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세력에 관하여

뉴에이지 사고의 위험성(1)

Skyblue fiat 2016. 8. 23. 13:30

​뉴에이지 사고의 위험성(1)

 

가톨릭 교회는 우주의 중심을 하느님이 아닌 자연에서 찾는 뉴에이지 운동이 가톨릭 교리를 정면으로 거스른다고 보아 거짓 영성 운동으로 간주하고 있다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건전한 신앙 생활을 해치는 운동과 흐름 II」,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3 참조).

 

뉴에이지는 그리스도의 존재와 가치를 제거하려는 사탄의 신영성운동입니다. 21세기의 새 시대 별자리는 물병좌라고 하는, 한 남자가 물병을 기울여 물을 붓는 모습의 별자리이며, 뉴에이저들은 과거 물고기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였다면 이제는 지나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새로운 정신이 필요하다. 새로운 가치가 새 시대에 부어지고 있으니 새 포도주를 마셔라. 새 포도주가 새 부대에 담겨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라는 뉴에이지 추종자들이 말하는 가치와 정신은 인간의 자아 실현(성취)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자아 실현'이란 말을 하지 않으며, 오히려 예수님께 마음을 기울이는 것은 ‘자아 포기’ 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요즘 심리학을 통해, "자아"란 단어가 교회 안에 난무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멸망의 표를 지니고 있는 것은 오로지 인간의 자아일 뿐이다. 이 자아란 것이 없다면  일체가 안전한 것이다." (천상의 책, 4권-96)

 

“그리하여 수치스럽게도 영혼 자신의 자아를 신으로 섬기게 되니, 교만과 반항이 이 자아의 비위를 맞추게 되는 것이다.” (천상의 책 3권-60)

  

 "우리 (성삼위)의 활동 방식은 보통, 더 큰 일들을 하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작은 일들을 한다. 내가 너에게도 그렇게 하지 않았느냐? 처음에는 물론 '지고한 피앗'이나 네가 내 뜻 안에서 다다르게 되기를 내가 원하는 높이며 성덕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고, 내가 너를 부른 더 큰 사명에 대해서도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다." (천상의 책, 19-6,23)

 

"단, 순명, 고통에 대한 사랑, 모든 사람에게서 이탈하는 것, 너 자신의 자아에 대해서 죽는 법을 즐겨 가르치면서 너를 어린아이처럼 길렀다. 네가 여기에 순응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기뻐했던 것은, 나의 '피앗'과 내 뜻에 관한 숭고한 가르침을 넣어 둘 자리가 네 안에 마련되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천상의 책, 19-6,24)

 

 

인간 "자아 추구"의 교만을 꾸짖는 하느님의 질책은 구약성경에도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선악과 인류타락 사화, 바벨탑 사화]

 

자아추구(=자기실현. 자아실현)가 어찌하여 잘못인가? 이것은 하느님의 영광이 아닌, 인간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역사와 삶과 그 밖에 전 우주에서, 피조물 인간이 창조주인  하느님을 제외시키려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불교 (인간 자아실현 추구의 극대화 상태인 해탈 추구의 종교)조차, 넓은 의미에서는 무신론에 속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창조주 하느님을 피조물 인간이 제외시킴)

 

여기서 "하느님의 영광"이란 이런 의미를 말합니다. 하느님은 "사랑" 자체, 즉 완전함 자체이시며, 완전한 이 세상의 근원이신 분인데, 우리 인간이, 이렇게 아름다운 분인 전선 전지 전능하신 하느님의 온전한 사랑의 세계와 그 나라의 법을 버리는 태도를 말합니다.

 

특히 이사야서 14장 13-14절이 이해에 도움 되실 구절입니다. 빛나는 샛별과 같이 뛰어났었던 타락 천사 루치펠이 (인간을 유혹하기 전) 하느님의 자리를 탐내는 나르시스적 교만을 가지기 시작할때, 가장 먼저 생각해낸 것이 바로 "자기 자신"  즉 "인간 자아"에 대한 자기애적 관심과 자기 중심성이었습니다. 여기서 "나"(자아)라는 단어가 3번이상 나옵니다. 사탄은 이렇게 타락한 이후 그리곤, 그 사고를 곧바로 원조 아담과 하와에게 불어넣고자 인간에게 다가가 유혹을 시작합니다. 이 선악과을 먹으면 "너"는 하느님처럼 되리라..하면서..

 

하느님은 이들의 범죄 타락이후, 이들 루치펠과 인간의 타락, 즉 그들의 범죄를 꾸짖으시며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내쫓으셨습니다.

인간은 그 이후로 "나 자신"(자아)에 대한 관심과 "나" 자신이 이 세상의 중심이며 주인이라는 사고를 (원죄의 결과로써) 가지게 되었으며, 이런 사고를 통해 세상과 심지어 하느님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 인간이 하느님에 대한 순명과 내 주인되심을 망각하는 것과 그 분 존재에 조차 관심이 없는 것이 바로 "교만"이며, 그 자체가 바로 인간의 근원적 죄라고.. 성경은 또 "바벨탑" 사화를 통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겸손한 의탁의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음성인 성령의 은총의 손을 잡을 수 있게 되고, 마침내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사실 우리 자신의 진짜 주인은 "나"가 아니라 "하느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바벨탑 사화에 관해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회칙 "화해와 참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벨 이야기에서는 하느님을 제외시키는 일이 그분께 대한 적극적인 반항으로서보다는, 인간들끼리의 합작 사업 분야에서 그분이 하실 만한 일이란 전혀 없다는 듯이 그분을 망각하고 무관심에 빠지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런 의미에서 에덴에서의 첫 범죄에 관한 이야기와 바벨의 이야기는 그 내용과 형태에 있어서 현저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경우 모두 하느님을 제외시켰다는 점입니다.

바벨 이야기에서는 하느님을 제외시키는 일이 그분께 대한 적극적인 반항으로서보다는, 인간들끼리의 합작 사업 분야에서 그분이 하실 만한 일이란 전혀 없다는 듯이 그분을 망각하고 무관심에 빠지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하느님과 관계는 여지없이 깨어지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