T.A.T에서 인쇄됨
✠ 1934년 9월, 베네데토 칼비 신부의 감수를 통해 수난의 시간들 제5판이 타란토 대교구의 오류 없음을 받고 출판
✠ 1935년, 루이사의 출판물들에 대한 다른 언어들로의 번역작업
- 독일의 오버바이에론 현에 위치한 안데흐 수도원의 베네딕토 회원 루드빅 베다(1871-1941) 신부와의 접촉
✠ 1936년 10월, 하느님 뜻의 부유함이라는 제목으로 수난의 시간들 이태리어 제5판에 실린 논문이 루드빅 베다 신부의 감수를 통해 독일어로 번역 출판됨
✠ 1937년 4월 21일, 검사성성의 추기경 도나토 스바레티가 트라니의 대주교 쥬세페 마리오 레오에게 편지를 보냄
- 그 안에서 논문의 독일어 번역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 되고, 가장 최근에 이태리어로 출판된 루이사의 모든 출판물들을 제출하도록 요구함
✠ 1937년 8월, 장상들은 루이사에게 사람들을 맞이하지 못하게 의무를 지움
✠ 1937년 11월 24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에 베네데토 칼비 신부의 감수로 타란토 대교구 대리의 오류 없음과 교회인가가 찍힌 하느님 뜻의 나라 동정 마리아 제3판이 출판됨
✠ 1938년, 하느님 뜻의 부유함 시리즈의 두 번째 책으로 루드빅 베다 신부의 감수를 통해 수난의 시간들의 이태리어 제5판이 독일어로 번역 출판되기 시작
- 30,000부가 출판되었는데 그것도 역시 몇 개월 만에 완판
✠ 1938년 5월 21일, 다타리아 아포스톨리카(현재 존재하지 않는 교황청 기구)의 신학자였던 가르멜 회원, 성 바실리오의 로렌조 신부가 일기의 친필 원고들을 조사하기 위해서 코라토에 옴
- 베네데토 신부는 처음 34권을 넘기고, 제35권은 찾지 못했고, 제36권은 완성되지 않아서 넘기지 못했음
✠ 1938년 7월 13일, 검사성성 총회에서 하느님 뜻에 관한 논문이 첨가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시간들, 하느님 뜻의 나라에서, 하느님 뜻의 나라의 하늘의 여왕이 금서 목록에 추가되도록 결정됨
✠ 1938년 8월 31일, 9월 11일 주일판 오세르바토레 로마노(교황청 공식 신문)에 금서들에 관한 교령이 출판됨
✠ 1938년 9월 19일, 루이사는 다시 한 번 교회가 재확인하고 단죄한 것을 스스로 재확인하고 단죄하면서 교회의 권위에 대한 복종에 완전히 내어 맡기는 친필 편지를 씀
✠ 1938년 10월 15일, 루이사는 거룩한 열정의 수녀회 기관, “하느님 뜻의 집”을 떠나 막달레나 가(街) 20번지로 이사를 함
✠ 1938년 12월 28일, 루이사에 의해서 일기의 마지막 페이지(제36권)가 쓰여짐
✠ 1939년 6월, 루드빅 베다 신부는 다시 출판 허가를 얻기 위해서 몇 가지 가장 의심스러운 구절들을 수정한 논문을 첨부하여 검사성성에 긴 편지를 보냄
✠ 1942년 8월 3일, 루이사는 비오 12세에게 자신의 집에서 미사를 거행할 수 있는 권한을 다시 얻기 위해서 편지를 씀
4. 루이사의 죽음과 시복추진
✠ 1947년 3월 4일 새벽 6시, 루이사는 심각한 폐렴에 시달린 지 약 15일 후에 세상을 떠남
✠ 1947년 3월 7일 엄청난 군중이 몰려든 가운데 루이사의 장례식이 치러지고, 루이사는 시립 공동묘지에 있는 베네데토 칼비 신부의 가족 경당 안에 매장됨
✠ 1947년 3월-4월, 트라니의 대주교 프란치스코 페트로넬리 몬시뇰은 교황청에 루이사의 명예회복을 촉구하기 위해서, 그녀와 관련된 모든 소식들을 모으라는 명령을 내림
✠ 1948년 11월 27일, 트라니 대주교인 도미니코 회원 레지날도 쥬세페 마리아 아달지는 루이사의 유해와 함께 그녀의 모습을 인쇄하는 것과 그녀에게 “하느님의 종”이라는 호칭을 부여하면서 시복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허락함
✠ 1950년 9월 20일, 레지날도 쥬세페 마리아 아달지 몬시뇰은 루이사의 유해를 공동묘지에서 성 마리아 그레카 성당으로 이장하기 위해서 관련 담당 공무원에게 편지를 보냄
- 이 요구는 첫 번째로 국가 권위의 반대에 부딪히고 이어서 교회 권위로부터도 반대를 받음
✠ 1963년 7월 3일, 코라토의 공동묘지로부터 코라토의 성 마리아 그레카 본당으로 유해 이장
✠ 1987년 3월 4일 트라니의 대주교 쥬세페 카라타 몬시뇰은 루이사의 선종 40주년을 맞이해서 코라토에 교회법적으로 “하느님 뜻의 작은 딸, 루이사 피카레타 신심회”를 설립하고 아순타 마릴리아노 수녀(창설자)를 첫 번째 회장으로 임명함
<이분은 아직 살아계시고 작년에 90세가 되심>
✠ 1994년 2월 25일 트라니의 대주교 카르멜로 카사티는 시성성으로부터 하느님의 종 루이사 피카레타의 성덕에 대한 명성과 덕, 생애에 대한 교구 조사를 시작하는데 있어서 장애 없음을 받은
- “하느님 뜻의 작은 딸, 루이사 피카레타 신심회”는 시복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원고측”이 되고 펠리체 포사 몬시뇰은 교구 청원자로 임명됨
✠ 1995년 11월 13일, 대주교 카르멜로 카사티 몬시뇰은 신앙 교리성의 장관인 죠셉 라칭거 추기경(베네딕토 15세 교황님이 되신 분)에게 신앙 교리성의 문서고에 보관되어 있던 루이사의 일기 친필본 34권의 사진 및 복사본을 청함
- 이 복사본은 허가를 받아서 1996년 1월 29일부터 2월 2일까지 만들어짐
<1996년 전까지는 루이사의 20권부터 34권까지가 다 바티칸에 있었기 때문에 그 내용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 2001년 2월 11일, 대주교 죠반니 바티스타 피키에리 몬시뇰은 사비노 아메데오 몬시뇰을 새로운 교구 청원자로 임명함
✠ 2005년 10월 29일, 대주교 죠반니 바티스타 피키에리 몬시뇰은 교구 조사를 마무리함
✠ 2006년 4월 2일, 대주교 죠반니 바티스타 피키에리 몬시뇰은 자신의 책임 아래서, “하느님 뜻의 작은 딸, 루이사 피카레타 신심회”를 시복 진행의 “원고측”의 자격으로 “시복 시성건의 사무국”을 구성하기 위해서 파견
✠ 2007년 1월 31일, 풀리아 주교회의는 시성성에 루이사 시복건의 교회법적인 진행이 빠른 시일 안에 이루어지도록 촉구하는 편지를 보냄
<풀리아 주교회의는 트라니 교구가 속해있는 그 지역들의 주교회의 같습니다.>
✠ 2007년 2월 22일, 추가적인
교구 조사가
주님 수난 묵상 대피정
이범주 바오로 신부
주님 수난 묵상 피정은 여러분들이 주님의 수난을 깊이 이해하고 묵상함으로써 필요한 모든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입니다.
제1강의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이사 53, 5-6). - 고난 받는 종에 대한 예언.
“구속을 위한 예수님의 죽음은 특히 고난 받는 종에 대한 예언을 성취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601).
제1장 주님의 수난 묵상 피정 동기, 과정, 협력방법
1. 주님의 수난 묵상 피정을 하게 된 동기
1) 주님 수난의 신비를 깊이 이해하도록 돕기 위하여
- 많은 이들이 주님 수난의 신비를 잘 모르고 있음
- 묵주의 기도 고통의 신비나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지만 형식적으로
바치는 이들이 많음
- 그래서 주님 수난의 신비를 깊이 이해하고 체험하여, 진정한 마음으로
수난의 신비를 묵상하며 기도하도록 돕기 위하여 이 교육을 실시함
2)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잘 하도록 돕기 위하여
-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기도 중에 가장 효과적인 기도가 ‘수난의 시간들’
기도임
- 이 피정에서는 수난의 시간들 24시간의 요점을 공부하고,
각 시간과 연결된 천상의 책 내용도 공부함
- 이를 통해 여러분들은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더 잘 할 수 있게 될 것임
3) 고통 중에도 기쁘게 살 수 있도록 돕기 위하여
- 예수님과 성모님, 사도들과 성인들은 고통 가운데에서도 기쁘게 사셨음
- 우리도 그분들처럼 고통을 희생 제물로 봉헌하면서 성경 말씀대로
기쁘게 살아야 함
- 이를 돕기 위하여 이 피정을 실시함
2. 주님의 수난 묵상 교육 과정
- 주님의 수난 묵상 피정은 15개의 강의와 질의응답, 미사로 이루어짐
- 제1강의 후 제2강의부터 제10강의까지는 ‘수난의 시간들’과 관련된 강의임
- 제11강의는 예수님의 내적 고통,
제12강의는 성모님의 비탄과 고통,
제13강의와 제14강의는 산제물,
제15강의는 십자가(고통)의 신비 안의 복된 삶에 대한 강의임
3. 앞으로의 협력방법
1) 빠짐없는 참석
- 아무리 좋은 강의가 있어도 듣지 않으면 내 것이 될 수 없음
- 그러므로 주님 수난 묵상 피정을 첫 자리에 놓고 빠짐없이 참석하는
것이 중요함
- 그리고 참석을 하여 강의를 들을 때는 강의 내용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함
2) 수난의 시간들 기도에 충실함
- 수난의 신비를 체험하려면 어떤 기도보다도 ‘수난의 시간들’ 기도에
충실해야 함
- 고리기도를 하고 있는 이들은 자신의 기도 고리가 다른 사람들의 고리와
이어지도록
충실히 해야 함
- 책을 보면서 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은 ‘수난의 시간들’ 녹음을
휴대폰으로 들으면서 기도할 수도 있음
3) 주님의 수난 묵상에 전념함
- 성모님과 루이사는 주님의 수난 묵상을 그친 덧이 없었다고 함
- 하루 종일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여 모든 은총을 얻고 주님으로
충만해졌다고 함
- 우리도 하루 내내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훈련을 하면 좋을 것 같음
- 이를 위해서는 수난의 시간들 24시간의 핵심 내용을 외워야 함
- 루이사와 그의 동료들은 수난의 시간들을 모두 외우고 있었기에
손으로 뜨개질을 하면서도 입으로 수난의 시간들을 바칠 수 있었다고 함
- 우리는 수난의 시간들을 모두 외우지는 못하더라도
각 시간의 제목과 핵심 내용은 외우도록 힘써야 함
- 그래야 생활 속에서 각 시간마다 수난 묵상이 가능해짐
제2장 주님의 수난 영상 보기
- The Passion of the Christ
제3장 예수님의 대속적 고난
“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셨지만,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되살아나셨습니다.”(로마 4, 25)
“예수님께서는 당신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또 아버지께서 구하기를 원하시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당신 수난과 죽음을 자유로이 받아들이셨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609)
-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의 표현이 예수님의 대속적 고난임
- 세례자 요한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29)이라고
부르신 예수님은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시기에 하느님 앞에서 온 인류를
대신하여 자신을 속죄의 희생 제물로 바치셨음
-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영광과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기쁘게 사랑으로
고난을 당하셨음
1.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예수님의 고난
1-5,10 나자렛 집에서 살던 시절의 나를 본받아라. 그때 내 정신은 아버지의 영광과 영혼들의 구원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 거룩한 일에 대해서가 아니면 입을 열지 않았고, 말을 하기 시작하면 아버지를 거슬러 저질러지는 죄들을 보상하도록 힘써 사람들을 설득하였다.
4-106,2 딸아, 내 수난의 첫째 목적은 영광과 찬미와 영예와 감사와 보속을 하느님의 신성에 바치는 것이다. 둘째 목적은 첫째 목적을 이루기에 필요한 모든 은총과 아울러 영혼들의 구원을 얻는 데 있다.
<첫째 목적 -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서, 둘째 목적 - 영혼들의 구원>
4-140,2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만, 매사에 있어서 신성이 인성을 이끌어 간다는 것과 신성은 우리 각자가 평생토록 해야 이룰 수 있는 일을 단 한 순간에 이룰 수 있고 (그보다 더 많이) 이룰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신성은 무한하고 인성은 유한한데 무한한 신성이 이끌어가고 한 순간에 우리가 평생토록 할 것을 다 이룰 수 있다.>
이 신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 안에서 역사하고 있었으므로, 복되신 예수님께서는 전 생애에 걸쳐 모든 사람을 전체적으로 또 각 사람을 개별적으로 하느님을 행해야 하는 모든 것을 (미리) 행하셨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루이사가 이런 것을 깨달았는데 온 인류가 하느님께 드려야 할 것, 우리 각 사람이 하느님께 드려야 할 것을 예수님께서 다 드리셨다.>
3 그러므로 그분은 각 사람을 대신해서 하느님을 흠숭하고 하느님께 감사와 보속과 영광을 드렸으며, 또한 각 사람 대신 하느님을 찬미하고 고난을 받으시며 기도를 바치셨던 것이다. 따라서, 각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하는 모든 것이 예수님의 성심에 의하여 이미 행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천지창조부터 세상 종말까지 모든 사람이 하느님께 드려야할 감사, 보속, 영광, 찬미 이런 것들을 다 예수님이 드리셨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6-141,2 딸아, 나의 내면을 차지하고 있었던 고통의 일차적인 목적은 모든 것 속에서 모든 것에 대하여 내 사랑하올 아버지를 흐뭇하게 해 드리는 것이었고, 그 다음 목적이 영혼들의 구원이었다.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내 마음을 가장 기쁘게 했던 것은 아버지께서 내가 당신에 대한 사랑으로 그토록 많은 고난을 겪는 것을 보시면서 내게 흐뭇함을 드러내시는 것을 보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인정을 하지 않아도 아버지께서 인정을 하시면 다되는 것입니다.>
7-4,2 딸아, 나의 손과 발만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아니라 내 인성의 다른 모든 부분과 내 영혼과 신성까지도 온전히 아버지의 뜻에 못 박혀 있었다. 사실, 십자가에 못 박힘은 아버지의 뜻이었으므로 나는 그분의 뜻에 전적으로 못 박혀 변형되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영혼과 신성까지도 온전히 아버지의 뜻에 못 박혀 있었다. 모든 것을 아버지의 뜻대로 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도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3 이것이 꼭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물리치고 하느님께서 주신 선하고 거룩한 모든 것을 떠나서 인간 자신의 뜻을 중요한 무엇으로 여기며 창조주를 모욕하는 것이 바로 죄이기 때문이었다.
<하느님의 뜻은 선악과를 따먹지 않는 것이었는데 따먹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을 물리쳤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자기 뜻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데 반대로 자신의 뜻을 중요하게 여겨서 하느님을 모욕하는 것이 죄입니다. 하느님을 첫 자리에 놓는다면 그분의 뜻도 첫 자리에 놓아야 합니다.>
4 그래서 나는 인간의 이 방자함과 자기 자신을 우상으로 삼는 짓을 보속하기 위하여 큰 희생을 바쳐서라도 나의 뜻을 완전히 흩어 없애고 아버지의 뜻으로 살고자 했던 것이다.
<자기의 뜻을 첫 자리에 놓으니까 자신이 우상이다. 우리 뜻으로 산 것을 다 보속하기 위해서 아버지의 뜻으로 살고자 하셨다.>
10-43,8 나의 손발이 못 박힌 그 외적 못 박힘은 얼마 동안 지속되었느냐? 다만 세 시간이다. 하지만 내 존재의 모든 부분이 못 박힌 것과 아버지의 뜻에 내 뜻이 못 박힌 것 - 이 못 박힘은 내 온 생애 동안 지속되었다.
12-99,6 나는 각 영혼을 대신하여 그들이 자기네 창조주께 행하기로 되어 있었던 모든 것을 행하였고, 멸망한 영혼들의 것도 제외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모든 피조물을 대신해서 아버지께 완전한 영광과 사랑과 보속을 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2. 우리의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고난
1-24,13 딸아, 만일 내가 사람들이 내 인성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해서 생각하려고 들었다면 확실히 인류 구원 사업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 대신, 나는 오직 인류의 영원한 구원만을 생각하였다.
<내 몸을 그렇게 망가트릴 것을 생각하면 두려워서 못하는데 그것보다 오직 영혼의 구원만을 생각하고 계셨다.>
나를 사로잡고 있었던 것은 무한한 사랑이었으니, 이 사랑이 나로 하여금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으로 바치게 하였다.
<하느님이신 그분은 인간의 무한한 사랑으로 모든 것을 희생으로 바쳤습니다.>
4-63,3 그 뒤 나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칼바리아산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예수님 안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세대를 보았다.
그분께서는 우리 모두가 그분 안에 있기에 각 사람이 그분을 거슬러 저지르는 모욕을 전부 느끼셨다. 그리고 모든 이로 말미암아 전반적으로, 각 사람으로 말미암아 개별적으로 고난을 받으셨다. 그러므로 나의 죄를 감지할 수 있었고 그분께서 특히 나 때문에 받으신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들이 잘못하는 것을 다 느끼신다. 느끼셔야 보상을 드릴 수가 있다. 우리 각 사람을 위해서 다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들 각자가 저지른 죄 하나하나를 다 느끼시면서 거기에 대한 보상으로 고난을 다 받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뭉뚱그려서 인류를 위해서 고난을 받으셨다고 하면 안됩니다. 우리 각 사람을 위해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4-168,7 그 당시에는 모든 사람의 죄로 온통 뒤덮인 산 제물이었으니 나의 그 겉모습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구역질이 나도록 지긋지긋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하느님의 정의가 나의 어떤 부분도 보아 주지 않았고 오히려 나를 버릴 정도로 가차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에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르 15,34 참조) 라고 외침을 하십니다. 완전히 인간의 죄로 다 뒤덮여 있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보시면 구역질이 나도록 지긋지긋한 존재가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부께로부터 버림받으심을 느끼시는 것입니다.>
4-178,1 딸아, 죄는 하느님을 모욕하고 인간에게 상처를 입힌다. 그런데 그것은 인간에 의해 저질러지고 하느님이 그 모욕을 당하시기에, 이를 보상하려면 인간이며 하느님인 한 존재가 반드시 있어야 했다.
10-30,6 나는 구원될 마음이 있는 사람은 모두 구원하겠다.
11-79,10 나의 수난은 내 인성으로 하여금 모든 사람이 구원될 공로를 얻게 하였다.
11 모든 사람이 다 구원되는 것은 아닌데도 그러한 공로를 얻은 것은, 나의 뜻이 모든 이를 구원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구원될 공로를 다 마련해 놓으셨는데 어떤 사람은 받아들여서 구원이 되고, 어떤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아서 예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것이 헛것이 되는 것입니다.>
11-122,4 내 인성의 거룩함에도 불구하고 내게 이 하느님의 의지가 필요했던 것은, 아버지께 완전한 보속을 드림으로써 인류를 속량하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이 하느님의 의지 안에서만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세대를, 동시에 그들의 모든 행위와 생각과 말 따위를 현행 중인 것처럼 찾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의지, 뜻 안에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 안에서 예수님은 모든 보속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영원하고 현재 진행 중입니다. 하느님의 차원으로 올라가면 과거, 현재, 미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행했던 모든 것도 다 현재적인 것으로 그분 안에 있는 것입니다. 미래 사람들이 겪을 것도 다 현행적인 것으로 있는 것입니다.>
5 그리하여 나는 이 거룩한 뜻 안에서 인간의 모든 생각을 나의 정신 속에 담고 그 중 하나도 나를 피해 달아나지 못하게 한 채, 지존하신 하느님 대전으로 나가서 이 생각들 하나하나에 대하여 보속을 바쳤다.
<여러분들이 나쁜 생각을 해도 다 당신의 생각 안에 담아서 그 하나하나에 대해서 보속을 다 바쳐주신 것입니다.>
12-133,6 내 인성은 신성에 동화되어 있었고, 아니 인성과 신성이 하나였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였건만 나는 신성의 심연과 별리의 고통을 느꼈다.
신성이 내 존재 안팎을 에워싸고 있었고 내가 신성과 동화되어 있었는데도, 신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이 하나되어 사셨는데 신성과 인성의 분리라는 고통을 느낀 것은 인간을 하느님의 신성에 접목시켜 주시기 위해서 당신이 그 고통으로 보상을 하시는 것입니다.>
7 나의 가련한 인성이, 악습에 빠진 인류가 죄로 초래하는 징벌과 그 떨어져 나감의 고통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인류를 하느님의 신성에 결합시키기 위하여 그들의 분리로 인한 모든 고통을 치러야 했는데, 그 분리의 매 순간이 나에게는 가혹한 죽음이었다.
<우리를 하느님과 결합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이 신성과 인성의 분리라는 죽음을 매 순간 느끼셨다.>
3. 고난을 기뻐하며 열망하신 예수님
1-52,3 나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 왔을 때에 재산이나 삶의 쾌락을 택하지 않았다. 그 대신, 내가 가장 아끼며 가장 깊은 친교를 맺은 자매들은 바로 십자가와 가난과 치욕과 심한 고통이었다.
이들을 보면서 나는 수난과 십자가상 죽음의 때가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언제나 열렬히 바라고 있었다. 거기에 영혼들의 구원이 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당신을 생각하면 받고 싶지 않은데 영혼의 구원을 생각하면 빨리 받고 싶으셨다. 그것은 영혼을 위한 사랑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66,3 십자가는 꽃이 만발한 나의 침상이다. 내가 혹독한 고통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십자가에 의하여 수많은 영혼들을 은총 안에 태어나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토록 큰 선이 태어나고 있는 것이 보이기에 그 비탄의 침상이 나의 즐거움이 되었으니, 십자가에 달려 고통 중에 있으면서도 나는 즐거웠던 것이다.
<십자가에서 엄청난 고통을 느끼면서도 수많은 영혼들이 은총 안에 태어나는 것,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을 보면서 즐거웠다.>
5-1,3 사실, 하나의 고통은 내 마음을 더 세게 불태워 또 다른 고통을 받고 싶게 하였다. 이것이 신적인 고통의 활동 방식이다.
뿐만 아니라, 나는 활동 중에 오직 거기에서 나올 열매만을 보았다.
나의 상처와 피로 구원될 뭇 나라와 민족들이 받게 될 선익을 보았기에 내 마음은 지겨움 대신 기쁨을 느꼈고, 더 많은 고통을 받고 싶은 열망을 느꼈던 것이다.
<우리들은 하나의 고통이 오면 피하려고 하는데 예수님은 다른 고통을 받고 싶어 하신다. 그것은 고통 중에 나올 열매만을 보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당신의 그 고난으로 많은 사람들이 구원되고 그들이 행복해할 선익을 보면서 그들에게 더 많은 것을 주기 위해서 더 많은 고통을 받고 싶은 열망을 느꼈다.>
14-46,13 나는 겟세마니에서 아버지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마태 26,39) 하고 부르짖었다.
14 너는 그렇게 말한 것이 나였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네 생각이 틀렸다. 나는 고통 받는 것을 미치도록 좋아하였고 죽음도 좋아하였다. 내 자녀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 말이다.
<우리에 대한 것만 생각하니까 고통을 죽음을 좋아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부르짖었느냐?>
15 그러므로 그것은 내 인성 안에 메아리친 온 인류 가족의 부르짖음이었고, 그들에게 힘을 주려고 나도 그들과 함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세 번이나 부르짖었다.
마치 나 자신의 말인 것처럼 그렇게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말하고 있었지만, 짓눌려 으스러지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고통이 오면 비켜가게 해달라고 하는데, 인간들의 비켜가게 해달라는 것을 예수님이 다 느끼시면서 우리를 대신해서 비켜가게 해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 그러니까 당신이 싫어서 고통이 비켜가게 해달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하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4. 사랑에 의한 예수님의 고난
1-65,1 내 안에 잉태된 각 영혼이 얼마나 많은 죄와 나약과 격정이라는 짐을 내게 가져오는지 생각해 보아라. 내 사랑이 나로 하여금 그 각자의 짐을 떠안게 하였다.
그러므로 내 안에 그들의 영혼을 잉태한 나는 그들 각자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 드려야 하는 고통과 보속도 잉태한 셈이었다.
<모든 사람을 포함하고 그들을 대신해서 이제 당신이 사랑으로 모든 것을 바치십니다.
4-108,2 너에 대한 사랑으로 끊임없이 죽는 것 - 이것이 나의 지상 삶이었다. 이 끊임없는 죽음이 너를 위해서 내가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될 큰 희생에 대한 준비였던 것이다.
11-44,2 딸아, 나의 첫 번째 수난은 사랑에 의한 수난이었다. 왜냐하면 인간이 죄로 자기 자신을 악에게 넘겨주는 첫걸음은 사랑 결핍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어서 죄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없어서 하느님을 거스르고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어서 이웃을 거스릅니다. 그래서 사랑의 결핍으로 죄를 짓기 때문에 사랑의 결핍으로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3 나를 통해서 사람들의 그 사랑 결핍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고 누구보다도 더 나를 괴롭힌 것이 바로 사랑이었으니, 사랑이, 압착기에 깔려 으스러지는 것 이상으로 나를 짓누르면서, 이로 인해 생명을 얻게 될 사람들의 수만큼 많은 수의 죽음을 내게 안겨 주었던 것이다.
5 물론 수난은 하나였지만, 세상 끝 날까지 저질러질 죄들의 수만큼 많은 수난들을 겪었다는 말이다. 내가 그리함으로써 아버지의 영광이 회복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한 번 죽은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러나 하느님 뜻 안에서 죽음을 겪으셨기 때문에 하느님 뜻은 창조력이 있어서 무한히 불어날 수 있으니 그래서 그분은 우리 각 사람의 각각의 죄를 위해서 죽음이라는 대가를 지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2-136,2 딸아, 나의 첫째가는 순교는 사랑이었다. 사랑이 두 번째 순교를 낳았으니, 다름아닌 고통이었다. 사랑의 무한한 바다가 하나하나의 고통에 앞서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고통을 먼저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사랑이 앞서고 고통이 뒤따라오는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인간 사랑 때문에 예수님께서 고난을 겪으신 것입니다.>
제4장 우리로 인한 예수님의 현재 고통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1코린 12,26-27)
- 예수님이 현재 천국에서는 영광을 누리지만 지상에서는 당신 신비체의
머리이시기에 당신의 지체들로 인하여 지금도 모욕과 고통을 당하심
- 특히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 때문에 고통을 당하심
- 예수님은 이미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성녀에게 인간에 대한 당신의
사랑 때문에 겪으시는 고통에 대하여 말씀하셨음
- 그리고 루이사를 통해 당신 성심의 내적 고통에 대해 더 깊고 자세하게
알려주시고 계심
1. 인간의 멸망, 징벌, 불행에 인한 예수님의 고통
1-19,3 그들은 이제 진리를 볼 수 있는 눈이 없다. 교만이라는 죄가 그들의 정신을 어둡게 하고 마음을 타락시켜서 절제 없고 천박한 온갖 짓에 몸을 맡기게 하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멸망을 보면서 쓰디쓴 고통과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뇌와 비통을 겪는다.
<우리의 교만이라는 죄로 인간의 정신이 어두워져서 마음이 타락하고 천박한 온갖 짓에 몸을 맡기고 멸망의 길로 가는데 그 멸망을 보면서 예수님은 쓰디쓴 고통과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뇌와 비통을 겪는다. 그러니까 멸망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예수님께서 지금도 고통을 겪고 계시다.>
2-4,4 오 사람아, 너희를 얼마나 사랑해 왔는지! 너희를 책벌하는 것이 내 마음을 몹시 아프게 하지만 내 정의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너희가 안다면 오죽 좋겠느냐! 오 사람아, 오 사람아, 너희의 운명이 얼마나 나를 울리며 괴롭히는지!
<그러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책벌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 책벌하는 것이 예수님을 몹시 아프게 한다.>
3-78,4 딸아, 내게 폭행을 가하는 것은 정의이다. 그리고 더 큰 폭행을 가하는 것은 내가 인간에 대해 품고 있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내가 인간을 책벌할 때면 그것이 내 마음을 죽음의 골짜기로 데려가는 것이다.
<인간을 회개시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책벌을 하는데 예수님은 그것 때문에 너무너무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11-91,5 그때 예수님께서 흐느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죄들이 내 손에서 재앙과 전쟁들을 앗아 간다. 나는 마지못해 하는 수 없이 허락하지만 동시에 피조물과 함께 울며 고통을 받는다.”
<죄로 인해서 재앙과 전쟁이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예수님은 피조물과 함께 울며 고통을 당하십니다. 하느님은 지금 하늘에 계시고 우리만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고통을 당하시는 것입니다.>
11-97,3 딸아, 이 시대에 나는 가련한 불운아가 된 느낌이다.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은 사람과 함께 불행하고,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고 자기 자신의 피에 싸여 죽는 사람 때문에 불행하며, 굶주림에 몸부림치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불행하다.
또한 아들들을 전쟁터에 보내고 가슴에 피멍이 든 수많은 어머니들의 불행을 느낀다.
<그러니까 우리 각 사람의 불행을 지금 다 느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혼자 불행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지금 내 불행을 다 느끼고 계십니다. 우리는 한두 사람 것만 해도 힘들 텐데 예수님은 온 인류의 고통을 다 느끼고 계시니 얼마나 힘이 드시겠습니까?>
11-107,14 딸아, 보아라. 나는 포탄을 맞고 부상당한 가엾은 사람들을 모두 내 안에 품고 있으며 그들과 함께 고통을 겪고 있다.
12-26,5 영혼들을 잃는 것은 영원히 잃는 것이다. 아무도 그들을 내게 돌려줄 수 없다. 아! 나는 영혼들로 인해 울부짖고 있다! 그들은 땅을 얻으려고 하늘을 거부하고 말았다.
<예수님은 영혼을 잃는 것, 그들이 지옥에 가는 것은 영원히 잃는 것이다. 그들이 땅을 얻으려고 하늘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울부짖고 계십니다. 세상 것에 매여서 세상 것을 더 많이 얻기 위해서, 하늘을 생각하고 영원한 생명을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것을 거부하고 있으니까>
2. 징벌하시는 이유
2-86,4 내가 그들을 벌해야 하는 근거 역시 그들에 대한 나의 큰 사랑에,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그 큰 사랑에 있는 것이다.
6 내가 겪는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나의 사랑은 훨씬 더 무거운 징벌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인간을 그 자신의 내면으로 돌아가게 할 수 있는 더 강력한 방법이 달리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 것에 매여서 막 잘난 체하다가 병이 들거나 몸이 망가지면 그때 자기를 돌아보게 되고 거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것에서 벗어나서 영혼이 구원되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3-101,6 내 안에는 어떤 잔인함도 있을 수 없다. 일체가 사랑일 뿐이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잔인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책벌도 인간에 대한 더 큰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더 큰 사랑의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인간보다 더 괴로워하시면서 그것을 허용하시는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12-50,4 피조물은 배은망덕하게도 고의적으로 죄를 지음으로써 이 보호의 망토를 잡아 찢는다. 나의 강복과 은총과 사랑의 그느름에서 달아나 밖으로 나가 버리니, 하느님 정의의 벼락을 맞는다.
<예수님 밖으로 나가니까 벼락을 맞는 것입니다.>
12-63,3 죽음이라는 징벌은 영혼들에게 은총의 도장을 찍어 주기도 한다. 이 때문에 거의 모든 사람이 마지막 성사들을 청한다.
<마지막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 병자성사(종부성사)를 청하는 것이다.>
3. 인간의 죄로 모욕과 고통을 당하심
2-66,3 딸아, 이것이 인간이 짐승처럼 사는 이유이다. 신앙을 잃어 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더 고약한 시대가 올 터인데, 인간이 잠겨 있는 무분별이 그 형벌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보기만 해도 내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온다.
<인간이 신앙을 잃어버렸으니 짐승처럼 살고 있다. 지금이 무분별의 시대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뱃속에 있는 자식을 죽이는 낙태죄를 짓고도 죄 아니다 라고 낙태죄 폐지운동을 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사람을 죽이고도, 자기 자식을 죽이고도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무분별입니다. 그것 때문에 망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을 느끼십니다.>
4-16,4 이렇게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는 것은 내 작은 아기들의 살이니, 그 아픔이 얼마나 지독한지 나 자신의 살이 찢겨져 나가는 것만 같다.
<그러니까 낙태로 태중의 아기들이 찢겨져 나갈 때, 예수님은 당신의 살이 찢겨져 나가는 고통을 느끼신다.>
6-36,9 내 딸아, 이 시대에는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은총을 거부하고 있으니 이를 보는 내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럽겠는지 생각해 보아라.
6-144,8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이는 교인들이다. 그들은 내 인성 안에서 살면서 나를 못살게 괴롭히고 내 인성의 살을 발기발기 잡아 찢기 때문이다. 내 인성 밖에서 사는 이들도 나를 찢긴 하지만 그래도 멀리 떨어져서 찢는 것이다.
<교인들은 한 몸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인성 안에서 괴롭히고 있으니 우리가 짓는 죄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신자가 아닌 사람들이 짓는 죄보다.>
11-82,2 딸아, 세상은 내 수난을 초래한 행위들을 끊임없이 새로이 하고 있다.
3 나의 무한성은 인간 안팎의 모든 것을 휩싸고 있기에 이들과의 접촉으로 말미암아 내가 수난 중에 겪은 것들, 곧 못질과 가시관과 채찍질과 멸시와 침 뱉음과 여타 모든 것을 다시 겪지 않을 수 없으며, 그것도 그때보다 한층 더 심하게 겪고 있다.
<당신의 무한성으로 우리를 다 감싸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것을 다 느끼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의 수난 때보다 한층 더 심하게 그 고통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과거 2,000년 전에 고통을 겪으신 것만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때문에 고통을 겪고 계신다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16-51,5 딸아, 사람들이 내게 주는 모욕이 얼마나 많은지, 내가 그 고통에 빠져 익사할 것만 같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모욕하는 것이 됩니다.>
4. 예수님의 치명적인 세 상처
12-79,2 딸아, 내 마음이 받아 지닌 수많은 상처들 가운데서 다른 모든 상처를 합한 것보다 더 혹심하고 치명적인 상처가 세 가지 있다.
3 (우선) 나를 사랑하는 영혼들의 고통이다. 온전히 내 사람인 한 영혼이 나 때문에 괴로워하고 심한 고통에 짓눌리면서 나를 위해서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도 불사할 각오로 있는 것을 보면, 나는 그의 고통을 내 고통처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절감한다.
<예수님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들, 순교자들, 산 제물로 선택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고통을 당신 고통보다도 더 크게 느끼시는 것입니다.>
12 내 마음에 치명적인 둘째 상처는 배은망덕이다.
14 셋째 상처는 완고함이다. 이 또한 내 마음에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인지! 완고함은 내가 피조물을 위해서 행한 모든 선의 파괴이다.
<안 받아들이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피조물이 더 이상은 나를 모른다는, 더 이상은 내게 속해 있지 않다는 선언에 서명하는 것인즉, 그들 스스로 돌진해 들어가는 지옥의 열쇠이다.
<주님을 거부하고 나는 주님이 필요 없다. 이런 사람들은 지금 바로 지옥을 향해서 돌진하는 것이며 이런 사람들은 주님을 거부하니까 구원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것 때문에 예수님께서 다른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을 느끼시는 것입니다.>
15 이로 인해 내 마음은 쥐어뜯김을 느낀다. 갈가리 찢어진다.
14-20,2 딸아, 내가 심히 괴로웠던 것은 무엇보다도 특히 인간의 지성이 흉하게 변질된 것을 보았을 때였다.
5. 루이사의 책을 읽을 때 유의할 점
루이사가 쓴 책을 읽을 때 유의할 점을 살펴보고자 함
- 첫째, 루이사가 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시간들」을 읽을 때 유의할 점이 있음
- 여기에는 예수님께서 성목요일 오후 5시부터 성금요일 오후 5시까지 24시간 동안의 수난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음
- 그리고 루이사가 현재 예수님의 수난이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의 수난에 참여하여 예수님을 위로해 드리고 예수님과 대화하는 장면이 계속 나옴
- 이는 하느님의 뜻을 소유하고 하느님의 뜻 안으로 들어가면 하느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 예수님의 수난을 현재 진행 중인 사건으로 만날 수 있기 때문임
- 예수님께서는 매순간 하느님의 뜻 안에서 하느님의 뜻대로 사셨기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하느님의 뜻 안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하신 모든 일은 현재 진행적인 일들임
15-36,17 이 행위들은 내가 마치 바로 지금 강생하고 또 지금 고난을 받고 있는 것처럼 아직도 현행적이며 각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다.
- 둘째, 「천상의 책」과 「수난의 시간들」을 읽다보면 루이사와 예수님과의 관계가 입을 맞추고 포옹하는 등 남녀 간의 사랑처럼 묘사되어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음
- 하지만 루이사와 예수님은 「천상의 책」 제1권에서 볼 수 있듯이 영적인 결혼을 한 관계이고 루이사는 예수님과 모든 것을 나누는 깊은 일치 속에서 생활했으며 하느님의 뜻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생각해야 함
- 하느님의 뜻 안에는 거룩함과 순결함 이외에 다른 어떤 티도 들어올 수 없음
- 따라서 루이사의 잦은 입맞춤은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존경의 표시이고 예수님이 당신 고통의 쓴 물을 루이사의 입에 넣어주는 행위는 산 제물로 선택된 루이사와 고통을 나누는 일치된 삶의 표현임
- 또한 거룩하고 순결한 주님과 접촉할수록 더 거룩하고 순결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함
<그러나 우리는 인간적인 사고방식으로 잘못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거룩하고 순결한 예수님과 접촉할수록 더 거룩하고 순결해지는데, 더 더러워진다고 생각하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 셋째, 「천상의 책」을 읽을 때 예수님과 루이사가 서로 다투는 것 같은 장면이 나옴
-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는 정의의 징벌을 내리려 하시고 루이사는 이를 만류하는 장면들임
- 이는 루이사가 다른 이들이 받을 징벌을 만류하고 대신 받는 산 제물로 선택되었기 때문임
- 그리고 루이사는 이미 하느님의 뜻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루이사의 언행도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 안에서 나온 것임
<아니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면서 예수님과 루이사가 이렇게 달라하고 생각하시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루이사의 역할이고 하느님의 뜻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5장 루이사의 생애 연표
- ‘수난의 시간들’과 ‘천상의 책’의 저자인 루이사 피카레타는 현재 시복이 진행 중인 ‘하느님의 종’임
- 루이사의 생애 연표를 살펴보겠음
1. 어린 시절
✠ 1865년 4월 23일, 루이사는 코라토의 무르제 가(街) 10번지(Via Murge 10)에서 비토 니콜라(1829-1907)와 로사 타란 티니(1834-1907) 사이에서 태어나, 그날 저녁 마트리체 성당(Chiesa Matrice)에서 세례를 받음
✠ 1874년, 9살 때 첫 영성체를 받고 같은 날 견진성사를 받음
- 영성체 중에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함
✠ 1876년, “마리아의 딸들”(신심단체)에 가입함
✠ 1877년, 예수님께서 사랑을 위해서 그녀가 자신의 의지를 희생하도록 교육시키심
✠ 1878년, 예수님의 수난에 깊이 잠겨 들어감
✠ 1881년, 성탄 9일 기도를 하고 그 이후에 수난의 시간들을 묵상하게 됨
- 일기 제1권(천상의 책)의 이야기가 시작됨
2. 희생제물(산 제물)의 삶과 하느님 뜻 안의 삶
✠ 1882년, “새로운 삶”의 시작
- 예수님께서 그녀를 희생제물로 택하심(18살에 희생제물로 선택됨)
- “돌처럼 굳어짐”의 첫 번째 현상들이 시작됨
-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코스마 로이오디체 신부의 개입
(강복을 받아야 굳어진 몸이 풀어짐)
- 루이사는 막달레나 수녀라는 이름으로 도미니코회 제3회원이 됨
✠ 1886년, 루이사가 코라토를 콜레라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함(21세 때)
- 코스마 로이오디체 신부가 코라토를 떠나고 교구 사제인 미켈레 데 베네디티스(1844-1910) 신부가 그녀의 첫 번째 영적 지도자가 됨
- 음식 섭취 불가(21세부터 82세까지 60년)
✠ 1887년 11월 후반부터 루이사는 늘 침대에 누워 지내게 됨
- 그녀는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평화가 깃들도록 자신을 자발적인 희생제물로 봉헌함(이태리와 식민지 쟁탈 전쟁이 일어났는데 평화가 옴)
- 첫 번째로 루이사의 영혼이 육체를 벗어남(22세 때)
✠ 1888년 10월 21일, 동정 마리아의 정결례 축일에 동정 마리아와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의 현존 앞에서 첫 번째 신비적인 혼인(카타리나도 도미니코회 제3회원이었으며 예수님과 신비적인 혼인을 한 사이였으므로 시중을 든 것 같음)
✠ 1890년 9월 7일, 천상의 삼위일체의 현존 앞에서 신비적 혼인 갱신
- 지극히 거룩한 삼위일체의 “내주(內住)”(Inabitazione)(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 루이사 안에 와서 사시며 이때 하느님 뜻을 선물로 받음)
✠ 1894년, 미켈레 데 베네디티스 신부가 루이사의 고해사제로 확정됨
- 루이사는 자신의 가족과 함께 오스페달레 벡키오(Ospedale Vecchio) 가(街) 14번지로 이사를 감
✠ 1894년 혹은 1895년 9월 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에 예루살렘의 십자가와의 혼인식과 보이지 않는 오상을 받음(예수님께서 혼인을 할 것이 하나 더 있다고 이야기 하시며 십자가와 혼인을 하고 그때부터 보이지 않는 오상을 받는데 보이지 않게 해달라고 루이사 청하여 오상의 고통은 다 받는데 겉으로는 보이지 않음)
✠ 1898년, 젠나로 데 젠나로(1844-1922) 신부가 미켈레 데 베네디티스 신부 대신 루이사의 고해사제가 됨
✠ 1898년 3월 8일, 일주일에 한 번 루이사의 집에서 미사를 거행할 수 있는 특전을 허락한 레오 13세 교황 칙서
✠ 1899년 2월 28일, 루이사는 고해사제에게 순명하기 위해서 1938년 12월 28일까지 자신의 일기(총 36권)를 쓰기 시작함(34세부터 39년 10개월 동안 일기를 씀)
✠ 1905년 5월 23일, 일주일에 한 번 루이사의 집에서 미사를 거행할 수 있는 특전을 허락한 레오 13세의 칙서를 7년 더 연장해 준다는 비오 10세 교황의 칙서
✠ 1906년 9월, 바리의 대주교이며 트라니의 사도좌 대리였던 줄리오 바카로 몬시뇰이 루이사에게 방문하는 것을 금지시킴
- 그러나 금지는 큰 효과를 보지 못함
✠ 1907년 3월 19일, 루이사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약 15일 뒤에 아버지 역시 세상을 떠남
- 루이사는 집에서 자신이 죽을 때까지 보살펴 준 자매 안젤리나와 함께 홀로 남게 됨
✠ 1908년 3월 17일, 대주교 몬시뇰 프란치스코 파올로 카라노는 집에서 매일 미사를 집전할 수 있도록 확대된 권한을 주는 새로운 교황의 칙서를 얻음
✠ 1910년 4월 2일, 안니발레 마리아 디 프란차(1851-1927) 신부의 안토니오 여자 고아원이 트라니에 개원
- 안니발레 신부와 루이사의 관계가 시작되고 안니발레 신부는 1911년 3월 20일 그녀에게 첫 번째 편지를 씀(안니발레 신부가 루이사에게 펀지를 쓴 것을 모아서 번역된 것이 있습니다. 이범주 신부님이 가지고 계심)
3. 책 출판과 고해신부
✠ 1914년 6월 25일, 대주교 프란치스코 파올로 카라노 몬시뇰은 수난의 시간들의 첫 번째 초고에 대사를 부여함
✠ 1915년, 애정 어린 고찰과 배상이 함께 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시간들의 제1판과 제2판의 출판(10,000부)
✠ 1917년, 수난의 시간들의 제3판이 하느님의 뜻에 대한 논문을 덧붙여 출판됨
- 일기로부터 발췌한 글들의 첫 번째 출판
✠ 1918년 10월, 루이사는 스페인 독감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기도함
✠ 1919년 2월 10일, 루이사는 예수님의 신적 의지에 자신의 “네”(동의)를 발설함(하느님의 뜻에 ‘네’하고 따르는 마리아처럼,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피앗’을 발하시고 ‘네’하고 받아들임으로써 하느님의 피앗과 마리아의 피앗이 이루어져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사람이 되어 오시는데 그것과 같이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그런 시대를 열기 위해서 결정하시고 루이사가 ‘네’하고 응답함으로써 루이사 안에서 이제 하느님 뜻 안의 삶이 완전히 이루어지고, 루이사가 이 신비를 이제 사람들에게 전하는 도구로써 선택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그 시대를 열기 위해서 이 루이사의 ‘네’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54세)
✠ 1919년, 거룩한 열정의 수녀회를 세우고 코라토에 루이사를 머물게 하기 위한 고아원을 세우려는 안니발레 신부의 계획
✠ 1922년 3월 10일, 젠나로 데 젠나로 신부의 죽음
- 프란치스코 데 베네디티스(1868-1926) 신부가 그를 대신함(영적지도 신부는 매일 루이사의 집에 와서 미사를 드림)
✠ 1926년 1월 30일, 프란치스코 데 베네디티스 신부의 죽음
- 베네데토 칼비(1886-1968) 신부가 고해사제로서 그의 뒤를 이음
✠ 1925년, 수난의 시간들의 제4판 출판
✠ 1926년 7월 15일, 루이사는 안니발레 마리아 디 프란차 신부의 뜻에 따라 유년기의 추억이라는 제목의 책을 씀
✠ 1926년 8월 6일, 안니발레 신부는 일기의 친필본 처음 18권에 직접 오류 없음(Nihil Obstat)을 찍어줌(천상의 책 2권부터 19권까지 1권은 일기와 상관없이 쓴 것으로 1권에는 날자가 없습니다.)
✠ 1926년 9월-10월, 트라니의 대주교 주세페 마리아 레오 몬시뇰이 직접 일기의 친필본 처음 18권에 자신의 교회인가(imprimatur)를 주고 출판을 허가함
✠ 1927년 6월 1일, 안니발레 마리아 디 프란차 신부가 메시니에서 세상을 떠남
(메시니는 시칠리섬에 있는 곳이고 안니발레 신부가 수도회를 시작한 곳입니다)
✠ 1928년 10월 7일, 루이사와 그녀의 자매인 안젤리나는 “하느님 뜻의 집”이라고 불리는 거룩한 열정의 수녀회 시설로 옮겨짐
- 그 집에서 10년을 지내게 됨
✠ 1929년 6월 20일, 안니발레 신부의 죽음으로 중단되었던 출판 작업을 자개함
✠ 1930년, 몬대주교 주세페 마리아 레오 몬시뇰의 교회인가를 받고 하느님 뜻의 나라 안에서라는 책이 출판됨
✠ 1930년 9월, 저술들에 대한 첫 번째 몰이해를 당면
(사람들이 어, 이것 내용이 이상하다고 바티칸에 신고를 하여 문제가 생김)
✠ 1931년, 검사성성(오늘날의 신앙 교리성)에 첫 번째 경고가 보내짐
- 일기의 계속적 출판 금지
✠ 1932년, 몬테풀치아노(시에나)의 주교인 주세페 바틴냐니 몬시뇰의 교회인가와 함께 하느님 뜻의 나라의 동정 마리아의 제1판이 출판
✠ 1933년 10월, 베네데토 칼비 신부의 감수로 하느님 뜻의 나라의 동정 마리아 제2판이 타란토 대교구 대리의 오류 없음과 교회인가를 받고 출판되어 타란토의 대교구 인쇄소 S.T.A.T에서 인쇄됨
✠ 1934년 9월, 베네데토 칼비 신부의 감수를 통해 수난의 시간들 제5판이 타란토 대교구의 오류 없음을 받고 출판
✠ 1935년, 루이사의 출판물들에 대한 다른 언어들로의 번역작업
- 독일의 오버바이에론 현에 위치한 안데흐 수도원의 베네딕토 회원 루드빅 베다(1871-1941) 신부와의 접촉
✠ 1936년 10월, 하느님 뜻의 부유함이라는 제목으로 수난의 시간들 이태리어 제5판에 실린 논문이 루드빅 베다 신부의 감수를 통해 독일어로 번역 출판됨
✠ 1937년 4월 21일, 검사성성의 추기경 도나토 스바레티가 트라니의 대주교 쥬세페 마리오 레오에게 편지를 보냄
- 그 안에서 논문의 독일어 번역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 되고, 가장 최근에 이태리어로 출판된 루이사의 모든 출판물들을 제출하도록 요구함
✠ 1937년 8월, 장상들은 루이사에게 사람들을 맞이하지 못하게 의무를 지움
✠ 1937년 11월 24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에 베네데토 칼비 신부의 감수로 타란토 대교구 대리의 오류 없음과 교회인가가 찍힌 하느님 뜻의 나라 동정 마리아 제3판이 출판됨
✠ 1938년, 하느님 뜻의 부유함 시리즈의 두 번째 책으로 루드빅 베다 신부의 감수를 통해 수난의 시간들의 이태리어 제5판이 독일어로 번역 출판되기 시작
- 30,000부가 출판되었는데 그것도 역시 몇 개월 만에 완판
✠ 1938년 5월 21일, 다타리아 아포스톨리카(현재 존재하지 않는 교황청 기구)의 신학자였던 가르멜 회원, 성 바실리오의 로렌조 신부가 일기의 친필 원고들을 조사하기 위해서 코라토에 옴
- 베네데토 신부는 처음 34권을 넘기고, 제35권은 찾지 못했고, 제36권은 완성되지 않아서 넘기지 못했음
✠ 1938년 7월 13일, 검사성성 총회에서 하느님 뜻에 관한 논문이 첨가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시간들, 하느님 뜻의 나라에서, 하느님 뜻의 나라의 하늘의 여왕이 금서 목록에 추가되도록 결정됨
✠ 1938년 8월 31일, 9월 11일 주일판 오세르바토레 로마노(교황청 공식 신문)에 금서들에 관한 교령이 출판됨
✠ 1938년 9월 19일, 루이사는 다시 한 번 교회가 재확인하고 단죄한 것을 스스로 재확인하고 단죄하면서 교회의 권위에 대한 복종에 완전히 내어 맡기는 친필 편지를 씀
✠ 1938년 10월 15일, 루이사는 거룩한 열정의 수녀회 기관, “하느님 뜻의 집”을 떠나 막달레나 가(街) 20번지로 이사를 함
✠ 1938년 12월 28일, 루이사에 의해서 일기의 마지막 페이지(제36권)가 쓰여짐
✠ 1939년 6월, 루드빅 베다 신부는 다시 출판 허가를 얻기 위해서 몇 가지 가장 의심스러운 구절들을 수정한 논문을 첨부하여 검사성성에 긴 편지를 보냄
✠ 1942년 8월 3일, 루이사는 비오 12세에게 자신의 집에서 미사를 거행할 수 있는 권한을 다시 얻기 위해서 편지를 씀
4. 루이사의 죽음과 시복추진
✠ 1947년 3월 4일 새벽 6시, 루이사는 심각한 폐렴에 시달린 지 약 15일 후에 세상을 떠남
✠ 1947년 3월 7일 엄청난 군중이 몰려든 가운데 루이사의 장례식이 치러지고, 루이사는 시립 공동묘지에 있는 베네데토 칼비 신부의 가족 경당 안에 매장됨
✠ 1947년 3월-4월, 트라니의 대주교 프란치스코 페트로넬리 몬시뇰은 교황청에 루이사의 명예회복을 촉구하기 위해서, 그녀와 관련된 모든 소식들을 모으라는 명령을 내림
✠ 1948년 11월 27일, 트라니 대주교인 도미니코 회원 레지날도 쥬세페 마리아 아달지는 루이사의 유해와 함께 그녀의 모습을 인쇄하는 것과 그녀에게 “하느님의 종”이라는 호칭을 부여하면서 시복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허락함
✠ 1950년 9월 20일, 레지날도 쥬세페 마리아 아달지 몬시뇰은 루이사의 유해를 공동묘지에서 성 마리아 그레카 성당으로 이장하기 위해서 관련 담당 공무원에게 편지를 보냄
- 이 요구는 첫 번째로 국가 권위의 반대에 부딪히고 이어서 교회 권위로부터도 반대를 받음
✠ 1963년 7월 3일, 코라토의 공동묘지로부터 코라토의 성 마리아 그레카 본당으로 유해 이장
✠ 1987년 3월 4일 트라니의 대주교 쥬세페 카라타 몬시뇰은 루이사의 선종 40주년을 맞이해서 코라토에 교회법적으로 “하느님 뜻의 작은 딸, 루이사 피카레타 신심회”를 설립하고 아순타 마릴리아노 수녀(창설자)를 첫 번째 회장으로 임명함
<이분은 아직 살아계시고 작년에 90세가 되심>
✠ 1994년 2월 25일 트라니의 대주교 카르멜로 카사티는 시성성으로부터 하느님의 종 루이사 피카레타의 성덕에 대한 명성과 덕, 생애에 대한 교구 조사를 시작하는데 있어서 장애 없음을 받은
- “하느님 뜻의 작은 딸, 루이사 피카레타 신심회”는 시복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원고측”이 되고 펠리체 포사 몬시뇰은 교구 청원자로 임명됨
✠ 1995년 11월 13일, 대주교 카르멜로 카사티 몬시뇰은 신앙 교리성의 장관인 죠셉 라칭거 추기경(베네딕토 15세 교황님이 되신 분)에게 신앙 교리성의 문서고에 보관되어 있던 루이사의 일기 친필본 34권의 사진 및 복사본을 청함
- 이 복사본은 허가를 받아서 1996년 1월 29일부터 2월 2일까지 만들어짐
<1996년 전까지는 루이사의 20권부터 34권까지가 다 바티칸에 있었기 때문에 그 내용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 2001년 2월 11일, 대주교 죠반니 바티스타 피키에리 몬시뇰은 사비노 아메데오 몬시뇰을 새로운 교구 청원자로 임명함
✠ 2005년 10월 29일, 대주교 죠반니 바티스타 피키에리 몬시뇰은 교구 조사를 마무리함
✠ 2006년 4월 2일, 대주교 죠반니 바티스타 피키에리 몬시뇰은 자신의 책임 아래서, “하느님 뜻의 작은 딸, 루이사 피카레타 신심회”를 시복 진행의 “원고측”의 자격으로 “시복 시성건의 사무국”을 구성하기 위해서 파견
✠ 2007년 1월 31일, 풀리아 주교회의는 시성성에 루이사 시복건의 교회법적인 진행이 빠른 시일 안에 이루어지도록 촉구하는 편지를 보냄
<풀리아 주교회의는 트라니 교구가 속해있는 그 지역들의 주교회의 같습니다.>
✠ 2007년 2월 22일, 추가적인 교구 조사가 마무리됨
✠ 2010년 6월 13일, 대주교 죠반니 바티스타 피키에리 몬시뇰은 신심회를 “하느님 뜻의 작은 딸, 루이사 피카레타 협회”라는 이름으로 신자들의 공공 단체로 설립하고 새로운 정관을 승인함
✠ 2015년 4월 23일부터26일까지 루이사 피카레타 탄생150주년 국제대회가 코라토에서 열림
<작년 2018년, 루이사 피카레타가 쓴 모든 책을 현대 이태리어로 만들어서 교황청 신앙교리성성에 제출해서 지금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 책을 교황청에서 승인을 하면 그 책으로 전 세계에서 자기 나라말로 번역을 해서 사용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교황청에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제 생각으로는 약 2년 정도 걸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영광송
마무리
됨
✠ 2010년 6월 13일, 대주교 죠반니 바티스타 피키에리 몬시뇰은 신심회를 “하느님 뜻의 작은 딸, 루이사 피카레타 협회”라는 이름으로 신자들의 공공 단체로 설립하고 새로운 정관을 승인함
✠ 2015년 4월 23일부터26일까지 루이사 피카레타 탄생150주년 국제대회가 코라토에서 열림
<작년 2018년, 루이사 피카레타가 쓴 모든 책을 현대 이태리어로 만들어서 교황청 신앙교리성성에 제출해서 지금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 책을 교황청에서 승인을 하면 그 책으로 전 세계에서 자기 나라말로 번역을 해서 사용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교황청에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제 생각으로는 약 2년 정도 걸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영광송
'사랑해요주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도의 필요성 (0) | 2020.03.21 |
---|---|
지금은 천사들과 만나는 시간 Ⅷ “수호천사님, 이 영혼을 불철주야로 지켜주심에 감사드립니다." (0) | 2019.05.29 |
교황, 악마의 공격에서 교회를 보호하기 위한 (전세계 신자) 10월 묵주기도 요청 (0) | 2018.10.03 |
하느님은 당신 호의에 따라 여러분 안에서 활동 하시어 의지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실천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0) | 2018.10.02 |
[준주성범] 제 3 권 내적 위로에 대하여 (0) | 2018.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