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천상의책11-15권

천상의책 (15권-11-13)충실과 정신 집중의 열매/예수님께서 거룩하신 뜻 안에서 지신 십자가의 성격.

Skyblue fiat 2015. 7. 20. 19:25

 

15권-11,  빈사 상태에 처해 있는 두 사람

1923년 2월 3일

 

1. 다정하신 예수님의 부재로 생명이 빠져나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분은 나의 내면에서 기적을 내실 때에도 저 끔찍한 죄들의 바다 속에 계신 모습을 보여 주신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진 내가 소리 내어 울부짖자, 그제야 그 죄들의 바다에서 나오시어 나를 껴안으시고 말씀하셨다. 내 신음 소리에 자극을 받으신 모양이었다.

 

2. “딸아, 무슨 일이냐? 숨넘어갈 듯한 그 신음 소리를 듣고 내가 만사를 제쳐 놓고 왔다. 너를 도우며 지탱해 주려고 말이다. 딸아, 인내하여라. 너도 나도 인류의 선익을 위해 죽어 가는 가련한 상태에 처해 있다.

 

3. 하지만 사랑이, 죽어 가고 있는 우리를 지탱하여 죽지 않게 한다. 허다한 죄들의 바다 속에 빠져 죽을 듯한 가엾은 인류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4. 그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동안에도 그 바다의 파도들이 우리 둘을 익사시키려 드는 것 같았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누가 다 말할 수 있으랴!

 

5. 그런데 그 파도들 속에 전쟁 준비를 하고 있는 이들이 보이기에, “저의 생명이시여, 이 두 번째 전쟁이 얼마 동안 계속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첫 번째 것이 그렇게 오래 끌었다면, 더욱 광범위하게 번질 것 같은 이 전쟁에서야 무슨 일인들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하고 내가 묻자, 예수님을 매우 괴로워하시며 이르셨다.

 

6. “과연 광범위한 전쟁이 되겠지만 그다지 오래 끌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개입할 터인즉, 하늘에서 내려오는 징벌이 땅의 징벌을 약화시킬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기도하자. 그리고 너는 결코 내 뜻 밖으로 나가지 마라.”

 

 

 

    

​15권-12,  충실과 정신 집중의 열매

 1923년 2월 13일

 

1. 내가 심히 괴로워하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잠시 나타나셔서 이르셨다.

“딸아, 용기를 내고, 내게 충실하며 집중하여라. 충실과 정신 집중은 한결같은 성정(性情)이라는 결실을 낸다. 이것은 변덕을 부리지 않게 하면서 영혼 안에 완전한 평화를 확립한다.

 

2. 이 평화가 그 사람을 지배하기에, 그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게 되고 원하는 것에 도달하게 된다. 특히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은, 변함없이 빛과 열을 방출하는 하나의 작용만 하는 태양과 같다. 태양은 오늘 이랬다 내일 저랬다. 하는 법이 없다. 언제나 충실하고 항구하게 같은 일을 한다.

 

3. 그러나 태양의 이 하나뿐인 활동이 지구 표면으로 내려와 맞닿으면, 얼마나 다양한 작용을 하는지 모른다! 그 수는 거의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니, 만약 반쯤 닫힌 꽃봉오리를 보면 빛과 열의 입맞춤으로 활짝 열리게 하면서 색채와 향기를 넣어 주고, 설익은 과일을 보면 충분히 익히며 단맛을 부여하고, 녹색인 들판을 보면 황금색으로 바꾸고, 썩어 악취가 나는 공기를 보면 빛의 입맞춤으로 정화한다.

 

4. 요컨대 태양의 활동은 만물에게 지구상에서 생존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어, 하느님께서 정하신 대로 각자가 내포한 유용성을 산출할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태양은 충실하게 언제나 같은 일을 하는 것으로, 만물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5. 오, 태양이 만일 빛을 보내는 일을 한결같이 하지 않는다면, 지상에 얼마나 큰 이변과 무질서가 속출하겠느냐! 밭에 대해서건 농작물에 대해서건 사람들도 도무지 가늠할 수 없어서 '태양이 나에게 빛과 열을 보내지 않으니, 언제 수확할지, 언제 과일이 익을지 알 수가 없다.' 하고 말할 것이다.

 

6. 충실하게 정신을 집중하는 영혼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내 뜻 안에서 행하는 그의 행위는 하나이지만, 그 효과는 셀 수 없이 많은 것이다. 반면에 그가 변덕스럽고 주의가 산만하다면, 그 자신도 나도 아무런 가늠을 할 수가 없고, 산출 가능한 선의 열매를 확정할 수도 없다.”

 

 

 

    

15권-13  예수님께서 거룩하신 뜻 안에서 지신 십자가의 성격.    

구원 사업은 영원의 영역에서 이루어졌기에 완전하다.

 1923년 2월 16일

 

1. 늘 하듯이 십자가에 달려 계신 분께 경배하며 그분의 사랑하올 뜻 안에 나 자신을 맡기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내 마음 안에서 기척을 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2. “딸아, 서둘러라. 서둘러라. 서둘러라. 어서 내 의지 안에서 네 길을 따라 걸어라. 네 행위를 나의 행위와 내 엄마의 행위와 결합시킬 수 있도록, 내 인성이 지고한 뜻 안에서 행한 모든 것을 통해 계속 나아가거라.

 

3. 한 피조물이 영원한 뜻 안으로 들어와서 우리의 행위가 삼중으로 되게 하지 않고서는 이 지고한 뜻이 땅에 내려와 인간 세대들 가운데 자신의 생명을 베풀지 않기로 정해져 있다. 이 뜻은 스스로를 알리기 위하여 삼중의 행위들이 행렬을 이루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니 서둘러라.”

 

4. 예수님은 침묵을 지키셨고, 나는 마치 거룩하고 영원하신 뜻 안으로 던져진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예수님의 모든 행위들을 발견하고 나 자신의 행위들을 겹쳐 놓았다는 것뿐이다. 그때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을 이으셨다.

 

5. “딸아, 내 뜻은 내 인성이 이 거룩한 뜻 안에서 행한 일에 대하여 아주 많은 것을 알려 줄 것이다. 내 인성은 흠 없고 완전한 구원 사업을 이루기 위해 영원의 영역 안에서 이를 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6. 여기에 영원한 의지가 반드시 있어야 했던 이유가 있다. 곧, 나의 인간적인 의지가 영원한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내 모든 행위가 끝이 있는 유한한 행위가 되었을 터이지만, 가지고 있었기에 끝이 없는 무한한 행위가 된 것이다.

 

7. 따라서 나의 고통, 나의 십자가는 끝없이 무한한 것이었고, 내 인성으로 하여금 이 모든 고통과 십자가를 만나게 한 것은 거룩한 뜻이었다. 이 뜻이 첫 사람에서 마지막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류 가족 위에 나를 눕혔고 나는 온갖 종류의 고통을 나 자신 안에 흡수했으니, 각각의 피조물이 내 십자가를 이루었던 것이다.

 

8. 그러므로 내 십자가는 과거와 미래의 모든 세기만큼 길었고, 인간의 모든 세대만큼 넓었다. 그것은 유다인들이 나를 못 박게 한 갈바리아의 그 작은 십자가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이 십자가는 지고한 뜻이 나를 못 박혀 있게 한 저 긴 십자가의 비유였을 뿐이다.

 

9. 각 피조물이 그 십자가의 길이와 너비를 이루고 있었고 그렇게 하면서 그들 자신도 같은 십자가에 붙어 있게 되었으므로, 거룩한 뜻이 나를 그 위에 누이고 못 박으면서 그것이 나만의 십자가가 아니라 이를 이룬 모든 이의 십자가도 되게 하였다.

 

10. 이런 이유로 십자가를 지기 위해 내게 영원의 영역이 필요했던 것이니, 땅이 그것을 담기에는 너무 협소한 공간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11. 내 인성이 하느님의 뜻 안에 행한 것과 이 뜻이 나로 하여금 모든 피조물에 대한 사랑으로 겪게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그들이 알게 된다면, 오, 얼마나 큰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겠느냐!

 

12. 내 십자가는 나무로 된 것이 아니었다. 나무가 아니라 영혼들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뜻이 나를 누인 십자가에서 나는 그들의 심장이 고동치는 것을 느꼈다.

 

13. 이 십자가는 그들 중 아무도 내게서 빠져나가지 않게 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자리를 잡아 주었다. 그리고 그 모두에게 자리를 잡아 주려고 나를 너무나 끔찍하게 잡아 늘렸다. 얼마나 혹독한 고통이었는지, 이에 비하면 내 수난 중의 고통은 경미한 고통, 아니 오히려 위안이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14. 그러니 내 뜻이, 이 영원한 의지가 내 인성 안에서 행했던 모든 것을 알릴 수 있도록 너는 서둘러라.

이 지식이 수많은 사랑들을 획득할 것이다.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애원하리니, 내 뜻이 그들 가운데서 다스리게 될 것이다.”

 

15.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시는 그분의 음성에 애정이 어찌나 철철 넘쳐흐르는지 나는 아연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랑이시여, 당신의 뜻에 대해 말씀하실 때면 그리도 큰 사랑을 나타내시니 어인 까닭이십니까? 너무나 큰 사랑을 느끼신 나머지 당신 자신 안에서 또 한 분의 당신을 내보내시는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다른 어떤 것에 대해 말씀하실 때는 그런 사랑을 느끼지 않으십니까?"

 

16. 그러자 그분께서 이르셨다. “딸아, 그것이 알고 싶으냐? 내 뜻이 피조물에게 알려지게 하려고 이 뜻에 대해 말할 때 내가 원하는 것은, 그 피조물 안에 나 자신의 신성을, 따라서 또 하나의 나를 불어넣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나의 사랑이 그 안으로 들어가서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를 사랑하게 된다. 내 뜻에 대해 내가 말할 때에 사랑이 흘러넘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때문이니, 그 피조물의 마음 안에 내 뜻의 거처를 장만하려는 것이다.

 

17. 반면에 다른 어떤 것에 대해 말할 때 내가 불어넣은 것은 내 덕행들이다. 그에게 지금 내가 알려 주고 있는 덕행이 무엇이냐에 따라 나는 그를 창조주로서 사랑하거나, 어떤 때는 아버지로서, 어떤 때는 구원자로서, 어떤 때는 스승으로서, 또 어떤 때는 의사거나 기타 등등으로서 사랑한다. 이런고로 내가 또 하나의 나를 만들어 주고 싶을 때와 같은, 저 넘쳐흐르는 사랑은 아닌 것이다.”