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과 관상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발치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마리아뿐만 아니라(루가10,41)
‘많은 일로 부산을 떠는’(루가10,41) 마르타 역시
예수님께 자신을 내어 맡기고 그분의 현존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맡기신 일을 하면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그분과 친교를 이룰수 있으며,
사실 당연히 그래야만 합니다.
활동과 관상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행동도 지상주의와 일에 중독되는 것은 관상을 방해하지만
우리는 활동하면서도 관상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람에게 ‘기도와 일’은 서로 긴밀한 것입니다.
적극적인 봉사의 삶에 투신하는 것은 기도에 도움이 됩니다.
하느님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일하는 것은,
하느님의 영광과 인류의 구원이라는 동일한 초자연적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특별히 기도 시간을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며 일하는 것 역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향주 삼덕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활동과 관상을 균형있게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세상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영에 언제나 민감하게 됩니다.
그 결과 그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 (고린 후 2,15)를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삶이 곧 기도임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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