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세력에 관하여

뉴에이지, 주술, 점 그 위험성 - 마리노 레스트레포

Skyblue fiat 2016. 8. 14. 01:27

 

뉴에이지, 주술, 점 그 위험성 - 마리노 레스트레포

 

말씀: 갈라디아 3:1

아, 어리석은 갈라티아 사람들이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모습으로 여러분 눈앞에 생생히 새겨져 있는데, 누가 여러분을 호렸단 말입니까?

 

요즘 우리들은 뉴에이지에 대한 많은 말을 듣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교회 내에 뉴에이지에 대해 씌어진 것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교회는 우리에게 빛을 전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고 바티칸에는 뉴에이지와 관련된 좋은 자료들이 다소 있습니다. 저는 오늘 저의 개인적인 체험과 하느님 체험을 통해 뉴에이지에 대해 제가 이해한 것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과거에 수년동안 여러가지 면에서 저의 신앙과 건강을 해친 뉴에이지에 빠져 있었습니다.
 
뉴에이지라는 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뉴에이지는 원죄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아마도 우리 가운데 있는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일 겁니다. 뉴에이지는 어두움의 영에 의한 것이며 어둠에 빠진 사람들에 의한 것입니다. 사탄의 영입니다. 우리가 낙원에서 쫓겨난 이후로 사탄은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이끌 수 있도록 우리와 소통하기 위한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왔습니다. 하느님을 모방하고 모조품을 만들어 내어 우리를 속이고 방황하도록 만듭니다. 사탄은 그 시대의 문화와 사람들의 심리에 맞추어 모습을 바꿔가면서 움직이지만 하나의 영입니다.
 
우리의 시대인 1940, 50, 60년대에 인류에게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 중 주술이라는 옷을 입은, 예전의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문을 열어 놓지 않았던 것들이 이 시대에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뉴에이지 운동이 눈에 띄게 아주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예전의 그리스도인들은 별자리점이 미신 혹은 주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천문학에서 취한 별자리를 동양적인 주술로 디자인한 황도 십이궁 별자리점(zodiac), 점성술(horoscope)등이 모두 Astrology (고대 점성술), 별자리 챠트 등에서 나왔습니다. 특히 북미에서는 그의 40~50프로가 상업화 되어 유행처럼 번지면서 신문이나 잡지 등에 실려 주류 사회층을 끌었고 점 보는 것이 일반화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주술은 별을 숭배하고 우주와 창조물을 숭배하는 것으로, 반 크리스챤적이며 하느님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들 안에서도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으로 자리 잡았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이 주술이라는 것조차 알지 못합니다. 별자리나 점성술은 주술로서 우리가 절대 손대지 말아야 합니다. 
 
주술은 전체 뉴에이지운동의  작은 부분에 불과합니다. 뉴에이지의 모든 것은 사탄의 영이며, 하느님을 부정하는 것으로 그들의 모든 가르침이 우리의 신앙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뉴에이지는 치유와 평온을 가져오는 것처럼 보이며 삶의 모든 근심과 걱정,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처럼 보이므로, 매우 매혹적으로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가톨릭 신자들에게조차 그 해악을 이해시키기가 매우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육체적인 건강을 가져다 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치유해주고 평온하게 해주면 그것이 좋다고 믿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다 육체적 치유와 완화를 가져다 주지 않으며, 그 치유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아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뉴에이지와 맞서야 합니다. 특히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으로서 그에 맞서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우리모두가 뉴에이지 사상 가운데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40년대 50년대에는 뉴에이지라는 것이 교회에 생소했었으므로 그에 대한 경고가 많지 않았습니다. 제가 십대 시절이던 60년대에는 그 세대의 모든 사람들이 뉴에이지를 행하였습니다. 타롯점이나 손금보는 것, 점쟁이를 찾아가는 것, 별자리 챠트를 보는 것 등이 아무렇지도 않았고 누구도 그에 대해 반대하거나 경고하지 않았습니다. 에소테릭치료 (에너지 치료법)나 주술을 받는 것에 대해 누구도 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불교나 힌두, 도교, 일본의 신도 등의 동양사상이나 이방종교 사상들이 그리스도교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고 일반적인 것처럼 되어졌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완전히 혼합된 사상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오히려 문제가 될 정도로 되어버렸습니다. 대답은 항상 “오 어떤 수녀님이..가르쳐 주었어요. 어떤 신부님이 말해 주었어요…” 라고 합니다. 사제나 수도자들도 뉴에이지를 행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사제나 수녀가 그러한 뉴에이지로부터 오는 좋지 않은 것들을 행하면 사람들에게 그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좋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가장 위험한 것입니다. 
 
불행히도 우리의 교회 내에 그러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제가 뉴에이지에 빠져있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의 부끄러운 모습을 꺼내고자 하는 의도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그런 것에 속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탄이 교회에도 들어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제든, 수도자이든, 평신도이든 우리 모두는 죄인인 인간이며 우리의 적에 의해 속을 수 있는 약한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많은 사제들이 자신도 모르고 뉴에이지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로 시작하여 또 다른 것을 행하는 것이지요. 마약을 하는 사람이 처음엔 마리화나로 시작하여, 코케인으로 가고 환각상태에 들어가고 헤로인으로 가서 마지막엔 자신을 파멸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약 하나가 더 강한 것을 느끼기 위해 또다른 마약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결코 멈출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모두 자기파멸의 본성과 관련이 있는 것이죠. 우리의 원죄의 결과로서 모두 같은 과정입니다. 공원에서 집시들에게 타롯카드점이나 손금을 아무 생각없이 보거나 친구들과 함께 장난으로 전화를 걸어 점을 본다든지 등으로 시작하여 그 다음은 돈을 내고 또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로 시작하여 더 깊은 곳으로 가게끔 문을 열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어떤 사람들은 요가로 시작합니다. 하이테 요가는 단순한 체력운동으로 보입니다. 요가가 힌두교로부터 나온 것임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힌두교에는 힌두교리에 따라 일곱 단계의 각기 다른 요가가 있습니다. 하이테 요가는 서양에서 운동정도로 알려져 있는대요. 그건 다른 여섯개의 요가의 기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힌두교는 수백만의 신을 숭배합니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신입니다. 하이테 요가는 그들이 숭배하는 디이티 주위에 있도록 짜여진 것입니다. 가짜 신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많은 신상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은 모든 신을 숭상합니다. 15초에서 30초를 간격으로 바뀌는 요가의 모든 포즈가 운동으로 보이지만 각각의 디이티를 나타냅니다. 신이나 여신의 신상이 그러한 각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각 포즈는 신 디이티를 숭배하는 동작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은 그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운동으로 하고 있다고 말하지요.
 
여러분도 알고 있는 위지보드라는 심령체험게임이 있습니다. 위지보드는 매우 단순한 게임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영과 관련된 것입니다. 영을 불러오는 게임입니다. 간단하게 저의 체험이야기를 하나 해드리죠.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에서 저는 한동안 로스엔젤레스 교구하에 구마사제와 함께하는 선교를 한적이 있습니다. 그 사제는 정신병원에서 정신분열증 환자들에 대한 사목을 하고 있었습니다. 환청을 듣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분이 그 사목을 하게 된 이유는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위지보드를 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위지보드는 상점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게임입니다.그저 장난감이라고 팔고 있지요. 아이들이 쉽게 구입하여 게임을 합니다. 그러나 영을 부른다는 것은 영적세계에 대한 문을 연다는 것입니다. 영들이 들어올 수 있는 권한을 갖도록 문을 여는 것입니다. 영은 영원 안에 존재하므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영이 드러내기 위해 우리의 시간으로 이십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 12살에 위지보드를 가지고 놀았던 사람이 25살, 30살에 갑자기 환청을 듣기 시작하거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영적문제를 갖게 되어 치료를 받으려 합니다. 정신분열이라는 진단을 받고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고, 특별한 방법이 없으니 진정시키기 위한 약물만 쓰다가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이죠.  당시 이 사제의 기도로서 많은 환자들이 구마가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구마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환자들이 위지보드를 가지고 놀았다는 체험을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심령체험이라고 말하는 죽은 사람을 불러오는 영적놀이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가장 위험한 것이기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 사제는 많은 사람들을 구마로서 구하였지만, 제가 그 분을 만났을 당시, 그 분은 80이 넘은 노사제였고 불행히도 칼리포니아 정부에 의해 병원에서의 그 사목을 금지당하였습니다. 저희가 하고 있던 일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업적인 불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사목은 그것이 허락되는 다른 주에서는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게임처럼 보이는 것이 어떤 위험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입니다. 
 
여러분이 어린 시절이나 어떤 시점에서 주술과 같은 어두움의 행위를 하였다면, 그 후 그것을 그만 두었다고 해서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고백성사를 보고 필요한 경우에는 사제에게 구마기도를 청하여야합니다. 살아가면서 언제 영이 행동을 취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했던 그러한 행위로 인해 우리의 삶에서 많은 것들이 일어나지만 우리는 잘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코 누구에게도 손금을 보게끔 해서도 안됩니다. 여러분의 삶 안에서 어둠의 영이 행동하게끔 문을 열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이 들어오도록 입구를 알려주어, 여러분이 열어준 모든 문이 어둠의 영이 들어오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어둠의 영들은 영적세계(astral plane)를 돌아다닙니다. 예를 들면 주술자(점쟁이, 무당)가 주술을 함으로써 어둠의 영은 영적세계 안에서 두가지 경로를 다니게 됩니다. 첫번째 경로는 주술자(무당)의 주술행위로 그들이 유체이탈과 같은 체험을 하게 됩니다. 육체를 떠나 영적세계를 떠다니는 것이죠. 그것이 첫번째 경로입니다. 두번째 경로는 밤마다 그 사람(주술자)이 잠들 때마다 유체이탈이 일어나 사탄의 안테나와 같이 되는 것이지요. 그가 밤에 잠들 때마다 유체이탈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흔히 마녀들이 날아다닌다고 말하지요. 그들은 실제로 영적세계를 돌아다닙니다. 그들이 돌아다니며 연결(조정)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마치 비행기 조종사가 방향을 찾기 위해 조정기를 사용하듯 합니다. 조종사는 향하는 곳에 따라 그 조정단계를 조절하지요. 그 조정에 따라서 날아갑니다.
 
조정(연결) 의 예를 들어 보이지요. 부적(amulet)을 아시지요. 모든 나라들이 문화와 관습에 따라 아주 많은 부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세기 동안의 관습에 의한 미신입니다. 미신은 원죄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어두움으로 들어가서 필요한 것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호기심과 같은 것으로 우리의 가장 큰 약함의 하나입니다. 이브는 자신이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는지 알고 싶었으므로 뱀에게 다가갔습니다. 그것이 원죄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무언가 찾아내려고 여기 저기 다니며 주술 혹은 점을 보려는 순간마다  어두움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호기심은 원죄로 인한 것으로 우리를 어두움의 나락으로 안내하는 가장 약함 중 하나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집에 풍수를 위한 크리스탈이 있다면 예를 들어 보이죠. 그 풍수들은 일본이나 중국의 오래된 미신으로서 크리스탈, 우주의 힘을 숭배하는 것과 같습니다. 풍수학자가 여러분의 집에 오면 우주의 기운에 맞춘 가구배치를 알려주면서 우주의 기운이 흘러 들어와 여러분과 조화를 이루게 되면 행운의 문이 열리고 삶에 행운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긍정적인 에너지가 여러분에게 흘러 들어와 우주와 조화를 이룬다고 말합니다. 저도 회개하기 이전에 캘리포니아의 집에서 그것을 따라 했었습니다. 어떤 소파는 북쪽을 향하도록 하고 침대는 남쪽으로 향하게 하며 현관에 크리스탈을 거울에 비추도록 놓는 등…  저는 그에 대한 끔찍한 노예가 되었었습니다. 가정부가 가구의 위치를 바꾸어 놓기라도 하면 저는 매우 화를 내곤 하였습니다. 그것을 바꾸면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만일 여러분의 집을 풍수에 따라 인테리어를 했다면, 즉 그 어두움의 영역 안에 놓았다면 주술자(무당, 풍수학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그들이 밤에 영적인 세계를 돌아다니다가 그 크리스탈이나, 부적 등 그 밖의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통해 조정 혹은 연결을 하는 것입니다. 우주의 힘으로 온다는 그 모든 것들은 주술로서 미신과 관련된 것입니다. 에너지와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어둠의 영과 연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영이 여러분의 공간에 장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 조정기를 통해 들어온 것이죠. 그 크리스탈이나 모든 부적들이 어둠의 영을 연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뉴에이지에 관련된 어떤 것도 지녀서는 안됩니다. 그것들이 어두움의 영을 연결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이 어둠의 영으로 충전되어 여러분을 해칠 수 있습니다. 우리 가톨릭에는 성물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축성받은 십자가는 단순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억하려는 물건이 아니라 그 이상의 성물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충실하다면 우리가 지니고 있는 축성된 십자가는  주변에 끊임없이 돌아 다니는 악령들에게 있어서 그것이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십자가 위에 계신 예수님입니다. 하느님의 현존의 영원 안에는 예수님이 골고타 산위의 십자가에 못박혀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악령들이 그 십자가를 마주 할 때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발아래 놓여집니다. 그러므로 가톨릭 교회는 구마를 할 때 십자가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악령으로부터 보호하려는 것이지요. 그것이 단지 나무를 깍고 예수님이라고 새겨 붙인 사물을 뛰어넘는 영적인 성물인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선함 안에서의 빛과 함께 영적으로 충전된 성물들이 있습니다. 그것에는 영적인 힘이 있습니다.  그와 같은 것이 반대방향에서도 일어납니다.
 
어떤 사물이 고의적으로 사탄의 영으로 충전되어질 수 있습니다. 부두인형과 같이 인형을 주술로 충전하는 것도 있지요. 영으로 충전된 그 인형을 선물로 이용하면, 어두움의 영으로 준비된 그것이 해를 입힙니다. 그와 관련된 예를 드리죠. 여러분이 하느님의 은총 안에 있다면 어떠한 주술이나 마술도 여러분에게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느님께 대한 굳은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누군가가 여러분에 대해 아무리 주술을 하여도 여러분에게 손도 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느님의 은총안에 있지 않다면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어떤 사악한 것들을 행할 때 여러분은 넘어집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실제로 사탄에게 속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남편이 아내에게 충실하지 못하고 내연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내연녀가 그 남자를 아내로부터 떨어뜨리려고 주술을 행했다고 한다면 그 남편의 간음죄로 인한 대죄 상태에 있음으로해서 사탄은 그에 대한 힘을 갖습니다. 그가 대죄로 인해 사탄의 영역으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내에게 충실한 남편에게 어떤 여자가 짝사랑에 빠져 그 남자에 대해 모든 주술을 다 해도 결코 그 사람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사실입니다. 우리가 뉴에이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지만, 사탄의 능력이 강하여서 하느님께 대한 강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사탄의 힘이 미칠것이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강한 신앙을 가지고 있을 때 사탄은 우리에게 아무 짓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술과 같은 행위를 한다면 어둠의 힘에 대해 문을 열어놓게 되어 우리를 상하게 할 것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불행히도 매우 많은 영적이지 않은 가톨릭 신자들이 있습니다. 사탄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믿지 않으며 지옥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영적세상조차 믿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그와 같은 행위를 장난처럼 합니다. 그것이 영적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믿지 않고 단순히 장난 혹은 게임이라고 하며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큰 어려움에 빠질 것입니다. 자신을 둘러싼 힘에 대해 상관하지 않고 조심하지 않음으로 인해 나중에 심한 우울증을 앓거나 큰 혼란에 빠지고, 많은 내면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방법도 모르고, 특별한 진단도 나오지 않는 등의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은 어두움에 대해 경고합니다. 우리의 적, 어둠의 영을 조심할 것을 가르칩니다. 성서의 복음서를 잘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사탄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항상 악령 들린 사람을 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도 악령들린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어떤 악령들은 마귀들린 사람들을 통해 예수님께 말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아야하고 영적세상이 실제로 존재하며 악령들이 우리들에게 대항하여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속수무책이 아닙니다. 우리가 충실한 믿음을 가질 때 그들은 우리에게 힘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사실이고 우리 가운데 영적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 영역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주 쉽게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바이러스 전염병과 같습니다. 우리는 결코 자신을 그 죄의 영역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쉽게 오염되고 말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텔리비젼, 출판, 미디어, 라디오 등 많은 것에 의해 오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많은 뉴에이지 서적들이 나옵니다. 그들이 보여주는 모든 멘탈콘트롤 기법은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믿음의 은총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우리는 결코 자신을 콘트롤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멘탈 콘트롤 기법으로써 스스로 자신을 콘트롤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스스로 이룰수 있다고 믿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장 큰 실수이며 다시 원죄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세례 받기 전의 상태로 되돌아 가서 모든 은총을 잃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이 긍정적인 사고, 자아 실현, 자아 존중 등을 통해 여러분의 삶에서 이루어야 할 것에 대해 스스로 이룰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하느님을 잃어버리고 자신이 하느님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확하게 뱀이 이브에게 말한 것입니다.  뱀은 이브에게 “이 과일을 먹음으로서 하느님과 같이 될 것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것이 정확하게 멘탈콘트롤 기법이 가르치는 것입니다. 기적의 코스, 실버메탈, 으로 불리워지는 많은 것들이 그러한 것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그러한 것들이 나와 비싸게 팔립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모두 거짓된 것이며 가짜입니다. 그 누구도 자신이 스스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의지하여야 하며 절대로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은총에 의한 것입니다. 그 어느것도 하느님의 뜻 없이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자유의지가 있지요.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을 떠난 결정을 할 때 그것은 물 밖에 있는 물고기와 같습니다. 살아 남을 수 없는 것이죠. 하느님을 떠나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하느님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또한 하느님의 사람들인 우리가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을 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은 사실입니다. 현대에는 그러한 기법이나 행위들이 아주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면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를 확인하지 않은 채 많은 것들을 따라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동양 이방 종교에서 나오는 철학과 사상과 같은 이교사상을 행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입니다
 
또다른 예를 들어 보이겠습니다. 기(氣)치료가 요즘 매우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병원에서도 치료법으로 행하고 있지요. 많은 기치료사가 있습니다. 기(氣)치료는 영의 경로를 열어주는 영매술인것을 아십니까? 여러 다른 단계의 영의 경로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기마사지라든지 하는 것들이 그다지 해로울 것 같지 않아 보이지요. 편안하게 해주고 어떤 경우는 치유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위험은 이렇습니다. 여러분이 주술에 대해 자신을 열었을 때나, 기와 같이 영적인 경로를 열었을 때 겉으로는 육체적 단계인 평안함과 긴장완화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되지만 자신을 영적 단계로 열어놓음으로 인해 나중에 이유도 없이 심한 우울증이라든지, 불안장애와 같은 여러종류의 내면적인 어려움을 겪게 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육체적인 치유를 주는 것 같지만 후에 영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국 정신질환으로 간다든지, 혹은 악령이 어떻게 일할 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런 것들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입니다.
 
그 외에도 찾아보면 그와 같은 것들이 수없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들을 대신할 새로운 모조품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완성할 수 있는 모든 진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톨릭 교회는 모든 진리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 누구도 교회 바깥의 가르침으로부터 배워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께 충실하며 선한 삶을 살 수 있기 위해서 하느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모든 필요한 것을 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톨릭 신자들이 바깥에서 또 다른 것을 찾아 다니며 기회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과 같이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사람들이 자기가 가진 재산이나 소유, 일자리들을 잃기 시작할 때가 주술이나 점이 성행하는 때입니다. 뉴에이지가 가장 강해지는 때입니다. 나라가 파산을 하고 가정경제가 파산할 때마다 주술자들이 나타나고 주술이 성행합니다. 사람들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잃어버린 돈을 되찾으려 하고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으려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주술이나 점을 선택합니다.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므로 아주 인기가 높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필요와 일시적인 문제가 아주 심각하고 힘들다고 여기므로 그 해결을 위해 이면에 있는 위험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진 나라들 안에서 뉴에이지가 커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아주 커져서 사람들에게 번영을 약속하는 뉴에이지  종파가 사람들에게 아주 인기가 좋습니다. 사탄은 그러한 기회를 잡으려 하는 것이죠.  사람들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해를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점이나 주술에 쉽게 접근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주술에 문을 열 때마다 살아있는 어두움의 메신저를 받아들이는 것이므로 살아가면서 감당할 수 없는 많은 문제와 어두움을 맞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세상에 대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손금보는 사람에게 갈 때마다 문을 엶으로 해서 영이 우리에 대해 힘을 갖습니다. 단순한 손금 보는 것만으로도 그렇습니다. 그것들이 죄일뿐만 아니라 파멸로 이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에게 뉴에지에서 나온 천사론이 일반화 되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오직 세명의 대천사, 미카엘 대천사, 가브리엘 대천사, 라파엘 대천사에 대해서만 이름을 부르게 되어 있습니다. 성서에 오직 그 세명의 천사만 이름으로 불리워집니다. 우리는 그 세 천사가 무엇을 하였으며 어떤 역할을 맡고 있으며 무엇을 나타내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외 다른 천사들은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은 수호천사조차도 이름을 부르지 않고 수호천사라고 부르도록 되어있습니다. 수호천사께 드리는 기도에도 이름을 부르지 않고 수호천사라고 합니다. 뉴에이지 천사론에서는  모두 천사들을 이름을 부릅니다. 이런 것에 대한 천사, 저런 것에 대한  천사, 다 다른 이름으로 부릅니다. 사실 영적 세계는 모든 것에 대해 천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뉴에이지에서 이름을 부르며 보여주는 모든 천사들은 하느님의 천사가 아닙니다. 추락한 천사들입니다. 빛의 천사처럼 보이지만 빛의 천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영적세계로부터 천사를 부르도록 되어있지 않습니다. 어떤 천사가 오는지 어떻게 압니까? 그 천사들에게 문을 열어 놓는다면 무슨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모든 추락한 천사들과 지옥에 간 영혼들이 오직 원하는 것은 자신들처럼 우리를 지옥으로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가지고 있는 질투는 어마어마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묵시록 12장에서 성 요한이 우리를 가르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 요한은 태초에 하느님께서 삼분의 일의 천사들을 땅으로 쫓아낸 것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땅과 바다는 불행하다”  라는 소리를 들었지요. 사탄은 땅으로 쫓겨났고 자신의 시간이 얼마남지 않은 것을 알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영원히 추방되어 땅으로 쫓겨났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역시 낙원으로부터 땅으로 쫓겨났습니다. 여러분이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다면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땅으로 내려 오셨다고 성서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땅을 떠나실 때 다시 올라가셨습니다.  오셨던 곳으로 다시 승천하셨지요. 있을 곳을 마련하시겠다고 말씀하시고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아래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를 만나기 위해 내려오셨다가 우리를 떠나 다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곳으로부터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결코 이 곳을 나갈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순종한다면 이 곳을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탄은 우리를 매우 질투하며 분노합니다. 
 
예를 들어 이 지상이 감옥이라고 한다면 이 감옥에서 결코 나갈 수 없는 종신형으로 선고된 자들이 추락한 천사들과 심판을 받아 잃어버린 영혼들입니다. 이곳에서 태어났지만, 일시적으로 머물도록 창조된 우리도 감옥에 있지만 우리에게는 이곳을 나갈 수 있는 티켓이 주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값을 치루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하기 위해 이 곳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구원자라고 부르지요.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에 의해 구원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피로서 우리의 값을 치루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값을 치루신 주님과 함께하기 위해 우리는 순종해야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분을 닮아야 하고 그분의 가신 길을 이해하고 따라야하며 그분이 주신 진리가 진리임을 이해해야하며 우리에게는 영원한 삶이 주어졌다는 진리에 따라 산다면  삶의 마지막에 우리는 이곳을 빠져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이해하고 우리가 악령에 맞서는 전쟁을 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바오로는 명확하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단지 피와 육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돌아다니고 있는 어두움의 힘을 가진 영들과의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볼 수는 없지만 그들은  우리와 대항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느님께 대한 순종 위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뉴에이지에 관련된 모든 행위들은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도록 초대하는 것들입니다. 일시적인 삶의 해결로 초대합니다. 사람들은 일시적인 삶의 빠른 해결을 위해 주술, 점등을 찾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혼란스러워 하며 삶에 대해 무언가를 알고싶어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단지 호기심으로 카드점을 보기도 하며 주술이 말하는 것을 알고 싶어합니다. 거의 스포츠를 즐기 듯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아주 위험한 것입니다. 러시안 룰렛(무작위, 자살의 일종) 같은 것입니다.  한번 맞으면, 즉 악령에게 잡히면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악령이 들릴수도 있는 것입니다.
 
요즘은 뉴에이지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하면 스캔들이 되다시피 합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그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을 매우 불편해 합니다. 뉴에이지를 배척한다고 광신도로 몰립니다. 모든 것을 악령들린 것으로 보는 사람 취급을 하지요.
 
그러나 제가 가톨릭 신자들은 힌두교에서 나온 요가를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고 해서 힌두교인들이 모두 악령들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힌두교인들은 힌두교 신앙만을 압니다. 그리스도 신앙을 모르지요. 만일 힌두교인이 죽었는데, 그 사람이 선하고 거룩하게 산 사람이었다면, 즉 모든 사람이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었으므로 그 사람 마음 안에 들어있는 사랑의 계명에 따라 살았다면, 그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전 앞에 나아갔을 때 주님께서는 그를 힌두교인으로 부르지 않습니다. 힌두교는 하느님과 상관없는 사람이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의 삶, 그의 행위에 따라 부르실 것이고 그것이 그 사람의 심판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가 진리를 알고 있고 힌두교가 이방인의 종교라는 것을 알면서도 힌두교의 종교행위를 했다면 주님의 대전 앞에서 큰 어려움을 맞게 될 것입니다. 자신을 하느님을 부정하는 상태에 놓았기 때문입니다. 가짜 신을 숭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가장 심각한 죄 중에 하나입니다. 진리의 모든 것을 알게 되었음에도 가짜 신을 숭배 한겁니다. 성서를 읽어보면 결코 가짜 신에게 가지도 말고 따라하지도 말라고 합니다. 가짜신으로부터 아무것도 가져오지 말라고 합니다. 하느님은 질투의 하느님입니다. 정확하게 우리가 무엇을 하지 말아야할 지 말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힌두교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해서 절대로 힌두교에 대한 판단을 해서는 안됩니다. 제가 장담합니다. 거룩한 힌두교인이 순종하지 않는 가톨릭 신자보다 훨씬 빨리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거룩한 힌두교인, 거룩한 불교인, 거룩한 이슬람교인, 거룩한 유대인, 그리스도인이 아닌 거룩한 어떤 사람도 우리 가톨릭 신자만큼이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함에 있어서는 이방인의 종교나 철학을 배척해야하지만, 그 종교에 따라 살고 있는 타종교인들이 사탄이 들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방종교라는 것을 모르며, 이방종교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므로 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모르고 하는 것에 대해 책임이 있을 수는 없지요.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이방종교행위의 영역으로 들어간다면 매우 많은 어려움을 맞게 될 것입니다. 너무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지 말아야 할것을 하면서 혼동하며 자신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도 슬픈 사실은 가톨릭 신문 같은 곳에서도 교회 안에서 하는 요가라는 내용으로 세 네 페이지를 할애합니다. 어떤 것들은 주교도 허락합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의 심장부로 들어가면 가톨릭 신자로서 하지 말것을 권고합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힌두교인이나 요가 그 자체를 사악한 것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 가톨릭 신자는 이방종교로 부터 오는 그 어느 것도 행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상숭배가 되는 어떤 것도 해서는 안됩니다. 가짜 신을 숭배하는 어떤 것도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마음 안에 그것을 명확하게 해야합니다. 요가는 우리의 신앙에 반대되는 뉴에이지의 한가지 예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이 혼동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육체적으로 치유를 주고 긴장완화를 가져다 주기 때문일 뿐 그들의 종교를 믿는 것이 아닌데 무엇이 나쁘냐고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방인의 종교로부터 가져오는 모든 것을 우리가 해서는 안되는 것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손을 대서도 안됩니다.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오늘날의 우리는 지나치게 상대주의적 사회안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사회의 가장 큰 자만심입니다. 혈연관계에도 지나친 이 상대주의로 인해  오늘날의 부모들은 자식들이 (내연의) 동거를 하거나 해도 아무말도 하지 못합니다.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자식과의 관계를 잃을까바 두려운 것이죠. 그것이 대죄라고 말하는 것 보다 관계를 잃지 않길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러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더이상 누구와도 진리로 인해 맞서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저 모든 관계에서 각자 편한 것이 옳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우리의 교회안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그러기에 교회가 오늘날과 같은 상황을 맞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많은 교회들이 많은 어려움을 맞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더이상 진리를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이상 있는 그대로 말하는것을 원치 않습니다. 핍박이 두렵고 내쳐질까 두렵고 누구도 강연하도록 초청하지 않을까 두려운 것이죠. 우리는 용기를 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어야하는 종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의 신앙은 우리를 위해 죽임을 당한 사람들에 의해 전해졌습니다. 이 아이랜드에도 많은 순교가 있었기에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 질문은 다음 세대의 가톨릭을 위해 누가 죽을수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음 세대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습니까? 진리를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우리의 신앙을 흐려지게 한 우리가 우리 다음 세대에 무엇을 얼마나 물려줄 수 있는가?하고 의문을 가진적이 있을 겁니다. 그러한 모든 이방종교의 것들을 교회에 가져오고서 정상이라고 여기는 지금 말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수도원에 가보면 뉴에이지를 행하는 수녀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말합니다. 그들은 결코 새로운 청원자를 갖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이 모든 은총을 거두어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 수도원이 사업장으로 변할지도 모르죠. 어떤 수녀는 수도원을 뉴에이지 센터로 바꾸기도 합니다. 그리고 많은 돈을 벌지요. 그러나 더 이상 청원자를 갖지 못합니다. 하느님께서 더 이상 축복을 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가톨릭 수녀원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만일 뉴에이지를 행하는 본당이 있다면 그 본당은 분명히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 본당이 분열하여 무너지게 될 일이 생깁니다. 본당에서 그러한 일들을 그리스도교에 가져오는 그 행위는 하느님을 반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대에 그러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러기에 우리는 많은 은총을 잃었고 오늘날 교회가 그토록 많은 위기에 처하였으며 우리의 그토록 많은 곳의 사목자들이 약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행위는 주술행위로서 교회에 영향을 미치므로 우리는 우리의 교회를 보호해야 합니다. 우리는 용감해져야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행할 이유가 없습니다. 카드점을 보고, 타롯카들를 보고 별자리 챠트를 보고 점쟁이를 찾아갈 필요가 왜 있습니까? 왜 우리가 그러한 이방 전통을 행하며 그것을 우리의 삶 안으로 가져와야 합니까?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들의 선조들은 그러한 것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절대 그러한 것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은총의 삶을 살았습니다.  교회를 돌아보아도 곁코 그러한 것들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것을 행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 중 한사람이었습니다. 저는 33년동안 가톨릭 교회를 떠나 모든 종류의 뉴에이지를 행했습니다. 60년대였던 제 나이 14세에 가톨릭 교회를 떠난 이후 저는 모든 종류의 동양 이방종교로부터 오는 것들을 행하였고 동양사상, 주술, 마술, 별자리점, 숫자점, 등 모든것을 행했습니다. 그 종류는 끝이 없었습니다.  제가 70년대 이후,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헐리우드에서 배우로 활동할 때,  저의 동료들, 감독, 작가, 배우들이 모두 뉴에이지 안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 주술 등을 행하고 있었고 제가 참여한 모든 영화나 음악제작자 들은 모두 뉴에이지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 주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고 사람들을 주술을 하게끔 이끌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 드리죠. 여러분은 ‘ 고스트’라는 영화를 기억하실 겁니다. 저도 이 영화제작에 참여하였었습니다. 그때 저는 회개하기 전이었으므로 제가 그러한 것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에 한 커플이 나오지요. 남자가 골목에서 살인을 당합니다. 그리고 죽은 그 남자는 아내와 소통하려고 시도하며 영매(영을 연결해주는 사람)를 이용합니다. 그리고 영매를 가장한 거짓 영매가 그를 아내와 연결합니다. 그 영화에서 우리는 세 명의 유명한 배우를 썼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 영화는 살인당한 남자가 위험에 처한 자신의 아내와 소통하려 한다는 매우 로맨틱한 영화 같아 보입니다. 모든 청중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남자가 영매를 통해 아내와 소통하기를 바라게 되고 영매나 주술에 대하여 의식적으로 마음을 열게 됩니다. 영매술을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좋은 가톨릭 신자조차도 영화를 보며 오~그렇지…하면서 그 일을 일어나기를 바라지요. 또한 그 남자는 아내와 소통하기를 바랄 뿐 아니라 자신을 죽인 두 사람에 대한 복수를 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그들을 죽이고 나서 주인공은 천국에 가고 복수 당한 두사람은 지옥에 갑니다.  이 영화에는 의도가 숨겨져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영매술을 할 수 있다는, 그것이 정상적인 것처럼  가르칩니다. 그리고 복수에 대해 가르칩니다. 복수를 하면서도 여전히 거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말도 안되는 방법의 자선을 보여줍니다. 영화에서는 그들이 돈을 되찾고 그 돈을 모두 거리의 수녀에게 자선합니다. 이 영화를 누가 제작하였는지 안다면 놀랄것입니다. 그 당시에 저도 몰랐지만, 이 영화를 제작한 제작사가 캘리포니아 산호세에 있는 사탄교에 속해 있다는 것을 후에 알았습니다. 그들이 고의적으로 계산에 의해 그 영화를 제작한 것입니다. 그것이 이 영화 뒤에 숨은 의미입니다. 그것이 미디어 안에서 일어나는 사탄의 계획입니다. 저는 그러한 많은 영화와 음악을 댈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모르고 그것들을 삽니다. 제가 사람들과 이 영화에 대해 나눌 때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그 영매술을 받아들이고, 복수를 받아들이고, 주인공이 복수하기 위해 두사람을 죽이고도 천국에 갔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모른채 그 영화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이 두 사람을 죽이고도 천국에 갔다는 어이없는 메시지가 있을 수 있습니까? 완전히 그리스도교를 반대하는 말도 안되는 메시지입니다. 시장에 나와 있는 매우 많은 영상, 음악이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뉴에이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것들에 대해 깨어있어야 합니다. 이 아이랜드에도 뉴에이지에 침식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수도원들이 침식당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제들도 그런것들을 조금씩 행합니다. 물론 모든 사제가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매우 거룩한 사제도 많이 있고  제 개인적으로 그런 분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것들이 교회 안에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행하는 가톨릭 신자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내에서 이름있는 평신도들도 그러한 것들을 행하며 사람들에게 나쁜 예를 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결코 그러한 것들을 행하고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저를 매우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을 배척한다고 사람들이 매우 화를 낼것입니다. 사탄이 매우 화를 내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것에 대해 말하지 말고 소리를 높이지 말고 자신이 결정하도록 두어야 한다고 말하지요. 그것이 우리가 오늘날 보통 취하는 행동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말하여야하고 누군가는 사탄을 대적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상하게 하고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큰 해를 입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에 대한 자료들을 이용해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주어야합니다. 주변사람들에게 그것에 대해 말하기 위해, 타당한 이유를 말해주어야 겠지요.
 
교회가 초대하는 한가지는 아주 겸손한 가톨릭 신자입니다. 단순하게 믿음에 충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성사적인 삶을 살 때 우리는 인류에게 가장 큰 은총을 공급해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외 어느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믿음에 충실한 가톨릭 신자란 성체를 참되게 모시는 하느님의 보속의 도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톨릭 신자로서의 우리의 역할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모든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살피실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는 나의 일을 하여라. 나는 너의 일을 할 것이다.”

 


역: wisdom 주님과 함께 기뻐하며

http://blog.daum.net/sophiay/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