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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월 30일
“왜?”의 역사
1. 평소대로 있다가 나 자신 밖으로 나와 있음을 알았는데, 내가 아는 한 연옥 영혼이 보이는 것 같아서 그에게 “제가 하느님 앞에서 어떤 모양으로 있는지 한 번 봐 주시겠어요? 특히 현재 제가 처해 있는 상태 때문에 무척 걱정이 되거든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 영혼은 “그대가 잘 지내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기 위해서 알 필요가 있는 것은 별로 없어요. 단지, 그대가 고통을 높이 평가한다면 잘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잘 지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고통을 중히 여기는 사람은 하느님을 높이 받드는 사람이고, 하느님을 받드는 사람은 절대로 그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 드리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사람이 중히 여기는 것은 그 자신보다 더 존중하며 사랑하기 마련이고 애지중지하며 안전하게 돌보기 마련입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악인이 되기를 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하느님을 공경하면서도 그분의 가슴을 아프게 해 드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2. 나중에 복되신 예수님께서 잠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딸아, 사람들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왜? 왜? 왜?… 왜 이런 병이?… 왜 이런 내적 상태가?… 왜 이런 징벌이?…’ 하는 말을 거의 언제나 되풀이 하고, 또 다른 왜를 수없이 반복하곤 한다. 이 왜에 대한 설명은 땅이 아니라 하늘에 적혀 있어서, 하늘에서는 모두가 그것을 알게 될 것이다.
4. 그런데 이 왜의 정체가 무엇인지 너는 알겠느냐? 그것은 자애심에 끊임없이 양식을 대는 이기주의이다. 너는 이 왜가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알겠느냐? 지옥이다. 누가 맨 먼저 그 말을 썼겠느냐? 악마다. 그 첫 왜가 발설된 결과는 에덴동산의 순결의 상실이요, 걷잡을 수 없는 격정과의 싸움이요, 수많은 영혼들의 멸망과 치명적인 죄악들이었다. 그러니 왜의 역사는 아주 길다. 이 세상에 왜라는 표를 달고 있지 않은 악은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넉넉할 것이다. 이 왜는 영혼 안에서 하느님의 지혜를 파괴한다. 이것이 어디에 파묻히게 될지 너는 알겠느냐? 지옥이다. 그리하여 멸망한 모든 영혼에게 평화를 주지 않고 영원히 쉬지 못하게 할 것이다. 안식을 주지않고 영혼들과 전쟁을 일으키는 것에 이 왜의 간교함이 있는 것이다.”
Fiat Voluntas Tua!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Non mea voluntas, sed Tua fiat ’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천상의 책 8권-64,http://blog.daum.net/skybluegirin/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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